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의장 할까?”→“측근 밀어줄게”…미 하원 ‘쥐락펴락’ 트럼프 [이정민의 워싱턴정치K]
입력 2023.10.06 (16:56)
수정 2024.01.25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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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하원의장 할 수도 있어"…트럼프의 애매한 폭탄 선언
미국 '넘버 3' 매카시 의장이 해임되며 혼란에 빠진 미국 하원. 몇몇 공화당 의원들이 새 의장 하마평에 오르는 가운데, 엉뚱한 이름이 슬그머니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트럼프. 전 대통령이자 유력한 공화당 차기 대선후보인 그의 이름이 갑자기 하원의장 후보로 거론되기 시작한 풍문의 진원지는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5일(현지 시간) 폭스뉴스 디지털과의 인터뷰에서 의원들이 누가 하원의장직을 맡을지 결정할 때까지 공화당의 '통합자'가 되기 위해 하원의장직을 단기적으로 수락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들(공화당 의원들)이 나에게 당이 결론을 내릴 때까지 당을 위해 짧은 기간 동안 (의장직을) 맡을 것인지 물었다. 내가 원하는 게 아니라 그들이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면 필요하다면 (의장직을) 수행할 것"이라고 말했다는 겁니다.
많은 공화당 의원들이 자신을 의장으로 선호한다며 "그들이 장기적으로 직무를 수행할 의장을 뽑을 때까지 의장직을 맡을 것을 고려할 거냐고 나에게 묻고 있다"고도 했습니다. "30일이나 60일, 혹은 90일 동안"이라며 자신이 의장직을 수행할 기간을 스스로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SNS에는 의사봉을 잡고 의장석에 앉아있는 자신의 사진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4일 SNS에 올린 사진. 트럼프 전 대통령이 하원의장석에 앉아 의사봉을 들고 있는 이미지 (사진=SNS ‘트루스소셜’ 트럼프 전 대통령 계정)
■ 하원의장직 만지작하다 측근 지지로 선회…"당은 내 손 안에"
트럼프 전 대통령은 하원 의원이 아닙니다. 게다가 공화당 하원 규정상 2년 이상의 형을 선고받을 수 있는 중범죄 혐의로 형사 기소된 사람은 의장이 될 수 없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현재 형사 기소된 건만 네 건입니다. 애초에 하원의장직을 노리는 게 무리수입니다.
그래서일까요? 트럼프 전 대통령은 하루 뒤 입장을 바꿨습니다. 짐 조던 하원 법사위원장을 지지한다고 SNS에 밝힌 겁니다. "조던 의원은 훌륭한 하원의장이 될 거고, 내 완전하고 전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고 썼습니다. 조던 의원은 친(親)트럼프, 강경 보수 성향의 의원 모임 '프리덤 코커스'의 초대 의장입니다. 트럼프가 하원의장에 나서 경쟁자가 될 수 있다는 소리를 듣고도 "트럼프가 의장이 되고 싶다면 그것도 괜찮다"고까지 말한 인물입니다.
짐 조던 하원 법사위원장. 트럼프 전 대통령은 하원의장 선출에서 조던 의원을 지지하겠다고 밝혔다. (사진: AP= 연합뉴스)
하원의장직을 놓고 이랬다 저랬다한 트럼프 전 대통령의 행보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CNN방송은 애초부터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의장직에 관심이 없었고 관심받기 위한 행동에 불과했다고 평가했습니다. 트럼프의 가까운 소식통 두 명을 인용해 트럼프가 의장직 거론을 두고 "영광이다", "내가 돋보인다"고 말했지만 사실 진지하게 의장직을 생각하진 않으며, 대선 출마에 전적으로 집중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다만 그가 하원의장이 될 수 있다고 언급한 것만으로도 받는 관심을 무척 즐기고 있다고도 설명했습니다.
트럼프가 자신의 영향력을 한껏 활용하는 무대로 혼돈의 하원을 이용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하원의장에 나설 수 있다는 분위기만 조성하는 거로도 공화당을 한 번 흔들었다 놨습니다. 공화당 소속의 마조리 테일러 그린 의원이 "오직 트럼프만 의장으로 지지할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히는가 하면, 같은 당 트로이 닐스 의원은 아예 트럼프 전 대통령을 의장으로 지명할 거라고 했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의장 선거가 치러지는 전날인 10일, 의사당 방문을 할 거라는 계획도 미리 밝혔습니다. 공화당 의원총회에 참석하겠단 겁니다. 공화당 의원들을 직접 단속하고 눈앞에서 강고한 영향력을 보여주겠다는 의도로 읽힙니다.
■ "하원의장은 날 돕는 사람"…막후 조종에서 수면 위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움직이는 건 하원을 대선 레이스의 교두보로 삼기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SNS에 하원의장 선거의 최종 목표를 "새로우면서도 경험이 풍부한 대통령, 즉 나를 도와줄 하원의장이 선출되는 것"이라고 쓰기도 했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지를 선언한 짐 조던 하원 법사위원장은 트럼프 재임 시절 상원의 탄핵 심판 당시 변호인단 자문역을 담당했었습니다. 바이든 정부에선 바이든 대통령의 아들 헌터 바이든의 의혹을 파헤치는 데 역할을 했고, 바이든 대통령의 하원 탄핵 조사도 추진했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자신이 당선될 게 뻔한 공화당 경선 너머, 바이든 대통령과의 경쟁을 바라보고 조던 의원을 지지했을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3일(현지시간) 미국 역사상 최초로 해임된 케빈 매카시 전 하원의장이 워싱턴 DC 하원 회의장을 떠나고 있다. (사진 출처: AP=연합뉴스)
블룸버그는 애초에 '트럼프 하원의장'설이 나온 것을 두고 "그가 공화당 정치에 드리우는 큰 그림자를 보여준다"고 썼습니다. "하원의원 선거는 2년마다 있고, 여기서 트럼프의 지지를 받는 건 의원들에겐 여전히 매력적인 요소"라는 겁니다. 트럼프가 나타날 의회, 면대면으로 트럼프를 마주한 의원들이 그의 뜻을 존중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트럼프는 공화당 지지자 50% 이상이 지지하는 대선후보이고, 경선 토론에서 "트럼프가 후보가 되면 (재판에서) 유죄를 받아도 지지하겠느냐"는 질문에 아니라고 답한 경쟁자들이 당원들의 압도적 야유를 받는 게 지금의 공화당입니다.
매카시 의장이 해임된 건 공화당 내 '친트럼프' 성향의 강경파 중에서도 일부인 8명이 '해임 찬성'에 표를 던졌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간 멀리서 소수의 강경파 의원들을 '막후조종'만 해왔던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의장 선출에 가시적으로 영향을 미칠 경우 다른 213명 의원의 동요도 불가피합니다. 불쑥 꺼낸 것 같았던 트럼프의 한마디, "나 하원의장 할까?"를 해프닝으로만 볼 수는 없는 이유입니다. 4건의 형사 기소를 당하고 법정을 수시로 오가는 지금도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율은 바이든 대통령과 박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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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3-10-06 16:56:37
- 수정2024-01-25 12:53:54
■ "나 하원의장 할 수도 있어"…트럼프의 애매한 폭탄 선언
미국 '넘버 3' 매카시 의장이 해임되며 혼란에 빠진 미국 하원. 몇몇 공화당 의원들이 새 의장 하마평에 오르는 가운데, 엉뚱한 이름이 슬그머니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트럼프. 전 대통령이자 유력한 공화당 차기 대선후보인 그의 이름이 갑자기 하원의장 후보로 거론되기 시작한 풍문의 진원지는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5일(현지 시간) 폭스뉴스 디지털과의 인터뷰에서 의원들이 누가 하원의장직을 맡을지 결정할 때까지 공화당의 '통합자'가 되기 위해 하원의장직을 단기적으로 수락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들(공화당 의원들)이 나에게 당이 결론을 내릴 때까지 당을 위해 짧은 기간 동안 (의장직을) 맡을 것인지 물었다. 내가 원하는 게 아니라 그들이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면 필요하다면 (의장직을) 수행할 것"이라고 말했다는 겁니다.
많은 공화당 의원들이 자신을 의장으로 선호한다며 "그들이 장기적으로 직무를 수행할 의장을 뽑을 때까지 의장직을 맡을 것을 고려할 거냐고 나에게 묻고 있다"고도 했습니다. "30일이나 60일, 혹은 90일 동안"이라며 자신이 의장직을 수행할 기간을 스스로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SNS에는 의사봉을 잡고 의장석에 앉아있는 자신의 사진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 하원의장직 만지작하다 측근 지지로 선회…"당은 내 손 안에"
트럼프 전 대통령은 하원 의원이 아닙니다. 게다가 공화당 하원 규정상 2년 이상의 형을 선고받을 수 있는 중범죄 혐의로 형사 기소된 사람은 의장이 될 수 없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현재 형사 기소된 건만 네 건입니다. 애초에 하원의장직을 노리는 게 무리수입니다.
그래서일까요? 트럼프 전 대통령은 하루 뒤 입장을 바꿨습니다. 짐 조던 하원 법사위원장을 지지한다고 SNS에 밝힌 겁니다. "조던 의원은 훌륭한 하원의장이 될 거고, 내 완전하고 전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고 썼습니다. 조던 의원은 친(親)트럼프, 강경 보수 성향의 의원 모임 '프리덤 코커스'의 초대 의장입니다. 트럼프가 하원의장에 나서 경쟁자가 될 수 있다는 소리를 듣고도 "트럼프가 의장이 되고 싶다면 그것도 괜찮다"고까지 말한 인물입니다.
하원의장직을 놓고 이랬다 저랬다한 트럼프 전 대통령의 행보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CNN방송은 애초부터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의장직에 관심이 없었고 관심받기 위한 행동에 불과했다고 평가했습니다. 트럼프의 가까운 소식통 두 명을 인용해 트럼프가 의장직 거론을 두고 "영광이다", "내가 돋보인다"고 말했지만 사실 진지하게 의장직을 생각하진 않으며, 대선 출마에 전적으로 집중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다만 그가 하원의장이 될 수 있다고 언급한 것만으로도 받는 관심을 무척 즐기고 있다고도 설명했습니다.
트럼프가 자신의 영향력을 한껏 활용하는 무대로 혼돈의 하원을 이용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하원의장에 나설 수 있다는 분위기만 조성하는 거로도 공화당을 한 번 흔들었다 놨습니다. 공화당 소속의 마조리 테일러 그린 의원이 "오직 트럼프만 의장으로 지지할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히는가 하면, 같은 당 트로이 닐스 의원은 아예 트럼프 전 대통령을 의장으로 지명할 거라고 했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의장 선거가 치러지는 전날인 10일, 의사당 방문을 할 거라는 계획도 미리 밝혔습니다. 공화당 의원총회에 참석하겠단 겁니다. 공화당 의원들을 직접 단속하고 눈앞에서 강고한 영향력을 보여주겠다는 의도로 읽힙니다.
■ "하원의장은 날 돕는 사람"…막후 조종에서 수면 위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움직이는 건 하원을 대선 레이스의 교두보로 삼기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SNS에 하원의장 선거의 최종 목표를 "새로우면서도 경험이 풍부한 대통령, 즉 나를 도와줄 하원의장이 선출되는 것"이라고 쓰기도 했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지를 선언한 짐 조던 하원 법사위원장은 트럼프 재임 시절 상원의 탄핵 심판 당시 변호인단 자문역을 담당했었습니다. 바이든 정부에선 바이든 대통령의 아들 헌터 바이든의 의혹을 파헤치는 데 역할을 했고, 바이든 대통령의 하원 탄핵 조사도 추진했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자신이 당선될 게 뻔한 공화당 경선 너머, 바이든 대통령과의 경쟁을 바라보고 조던 의원을 지지했을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블룸버그는 애초에 '트럼프 하원의장'설이 나온 것을 두고 "그가 공화당 정치에 드리우는 큰 그림자를 보여준다"고 썼습니다. "하원의원 선거는 2년마다 있고, 여기서 트럼프의 지지를 받는 건 의원들에겐 여전히 매력적인 요소"라는 겁니다. 트럼프가 나타날 의회, 면대면으로 트럼프를 마주한 의원들이 그의 뜻을 존중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트럼프는 공화당 지지자 50% 이상이 지지하는 대선후보이고, 경선 토론에서 "트럼프가 후보가 되면 (재판에서) 유죄를 받아도 지지하겠느냐"는 질문에 아니라고 답한 경쟁자들이 당원들의 압도적 야유를 받는 게 지금의 공화당입니다.
매카시 의장이 해임된 건 공화당 내 '친트럼프' 성향의 강경파 중에서도 일부인 8명이 '해임 찬성'에 표를 던졌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간 멀리서 소수의 강경파 의원들을 '막후조종'만 해왔던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의장 선출에 가시적으로 영향을 미칠 경우 다른 213명 의원의 동요도 불가피합니다. 불쑥 꺼낸 것 같았던 트럼프의 한마디, "나 하원의장 할까?"를 해프닝으로만 볼 수는 없는 이유입니다. 4건의 형사 기소를 당하고 법정을 수시로 오가는 지금도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율은 바이든 대통령과 박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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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민 기자 mani@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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