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근밭 망치는 큰고니 떼 먹성에 타들어 가는 농심

입력 2024.01.18 (16:12) 수정 2024.01.18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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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니를 아냐고요? 내가 제일 골치가 아프다는데, 대체 왜들 그런 걸까요?"

한겨울 농촌 마을을 찾은 새들이 화려한 군무를 펼칩니다. 눈처럼 새하얀 몸통의 자태에, 검정·노랑이 뒤섞인 뾰족한 부리가 매력적인 새! 흔히 백조로 알려진 겨울 철새, 큰고니입니다.

언뜻 평화로워 보이는 이 풍경에는 웃지도 울지도 못할 사연 하나가 숨겨져 있습니다. 큰고니떼가 있는 곳이 연근밭이라는 사실에서 이야기가 시작합니다.

전라북도 김제시의 한 농촌 마을에 큰고니가 나타난 건 보름 전쯤입니다. 이곳에서 연근 농사를 짓고 있는 한 농민은 오랜만에 논을 찾았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웬 거대한 새들이(큰고니는 날개를 쫙 펼치면 그 크기가 2m를 넘기도 합니다) 연근을 심어 놓은 논에 자리를 잡고 연근을 모조리 먹어치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새들은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대나무 막대기를 휘둘러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유유자적하며 여유로웠습니다.

이 농민은 한숨을 푹 내쉬면서 말했습니다. "이 논이 3천 평이에요. 5년 전부터 연근 농사를 시작했는데 작년이랑 재작년에는 청둥오리떼가 연근을 다 먹어치워서 하나도 수확을 못 했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큰고니가 날아와서 연근을 먹어버리네요."

이어 "이 논에 있는 걸 수확하면 1.5kg짜리 상자 100개만큼 연근이 나오고 매출은 4천만 원 정도 될 거예요."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김제시 공덕면의 한 무논에 큰고니떼가 모여있는 모습. (사진제공 : 시청자 권병선)김제시 공덕면의 한 무논에 큰고니떼가 모여있는 모습. (사진제공 : 시청자 권병선)

큰고니를 그냥 내쫓거나 잡을 수는 없냐고요?

절대 쉽지 않습니다.

큰고니는 국가에서 지정한 멸종위기야생동물이자 천연기념물입니다. 국가적색목록 등급으로 보면 '취약'한 생물입니다.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멸종위기 야생생물을 포획하거나 채취, 훼손, 가공하는 등의 행위가 금지돼 있습니다. 결국 농민 입장에서는 농작물을 먹어치우는 큰고니를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그나마 환경부의 '야생동물피해예방사업'이나 '생태계 서비스 지불제 계약'을 통해 일부 지원을 받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피해가 발생한 김제시를 기준으로 하면, 야생동물피해예방사업의 경우 그물 등 피해예방시설 설치를 위해 들어간 금액의 60%를 최대 4백만 원 수준에서 지원받는 정도입니다. 생태계 서비스 지불제 계약 역시 피해 소득의 최대 25%까지만을 보전할 뿐입니다.

전문가들은 새만금 갯벌 매립 등으로 큰고니의 기존 서식지가 훼손되면서 먹잇감을 찾아 농경지로 이동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오동필 새만금시민생태조사공동단장은 "새만금 개발이 가속화 하면서 기존에 광범위하게 있던 큰고니의 서식지가 협소화·파편화하고 있고, 육지에 있는 저수지 역시 친수공간 활용 등의 이유로 데크(산책로)를 많이 만들면서 사람이 접근할 수 있게 되면서 새들이 머무를 수 있는 곳이 사라지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오동필 새만금시민생태조사공동단장에 따르면 새만금 일대에서 큰고니의 서식지는 15년 동안(위 : 15년 전 , 아래 : 현재) 점점 줄어들고 있다.  (사진제공 : 오동필 새만금시민생태조사공동단장)오동필 새만금시민생태조사공동단장에 따르면 새만금 일대에서 큰고니의 서식지는 15년 동안(위 : 15년 전 , 아래 : 현재) 점점 줄어들고 있다. (사진제공 : 오동필 새만금시민생태조사공동단장)

이종구 인천대 생명과학부 교수 역시 "갯벌이 매립되면서 큰고니들이 서식할 공간이 줄어들었고 동시에 연근 밭에는 큰고니가 좋아하는 수초나 먹이가 풍부하므로 농경지 쪽으로 이동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이번 겨울, 연근밭 주인은 큰고니 떼의 화려한 군무를 지켜보면서 웃지도 울지도 못한 채, 속이 타들어 갈 수 밖에 없습니다.


[연관 기사] 연근 농사 망치는 멸종위기 큰고니떼 ‘골치’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867587

(촬영기자 : 정성수/ 그래픽 : 김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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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근밭 망치는 큰고니 떼 먹성에 타들어 가는 농심
    • 입력 2024-01-18 16:12:25
    • 수정2024-01-18 16: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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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니를 아냐고요? 내가 제일 골치가 아프다는데, 대체 왜들 그런 걸까요?"

한겨울 농촌 마을을 찾은 새들이 화려한 군무를 펼칩니다. 눈처럼 새하얀 몸통의 자태에, 검정·노랑이 뒤섞인 뾰족한 부리가 매력적인 새! 흔히 백조로 알려진 겨울 철새, 큰고니입니다.

언뜻 평화로워 보이는 이 풍경에는 웃지도 울지도 못할 사연 하나가 숨겨져 있습니다. 큰고니떼가 있는 곳이 연근밭이라는 사실에서 이야기가 시작합니다.

전라북도 김제시의 한 농촌 마을에 큰고니가 나타난 건 보름 전쯤입니다. 이곳에서 연근 농사를 짓고 있는 한 농민은 오랜만에 논을 찾았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웬 거대한 새들이(큰고니는 날개를 쫙 펼치면 그 크기가 2m를 넘기도 합니다) 연근을 심어 놓은 논에 자리를 잡고 연근을 모조리 먹어치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새들은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대나무 막대기를 휘둘러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유유자적하며 여유로웠습니다.

이 농민은 한숨을 푹 내쉬면서 말했습니다. "이 논이 3천 평이에요. 5년 전부터 연근 농사를 시작했는데 작년이랑 재작년에는 청둥오리떼가 연근을 다 먹어치워서 하나도 수확을 못 했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큰고니가 날아와서 연근을 먹어버리네요."

이어 "이 논에 있는 걸 수확하면 1.5kg짜리 상자 100개만큼 연근이 나오고 매출은 4천만 원 정도 될 거예요."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김제시 공덕면의 한 무논에 큰고니떼가 모여있는 모습. (사진제공 : 시청자 권병선)
큰고니를 그냥 내쫓거나 잡을 수는 없냐고요?

절대 쉽지 않습니다.

큰고니는 국가에서 지정한 멸종위기야생동물이자 천연기념물입니다. 국가적색목록 등급으로 보면 '취약'한 생물입니다.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멸종위기 야생생물을 포획하거나 채취, 훼손, 가공하는 등의 행위가 금지돼 있습니다. 결국 농민 입장에서는 농작물을 먹어치우는 큰고니를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그나마 환경부의 '야생동물피해예방사업'이나 '생태계 서비스 지불제 계약'을 통해 일부 지원을 받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피해가 발생한 김제시를 기준으로 하면, 야생동물피해예방사업의 경우 그물 등 피해예방시설 설치를 위해 들어간 금액의 60%를 최대 4백만 원 수준에서 지원받는 정도입니다. 생태계 서비스 지불제 계약 역시 피해 소득의 최대 25%까지만을 보전할 뿐입니다.

전문가들은 새만금 갯벌 매립 등으로 큰고니의 기존 서식지가 훼손되면서 먹잇감을 찾아 농경지로 이동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오동필 새만금시민생태조사공동단장은 "새만금 개발이 가속화 하면서 기존에 광범위하게 있던 큰고니의 서식지가 협소화·파편화하고 있고, 육지에 있는 저수지 역시 친수공간 활용 등의 이유로 데크(산책로)를 많이 만들면서 사람이 접근할 수 있게 되면서 새들이 머무를 수 있는 곳이 사라지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오동필 새만금시민생태조사공동단장에 따르면 새만금 일대에서 큰고니의 서식지는 15년 동안(위 : 15년 전 , 아래 : 현재) 점점 줄어들고 있다.  (사진제공 : 오동필 새만금시민생태조사공동단장)
이종구 인천대 생명과학부 교수 역시 "갯벌이 매립되면서 큰고니들이 서식할 공간이 줄어들었고 동시에 연근 밭에는 큰고니가 좋아하는 수초나 먹이가 풍부하므로 농경지 쪽으로 이동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이번 겨울, 연근밭 주인은 큰고니 떼의 화려한 군무를 지켜보면서 웃지도 울지도 못한 채, 속이 타들어 갈 수 밖에 없습니다.


[연관 기사] 연근 농사 망치는 멸종위기 큰고니떼 ‘골치’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867587

(촬영기자 : 정성수/ 그래픽 : 김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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