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 강진 1년, 컨테이너 마을 속 ‘긍정의 힘’ [특파원 리포트]

입력 2024.02.09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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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지난해 2월 6일 튀르키예 가지안테프 강진이 발생한 지 1년이 지났습니다.
당시 지진으로 튀르키예 내에서만 11개 주에서 5만 3천여 명이 숨지고 10만 명 넘게 다쳤습니다.
KBS는 튀르키예 정부 허가를 받아 이재민들의 임시주거시설과 임대주택 공사 현장을 다녀왔습니다.


튀르키예 말라티아주의 한 이재민 임시주거시설, 웃음기 넘치는 아이들 무리 속에서 익숙한 한글 문구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긍정을 퍼뜨려 봐'. 4살 소녀 미라지는 부모님이 사준 옷이라며, 티셔츠에 적힌 문구가 무슨 뜻인지는 잘 모른다며 쑥스럽게 웃어넘겼습니다.

지난해 2월 6일 튀르키예 남부를 강타한 규모 7.8의 강진은 주민들의 삶을 송두리째 앗아갔습니다. 11개 주에 걸쳐 약 43만 명은 이른바 컨테이너로 지어진 21만여 개의 컨테이너에서 생활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우려와 달리 컨테이너 마을의 주민들은 어른들도 아이들도 모두 밝은 표정이었습니다. 어른들은 한국이 형제의 국가라며 차를 건넸고, 아이들은 한국에서 온 기자단을 향해 연신 '코레'(Kore·한국)를 외치며 사진을 함께 찍자고 했습니다.

당시 지진으로 조카 둘을 잃고 아이 셋과 생활한다는 에미네는 컨테이너 생활이 이제는 다소 익숙해졌다며, 정부 지원 덕분에 생활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다고 밝혔습니다. 반면 7살 소년 타하는 가끔 난방 문제가 있고 비가 내릴 때 컨테이너 안으로 물이 떨어질 때가 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 '김민재' '흥민 손' 또박또박 외친 축구 꿈나무

컨테이너 마을 안에 풋살장이 조성돼 있어 아이들은 공을 차느라 바빴습니다. 취재진이 다가가자 축구 선수가 꿈이라는 9살 소년 쿠제이는 '김민재', '흥민 손(손흥민)'을 연신 외쳐댔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김민재는 '민재 킴'이 아닌 한국식으로 이름을 외쳤다는 점입니다. 현장에 동행한 튀르키예 정부 관계자에게 이유를 물었더니 김민재 선수가 2021~2022 시즌 튀르키예 리그 이스탄불 명문 구단인 페네르바체에서 뛰었던 경력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튀르키예에선 당시 김민재를 한국식 이름으로 불렀고, 한 시즌만 뛰고 이적했음에도 빼어난 기량을 선보인 덕에 많은 튀르키예 축구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는 겁니다. 특히 지난해 지진 당시 김민재 선수가 지진 피해 아동을 위해 1억 원을 기부하고 튀르키예를 위해 기도해달라며 기부 방법을 공유하면서 튀르키예 내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고, 정부 관계자는 부연했습니다.


■ 재건 서두르는 튀르키예 정부…올해 안에 20만 채 입주

강진 발생 1년 만에 튀르키예 정부는 이재민들이 생활할 임대주택 건설에도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튀르키예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은 올해 안에 20만 채의 임대주택을 완공하겠다고 공언하기도 했습니다.

지진 피해가 워낙 컸던 만큼 무너진 건물 대부분은 그대로 방치하거나 최소한의 철거 작업만 진행한 채 도시 외곽 지역 주 정부 소유 토지에 새 아파트나 주택을 짓고 있었습니다. 강진 당시 지진 발생 피해가 적었던 곳 위주로 건설에 착수했다고 튀르키예 주택개발공사(TOKI) 측은 설명했습니다.

이 가운데 일부 아파트와 주택은 이미 완공돼 다음 달 주민 입주를 앞두고 있는데, 추첨을 통해 입주 순위가 정해질 예정입니다.

튀르키예 주택개발공사 측은 내진 설계로 건물이 지어져 지난해처럼 규모가 높은 지진이 오더라도 건물이 버틸 수 있다고도 설명했습니다. 다만 얼마나 강한 규모의 지진까지 버틸 수 있는지 묻는 질의엔 명확한 답변을 내놓지 못했습니다.

■ 복구와 재건에 140조 원...최소 5년 걸릴 것

튀르키예 정부는 지진 피해 복구와 재건에 약 140조 원이 들 거로 전망합니다. 이는 튀르키예 국내총생산의 11%에 달하는 수치입니다. 완전한 재건까지는 최소 5년이 걸릴 것(튀르키예 경제정책연구재단)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습니다.

천문학적인 비용과 시간이 걸리는 만큼 국제사회의 지원이 필요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튀르키예 정부 관계자는 "지진 초기엔 도움이 절실했지만, 지금은 우리 정부 역량만으로도 충분하다"며 자신감을 내비치기도 했습니다.

이재민들의 컨테이너 정착촌과 임대주택 건설 현장 곳곳에선 20년 넘게 장기 집권 중인 에르도안 대통령의 초상화와 함께 튀르키예 공화국 건국 100주년을 알리는 대형 현수막이 즐비했습니다.

에르도안 대통령의 초상화가 담긴 현수막의 크기는 1년 가까이 7평(21㎡) 남짓 컨테이너에서 생활하는 이재민들의 작은 소망과는 사뭇 대조적이었습니다. "그저 하루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현장에서 만난 이재민들은 한목소리로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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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튀르키예 강진 1년, 컨테이너 마을 속 ‘긍정의 힘’ [특파원 리포트]
    • 입력 2024-02-09 12:4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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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지난해 2월 6일 튀르키예 가지안테프 강진이 발생한 지 1년이 지났습니다. <br /></em><em>당시 지진으로 튀르키예 내에서만 11개 주에서 5만 3천여 명이 숨지고 10만 명 넘게 다쳤습니다.<br /></em><em>KBS는 튀르키예 정부 허가를 받아 이재민들의 임시주거시설과 임대주택 공사 현장을 다녀왔습니다.</em>

튀르키예 말라티아주의 한 이재민 임시주거시설, 웃음기 넘치는 아이들 무리 속에서 익숙한 한글 문구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긍정을 퍼뜨려 봐'. 4살 소녀 미라지는 부모님이 사준 옷이라며, 티셔츠에 적힌 문구가 무슨 뜻인지는 잘 모른다며 쑥스럽게 웃어넘겼습니다.

지난해 2월 6일 튀르키예 남부를 강타한 규모 7.8의 강진은 주민들의 삶을 송두리째 앗아갔습니다. 11개 주에 걸쳐 약 43만 명은 이른바 컨테이너로 지어진 21만여 개의 컨테이너에서 생활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우려와 달리 컨테이너 마을의 주민들은 어른들도 아이들도 모두 밝은 표정이었습니다. 어른들은 한국이 형제의 국가라며 차를 건넸고, 아이들은 한국에서 온 기자단을 향해 연신 '코레'(Kore·한국)를 외치며 사진을 함께 찍자고 했습니다.

당시 지진으로 조카 둘을 잃고 아이 셋과 생활한다는 에미네는 컨테이너 생활이 이제는 다소 익숙해졌다며, 정부 지원 덕분에 생활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다고 밝혔습니다. 반면 7살 소년 타하는 가끔 난방 문제가 있고 비가 내릴 때 컨테이너 안으로 물이 떨어질 때가 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 '김민재' '흥민 손' 또박또박 외친 축구 꿈나무

컨테이너 마을 안에 풋살장이 조성돼 있어 아이들은 공을 차느라 바빴습니다. 취재진이 다가가자 축구 선수가 꿈이라는 9살 소년 쿠제이는 '김민재', '흥민 손(손흥민)'을 연신 외쳐댔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김민재는 '민재 킴'이 아닌 한국식으로 이름을 외쳤다는 점입니다. 현장에 동행한 튀르키예 정부 관계자에게 이유를 물었더니 김민재 선수가 2021~2022 시즌 튀르키예 리그 이스탄불 명문 구단인 페네르바체에서 뛰었던 경력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튀르키예에선 당시 김민재를 한국식 이름으로 불렀고, 한 시즌만 뛰고 이적했음에도 빼어난 기량을 선보인 덕에 많은 튀르키예 축구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는 겁니다. 특히 지난해 지진 당시 김민재 선수가 지진 피해 아동을 위해 1억 원을 기부하고 튀르키예를 위해 기도해달라며 기부 방법을 공유하면서 튀르키예 내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고, 정부 관계자는 부연했습니다.


■ 재건 서두르는 튀르키예 정부…올해 안에 20만 채 입주

강진 발생 1년 만에 튀르키예 정부는 이재민들이 생활할 임대주택 건설에도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튀르키예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은 올해 안에 20만 채의 임대주택을 완공하겠다고 공언하기도 했습니다.

지진 피해가 워낙 컸던 만큼 무너진 건물 대부분은 그대로 방치하거나 최소한의 철거 작업만 진행한 채 도시 외곽 지역 주 정부 소유 토지에 새 아파트나 주택을 짓고 있었습니다. 강진 당시 지진 발생 피해가 적었던 곳 위주로 건설에 착수했다고 튀르키예 주택개발공사(TOKI) 측은 설명했습니다.

이 가운데 일부 아파트와 주택은 이미 완공돼 다음 달 주민 입주를 앞두고 있는데, 추첨을 통해 입주 순위가 정해질 예정입니다.

튀르키예 주택개발공사 측은 내진 설계로 건물이 지어져 지난해처럼 규모가 높은 지진이 오더라도 건물이 버틸 수 있다고도 설명했습니다. 다만 얼마나 강한 규모의 지진까지 버틸 수 있는지 묻는 질의엔 명확한 답변을 내놓지 못했습니다.

■ 복구와 재건에 140조 원...최소 5년 걸릴 것

튀르키예 정부는 지진 피해 복구와 재건에 약 140조 원이 들 거로 전망합니다. 이는 튀르키예 국내총생산의 11%에 달하는 수치입니다. 완전한 재건까지는 최소 5년이 걸릴 것(튀르키예 경제정책연구재단)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습니다.

천문학적인 비용과 시간이 걸리는 만큼 국제사회의 지원이 필요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튀르키예 정부 관계자는 "지진 초기엔 도움이 절실했지만, 지금은 우리 정부 역량만으로도 충분하다"며 자신감을 내비치기도 했습니다.

이재민들의 컨테이너 정착촌과 임대주택 건설 현장 곳곳에선 20년 넘게 장기 집권 중인 에르도안 대통령의 초상화와 함께 튀르키예 공화국 건국 100주년을 알리는 대형 현수막이 즐비했습니다.

에르도안 대통령의 초상화가 담긴 현수막의 크기는 1년 가까이 7평(21㎡) 남짓 컨테이너에서 생활하는 이재민들의 작은 소망과는 사뭇 대조적이었습니다. "그저 하루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현장에서 만난 이재민들은 한목소리로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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