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지는 어른 될게요”…‘세월호 세대’가 마주했다 [더 많은 ‘세월’ 흘러도]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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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많은 '세월' 흘러도
"1년이 가도 10년이 가도 아니 더 많은 세월 흘러도 보고픈 얼굴들 그리운 이름들 우리 가슴에 새겨놓을게"
- 4·16합창단 <잊지 않을게> 중
별이 된 이들을 잊지 않으려는 이유는 다양합니다. 내 가족이어서, 또래여서, 여전히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서, 그냥 안타까워서. 저마다 다른 사연으로 10년을 살아온 이들을 KBS가 만났습니다.
2014년 4월 16일.
10년 전 그날, 그들과 같은 학생이었던 4명의 또래가 만났습니다.
단원고등학교 2학년 박성호 학생과 김동혁 학생의 큰 누나 박보나 씨와 여동생 김예원 씨, 그리고 KBS 막내 기자들입니다.
우리에게는 그날이 수학여행을 다녀온 지 열흘이 채 되지 않았던, 친구들과 손잡고 소풍을 갔던,
'전원 구조'라는 뉴스를 보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급식실로 향했던, 그런 하루였습니다.
그날의 기억이 더욱 선명하고 잊히지 않는 이유입니다.
■ 다르게, 또 같이 흘러온 10년의 '세월'
서로의 10년은 다르게 흘렀습니다.
예원 씨는 부모님과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단원고등학교에 진학해, 오빠가 미처 받지 못했던 졸업장을 따냈습니다.
소심했던 성격은 외향적으로 바뀌었고, 이제는 사회 초년생으로 첫 발을 내딛었습니다.
스무 살 초, '참사 피해자'의 정체성을 갖게 된 보나 씨는 트라우마와 함께 성장하고 있습니다.
'피해자다움'을 고민하면서, 우리 사회의 아픈 구석들에서 함께 연대해온 보나 씨는 어느새 30대가 됐습니다.
"사실 부모님도 (단원고 진학에) 굉장히 반대를 많이 하셨었어요. 그래도 가야겠다 생각이 들었던 게 오빠가 거기서 졸업장을 못 따게 된 거다 보니까… 저희 오빠는 제가 잘살기를 가장 바랐던 사람이었거든요. 원래 도전이나 이런 거 절대 못 하는 사람이었는데, 딱 그때 이후로 '못하는 게 어딨어. 그냥 생각하는 대로 해내야지'라고…" -김예원 씨 (고 김동혁 학생의 동생) "'유족다움'이나 '피해자다움'에 대한 질문이 있었을 때, 스스로 한계 짓고 억압된 것들 때문에 답답했어요. 그런 편견들이 쌓여서 자유롭지 못했구나… 나답지 못했던 순간들도 있었단 걸 깨닫게 되면서, 정말 나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질문하고 스스로 얘기하는 시간들을 많이 갖게 됐어요." -박보나 씨 (고 박성호 학생의 누나) |
우리는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고민을 해왔을까요.
이른바 '세월호 세대'가 만나, 쌓아온 시간과 경험,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을 이야기했습니다.
■ 그럼에도, 다시 카메라 앞에 서는 이유
보나 씨와 예원 씨가 다시 카메라 앞에 서기까지는 많은 고민이 필요했습니다.
'언제까지 슬퍼할 거냐'는 세간의 말들은 여러 비방글보다도 더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그래도 어렵게 입을 뗀 이유가 있습니다.
"당연히 힘들지 않을 수는 없지만, 그 힘듦을 잘 이겨내고 버티면서 잘 살아갈 테니까 잘 지켜봐 달라는 그런 마음을 좀 많이 전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김예원 씨 (고 김동혁 학생의 동생) "반복되는 참사들을 보고 '왜 여전히 반복되는지, 진상 규명이나 안전한 사회를 만들려고 열심히 그래도 뭔가 해왔던 것 같은데 왜 그대로지.'라는 고민도 있었고. 아픔과 슬픔, 답답함…여러 가지 감정이 들었어요. 그래서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 좀 많이 컸던 것 같아요." -박보나 씨 (고 박성호 학생의 누나) |
10년의 시간을 지나온 '세월호 세대'가 서로를 마주하고 약속합니다.
"우리는 책임지는 어른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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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임지는 어른 될게요”…‘세월호 세대’가 마주했다 [더 많은 ‘세월’ 흘러도]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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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4-04-17 17:00:18
- 수정2024-04-18 17:02:36
2014년 4월 16일.
10년 전 그날, 그들과 같은 학생이었던 4명의 또래가 만났습니다.
단원고등학교 2학년 박성호 학생과 김동혁 학생의 큰 누나 박보나 씨와 여동생 김예원 씨, 그리고 KBS 막내 기자들입니다.
우리에게는 그날이 수학여행을 다녀온 지 열흘이 채 되지 않았던, 친구들과 손잡고 소풍을 갔던,
'전원 구조'라는 뉴스를 보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급식실로 향했던, 그런 하루였습니다.
그날의 기억이 더욱 선명하고 잊히지 않는 이유입니다.
■ 다르게, 또 같이 흘러온 10년의 '세월'
서로의 10년은 다르게 흘렀습니다.
예원 씨는 부모님과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단원고등학교에 진학해, 오빠가 미처 받지 못했던 졸업장을 따냈습니다.
소심했던 성격은 외향적으로 바뀌었고, 이제는 사회 초년생으로 첫 발을 내딛었습니다.
스무 살 초, '참사 피해자'의 정체성을 갖게 된 보나 씨는 트라우마와 함께 성장하고 있습니다.
'피해자다움'을 고민하면서, 우리 사회의 아픈 구석들에서 함께 연대해온 보나 씨는 어느새 30대가 됐습니다.
"사실 부모님도 (단원고 진학에) 굉장히 반대를 많이 하셨었어요. 그래도 가야겠다 생각이 들었던 게 오빠가 거기서 졸업장을 못 따게 된 거다 보니까… 저희 오빠는 제가 잘살기를 가장 바랐던 사람이었거든요. 원래 도전이나 이런 거 절대 못 하는 사람이었는데, 딱 그때 이후로 '못하는 게 어딨어. 그냥 생각하는 대로 해내야지'라고…" -김예원 씨 (고 김동혁 학생의 동생) "'유족다움'이나 '피해자다움'에 대한 질문이 있었을 때, 스스로 한계 짓고 억압된 것들 때문에 답답했어요. 그런 편견들이 쌓여서 자유롭지 못했구나… 나답지 못했던 순간들도 있었단 걸 깨닫게 되면서, 정말 나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질문하고 스스로 얘기하는 시간들을 많이 갖게 됐어요." -박보나 씨 (고 박성호 학생의 누나) |
우리는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고민을 해왔을까요.
이른바 '세월호 세대'가 만나, 쌓아온 시간과 경험,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을 이야기했습니다.
■ 그럼에도, 다시 카메라 앞에 서는 이유
보나 씨와 예원 씨가 다시 카메라 앞에 서기까지는 많은 고민이 필요했습니다.
'언제까지 슬퍼할 거냐'는 세간의 말들은 여러 비방글보다도 더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그래도 어렵게 입을 뗀 이유가 있습니다.
"당연히 힘들지 않을 수는 없지만, 그 힘듦을 잘 이겨내고 버티면서 잘 살아갈 테니까 잘 지켜봐 달라는 그런 마음을 좀 많이 전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김예원 씨 (고 김동혁 학생의 동생) "반복되는 참사들을 보고 '왜 여전히 반복되는지, 진상 규명이나 안전한 사회를 만들려고 열심히 그래도 뭔가 해왔던 것 같은데 왜 그대로지.'라는 고민도 있었고. 아픔과 슬픔, 답답함…여러 가지 감정이 들었어요. 그래서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 좀 많이 컸던 것 같아요." -박보나 씨 (고 박성호 학생의 누나) |
10년의 시간을 지나온 '세월호 세대'가 서로를 마주하고 약속합니다.
"우리는 책임지는 어른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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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영 기자 inyoung@kbs.co.kr
최인영 기자의 기사 모음 -
배지현 기자 veteran@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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