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에서 합의된 진상규명 없다”…박명배 안동5·18기념행사위 대표 [영상채록5·18]

입력 2023.11.10 (07:00) 수정 2023.11.10 (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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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5·18 북한군 개입, 믿는 사람 여전"
"제대로 된 진상규명 필요"
안동 토박이가 5·18민주화운동 정신 기억하고 실천하는 이유는?

#박명배(1970년생)
경북 안동 5·18기념행사위 공동대표
사회적경제허브센터 상임이사

박명배 (사)사회적경제허브센터 상임이사. 5·18민주화운동 안동기념행사위도 맡고 있다.박명배 (사)사회적경제허브센터 상임이사. 5·18민주화운동 안동기념행사위도 맡고 있다.

박명배 씨는 경북 안동에서 나고 자랐고, 대학도 안동에서 다녔습니다. 지금도 살고 있는 50년 '안동 토박이'입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안동에서는 광주와 전라도에 대한 '지역감정'이 심했다고 합니다.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선입견이나 왜곡된 시선도 많았을 겁니다.

제가 어릴 때 중고등학교 다닐 때는 '광주는 간첩들이 많이 사는 곳이다'고 아버지가 항상 이야기하셨어요. 그러니까 전라도나 광주를 웬만하면 가지 말고 어쩔 수 없이 갈 때는 기름을 가득 채워 가라고. '광주에 가면 (경상도 차에) 기름 잘 안 넣어 주니까 이쪽에서 꽉꽉 채워서 넘어가라' 이런 이야기를 할 정도로 적대감이 굉장히 컸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런 건 완전히 없어졌어요.


박 씨는 안동 지역에서 오랫동안 사회운동을 해왔고 사회적경제 관련 일을 하고 있습니다. 몇 년 전부터는 안동 5·18민중항쟁기념행사위 활동도 맡았습니다.

안동 토박이 박 씨가 '5·18 정신'을 강조하고 실천하는 이유는 뭘까요? KBS광주「영상채록 5·18」취재진이 안동에서 박 씨를 만났습니다.

■"믿기 어려웠다"

박 씨는 1988년 대학 입학 후 이른바 '광주 비디오'를 처음 접했습니다. 5·18민주화운동의 진상과 신군부의 만행을 일부나마 알게 된 겁니다.

처음엔 믿기 어려웠다고 합니다. 그만큼 1980년 광주에서 벌어진 참상은, 직후에는 쉽게 이야기를 꺼내는 것도 힘든 일이었고, 일부만 아는 '진실'이었기 때문입니다. 박 씨는 이후 '광주 비디오'를 대학생들 뿐 아니라 안동 시민들에게 몰래 상영하기도 했습니다.

학생들이 비디오를 통해서 알게 됐으니까 이런 사실이 있었다는 것을 우리 시민들도 알아야 되지 않으냐고 해서. 당시에는 비디오 테이프하고 비디오데크·TV까지 들고 다니면서 순회하면서 소규모로 사람들 모아놓고 틀었어요. 바깥에서는 몇 명이 망을 보고...
가톨릭에서 운영하는 문화회관이라는 곳이 있었는데 거기서 한 번 틀었다가 난리가 났죠. 며칠 구속되고 할 정도였죠.

■'5·18 가두방송' 차명숙 씨와 만남

5.18 때 가두방송을 했던 차명숙 씨. 경북 안동에서 식당 운영.5.18 때 가두방송을 했던 차명숙 씨. 경북 안동에서 식당 운영.

차명숙 씨(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지인들과 함께한 박명배 씨(가장 오른쪽).차명숙 씨(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지인들과 함께한 박명배 씨(가장 오른쪽).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신군부의 만행을 고발하고 시민들의 참여를 호소하는 가두방송을 했던 차명숙 씨. 경북 안동에 정착해 살고 있고 (전라도) 홍어를 파는 식당을 하고 있습니다.
박명배 씨는 차명숙 씨를 알게 되면서 5·18을 자신의 일로 받아들이게 됐다고 말합니다. 대학 졸업 후 잠시 안동을 떠났다가 5년 뒤인 1999년 안동에 다시 돌아왔고, 이때 차명숙 씨를 알게 된 겁니다.

차명숙 씨 등의 사연이 소개된 뉴스 영상 [100초 다큐] 대구에서 보내온 ‘5·18 편지’ (2021년 5월 20일)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5190277

(1999년) 그때부터 차명숙 선생님하고 여러 가지 이야기도 같이하고 일도 같이 했습니다.
학교 다닐 때는 5.18은 저한테 그래도 먼 이야기였고, 현실적으로 다가오지는 않았죠. 그냥 대한민국의 한쪽에서 이런 일이 있었고, 계속 왜곡이 되고 있는 것에 대해서 청년의 사명감이나 정의감이었죠.
그런데 차명숙 선생님을 알고 나서는 '아, 이게 내 일일 수 있구나' 굉장히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계기가 됐습니다.

■안동에서 5·18 알리기


박 씨는 안동 지역 시민단체인 <열린사회를 위한 안동시민연대>에서 12년 동안 사무국장을 지냈습니다. 시민단체 활동을 도맡아 하면서 5·18 관련 행사도 참여했고, 2021년엔 안동5·18기념행사위원회를 만들었습니다. 해마다 5월, 5·18 주간에 맞춰 영화 상영을 하고 주먹밥 나누기 등의 행사를 준비합니다. 사진전이나 문화 행사도 마련합니다.

시민들의 반응이 어떻냐는 물음에 "큰 기대를 하지는 않는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박 씨는 그러면서 5·18에 대한 왜곡된 시선을 조금이나마 개선하려는 활동이 더욱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제가 느끼는 것은 대체로 크게 두 가지 반응인데요. '아직도 5·18 이야기를 하는 데가 있구나' 신기해 하시기도 하고, '이제는 5·18 이야기 안 해도 될 때 안 됐나?' 그런 반응도 있고 그렇습니다.

■쉽게 넘기 힘든 벽

안동 등 경북에서 과거 호남에 대한 적대적 지역감정은 이제 거의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보수적' 정서가 강한 지역이어서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인식도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고 말합니다. '5·18의 전국화'는 여전히 어려운 숙제인 겁니다.

지금은 (지역감정) 그런 이야기는 완전히 없어졌어요. 그런데 아직까지 5·18민중항쟁에 대해서는 안동 사람들의 1/3 정도는 '진짜 북한군의 개입이 있었지 않았나'라고 믿고 있지 않을까, 그런 정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 계속되는 왜곡…갈 길 먼 진상규명


박 씨는 이 때문에 사회적으로 합의된 '진상규명'을 강조합니다. 광주나 전남에서는 진상규명이 어느 정도 이뤄졌는지 모르지만 다른 지역, 특히 경북에서는 합의된 인식이 부족하다는 겁니다. 박 씨가 계속해서 지역에서 5·18을 알리는 활동을 하는 이유입니다.

광주나 전라도에서 봤을 때는 어떤지 모르지만, 경상도를 봤을 때는 제대로 된 진상조사는 한 번도 없었습니다. 지금도 없다고 보고요.

대한민국 전체가 공감하고 합의할 수 있는 5·18에 대한 제대로 된 진상규명, 이거는 50년이 지나든 100년이 지나든 반드시 해내야 할 일이다. 그렇지 않으면 피 흘린 광주가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고 있지 않다. 그 가치는 계속 훼손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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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strong>"5·18 북한군 개입, 믿는 사람 여전"<br /></strong></em><em><strong>"제대로 된 진상규명 필요"</strong></em><br />안동 토박이가 5·18민주화운동 정신 기억하고 실천하는 이유는?<br /><br />#박명배(1970년생)<br />경북 안동 5·18기념행사위 공동대표<br />사회적경제허브센터 상임이사<br />
박명배 (사)사회적경제허브센터 상임이사. 5·18민주화운동 안동기념행사위도 맡고 있다.
박명배 씨는 경북 안동에서 나고 자랐고, 대학도 안동에서 다녔습니다. 지금도 살고 있는 50년 '안동 토박이'입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안동에서는 광주와 전라도에 대한 '지역감정'이 심했다고 합니다.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선입견이나 왜곡된 시선도 많았을 겁니다.

제가 어릴 때 중고등학교 다닐 때는 '광주는 간첩들이 많이 사는 곳이다'고 아버지가 항상 이야기하셨어요. 그러니까 전라도나 광주를 웬만하면 가지 말고 어쩔 수 없이 갈 때는 기름을 가득 채워 가라고. '광주에 가면 (경상도 차에) 기름 잘 안 넣어 주니까 이쪽에서 꽉꽉 채워서 넘어가라' 이런 이야기를 할 정도로 적대감이 굉장히 컸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런 건 완전히 없어졌어요.


박 씨는 안동 지역에서 오랫동안 사회운동을 해왔고 사회적경제 관련 일을 하고 있습니다. 몇 년 전부터는 안동 5·18민중항쟁기념행사위 활동도 맡았습니다.

안동 토박이 박 씨가 '5·18 정신'을 강조하고 실천하는 이유는 뭘까요? KBS광주「영상채록 5·18」취재진이 안동에서 박 씨를 만났습니다.

■"믿기 어려웠다"

박 씨는 1988년 대학 입학 후 이른바 '광주 비디오'를 처음 접했습니다. 5·18민주화운동의 진상과 신군부의 만행을 일부나마 알게 된 겁니다.

처음엔 믿기 어려웠다고 합니다. 그만큼 1980년 광주에서 벌어진 참상은, 직후에는 쉽게 이야기를 꺼내는 것도 힘든 일이었고, 일부만 아는 '진실'이었기 때문입니다. 박 씨는 이후 '광주 비디오'를 대학생들 뿐 아니라 안동 시민들에게 몰래 상영하기도 했습니다.

학생들이 비디오를 통해서 알게 됐으니까 이런 사실이 있었다는 것을 우리 시민들도 알아야 되지 않으냐고 해서. 당시에는 비디오 테이프하고 비디오데크·TV까지 들고 다니면서 순회하면서 소규모로 사람들 모아놓고 틀었어요. 바깥에서는 몇 명이 망을 보고...
가톨릭에서 운영하는 문화회관이라는 곳이 있었는데 거기서 한 번 틀었다가 난리가 났죠. 며칠 구속되고 할 정도였죠.

■'5·18 가두방송' 차명숙 씨와 만남

5.18 때 가두방송을 했던 차명숙 씨. 경북 안동에서 식당 운영.
차명숙 씨(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지인들과 함께한 박명배 씨(가장 오른쪽).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신군부의 만행을 고발하고 시민들의 참여를 호소하는 가두방송을 했던 차명숙 씨. 경북 안동에 정착해 살고 있고 (전라도) 홍어를 파는 식당을 하고 있습니다.
박명배 씨는 차명숙 씨를 알게 되면서 5·18을 자신의 일로 받아들이게 됐다고 말합니다. 대학 졸업 후 잠시 안동을 떠났다가 5년 뒤인 1999년 안동에 다시 돌아왔고, 이때 차명숙 씨를 알게 된 겁니다.

차명숙 씨 등의 사연이 소개된 뉴스 영상 [100초 다큐] 대구에서 보내온 ‘5·18 편지’ (2021년 5월 20일)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5190277

(1999년) 그때부터 차명숙 선생님하고 여러 가지 이야기도 같이하고 일도 같이 했습니다.
학교 다닐 때는 5.18은 저한테 그래도 먼 이야기였고, 현실적으로 다가오지는 않았죠. 그냥 대한민국의 한쪽에서 이런 일이 있었고, 계속 왜곡이 되고 있는 것에 대해서 청년의 사명감이나 정의감이었죠.
그런데 차명숙 선생님을 알고 나서는 '아, 이게 내 일일 수 있구나' 굉장히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계기가 됐습니다.

■안동에서 5·18 알리기


박 씨는 안동 지역 시민단체인 <열린사회를 위한 안동시민연대>에서 12년 동안 사무국장을 지냈습니다. 시민단체 활동을 도맡아 하면서 5·18 관련 행사도 참여했고, 2021년엔 안동5·18기념행사위원회를 만들었습니다. 해마다 5월, 5·18 주간에 맞춰 영화 상영을 하고 주먹밥 나누기 등의 행사를 준비합니다. 사진전이나 문화 행사도 마련합니다.

시민들의 반응이 어떻냐는 물음에 "큰 기대를 하지는 않는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박 씨는 그러면서 5·18에 대한 왜곡된 시선을 조금이나마 개선하려는 활동이 더욱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제가 느끼는 것은 대체로 크게 두 가지 반응인데요. '아직도 5·18 이야기를 하는 데가 있구나' 신기해 하시기도 하고, '이제는 5·18 이야기 안 해도 될 때 안 됐나?' 그런 반응도 있고 그렇습니다.

■쉽게 넘기 힘든 벽

안동 등 경북에서 과거 호남에 대한 적대적 지역감정은 이제 거의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보수적' 정서가 강한 지역이어서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인식도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고 말합니다. '5·18의 전국화'는 여전히 어려운 숙제인 겁니다.

지금은 (지역감정) 그런 이야기는 완전히 없어졌어요. 그런데 아직까지 5·18민중항쟁에 대해서는 안동 사람들의 1/3 정도는 '진짜 북한군의 개입이 있었지 않았나'라고 믿고 있지 않을까, 그런 정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 계속되는 왜곡…갈 길 먼 진상규명


박 씨는 이 때문에 사회적으로 합의된 '진상규명'을 강조합니다. 광주나 전남에서는 진상규명이 어느 정도 이뤄졌는지 모르지만 다른 지역, 특히 경북에서는 합의된 인식이 부족하다는 겁니다. 박 씨가 계속해서 지역에서 5·18을 알리는 활동을 하는 이유입니다.

광주나 전라도에서 봤을 때는 어떤지 모르지만, 경상도를 봤을 때는 제대로 된 진상조사는 한 번도 없었습니다. 지금도 없다고 보고요.

대한민국 전체가 공감하고 합의할 수 있는 5·18에 대한 제대로 된 진상규명, 이거는 50년이 지나든 100년이 지나든 반드시 해내야 할 일이다. 그렇지 않으면 피 흘린 광주가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고 있지 않다. 그 가치는 계속 훼손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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