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 40% 인상도 괜찮다? 재선 앞둔 바이든노믹스의 위기

입력 2023.09.29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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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이론의 중력을 벗어난 ‘놀라운 호황’?

미국의 호황이 심상치 않다. 물가를 잡으려고 기준금리를 5% 넘게 올려놓은 '긴축' 국면인데 호황이다. 미 연준(Fed)은 올해 성장률 전망을 2% 위로, 두 배 정도 올려잡았다. 한 해를 석 달 남긴 시점이니 이렇게 큰 폭의 상향은 이례적이다. 또 내년 성장률도 상향했다.

인플레이션 우려도 적다. 성장률만 높아지고 물가는 예상 경로를 따라 떨어지고 있다. 더 놀라운 부분은 실업률이다.

연준은 여전히 물가와 실업의 상충관계(필립스 곡선)을 믿는다. 그래서 물가부터 잡으려고 기준금리를 5%위로 올려놓은 만큼 실업률 상승이라는 고통은 피할 수 없으리라 각오했다.

그런데 지금 실업률은 3.8%다. 미국에서 4% 이하 실업률은 자연 실업상태로 간주된다.

성장률은 높아지고, 실업률은 낮고, 인플레는 안정적이라니? 가능하지 않은 조합이 현실화됐다. 이대로 쭉 간다면 경제이론의 중력에서 벗어난 상황이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지는 미국 경제가 '새로운 성장 사이클'에 올라탔을 수 있다는 칼럼을 실었다. 기업 실적이 유지되고, 노동자는 더 많이 벌고, 소비자는 지속적으로 소비한다. 무엇보다 정부의 추가 투자 여력이 충분하다. 미국의 경제가 강력하고 지속가능한 장기 확장 국면으로 들어설 수 있다는 것이다.

이 호황이 정말 놀라운 점은 ‘나홀로 호황’이란데 있다. 중국은 일본식 장기침체를 걱정한다. 독일은 올해 역성장이 예상된다. 우리 경제는 ‘상저하저’ 전망이 나온다.

■ 미국만 생각하는 바이든노믹스

코로나19 지원금, 서비스 위주 경제, 세계의 인재 집결지 등 다양한 이유를 생각해볼 수 있지만, 뭐니뭐니해도 바이든노믹스를 빼놓곤 설명할 수 없다.


바이든노믹스는 제조업 중심 보호주의 산업정책이다. 반도체법(CHIPS Act)과 인플레이션감축법(IRA)가 상징이다. 죽어버린 미국의 제조업을 되살리기 위해 정부가 나선다. 보조금을 줘서 세계 최고의 반도체와 배터리 제조 기업이 미국에 공장을 짓게 한다. 제조업의 동맥인 철도, 교량, 도로 건설에도 투자한다.

정부의 시장 개입, 정부지출을 통한 직간접 투자 유도가 지금 미국 곳곳에서 건설업 붐을 일으키고 일자리를 만들어내고 있다.

다르게 표현한다면, 미국은 지금 동맹인 한국이나 타이완의 팔목을 비틀어 일자리를 가져가고 있다. 삼성전자의 미국 공장과 K배터리 3사가 만 단위의 직접 고용, 그 몇 배를 넘는 간접 파급 고용효과를 창출할 것이다. 한국에 지었으면 한국인을 고용했을 이 공장이 미국의 요청으로 미국으로 갔다.(물론 그 배경엔 막대한 보조금과 엄청난 시장이라는 유인책이 있었다)

실제로 FT가 지난해 8월 이후 외국기업의 대규모 미국 투자 계획을 모아 분석해봤더니, 모두 2,240억 달러(우리 돈 300조)에 달하는 프로젝트에서 직접 일자리 10만 개가 만들어진다고 했다. 이 투자를 이끄는 것은 한국이다. 1억 달러 이상 투자 건수가 한국 기업이 20건으로 1위였다., EU 전체가 19건, 일본이 9건, 캐다나 5건, 중국과 타이완, 인도가 각 3건 순이다.

■ 호황 속 노동자, 목소리를 키운다

그런 호황속 미국 노동자들, 지금 그들은 파업중이다.

미국 최대 노조 가운데 하나인 전미자동차노조(UAW)는 사상 최초의 GM과 스텔란티스, 포드 3사 동시 파업이 진행중이다. 3년간 40%의 임금인상과 주4일 근무를 요구한다. 전기차 공장에서 인력을 보장해달라는 요구도 한다. 통상 내연기관에 비해 단순하고 조립도 간단한 전기차 공장은 노동력이 30~40% 정도 적게 필요하다. 그래도 고용을 보장해야 한단 요구다.


UAW 노조 위원장 페인은 “자동차 회사들은 지난 10년 간 막대한 이익을 냈지만, 노동자들은 그 이익을 공유하지 못했다. 누릴 자격이 있지만 그러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애리조나에 거대 파운드리 공장을 짓고 있는 TSMC는 노동력 부족과 노조 문제를 동시에 겪고 있다. 내년으로 예정됐던 생산을 2025년으로 미루면서, 부족한 전문인력 보강을 위해 타이완에서 숙련 엔지니어 수백 명을 데려와야겠다고 했다. 그러자 애리조나 건설노조가 반발한다. ‘타이완에서 데려오는 것은 미국의 일자리를 늘리는 게 아니다’며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미국의 일자리가 많아지고 노동자가 부족해지자 협상력이 커진 노동자들이 더 큰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공식적으론 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이미 텍사스에 공장을 운영한 ‘경험이 있고 노하우도 있다’는 이유다. 하지만 최근 삼성전자가 미국에서 주 3일제를 도입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현지언론들은 당장 인력부족 문제 가능성을 언급한다.

■ 바이든, “노동자를 지지합니다”

콧대 높아진 미국 노동자의 뒷배는 대통령이다. 바이든 정부는 ‘노동자가 노조를 만들고, 단체협상을 통해 권익을 지키는 것’이 미국을 위한 길이라고 목소리 높인다. 그래야 중산층이 탄탄해지고, 경제 전체로 그 효과가 파급된다고 주장한다. 이미 2022년 연두교서를 통해 그 철학을 분명히 했다.

지난 40년간, 우리는 고소득층의 세금을 깎아주면 그 혜택이 모두에게 골고루 흩뿌려질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낙수효과 이론(trickle-down theory)은 더 미약한 경제성장, 낮은 노동임금, 더 큰 정부 재정적자, 부자와 나머지 사이의 틈새가 근 100년 사이 최대수준까지 벌어지게 했을 뿐입니다.

미국에 투자하고, 미국인을 교육하고, 노동력을 키워가야 합니다.

경제를 아래에서 위로 그리고 중간에서 건설해야 합니다. 위에서 아래로가 아니에요!
(Build the economy from the bottom up and the middle out, not from the top down.)

-바이든의 2022년 연두교서-


이런 철학을 가졌으니, 지난주 미시간 파업현장을 찾은 깜짝쇼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미국 대통령 최초로 노조 파업의 피켓라인에 섰다. 바이든은 확성기를 들고 이렇게 외쳤다.

내가 이 말을 여러 차례 했습니다. 미국을 만든 건 월스트리트가 아닙니다. 중산층이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노조가 중산층을 만들었습니다. 이게 사실입니다. 계속 전진합시다. 노동자는 노동자가 만든 것을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지금 받는 월급보다 어마어마하게 더 많은 것을 만들었습니다.

노동자들이 (3년간) 40% 임금 인상을 요구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물음에는 “그렇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달라고 협상할 권리가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대통령이 특정 사안에서 한쪽 편을 드는 것은 금기시되어 왔으나, 바이든은 거침없다. 작가조합 파업도, 자동차노조 파업도, 바이든은 “노동자의 단결과 협상을 통한 임금 결정이 미국을 더 나은 나라를 만든다”며 지지한다.

■ ‘열세’에서 재선 도전하는 바이든의 ‘노조 만능주의’

‘노조 만능주의’라며 경계하는 시선이 적지 않지만, 바이든의 이 중산층 철학은 내년 대선을 앞두고 더 강화될 가능성이 높다. 지지율이 떨어질수록, 트럼프와의 승부가 치열해질수록 지지층 결집에 호소해야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ABC와 워싱턴포스트 공동 여론조사에서 바이든은 트럼프에 9%p 뒤진다는 결과지를 받아든 상황이다. 다른 여론조사들에 비해 과도한 격차라는 인식이 많긴 하지만, 선거를 1년 앞두고 여론조사에서 이정도 격차로 뒤진 현직 대통령은 ‘아버지 부시’와 지미 카터 뿐이었다. 그들은 재선에 실패했다.

나이와 건강문제, 또 최근 불거진 불법이민 문제 등 다양한 문제가 작용하고는 있겠지만, 경제만 보면 바이든은 조금 억울할지도 모른다.

미국의 노동자를 위해 ‘미국이 자국 우선주의 정책을 이렇게 노골적으로 쓰는게 맞느냐’는 비난을 받아가며 반도체와 전기차 등 온갖 산업을 미국으로 끌어모으고 있고 성과도 났다.

그런데 자동차 노조는 부족하다며 더 많은 요구를 한다. 격전지(swing state)에서 젊은 노동자들의 지지가 낮아지고 있다. 전미자동차노조는 아직 자신을 지지한다는 선언도 해주지 않는다.

■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는 우리도 억울하다

그걸 보는 우리도 좀 억울하다. 차세대 주력산업의 일자리를 미국에 가장 많이 내주고도, 고맙다는 말을 듣기는커녕 ‘중국 반도체 공장 확장 못하게’하는 규제를 받고 있다. 게다가 미국에 짓는 공장은 뜻하지 않은 바이든의 노조 지원정책의 유탄을 맞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이 GM과 함께 오하이오에 짓는 배터리 공장은 노동자 시급을 15.5달러부터 책정했다. 그런데 GM파업 과정에서 ‘시급이 낮은 배터리 공장은 안된다’는 전미자동차노조 요구에 직면했다. 시급을 20달러 이상으로 올리겠다고 했다. 다른 공장들도 비슷한 길을 밟을 수 밖에 없다.

어쩌면 더 억울한 일은 트럼프가 당선된다면 일어날지도 모른다. 트럼프는 당선되면 IRA를 폐기해버리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트럼프는 IRA는 미국이 강점이 있는 기존 자동차 산업이 아니고 중국이 강한 전기차 산업을 우대하는 잘못된 정책이라고 주장한다. (트럼프에게 기후변화 계산은 없는 듯 하다)

친환경 제조업을 일으켜 미국 중산층을 살리겠다는 바이든에 대항해 ‘친환경 전환은 중국의 길’이라고 치환해버린 트럼프의 논리가 상당한 호응을 얻고 있다. (사실 지금의 친환경 산업 공급망을 중국이 장악한 것도 사실이다) 이러니 경합주(swing state), 쇠락한 중공업 지대 '러스트 벨트'의 젊은 유권자들 사이에서도 반향이 있을 수 밖에 없다.


실제로 바이든이 미시간을 방문한 다음날 미시간을 방문한 트럼프는 뜨거운 지지를 받았다. 만약 트럼프가 정말 당선 뒤 IRA를 폐기한다면 우리 배터리 산업은 거대한 불확실성에 노출될 것이다.

위태로운 바이든, 배은망덕해 보이는 미국 노조, 그 옆에서 전기차는 중국 비즈니스라고 소리높이는 트럼프.

이 모든 장면은 남의 일이 아니다. 우리 속도 함께 타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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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9-29 10:0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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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이론의 중력을 벗어난 ‘놀라운 호황’?

미국의 호황이 심상치 않다. 물가를 잡으려고 기준금리를 5% 넘게 올려놓은 '긴축' 국면인데 호황이다. 미 연준(Fed)은 올해 성장률 전망을 2% 위로, 두 배 정도 올려잡았다. 한 해를 석 달 남긴 시점이니 이렇게 큰 폭의 상향은 이례적이다. 또 내년 성장률도 상향했다.

인플레이션 우려도 적다. 성장률만 높아지고 물가는 예상 경로를 따라 떨어지고 있다. 더 놀라운 부분은 실업률이다.

연준은 여전히 물가와 실업의 상충관계(필립스 곡선)을 믿는다. 그래서 물가부터 잡으려고 기준금리를 5%위로 올려놓은 만큼 실업률 상승이라는 고통은 피할 수 없으리라 각오했다.

그런데 지금 실업률은 3.8%다. 미국에서 4% 이하 실업률은 자연 실업상태로 간주된다.

성장률은 높아지고, 실업률은 낮고, 인플레는 안정적이라니? 가능하지 않은 조합이 현실화됐다. 이대로 쭉 간다면 경제이론의 중력에서 벗어난 상황이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지는 미국 경제가 '새로운 성장 사이클'에 올라탔을 수 있다는 칼럼을 실었다. 기업 실적이 유지되고, 노동자는 더 많이 벌고, 소비자는 지속적으로 소비한다. 무엇보다 정부의 추가 투자 여력이 충분하다. 미국의 경제가 강력하고 지속가능한 장기 확장 국면으로 들어설 수 있다는 것이다.

이 호황이 정말 놀라운 점은 ‘나홀로 호황’이란데 있다. 중국은 일본식 장기침체를 걱정한다. 독일은 올해 역성장이 예상된다. 우리 경제는 ‘상저하저’ 전망이 나온다.

■ 미국만 생각하는 바이든노믹스

코로나19 지원금, 서비스 위주 경제, 세계의 인재 집결지 등 다양한 이유를 생각해볼 수 있지만, 뭐니뭐니해도 바이든노믹스를 빼놓곤 설명할 수 없다.


바이든노믹스는 제조업 중심 보호주의 산업정책이다. 반도체법(CHIPS Act)과 인플레이션감축법(IRA)가 상징이다. 죽어버린 미국의 제조업을 되살리기 위해 정부가 나선다. 보조금을 줘서 세계 최고의 반도체와 배터리 제조 기업이 미국에 공장을 짓게 한다. 제조업의 동맥인 철도, 교량, 도로 건설에도 투자한다.

정부의 시장 개입, 정부지출을 통한 직간접 투자 유도가 지금 미국 곳곳에서 건설업 붐을 일으키고 일자리를 만들어내고 있다.

다르게 표현한다면, 미국은 지금 동맹인 한국이나 타이완의 팔목을 비틀어 일자리를 가져가고 있다. 삼성전자의 미국 공장과 K배터리 3사가 만 단위의 직접 고용, 그 몇 배를 넘는 간접 파급 고용효과를 창출할 것이다. 한국에 지었으면 한국인을 고용했을 이 공장이 미국의 요청으로 미국으로 갔다.(물론 그 배경엔 막대한 보조금과 엄청난 시장이라는 유인책이 있었다)

실제로 FT가 지난해 8월 이후 외국기업의 대규모 미국 투자 계획을 모아 분석해봤더니, 모두 2,240억 달러(우리 돈 300조)에 달하는 프로젝트에서 직접 일자리 10만 개가 만들어진다고 했다. 이 투자를 이끄는 것은 한국이다. 1억 달러 이상 투자 건수가 한국 기업이 20건으로 1위였다., EU 전체가 19건, 일본이 9건, 캐다나 5건, 중국과 타이완, 인도가 각 3건 순이다.

■ 호황 속 노동자, 목소리를 키운다

그런 호황속 미국 노동자들, 지금 그들은 파업중이다.

미국 최대 노조 가운데 하나인 전미자동차노조(UAW)는 사상 최초의 GM과 스텔란티스, 포드 3사 동시 파업이 진행중이다. 3년간 40%의 임금인상과 주4일 근무를 요구한다. 전기차 공장에서 인력을 보장해달라는 요구도 한다. 통상 내연기관에 비해 단순하고 조립도 간단한 전기차 공장은 노동력이 30~40% 정도 적게 필요하다. 그래도 고용을 보장해야 한단 요구다.


UAW 노조 위원장 페인은 “자동차 회사들은 지난 10년 간 막대한 이익을 냈지만, 노동자들은 그 이익을 공유하지 못했다. 누릴 자격이 있지만 그러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애리조나에 거대 파운드리 공장을 짓고 있는 TSMC는 노동력 부족과 노조 문제를 동시에 겪고 있다. 내년으로 예정됐던 생산을 2025년으로 미루면서, 부족한 전문인력 보강을 위해 타이완에서 숙련 엔지니어 수백 명을 데려와야겠다고 했다. 그러자 애리조나 건설노조가 반발한다. ‘타이완에서 데려오는 것은 미국의 일자리를 늘리는 게 아니다’며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미국의 일자리가 많아지고 노동자가 부족해지자 협상력이 커진 노동자들이 더 큰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공식적으론 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이미 텍사스에 공장을 운영한 ‘경험이 있고 노하우도 있다’는 이유다. 하지만 최근 삼성전자가 미국에서 주 3일제를 도입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현지언론들은 당장 인력부족 문제 가능성을 언급한다.

■ 바이든, “노동자를 지지합니다”

콧대 높아진 미국 노동자의 뒷배는 대통령이다. 바이든 정부는 ‘노동자가 노조를 만들고, 단체협상을 통해 권익을 지키는 것’이 미국을 위한 길이라고 목소리 높인다. 그래야 중산층이 탄탄해지고, 경제 전체로 그 효과가 파급된다고 주장한다. 이미 2022년 연두교서를 통해 그 철학을 분명히 했다.

지난 40년간, 우리는 고소득층의 세금을 깎아주면 그 혜택이 모두에게 골고루 흩뿌려질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낙수효과 이론(trickle-down theory)은 더 미약한 경제성장, 낮은 노동임금, 더 큰 정부 재정적자, 부자와 나머지 사이의 틈새가 근 100년 사이 최대수준까지 벌어지게 했을 뿐입니다.

미국에 투자하고, 미국인을 교육하고, 노동력을 키워가야 합니다.

경제를 아래에서 위로 그리고 중간에서 건설해야 합니다. 위에서 아래로가 아니에요!
(Build the economy from the bottom up and the middle out, not from the top down.)

-바이든의 2022년 연두교서-


이런 철학을 가졌으니, 지난주 미시간 파업현장을 찾은 깜짝쇼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미국 대통령 최초로 노조 파업의 피켓라인에 섰다. 바이든은 확성기를 들고 이렇게 외쳤다.

내가 이 말을 여러 차례 했습니다. 미국을 만든 건 월스트리트가 아닙니다. 중산층이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노조가 중산층을 만들었습니다. 이게 사실입니다. 계속 전진합시다. 노동자는 노동자가 만든 것을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지금 받는 월급보다 어마어마하게 더 많은 것을 만들었습니다.

노동자들이 (3년간) 40% 임금 인상을 요구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물음에는 “그렇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달라고 협상할 권리가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대통령이 특정 사안에서 한쪽 편을 드는 것은 금기시되어 왔으나, 바이든은 거침없다. 작가조합 파업도, 자동차노조 파업도, 바이든은 “노동자의 단결과 협상을 통한 임금 결정이 미국을 더 나은 나라를 만든다”며 지지한다.

■ ‘열세’에서 재선 도전하는 바이든의 ‘노조 만능주의’

‘노조 만능주의’라며 경계하는 시선이 적지 않지만, 바이든의 이 중산층 철학은 내년 대선을 앞두고 더 강화될 가능성이 높다. 지지율이 떨어질수록, 트럼프와의 승부가 치열해질수록 지지층 결집에 호소해야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ABC와 워싱턴포스트 공동 여론조사에서 바이든은 트럼프에 9%p 뒤진다는 결과지를 받아든 상황이다. 다른 여론조사들에 비해 과도한 격차라는 인식이 많긴 하지만, 선거를 1년 앞두고 여론조사에서 이정도 격차로 뒤진 현직 대통령은 ‘아버지 부시’와 지미 카터 뿐이었다. 그들은 재선에 실패했다.

나이와 건강문제, 또 최근 불거진 불법이민 문제 등 다양한 문제가 작용하고는 있겠지만, 경제만 보면 바이든은 조금 억울할지도 모른다.

미국의 노동자를 위해 ‘미국이 자국 우선주의 정책을 이렇게 노골적으로 쓰는게 맞느냐’는 비난을 받아가며 반도체와 전기차 등 온갖 산업을 미국으로 끌어모으고 있고 성과도 났다.

그런데 자동차 노조는 부족하다며 더 많은 요구를 한다. 격전지(swing state)에서 젊은 노동자들의 지지가 낮아지고 있다. 전미자동차노조는 아직 자신을 지지한다는 선언도 해주지 않는다.

■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는 우리도 억울하다

그걸 보는 우리도 좀 억울하다. 차세대 주력산업의 일자리를 미국에 가장 많이 내주고도, 고맙다는 말을 듣기는커녕 ‘중국 반도체 공장 확장 못하게’하는 규제를 받고 있다. 게다가 미국에 짓는 공장은 뜻하지 않은 바이든의 노조 지원정책의 유탄을 맞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이 GM과 함께 오하이오에 짓는 배터리 공장은 노동자 시급을 15.5달러부터 책정했다. 그런데 GM파업 과정에서 ‘시급이 낮은 배터리 공장은 안된다’는 전미자동차노조 요구에 직면했다. 시급을 20달러 이상으로 올리겠다고 했다. 다른 공장들도 비슷한 길을 밟을 수 밖에 없다.

어쩌면 더 억울한 일은 트럼프가 당선된다면 일어날지도 모른다. 트럼프는 당선되면 IRA를 폐기해버리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트럼프는 IRA는 미국이 강점이 있는 기존 자동차 산업이 아니고 중국이 강한 전기차 산업을 우대하는 잘못된 정책이라고 주장한다. (트럼프에게 기후변화 계산은 없는 듯 하다)

친환경 제조업을 일으켜 미국 중산층을 살리겠다는 바이든에 대항해 ‘친환경 전환은 중국의 길’이라고 치환해버린 트럼프의 논리가 상당한 호응을 얻고 있다. (사실 지금의 친환경 산업 공급망을 중국이 장악한 것도 사실이다) 이러니 경합주(swing state), 쇠락한 중공업 지대 '러스트 벨트'의 젊은 유권자들 사이에서도 반향이 있을 수 밖에 없다.


실제로 바이든이 미시간을 방문한 다음날 미시간을 방문한 트럼프는 뜨거운 지지를 받았다. 만약 트럼프가 정말 당선 뒤 IRA를 폐기한다면 우리 배터리 산업은 거대한 불확실성에 노출될 것이다.

위태로운 바이든, 배은망덕해 보이는 미국 노조, 그 옆에서 전기차는 중국 비즈니스라고 소리높이는 트럼프.

이 모든 장면은 남의 일이 아니다. 우리 속도 함께 타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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