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이곳’을 마을로…일본 노인들의 이색 실험

입력 2024.04.21 (07:01) 수정 2024.04.21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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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수도 도쿄에서 180km 정도 떨어진 도치기현 나스마치.

고원 지대로 온천과 낙농업, 일왕 일가의 별장이 유명한 이 지역에, 조금 특별한 공간이 있습니다.



한눈에도 학교처럼 보이는 이곳.

특이한 건, 운동장 절반이 1~2층짜리 건물로 채워져 있다는 겁니다.


건물을 자세히 보면 문 옆에 명패가 달려 있습니다. 여기가 누군가가 살고 있는 집이라는 뜻입니다.


학교 운동장에 집을 짓고 사는 사람들의 정체, 대체 무엇일까요?

■ 베테랑 주택 기획자가 ‘마지막 거처’로 선택한 곳은

이 특별한 공간을 만든 사람은 올해로 74살의 치카야마 케이코 씨입니다.

치카야마 씨가 출근하기 위해 이른 아침 집을 나서고 있다.치카야마 씨가 출근하기 위해 이른 아침 집을 나서고 있다.

치카야마 씨는 본래 대학에서 위생학을 전공하고, 병원 임상검사실에서 근무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 간병을 계기로, 30대 후반부터 ‘주택 기획’이라는 새로운 방향으로 진로를 틀게 됐습니다.

“어머니가 38살 때 저를 낳았어요. 그러니까 저의 청춘 시절은 어머니의 고령기에 해당하죠.

단둘이 살면서 어머니가 뇌경색으로 쓰러져 거의 누워서만 지내는 상태가 되었을 때, 어머니와 제가 어떻게 생활하면 좋을까에 대해서 고민했어요. 그때가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쯤이니까, 일본이 고령 사회에 돌입하면서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한 무렵이었어요.

어머니가 퇴원할 때, 주치의나 수간호사, 재활치료팀장이 모두 자택으로 돌아가기는 어렵다고 말했어요. 특별요양노인시설에서 생활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말했어요. 그래서 시설을 알아봤는데요. 여러 곳을 방문해봤지만, 저는 어머니를 그곳에서 살게 하는 선택은 도저히 할 수가 없었고, 어머니에게 상황을 설명했더니 어머니도 싫다고 하셨어요.

무슨 얘긴가 하면, 그 무렵 일본의 특별요양노인시설은 ‘오부야(凹 모양의 방)’라고 불렀는데, 대체로 6명 정도가 함께 생활하고, 게다가 칸막이라곤 커튼이 전부에요. 실내에서 기저귀에 변을 보는 건 아주 당연한 일이죠. 또 기저귀를 가는 횟수가 적기 때문에, 방은 물론 요양원 전체가 암모니아수 냄새로 꽉 차버린 지경이었어요. 같은 시간에 한꺼번에 기저귀를 가는 경우가 많았어요. 개인의 생활이나 생각이나 기호, 시간대 그런 것은 완전히 무시되는 거죠. 제가 보기엔 감옥 같은 장소였기 때문에 도저히 선택할 수가 없었어요.

도쿄에는 유료 노인요양시설이라고 민간 노인 주택이 생겨나기 시작했지만, 입주비가 1억 엔(현재 기준 8억 8천만 원)이나 드는 곳이라서 서민들은 선택할 수 없는 곳이었어요. 좋든 싫든 집으로 돌아오는 선택지밖에 없었어요.

하지만 금방 사람 손이 부족하게 되었고, 공동으로 간병하기 위해서 친구들과 얘기를 나눴어요.

어머니가 존엄하게 살기를 바랐고, 어머니의 간병으로 나 자신의 삶을 바꾸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것이 제 일의 원점이라고도 할 수 있어요. 그런 당사자성이 있었다는 거죠.” (KBS <더 보다> 치카야마 케이코 인터뷰 중)


치카야마 씨와 어머니 (사진 제공: 치카야마 케이코)치카야마 씨와 어머니 (사진 제공: 치카야마 케이코)

자신과 어머니에게 닥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안적인 노인 주택을 만드는 일에 뛰어든 치카야마 씨.

30여 년간 노인 주택 건설·운영 회사에서 일하면서, 전국에 40곳 정도의 노인 주택을 기획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스스로가 나이 들어 살고 싶은 장소에 대해서도 더 깊이 생각하게 됐습니다.

“노인이 희망하는 생활은 자유로운 생활이 보장되고, 다양한 세대가 함께 살 수 있고, 자신이 살던 곳에서 계속 살고 싶다는 것입니다. 특히 자신이 살던 곳에서 사는 것은 저출생 고령화 사회에서는 매우 힘들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살 수 있는 장소로 빨리 옮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치카야마 케이코 블로그 중)


60대의 치카야마 씨가 자신이 기획한 한 노인 주택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60대의 치카야마 씨가 자신이 기획한 한 노인 주택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치카야마 씨는 생의 마지막 거처를 구상하던 7년 전, 자신이 살고 있는 나스마치의 한 폐교에 주목했습니다.

나스마치에선 2015년 12곳이었던 초등학교가 2023년에는 절반인 6곳으로 줄어들었습니다. 폐교를 어떻게 활용할지가 자치단체의 중요한 과제가 된 셈입니다.

2017년 1월, 일본 도치기현 나스마치 동사무소에서는 2016년 폐교한 아사히 초등학교 철거 부지 이용자를 공개 모집했다.2017년 1월, 일본 도치기현 나스마치 동사무소에서는 2016년 폐교한 아사히 초등학교 철거 부지 이용자를 공개 모집했다.

“우연히 제가 살고 있는 노인 주택 근처에 폐교가 나와서, 공공지원 사업에 응모했어요. ‘저출생 고령화 사회의 작은 거점 만들기’라는 나스마치 자치단체의 공공지원 사업에 응모해서 1등을 한 거예요. 그래서 폐교를 수리해서 사용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어요.” (치카야마 케이코 인터뷰 중)

1등을 한 치카야마 씨 기획안의 핵심은, 버려진 학교를 노인 중심의 ‘마을’로 바꾸는 것이었습니다.

마을의 이름은 지명과 설립 취지를 반영해 ‘나스 마을 만들기 광장’으로 정했습니다.

학교 본관 건물 1층 벽에 ‘나스 마을 만들기 광장’ 현판이 걸려 있다. (사진 제공: 나스 마을 만들기 광장)학교 본관 건물 1층 벽에 ‘나스 마을 만들기 광장’ 현판이 걸려 있다. (사진 제공: 나스 마을 만들기 광장)

치카야마 씨는 일단 뜻이 맞는 친구 두 명과 함께 3억 원을 모아, 학교 본관 수리부터 시작했습니다. 지인들에게도 14억 원가량 투자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운동장에 주택을 신축하고, 학교의 다른 시설들을 리모델링하려면 총 90억 원의 자금이 필요했습니다.

다행히 2019년 일본 국토교통성 산하 재단의 ‘거주 환경 정비 모델 사업’에 선정되는 등 몇몇 정부 보조금을 따내 20억 원가량을 확보했고, 나머지 50억여 원은 치카야마 씨의 경력과 기획안을 높게 평가한 지역 은행(도치기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마련했습니다.

‘거주 환경 정비 모델 사업’ 선정 평가위원장을 맡았던 다카하시 히로시 도쿄통신대 명예교수는 KBS와의 인터뷰에서 “보조금을 지급한 이유는 선진성과 모델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다카하시 교수는 “아이디어가 새롭고 독창적인 데다, 쇼핑센터와 같은 돈벌이 수단만이 아닌 사회적 의의가 있는 장소로 폐교를 활용한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치카야마 씨의 폐교 재생 기획은 2020년 국토교통성의 ‘지역 만들기’ 표창과 2022년 총무성의 ‘고향 만들기’ 표창을 받기도 했습니다.

2020년 일본 국토교통성 표창을 수상한 치카야마 씨와 친구들 (사진 제공: 나스 마을 만들기 광장)2020년 일본 국토교통성 표창을 수상한 치카야마 씨와 친구들 (사진 제공: 나스 마을 만들기 광장)

■ 버려진 학교, 마을이 되다



2022년 말 2년 가량의 공사가 끝나자, 폐교는 완전한 변신을 마쳤습니다.





주택뿐 아니라 마트와 식당, 빵집 등 다양한 생활 시설이 한 데 모여 있어 ‘마을’의 모습을 갖췄습니다.

지난해 1월부터 본격적인 입주가 시작돼, 2024년 4월 현재 83명이 이곳에 살고 있습니다.

입주민의 80% 이상은 60~90대 사이의 고령자입니다.

‘나스 마을 만들기 광장’ 입주민들이 함께 차를 마시며 노래를 부르고 있다.‘나스 마을 만들기 광장’ 입주민들이 함께 차를 마시며 노래를 부르고 있다.

‘나스 마을 만들기 광장’ 입주민들이 근처 텃밭에서 수확한 대파를 들고 마을로 향하고 있다.‘나스 마을 만들기 광장’ 입주민들이 근처 텃밭에서 수확한 대파를 들고 마을로 향하고 있다.

마을은 건강한 시기부터 생을 마감할 때까지, 입주민들이 마음 편히 머무를 수 있도록 설계됐습니다.

현재 자립 생활이 가능한 입주민들은 학교 운동장에 세워진 주택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다 건강이 나빠져 간병인의 도움이 필요해지면, 학교 실내 수영장을 개조한 ‘간병기 주택’으로 바로 이사할 수 있습니다.


임종이 가까워진 사람은 학교 부지 바로 옆에 있는 ‘임종의 집’으로 옮겨가 여생을 보낼 수도 있습니다. 이곳은 간호사가 상주하는 셰어하우스로, 지난해 4월 문을 연 이후 지금까지 한 사람의 장례를 치렀습니다.

‘나스 마을 만들기 광장’의 단계별 주택 중 하나인 ‘임종의 집’‘나스 마을 만들기 광장’의 단계별 주택 중 하나인 ‘임종의 집’

■ 노년의 마을 만들기, 도전은 계속된다

이제 마을 대표가 된 치카야마 씨는 10명 안팎의 또래 친구들과 함께 ‘나스 마을 만들기 광장’을 함께 운영하고 있습니다.

‘나스 마을 만들기 광장’의 사무실은 학교 건물 2층의 교실에 만들어졌다.‘나스 마을 만들기 광장’의 사무실은 학교 건물 2층의 교실에 만들어졌다.

‘나스 마을 만들기 광장’ 운영진이 정례 회의를 하고 있다.‘나스 마을 만들기 광장’ 운영진이 정례 회의를 하고 있다.

운영진 중 연금을 받는 65세 이상은 봉급을 받지 않습니다. 이들의 마을 만들기가 하나의 사업을 넘어, 지역 소멸과 고령화 문제를 풀어나가는 ‘사회 운동’으로 평가받기도 하는 이유입니다.

입주민들에게 받는 월세(15년치 일시불 최저 1,390만 엔~최고 3,170만 엔)와 관리비(월 4만 엔)도 다른 노인 주택의 70~80% 수준으로 저렴한 편입니다.

마을 대표이사로 재무를 담당하는 카부라기 다카하시(65) 씨는 “은행 이자를 갚을 정도는 이익이 나야겠지만, 급성장할 필요는 없고 조금씩 커 나가면 된다”며 “기본적으로는 좋은 사회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치카야마 씨가 저녁 식사 자리에서 마을 주민들과 건배하고 있다. 치카야마 씨가 저녁 식사 자리에서 마을 주민들과 건배하고 있다.

즐겁고 행복한 노년을 살기 위한 마지막 거처로서 마을을 만든 치카야마 씨. 하루하루가 굉장히 즐겁다는 그녀는 자신의 도전이 끝나지 않았음을 명확히 했습니다.

“저출생 고령화에 따라 인력, 교육, 가족, 지역, 경제 문제 등 굉장히 어려운 문제가 발생하고 있어요. 이것을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우리가 죽기 전에 젊은 사람들이 할 수 있는 방법을 같이 생각해야만 해요. 그것이 지금 ‘나스 마을 만들기 광장’에서 시도하고 있는 방법, 즉 인구 과소 지역에서 누구나 살아갈 수 있는 시스템 만들기라고 생각했어요.

‘나스 마을 만들기 광장’은 실험적인 곳이라고 생각해요. 이 시스템이 반드시 전국으로 퍼져나가기를 바라고 있어요.” (치카야마 케이코 인터뷰 중)

◆ 오늘(21일) 밤 10시 30분 KBS1 <더 보다>에서, ‘나스 마을 만들기 광장’ 사람들의 이야기가 자세히 공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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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버려진 ‘이곳’을 마을로…일본 노인들의 이색 실험
    • 입력 2024-04-21 07:01:23
    • 수정2024-04-21 08: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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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수도 도쿄에서 180km 정도 떨어진 도치기현 나스마치.

고원 지대로 온천과 낙농업, 일왕 일가의 별장이 유명한 이 지역에, 조금 특별한 공간이 있습니다.



한눈에도 학교처럼 보이는 이곳.

특이한 건, 운동장 절반이 1~2층짜리 건물로 채워져 있다는 겁니다.


건물을 자세히 보면 문 옆에 명패가 달려 있습니다. 여기가 누군가가 살고 있는 집이라는 뜻입니다.


학교 운동장에 집을 짓고 사는 사람들의 정체, 대체 무엇일까요?

■ 베테랑 주택 기획자가 ‘마지막 거처’로 선택한 곳은

이 특별한 공간을 만든 사람은 올해로 74살의 치카야마 케이코 씨입니다.

치카야마 씨가 출근하기 위해 이른 아침 집을 나서고 있다.
치카야마 씨는 본래 대학에서 위생학을 전공하고, 병원 임상검사실에서 근무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 간병을 계기로, 30대 후반부터 ‘주택 기획’이라는 새로운 방향으로 진로를 틀게 됐습니다.

“어머니가 38살 때 저를 낳았어요. 그러니까 저의 청춘 시절은 어머니의 고령기에 해당하죠.

단둘이 살면서 어머니가 뇌경색으로 쓰러져 거의 누워서만 지내는 상태가 되었을 때, 어머니와 제가 어떻게 생활하면 좋을까에 대해서 고민했어요. 그때가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쯤이니까, 일본이 고령 사회에 돌입하면서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한 무렵이었어요.

어머니가 퇴원할 때, 주치의나 수간호사, 재활치료팀장이 모두 자택으로 돌아가기는 어렵다고 말했어요. 특별요양노인시설에서 생활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말했어요. 그래서 시설을 알아봤는데요. 여러 곳을 방문해봤지만, 저는 어머니를 그곳에서 살게 하는 선택은 도저히 할 수가 없었고, 어머니에게 상황을 설명했더니 어머니도 싫다고 하셨어요.

무슨 얘긴가 하면, 그 무렵 일본의 특별요양노인시설은 ‘오부야(凹 모양의 방)’라고 불렀는데, 대체로 6명 정도가 함께 생활하고, 게다가 칸막이라곤 커튼이 전부에요. 실내에서 기저귀에 변을 보는 건 아주 당연한 일이죠. 또 기저귀를 가는 횟수가 적기 때문에, 방은 물론 요양원 전체가 암모니아수 냄새로 꽉 차버린 지경이었어요. 같은 시간에 한꺼번에 기저귀를 가는 경우가 많았어요. 개인의 생활이나 생각이나 기호, 시간대 그런 것은 완전히 무시되는 거죠. 제가 보기엔 감옥 같은 장소였기 때문에 도저히 선택할 수가 없었어요.

도쿄에는 유료 노인요양시설이라고 민간 노인 주택이 생겨나기 시작했지만, 입주비가 1억 엔(현재 기준 8억 8천만 원)이나 드는 곳이라서 서민들은 선택할 수 없는 곳이었어요. 좋든 싫든 집으로 돌아오는 선택지밖에 없었어요.

하지만 금방 사람 손이 부족하게 되었고, 공동으로 간병하기 위해서 친구들과 얘기를 나눴어요.

어머니가 존엄하게 살기를 바랐고, 어머니의 간병으로 나 자신의 삶을 바꾸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것이 제 일의 원점이라고도 할 수 있어요. 그런 당사자성이 있었다는 거죠.” (KBS <더 보다> 치카야마 케이코 인터뷰 중)


치카야마 씨와 어머니 (사진 제공: 치카야마 케이코)
자신과 어머니에게 닥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안적인 노인 주택을 만드는 일에 뛰어든 치카야마 씨.

30여 년간 노인 주택 건설·운영 회사에서 일하면서, 전국에 40곳 정도의 노인 주택을 기획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스스로가 나이 들어 살고 싶은 장소에 대해서도 더 깊이 생각하게 됐습니다.

“노인이 희망하는 생활은 자유로운 생활이 보장되고, 다양한 세대가 함께 살 수 있고, 자신이 살던 곳에서 계속 살고 싶다는 것입니다. 특히 자신이 살던 곳에서 사는 것은 저출생 고령화 사회에서는 매우 힘들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살 수 있는 장소로 빨리 옮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치카야마 케이코 블로그 중)


60대의 치카야마 씨가 자신이 기획한 한 노인 주택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치카야마 씨는 생의 마지막 거처를 구상하던 7년 전, 자신이 살고 있는 나스마치의 한 폐교에 주목했습니다.

나스마치에선 2015년 12곳이었던 초등학교가 2023년에는 절반인 6곳으로 줄어들었습니다. 폐교를 어떻게 활용할지가 자치단체의 중요한 과제가 된 셈입니다.

2017년 1월, 일본 도치기현 나스마치 동사무소에서는 2016년 폐교한 아사히 초등학교 철거 부지 이용자를 공개 모집했다.
“우연히 제가 살고 있는 노인 주택 근처에 폐교가 나와서, 공공지원 사업에 응모했어요. ‘저출생 고령화 사회의 작은 거점 만들기’라는 나스마치 자치단체의 공공지원 사업에 응모해서 1등을 한 거예요. 그래서 폐교를 수리해서 사용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어요.” (치카야마 케이코 인터뷰 중)

1등을 한 치카야마 씨 기획안의 핵심은, 버려진 학교를 노인 중심의 ‘마을’로 바꾸는 것이었습니다.

마을의 이름은 지명과 설립 취지를 반영해 ‘나스 마을 만들기 광장’으로 정했습니다.

학교 본관 건물 1층 벽에 ‘나스 마을 만들기 광장’ 현판이 걸려 있다. (사진 제공: 나스 마을 만들기 광장)
치카야마 씨는 일단 뜻이 맞는 친구 두 명과 함께 3억 원을 모아, 학교 본관 수리부터 시작했습니다. 지인들에게도 14억 원가량 투자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운동장에 주택을 신축하고, 학교의 다른 시설들을 리모델링하려면 총 90억 원의 자금이 필요했습니다.

다행히 2019년 일본 국토교통성 산하 재단의 ‘거주 환경 정비 모델 사업’에 선정되는 등 몇몇 정부 보조금을 따내 20억 원가량을 확보했고, 나머지 50억여 원은 치카야마 씨의 경력과 기획안을 높게 평가한 지역 은행(도치기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마련했습니다.

‘거주 환경 정비 모델 사업’ 선정 평가위원장을 맡았던 다카하시 히로시 도쿄통신대 명예교수는 KBS와의 인터뷰에서 “보조금을 지급한 이유는 선진성과 모델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다카하시 교수는 “아이디어가 새롭고 독창적인 데다, 쇼핑센터와 같은 돈벌이 수단만이 아닌 사회적 의의가 있는 장소로 폐교를 활용한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치카야마 씨의 폐교 재생 기획은 2020년 국토교통성의 ‘지역 만들기’ 표창과 2022년 총무성의 ‘고향 만들기’ 표창을 받기도 했습니다.

2020년 일본 국토교통성 표창을 수상한 치카야마 씨와 친구들 (사진 제공: 나스 마을 만들기 광장)
■ 버려진 학교, 마을이 되다



2022년 말 2년 가량의 공사가 끝나자, 폐교는 완전한 변신을 마쳤습니다.





주택뿐 아니라 마트와 식당, 빵집 등 다양한 생활 시설이 한 데 모여 있어 ‘마을’의 모습을 갖췄습니다.

지난해 1월부터 본격적인 입주가 시작돼, 2024년 4월 현재 83명이 이곳에 살고 있습니다.

입주민의 80% 이상은 60~90대 사이의 고령자입니다.

‘나스 마을 만들기 광장’ 입주민들이 함께 차를 마시며 노래를 부르고 있다.
‘나스 마을 만들기 광장’ 입주민들이 근처 텃밭에서 수확한 대파를 들고 마을로 향하고 있다.
마을은 건강한 시기부터 생을 마감할 때까지, 입주민들이 마음 편히 머무를 수 있도록 설계됐습니다.

현재 자립 생활이 가능한 입주민들은 학교 운동장에 세워진 주택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다 건강이 나빠져 간병인의 도움이 필요해지면, 학교 실내 수영장을 개조한 ‘간병기 주택’으로 바로 이사할 수 있습니다.


임종이 가까워진 사람은 학교 부지 바로 옆에 있는 ‘임종의 집’으로 옮겨가 여생을 보낼 수도 있습니다. 이곳은 간호사가 상주하는 셰어하우스로, 지난해 4월 문을 연 이후 지금까지 한 사람의 장례를 치렀습니다.

‘나스 마을 만들기 광장’의 단계별 주택 중 하나인 ‘임종의 집’
■ 노년의 마을 만들기, 도전은 계속된다

이제 마을 대표가 된 치카야마 씨는 10명 안팎의 또래 친구들과 함께 ‘나스 마을 만들기 광장’을 함께 운영하고 있습니다.

‘나스 마을 만들기 광장’의 사무실은 학교 건물 2층의 교실에 만들어졌다.
‘나스 마을 만들기 광장’ 운영진이 정례 회의를 하고 있다.
운영진 중 연금을 받는 65세 이상은 봉급을 받지 않습니다. 이들의 마을 만들기가 하나의 사업을 넘어, 지역 소멸과 고령화 문제를 풀어나가는 ‘사회 운동’으로 평가받기도 하는 이유입니다.

입주민들에게 받는 월세(15년치 일시불 최저 1,390만 엔~최고 3,170만 엔)와 관리비(월 4만 엔)도 다른 노인 주택의 70~80% 수준으로 저렴한 편입니다.

마을 대표이사로 재무를 담당하는 카부라기 다카하시(65) 씨는 “은행 이자를 갚을 정도는 이익이 나야겠지만, 급성장할 필요는 없고 조금씩 커 나가면 된다”며 “기본적으로는 좋은 사회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치카야마 씨가 저녁 식사 자리에서 마을 주민들과 건배하고 있다.
즐겁고 행복한 노년을 살기 위한 마지막 거처로서 마을을 만든 치카야마 씨. 하루하루가 굉장히 즐겁다는 그녀는 자신의 도전이 끝나지 않았음을 명확히 했습니다.

“저출생 고령화에 따라 인력, 교육, 가족, 지역, 경제 문제 등 굉장히 어려운 문제가 발생하고 있어요. 이것을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우리가 죽기 전에 젊은 사람들이 할 수 있는 방법을 같이 생각해야만 해요. 그것이 지금 ‘나스 마을 만들기 광장’에서 시도하고 있는 방법, 즉 인구 과소 지역에서 누구나 살아갈 수 있는 시스템 만들기라고 생각했어요.

‘나스 마을 만들기 광장’은 실험적인 곳이라고 생각해요. 이 시스템이 반드시 전국으로 퍼져나가기를 바라고 있어요.” (치카야마 케이코 인터뷰 중)

◆ 오늘(21일) 밤 10시 30분 KBS1 <더 보다>에서, ‘나스 마을 만들기 광장’ 사람들의 이야기가 자세히 공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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