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 시대가 길어지면서 다시 은행 예·적금 상품이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런데 차곡차곡 모아온 돈을 찾는 만기 날, 생각보다 적은 이자에 실망한 경험 있으신가요? 시중은행에서 이자를 받으면 이자 소득세와 주민세 등 15.4%가 공제되기 때문입니다. 얼마 되지 않는 이자에도 세금이 붙다니, 아깝다는 생각도 들지만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을 부과'한다는 것은 과세의 기본 원칙이기도 합니다.
■ 금융투자소득세, 시행도 전에 폐지 추진…"국정 과제"·"정책 신뢰 흔들려"
2020년 여야 합의로 마련된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도 그런 원칙에 따라 만들어졌습니다. 금투세는 주식·채권·펀드 등 금융투자로 발생한 양도소득에 부과하는 세금입니다. 하지만 모든 금융소득에 매겨지는 것은 아닙니다. 국내 상장 주식 기준 연간 5,000만 원까지는 수익을 내더라도 비과세입니다. 연 5,000만 원 넘는 차익을 거둔 투자자에게는 수익의 22%(지방세 포함), 3억 원을 넘기면 27.5%를 세금으로 내도록 했습니다.
본래 2023년 1월부터 도입하기로 했지만 2년 미뤄져 2025년 1월부터 시행 예정입니다. 여야는 금투세 시행 시기를 유예하며, 상장주식 양도소득세를 내는 대주주 기준을 10억 원 이상으로 유지하고 증권거래세는 단계적으로 인하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실제 증권거래세는 지난해 0.23%에서 0.20%로 내려갔습니다.
지난 2일 윤석열 대통령은 내년 시행을 앞둔 금투세 폐지를 추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윤 대통령은 2일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증권·파생상품 개장식에 참석해 "구태의연한 부자 감세 논란을 넘어 국민과 투자자, 우리 증시의 장기적 상생을 위해 내년에 도입 예정인 금융투자소득세 폐지를 추진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김병환 기획재정부 1차관은 같은 날 기자들과 만나 금투세 폐지는 "현 정부의 공약과 국정과제"라며 정부 방침을 공식화했습니다. 금투세 폐지 방침이 사전 예고 없이 윤 대통령 언급 직후 발표된 것과 관련해 김 차관은 "사전 협의를 한 내용"이라면서도 "협의 시기를 말씀드리기는 적절치 않다"고 덧붙였습니다.
금투세와 연계된 증권거래세에 대해서도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못했습니다. 기재부는 2020년 '금융세제 선진화' 방안을 발표하며 금융투자 소득을 도입하되, 손실이 발생하더라도 부과되는 증권거래세율은 단계적으로 인하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금투세 관련 논의가 사전에 진행됐다면, 거래세를 이전 수준으로 올리는지, 현행 유지할 것인지 등 방향이 나왔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김 차관은 "검토와 점검이 필요한 주제"라며 "세법 개정 논의 과정에서 어떤 조합이 바람직한 것이냐에 대해 짚어보고 판단해서 결정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김우찬 고려대 경영대학 교수는 이에 대해 "정책의 일관성을 해치는" 것이라며 "자본 이득세를 도입하기 위해 논의해온 결과가 금융투자소득세인데, 이것을 하루아침에 없애자고 하는 것은 정책에 대한 예측 가능성을 없애는 일"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비슷한 상황은 지난해 연말에도 있었습니다. 지난달(2023년 12월) 12일 추경호 전 경제부총리는 임기 마지막으로 연 기자 간담회에서 주식 양도세를 부과하는 대주주 기준 완화에 대해 "구체적으로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습니다.
일주일이 지난 19일 최상목 경제부총리는 당시 후보자 신분으로 참석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대내외 경제 여건을 고려해 종합적으로 결정할 문제"라며 완화에 무게를 실은 발언을 했습니다. 그리고 21일 기획재정부는 양도세 부과 대주주 기준을 기존 10억 원에서 50억 원 이상으로 완화하는 방침을 공식 발표했습니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부 교수는 대주주 기준 완화가 연말마다 반복되는 시장 변동성을 줄여줄 수 있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밝히면서도 "세금은 법적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이 있어야 한다"며 정책이 발표된 시점을 고려할 때 "총선(을 앞두고) 기대심, 이런 것들이 반영된 정무적 판단이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세수 부족한데 또 부자 감세"
금투세 폐지 추진을 밝히면서 윤석열 대통령은 "임기 중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는 자본시장 규제는 과감하게 혁파해 글로벌 증시 수준으로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 현상)'를 해소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김병환 기재부 차관도 "금투세가 도입되면 상당수의 소액투자자가 대상이 될 수 있다"며 "그것 자체가 우리 주식 시장에 불확실성과 마이너스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심화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투자자들은 양도세 부과 대주주 기준 완화에 이어,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추진을 반기는 입장입니다. 세금 부과로 인한 투자자 이탈과 증시 침체를 막을 수 있게 됐다는 것입니다. 정의정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 대표는 "주식 시장은 큰손이 움직인다. 세금은 소수에게 부과되지만 큰 손이 빠져나가면 모든 투자자가 손해를 본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외국인 투자자는 금투세 부과 대상이 아니다. 공정성 차원에서도 지금처럼 거래세를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주식 양도세를 도입했다가 증시가 하락한 대표 사례는 타이완입니다. 타이완은 1989년 상장 주식 양도차익에 대한 최대 50% 세율의 세금을 부과하기로 했다가 한 달만에 주가가 30% 넘게 떨어지는 부작용을 겪고, 1990년 이를 철회한 바 있습니다.
반면 금투세와 '코리아 디스카운트' 문제 간 연관성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자본시장연구원은 지난해 2월 발표한 보고서 '코리아 디스카운트 원인 분석'에서 취약한 기업지배구조, 미흡한 주주환원, 회계 불투명성 등을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요 원인으로 꼽았습니다.
기재부는 2020년 세법개정안 제출 당시 금투세 과세 대상을 15만 명으로 예상했습니다. 전체 투자자의 1% 남짓으로, 대주주 기준 완화에 이은 또 다른 '부자 감세'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참여연대 조세재정개혁센터 김은정 처장은 "세수 부족으로 2024년 예산도 사실상 긴축 예산인데 이보다 덜 걷겠다는 것"이라면서 "개미투자자들을 위한 것처럼 포장하지만 고소득 소수가 과세 대상이란 점에서 부자 감세일 뿐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국회 예산정책처에서 2022년 발표한 '세법개정안 분석' 보고서를 보면 금투세가 기존 여야 합의대로 내년 1월부터 시행될 경우 매년 평균 1조 3,443억 원의 세수가 더 들어올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2025년부터 2027년까지 3년간 추정 세수는 4조 328억 원입니다.
야당도 세수 감소가 우려된다며 금투세 폐지에 반대 입장을 표명했습니다. 이개호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4일 정책조정회의에서 "아직 시행도 안 된 금투세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이 된다고 지적하는 어이없는 상황"이라며 "세수 결손이 심각한 상황에서 부족한 세수를 또 근로자들의 소득으로 메꾸려는 얄팍한 속셈이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습니다.
야당이 반대 입장을 밝힌 상황에서 실제 금투세가 폐지 절차를 밟을 수 있을 지도 불투명합니다. 대주주 기준을 완화하는 것은 소득세법 시행령 개정 사항이지만, 금투세 폐지는 소득세법을 고쳐야 해 야당 동의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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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투세 폐지되면 ‘코리아 디스카운트’ 사라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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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4-01-06 08:01:04
고금리 시대가 길어지면서 다시 은행 예·적금 상품이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런데 차곡차곡 모아온 돈을 찾는 만기 날, 생각보다 적은 이자에 실망한 경험 있으신가요? 시중은행에서 이자를 받으면 이자 소득세와 주민세 등 15.4%가 공제되기 때문입니다. 얼마 되지 않는 이자에도 세금이 붙다니, 아깝다는 생각도 들지만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을 부과'한다는 것은 과세의 기본 원칙이기도 합니다.
■ 금융투자소득세, 시행도 전에 폐지 추진…"국정 과제"·"정책 신뢰 흔들려"
2020년 여야 합의로 마련된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도 그런 원칙에 따라 만들어졌습니다. 금투세는 주식·채권·펀드 등 금융투자로 발생한 양도소득에 부과하는 세금입니다. 하지만 모든 금융소득에 매겨지는 것은 아닙니다. 국내 상장 주식 기준 연간 5,000만 원까지는 수익을 내더라도 비과세입니다. 연 5,000만 원 넘는 차익을 거둔 투자자에게는 수익의 22%(지방세 포함), 3억 원을 넘기면 27.5%를 세금으로 내도록 했습니다.
본래 2023년 1월부터 도입하기로 했지만 2년 미뤄져 2025년 1월부터 시행 예정입니다. 여야는 금투세 시행 시기를 유예하며, 상장주식 양도소득세를 내는 대주주 기준을 10억 원 이상으로 유지하고 증권거래세는 단계적으로 인하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실제 증권거래세는 지난해 0.23%에서 0.20%로 내려갔습니다.
지난 2일 윤석열 대통령은 내년 시행을 앞둔 금투세 폐지를 추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윤 대통령은 2일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증권·파생상품 개장식에 참석해 "구태의연한 부자 감세 논란을 넘어 국민과 투자자, 우리 증시의 장기적 상생을 위해 내년에 도입 예정인 금융투자소득세 폐지를 추진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김병환 기획재정부 1차관은 같은 날 기자들과 만나 금투세 폐지는 "현 정부의 공약과 국정과제"라며 정부 방침을 공식화했습니다. 금투세 폐지 방침이 사전 예고 없이 윤 대통령 언급 직후 발표된 것과 관련해 김 차관은 "사전 협의를 한 내용"이라면서도 "협의 시기를 말씀드리기는 적절치 않다"고 덧붙였습니다.
금투세와 연계된 증권거래세에 대해서도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못했습니다. 기재부는 2020년 '금융세제 선진화' 방안을 발표하며 금융투자 소득을 도입하되, 손실이 발생하더라도 부과되는 증권거래세율은 단계적으로 인하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금투세 관련 논의가 사전에 진행됐다면, 거래세를 이전 수준으로 올리는지, 현행 유지할 것인지 등 방향이 나왔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김 차관은 "검토와 점검이 필요한 주제"라며 "세법 개정 논의 과정에서 어떤 조합이 바람직한 것이냐에 대해 짚어보고 판단해서 결정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김우찬 고려대 경영대학 교수는 이에 대해 "정책의 일관성을 해치는" 것이라며 "자본 이득세를 도입하기 위해 논의해온 결과가 금융투자소득세인데, 이것을 하루아침에 없애자고 하는 것은 정책에 대한 예측 가능성을 없애는 일"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비슷한 상황은 지난해 연말에도 있었습니다. 지난달(2023년 12월) 12일 추경호 전 경제부총리는 임기 마지막으로 연 기자 간담회에서 주식 양도세를 부과하는 대주주 기준 완화에 대해 "구체적으로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습니다.
일주일이 지난 19일 최상목 경제부총리는 당시 후보자 신분으로 참석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대내외 경제 여건을 고려해 종합적으로 결정할 문제"라며 완화에 무게를 실은 발언을 했습니다. 그리고 21일 기획재정부는 양도세 부과 대주주 기준을 기존 10억 원에서 50억 원 이상으로 완화하는 방침을 공식 발표했습니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부 교수는 대주주 기준 완화가 연말마다 반복되는 시장 변동성을 줄여줄 수 있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밝히면서도 "세금은 법적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이 있어야 한다"며 정책이 발표된 시점을 고려할 때 "총선(을 앞두고) 기대심, 이런 것들이 반영된 정무적 판단이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세수 부족한데 또 부자 감세"
금투세 폐지 추진을 밝히면서 윤석열 대통령은 "임기 중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는 자본시장 규제는 과감하게 혁파해 글로벌 증시 수준으로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 현상)'를 해소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김병환 기재부 차관도 "금투세가 도입되면 상당수의 소액투자자가 대상이 될 수 있다"며 "그것 자체가 우리 주식 시장에 불확실성과 마이너스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심화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투자자들은 양도세 부과 대주주 기준 완화에 이어,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추진을 반기는 입장입니다. 세금 부과로 인한 투자자 이탈과 증시 침체를 막을 수 있게 됐다는 것입니다. 정의정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 대표는 "주식 시장은 큰손이 움직인다. 세금은 소수에게 부과되지만 큰 손이 빠져나가면 모든 투자자가 손해를 본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외국인 투자자는 금투세 부과 대상이 아니다. 공정성 차원에서도 지금처럼 거래세를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주식 양도세를 도입했다가 증시가 하락한 대표 사례는 타이완입니다. 타이완은 1989년 상장 주식 양도차익에 대한 최대 50% 세율의 세금을 부과하기로 했다가 한 달만에 주가가 30% 넘게 떨어지는 부작용을 겪고, 1990년 이를 철회한 바 있습니다.
반면 금투세와 '코리아 디스카운트' 문제 간 연관성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자본시장연구원은 지난해 2월 발표한 보고서 '코리아 디스카운트 원인 분석'에서 취약한 기업지배구조, 미흡한 주주환원, 회계 불투명성 등을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요 원인으로 꼽았습니다.
기재부는 2020년 세법개정안 제출 당시 금투세 과세 대상을 15만 명으로 예상했습니다. 전체 투자자의 1% 남짓으로, 대주주 기준 완화에 이은 또 다른 '부자 감세'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참여연대 조세재정개혁센터 김은정 처장은 "세수 부족으로 2024년 예산도 사실상 긴축 예산인데 이보다 덜 걷겠다는 것"이라면서 "개미투자자들을 위한 것처럼 포장하지만 고소득 소수가 과세 대상이란 점에서 부자 감세일 뿐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국회 예산정책처에서 2022년 발표한 '세법개정안 분석' 보고서를 보면 금투세가 기존 여야 합의대로 내년 1월부터 시행될 경우 매년 평균 1조 3,443억 원의 세수가 더 들어올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2025년부터 2027년까지 3년간 추정 세수는 4조 328억 원입니다.
야당도 세수 감소가 우려된다며 금투세 폐지에 반대 입장을 표명했습니다. 이개호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4일 정책조정회의에서 "아직 시행도 안 된 금투세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이 된다고 지적하는 어이없는 상황"이라며 "세수 결손이 심각한 상황에서 부족한 세수를 또 근로자들의 소득으로 메꾸려는 얄팍한 속셈이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습니다.
야당이 반대 입장을 밝힌 상황에서 실제 금투세가 폐지 절차를 밟을 수 있을 지도 불투명합니다. 대주주 기준을 완화하는 것은 소득세법 시행령 개정 사항이지만, 금투세 폐지는 소득세법을 고쳐야 해 야당 동의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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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아름 기자 areum@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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