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만 흘렀다’…동거차도 주민들의 신음

입력 2024.04.16 (19:38) 수정 2024.04.16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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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세월호 사고 발생시 가장 가까이서 구조에 나선 이들은 한반도 서남쪽 작은 섬 진도의 동거차도 주민들이었는데요.

사고 최초의 목격자이자 피해자이기도 했던 동거차도 주민들의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여전히 고통속에 있는 섬 주민들을 김광진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세월호 사고 해역에서 2KM 남짓 떨어진 진도군 조도면 동거차도.

세월호가 침몰한 맹골수도 해역은 주민들의 생계원인 미역 양식장 바로 앞입니다.

그날 역시 주민들은 양식장에서 미역을 수확하느라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소명영/동거차도 주민 : "그때 당시에 미역 양식. 양식장이 뒤에 있다 보니깐, 채취하면서 미역 채취하고 있는데 그 배가 그렇게 점점 기울어가고 이렇게 떠오다가 그래서 이제 (침몰)상황이 된 거죠."]

놀란 어민들은 어선을 이용해 생존자를 구조하고 물에 빠진 시신을 섬으로 옮기는데 발벗고 나섰습니다.

세월호 사고는 곧 경제적 피해로 이어졌습니다.

세월호 침몰때와 3년뒤 인양 작업 때 세월호에서 흘러나온 기름이 미역 양식장을 덮쳐 큰 피해를 봤기 때문입니다.

어민들은 피해 보상을 요구하며 정부를 상대로 해상 시위와 상경 시위까지 벌였지만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했습니다.

[소명영/동거차도 주민 : "이제 일부 (빚을) 해결하는 사람은 했고, 그것이 누적이 돼 가지고 아직도 그게 꼬리를 물고 아직도 (빚을) 못 갚은 사람들 어민들도 있고…."]

무엇보다 큰 것은 마음의 상처.

하지만 상처 치유를 위해 육지에 나가 2~3번 심리치료를 받은 게 전부였습니다.

[차정록/동거차도 동막마을 어촌계장 : "(참사 당시) 이제 계속 인제 술이나 먹고 잠을 자고 그런 실정이었는데…. (심리)치료하러 왔는데 우리 돈을 내고 가서 치료를 하라고 그러더라고요. 그쪽(사고 해역)만 가면 또 그런 생각이 나고, 항상 그쪽을 또 우리가 (미역) 작업하러 가니까 그런 생각이 나죠."]

세월호 인명 구조에 나섰던 의인들이 겪었던 트라우마처럼 진도 동거차도 주민들의 마음의 상처 또한 여전히 치유되지 않고 있습니다.

KBS 뉴스 김광진입니다.

촬영기자:이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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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월만 흘렀다’…동거차도 주민들의 신음
    • 입력 2024-04-16 19:38:58
    • 수정2024-04-16 21:11:01
    뉴스7(광주)
[앵커]

세월호 사고 발생시 가장 가까이서 구조에 나선 이들은 한반도 서남쪽 작은 섬 진도의 동거차도 주민들이었는데요.

사고 최초의 목격자이자 피해자이기도 했던 동거차도 주민들의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여전히 고통속에 있는 섬 주민들을 김광진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세월호 사고 해역에서 2KM 남짓 떨어진 진도군 조도면 동거차도.

세월호가 침몰한 맹골수도 해역은 주민들의 생계원인 미역 양식장 바로 앞입니다.

그날 역시 주민들은 양식장에서 미역을 수확하느라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소명영/동거차도 주민 : "그때 당시에 미역 양식. 양식장이 뒤에 있다 보니깐, 채취하면서 미역 채취하고 있는데 그 배가 그렇게 점점 기울어가고 이렇게 떠오다가 그래서 이제 (침몰)상황이 된 거죠."]

놀란 어민들은 어선을 이용해 생존자를 구조하고 물에 빠진 시신을 섬으로 옮기는데 발벗고 나섰습니다.

세월호 사고는 곧 경제적 피해로 이어졌습니다.

세월호 침몰때와 3년뒤 인양 작업 때 세월호에서 흘러나온 기름이 미역 양식장을 덮쳐 큰 피해를 봤기 때문입니다.

어민들은 피해 보상을 요구하며 정부를 상대로 해상 시위와 상경 시위까지 벌였지만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했습니다.

[소명영/동거차도 주민 : "이제 일부 (빚을) 해결하는 사람은 했고, 그것이 누적이 돼 가지고 아직도 그게 꼬리를 물고 아직도 (빚을) 못 갚은 사람들 어민들도 있고…."]

무엇보다 큰 것은 마음의 상처.

하지만 상처 치유를 위해 육지에 나가 2~3번 심리치료를 받은 게 전부였습니다.

[차정록/동거차도 동막마을 어촌계장 : "(참사 당시) 이제 계속 인제 술이나 먹고 잠을 자고 그런 실정이었는데…. (심리)치료하러 왔는데 우리 돈을 내고 가서 치료를 하라고 그러더라고요. 그쪽(사고 해역)만 가면 또 그런 생각이 나고, 항상 그쪽을 또 우리가 (미역) 작업하러 가니까 그런 생각이 나죠."]

세월호 인명 구조에 나섰던 의인들이 겪었던 트라우마처럼 진도 동거차도 주민들의 마음의 상처 또한 여전히 치유되지 않고 있습니다.

KBS 뉴스 김광진입니다.

촬영기자:이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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