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파트엔 유독 사주 일가 작품만…경력도 작품도 ‘의혹’

입력 2023.10.30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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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파트 미술작품, 건설사 '사주 일가 챙기기' 수단으로 전락

해마다 전국에 새로 지어지는 건물(연면적 만 제곱미터 이상 기준) 가운데 60% 가량이 아파트입니다. 그런데 이 아파트와 덩달아 많아지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건축물 미술작품입니다. 건물이 사용승인을 받기 위해서는 건축비의 일정 비율만큼 미술작품을 설치하도록 문화예술진흥법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민들에게 고가의 미술 작품에 쉽게 접근할 기회를 주고, 작가들에게는 창작의 공간을 넓혀주기 위한 취지입니다. 이렇게 매년 4백 점이 넘는 미술작품이 아파트 준공과 함께 새로 설치돼 지자체에 관리 내역으로 등록됩니다.
그럼 얼마의 작품이, 누구의 돈으로 설치될까요? 문체부가 발간한 '2022년 미술시장 실태조사'를 보면 건축물 미술작품 한 점당 평균 가격은 1억 4천4만여 원, 관련 시장은 연간 1000억 원 안팎입니다. 미술작품 제작과 설치는 건설사와 회화·조형 작가 간 용역 계약으로 이뤄지지만, 그 비용은 사실상 분양가에 반영돼 있습니다. 결국, 아파트를 분양받은 입주민들이 아파트에 지어지는 미술 작품의 가격까지 지불하는 셈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 작품이나 설치되지 않도록 광역지자체마다 위원회를 두고 건축주, 즉 건설사들이 설치하려는 미술 작품들을 심의합니다.
그런데 한 중견 건설사가 자신들이 짓는 아파트에 사주 일가의 작품을 오랜 기간 집중적으로 세운 정황과 그 과정에서 심의까지 통과할 수 있었던 '꼼수' 의혹이 포착돼 취재했습니다.

[연관 기사]
그 아파트엔 ‘그분’ 작품이…알고 보니 사주 일가 (KBS 뉴스9 2023.10.23.)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799946
그 아파트에 ‘그분’ 작품…빌리고 복제했어도 심의는 ‘유명무실’ (KBS 뉴스9 2023.10.24.)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800986

■ [의혹①] 사주 가족과 미술품 용역 집중 계약…28억 원 넘어

'ㅍ'브랜드의 아파트를 시공하는 건설사 이야깁니다. 2019년 세종에 지은 아파트에 공OO의 이름으로 작품이 설치됐습니다. 이 건설사가 이전에 지은 아파트에서는 전혀 등장하지 않았던 이름입니다. 취재 결과, 공 씨는 이 건설사를 소유하고 있는 공 모 회장과 남매 사이인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법정관리를 겪었던 이 건설사를 공 회장이 2016년 인수한 뒤부터 시공하는 아파트 여러 곳에 친족인 공 씨의 작품들이 세워진 겁니다.
공 회 장은 건설사 한 곳을 더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호남을 기반으로 주택을 건설해오다 충북과 경남, 강원으로 점차 시공 규모를 넓히고 있는 건설사입니다. 여기서 짓는 아파트에도 가족인 공 씨의 작품이 20년 넘게 꾸준히 설치됐습니다.
취재진이 더불어민주당 이상헌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문화체육관광부의 '전국 17개 시도 건축물미술작품관리현황'을 분석한 결과, 두 건설사가 지은 40여 개 아파트 단지에 설치한 미술작품은 모두 71점입니다. 그런데 이 가운데 절반이 넘는 38점이 사주 일가인 공 씨의 작품이었습니다. 건설사가 공 씨와 계약한 작품 가액은 저희가 확인한 것만 28억 원이 넘었습니다.


■ [의혹②] 남편 이름까지 등장…작가경력 허위 기재 의혹도

이들 두 건설사가 공동으로 시공해 올해 6월 준공한 충북 청주의 2천4백여 세대 아파트에는 공 씨의 작품 세 점 외에도 공 씨의 남편인 조 모 씨의 이름으로 미술 작품이 처음 설치됐습니다. 작품 일곱 점 가운데 절반 이상이 사주 일가 작품인 겁니다.
취재진은 사주 일가의 특혜 의혹과 별개로 이들 작가들이 조형 작가로서 활동한 경력을 들여다봤습니다. 작가 활동에 대한 평가는 주관적인 부분이 개입할 영역일 수 있는 만큼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이들이 지자체 건축물 미술작품 심의를 신청하면서 제출한 작가경력서 내용에 집중했습니다.
그런데 남편 조 씨가 이 아파트에 작품을 설치하기에 앞서 해당 지자체에 제출한 작가경력서 일부에서 문체부 데이터 자료와는 다른 내역이 포착됐습니다. 실제로는 다른 작가의 이름으로 설치된 각기 다른 지역의 세 작품이 조 씨의 경력으로 기재된 것입니다.


해당 건설사는 "건설사가 짓는 아파트 브랜드와 단지 조경 등을 고려해 기존에 협업을 해왔던 작가들에게 작업을 맡기고 심의를 통과해오게끔 지원했던 것일 뿐, 일각에서 제기하는 일감 몰아주기나 사주 일가 특혜는 아니다."라고 해명했습니다. 이어 "작가 경력 사항은 개인정보 영역으로 건설사에서는 관여하지 않으며 내용에 대해서는 확인해줄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대해 권오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경제정책국장은 "건설사가 자신들과 특수관계에 있는 사주 일가 등 특정한 예술인에 대해 일감몰아주기식으로 계약을 해오고 있다면 사익 편취로 볼 수 있고 배임의 문제로도 이어질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또, "행정기관의 심의에 제출하는 문서에 허위 내용을 제출할 경우 심의 결과 취소 사유에 해당할 수 있고 나아가 업무방해도 검토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지적했습니다.

■ [의혹③] 다른 작가 작품 빌려 심의 통과?…공 씨 부부 등 "공동제작한 것"

이들 사주 일가 작품에 대한 수상한 의혹은 더 있습니다. 유사한 작품이 작가 이름을 바꿔 이 건설사가 짓는 아파트 이곳저곳에 설치된 정황입니다. 주로, 김 모 씨와 다른 1명 등 조형작가 2명이 과거에 SH공사 등 여러 아파트에 설치한 작품들이 2018년 이후 공 회장의 건설사가 짓는 아파트 여러 곳에서는 공 씨 부부 이름으로 설치됐습니다. 사주 일가가 짓는 아파트에 공 씨 부부가 설치한 작품들 가운데 최초 원작자가 다른 것으로 의심되는 작품 수는 취재진이 파악한 것만 아홉 점입니다.



취재진은 공 씨 부부와 이러한 작업을 함께해온 작가 김 모 씨를 만나봤습니다. 김 씨는 2012년 인사동에서 해당 작품에 대한 개인전을 열었고 이후 이 작품들을 아파트에 설치한 시기도 가장 앞서기 때문입니다. 김 씨는 취재진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제가 어필(설치)할 수 없는 어떤 건설현장이라든지 이런 쪽에는 또 이분(공 씨)이 그걸(미술작품) 어필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중략) 작품비에 대해 수익이 나면 저는 아르바이트비나 디자인비를 받는 식으로 (공 씨 등과) 서로 협의했어요. 추후에 다른 아파트 단지를 할 때 '제 이름으로 들어가(설치하자)'고 말씀해주시기도..." - 김OO 작가

하지만 이에 대해 조형학계와 조각가 전문 단체에서는 정상적이지 않은 방식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취재진이 서울대 조형연구소와 한국조각가협회에 자문을 의뢰한 결과 이들 모두 "상당한 유사성과 동일성이 있는 작품을 작가 이름을 달리해 세워지는 사례는 거의 없다"면서 "여러 작가가 공동으로 제작한 경우라도 작품 설치나 심사를 받기 위해서는 참여 작가들의 이름을 연명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말했습니다. 작가 이름이 바뀌면서 유사한 작품들이 설치되는 배경에 대해 전문가들은 작가들 간에 일종의 카르텔을 형성해 심의를 쉽게 통과할 수 있도록 한 것이 아닌지 의심이 드는 부분이라고 말했습니다.
즉, 비슷한 작품을 여러 개 만들 경우 창작비 등을 상당 부분 절감할 수 있어 주택건설 붐이 일던 수년 전부터 비슷한 작품들이 '자기복제'식으로 설치되는 경향이 짙어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자체 심의에서 작가의 이전 설치 작품들을 검색해 유사성을 걸러 왔지만, 이번 사례처럼 작가들 간에 서로 짜고 이름과 작품을 빌려 심의를 신청할 경우에는 걸러내기가 쉽지 않다는 겁니다.
이에 대해 공 씨 부부와 해당 작가들은 취재진에게 입장문을 보내 "서로 간에 오랜 지인 관계로 작품을 공동작업하기로 사전에 협의했고 작품이 온전하게 계약돼 설치될 수 있도록 공동작업자 중 한 명을 지정해온 것"이라 해명했습니다. 이어 "작품의 작가명이 바뀌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주장했습니다.

■ 이상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장 "주무 부처의 적극적인 심의 관리 시스템 필요"


건축물 미술작품을 둘러싼 사주 일가의 여러 의혹에 대한 KBS 보도 이후 감시 강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국회에서도 나오고 있습니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이상헌 위원장(더불어민주당)은 "건축물 미술작품 제도의 근본적인 취지는 시민에게 예술적 공간을 마련함과 동시에, 신인 작가에게 작품을 선보일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것인데 일부 건설사 오너 일가의 일감 몰아주기에 이용되는 상황" 이라며 "주무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적극적인 심의 관리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래픽 : 김홍식, 권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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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10-30 15:0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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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파트 미술작품, 건설사 '사주 일가 챙기기' 수단으로 전락

해마다 전국에 새로 지어지는 건물(연면적 만 제곱미터 이상 기준) 가운데 60% 가량이 아파트입니다. 그런데 이 아파트와 덩달아 많아지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건축물 미술작품입니다. 건물이 사용승인을 받기 위해서는 건축비의 일정 비율만큼 미술작품을 설치하도록 문화예술진흥법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민들에게 고가의 미술 작품에 쉽게 접근할 기회를 주고, 작가들에게는 창작의 공간을 넓혀주기 위한 취지입니다. 이렇게 매년 4백 점이 넘는 미술작품이 아파트 준공과 함께 새로 설치돼 지자체에 관리 내역으로 등록됩니다.
그럼 얼마의 작품이, 누구의 돈으로 설치될까요? 문체부가 발간한 '2022년 미술시장 실태조사'를 보면 건축물 미술작품 한 점당 평균 가격은 1억 4천4만여 원, 관련 시장은 연간 1000억 원 안팎입니다. 미술작품 제작과 설치는 건설사와 회화·조형 작가 간 용역 계약으로 이뤄지지만, 그 비용은 사실상 분양가에 반영돼 있습니다. 결국, 아파트를 분양받은 입주민들이 아파트에 지어지는 미술 작품의 가격까지 지불하는 셈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 작품이나 설치되지 않도록 광역지자체마다 위원회를 두고 건축주, 즉 건설사들이 설치하려는 미술 작품들을 심의합니다.
그런데 한 중견 건설사가 자신들이 짓는 아파트에 사주 일가의 작품을 오랜 기간 집중적으로 세운 정황과 그 과정에서 심의까지 통과할 수 있었던 '꼼수' 의혹이 포착돼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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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ㅍ'브랜드의 아파트를 시공하는 건설사 이야깁니다. 2019년 세종에 지은 아파트에 공OO의 이름으로 작품이 설치됐습니다. 이 건설사가 이전에 지은 아파트에서는 전혀 등장하지 않았던 이름입니다. 취재 결과, 공 씨는 이 건설사를 소유하고 있는 공 모 회장과 남매 사이인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법정관리를 겪었던 이 건설사를 공 회장이 2016년 인수한 뒤부터 시공하는 아파트 여러 곳에 친족인 공 씨의 작품들이 세워진 겁니다.
공 회 장은 건설사 한 곳을 더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호남을 기반으로 주택을 건설해오다 충북과 경남, 강원으로 점차 시공 규모를 넓히고 있는 건설사입니다. 여기서 짓는 아파트에도 가족인 공 씨의 작품이 20년 넘게 꾸준히 설치됐습니다.
취재진이 더불어민주당 이상헌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문화체육관광부의 '전국 17개 시도 건축물미술작품관리현황'을 분석한 결과, 두 건설사가 지은 40여 개 아파트 단지에 설치한 미술작품은 모두 71점입니다. 그런데 이 가운데 절반이 넘는 38점이 사주 일가인 공 씨의 작품이었습니다. 건설사가 공 씨와 계약한 작품 가액은 저희가 확인한 것만 28억 원이 넘었습니다.


■ [의혹②] 남편 이름까지 등장…작가경력 허위 기재 의혹도

이들 두 건설사가 공동으로 시공해 올해 6월 준공한 충북 청주의 2천4백여 세대 아파트에는 공 씨의 작품 세 점 외에도 공 씨의 남편인 조 모 씨의 이름으로 미술 작품이 처음 설치됐습니다. 작품 일곱 점 가운데 절반 이상이 사주 일가 작품인 겁니다.
취재진은 사주 일가의 특혜 의혹과 별개로 이들 작가들이 조형 작가로서 활동한 경력을 들여다봤습니다. 작가 활동에 대한 평가는 주관적인 부분이 개입할 영역일 수 있는 만큼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이들이 지자체 건축물 미술작품 심의를 신청하면서 제출한 작가경력서 내용에 집중했습니다.
그런데 남편 조 씨가 이 아파트에 작품을 설치하기에 앞서 해당 지자체에 제출한 작가경력서 일부에서 문체부 데이터 자료와는 다른 내역이 포착됐습니다. 실제로는 다른 작가의 이름으로 설치된 각기 다른 지역의 세 작품이 조 씨의 경력으로 기재된 것입니다.


해당 건설사는 "건설사가 짓는 아파트 브랜드와 단지 조경 등을 고려해 기존에 협업을 해왔던 작가들에게 작업을 맡기고 심의를 통과해오게끔 지원했던 것일 뿐, 일각에서 제기하는 일감 몰아주기나 사주 일가 특혜는 아니다."라고 해명했습니다. 이어 "작가 경력 사항은 개인정보 영역으로 건설사에서는 관여하지 않으며 내용에 대해서는 확인해줄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대해 권오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경제정책국장은 "건설사가 자신들과 특수관계에 있는 사주 일가 등 특정한 예술인에 대해 일감몰아주기식으로 계약을 해오고 있다면 사익 편취로 볼 수 있고 배임의 문제로도 이어질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또, "행정기관의 심의에 제출하는 문서에 허위 내용을 제출할 경우 심의 결과 취소 사유에 해당할 수 있고 나아가 업무방해도 검토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지적했습니다.

■ [의혹③] 다른 작가 작품 빌려 심의 통과?…공 씨 부부 등 "공동제작한 것"

이들 사주 일가 작품에 대한 수상한 의혹은 더 있습니다. 유사한 작품이 작가 이름을 바꿔 이 건설사가 짓는 아파트 이곳저곳에 설치된 정황입니다. 주로, 김 모 씨와 다른 1명 등 조형작가 2명이 과거에 SH공사 등 여러 아파트에 설치한 작품들이 2018년 이후 공 회장의 건설사가 짓는 아파트 여러 곳에서는 공 씨 부부 이름으로 설치됐습니다. 사주 일가가 짓는 아파트에 공 씨 부부가 설치한 작품들 가운데 최초 원작자가 다른 것으로 의심되는 작품 수는 취재진이 파악한 것만 아홉 점입니다.



취재진은 공 씨 부부와 이러한 작업을 함께해온 작가 김 모 씨를 만나봤습니다. 김 씨는 2012년 인사동에서 해당 작품에 대한 개인전을 열었고 이후 이 작품들을 아파트에 설치한 시기도 가장 앞서기 때문입니다. 김 씨는 취재진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제가 어필(설치)할 수 없는 어떤 건설현장이라든지 이런 쪽에는 또 이분(공 씨)이 그걸(미술작품) 어필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중략) 작품비에 대해 수익이 나면 저는 아르바이트비나 디자인비를 받는 식으로 (공 씨 등과) 서로 협의했어요. 추후에 다른 아파트 단지를 할 때 '제 이름으로 들어가(설치하자)'고 말씀해주시기도..." - 김OO 작가

하지만 이에 대해 조형학계와 조각가 전문 단체에서는 정상적이지 않은 방식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취재진이 서울대 조형연구소와 한국조각가협회에 자문을 의뢰한 결과 이들 모두 "상당한 유사성과 동일성이 있는 작품을 작가 이름을 달리해 세워지는 사례는 거의 없다"면서 "여러 작가가 공동으로 제작한 경우라도 작품 설치나 심사를 받기 위해서는 참여 작가들의 이름을 연명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말했습니다. 작가 이름이 바뀌면서 유사한 작품들이 설치되는 배경에 대해 전문가들은 작가들 간에 일종의 카르텔을 형성해 심의를 쉽게 통과할 수 있도록 한 것이 아닌지 의심이 드는 부분이라고 말했습니다.
즉, 비슷한 작품을 여러 개 만들 경우 창작비 등을 상당 부분 절감할 수 있어 주택건설 붐이 일던 수년 전부터 비슷한 작품들이 '자기복제'식으로 설치되는 경향이 짙어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자체 심의에서 작가의 이전 설치 작품들을 검색해 유사성을 걸러 왔지만, 이번 사례처럼 작가들 간에 서로 짜고 이름과 작품을 빌려 심의를 신청할 경우에는 걸러내기가 쉽지 않다는 겁니다.
이에 대해 공 씨 부부와 해당 작가들은 취재진에게 입장문을 보내 "서로 간에 오랜 지인 관계로 작품을 공동작업하기로 사전에 협의했고 작품이 온전하게 계약돼 설치될 수 있도록 공동작업자 중 한 명을 지정해온 것"이라 해명했습니다. 이어 "작품의 작가명이 바뀌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주장했습니다.

■ 이상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장 "주무 부처의 적극적인 심의 관리 시스템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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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 김홍식, 권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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