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모 살해했는데…법정 최고형은 ‘징역 20년’ 왜? [취재후]

입력 2024.03.28 (17:52) 수정 2024.03.28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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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지방법원 법정청주지방법원 법정

■ 친모 살해하고 '심신미약' 주장한 10대… 법원, 징역 20년 선고

지난 25일 청주지방법원 223호 배심 법정에 앳된 얼굴의 중학생이 피고인석에 섰습니다.

지난해 10월 충북 청주시의 한 아파트에서 자신을 꾸짖는다는 이유로 친어머니를 흉기로 수십 차례 찔러 살해했던 15살 A 군입니다.

재판에 넘겨진 A 군과 국선 변호인은 A 군이 "어릴 적부터 정신 장애를 앓았지만 제대로 된 치료나 양육을 받지 못해 '심신미약' 또는 '심신상실' 상태였고 평소 가정폭력에 시달렸던 피해자"라면서 무죄를 주장했습니다.

검찰은 이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습니다.

우선 국립법무병원의 정신 감정과 대검찰청 과학수사부의 임상 심리평가 결과 등을 근거로 "피고인의 지능은 평균 수준이고 사물 변별 능력과 의사능력이 미약하거나 상실되지 않았다"면서 심신미약 상태가 아니었다고 지적했습니다.

가정폭력에 시달렸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교육 목적으로 전자기기를 빼앗거나, 글씨 쓰기 연습을 시킨 것을 가정폭력으로 볼 수 있느냐"면서 "사건 당일에도'남을 배려하라'고 꾸짖은 것이 전부"라고 설명했습니다.

증인으로 출석한 피고인의 친아버지와 누나 역시 "평소 가정폭력은 없었다"고 진술했습니다.

이번 사건은 A 군의 요청에 따라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됐습니다.

오전 9시 30분부터 10시간 넘게 진행된 공판에서 양측의 공방을 지켜본 배심원 9명은 모두 A 군이 '유죄'라고 판단했습니다.

청주지법 제11형사부는 이런 배심원 양형 의견 등을 고려해 A 군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했습니다.


■ 재판부는 '무기징역' 택했지만… '소년법'으로 감형

선고 직후 여론은 들끓었습니다. A 군의 범행 자체는 물론 '반성하지 않는 태도', 그리고 '징역 20년'이라는 1심 선고 결과를 두고 다양한 반응이 쏟아졌습니다.

특히 천륜을 저버리고 가족을 상대로 흉악범죄를 저지른 10대에 대한 처벌이 무기징역이나 사형이 아닌 '징역 20년'이라는 것에 분노하는 반응도 적지 않았습니다.

A 군이 모든 형기를 마치고 출소해도 35살, 한창의 나이이기 때문에 가족 등을 상대로 보복 범죄도 우려된다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하지만 현행법상 '징역 20년'은 A 군에게 내릴 수 있는 사실상의 법정 최고형입니다.

형법 제250조 2항은 '자기 또는 배우자의 직계존속을 살해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고 존속살해죄의 처벌 형량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A 군 사건을 담당한 재판부도 이 법률에 따라 '무기징역형'을 선택했습니다.

범행의 잔혹성과 반성하지 않는 태도, 높은 재범 위험성 등을 고려하면 엄벌이 불가피하다고 본 겁니다.

그런데 왜 최종 판결은 '징역 20년'으로 바뀌었을까요?

바로 '소년법' 때문입니다.

현행 소년법 제2조와 제59조는 A 군처럼 18세 미만인 범죄자의 경우 사형 또는 무기형에 처하더라도 최대 15년의 유기징역으로 '완화'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다만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 제4조는 마찬가지로 소년범이라도, 살인 등 특정강력범죄를 저지른 경우에는 유기징역의 형량을 최대 '20년'까지 늘릴 수 있도록 했습니다.

결국 재판부는 A 군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하고 싶었지만 소년법의 '감형' 규정 등에 따라 최대 형량인 징역 20년을 선고하게 된 겁니다.

이날 재판에 참여한 배심원 9명 가운데 8명도, 이 같은 규정을 참고해 '징역 20년'을 선고해달라는 의견을 냈고, 1명만 '징역 장기 15년, 단기 7년'의 의견을 재판부에 제출했습니다.

청주지방법원 법정 피고인석.청주지방법원 법정 피고인석.

■ 끝까지 반성 없던 소년…'건전하게 성장한' 어른 될까?

사소한 이유로 친어머니를 잔혹하게 살해하고도 10대 소년이라는 이유로 징역 20년을 선고받은 A 군.

본인의 범행에 국선 변호인을 제외한 재판부와 배심원, 검찰, 심지어 남은 가족까지 '장기간 사회와의 격리'가 필요하다고 봤지만 A 군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A 군은 선고 직후 법정에서 "항소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A 군은 재판이 진행되는 내내 자신의 죄를 반성하지도 않았고 이제는 고인이 된 어머니를 비롯해 가족 누구에게도 미안하다는 말조차 없었습니다.

A 군의 형량을 줄여준 소년법의 목적은 '반사회성이 있는 소년의 환경 조정과 품행 교정을 위한 보호처분 등의 필요한 조치를 하고 형사처분에 관한 특별조치를 함으로써 소년이 건전하게 성장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가 '소년법'이라는 보호 장치로 준 참회의 기회를 과연 A 군은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사회에 복귀할 때 소년법의 취지에 맞게 '건전하게 성장한 어른'이 될지 '반성하지 않는 범죄자'로 남을지는 결국 A 군에게 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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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친모 살해했는데…법정 최고형은 ‘징역 20년’ 왜? [취재후]
    • 입력 2024-03-28 17:52:41
    • 수정2024-03-28 17:5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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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지방법원 법정
■ 친모 살해하고 '심신미약' 주장한 10대… 법원, 징역 20년 선고

지난 25일 청주지방법원 223호 배심 법정에 앳된 얼굴의 중학생이 피고인석에 섰습니다.

지난해 10월 충북 청주시의 한 아파트에서 자신을 꾸짖는다는 이유로 친어머니를 흉기로 수십 차례 찔러 살해했던 15살 A 군입니다.

재판에 넘겨진 A 군과 국선 변호인은 A 군이 "어릴 적부터 정신 장애를 앓았지만 제대로 된 치료나 양육을 받지 못해 '심신미약' 또는 '심신상실' 상태였고 평소 가정폭력에 시달렸던 피해자"라면서 무죄를 주장했습니다.

검찰은 이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습니다.

우선 국립법무병원의 정신 감정과 대검찰청 과학수사부의 임상 심리평가 결과 등을 근거로 "피고인의 지능은 평균 수준이고 사물 변별 능력과 의사능력이 미약하거나 상실되지 않았다"면서 심신미약 상태가 아니었다고 지적했습니다.

가정폭력에 시달렸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교육 목적으로 전자기기를 빼앗거나, 글씨 쓰기 연습을 시킨 것을 가정폭력으로 볼 수 있느냐"면서 "사건 당일에도'남을 배려하라'고 꾸짖은 것이 전부"라고 설명했습니다.

증인으로 출석한 피고인의 친아버지와 누나 역시 "평소 가정폭력은 없었다"고 진술했습니다.

이번 사건은 A 군의 요청에 따라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됐습니다.

오전 9시 30분부터 10시간 넘게 진행된 공판에서 양측의 공방을 지켜본 배심원 9명은 모두 A 군이 '유죄'라고 판단했습니다.

청주지법 제11형사부는 이런 배심원 양형 의견 등을 고려해 A 군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했습니다.


■ 재판부는 '무기징역' 택했지만… '소년법'으로 감형

선고 직후 여론은 들끓었습니다. A 군의 범행 자체는 물론 '반성하지 않는 태도', 그리고 '징역 20년'이라는 1심 선고 결과를 두고 다양한 반응이 쏟아졌습니다.

특히 천륜을 저버리고 가족을 상대로 흉악범죄를 저지른 10대에 대한 처벌이 무기징역이나 사형이 아닌 '징역 20년'이라는 것에 분노하는 반응도 적지 않았습니다.

A 군이 모든 형기를 마치고 출소해도 35살, 한창의 나이이기 때문에 가족 등을 상대로 보복 범죄도 우려된다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하지만 현행법상 '징역 20년'은 A 군에게 내릴 수 있는 사실상의 법정 최고형입니다.

형법 제250조 2항은 '자기 또는 배우자의 직계존속을 살해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고 존속살해죄의 처벌 형량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A 군 사건을 담당한 재판부도 이 법률에 따라 '무기징역형'을 선택했습니다.

범행의 잔혹성과 반성하지 않는 태도, 높은 재범 위험성 등을 고려하면 엄벌이 불가피하다고 본 겁니다.

그런데 왜 최종 판결은 '징역 20년'으로 바뀌었을까요?

바로 '소년법' 때문입니다.

현행 소년법 제2조와 제59조는 A 군처럼 18세 미만인 범죄자의 경우 사형 또는 무기형에 처하더라도 최대 15년의 유기징역으로 '완화'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다만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 제4조는 마찬가지로 소년범이라도, 살인 등 특정강력범죄를 저지른 경우에는 유기징역의 형량을 최대 '20년'까지 늘릴 수 있도록 했습니다.

결국 재판부는 A 군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하고 싶었지만 소년법의 '감형' 규정 등에 따라 최대 형량인 징역 20년을 선고하게 된 겁니다.

이날 재판에 참여한 배심원 9명 가운데 8명도, 이 같은 규정을 참고해 '징역 20년'을 선고해달라는 의견을 냈고, 1명만 '징역 장기 15년, 단기 7년'의 의견을 재판부에 제출했습니다.

청주지방법원 법정 피고인석.
■ 끝까지 반성 없던 소년…'건전하게 성장한' 어른 될까?

사소한 이유로 친어머니를 잔혹하게 살해하고도 10대 소년이라는 이유로 징역 20년을 선고받은 A 군.

본인의 범행에 국선 변호인을 제외한 재판부와 배심원, 검찰, 심지어 남은 가족까지 '장기간 사회와의 격리'가 필요하다고 봤지만 A 군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A 군은 선고 직후 법정에서 "항소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A 군은 재판이 진행되는 내내 자신의 죄를 반성하지도 않았고 이제는 고인이 된 어머니를 비롯해 가족 누구에게도 미안하다는 말조차 없었습니다.

A 군의 형량을 줄여준 소년법의 목적은 '반사회성이 있는 소년의 환경 조정과 품행 교정을 위한 보호처분 등의 필요한 조치를 하고 형사처분에 관한 특별조치를 함으로써 소년이 건전하게 성장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가 '소년법'이라는 보호 장치로 준 참회의 기회를 과연 A 군은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사회에 복귀할 때 소년법의 취지에 맞게 '건전하게 성장한 어른'이 될지 '반성하지 않는 범죄자'로 남을지는 결국 A 군에게 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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