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자흐스탄에서 찾은 흔적, 말년의 홍범도 장군 [창+]

입력 2023.12.10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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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기획 창 '홍범도와 홍범도' 중에서>

연해주 일대를 누비던 독립군 지도자 홍범도 장군도 스탈린의 강제 이주 정책을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강 게오르기/국립 알마티대학교 교수
1937년 모든 고려인들을 카자흐스탄,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강제 이주시켜한다는 발표가 있었을 때 첫 번째로 ‘모든’이라는 단어가 있었고, 극동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고려인 1명도 빠짐없이 해당되어, 임산부, 환자, 고령자 등 모두 (이주 대상) 고려인에 해당되었죠.

1937년 강제 이주 열차에 오른 홍범도 장군은 카자흐스탄 카잘린스크에 잠시 머물다, 1938년 4월 크즐오르다에 정착해 말년을 보냅니다.

‘붉은 땅‘이란 뜻을 가진 크즐오르다는 강수량이 연 300mm 이하로 매우 적은 데다 기온 연교차가 큰 대륙성 기후라 농사를 짓기 어려운 환경입니다.

그럼에도, 강제 이주 열차를 타고 이곳에 정착한 고려인들은 시르다리야 강가에서 벼농사를 짓기 시작했습니다.

2살 때 부모님과 함께 크즐오르다에 왔던 고려인 1세들은 어린 시절 목격한 홍범도 장군의 풍모를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신 벨로리 니콜라이비치/
“그 당시 저는 너무 어렸어요. 어떤 대화가 있었겠어요, 거짓말은 하지 않겠어요. 저희는 어린아이들이 노는 것처럼, 뒤에 있었죠. 하지만, 저희에게 (그는) 큰 장군의 이미지였어요, 빨치산 부대의 사령관이었으니까요.”

“그는, 할아버지였는데, 어린 꼬마와 대화를 나누겠어요? 단지 그냥 (주변에서) 놀았을 뿐이에요. 멀리서 그저 ‘영웅이 지나간다’ 하면서 바라보기만 했죠. 이게 전부에요. 쓸데없이 말하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신경을 크게 쓰지 못했어요. 더구나 그는 당시에 가족이 없고 혼자였기 때문에 힘들고 지저분한 일을 도맡았죠. 이런 상황이었다고 보면 됩니다.”

지금은 시 문화회관이 된 옛 고려극장에서 홍범도 장군은 경비원으로 근무했습니다.

그 배경에는 고려극장 극작가였던 태장춘, 그리고 당대의 스타 배우 이함덕 부부가 있었습니다.

이함덕 여사 생전 영상
“홍범도 장군이 그렇게 위대한 사람인 걸 우리는 몰랐어요. 그저 빨치산 대장에다 그렇게 고생했다고만 알았지. 그렇게 큰 사람인 걸 몰랐어요. ‘아바이, 총을 잘 쏜다는데 우리한테 좀 보여주시오’ 했더니 5전짜리 있죠? 이만한 거. ‘한 5m 앞에서 5전짜리 올려 뿌려라. 내가 지금 총으로 맞춘다’ 그래서 던지니까 땅!하고 이만한 걸 맞췄어요. (직접 보셨어요?) 그럼.”

김상욱/고려문화원 원장
“이함덕 선생이 홍범도 장군의 이야기를 자주 저한테 해 주셨어요. 왜냐하면 37년 강제이주 당하고 난 뒤에 홍범도 장군이 이 고려극장에서 경비 일을 하셨습니다. 홍범도 장군이 그 당시에 71세였습니다. 대부분의 고려인들은 홍범도 장군, 비록 연세는 드셨지만 그 옛날 봉오동, 청산리 전투에 나섰던 홍범도 장군을 단번에 알아보고 우리와 같이 강제 이주 열차를 타고 여기에 같이 내리셨구나. 그래서 홍범도 장군을 모시고 고려극장으로 오셨다고 하고 또 특히나 이함덕 선생의 남편인 고려극장의 연출가이자 극작가인 태장춘 선생이 홍범도 장군을 또 단번에 알아보시고는 홍범도 장군에게 우리 고려극장의 경비 일을 좀 부탁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그렇게 된 겁니다.”

고려극장은 1968년, 당시 카자흐 공화국의 수도 알마티로 이전하면서 국립극장으로 승격됐지만, 여전히 홍범도가 근무했던 극장으로 각인돼 있습니다.

특히 태장춘 작가의 원작을 각색한 ‘날으는 홍범도 장군’은 지금도 이 극장의 주요 작품으로 꼽힙니다.

최로만/고려극장 배우(홍범도 역)
“한 때 저희 극장에서 일하셨던 홍범도 장군은 전설적인 인물이셨고 일제강점기 항일무장투쟁의 선봉에 서시면서 승리를 거두셨던 분이죠. 저희 극장에 전시되어 있는 군복을 입은 홍범도 장군의 사진은 우리들의 상징이자 한국 독립 투쟁의 상징이에요. 항일투쟁의 의인인 홍범도 장군이 일을 하셨던 극장에서 저희가 일한다는 것은 운 좋은 일이고 저희는 그를 자랑스럽게 여기며, 기리고 있죠. 그래서 홍범도 장군의 사진이 제일 눈에 띄는 곳에 전시되어 있죠.”

니 류보피/고려극장 예술감독
“모든 민족들의 자기 영웅을 갖고 싶고 영웅으로 보는 사람이 꼭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카자흐스탄 러시아에 들어간 소련 고려인들의 영웅은 홍범도이었습니다. 극장이라는 곳은 역사를 세심하게 수집하고 역사를 보여주며 후손들에게 물려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도 우리 민족의 영웅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며 고려인들 중에 바로 홍범도라는 분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홍범도에 대한 연극을 계속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는 카자흐스탄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고려인들에게 영웅입니다. 저희가 우리 아이들에게도 영웅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습니다.”

김 콘스탄틴/고려일보 주필
"비록 추방된 후 그는 여기 고려극장에서 경비로 일하다가 평범한 사람처럼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한국 민족을 일제에 맞서 싸울 수 있도록 키운 핵심 인물 중 한 명입니다. <CG13>우리 고려 사람들은 그를 기억하고 있으면 크즐오르다에는 기념관이 있고 그의 이름을 딴 거리가 있습니다. 젊은이들도 그의 공적을 알고 있습니다."<CG13>

1943년, 홍범도 장군은 이 낯선 땅에 정착한 지 5년 만에, 끝내 조국의 독립을 보지 못한 채 잠들었습니다.


#홍범도 #봉오동전투 #청산리대첩 #카자흐스탄 #알마티 #크즐오르다 #고려인 #자유시참변
#공산당 #레닌 #스탈린 #육군사관학교 #국방부 #이승만 #이승만기념관 #역사전쟁

방송일시: 2023년 12월 5일(화) 22시 KBS1TV/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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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기획 창 '홍범도와 홍범도' 중에서>

연해주 일대를 누비던 독립군 지도자 홍범도 장군도 스탈린의 강제 이주 정책을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강 게오르기/국립 알마티대학교 교수
1937년 모든 고려인들을 카자흐스탄,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강제 이주시켜한다는 발표가 있었을 때 첫 번째로 ‘모든’이라는 단어가 있었고, 극동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고려인 1명도 빠짐없이 해당되어, 임산부, 환자, 고령자 등 모두 (이주 대상) 고려인에 해당되었죠.

1937년 강제 이주 열차에 오른 홍범도 장군은 카자흐스탄 카잘린스크에 잠시 머물다, 1938년 4월 크즐오르다에 정착해 말년을 보냅니다.

‘붉은 땅‘이란 뜻을 가진 크즐오르다는 강수량이 연 300mm 이하로 매우 적은 데다 기온 연교차가 큰 대륙성 기후라 농사를 짓기 어려운 환경입니다.

그럼에도, 강제 이주 열차를 타고 이곳에 정착한 고려인들은 시르다리야 강가에서 벼농사를 짓기 시작했습니다.

2살 때 부모님과 함께 크즐오르다에 왔던 고려인 1세들은 어린 시절 목격한 홍범도 장군의 풍모를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신 벨로리 니콜라이비치/
“그 당시 저는 너무 어렸어요. 어떤 대화가 있었겠어요, 거짓말은 하지 않겠어요. 저희는 어린아이들이 노는 것처럼, 뒤에 있었죠. 하지만, 저희에게 (그는) 큰 장군의 이미지였어요, 빨치산 부대의 사령관이었으니까요.”

“그는, 할아버지였는데, 어린 꼬마와 대화를 나누겠어요? 단지 그냥 (주변에서) 놀았을 뿐이에요. 멀리서 그저 ‘영웅이 지나간다’ 하면서 바라보기만 했죠. 이게 전부에요. 쓸데없이 말하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신경을 크게 쓰지 못했어요. 더구나 그는 당시에 가족이 없고 혼자였기 때문에 힘들고 지저분한 일을 도맡았죠. 이런 상황이었다고 보면 됩니다.”

지금은 시 문화회관이 된 옛 고려극장에서 홍범도 장군은 경비원으로 근무했습니다.

그 배경에는 고려극장 극작가였던 태장춘, 그리고 당대의 스타 배우 이함덕 부부가 있었습니다.

이함덕 여사 생전 영상
“홍범도 장군이 그렇게 위대한 사람인 걸 우리는 몰랐어요. 그저 빨치산 대장에다 그렇게 고생했다고만 알았지. 그렇게 큰 사람인 걸 몰랐어요. ‘아바이, 총을 잘 쏜다는데 우리한테 좀 보여주시오’ 했더니 5전짜리 있죠? 이만한 거. ‘한 5m 앞에서 5전짜리 올려 뿌려라. 내가 지금 총으로 맞춘다’ 그래서 던지니까 땅!하고 이만한 걸 맞췄어요. (직접 보셨어요?) 그럼.”

김상욱/고려문화원 원장
“이함덕 선생이 홍범도 장군의 이야기를 자주 저한테 해 주셨어요. 왜냐하면 37년 강제이주 당하고 난 뒤에 홍범도 장군이 이 고려극장에서 경비 일을 하셨습니다. 홍범도 장군이 그 당시에 71세였습니다. 대부분의 고려인들은 홍범도 장군, 비록 연세는 드셨지만 그 옛날 봉오동, 청산리 전투에 나섰던 홍범도 장군을 단번에 알아보고 우리와 같이 강제 이주 열차를 타고 여기에 같이 내리셨구나. 그래서 홍범도 장군을 모시고 고려극장으로 오셨다고 하고 또 특히나 이함덕 선생의 남편인 고려극장의 연출가이자 극작가인 태장춘 선생이 홍범도 장군을 또 단번에 알아보시고는 홍범도 장군에게 우리 고려극장의 경비 일을 좀 부탁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그렇게 된 겁니다.”

고려극장은 1968년, 당시 카자흐 공화국의 수도 알마티로 이전하면서 국립극장으로 승격됐지만, 여전히 홍범도가 근무했던 극장으로 각인돼 있습니다.

특히 태장춘 작가의 원작을 각색한 ‘날으는 홍범도 장군’은 지금도 이 극장의 주요 작품으로 꼽힙니다.

최로만/고려극장 배우(홍범도 역)
“한 때 저희 극장에서 일하셨던 홍범도 장군은 전설적인 인물이셨고 일제강점기 항일무장투쟁의 선봉에 서시면서 승리를 거두셨던 분이죠. 저희 극장에 전시되어 있는 군복을 입은 홍범도 장군의 사진은 우리들의 상징이자 한국 독립 투쟁의 상징이에요. 항일투쟁의 의인인 홍범도 장군이 일을 하셨던 극장에서 저희가 일한다는 것은 운 좋은 일이고 저희는 그를 자랑스럽게 여기며, 기리고 있죠. 그래서 홍범도 장군의 사진이 제일 눈에 띄는 곳에 전시되어 있죠.”

니 류보피/고려극장 예술감독
“모든 민족들의 자기 영웅을 갖고 싶고 영웅으로 보는 사람이 꼭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카자흐스탄 러시아에 들어간 소련 고려인들의 영웅은 홍범도이었습니다. 극장이라는 곳은 역사를 세심하게 수집하고 역사를 보여주며 후손들에게 물려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도 우리 민족의 영웅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며 고려인들 중에 바로 홍범도라는 분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홍범도에 대한 연극을 계속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는 카자흐스탄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고려인들에게 영웅입니다. 저희가 우리 아이들에게도 영웅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습니다.”

김 콘스탄틴/고려일보 주필
"비록 추방된 후 그는 여기 고려극장에서 경비로 일하다가 평범한 사람처럼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한국 민족을 일제에 맞서 싸울 수 있도록 키운 핵심 인물 중 한 명입니다. <CG13>우리 고려 사람들은 그를 기억하고 있으면 크즐오르다에는 기념관이 있고 그의 이름을 딴 거리가 있습니다. 젊은이들도 그의 공적을 알고 있습니다."<CG13>

1943년, 홍범도 장군은 이 낯선 땅에 정착한 지 5년 만에, 끝내 조국의 독립을 보지 못한 채 잠들었습니다.


#홍범도 #봉오동전투 #청산리대첩 #카자흐스탄 #알마티 #크즐오르다 #고려인 #자유시참변
#공산당 #레닌 #스탈린 #육군사관학교 #국방부 #이승만 #이승만기념관 #역사전쟁

방송일시: 2023년 12월 5일(화) 22시 KBS1TV/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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