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발 사고로 숨진 13살 소년, ‘4·3 이후 희생자’ 최초 인정

입력 2024.01.16 (14:00) 수정 2024.01.16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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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제주4·3'은 4·3특별법에 따르면 1947년 3월부터 1954년 9월 한라산 금족령이 해제된 날까지 7년 7개월 동안 수많은 제주도민이 희생당한 비극의 역사입니다.
이로부터 2년 뒤 폭발물 피해로 숨진 어린이 2명이 최근 '4·3 희생자'로 인정됐습니다. 법에 명시된 4·3 기간을 지나 숨진 피해자가 희생자로 인정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제주도 서귀포시 남원읍에 사는 80살 김기만 할아버지.제주도 서귀포시 남원읍에 사는 80살 김기만 할아버지.

■ 4·3 때 묻은 수류탄 밟고 숨진 형과 조카, 68년 만에 4.3 희생자로

올해로 여든 살이 된 김기만 할아버지. 제주도 서귀포시 남원읍 하레리에서 평생을 살아 온 김 할아버지에게 최근 '희소식'이 전해졌습니다.

1956년 5월, 폭발물 사고로 숨진 둘째 형 김동만 씨(당시 13살)와 조카 김창수 씨(당시 10살)가 '4·3 희생자'로 인정됐다는 겁니다.

당시 김 할아버지와 함께 제주도 서귀포시 남원읍 하례리에 살던 두 어린이는 심부름으로 밭에 가던 길에 수류탄을 밟아 목숨을 잃었습니다. 주변은 피바다가 됐고, 시신 수습조차 어려웠습니다.

김 할아버지는 "형이 그렇게 된 모습을 봤을 때 아무리 어렸지만 형편없는 모습이 이루 말로 할 수가 없었다"며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너무 아프다"고 눈시울을 적셨습니다.

1956년 수류탄을 밟고 숨진 김동만(당시 13살)·김창수(당시 10살) 씨의 유족들이 사고 현장에서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는 모습1956년 수류탄을 밟고 숨진 김동만(당시 13살)·김창수(당시 10살) 씨의 유족들이 사고 현장에서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는 모습

날벼락 같던 죽음을 가슴에 묻고 살던 김 할아버지 가족은 "수류탄이 있던 지점이 4·3 당시 무장대와 군인, 경찰이 드나든 곳이었다"는 점 등을 근거로 3년 전 고인을 4·3 희생자로 지정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2022년 7월, 4·3 중앙위원회는 고인들의 사고가 특별법에 명시된 4·3 기간(1947년 3월~ 1954년 9월)이 지난 1956년 5월 발생했다며 심사를 보류했습니다.

당시 회의에서 한 중앙위원은 "4·3 당시 설치된 폭발물에 의해 사망한 사례이기 때문에 4·3 희생자로 분류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기간 외 벌어진 사건이기 때문에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습니다.

결국, 심사는 보류됐고 제주도는 절차에 따라 재조사를 벌였습니다. 제주도는 현장 조사와 자료 조사 등을 거쳐 지난해 4·3 실무위원회에 다시 안건을 상정했습니다.


■ 재조사 후 달라진 결정…"군부대 주둔·마을 보증인까지"

그 결과, 앞서 희생자로 인정하지 않았던 4·3 실무위원회는 재조사 내용을 토대로 결정을 번복했습니다. 심사를 보류했던 4·3 중앙위원회 역시 최근 두 고인을 4·3 희생자로 인정했습니다.

행정안전부 4·3사건 처리과 관계자는 "당시 해당 마을에 군부대 설치 여부를 따져볼 때 4·3 피해가 아니라고 할 수 없다고 봤다"며 "마을 보증인들의 진술을 토대로 인정 결정을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심사 보류 이후 다시 이뤄진 제주도의 조사가 큰 힘이 된 겁니다.

김종민 4·3중앙위원회 위원.김종민 4·3중앙위원회 위원.

김종민 4·3 중앙위원회 위원은 KBS와 통화에서 "4·3 기간이 지나 벌어졌단 이유로 '불인정' 의견으로 올라왔지만, 4·3사건이 아니었다면 거기에 왜 수류탄이 있어야 했는지 인과관계를 따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며 심사를 보류할 수밖에 없던 이유를 말했습니다.

김 위원은 이어 "불쌍하게 숨진 이 어린아이들의 영혼조차 달래주지 못한다면 우리 위원회의 존재 이유가 무엇인가 생각했다"며 "주민들의 생생한 증언과 당시 군이 그곳에 주둔했었다는 점을 참작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동안 불인정 된 사례들이 여럿 있는데 차후 희생자 심사 기준을 바꿔서라도 희생자들이 더 많이 인정될 수 있도록 해야 마땅하다"고 덧붙였습니다.

4·3 희생자로 결정된 김동만(당시 13살)·김창수(당시 10살) 씨의 유족들이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4·3 희생자로 결정된 김동만(당시 13살)·김창수(당시 10살) 씨의 유족들이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68년 만에 형을 4·3평화공원에 모실 수 있게 된 김 할아버지는 "이제야 불쌍한 형님의 영혼을 달래드릴 수 있을 것 같다"면서 "꿈에서도 만나 얘기했지만, 너무 늦어 형님께 죄송하다"고 눈물을 쏟아냈습니다.

4·3 특별법에 명시된 4·3 기간을 지나 숨진 피해자를 희생자로 인정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이번 사례를 계기로 정부가 4·3 기간이 지나도 끝나지 않던 비극 속에서 숨죽여 울어야 했던 다른 유족들의 마음을 또다시 어루만져줄 수 있을지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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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희생자 심사 보류 1년…손놓은 제주도? (2023.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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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8666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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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폭발 사고로 숨진 13살 소년, ‘4·3 이후 희생자’ 최초 인정
    • 입력 2024-01-16 14:00:14
    • 수정2024-01-16 14: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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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제주4·3'은 4·3특별법에 따르면 1947년 3월부터 1954년 9월 한라산 금족령이 해제된 날까지 7년 7개월 동안 수많은 제주도민이 희생당한 비극의 역사입니다.<br />이로부터 2년 뒤 폭발물 피해로 숨진 어린이 2명이 최근 '4·3 희생자'로 인정됐습니다. 법에 명시된 4·3 기간을 지나 숨진 피해자가 희생자로 인정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strong><br />
제주도 서귀포시 남원읍에 사는 80살 김기만 할아버지.
■ 4·3 때 묻은 수류탄 밟고 숨진 형과 조카, 68년 만에 4.3 희생자로

올해로 여든 살이 된 김기만 할아버지. 제주도 서귀포시 남원읍 하레리에서 평생을 살아 온 김 할아버지에게 최근 '희소식'이 전해졌습니다.

1956년 5월, 폭발물 사고로 숨진 둘째 형 김동만 씨(당시 13살)와 조카 김창수 씨(당시 10살)가 '4·3 희생자'로 인정됐다는 겁니다.

당시 김 할아버지와 함께 제주도 서귀포시 남원읍 하례리에 살던 두 어린이는 심부름으로 밭에 가던 길에 수류탄을 밟아 목숨을 잃었습니다. 주변은 피바다가 됐고, 시신 수습조차 어려웠습니다.

김 할아버지는 "형이 그렇게 된 모습을 봤을 때 아무리 어렸지만 형편없는 모습이 이루 말로 할 수가 없었다"며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너무 아프다"고 눈시울을 적셨습니다.

1956년 수류탄을 밟고 숨진 김동만(당시 13살)·김창수(당시 10살) 씨의 유족들이 사고 현장에서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는 모습
날벼락 같던 죽음을 가슴에 묻고 살던 김 할아버지 가족은 "수류탄이 있던 지점이 4·3 당시 무장대와 군인, 경찰이 드나든 곳이었다"는 점 등을 근거로 3년 전 고인을 4·3 희생자로 지정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2022년 7월, 4·3 중앙위원회는 고인들의 사고가 특별법에 명시된 4·3 기간(1947년 3월~ 1954년 9월)이 지난 1956년 5월 발생했다며 심사를 보류했습니다.

당시 회의에서 한 중앙위원은 "4·3 당시 설치된 폭발물에 의해 사망한 사례이기 때문에 4·3 희생자로 분류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기간 외 벌어진 사건이기 때문에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습니다.

결국, 심사는 보류됐고 제주도는 절차에 따라 재조사를 벌였습니다. 제주도는 현장 조사와 자료 조사 등을 거쳐 지난해 4·3 실무위원회에 다시 안건을 상정했습니다.


■ 재조사 후 달라진 결정…"군부대 주둔·마을 보증인까지"

그 결과, 앞서 희생자로 인정하지 않았던 4·3 실무위원회는 재조사 내용을 토대로 결정을 번복했습니다. 심사를 보류했던 4·3 중앙위원회 역시 최근 두 고인을 4·3 희생자로 인정했습니다.

행정안전부 4·3사건 처리과 관계자는 "당시 해당 마을에 군부대 설치 여부를 따져볼 때 4·3 피해가 아니라고 할 수 없다고 봤다"며 "마을 보증인들의 진술을 토대로 인정 결정을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심사 보류 이후 다시 이뤄진 제주도의 조사가 큰 힘이 된 겁니다.

김종민 4·3중앙위원회 위원.
김종민 4·3 중앙위원회 위원은 KBS와 통화에서 "4·3 기간이 지나 벌어졌단 이유로 '불인정' 의견으로 올라왔지만, 4·3사건이 아니었다면 거기에 왜 수류탄이 있어야 했는지 인과관계를 따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며 심사를 보류할 수밖에 없던 이유를 말했습니다.

김 위원은 이어 "불쌍하게 숨진 이 어린아이들의 영혼조차 달래주지 못한다면 우리 위원회의 존재 이유가 무엇인가 생각했다"며 "주민들의 생생한 증언과 당시 군이 그곳에 주둔했었다는 점을 참작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동안 불인정 된 사례들이 여럿 있는데 차후 희생자 심사 기준을 바꿔서라도 희생자들이 더 많이 인정될 수 있도록 해야 마땅하다"고 덧붙였습니다.

4·3 희생자로 결정된 김동만(당시 13살)·김창수(당시 10살) 씨의 유족들이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68년 만에 형을 4·3평화공원에 모실 수 있게 된 김 할아버지는 "이제야 불쌍한 형님의 영혼을 달래드릴 수 있을 것 같다"면서 "꿈에서도 만나 얘기했지만, 너무 늦어 형님께 죄송하다"고 눈물을 쏟아냈습니다.

4·3 특별법에 명시된 4·3 기간을 지나 숨진 피해자를 희생자로 인정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이번 사례를 계기로 정부가 4·3 기간이 지나도 끝나지 않던 비극 속에서 숨죽여 울어야 했던 다른 유족들의 마음을 또다시 어루만져줄 수 있을지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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