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아는 야구와는 달라진 ABS스트라이크존…선수만의 문제일까?

입력 2024.05.09 (13:59) 수정 2024.05.09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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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과 2024년 스트라이크존 비교 (=KBSN 야구의참견)2023년과 2024년 스트라이크존 비교 (=KBSN 야구의참견)

지난달 프로야구 최대의 화두는 각 팀의 승패보다 자동투구판정시스템(ABS)였다.

한국야구 역사상 최고의 투수인 류현진(한화)이 ABS에 대한 불만을 제기했고, 반대로 타자인 황재균(KT)은 ABS의 판정에 항의하다 퇴장까지 당했다.

류현진과 황재균은 메이저리그(MLB) 무대까지 경험한 베테랑인 만큼 설득력이 있는 의견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상황이 다르다. 이의를 제기한 상대가 인간 심판이 아니라 컴퓨터였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투구추적데이터까지 공개해 ABS의 판정이 틀리지 않았음을 입증했다.

ABS의 오류가 아니라면 선수들이 10년 넘게 경험해 온 스트라이크 존을 착각한 것일까?

■실제론 타원이었던 스트라이크존…규정과 현실의 괴리

스트라이크존의 단면이 '규정상' 사각형인 것은 ABS 도입 이전이나 이후나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현실 야구에서 스트라이크존의 단면은 타원형, 정확히는 초타원(Superellipse)이었다.

스트라이크 인정 확률이 80%이상이었던 투구 분포도 (=Hardball Times)스트라이크 인정 확률이 80%이상이었던 투구 분포도 (=Hardball Times)

실제 스트라이크 존이 사각형이 아니었던 것은 MLB도 마찬가지다. 미국 하드볼 타임스(Hardball times)에 따르면 MLB에서도 스트라이크존은 언제나 초타원 형태였다.

심판도 사람인 이상 스트라이크 존 모서리 부근을 스치는 공까지 정확히 판정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기 때문이다.

또, 투수와 타자의 좌우 여부에 따라서 스트라이크 존은 달랐다. 이 역시 ABS에선 일어나지 않는 일이다. ABS 도입 이후 좌타자 바깥쪽 존이 후해졌다는 선수들의 지적이 있었는데 역으로 지난해까지 실제 좌타자 바깥쪽 존이 규정보다 좁았을 가능성이 크다.

타자 입장에서 생각하면 그동안 대각선 모서리 등 스트라이크로 인정되지 않았을 확률이 높았다. 선수들이 ABS의 도입으로 스트라이크존이 바뀌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초타원은 다음 조건을 만족하는 점의 집합이다. | x / a |^n + | y / b |^n=1 / a, b, n 은 양의 실수/
두 점으로부터의 거리의 합이 일정한 점의 집합인 타원과는 수학적인 정의가 다르다.)


스트라이크 존 앞 부분이 아닌 뒤에서 존을 통과하는 이른바 백도어 스트라이크(=팬그래프닷컴)스트라이크 존 앞 부분이 아닌 뒤에서 존을 통과하는 이른바 백도어 스트라이크(=팬그래프닷컴)

■백도어 스트라이크는 스트라이크로 인정받을 확률이 낮았다.

방송사 중계화면 속 스트라이크 존은 사각형 평면이다. 하지만 실제로 스트라이크 존이 3차원 도형이라는 것은 이제는 야구 팬들도 다 아는 사실이다.

스트라이크 존을 앞에서 통과하든 뒤에서 통과하든 똑같은 스트라이크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실제 야구에선 두 경우의 공이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을 확률이 달랐다.

2013년 MLB에서 백도어 스트라이크가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을 확률은 훨씬 낮았다(=팬 그래프 닷컴)2013년 MLB에서 백도어 스트라이크가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을 확률은 훨씬 낮았다(=팬 그래프 닷컴)

팬그래프닷컴의 분석 자료에 따르면 2013년 MLB에서 존 뒤쪽에서 스트라이크존을 통과하는 '백도어 스트라이크'가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을 확률은 31.8%로 현저히 낮았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백도어 스트라이크들은 볼로 판정을 받았다. 타자가 생각하는 가상의 스트라이크존도 아마 그러했을 것이다.

반면, ABS는 이런 백도어 스트라이크도 정확히 잡아낸다. 선수들이 생각하는 스트라이크 존과는 다른 판정이 나오는 이유이다.

또, 투구가 홈플레이트를 통과하는 동안 2인치, 약 5cm 떨어지는데 ABS는 이런 중력에 의한 움직임까지 계산에 넣고 있다.

■타자가 칠 수 없는 공은 스트라이크가 아닐까?

KT 황재균은 "칠 수 없는 공이 스트라이크가 된다."며 ABS에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이에 일부 야구 팬들은 '본인이 못 치는 공은 스트라이크도 아니냐'며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내기도 했다.

스트라이크 존의 역사를 살펴보면 황재균의 말은 일리가 있을지도 모른다. 스트라이크(Strike)는 영어로 '치다'라는 뜻이다. 하지만 야구에선 타자가 치지 않아도 스트라이크다. 스트라이크가 이렇게 다른 의미로 쓰이는 것엔 이유가 있다.

초기 야구에서 타자는 스트라이커(Striker)라고 불리기도 했다. 또, 타자가 배트를 휘둘렀을 때만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았다. 이것이 스트라이크 단어의 유래이다.

하지만 1858년 타자가 스윙하지 않아도 스트라이크로 판정을 받는 'Called strike'의 개념이 도입됐다. 당시 정확한 존은 없었다. 투수가 '부당한(Unfair)' 공을 던졌을 때 볼 판정을 받았는데 '부당한' 공의 기준은 심판의 재량이었다.

1870년대엔 3개의 스트라이크 존이 생긴다. 타자는 '높은 스트라이크 존', '중간 스트라이크 존', '낮은 스트라이크' 존을 타격 전 선택할 수 있었다. 즉, 타자가 자신의 스트라이크 존을 직접 정했던 것이다.

이런 역사를 생각했을 때 타자가 타격을 할 수 있는 범위에 가깝게 스트라이크 존을 설정하는 것은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말이다. 하지만 타자의 성향과 능력마다 그 범위는 각양각색이다.

따라서 규칙으로 임의의 영역을 스트라이크 존으로 정하는 수밖에 없다. 그것은 운영 주체인 사무국과 선수를 포함한 리그 구성원들의 합의에 따라야 할 것이다.

결국, 최근 불거진 논란을 잠재우려면 선수들이 새로운 ABS 존에 적응하거나 구성원들의 합의로 ABS 존을 수정하는 수밖에 없다.

ABS의 도입으로 더욱 공정한 판정이 가능해졌다는 사실엔 이견이 없다. 하지만 올 시즌 피치 클락처럼 충분한 유예 기간을 두고 타자와 투수가 모두 스트라이크라고 인정할 만한 영역을 ABS 존으로 설정했다면 지금의 논란을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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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가 아는 야구와는 달라진 ABS스트라이크존…선수만의 문제일까?
    • 입력 2024-05-09 13:59:34
    • 수정2024-05-09 14:01:22
    스포츠K
2023년과 2024년 스트라이크존 비교 (=KBSN 야구의참견)
지난달 프로야구 최대의 화두는 각 팀의 승패보다 자동투구판정시스템(ABS)였다.

한국야구 역사상 최고의 투수인 류현진(한화)이 ABS에 대한 불만을 제기했고, 반대로 타자인 황재균(KT)은 ABS의 판정에 항의하다 퇴장까지 당했다.

류현진과 황재균은 메이저리그(MLB) 무대까지 경험한 베테랑인 만큼 설득력이 있는 의견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상황이 다르다. 이의를 제기한 상대가 인간 심판이 아니라 컴퓨터였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투구추적데이터까지 공개해 ABS의 판정이 틀리지 않았음을 입증했다.

ABS의 오류가 아니라면 선수들이 10년 넘게 경험해 온 스트라이크 존을 착각한 것일까?

■실제론 타원이었던 스트라이크존…규정과 현실의 괴리

스트라이크존의 단면이 '규정상' 사각형인 것은 ABS 도입 이전이나 이후나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현실 야구에서 스트라이크존의 단면은 타원형, 정확히는 초타원(Superellipse)이었다.

스트라이크 인정 확률이 80%이상이었던 투구 분포도 (=Hardball Times)
실제 스트라이크 존이 사각형이 아니었던 것은 MLB도 마찬가지다. 미국 하드볼 타임스(Hardball times)에 따르면 MLB에서도 스트라이크존은 언제나 초타원 형태였다.

심판도 사람인 이상 스트라이크 존 모서리 부근을 스치는 공까지 정확히 판정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기 때문이다.

또, 투수와 타자의 좌우 여부에 따라서 스트라이크 존은 달랐다. 이 역시 ABS에선 일어나지 않는 일이다. ABS 도입 이후 좌타자 바깥쪽 존이 후해졌다는 선수들의 지적이 있었는데 역으로 지난해까지 실제 좌타자 바깥쪽 존이 규정보다 좁았을 가능성이 크다.

타자 입장에서 생각하면 그동안 대각선 모서리 등 스트라이크로 인정되지 않았을 확률이 높았다. 선수들이 ABS의 도입으로 스트라이크존이 바뀌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초타원은 다음 조건을 만족하는 점의 집합이다. | x / a |^n + | y / b |^n=1 / a, b, n 은 양의 실수/
두 점으로부터의 거리의 합이 일정한 점의 집합인 타원과는 수학적인 정의가 다르다.)


스트라이크 존 앞 부분이 아닌 뒤에서 존을 통과하는 이른바 백도어 스트라이크(=팬그래프닷컴)
■백도어 스트라이크는 스트라이크로 인정받을 확률이 낮았다.

방송사 중계화면 속 스트라이크 존은 사각형 평면이다. 하지만 실제로 스트라이크 존이 3차원 도형이라는 것은 이제는 야구 팬들도 다 아는 사실이다.

스트라이크 존을 앞에서 통과하든 뒤에서 통과하든 똑같은 스트라이크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실제 야구에선 두 경우의 공이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을 확률이 달랐다.

2013년 MLB에서 백도어 스트라이크가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을 확률은 훨씬 낮았다(=팬 그래프 닷컴)
팬그래프닷컴의 분석 자료에 따르면 2013년 MLB에서 존 뒤쪽에서 스트라이크존을 통과하는 '백도어 스트라이크'가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을 확률은 31.8%로 현저히 낮았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백도어 스트라이크들은 볼로 판정을 받았다. 타자가 생각하는 가상의 스트라이크존도 아마 그러했을 것이다.

반면, ABS는 이런 백도어 스트라이크도 정확히 잡아낸다. 선수들이 생각하는 스트라이크 존과는 다른 판정이 나오는 이유이다.

또, 투구가 홈플레이트를 통과하는 동안 2인치, 약 5cm 떨어지는데 ABS는 이런 중력에 의한 움직임까지 계산에 넣고 있다.

■타자가 칠 수 없는 공은 스트라이크가 아닐까?

KT 황재균은 "칠 수 없는 공이 스트라이크가 된다."며 ABS에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이에 일부 야구 팬들은 '본인이 못 치는 공은 스트라이크도 아니냐'며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내기도 했다.

스트라이크 존의 역사를 살펴보면 황재균의 말은 일리가 있을지도 모른다. 스트라이크(Strike)는 영어로 '치다'라는 뜻이다. 하지만 야구에선 타자가 치지 않아도 스트라이크다. 스트라이크가 이렇게 다른 의미로 쓰이는 것엔 이유가 있다.

초기 야구에서 타자는 스트라이커(Striker)라고 불리기도 했다. 또, 타자가 배트를 휘둘렀을 때만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았다. 이것이 스트라이크 단어의 유래이다.

하지만 1858년 타자가 스윙하지 않아도 스트라이크로 판정을 받는 'Called strike'의 개념이 도입됐다. 당시 정확한 존은 없었다. 투수가 '부당한(Unfair)' 공을 던졌을 때 볼 판정을 받았는데 '부당한' 공의 기준은 심판의 재량이었다.

1870년대엔 3개의 스트라이크 존이 생긴다. 타자는 '높은 스트라이크 존', '중간 스트라이크 존', '낮은 스트라이크' 존을 타격 전 선택할 수 있었다. 즉, 타자가 자신의 스트라이크 존을 직접 정했던 것이다.

이런 역사를 생각했을 때 타자가 타격을 할 수 있는 범위에 가깝게 스트라이크 존을 설정하는 것은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말이다. 하지만 타자의 성향과 능력마다 그 범위는 각양각색이다.

따라서 규칙으로 임의의 영역을 스트라이크 존으로 정하는 수밖에 없다. 그것은 운영 주체인 사무국과 선수를 포함한 리그 구성원들의 합의에 따라야 할 것이다.

결국, 최근 불거진 논란을 잠재우려면 선수들이 새로운 ABS 존에 적응하거나 구성원들의 합의로 ABS 존을 수정하는 수밖에 없다.

ABS의 도입으로 더욱 공정한 판정이 가능해졌다는 사실엔 이견이 없다. 하지만 올 시즌 피치 클락처럼 충분한 유예 기간을 두고 타자와 투수가 모두 스트라이크라고 인정할 만한 영역을 ABS 존으로 설정했다면 지금의 논란을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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