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국 조선인 수송 중 폭발’ 우키시마호 승선명부 3종 공개돼

입력 2024.05.23 (21:56) 수정 2024.05.23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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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귀국길에 오른 조선인을 수송하다 폭발해 침몰한 ‘우키시마호’ 사건과 관련해, 그동안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진 승선자 명부를 일본 정부가 보관해온 것으로 확인됐다고 교도통신이 오늘(23일) 보도했습니다.

일본 후생노동성은 정보공개청구에 따라 3가지 종류의 명부를 공개했으며, 이 명부는 해군과 기업이 각각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고 교도통신은 전했습니다.

해당 명부의 작성 주체는 아오모리현의 오미나토 해군시설부와 제4부대장, 일본통운 오미나토 지점으로 기록돼있으며, 승선자의 이름과 생일 등은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가려졌습니다.

도시샤 대학 오타 오사무 교수는 “당시 상황을 알 수 있는 중요한 명부로, 전시 동원된 조선인 노동자에 관한 한일 정부의 약속에 따라 한국 정부에 넘겨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일본 정부는 그동안 유족들의 국가배상청구 소송에서 승선자 명부가 선박 침몰로 사라졌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이번에 공개된 명부에 대해 후생노동성은 사고 후 조사를 거쳐 작성된 명부라며, 승선 시 작성해 배에 비치한 승선자 명부와는 작성 시기가 달라 별개의 것이라고 해명했습니다.

우키시마호는 1945년 광복 직후 귀국하려는 재일 조선인을 태우고 부산으로 향한 일본의 해군 수송선입니다.

이 선박은 1945년 8월 22일 아오모리현 오미나토항을 출발해 이틀 뒤인 24일 교토 마이즈루항에 기항하려다 선체 밑부분에서 폭발이 일어나 침몰했습니다.

일본은 우키시마호가 기뢰를 건드려 폭발했고 승선자 3,700여 명 중 524명이 숨졌다고 발표했지만, 유족들은 일본이 고의로 배를 폭파시켰고 승선자 7천여 명 가운데 3천 명 이상이 숨졌다고 주장했습니다.

일본은 사고 후 수년간 선체를 인양하거나 유해를 회수하지 않았습니다.

생존자와 유족들은 1992년 일본 정부의 안전관리 의무 위반을 문제 삼아 일본 법원에 소송을 냈지만 2004년 패소가 확정됐습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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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귀국 조선인 수송 중 폭발’ 우키시마호 승선명부 3종 공개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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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
1945년 귀국길에 오른 조선인을 수송하다 폭발해 침몰한 ‘우키시마호’ 사건과 관련해, 그동안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진 승선자 명부를 일본 정부가 보관해온 것으로 확인됐다고 교도통신이 오늘(23일) 보도했습니다.

일본 후생노동성은 정보공개청구에 따라 3가지 종류의 명부를 공개했으며, 이 명부는 해군과 기업이 각각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고 교도통신은 전했습니다.

해당 명부의 작성 주체는 아오모리현의 오미나토 해군시설부와 제4부대장, 일본통운 오미나토 지점으로 기록돼있으며, 승선자의 이름과 생일 등은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가려졌습니다.

도시샤 대학 오타 오사무 교수는 “당시 상황을 알 수 있는 중요한 명부로, 전시 동원된 조선인 노동자에 관한 한일 정부의 약속에 따라 한국 정부에 넘겨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일본 정부는 그동안 유족들의 국가배상청구 소송에서 승선자 명부가 선박 침몰로 사라졌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이번에 공개된 명부에 대해 후생노동성은 사고 후 조사를 거쳐 작성된 명부라며, 승선 시 작성해 배에 비치한 승선자 명부와는 작성 시기가 달라 별개의 것이라고 해명했습니다.

우키시마호는 1945년 광복 직후 귀국하려는 재일 조선인을 태우고 부산으로 향한 일본의 해군 수송선입니다.

이 선박은 1945년 8월 22일 아오모리현 오미나토항을 출발해 이틀 뒤인 24일 교토 마이즈루항에 기항하려다 선체 밑부분에서 폭발이 일어나 침몰했습니다.

일본은 우키시마호가 기뢰를 건드려 폭발했고 승선자 3,700여 명 중 524명이 숨졌다고 발표했지만, 유족들은 일본이 고의로 배를 폭파시켰고 승선자 7천여 명 가운데 3천 명 이상이 숨졌다고 주장했습니다.

일본은 사고 후 수년간 선체를 인양하거나 유해를 회수하지 않았습니다.

생존자와 유족들은 1992년 일본 정부의 안전관리 의무 위반을 문제 삼아 일본 법원에 소송을 냈지만 2004년 패소가 확정됐습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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