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울음’ 신고에 출동했다가 ‘등하원 도우미’ 된 경찰관 사연 [주말엔]

입력 2024.01.07 (10:06) 수정 2024.01.07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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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방임은 ‘소리 없는 학대(silent abuse)’라고 불립니다.

지난해 2월 인천의 한 가정집에서 사흘간 방치된 20개월 아기가 사망한 사건, 4월 충남 아산에서 지적장애를 앓는 6세 아이가 홀로 숨진 채 발견된 사건 등이 아동 유기·방임이 사망까지 이르게 한 일들입니다.

또 지난해 감사원의 ‘출생 후 미신고 아동’ 전수조사 결과 부모의 방임으로 인한 아동 사망 사례를 여럿 확인할 수 있었는데요, 최근 KBS에 특별한 사연이 제보로 들어왔습니다.

■ 미숙아 ‘우성이’…엄마는 경계성 지능 장애

지난해 2월 미숙아로 태어난 우성이(가명), 병원 인큐베이터에 한 달간 있다 엄마가 사는 원룸으로 왔습니다.

하지만 엄마가 경계성 지능 장애가 있어, 우성이는 보살핌을 제대로 받지 못했습니다.

미숙아에게 필요한 집중 진료도 받을 수 없었습니다.

미숙아로 태어난 우성이(가명)미숙아로 태어난 우성이(가명)

우성이가 얼마나 울었는지, 주민들이 반복적으로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112에 신고가 반복해서 들어왔어요. 새벽인데 아이가 우는 것 같다. 고양이가 우는 것 같이 너무 시끄럽다. 경찰관들이 (우성이 집에) 가면 (우성이 엄마가) 죄송하다고 하니까 현장 철수를 하게 되고 이게 반복됐던 거죠.”

- 이상민 경산경찰서 생활질서계장

이상민 경산경찰서 생활질서계장이상민 경산경찰서 생활질서계장

■ 생후 90일 만에 구조된 우성이

경산경찰서 이상민 생활질서계장은 계속되는 신고에 그동안 접수됐던 내용들을 다시 확인해봤습니다.

이대로면 우성이가 ‘큰 일’날 수 있겠다는 느낌에 이 계장은 엄마의 병원 진단부터 받게 했습니다.

병원에선 엄마가 우성이를 키우기 힘들다는 소견을 냈습니다.

이에 지자체는 부모의 동의를 얻어 경북 칠곡군의 위탁가정에 맡겼지만 “우성이를 돌려달라”는 엄마의 요청에 한 달만에 돌아왔습니다.

문제는 집으로 온지 3일째 되는 날이었습니다.

또 112에 신고가 들어온 겁니다.

우성이 구조 당시 긴급 출동한 이상민 계장과 소방대원우성이 구조 당시 긴급 출동한 이상민 계장과 소방대원

“가보니까 4월인데 (엄마가) 에어컨을 틀어놓고 신경안정제를 복용한 채 주무셔서 갓난아이가 우는 거에 전혀 반응을 못 하시는 거예요. (아기는) 저체온증도 와있는 상태고 너무 울어서 목이 막 쉬어있는 상태였어요.”

“소방 공동 대응을 요청해서 문 개방하고 우성이를 구조했죠.”

- 이상민 경산경찰서 생활질서계장

우성이 구조 당시 집안 상황우성이 구조 당시 집안 상황

우성이는 다시 경산경찰서와 가까운 그룹홈(아동공동생활가정)과 어린이집에 맡겨졌습니다.

지원이 필요할 때 이 계장과 생활질서계 직원들이 빠르게 대처하기 위해섭니다.

구조 직후 우성이 모습구조 직후 우성이 모습

이에 더해 이 계장은 우성이의 ‘주양육자’를 자처했습니다.

우성이가 매우 어린 데다 분리불안 증세가 있는 탓에 떼놓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왜 적극적으로 우성이를 돌보게 됐냐는 물음에 이 계장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우성이를 구조해 안고 나올 때 우성이 눈을 봤어요. 갓난쟁이도 살고 싶잖아요. 그러니까 막 우는 거예요.”

“그 정말 작은 손으로 제 양쪽(옷깃)을 잡고 안 놓는데 제가 우리 아이 키울 때도 안 울었거든요. 그런데 걔 때문에 제가 울었잖아요.”

우성이 등하원 품앗이를 하는 이상민 계장과 생활질서계 직원우성이 등하원 품앗이를 하는 이상민 계장과 생활질서계 직원

■ “천심 아니면 못할 일”

이 계장은 마침 집 방향이 비슷한 팀원들과 매일같이 우성이 ‘등하원 품앗이’를 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7월 우성이가 입원했을 때는 잠을 못 자는 우성이를 12시간 동안 직접 업어서 재우는 등 ‘주양육자’의 역할은 밤낮이 따로 없습니다.

연휴나 주말같이 그룹홈과 어린이집의 ‘공백기’엔 우성이를 집으로 데려가 보살핍니다.

“보호자보다 더 빨리 뭐든지 다 하셨던 것 같아요. 어제 없었던 상처가 있거나 또 연락드리면 10개를 여쭤봐도 10개를 다 알고 계셔요.”

“우성이가 감기 기운이 살짝 있었어요. 약간 잔기침하면서 콧물이 살짝 났는데 콧물 빼는 걸 썼더니 생각만큼 시원하게 빠진다는 느낌이 없으셨나 봐요. 그래서 그걸 사용 안 하고 직접 입으로 코를 빨아내셨다고 하더라고요. 이건 부모도 하기 힘들거든요.”

- 김화영 어린이집 원감

KBS에 이상민 계장 사례를 제보한 사람은 인근 식당 주인 김경주 씨입니다.

김 씨는 아빠도, 할아버지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중년 남성들이 아이를 안고 나오는 모습에 “처음엔 나쁜 사람들이 아닌가 생각했다”고 합니다.

“아침 저녁으로 매일 출퇴근(등하원)을 해주는 거 보고 우와 이거는 진짜 천심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구나.”

- 제보자 김경주 씨

■ ‘원팀’으로 아동방임 예방해야

발견 당시 체중이 2kg이 되지 않던 우성이는 이제 10kg이 넘습니다.

입원했던 우성이 어머니도 차츰 건강을 회복했습니다. 매일 어린이집과 이 계장이 보내준 사진과 영상을 확인하기도 합니다.


“경찰이 왜 이런 일을 하냐는 질문에 저는 경찰이니까 이런 일을 할 수 있다고 답변드리고 싶어요. 관공서가 쉬는 야간에도 주말에도 위험할 수 있는데 24시간 근무하는 국가기관은 경찰서가 대표적이잖아요.”

위험한 사안에 먼저 관심 갖고 예방하는 게 최선의 치안 서비스라는 생각을 하고 있거든요. 우성이 사례도 만약 저희들이 적극적으로 케어하지 않았으면 분명히 어떤 사건이 발생했을 거라고 저는 봐요.”

이 계장은 무엇보다 공무원 조직들이 ‘원팀’이 돼 사회적 약자를 돌보는 데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국가기관들이 자꾸 ‘니 일, 내 일’을 따지기 시작하고 경계선을 놓고 보면 ‘딜레마 존’이 생깁니다. 아동, 노인 등 취약계층의 업무는 더욱 세밀하게 챙겨야 하는데 지자체, 소방, 경찰, 의료기관 등이 ‘원팀’으로 움직여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메워가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고 봅니다.”

■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

이상민 계장이 만든 ‘우성이 돕는 분들’ 목록이상민 계장이 만든 ‘우성이 돕는 분들’ 목록

이 계장은 우성이를 지금까지 돌볼 수 있었던 것은 주변 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합니다.

생활질서계 동료, 그룹홈 이모님과 어린이집 선생님, 우성이가 아플 때마다 진료해주시는 병원이 대표적입니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아프리카 속담처럼 꼭 이분들도 기록해 달라고 당부했습니다.

이상민 계장과 우성이이상민 계장과 우성이

기자: “우성이에게 계장님은 어떤 사람이었으면 좋겠습니까?”

이상민 계장: “정말 나를 사랑해 주는 멋진 경찰 할아버지가 있었다. 그리고 나중에 우성이가 말을 배우고 말을 시작할 때 할아버지 사랑해요 이런 이야기를 한마디 정도는 해줄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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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기 울음’ 신고에 출동했다가 ‘등하원 도우미’ 된 경찰관 사연 [주말엔]
    • 입력 2024-01-07 10:06:18
    • 수정2024-01-07 10:11:53
    주말엔

아동방임은 ‘소리 없는 학대(silent abuse)’라고 불립니다.

지난해 2월 인천의 한 가정집에서 사흘간 방치된 20개월 아기가 사망한 사건, 4월 충남 아산에서 지적장애를 앓는 6세 아이가 홀로 숨진 채 발견된 사건 등이 아동 유기·방임이 사망까지 이르게 한 일들입니다.

또 지난해 감사원의 ‘출생 후 미신고 아동’ 전수조사 결과 부모의 방임으로 인한 아동 사망 사례를 여럿 확인할 수 있었는데요, 최근 KBS에 특별한 사연이 제보로 들어왔습니다.

■ 미숙아 ‘우성이’…엄마는 경계성 지능 장애

지난해 2월 미숙아로 태어난 우성이(가명), 병원 인큐베이터에 한 달간 있다 엄마가 사는 원룸으로 왔습니다.

하지만 엄마가 경계성 지능 장애가 있어, 우성이는 보살핌을 제대로 받지 못했습니다.

미숙아에게 필요한 집중 진료도 받을 수 없었습니다.

미숙아로 태어난 우성이(가명)
우성이가 얼마나 울었는지, 주민들이 반복적으로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112에 신고가 반복해서 들어왔어요. 새벽인데 아이가 우는 것 같다. 고양이가 우는 것 같이 너무 시끄럽다. 경찰관들이 (우성이 집에) 가면 (우성이 엄마가) 죄송하다고 하니까 현장 철수를 하게 되고 이게 반복됐던 거죠.”

- 이상민 경산경찰서 생활질서계장

이상민 경산경찰서 생활질서계장
■ 생후 90일 만에 구조된 우성이

경산경찰서 이상민 생활질서계장은 계속되는 신고에 그동안 접수됐던 내용들을 다시 확인해봤습니다.

이대로면 우성이가 ‘큰 일’날 수 있겠다는 느낌에 이 계장은 엄마의 병원 진단부터 받게 했습니다.

병원에선 엄마가 우성이를 키우기 힘들다는 소견을 냈습니다.

이에 지자체는 부모의 동의를 얻어 경북 칠곡군의 위탁가정에 맡겼지만 “우성이를 돌려달라”는 엄마의 요청에 한 달만에 돌아왔습니다.

문제는 집으로 온지 3일째 되는 날이었습니다.

또 112에 신고가 들어온 겁니다.

우성이 구조 당시 긴급 출동한 이상민 계장과 소방대원
“가보니까 4월인데 (엄마가) 에어컨을 틀어놓고 신경안정제를 복용한 채 주무셔서 갓난아이가 우는 거에 전혀 반응을 못 하시는 거예요. (아기는) 저체온증도 와있는 상태고 너무 울어서 목이 막 쉬어있는 상태였어요.”

“소방 공동 대응을 요청해서 문 개방하고 우성이를 구조했죠.”

- 이상민 경산경찰서 생활질서계장

우성이 구조 당시 집안 상황
우성이는 다시 경산경찰서와 가까운 그룹홈(아동공동생활가정)과 어린이집에 맡겨졌습니다.

지원이 필요할 때 이 계장과 생활질서계 직원들이 빠르게 대처하기 위해섭니다.

구조 직후 우성이 모습
이에 더해 이 계장은 우성이의 ‘주양육자’를 자처했습니다.

우성이가 매우 어린 데다 분리불안 증세가 있는 탓에 떼놓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왜 적극적으로 우성이를 돌보게 됐냐는 물음에 이 계장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우성이를 구조해 안고 나올 때 우성이 눈을 봤어요. 갓난쟁이도 살고 싶잖아요. 그러니까 막 우는 거예요.”

“그 정말 작은 손으로 제 양쪽(옷깃)을 잡고 안 놓는데 제가 우리 아이 키울 때도 안 울었거든요. 그런데 걔 때문에 제가 울었잖아요.”

우성이 등하원 품앗이를 하는 이상민 계장과 생활질서계 직원
■ “천심 아니면 못할 일”

이 계장은 마침 집 방향이 비슷한 팀원들과 매일같이 우성이 ‘등하원 품앗이’를 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7월 우성이가 입원했을 때는 잠을 못 자는 우성이를 12시간 동안 직접 업어서 재우는 등 ‘주양육자’의 역할은 밤낮이 따로 없습니다.

연휴나 주말같이 그룹홈과 어린이집의 ‘공백기’엔 우성이를 집으로 데려가 보살핍니다.

“보호자보다 더 빨리 뭐든지 다 하셨던 것 같아요. 어제 없었던 상처가 있거나 또 연락드리면 10개를 여쭤봐도 10개를 다 알고 계셔요.”

“우성이가 감기 기운이 살짝 있었어요. 약간 잔기침하면서 콧물이 살짝 났는데 콧물 빼는 걸 썼더니 생각만큼 시원하게 빠진다는 느낌이 없으셨나 봐요. 그래서 그걸 사용 안 하고 직접 입으로 코를 빨아내셨다고 하더라고요. 이건 부모도 하기 힘들거든요.”

- 김화영 어린이집 원감

KBS에 이상민 계장 사례를 제보한 사람은 인근 식당 주인 김경주 씨입니다.

김 씨는 아빠도, 할아버지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중년 남성들이 아이를 안고 나오는 모습에 “처음엔 나쁜 사람들이 아닌가 생각했다”고 합니다.

“아침 저녁으로 매일 출퇴근(등하원)을 해주는 거 보고 우와 이거는 진짜 천심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구나.”

- 제보자 김경주 씨

■ ‘원팀’으로 아동방임 예방해야

발견 당시 체중이 2kg이 되지 않던 우성이는 이제 10kg이 넘습니다.

입원했던 우성이 어머니도 차츰 건강을 회복했습니다. 매일 어린이집과 이 계장이 보내준 사진과 영상을 확인하기도 합니다.


“경찰이 왜 이런 일을 하냐는 질문에 저는 경찰이니까 이런 일을 할 수 있다고 답변드리고 싶어요. 관공서가 쉬는 야간에도 주말에도 위험할 수 있는데 24시간 근무하는 국가기관은 경찰서가 대표적이잖아요.”

위험한 사안에 먼저 관심 갖고 예방하는 게 최선의 치안 서비스라는 생각을 하고 있거든요. 우성이 사례도 만약 저희들이 적극적으로 케어하지 않았으면 분명히 어떤 사건이 발생했을 거라고 저는 봐요.”

이 계장은 무엇보다 공무원 조직들이 ‘원팀’이 돼 사회적 약자를 돌보는 데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국가기관들이 자꾸 ‘니 일, 내 일’을 따지기 시작하고 경계선을 놓고 보면 ‘딜레마 존’이 생깁니다. 아동, 노인 등 취약계층의 업무는 더욱 세밀하게 챙겨야 하는데 지자체, 소방, 경찰, 의료기관 등이 ‘원팀’으로 움직여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메워가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고 봅니다.”

■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

이상민 계장이 만든 ‘우성이 돕는 분들’ 목록
이 계장은 우성이를 지금까지 돌볼 수 있었던 것은 주변 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합니다.

생활질서계 동료, 그룹홈 이모님과 어린이집 선생님, 우성이가 아플 때마다 진료해주시는 병원이 대표적입니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아프리카 속담처럼 꼭 이분들도 기록해 달라고 당부했습니다.

이상민 계장과 우성이
기자: “우성이에게 계장님은 어떤 사람이었으면 좋겠습니까?”

이상민 계장: “정말 나를 사랑해 주는 멋진 경찰 할아버지가 있었다. 그리고 나중에 우성이가 말을 배우고 말을 시작할 때 할아버지 사랑해요 이런 이야기를 한마디 정도는 해줄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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