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실손 ‘본전 뽑는’ 중국인…매달 100억 넘게 타간다
입력 2023.10.06 (17:00)
수정 2023.10.06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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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대 중국인 A 씨는 올해 7월 여성 질환으로 서울의 한 산부인과에서 수술을 받았다. 이후 실손보험으로 의료비 600만 원을 보험사에 청구했다. 심사에 나선 보험사는 특정 설계사 소개로 보험에 가입한 중국인들이 한 병원에서 수술을 유독 많이 받는 것을 수상하게 생각했다. 조사 결과, A 씨는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중국의 병원에서 같은 질환으로 여러 차례 입원과 수술을 받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에 들어와 과거 병력을 숨기고 2021년경 실손보험에 가입했던 것이다. 고지 의무 위반이다.
■ '실손보험' 외국인 손해율, 내국인 턱 밑까지
'제2의 건강보험'이라는 실손보험의 적자 문제가 내국인 뿐 아니라 외국인 가입자 영역에서도 더 심해지고 있다. KBS가 국회 정무위원회 강민국(국민의힘) 의원실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집계한 실손의료보험의 외국인 손해율은 104.3%인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보험사의 외국인 손해율이 공개된 적은 있었지만, 전체 보험사의 외국인 손해율·각 국가별 실손 지급액 등이 집계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손해율이 100%를 넘으면 가입자가 낸 돈보다 보험금으로 나간 돈이 더 많다는 뜻이다. 같은 기간 내국인의 손해율은 104.5%였다.
최근 몇년 간 손해율은 내국인이 외국인보다 10% 포인트 이상 높았다. 내국인 계약건수(3,527만 건)이 외국인 계약건수(52만 건)보다 훨씬 많은데다, 도수 치료와 백내장 수술 등 내국인이 지나치게 많이 보험금을 타가는 비급여 항목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해 말 기준 95.8%에 불과했던 외국인 손해율이 7개월만에 8.5% 포인트 올랐다. 같은 기간 내국인 손해율이 3.2% 포인트 오른 것에 두 배 이상이다.
■ 외국인 지급액, 올해만 천 억 원 육박
지난해 외국인에게 지급된 실손보험금은 꾸준히 증가해 1,441억 원으로 역대 최대치였다. 올해 7월까지는 974억 원이 지급됐는데, 1년 전보다 15.8% 늘어난 수치다. 이런 속도라면 올해도 역대 최대치를 갈아치울 가능성이 크다. 눈여겨 볼 건 증가율을 봤을 때 지급 액수(매년 10%대)보다 지급 건수(매년 20%대)가 더 높다는 것이다. 외국인들이 내국인처럼, 소액 보험 청구를 하는 경향이 더 짙어지고 있다는 의미다.
실손보험 계약건수는 중국(36만 건)이 전체 외국인 가입자의 70%를 넘는다. 지난해 중국인에게 보험금 1,177억 원이 지급됐고, 올해는 7월까지 792억 원(전체 외국인 지급액의 81.4%)이다. 매달 중국인에게 100억 원 넘게 지급된 것이다.
외국인 손해율을 보면 1위는 몽골(119.9%)이고 미국(114.9%)이 2위다. 3위가 중국으로 110.2%를 기록했다. 세 나라 모두 내국인 손해율(104.5%)을 웃돈다. 다만, 몽골과 미국의 실손보험 계약건수는 각각 4,878건(전체 외국인의 0.9%)과 1만 5,414건(3%)에 불과하다.
중국 SNS에서는 한국의 보험에 대해 '양털 뽑기'(하오양마오·羊毛)를 한다는 후기 글이 다수 올라오고 있다. '하오양마오'는 중국에서 '본전을 뽑는다'는 의미의 신조어로, 보험금을 더 많이 받는 방법을 공유하는 것이다. 보험 가입을 유도하는 동영상도 접할 수 있다. KBS 취재진이 입수한 동영상을 보면 중국인으로 추정되는 여성이 "한국에서 가성비가 가장 좋은 보험이 바로 '실비'"라면서 "눈감고 아무 생각없이, 어떤 보험사든 가입해도 된다"라고 안내하고 있었다.
한국 실손, ‘실비’ 가입을 유도하는 중국 SNS 영상.
■ 보험 설계·제도 개선 병행해야
외국인은 석 달간 체류 시 나오는 외국인 등록증이 있으면 국내 보험에 가입할 수 있다. 국민건강보험 가입자라면 내국인과 동일한 혜택을 받는다. 국내에 일자리가 있으면 건보 직장가입자가 되고, 일을 안 하더라도 6개월 체류하면 지역가입자 요건을 갖추게 된다. 최근에는 해외에 있는 가족을 우리나라에 치료 목적으로 불러, 피부양자 자격으로 보험금을 타내는 유형도 나오고 있다고 한다.
외국인 손해율 문제를 특정 국가에 전적으로 돌리긴 어렵다. 외국인에게 건보와 실손 가입 자격을 주는 건 일손이 부족한 국내에서 경제 활동을 하도록 유도하는 측면도 있다. 또 외국인에게 지급되는 실손 보험금은 아직 내국인 지급금의 1.2% 수준에 불과하다. 근본적인 문제는 비급여 항목의 과잉 진료를 부추기는 잘못된 보험 설계와 일부 병원의 영업 행태에 있다.
하지만 외국인 손해율 급증을 그대로 두고만 본다면, 결과적으로 보험료를 꼬박꼬박 내는 내국인이 손해를 일부 감당하게 될 수도 있다. 보험사가 해외 의료 기록을 확인하기 어렵다는 점을 외국인이 악용하는 건 내국인에 대한 역차별이기도 하다.
해외 병력 추적 시스템을 마련하고 피부양자 자격에 6개월 체류 요건을 두는 방안 등이 제시되고 있지만, 논의는 지지부진하다. 강민국 의원은 "불필요한 보험금이 지급되지 않도록 보험 인수와 심사 과정에서 새로운 모니터링 시스템을 구축하고, 공정하고 타당한 심사가 이루어지도록 금융당국이 보험업계 지도·감독에 나서야 한다"라고 말했다.
(인포그래픽 : 권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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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3-10-06 17: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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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대 중국인 A 씨는 올해 7월 여성 질환으로 서울의 한 산부인과에서 수술을 받았다. 이후 실손보험으로 의료비 600만 원을 보험사에 청구했다. 심사에 나선 보험사는 특정 설계사 소개로 보험에 가입한 중국인들이 한 병원에서 수술을 유독 많이 받는 것을 수상하게 생각했다. 조사 결과, A 씨는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중국의 병원에서 같은 질환으로 여러 차례 입원과 수술을 받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에 들어와 과거 병력을 숨기고 2021년경 실손보험에 가입했던 것이다. 고지 의무 위반이다.
■ '실손보험' 외국인 손해율, 내국인 턱 밑까지
'제2의 건강보험'이라는 실손보험의 적자 문제가 내국인 뿐 아니라 외국인 가입자 영역에서도 더 심해지고 있다. KBS가 국회 정무위원회 강민국(국민의힘) 의원실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집계한 실손의료보험의 외국인 손해율은 104.3%인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보험사의 외국인 손해율이 공개된 적은 있었지만, 전체 보험사의 외국인 손해율·각 국가별 실손 지급액 등이 집계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손해율이 100%를 넘으면 가입자가 낸 돈보다 보험금으로 나간 돈이 더 많다는 뜻이다. 같은 기간 내국인의 손해율은 104.5%였다.
최근 몇년 간 손해율은 내국인이 외국인보다 10% 포인트 이상 높았다. 내국인 계약건수(3,527만 건)이 외국인 계약건수(52만 건)보다 훨씬 많은데다, 도수 치료와 백내장 수술 등 내국인이 지나치게 많이 보험금을 타가는 비급여 항목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해 말 기준 95.8%에 불과했던 외국인 손해율이 7개월만에 8.5% 포인트 올랐다. 같은 기간 내국인 손해율이 3.2% 포인트 오른 것에 두 배 이상이다.
■ 외국인 지급액, 올해만 천 억 원 육박
지난해 외국인에게 지급된 실손보험금은 꾸준히 증가해 1,441억 원으로 역대 최대치였다. 올해 7월까지는 974억 원이 지급됐는데, 1년 전보다 15.8% 늘어난 수치다. 이런 속도라면 올해도 역대 최대치를 갈아치울 가능성이 크다. 눈여겨 볼 건 증가율을 봤을 때 지급 액수(매년 10%대)보다 지급 건수(매년 20%대)가 더 높다는 것이다. 외국인들이 내국인처럼, 소액 보험 청구를 하는 경향이 더 짙어지고 있다는 의미다.
실손보험 계약건수는 중국(36만 건)이 전체 외국인 가입자의 70%를 넘는다. 지난해 중국인에게 보험금 1,177억 원이 지급됐고, 올해는 7월까지 792억 원(전체 외국인 지급액의 81.4%)이다. 매달 중국인에게 100억 원 넘게 지급된 것이다.
외국인 손해율을 보면 1위는 몽골(119.9%)이고 미국(114.9%)이 2위다. 3위가 중국으로 110.2%를 기록했다. 세 나라 모두 내국인 손해율(104.5%)을 웃돈다. 다만, 몽골과 미국의 실손보험 계약건수는 각각 4,878건(전체 외국인의 0.9%)과 1만 5,414건(3%)에 불과하다.
중국 SNS에서는 한국의 보험에 대해 '양털 뽑기'(하오양마오·羊毛)를 한다는 후기 글이 다수 올라오고 있다. '하오양마오'는 중국에서 '본전을 뽑는다'는 의미의 신조어로, 보험금을 더 많이 받는 방법을 공유하는 것이다. 보험 가입을 유도하는 동영상도 접할 수 있다. KBS 취재진이 입수한 동영상을 보면 중국인으로 추정되는 여성이 "한국에서 가성비가 가장 좋은 보험이 바로 '실비'"라면서 "눈감고 아무 생각없이, 어떤 보험사든 가입해도 된다"라고 안내하고 있었다.
■ 보험 설계·제도 개선 병행해야
외국인은 석 달간 체류 시 나오는 외국인 등록증이 있으면 국내 보험에 가입할 수 있다. 국민건강보험 가입자라면 내국인과 동일한 혜택을 받는다. 국내에 일자리가 있으면 건보 직장가입자가 되고, 일을 안 하더라도 6개월 체류하면 지역가입자 요건을 갖추게 된다. 최근에는 해외에 있는 가족을 우리나라에 치료 목적으로 불러, 피부양자 자격으로 보험금을 타내는 유형도 나오고 있다고 한다.
외국인 손해율 문제를 특정 국가에 전적으로 돌리긴 어렵다. 외국인에게 건보와 실손 가입 자격을 주는 건 일손이 부족한 국내에서 경제 활동을 하도록 유도하는 측면도 있다. 또 외국인에게 지급되는 실손 보험금은 아직 내국인 지급금의 1.2% 수준에 불과하다. 근본적인 문제는 비급여 항목의 과잉 진료를 부추기는 잘못된 보험 설계와 일부 병원의 영업 행태에 있다.
하지만 외국인 손해율 급증을 그대로 두고만 본다면, 결과적으로 보험료를 꼬박꼬박 내는 내국인이 손해를 일부 감당하게 될 수도 있다. 보험사가 해외 의료 기록을 확인하기 어렵다는 점을 외국인이 악용하는 건 내국인에 대한 역차별이기도 하다.
해외 병력 추적 시스템을 마련하고 피부양자 자격에 6개월 체류 요건을 두는 방안 등이 제시되고 있지만, 논의는 지지부진하다. 강민국 의원은 "불필요한 보험금이 지급되지 않도록 보험 인수와 심사 과정에서 새로운 모니터링 시스템을 구축하고, 공정하고 타당한 심사가 이루어지도록 금융당국이 보험업계 지도·감독에 나서야 한다"라고 말했다.
(인포그래픽 : 권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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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혁진 기자 analogu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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