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한 노부부의 억울한 죽음…도로 통제 왜 안 했나?

위 사진은 새벽 2시경, 한 도로를 찍은 CCTV 화면입니다.

주위에 가로등이 하나도 없어 껌껌하죠. 왼쪽 아래에 가드레일만 얼핏 구분될 정도입니다.

노란색 원은 저희가 표시한 겁니다. 원 안의 상황이 보이시나요? 저는 안 보입니다.

저 원 안의 도로... 사실은 놀랍게도 붕괴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아무것도 분간되지 않는 껌껌한 새벽, 한 노부부가 이 도로를 달리다가 추락해 사망했습니다.

억울하고 안타까운 죽음, 그 내막을 들려드립니다.

■ '극한호우'가 내렸다

지난 7월 중순, 경북 북부에 엄청난 비가 내렸습니다.

기상청이 1시간당 누적 강수량이 50mm 이상 되는 '극한호우'를 도입한 이후, 처음 적용된 재난이었습니다.

경북에서만 25명이 사망했습니다. 해병대 故 채수근 상병이 인명 구조 중 변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지난 7월. 집중 호우로 쑥대밭이 된 경북 예천군의 모습.

비가 오기 시작하자 행정안전부는 위기경보 수준을 '심각' 단계로 격상하고, 하천 범람 우려 시 주변 도로를 통제하도록 각 자치단체에 지시했습니다.

■ 마지막 저녁 식사

경북 예천군 은풍면에 한 노부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남편 70대·아내 60대)

이 노부부는 7월 14일 저녁, 차를 타고 5분 거리의 여동생 집을 찾아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밤 10시 30분쯤 집으로 향했습니다. 이때 이미 많은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걸어가는 것이 안전할 것 같아요."

노부부는 비가 많이 오자 여동생 집에 차를 주차해놓고 걸어서 귀가했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새벽 3시 30분, 누군가 부부의 집을 찾았습니다. 마을 반장이었습니다.

"비가 너무 많이 내려서 여동생 집에 주차해놓은 차가 침수될 것 같아요. 차를 옮겨요."

결국 노부부는 새벽 4시쯤 걸어서 여동생 집으로 간 뒤, 차에 올라탔습니다.

부부는 집으로 돌아가는 가까운 골목을 통해 이동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이미 다른 차들이 골목을 막고 있었습니다. 결국, 부부는 하천변 도로를 따라 우회하여 귀가했습니다.

노부부는 아래 동그라미 출발지점에서 마을 중간으로 난 골목으로 이동하려 했다. 하지만 골목에 주차된 차 때문에 빨간색 선으로 표시된 하천 도로로 우회해 집으로 귀가했다.

■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부부

잠시 뒤, 여동생은 노부부에게 잘 돌아갔는지 확인하려고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런데 전화를 받지 않았습니다. 동생은 불안한 마음에 부부의 집을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집은 텅 비어있었고, 주차된 차도 없었습니다.

급하게 부부를 찾으러 마을 주변을 돌아다녔습니다. 그리고 깜짝 놀랐습니다.

하천변 도로 한 차선이 30미터 이상 무너져 버린 겁니다.

추락 발생 몇 시간 뒤 KBS 카메라가 포착한 도로 유실 현장.

가족들은 급하게 휴대폰 위치를 추적했고, 부부의 휴대폰이 각각 하천에 빠진 것을 확인했습니다.

노부부가 실종된 겁니다.

취재진이 해당 도로를 찾아가 봤습니다. 주위에는 민가가 없었습니다. 그 흔한 가로등도 없었습니다.

억수같이 비가 쏟아져 한 치 앞을 분간하기 힘들었던 그 새벽, 아마 노부부는 도로가 붕괴된 것을 발견하지 못했을 겁니다.

유가족 "앞이 보이지 않고, 폭우는 쏟아지고 도로가 물이 차있는 상태에서 이 도로가 끊겼다는 걸 어떻게 저희들이 예상하겠습니까?"

■ 3일에 걸친 수색…10·25km 휩쓸린 부부

이들을 찾기 위한 수색이 시작됐습니다.

수색 3일째, 아내는 붕괴된 도로에서 무려 10km 떨어진 하천에서 발견됐습니다.

수색 4일째, 남편은 약 25km 떨어진 하류에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윗부분이 완전히 날아간 차량.

그리고 열흘 뒤 부부의 차가 발견됐습니다. 윗부분이 완전히 날아갔습니다.

차량 추락 당시의 충격이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습니다.

■ 도로는 왜 방치되어 있었나

해당 도로는 새벽 4시쯤 노부부가 실종되고 나서, 그리고 얼마 뒤 여동생이 발견하고 나서도 방치되었습니다.

그리고 아침 8시가 되어서야 예천군청은 뒤늦게 도로를 통제했습니다.

도로는 언제 무너진 걸까요?

새벽 2시쯤으로 추정됩니다. 인근 마을 주민이 새벽 2시에 '쿵'하는 소리가 들렸다는 진술을 했기 때문입니다. 이 주민은 도로가 무너지는 상황을 확인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최소한 4시간에서 최대 6시간 동안 붕괴된 도로가 방치되어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새벽 4시 42분쯤 CCTV에 잡힌 해당 도로 모습. 도로 유실 상황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애초에 극한호우 상황에서라면, 도로 자체가 통제되는 게 좋지 않았을까요?

도로 진입 자체를 막았으면 어땠을까요?

■ 그들은 '위험한 도로'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사실 막았어야 했습니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행정안전부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하천 범람 우려 시 주변 도로를 통제하라"고 지시했습니다.

해당 도로는 예천군이 관리합니다.

유실된 도로 현장. 한 차선이 아예 떨어져 나갔다.

예천군수는 <경상북도 사무위임>에 따라 도로관리청으로서, 도로가 붕괴되거나 자동차 운전자가 추락하는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업무상 주의 의무가 있었습니다.

하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평소 하천공사 및 유지 보수를 통해 도로 붕괴의 원인이 되는 제방 유실을 막을 의무가 있습니다.

그런데 왜 예천군은 도로를 그냥 놔뒀을까요?

그런데 황당한 사실이 뒤늦게 발견됩니다.

예천군이 이미 해당 도로 주변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겁니다.

예천군은 3년 전 이 일대인 '오류 지구'를 최고 등급의 재해위험지구로 지정했습니다. 이곳 하천이 제방 시설을 제대로 갖추지 않아 인명 피해 우려가 크다고 본 겁니다.

그런데 예천군은 이 사실을 주민에게 알리지도 않았고, 사전 예방 조치도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본인들 스스로 해당 지역을 '인명 피해 예상지역'이라고 지정해놓고, 아무런 대비를 하지 않은 겁니다.

■ 어쩔 수 없는 자연재해?

KBS는 예천군에 따져 물었습니다.

왜 해당 지역에 인명 피해가 날 수 있음을 미리 파악했으면서도 조처를 하지 않았느냐고요.

"어쩔 수 없는 천재지변이었다."

예천군 담당자는 안타까운 사고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는 입장입니다.

이해가 잘 안 됩니다. 그렇다면 굳이 왜 '재해위험지구'를 지정한 것일까요.

예천군의 생각은 '인명피해 조사 보고서'에도 그대로 담겼습니다.

예천군은 인명피해 조사 보고서에서, 이번 사고 원인으로 ‘도로 유실’을 아예 포함시키지 않았다.

이번 사건에 대해 노부부의 사망 원인을 '집중호우'로만 지목했을 뿐, 도로 유실 사실을 언급하지 않은 겁니다.

그리고 예천군은 취재진에 이런 말도 덧붙였습니다. "안전 안내 문자를 수시로 발송했다"고요.

그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예천군이 주민들에 보낸 안전 안내 문자.

"비가 많이 오니 안전에 유의하라."

그런데 예천군 면적은 661.56㎢입니다. 서울시 면적이 605.2㎢입니다.

서울보다 넓은 면적에 고작 5만 명이 흩어져 살고 있는데, 그저 비가 많이 오니 유의하라는 문자 내용만 반복된다면 주민들이 재난 대비를 제대로 할 수 있을까요?

하나마나한 문자 알림입니다.

■ 기나긴 다툼…유가족의 다짐

유가족은 예천군수와 예천경찰서장을 상대로 업무상과실치사죄로 처벌해달라며 검찰에 진정서를 냈습니다.

그리고 경북경찰청이 검찰로부터 진정서를 이첩받아 조사에 들어간 상황입니다.

유가족은 조사가 오래 걸리더라도 무조건 처벌을 바란다는 입장입니다.

유가족은 이번 사고의 원인을 제대로 따져 묻겠다고 말했다. 그것이 다른 시민의 생명을 지키는 일이라고 했다.

국가는 재난으로부터 국민의 안전을 보호할 의무가 있는데, 단순히 '천재지변'이라고만 넘어간다면 언제든 이런 일이 또 일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유가족 "이번 사건은 순수한 자연재해가 아닙니다. 누구나 이용하는 도로에서 발생한 추락 사고가 자연재해인가요? 이번 일이 그냥 넘어가게 된다면 이런 일은 또 반복될 겁니다. 다른 시민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꼭 책임을 묻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