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 협상 ‘뜨거운 감자’된 이것…파격적 변화 올까?

입력 2023.10.08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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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노사 협상 현장에서 조금은 낯선 주제가 의제에 오르고 있습니다.

지난달 중순 파업에 나선 전미자동차노조(United Auto Workers)는 주요 요구 사항 중 하나로 임금 삭감 없는 주 4일제(주 32시간 근무)를 내걸었습니다.

국내에서도 기아차 노동조합이 단체협약 교섭에서 주 4일제 도입을 사측에 요구했고, 포스코의 경우 사측이 먼저 격주 주 4일제를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절대 다수의 노동자에겐 그저 꿈같은 주 4일제가, 현실과의 거리를 조금씩 좁혀가고 있는 모습입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많은 기업이 유연 근로와 단축·재택 근무 등 새로운 업무 방식을 빠르게 도입하면서 주 4일제에 대한 관심은 더 높아졌습니다.

19년 전 도입된 주 5일제가 그랬듯, 주 4일제도 새로운 일상으로 조금씩 자리잡을 수 있을까요?

다른 이들보다 앞서 이 문제를 고민하고 연구 중인 사람들을 만나 주 4일제에 대한 보다 깊이 있는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 “정형화된 주 5일제에 대한 반문”

지난달 30일, 국내에선 처음으로 주 4일제를 주제로 한 학술 논문이 발표됐습니다. (▶바로 보기: 김은별·이승윤, ‘주 4일제 도입에 대한 비판적 고찰’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3001330)

논문에 따르면 주 4일제는 임금 감소 없이, 주당 표준 근로일을 ‘주 4일’로 혹은 표준 근로시간을 ‘주 32시간’으로 단축시키는 노동 시간 제도입니다.

그 형태를 보면 주 5일·하루 8시간 근무 형태에서 완전히 하루를 쉬는 주 4일제, 주당 표준 근로시간은 40시간에서 32시간으로 단축하되 주 5일 출근은 유지하는 주 4일제, 주당 근로시간 단축은 없이 근로 일수만 4일로 줄이는 주 4일제 등으로 다양합니다.

주 4일제 관련 논문을 발표한 이승윤 중앙대학교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주 4일제를 논의한다는 건 표준 근로시간, 소위 정상 근로시간에 대한 반문을 해보는 것”이라면서 “주 5일제 근무가 항상 있어야 할 표준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다시 던지고, 다른 삶에 대한 상상력을 자극한다는 점에서 주 4일제 논의를 시작해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 주 4일제, 어디까지 왔나

국제적으로 주 4일제 실험, 도입은 활발해지는 추세입니다.

첫 시작은 아이슬란드였습니다. 노동조합과 시민사회 단체의 근로시간 단축 요구에 레이캬비크 시의회(2014~2019년), 중앙 정부(2017년~2021년)가 주 4일제 실험을 실시했습니다. 100곳 이상의 기업 소속 노동자 2천 500명 이상이 참여했는데, 이는 아이슬란드 총 노동인구의 1.3%에 해당합니다.

스페인 정부도 희망 기업의 신청을 받아 주 4일제를 시행하도록 하고, 이로 인한 기업의 손해액 일부를 정부 예산으로 보전해주는 실험을 2021년 가을부터 3년째 하고 있습니다.

주 4일제가 법제화된 곳도 있습니다. 벨기에에서는 근로시간은 기존 주 38시간으로 유지하되, 근로 일수를 주 4일로 줄일 수 있도록 노동자의 선택권을 확대하는 법이 2022년 11월 시행됐습니다.

그밖에도 미국, 영국, 아일랜드 등 여러 국가의 기업들에서 주 4일제 실험이 진행됐습니다.

국내에도 드물긴 하지만 주 4일제를 하는 기업이 있습니다.

온라인 교육 전문 기업 ‘휴넷’은 2022년 7월부터 1년 4개월째 임금 삭감 없는 주 4일제를 시행 중입니다. 2019년부터 3년 동안 주 4.5일제를 시행한 뒤, 6개월 간의 시범 운영을 거쳐 근무일을 주 4일로 줄였습니다.

직원들이 출근하지 않는 금요일, 휴넷 사무실이 텅 비어있다.직원들이 출근하지 않는 금요일, 휴넷 사무실이 텅 비어있다.

휴넷의 조영탁 대표는 “주 4일제를 하면 직원의 행복도와 생산성, 회사 브랜드 가치와 채용 경쟁률이 모두 높아지고, 퇴사율은 낮아지면서 인건비 상승이라는 단점을 상쇄하는 큰 효과가 있을 거라고 판단했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올해 상반기 기준 매출은 작년 상반기 대비 14%, 채용 경쟁률은 3.2배 올랐고, 퇴사율은 28%p 감소했다고 휴넷 측은 밝혔습니다.

세브란스병원도 노사 합의로 올해 1월부터 간호사 총 6천여 명 가운데 30명에게 주 4일제를 시범 도입했습니다.

간호사들의 번아웃과 높은 사직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이었는데, 외부 연구기관의 중간 평가 결과 주 4일제 간호사들의 삶의 질이 크게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노사는 내년엔 대상 인원을 10명 더 늘리기로 최근 합의했습니다.

■ “보편적 도입에 어려움”…회의적 시각도

아직 초기라 지켜봐야겠지만 이런 실험에서 나타나는 한계 역시 분명합니다.

한국노동연구원의 김승택 선임연구위원은 “주 4일제 실험에 성공한 기업들을 보면, 4일만 일해도 원하는 부가 가치를 충분히 달성할 수 있었던 곳들”이라며 “모든 업종에 주 4일제를 적용할 수 있느냐는 검증이 되지 않았다”고 평가했습니다. 예컨대 시간당 생산량이 균일한 제조업 기업에서 주 4일제를 한다면 기업의 매출, 노동자의 소득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영국의 경제사학자 로버트 스키델스키도 2019년 쓴 논문에서, 주 4일제와 같은 근로시간 단축은 대부분 마케팅, 자문, 회계 회사와 같은 ‘지식 산업’에서 나타난다고 지적했습니다. 노동자들이 정해진 시간 동안 자리를 지킬 필요 없이 생산성을 높여 짧은 시간에 업무를 완수할 수 있었기에, 근로 시간을 줄이기 위한 신규 채용이나 자동화 기술 도입 등의 추가 비용이 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최근 급증하는 특수고용, 플랫폼 노동자 등 이른바 비정형 노동자에게 주 4일제를 적용하는 것은 더 어렵습니다.


이승윤 교수는 “주 4일제는 표준 근로시간을 줄이자는 것인데, 프리랜서, 플랫폼 노동자, 야간, 새벽 노동자 등은 표준 근로시간이라는 개념이 없다”면서 “이들에게 주 4일제는 동떨어진 이상적인 논의가 될 수 있기 때문에, 표준 근로시간 없이 일하는 분들의 근로시간을 줄이기 위해 주 4일제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김승택 선임연구위원도 “직장에서 월급을 받는 상시직 근로자를 염두에 뒀을 때에만 주 4일제 법제화를 통해 근로시간을 단축하자는 말이 통할 수 있다”면서 “기존 노동법이 적용되지 못하는 새로운 직종들이 계속 생겨날 텐데, 그런 노동자를 어떻게 보호할 것이냐의 문제는 주 4일제와 맞지 않는 얘기”라고 지적했습니다.

김 선임연구위원은 “새로운 직종이 무한대로 생겨나는 사회로 변화해가는 상황에서는, 주 4일제보다는 획일적 기준에서 벗어난 다양한 근로시간 단축 방법을 논의하는 게 오히려 맞지 않는가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 누릴 수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생긴다면?

주 4일제를 채택하게 되면, 소위 좋은 일자리와 나쁜 일자리의 격차가 더 벌어질 거라는 우려도 있습니다.

이승윤 교수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공공 부문과 비공공 부문 간 근로 환경의 격차를 무시한 채 주 4일제를 전면적으로 도입한다면 기존의 불평등을 더 강화시킬 염려가 다분하다”면서 “이미 안정적이고 임금 수준도 좋은 직장에 주 4일제가 도입이 되면 노동자의 자율성, 일과 가정의 양립이 확보돼 더 업그레이드가 될 수 있지만, 돌봄 노동처럼 노동집약적이고 임금이 낮은 일자리의 경우 주 4일제의 혜택을 경험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근로시간 단축에 대한 사람들의 가장 큰 걱정은 소득 감소입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주 4일제와 다른 정책의 적절한 조합을 강조합니다.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 소장은 “주 4일제를 확대하려면 저임금 노동자에 대한 교육비, 교통비 지원 등 공적이전소득을 높여서 이들이 임금 저하로 인한 ‘투잡’에 내몰리지 않게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또 영세 기업에 대해서도 세제 혜택을 주거나 추가 인력 고용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김 소장은 “대기업에서는 이미 자체적으로 주 4일제가 가능하기 때문에, 정부가 만약 주 4일제 실험을 한다면 주 4일제를 상상해보기 어려운 직종부터 지원하는 게 바람직하다”면서 산업재해가 많거나 교대제 근무를 하는 사업장, 야간 근무자, 여성 노동자 비율이 높은 사업장을 예시로 들었습니다.

■ 가까워지는 주 4일제…“논의 폭 넓혀야”

세계 각국의 주 4일제 일자리 정보를 제공하는 누리집의 첫 화면세계 각국의 주 4일제 일자리 정보를 제공하는 누리집의 첫 화면

기대만큼 우려도 크지만, 민간에서의 자발적인 시도로 주 4일제는 점차 확대되는 추세입니다.

강민정 한림대 글로벌협력대학원 교수는 “지금은 실험 정도로만 와 있지만 앞으로는 급속히 주 4일제를 도입해 나가는 시대가 되지 않을까”라고 전망했습니다. “그것이 실용과 가치를 중시하는 청년 세대의 바람이기도 하고, 기업 입장에서도 적극적으로 근로시간을 줄이면서 일하는 시간보다는 성과 중심의 노동으로 가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강 교수는 말했습니다.

이승윤 교수도 “기업들은 고급 인력을 유인하고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주 4일제와 같은 새로운 근로 환경을 마련하고 있다”면서도 “생산성 향상을 위해 필요한 제도라는 논의로 귀결될 경우, 주 4일제는 오히려 노동자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거나 짧은 시간에 더 많은 일을 하도록 압박을 가하는 쪽으로 갈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를 방지하려면 생산성 향상뿐 아니라 노동자의 자율성 확대, 일과 가정의 양립, 성평등, 탄소 배출 감소 등 주 4일제가 가져올 수 있는 장점을 폭넓게 논의해야 한다고 이 교수는 강조했습니다.

과거 주 5일제 도입 과정도 주 4일제 논의에 중요한 시사점을 줍니다.

김승택 선임연구위원은 “주 5일제 도입 전까지, 나라가 망할 거라는 얘기부터 시작해 3~4년 동안 굉장히 많은 토론이 있었고 실제 시행도 무려 8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진행됐다”면서 “기업과 노동자들이 적응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줬다는 것”이라고 짚었습니다.

그러면서 “주 4일제로 휴일이 하루 더 늘어난다면, 나머지 4일 동안의 노동 강도는 훨씬 높아져야 할 것”이라며 “이를 위해 기업과 노동자가 무엇을 바꿔야 할지에 대한 고민과 오랜 적응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오늘(8일) 밤 10시 30분 KBS2 <9층시사국>에서, 국내 주 4일제 시행 현장과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접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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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사 협상 ‘뜨거운 감자’된 이것…파격적 변화 올까?
    • 입력 2023-10-08 06:0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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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노사 협상 현장에서 조금은 낯선 주제가 의제에 오르고 있습니다.

지난달 중순 파업에 나선 전미자동차노조(United Auto Workers)는 주요 요구 사항 중 하나로 임금 삭감 없는 주 4일제(주 32시간 근무)를 내걸었습니다.

국내에서도 기아차 노동조합이 단체협약 교섭에서 주 4일제 도입을 사측에 요구했고, 포스코의 경우 사측이 먼저 격주 주 4일제를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절대 다수의 노동자에겐 그저 꿈같은 주 4일제가, 현실과의 거리를 조금씩 좁혀가고 있는 모습입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많은 기업이 유연 근로와 단축·재택 근무 등 새로운 업무 방식을 빠르게 도입하면서 주 4일제에 대한 관심은 더 높아졌습니다.

19년 전 도입된 주 5일제가 그랬듯, 주 4일제도 새로운 일상으로 조금씩 자리잡을 수 있을까요?

다른 이들보다 앞서 이 문제를 고민하고 연구 중인 사람들을 만나 주 4일제에 대한 보다 깊이 있는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 “정형화된 주 5일제에 대한 반문”

지난달 30일, 국내에선 처음으로 주 4일제를 주제로 한 학술 논문이 발표됐습니다. (▶바로 보기: 김은별·이승윤, ‘주 4일제 도입에 대한 비판적 고찰’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3001330)

논문에 따르면 주 4일제는 임금 감소 없이, 주당 표준 근로일을 ‘주 4일’로 혹은 표준 근로시간을 ‘주 32시간’으로 단축시키는 노동 시간 제도입니다.

그 형태를 보면 주 5일·하루 8시간 근무 형태에서 완전히 하루를 쉬는 주 4일제, 주당 표준 근로시간은 40시간에서 32시간으로 단축하되 주 5일 출근은 유지하는 주 4일제, 주당 근로시간 단축은 없이 근로 일수만 4일로 줄이는 주 4일제 등으로 다양합니다.

주 4일제 관련 논문을 발표한 이승윤 중앙대학교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주 4일제를 논의한다는 건 표준 근로시간, 소위 정상 근로시간에 대한 반문을 해보는 것”이라면서 “주 5일제 근무가 항상 있어야 할 표준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다시 던지고, 다른 삶에 대한 상상력을 자극한다는 점에서 주 4일제 논의를 시작해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 주 4일제, 어디까지 왔나

국제적으로 주 4일제 실험, 도입은 활발해지는 추세입니다.

첫 시작은 아이슬란드였습니다. 노동조합과 시민사회 단체의 근로시간 단축 요구에 레이캬비크 시의회(2014~2019년), 중앙 정부(2017년~2021년)가 주 4일제 실험을 실시했습니다. 100곳 이상의 기업 소속 노동자 2천 500명 이상이 참여했는데, 이는 아이슬란드 총 노동인구의 1.3%에 해당합니다.

스페인 정부도 희망 기업의 신청을 받아 주 4일제를 시행하도록 하고, 이로 인한 기업의 손해액 일부를 정부 예산으로 보전해주는 실험을 2021년 가을부터 3년째 하고 있습니다.

주 4일제가 법제화된 곳도 있습니다. 벨기에에서는 근로시간은 기존 주 38시간으로 유지하되, 근로 일수를 주 4일로 줄일 수 있도록 노동자의 선택권을 확대하는 법이 2022년 11월 시행됐습니다.

그밖에도 미국, 영국, 아일랜드 등 여러 국가의 기업들에서 주 4일제 실험이 진행됐습니다.

국내에도 드물긴 하지만 주 4일제를 하는 기업이 있습니다.

온라인 교육 전문 기업 ‘휴넷’은 2022년 7월부터 1년 4개월째 임금 삭감 없는 주 4일제를 시행 중입니다. 2019년부터 3년 동안 주 4.5일제를 시행한 뒤, 6개월 간의 시범 운영을 거쳐 근무일을 주 4일로 줄였습니다.

직원들이 출근하지 않는 금요일, 휴넷 사무실이 텅 비어있다.
휴넷의 조영탁 대표는 “주 4일제를 하면 직원의 행복도와 생산성, 회사 브랜드 가치와 채용 경쟁률이 모두 높아지고, 퇴사율은 낮아지면서 인건비 상승이라는 단점을 상쇄하는 큰 효과가 있을 거라고 판단했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올해 상반기 기준 매출은 작년 상반기 대비 14%, 채용 경쟁률은 3.2배 올랐고, 퇴사율은 28%p 감소했다고 휴넷 측은 밝혔습니다.

세브란스병원도 노사 합의로 올해 1월부터 간호사 총 6천여 명 가운데 30명에게 주 4일제를 시범 도입했습니다.

간호사들의 번아웃과 높은 사직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이었는데, 외부 연구기관의 중간 평가 결과 주 4일제 간호사들의 삶의 질이 크게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노사는 내년엔 대상 인원을 10명 더 늘리기로 최근 합의했습니다.

■ “보편적 도입에 어려움”…회의적 시각도

아직 초기라 지켜봐야겠지만 이런 실험에서 나타나는 한계 역시 분명합니다.

한국노동연구원의 김승택 선임연구위원은 “주 4일제 실험에 성공한 기업들을 보면, 4일만 일해도 원하는 부가 가치를 충분히 달성할 수 있었던 곳들”이라며 “모든 업종에 주 4일제를 적용할 수 있느냐는 검증이 되지 않았다”고 평가했습니다. 예컨대 시간당 생산량이 균일한 제조업 기업에서 주 4일제를 한다면 기업의 매출, 노동자의 소득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영국의 경제사학자 로버트 스키델스키도 2019년 쓴 논문에서, 주 4일제와 같은 근로시간 단축은 대부분 마케팅, 자문, 회계 회사와 같은 ‘지식 산업’에서 나타난다고 지적했습니다. 노동자들이 정해진 시간 동안 자리를 지킬 필요 없이 생산성을 높여 짧은 시간에 업무를 완수할 수 있었기에, 근로 시간을 줄이기 위한 신규 채용이나 자동화 기술 도입 등의 추가 비용이 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최근 급증하는 특수고용, 플랫폼 노동자 등 이른바 비정형 노동자에게 주 4일제를 적용하는 것은 더 어렵습니다.


이승윤 교수는 “주 4일제는 표준 근로시간을 줄이자는 것인데, 프리랜서, 플랫폼 노동자, 야간, 새벽 노동자 등은 표준 근로시간이라는 개념이 없다”면서 “이들에게 주 4일제는 동떨어진 이상적인 논의가 될 수 있기 때문에, 표준 근로시간 없이 일하는 분들의 근로시간을 줄이기 위해 주 4일제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김승택 선임연구위원도 “직장에서 월급을 받는 상시직 근로자를 염두에 뒀을 때에만 주 4일제 법제화를 통해 근로시간을 단축하자는 말이 통할 수 있다”면서 “기존 노동법이 적용되지 못하는 새로운 직종들이 계속 생겨날 텐데, 그런 노동자를 어떻게 보호할 것이냐의 문제는 주 4일제와 맞지 않는 얘기”라고 지적했습니다.

김 선임연구위원은 “새로운 직종이 무한대로 생겨나는 사회로 변화해가는 상황에서는, 주 4일제보다는 획일적 기준에서 벗어난 다양한 근로시간 단축 방법을 논의하는 게 오히려 맞지 않는가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 누릴 수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생긴다면?

주 4일제를 채택하게 되면, 소위 좋은 일자리와 나쁜 일자리의 격차가 더 벌어질 거라는 우려도 있습니다.

이승윤 교수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공공 부문과 비공공 부문 간 근로 환경의 격차를 무시한 채 주 4일제를 전면적으로 도입한다면 기존의 불평등을 더 강화시킬 염려가 다분하다”면서 “이미 안정적이고 임금 수준도 좋은 직장에 주 4일제가 도입이 되면 노동자의 자율성, 일과 가정의 양립이 확보돼 더 업그레이드가 될 수 있지만, 돌봄 노동처럼 노동집약적이고 임금이 낮은 일자리의 경우 주 4일제의 혜택을 경험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근로시간 단축에 대한 사람들의 가장 큰 걱정은 소득 감소입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주 4일제와 다른 정책의 적절한 조합을 강조합니다.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 소장은 “주 4일제를 확대하려면 저임금 노동자에 대한 교육비, 교통비 지원 등 공적이전소득을 높여서 이들이 임금 저하로 인한 ‘투잡’에 내몰리지 않게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또 영세 기업에 대해서도 세제 혜택을 주거나 추가 인력 고용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김 소장은 “대기업에서는 이미 자체적으로 주 4일제가 가능하기 때문에, 정부가 만약 주 4일제 실험을 한다면 주 4일제를 상상해보기 어려운 직종부터 지원하는 게 바람직하다”면서 산업재해가 많거나 교대제 근무를 하는 사업장, 야간 근무자, 여성 노동자 비율이 높은 사업장을 예시로 들었습니다.

■ 가까워지는 주 4일제…“논의 폭 넓혀야”

세계 각국의 주 4일제 일자리 정보를 제공하는 누리집의 첫 화면
기대만큼 우려도 크지만, 민간에서의 자발적인 시도로 주 4일제는 점차 확대되는 추세입니다.

강민정 한림대 글로벌협력대학원 교수는 “지금은 실험 정도로만 와 있지만 앞으로는 급속히 주 4일제를 도입해 나가는 시대가 되지 않을까”라고 전망했습니다. “그것이 실용과 가치를 중시하는 청년 세대의 바람이기도 하고, 기업 입장에서도 적극적으로 근로시간을 줄이면서 일하는 시간보다는 성과 중심의 노동으로 가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강 교수는 말했습니다.

이승윤 교수도 “기업들은 고급 인력을 유인하고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주 4일제와 같은 새로운 근로 환경을 마련하고 있다”면서도 “생산성 향상을 위해 필요한 제도라는 논의로 귀결될 경우, 주 4일제는 오히려 노동자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거나 짧은 시간에 더 많은 일을 하도록 압박을 가하는 쪽으로 갈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를 방지하려면 생산성 향상뿐 아니라 노동자의 자율성 확대, 일과 가정의 양립, 성평등, 탄소 배출 감소 등 주 4일제가 가져올 수 있는 장점을 폭넓게 논의해야 한다고 이 교수는 강조했습니다.

과거 주 5일제 도입 과정도 주 4일제 논의에 중요한 시사점을 줍니다.

김승택 선임연구위원은 “주 5일제 도입 전까지, 나라가 망할 거라는 얘기부터 시작해 3~4년 동안 굉장히 많은 토론이 있었고 실제 시행도 무려 8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진행됐다”면서 “기업과 노동자들이 적응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줬다는 것”이라고 짚었습니다.

그러면서 “주 4일제로 휴일이 하루 더 늘어난다면, 나머지 4일 동안의 노동 강도는 훨씬 높아져야 할 것”이라며 “이를 위해 기업과 노동자가 무엇을 바꿔야 할지에 대한 고민과 오랜 적응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오늘(8일) 밤 10시 30분 KBS2 <9층시사국>에서, 국내 주 4일제 시행 현장과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접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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