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딜 가나 K컬쳐”…외교 지형을 바꾼 소프트파워 [한미동맹70년]

입력 2023.09.29 (09:10) 수정 2023.09.29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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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10월 1일, 한국과 미국은 '한미상호방위조약' 문서에 도장을 찍었습니다. 70년 한미동맹의 시작이었습니다. 한미동맹은 당시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한국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70년이 지난 지금, 북한의 위협은 핵 개발로 인해 훨씬 더 고도화됐고, 국제 정세는 훨씬 더 복잡해졌습니다. KBS는 한미동맹 70주년을 맞아 세 차례에 걸쳐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 한미 동맹에 대해 짚어보고자 합니다.

<순서>
① 한미 사이에 선 '중국', 동맹의 길을 묻다
② "어딜 가나 K컬쳐"…외교 지형을 바꾼 소프트파워
③ 공고함 속 싹트는 불확실성…동맹의 미래는?

(왼쪽부터) 미국 공영라디오 방송 NPR의 문화 담당 데스크인 네다 율라비 기자, 국제문제 데스크인 빈센트 니 기자(왼쪽부터) 미국 공영라디오 방송 NPR의 문화 담당 데스크인 네다 율라비 기자, 국제문제 데스크인 빈센트 니 기자

■ 미국 대중 문화에 녹아들고 있는 K컬쳐

"한국 정치와 북한 관련 이야기가 방송에서 반응이 좋아요. 특히 문화와 관련해서는 한국을 빼놓고 얘기하기가 어려워요. 저희는 BTS 멤버 누가 군대에 가느냐, 이런 부분까지도 다뤄요. 오징어게임은 물론이고, BTS와 블랙핑크, 최근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같은 콘텐츠도 다뤘어요."

미국에서 가장 청취율이 높은 공영라디오방송, NPR의 문화 담당 데스크인 네다 율라비 기자는 "한국이 소프트파워에 투자한 게 성과를 냈다고 본다"며 이같이 말했습니다.

한국언론진흥재단과 미국 동서센터 주최로 현지 시간 14일 미국 워싱턴 D.C에서 한국 기자들과 만난 NPR의 기자와 PD들은 시종일관 한국 문화와 컨텐츠에 큰 관심을 나타냈습니다.

이제는 워싱턴 D.C 지하철에서 휴대전화로 한국 컨텐츠를 보는 미국인을 보는 건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 미국 공영 라디오에서 생소한 한국어 노래가 흘러나와도 놀랍지 않습니다.

'팬덤'으로 평가받았던 K컬쳐가 이제는 미국 대중 전반에 녹아들어 가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입니다.

한국인 배우 최초로 미국 에미상에서 수상한 배우 이정재한국인 배우 최초로 미국 에미상에서 수상한 배우 이정재

■ 소프트파워는 한미 관계에서 어떻게 작동할까?

'소프트파워'는 하버드대 조지프 나이 교수가 고안한 개념으로, 돈이나 권력 등의 강요가 아닌 '매력'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능력을 뜻합니다. K팝과 K콘텐츠 등 이른바 'K컬쳐'는 한국의 가장 대표적인 소프트파워로 평가받는데요, 그렇다면 이 '연성 권력'은 한미 관계에서 어떻게 작동하는 걸까요?

빅터 차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는 그 작동 기제를 확인하려면 '미국의 대학교'를 들여다 보라고 조언합니다. 빅터 차 석좌는 "한국 콘텐츠나 문화에 대한 관심이 정말 놀라울 정도로 많다"며 "조지타운 대학에서 한국 관련 강의를 할 때 28년 전만 해도 학생이 5명에 불과했고 모두 한국인이었는데, 지난 학기에는 숫자가 50명으로 늘었고 외국인이 많았다"고 말했습니다.

한국의 외교 정책이나 북한 문제를 다루는 강의를 왜 신청했냐고 빅터 차 교수가 학생들에게 물어봤더니, 대부분이 K팝에 관심이 있어서 신청했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빅터 차 교수는 "문화적인 부분이 미국의 젊은 세대들에게 정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걸 개인적으로 크게 느낄 수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빅터 차 교수처럼 많은 전문가들은 문화에 대한 관심이 정치의 영역으로 확장되는 것을 목도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현대언어학회가 발표한 통계를 보면, 2016년에서 2020년 사이 미국 대학교의 영어 이외의 언어 수업 등록은 독일어와 프랑스어, 중국어와 일본어를 포함한 모든 언어에서 큰 폭의 감소가 있었는데, 유일하게 한국어 수업만 25.4% 급증했습니다.

그동안 한국어 수업의 비중이 워낙 작았기 때문에 전체적인 총량에서 다른 언어를 앞서는 건 아니지만, 다른 언어는 감소하고 한국만 '급증'하는 추세가 적어도 2006년부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는 점은 눈여겨볼 만 합니다.

단순히 호감을 느끼는 것을 넘어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이 늘어나는 건 장기적으로 한미 관계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미국의 젊은 세대 중에 한국어를 이해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비단 한국 문화뿐 아니라 한국 자체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게 되고, 이른바 '친한' 성향의 학자나 전문가들이 다수 배출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캐서린 퍼츠 더 디플로맷 편집장은 "한국어를 공부해보겠다, 한국에 가서 공부해보겠다는 생각은 장기적으로 한미 관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트레이시 코넷 WSMV-TV 기자는 "K팝 같은 문화 현상은 정치적으로나 외교적으로 좋은 영향력을 가지게 하는 확실한 기회"라고 말했습니다.

이 같은 변화에 힘입어 주한미국대사관은 최근 몇 년 사이 '공공외교' 기능을 대폭 강화하는 등 외교 지형도 조금씩 바뀌고 있습니다.

백태웅 하와이대 로스쿨 교수 겸 한국학연구소 소장백태웅 하와이대 로스쿨 교수 겸 한국학연구소 소장

■ K-컬쳐 신드롬, 지속가능성은?

그렇다면 지금의 현상은 언제까지 지속 될 수 있을까요? 현지 시간 20일 하와이대학교 한국학연구소에서 기자들을 만난 백태웅 한국학연구소 소장은 최근 미국 대학의 한국학연구소 소장들이 모여 이 문제에 대해 논의해본 적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미국에는 하와이대학교와 하버드 대학교, UC 버클리 대학교 등 18개 대학에 한국학 연구소가 있습니다.

백 소장은 "한국학 연구자들의 생각은 이른바 '한류'가 일시적인 현상은 아니라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열풍이 시작될 때부터 오래가지 못할 것이란 우려가 계속 있었는데, 하나의 유행이 끝나면 다른 하나가 이어서 또 유행하는 등 문화적 현상이 멈추지 않고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겁니다.

백 소장은 "K컨텐츠에 어떤 에너지나 역량이 있다고 보는 것 같고, 우연히 생긴 현상이라기보다는 문화 상품을 제조하는 능력이나 유통 시스템이 상당히 탄탄하다고 보는 시각이 많아졌다"고 밝혔습니다.

백 소장은 K 콘텐츠의 인기는 한국의 국력이 상승하는 것도 과 연관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백 소장은 "단순히 음악이나 드라마만 좋아하는 게 아니라, 인천공항에 한 번 가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등 한국 사회가 주는 현대적인 이미지, 역동적인 이미지에 대한 호기심을 갖는 미국인이 늘어났다"고 전했습니다.

블랙핑크블랙핑크

■ "정부가 나서 K 콘텐츠를 '이용'하려는 건 주의해야"

백 소장은 K팝과 K컨텐츠는 물론이고 한국학에 대한 인기가 이어질 수 있도록 부단한 노력과 고민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정부의 지원도 필요하다고 밝혔는데, 다만 정부가 직접적으로 개입하고 관여하기보다는 '독립성'을 지켜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봤습니다. 한국학도 마찬가지로 정부가 학문의 독립성을 보장하면서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미국 공영라디오 NPR의 아델리나 란치아네제 선임 프로듀서는 "K컨텐츠라고 이야기하지만, 사실 한국에선 그냥 음악이고 드라마일 뿐이지 않냐"며 "그걸 이용해서 미국에서 (정치적으로) 뭘 어떻게 하려고 하는 움직임은 주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조언했습니다.

(인포그래픽 : 권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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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딜 가나 K컬쳐”…외교 지형을 바꾼 소프트파워 [한미동맹7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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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2023-09-29 09: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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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10월 1일, 한국과 미국은 '한미상호방위조약' 문서에 도장을 찍었습니다. 70년 한미동맹의 시작이었습니다. 한미동맹은 당시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한국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70년이 지난 지금, 북한의 위협은 핵 개발로 인해 훨씬 더 고도화됐고, 국제 정세는 훨씬 더 복잡해졌습니다. KBS는 한미동맹 70주년을 맞아 세 차례에 걸쳐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 한미 동맹에 대해 짚어보고자 합니다.

<순서>
① 한미 사이에 선 '중국', 동맹의 길을 묻다
② "어딜 가나 K컬쳐"…외교 지형을 바꾼 소프트파워
③ 공고함 속 싹트는 불확실성…동맹의 미래는?

(왼쪽부터) 미국 공영라디오 방송 NPR의 문화 담당 데스크인 네다 율라비 기자, 국제문제 데스크인 빈센트 니 기자
■ 미국 대중 문화에 녹아들고 있는 K컬쳐

"한국 정치와 북한 관련 이야기가 방송에서 반응이 좋아요. 특히 문화와 관련해서는 한국을 빼놓고 얘기하기가 어려워요. 저희는 BTS 멤버 누가 군대에 가느냐, 이런 부분까지도 다뤄요. 오징어게임은 물론이고, BTS와 블랙핑크, 최근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같은 콘텐츠도 다뤘어요."

미국에서 가장 청취율이 높은 공영라디오방송, NPR의 문화 담당 데스크인 네다 율라비 기자는 "한국이 소프트파워에 투자한 게 성과를 냈다고 본다"며 이같이 말했습니다.

한국언론진흥재단과 미국 동서센터 주최로 현지 시간 14일 미국 워싱턴 D.C에서 한국 기자들과 만난 NPR의 기자와 PD들은 시종일관 한국 문화와 컨텐츠에 큰 관심을 나타냈습니다.

이제는 워싱턴 D.C 지하철에서 휴대전화로 한국 컨텐츠를 보는 미국인을 보는 건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 미국 공영 라디오에서 생소한 한국어 노래가 흘러나와도 놀랍지 않습니다.

'팬덤'으로 평가받았던 K컬쳐가 이제는 미국 대중 전반에 녹아들어 가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입니다.

한국인 배우 최초로 미국 에미상에서 수상한 배우 이정재
■ 소프트파워는 한미 관계에서 어떻게 작동할까?

'소프트파워'는 하버드대 조지프 나이 교수가 고안한 개념으로, 돈이나 권력 등의 강요가 아닌 '매력'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능력을 뜻합니다. K팝과 K콘텐츠 등 이른바 'K컬쳐'는 한국의 가장 대표적인 소프트파워로 평가받는데요, 그렇다면 이 '연성 권력'은 한미 관계에서 어떻게 작동하는 걸까요?

빅터 차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는 그 작동 기제를 확인하려면 '미국의 대학교'를 들여다 보라고 조언합니다. 빅터 차 석좌는 "한국 콘텐츠나 문화에 대한 관심이 정말 놀라울 정도로 많다"며 "조지타운 대학에서 한국 관련 강의를 할 때 28년 전만 해도 학생이 5명에 불과했고 모두 한국인이었는데, 지난 학기에는 숫자가 50명으로 늘었고 외국인이 많았다"고 말했습니다.

한국의 외교 정책이나 북한 문제를 다루는 강의를 왜 신청했냐고 빅터 차 교수가 학생들에게 물어봤더니, 대부분이 K팝에 관심이 있어서 신청했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빅터 차 교수는 "문화적인 부분이 미국의 젊은 세대들에게 정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걸 개인적으로 크게 느낄 수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빅터 차 교수처럼 많은 전문가들은 문화에 대한 관심이 정치의 영역으로 확장되는 것을 목도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현대언어학회가 발표한 통계를 보면, 2016년에서 2020년 사이 미국 대학교의 영어 이외의 언어 수업 등록은 독일어와 프랑스어, 중국어와 일본어를 포함한 모든 언어에서 큰 폭의 감소가 있었는데, 유일하게 한국어 수업만 25.4% 급증했습니다.

그동안 한국어 수업의 비중이 워낙 작았기 때문에 전체적인 총량에서 다른 언어를 앞서는 건 아니지만, 다른 언어는 감소하고 한국만 '급증'하는 추세가 적어도 2006년부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는 점은 눈여겨볼 만 합니다.

단순히 호감을 느끼는 것을 넘어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이 늘어나는 건 장기적으로 한미 관계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미국의 젊은 세대 중에 한국어를 이해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비단 한국 문화뿐 아니라 한국 자체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게 되고, 이른바 '친한' 성향의 학자나 전문가들이 다수 배출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캐서린 퍼츠 더 디플로맷 편집장은 "한국어를 공부해보겠다, 한국에 가서 공부해보겠다는 생각은 장기적으로 한미 관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트레이시 코넷 WSMV-TV 기자는 "K팝 같은 문화 현상은 정치적으로나 외교적으로 좋은 영향력을 가지게 하는 확실한 기회"라고 말했습니다.

이 같은 변화에 힘입어 주한미국대사관은 최근 몇 년 사이 '공공외교' 기능을 대폭 강화하는 등 외교 지형도 조금씩 바뀌고 있습니다.

백태웅 하와이대 로스쿨 교수 겸 한국학연구소 소장
■ K-컬쳐 신드롬, 지속가능성은?

그렇다면 지금의 현상은 언제까지 지속 될 수 있을까요? 현지 시간 20일 하와이대학교 한국학연구소에서 기자들을 만난 백태웅 한국학연구소 소장은 최근 미국 대학의 한국학연구소 소장들이 모여 이 문제에 대해 논의해본 적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미국에는 하와이대학교와 하버드 대학교, UC 버클리 대학교 등 18개 대학에 한국학 연구소가 있습니다.

백 소장은 "한국학 연구자들의 생각은 이른바 '한류'가 일시적인 현상은 아니라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열풍이 시작될 때부터 오래가지 못할 것이란 우려가 계속 있었는데, 하나의 유행이 끝나면 다른 하나가 이어서 또 유행하는 등 문화적 현상이 멈추지 않고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겁니다.

백 소장은 "K컨텐츠에 어떤 에너지나 역량이 있다고 보는 것 같고, 우연히 생긴 현상이라기보다는 문화 상품을 제조하는 능력이나 유통 시스템이 상당히 탄탄하다고 보는 시각이 많아졌다"고 밝혔습니다.

백 소장은 K 콘텐츠의 인기는 한국의 국력이 상승하는 것도 과 연관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백 소장은 "단순히 음악이나 드라마만 좋아하는 게 아니라, 인천공항에 한 번 가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등 한국 사회가 주는 현대적인 이미지, 역동적인 이미지에 대한 호기심을 갖는 미국인이 늘어났다"고 전했습니다.

블랙핑크
■ "정부가 나서 K 콘텐츠를 '이용'하려는 건 주의해야"

백 소장은 K팝과 K컨텐츠는 물론이고 한국학에 대한 인기가 이어질 수 있도록 부단한 노력과 고민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정부의 지원도 필요하다고 밝혔는데, 다만 정부가 직접적으로 개입하고 관여하기보다는 '독립성'을 지켜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봤습니다. 한국학도 마찬가지로 정부가 학문의 독립성을 보장하면서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미국 공영라디오 NPR의 아델리나 란치아네제 선임 프로듀서는 "K컨텐츠라고 이야기하지만, 사실 한국에선 그냥 음악이고 드라마일 뿐이지 않냐"며 "그걸 이용해서 미국에서 (정치적으로) 뭘 어떻게 하려고 하는 움직임은 주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조언했습니다.

(인포그래픽 : 권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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