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 땐 빠떼루죠”…레슬링 해설가 김영준씨 별세 [지금뉴스]
입력 2024.05.15 (16:47)
수정 2024.05.15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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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빠떼루아저씨'라고 불린 레슬링경기 해설가 김영준 씨가 오늘 향년 76세에 지병으로 별세했습니다.
1970년부터 레슬링 국가대표로 활동한 김 씨는 1984년부터 레슬링 해설가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선수를 매트 중앙에 엎드리게 하는 '파테르'를 빠르고 투박한 말투로 '빠떼루'라고 발음하면서 '빠떼루아저씨'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습니다.
김영준 / 레슬링 해설가 (1996년 10월)
바로 바로 빠데루를 주는 이런 찬스가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런 상황은 위험하기 때문에 좀더 공격이 방어다운 경기를 벌려야 할 겁니다.
특히,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 해설을 계기로 인기가 치솟으면서 예능프로그램에도 나오며 유명세를 이어갔습니다.
레슬링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해온 김 씨는 1997년 한나라당 이회창 대통령 후보의 특보를 맡아 잠시 정치권에 몸을 담기도 했습니다.
1998년부터는 경기대를 시작으로 스포츠과학대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1997년 회고록에서 김 씨는 "레슬링은 내 인생이었다"라고 적기도 했습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고, 발인은 18일입니다.
KBS 뉴스 이세중입니다.
1970년부터 레슬링 국가대표로 활동한 김 씨는 1984년부터 레슬링 해설가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선수를 매트 중앙에 엎드리게 하는 '파테르'를 빠르고 투박한 말투로 '빠떼루'라고 발음하면서 '빠떼루아저씨'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습니다.
김영준 / 레슬링 해설가 (1996년 10월)
바로 바로 빠데루를 주는 이런 찬스가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런 상황은 위험하기 때문에 좀더 공격이 방어다운 경기를 벌려야 할 겁니다.
특히,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 해설을 계기로 인기가 치솟으면서 예능프로그램에도 나오며 유명세를 이어갔습니다.
레슬링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해온 김 씨는 1997년 한나라당 이회창 대통령 후보의 특보를 맡아 잠시 정치권에 몸을 담기도 했습니다.
1998년부터는 경기대를 시작으로 스포츠과학대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1997년 회고록에서 김 씨는 "레슬링은 내 인생이었다"라고 적기도 했습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고, 발인은 18일입니다.
KBS 뉴스 이세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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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4-05-15 16:47:17
- 수정2024-05-15 22:14:07
이른바 '빠떼루아저씨'라고 불린 레슬링경기 해설가 김영준 씨가 오늘 향년 76세에 지병으로 별세했습니다.
1970년부터 레슬링 국가대표로 활동한 김 씨는 1984년부터 레슬링 해설가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선수를 매트 중앙에 엎드리게 하는 '파테르'를 빠르고 투박한 말투로 '빠떼루'라고 발음하면서 '빠떼루아저씨'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습니다.
김영준 / 레슬링 해설가 (1996년 10월)
바로 바로 빠데루를 주는 이런 찬스가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런 상황은 위험하기 때문에 좀더 공격이 방어다운 경기를 벌려야 할 겁니다.
특히,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 해설을 계기로 인기가 치솟으면서 예능프로그램에도 나오며 유명세를 이어갔습니다.
레슬링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해온 김 씨는 1997년 한나라당 이회창 대통령 후보의 특보를 맡아 잠시 정치권에 몸을 담기도 했습니다.
1998년부터는 경기대를 시작으로 스포츠과학대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1997년 회고록에서 김 씨는 "레슬링은 내 인생이었다"라고 적기도 했습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고, 발인은 18일입니다.
KBS 뉴스 이세중입니다.
1970년부터 레슬링 국가대표로 활동한 김 씨는 1984년부터 레슬링 해설가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선수를 매트 중앙에 엎드리게 하는 '파테르'를 빠르고 투박한 말투로 '빠떼루'라고 발음하면서 '빠떼루아저씨'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습니다.
김영준 / 레슬링 해설가 (1996년 10월)
바로 바로 빠데루를 주는 이런 찬스가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런 상황은 위험하기 때문에 좀더 공격이 방어다운 경기를 벌려야 할 겁니다.
특히,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 해설을 계기로 인기가 치솟으면서 예능프로그램에도 나오며 유명세를 이어갔습니다.
레슬링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해온 김 씨는 1997년 한나라당 이회창 대통령 후보의 특보를 맡아 잠시 정치권에 몸을 담기도 했습니다.
1998년부터는 경기대를 시작으로 스포츠과학대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1997년 회고록에서 김 씨는 "레슬링은 내 인생이었다"라고 적기도 했습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고, 발인은 18일입니다.
KBS 뉴스 이세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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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중 기자 center@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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