중국·러시아 어깃장에 흔들리는 유엔 안보리 [세계엔]

입력 2023.09.23 (08:01) 수정 2023.09.23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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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기후 위기, 빈곤과 불평등, 사이버 범죄, 코로나19와 같은 전염병 등 국제협력이 필요한 과제들이 산적했습니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고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권위 있는 국제기구가 유엔인데요. 올해 열린 제78차 유엔 총회에선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를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여느 때보다 높습니다.

■ 미국이 쏘아 올린 '유엔 안보리 개혁'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유엔총회 연설에서 "안보리 상임이사국과 비상임이사국 수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안보리의) 진전과 합의를 자주 방해하는 교착 상태를 깰 수 있어야 한다"며 상임이사국의 거부권을 우회적으로 언급했는데요.

안보리 개혁을 얘기하려면 먼저 의사 결정 구조를 들여다 봐야 합니다. 유엔 안보리는 상임이사국인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 5개국과 2년 임기로 총회 표결을 통해 교체되는 비상임이사국 10개국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안보리 안건을 통과시키기 위해서는 5개 상임이사국을 포함한 9개국의 찬성이 필요한데요. 상임이사국 가운데 한 나라만 반대해도 해당 안건은 부결됩니다. 문제는 중국과 러시아가 상임이사국만이 가진 이 강력한 거부권을 사용해 안보리를 매번 무력화한다는 데 있습니다.

북한에 대한 추가 제재안이 러시아와 중국의 반대로 번번이 무산됐고, 지난해에는 급기야 상임이사국인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지만, 안보리 긴급회의는 늘 '빈손'으로 끝났습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유엔 안보리에서 발언하고 있다.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유엔 안보리에서 발언하고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올해 직접 유엔을 방문해 러시아의 침략은 유엔 헌장에 위배되는 명백한 범죄라며 "러시아의 거부권이 박탈되고 안보리 활동이 정지돼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 상임이사국 수 늘릴까, 거부권 뺏을까…해법 '가지 각각'

가장 많이 거론되는 개혁 방안은 상임이사국의 수를 늘리는 겁니다. 현재 5개국인 상임이사국 수를 더 늘려서 그만큼 중국과 러시아의 영향력을 줄이겠다는 구상인 건데요. 영국 텔레그래프는 "미국 측이 안보리 상임이사국에 5~6개국을 새롭게 추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미국의 우방으로 분류되는 일본, 독일, 브라질, 인도 등은 상임이사국 확대에 찬성하고 있습니다. 상임이사국이 확대되면 진출이 유력한데 이 4개국의 외무장관들도 회동하고 안보리 개혁의 '긴급한 필요성'을 호소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와 이탈리아, 스페인 등은 반대하고 있는데요. 영구적인 지위를 갖는 상임이사국 수만 늘릴 경우 미래의 국제정세 변화를 반영할 수 없다는 게 주요 이유입니다. 대신 우리나라는 대표성과 효율성을 담보하기 위한 비상임이사국 증설을 지지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상임이사국의 거부권을 쓰지 못하게 제한하거나 아예 상임이사국 지위를 박탈하자는 주장도 나오는데요. 유엔 헌장과 조약법에 따르면 이사국 지위 박탈은 이론적으로 가능하지만 이 역시 5개 상임이사국의 동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러시아나 중국이 스스로 지위를 내려놓지 않는 한 실현 가능성은 없어 보입니다.


■ 신냉전 구도 속 유엔의 미래는?

영국 매체 파이낸셜타임스는 이번 유엔 총회가 "우크라이나 전쟁과 미중 갈등 등으로 인한 '신냉전' 기류 속에서 무기력한 상태에 빠졌다"고 진단했는데요.

카네기국제평화협력재단도 지금의 상황을 "지정학적 경쟁, 정치적 불만, 경제적 격변, 생태학적 위기가 78년 역사의 유엔 기구의 정당성과 신뢰성을 시험하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그러면서 재단은 오로지 유엔만이 법적 구속력이 있는 헌장과 보편적 회원 자격, 구호나 핵 사찰 등 국제적 문제를 다룰 수 있는 전문 기관과 정당성을 가지고 있다고 짚었는데요.

공통의 이념과 이해관계로 똘똘 뭉친 동맹과 다자기구가 우후죽순 만들어지고 있는 지금, 유엔이 '개혁'이란 해법으로 이 위기를 타개할 수 있을지 지켜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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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2023-09-23 08:46:45
    주말엔

전쟁과 기후 위기, 빈곤과 불평등, 사이버 범죄, 코로나19와 같은 전염병 등 국제협력이 필요한 과제들이 산적했습니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고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권위 있는 국제기구가 유엔인데요. 올해 열린 제78차 유엔 총회에선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를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여느 때보다 높습니다.

■ 미국이 쏘아 올린 '유엔 안보리 개혁'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유엔총회 연설에서 "안보리 상임이사국과 비상임이사국 수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안보리의) 진전과 합의를 자주 방해하는 교착 상태를 깰 수 있어야 한다"며 상임이사국의 거부권을 우회적으로 언급했는데요.

안보리 개혁을 얘기하려면 먼저 의사 결정 구조를 들여다 봐야 합니다. 유엔 안보리는 상임이사국인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 5개국과 2년 임기로 총회 표결을 통해 교체되는 비상임이사국 10개국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안보리 안건을 통과시키기 위해서는 5개 상임이사국을 포함한 9개국의 찬성이 필요한데요. 상임이사국 가운데 한 나라만 반대해도 해당 안건은 부결됩니다. 문제는 중국과 러시아가 상임이사국만이 가진 이 강력한 거부권을 사용해 안보리를 매번 무력화한다는 데 있습니다.

북한에 대한 추가 제재안이 러시아와 중국의 반대로 번번이 무산됐고, 지난해에는 급기야 상임이사국인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지만, 안보리 긴급회의는 늘 '빈손'으로 끝났습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유엔 안보리에서 발언하고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올해 직접 유엔을 방문해 러시아의 침략은 유엔 헌장에 위배되는 명백한 범죄라며 "러시아의 거부권이 박탈되고 안보리 활동이 정지돼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 상임이사국 수 늘릴까, 거부권 뺏을까…해법 '가지 각각'

가장 많이 거론되는 개혁 방안은 상임이사국의 수를 늘리는 겁니다. 현재 5개국인 상임이사국 수를 더 늘려서 그만큼 중국과 러시아의 영향력을 줄이겠다는 구상인 건데요. 영국 텔레그래프는 "미국 측이 안보리 상임이사국에 5~6개국을 새롭게 추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미국의 우방으로 분류되는 일본, 독일, 브라질, 인도 등은 상임이사국 확대에 찬성하고 있습니다. 상임이사국이 확대되면 진출이 유력한데 이 4개국의 외무장관들도 회동하고 안보리 개혁의 '긴급한 필요성'을 호소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와 이탈리아, 스페인 등은 반대하고 있는데요. 영구적인 지위를 갖는 상임이사국 수만 늘릴 경우 미래의 국제정세 변화를 반영할 수 없다는 게 주요 이유입니다. 대신 우리나라는 대표성과 효율성을 담보하기 위한 비상임이사국 증설을 지지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상임이사국의 거부권을 쓰지 못하게 제한하거나 아예 상임이사국 지위를 박탈하자는 주장도 나오는데요. 유엔 헌장과 조약법에 따르면 이사국 지위 박탈은 이론적으로 가능하지만 이 역시 5개 상임이사국의 동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러시아나 중국이 스스로 지위를 내려놓지 않는 한 실현 가능성은 없어 보입니다.


■ 신냉전 구도 속 유엔의 미래는?

영국 매체 파이낸셜타임스는 이번 유엔 총회가 "우크라이나 전쟁과 미중 갈등 등으로 인한 '신냉전' 기류 속에서 무기력한 상태에 빠졌다"고 진단했는데요.

카네기국제평화협력재단도 지금의 상황을 "지정학적 경쟁, 정치적 불만, 경제적 격변, 생태학적 위기가 78년 역사의 유엔 기구의 정당성과 신뢰성을 시험하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그러면서 재단은 오로지 유엔만이 법적 구속력이 있는 헌장과 보편적 회원 자격, 구호나 핵 사찰 등 국제적 문제를 다룰 수 있는 전문 기관과 정당성을 가지고 있다고 짚었는데요.

공통의 이념과 이해관계로 똘똘 뭉친 동맹과 다자기구가 우후죽순 만들어지고 있는 지금, 유엔이 '개혁'이란 해법으로 이 위기를 타개할 수 있을지 지켜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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