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인사이트] ‘청담 스쿨존 사망’ 가해자도 ‘기습공탁’…공탁만 하면 감형?

입력 2023.11.20 (18:29) 수정 2023.11.20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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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재판을 받는 피고인이 피해자 의사와 관계 없이 법원에 돈을 맡기고 감형을 받는 '형사 공탁' 제도의 현실, 며칠 전 KBS가 심층 보도로 전해드렸는데요.

피해자는 용서하지 않았는데 돈으로 면죄부를 사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잇따랐습니다.

최근에도 서울 청담동 스쿨존에서 음주운전 사망사고를 낸 가해자가 선고 직전 공탁을 했다고 하는데요.

법조팀 진선민 기자와 자세한 얘기 나눠보겠습니다.

진 기자, 먼저 형사 공탁 제도가 뭔지부터 간략하게 설명해주시죠.

[기자]

네, 공탁은 피해자와 직접 합의를 하는 대신 돈을 법원에 맡기고, 피해자가 찾아가도록 하는 제도입니다.

원래 공탁을 하려면 피해자의 주민등록번호와 주소 같은 인적사항을 알아야 했는데요.

지난해 12월 형사공탁 특례제도가 시행되면서 피해자 동의 없이도, 인적사항을 몰라도, 재판 중인 사건번호만 기재하면 공탁이 가능해졌습니다.

피해자 정보 유출 위험을 막고 공탁 제도를 활성화 해서 금전을 통한 피해 회복을 장려한다는 취지였는데요.

하지만 그 후로 피해자와 합의 노력 없이 무작정 거액을 공탁하거나, 피해자 의견을 들을 새도 없이 선고 직전 기습적으로 공탁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피고인들만을 위한 감형 수단으로 악용된다는 평가가 나오는 상황입니다.

[앵커]

얼마 전 '청담 초등생 음주운전 사망사고'의 가해자도 선고를 앞두고 기습 공탁을 했다고요?

[기자]

네, 지난해 12월 초등학교 앞 스쿨존에서 음주운전 사고를 내 아홉 살 초등학생의 목숨을 앗아갔던 사건인데요.

가해 운전자는 1심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고,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입니다.

이번 주 금요일이 선고 날인데, 지난 주, 선고를 열하루 앞두고 법원에 1억 5천만 원을 '기습 공탁'했습니다.

[앵커]

기습 공탁에 피해 아동의 가족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나요.

[기자]

유족들은 여러 차례 단 한 푼도 받을 생각이 없고, 오로지 엄벌을 원한다는 입장을 밝혀왔는데요.

그런데도 공탁을 한 것이 너무 고통스럽다는 말을 했습니다.

피해 아동의 아버지는 공탁이 감형 사유가 되어선 안 된다는 의견서를 재판부에 제출했습니다.

유족 발언 직접 들어보시죠.

[피해 아동 아버지 : "금전적인 보상이 저희를 위로하는 게 아니라 정말로 엄벌이 내려져서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사회를 변화하는 것이 저희를 위로하는 거고…."]

[앵커]

결국 문제는, 그래서 실제로 이런 공탁이 판결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냐는 거잖아요.

[기자]

네, 유족들이 걱정하는 것도 바로 그 부분인데요.

이번 사건의 가해 운전자는 1심 재판에서도 공탁을 해 양형 감경 요소, 그러니까 형을 줄이는 요소로 참작이 됐습니다.

그 때도 선고를 2주가량 앞두고 기습적으로 3억 5천만 원을 공탁했습니다.

당시 판결을 보면요.

재판부는 피해 회복을 위해 상당한 금액을 공탁한 점을 양형에 유리한 요소로 참작했습니다.

다만 유족이 합의와 공탁금 수령에 부정적인 입장인 점도 함께 고려한다고 판시했습니다.

[앵커]

유족 의견도 고려를 하긴 했지만, 어쨌든 공탁 사실이 가해자 측에 유리하게 반영되긴 한거네요?

공탁을 했더라도 무조건 참작해줘야 하는 건 아니지 않나요?

[기자]

네, 재판부의 재량에 따라 판단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최근 제자를 강제추행한 혐의로 재판을 받은 두 대학교수 사건이 있었는데요.

각각 서울과 부산에서 나온 판결인데 피해자와 합의를 못 하고 법원에 5천만 원을 공탁한 점이 비슷했습니다.

그런데 한 교수는 이 공탁이 참작돼 집행유예를, 다른 교수는 양형 요소로 고려될 수 없다며 징역 1년의 실형을 받았습니다.

결국에 공탁을 감형 요소로 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건데, 우리 법원에서는 대체로 인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KBS에서 최근 1년간 공탁이 이뤄진 사건 판결문을 전수분석한 결과인데요.

선고 2주 이내 '기습 공탁'이 총 558건, 그중에 80.2%가 감형 사유로 그대로 인정됐습니다.

피해자 입장을 반영해 양형 요소로 받아들이지 않은 건 단 8건(1.4%) 뿐이었습니다.

[앵커]

피해 회복을 위해 도입된 제도인데 오히려 피해자들에게 더 상처를 주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겠네요.

이런 문제,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까요.

[기자]

우선은 공탁 이후 피해자 의사를 확인하는 절차를 반드시 거치도록 의무화 하는 방안이 주로 거론이 됩니다.

또 일부 범죄에 대해서는 공탁을 정상참작 사유로 삼을 수 없도록 대법원 양형기준을 손 봐야 한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국회에서는 지난 8월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는 형사공탁을 정상참작 사유에서 제외하는 내용의 법안이 발의되기도 했습니다.

[앵커]

네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사회부 진선민 기자였습니다.

영상편집:김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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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11-20 18:29:47
    • 수정2023-11-20 18:4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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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을 받는 피고인이 피해자 의사와 관계 없이 법원에 돈을 맡기고 감형을 받는 '형사 공탁' 제도의 현실, 며칠 전 KBS가 심층 보도로 전해드렸는데요.

피해자는 용서하지 않았는데 돈으로 면죄부를 사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잇따랐습니다.

최근에도 서울 청담동 스쿨존에서 음주운전 사망사고를 낸 가해자가 선고 직전 공탁을 했다고 하는데요.

법조팀 진선민 기자와 자세한 얘기 나눠보겠습니다.

진 기자, 먼저 형사 공탁 제도가 뭔지부터 간략하게 설명해주시죠.

[기자]

네, 공탁은 피해자와 직접 합의를 하는 대신 돈을 법원에 맡기고, 피해자가 찾아가도록 하는 제도입니다.

원래 공탁을 하려면 피해자의 주민등록번호와 주소 같은 인적사항을 알아야 했는데요.

지난해 12월 형사공탁 특례제도가 시행되면서 피해자 동의 없이도, 인적사항을 몰라도, 재판 중인 사건번호만 기재하면 공탁이 가능해졌습니다.

피해자 정보 유출 위험을 막고 공탁 제도를 활성화 해서 금전을 통한 피해 회복을 장려한다는 취지였는데요.

하지만 그 후로 피해자와 합의 노력 없이 무작정 거액을 공탁하거나, 피해자 의견을 들을 새도 없이 선고 직전 기습적으로 공탁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피고인들만을 위한 감형 수단으로 악용된다는 평가가 나오는 상황입니다.

[앵커]

얼마 전 '청담 초등생 음주운전 사망사고'의 가해자도 선고를 앞두고 기습 공탁을 했다고요?

[기자]

네, 지난해 12월 초등학교 앞 스쿨존에서 음주운전 사고를 내 아홉 살 초등학생의 목숨을 앗아갔던 사건인데요.

가해 운전자는 1심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고,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입니다.

이번 주 금요일이 선고 날인데, 지난 주, 선고를 열하루 앞두고 법원에 1억 5천만 원을 '기습 공탁'했습니다.

[앵커]

기습 공탁에 피해 아동의 가족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나요.

[기자]

유족들은 여러 차례 단 한 푼도 받을 생각이 없고, 오로지 엄벌을 원한다는 입장을 밝혀왔는데요.

그런데도 공탁을 한 것이 너무 고통스럽다는 말을 했습니다.

피해 아동의 아버지는 공탁이 감형 사유가 되어선 안 된다는 의견서를 재판부에 제출했습니다.

유족 발언 직접 들어보시죠.

[피해 아동 아버지 : "금전적인 보상이 저희를 위로하는 게 아니라 정말로 엄벌이 내려져서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사회를 변화하는 것이 저희를 위로하는 거고…."]

[앵커]

결국 문제는, 그래서 실제로 이런 공탁이 판결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냐는 거잖아요.

[기자]

네, 유족들이 걱정하는 것도 바로 그 부분인데요.

이번 사건의 가해 운전자는 1심 재판에서도 공탁을 해 양형 감경 요소, 그러니까 형을 줄이는 요소로 참작이 됐습니다.

그 때도 선고를 2주가량 앞두고 기습적으로 3억 5천만 원을 공탁했습니다.

당시 판결을 보면요.

재판부는 피해 회복을 위해 상당한 금액을 공탁한 점을 양형에 유리한 요소로 참작했습니다.

다만 유족이 합의와 공탁금 수령에 부정적인 입장인 점도 함께 고려한다고 판시했습니다.

[앵커]

유족 의견도 고려를 하긴 했지만, 어쨌든 공탁 사실이 가해자 측에 유리하게 반영되긴 한거네요?

공탁을 했더라도 무조건 참작해줘야 하는 건 아니지 않나요?

[기자]

네, 재판부의 재량에 따라 판단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최근 제자를 강제추행한 혐의로 재판을 받은 두 대학교수 사건이 있었는데요.

각각 서울과 부산에서 나온 판결인데 피해자와 합의를 못 하고 법원에 5천만 원을 공탁한 점이 비슷했습니다.

그런데 한 교수는 이 공탁이 참작돼 집행유예를, 다른 교수는 양형 요소로 고려될 수 없다며 징역 1년의 실형을 받았습니다.

결국에 공탁을 감형 요소로 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건데, 우리 법원에서는 대체로 인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KBS에서 최근 1년간 공탁이 이뤄진 사건 판결문을 전수분석한 결과인데요.

선고 2주 이내 '기습 공탁'이 총 558건, 그중에 80.2%가 감형 사유로 그대로 인정됐습니다.

피해자 입장을 반영해 양형 요소로 받아들이지 않은 건 단 8건(1.4%) 뿐이었습니다.

[앵커]

피해 회복을 위해 도입된 제도인데 오히려 피해자들에게 더 상처를 주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겠네요.

이런 문제,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까요.

[기자]

우선은 공탁 이후 피해자 의사를 확인하는 절차를 반드시 거치도록 의무화 하는 방안이 주로 거론이 됩니다.

또 일부 범죄에 대해서는 공탁을 정상참작 사유로 삼을 수 없도록 대법원 양형기준을 손 봐야 한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국회에서는 지난 8월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는 형사공탁을 정상참작 사유에서 제외하는 내용의 법안이 발의되기도 했습니다.

[앵커]

네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사회부 진선민 기자였습니다.

영상편집:김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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