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 북한] 가난·열악한 삶…농촌 떠나는 北 청년들

입력 2024.06.01 (08:48) 수정 2024.06.01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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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지역에 따라 조금씩 차이는 있겠지만, 이달 중순까지는 대부분의 농촌에서 모내기가 한창일 텐데요.

이런 농번기엔 고질적으로 반복되는 문제가 있죠.

바로 일손 부족입니다.

북한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농촌에서 태어난 청년 세대들 역시 농사일보다는 일반 노동자의 삶을 희망하는 경우가 많다는데요.

이동과 거주의 자유가 제한되는 북한 사회의 특성상 신분을 세탁해 농촌을 떠나기도 한다고 합니다.

북한 농민들의 현실을 <클로즈업 북한>에서 짚어봤습니다.

[리포트]

자동 살수 장치가 연신 논밭을 적시고 농민들도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북한 농촌의 모내기 현장.

북한 매체들은 모내기가 한 해 농사 운명을 좌우한다며 특집 방송까지 편성해 농민들을 독려하고 있습니다.

[조선중앙TV/5월 16일 : "여러분, 모내기 철이 왔습니다. 모내기는 한 해 농사의 운명을 좌우하고 품이 제일 많이 들며 절대로 시기를 놓치면 안 되는 가장 중요한 영농 공정입니다."]

선전선동원들도 농촌으로 총출동해 각종 공연을 펼치는데요.

그 효과가 상당하다고 선전합니다.

[박영미/황해북도 농근맹위원회 위원장 : "농업 근로자들의 자각이 비상히 높아졌고, 승벽심(경쟁심) 역시 최대로 발현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북한 당국이 농번기를 대비해 가장 공을 들여 온 것은 다름 아닌 인력 확보입니다.

올 초부터 '탄원'이라는 이름으로 청년들의 농촌 진출을 부각해왔는데요.

[백일훈/농장 탄원자 : "저는 한 몸이 한 줌의 거름이 되어서라도 이 땅을 기름지게 하고 증산하고 또 증산하여…"]

모내기를 앞둔 지난달 중순까지도 청년 탄원은 계속됐습니다.

[정은혜/초급청년동맹 부위원장 : "지금 신문과 방송, TV로 우리 청년들의 탄원 소식이 매일과 같이 전해지고 있는데 이것은 우리 청년들의 한결같은 지향이고 시대적 흐름이라고 생각합니다."]

북한의 선전대로라면 도시 청년들의 자발적인 귀농인 셈이지만, 농자재가 부족하고 기계화 수준이 낮아 인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북한 농촌의 현실이 반영된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습니다.

[정은이/통일연구원 연구위원 : "농촌 같은 경우 북한 당국에서는 항상 화학화, 기계화, 수리화, 전기화 이런 것들을 외쳤지만 최근엔 고난의 행군 시기보다 더 많이 인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왜냐하면 고난의 행군 이후로 산업이 회복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현재까지는 식량 문제, 농촌 문제, 농업 문제를 인력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방식으로 이어 왔는데 농촌 인구가 부족하니까 도시 노동력을 동원해서 할 수밖에 없는 그런 구조잖아요."]

또 북한 농촌지역의 출산율은 아직 도시에 비해 높은 편이지만 정작 일할 수 있는 나이의 청년들은 농촌을 떠나고 있다는 게 탈북민의 증언인데요.

[권민철/2023년 탈북/가명/음성변조 : "농촌에 젊은 사람이 없어요. 제가 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우리 동네 농장에 청년동맹이 50명은 넘었거든요. 그런데 제가 (한국) 오기 전에는 그 큰 부락에 청년동맹원이 6명인가 5명밖에 안됐어요. 50명 중의 45명은 다 (외부로) 나간 거예요. 농장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북한에선 거주·이동의 자유가 엄격히 제한돼 있어 결과적으로 삶의 터전과 직업이 고착화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청년들이 농촌을 떠난다는 게 극히 어려운 현실입니다.

이런 상황은 북한 TV 연속극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요.

함께 대학 입시 시험을 치르고 결과를 확인하는 주인공 은진과 윤경.

[북한 TV 연속극 '자기를 바치라' : "은진아! 네가 일등이야 일등! 야, 축하해!"]

좋은 성적을 받아든 은진은 자연스럽게 김일성 종합대학 진학을 꿈꿉니다.

하지만 정작 김일성 종합대학 합격증은 성적이 더 낮게 나온 친구 윤경에게 돌아가고.

[북한 TV 연속극 '자기를 바치라' : "자, 종합대학 통지서야! (야, 정말!)"]

1등은 한 은진의 손엔 청진 농업대학 통지서가 주어집니다.

극중 윤경의 아버지는 군당 책임비서, 은진의 아버지는 일반 농장원.

아무리 성적이 우수해도 출신 배경 때문에 농촌을 떠날 수 없는 북한의 현실이 반영된 겁니다.

[북한 TV 연속극 '자기를 바치라' : "농사꾼의 자식이 농업대학이면 과람(과분)하지 덜 되먹게 무슨 놈의 대학 타발이냐. 응?"]

이런 환경에서 북한 청년들은 어떻게 농촌을 벗어나는 것일까요?

답은 바로 신분 세탁에 있습니다.

행정 간부에게 뇌물을 주고 농민이었던 계급 서류를 조작해 노동자 계급으로 탈바꿈하는 건데요.

[권민철/2023년 탈북/가명/음성변조 : "(제 앞으로) 존재하는 문건을 빼서 삭제해 버리는 거죠. 그 문건이 삭제되면 다른 문건, 그러니까 제 출신성분을 위조해서 문건을 하나 개조하는 거죠."]

물론 비용이 많이 들고 위험부담도 큽니다.

[권민철/2023년 탈북/가명/음성변조 : (북한 돈) 천만 원이니까 달러로 천이백. 아무리 신분 세탁을 해도 출처를 캐면 다 나오는 거고, 또 주민 여론이란 게 있잖아요. 걸리면 또 거기에다 뇌물을 줘야 하거든요. 그래야 살아나니까."]

그럼에도 많은 농민들이 서류를 조작해 농촌을 떠나는 이유는 그만큼 '농민의 삶'이 열악하기 때문입니다.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아무리 노력하고 고생해도 대부분의 농민들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겁니다.

[권민철/2023년 탈북/가명/음성변조 : "가장 바라는 게 내가 일한 것만큼 보수를 받는 거. 그걸 제일 바라죠. 내가 일한 것만큼만 보수를 달라 제일 외치는 게 그거예요. 아무리 1년 365일 땀 뻘뻘 흘리며 일을 해도 차려지는(돌아오는) 게 없잖아요."]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기 북한 당국은 각종 지원을 평양에 집중시키고 지방이나 관심권 밖의 시설에는 자력갱생을 강요했습니다.

자연스럽게 식수나 전력, 주택 등의 사회기반의 양극화가 커질 수밖에 없었는데요.

그런 와중에도 농민들은 국가가 지시하는 식량 생산 할당량을 책임져야 했습니다.

거기다 도시 주민들이 장마당을 중심으로 시장화를 경험하며 물질적 수준을 높여 가는 동안 농촌 주민들에겐 이런 기회조차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북한 영화에서까지 청년 세대들의 농촌 기피 현상이 반영되기도 했습니다.

[북한 영화 '도시 처녀 시집와요' : "사실 우리가 트집을 걸자는 건 아니지만 털어놓고 말해 동무들이 농촌에 시집오라면 오겠소?"]

김정은 위원장 집권 이후엔 초과 달성한 농산물을 농민들이 자율적으로 팔아 이득을 얻는 '포전담당제'가 도입되기도 했는데요.

[조선중앙TV/2014년 2월 : "분조에서 생산한 알곡 가운데서 국가가 정한 일정한 몫을 제외한 나머지는 농장원들에게 그들이 번 노력에 따라 현물을 기본으로 하여 분배하도록 해야 합니다."]

하지만 관개시설과 농자재가 부족한 상황에선 할당된 양도 채우기 어렵다는 게 탈북민의 이야깁니다.

[김현옥/2023년 탈북/가명/음성변조 : "뺏기는 가을이라고 가을이 되면 작업반마다 농장 밖에 뜯어 먹을 데가 없으니까 식량 뺏느라고 각 곳에서 다 진을 쳐요. 국가에 바치는 계획금이 있거든요. 그걸 못하면 농장원한테 차려지는(돌아오는) 게 없어요."]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팍팍한 삶.

거기다 농민이라는 신분 때문에 겪는 차별까지 더해져 쳥년들의 농촌 이탈 심리는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권민철/2023년 탈북/가명/음성변조 : "북한에선 농민 계급이 제일 하급이거든요. 완전 바닥이에요. 그래서 밖에 나가서 농민이지만 농민이라는 말을 못 해요. 가깝게 만난 친구고 외지에 나가서 사귀었다가도 내가 농민이다 하면 인식이 싹 달라지거든요. 그때부터. 그다음에 대하는 태도 자체가 달라지고 하니까 농민이라는 수치감이 북한에서 엄청나게 크거든요. 그러니까 계급혁명(신분 세탁) 하는데."]

전문가들은 북한이 농촌의 열악한 환경과 농민들의 처우를 개선하지 않는다면 젊은 세대들의 불만을 키우고 농촌 인구 감소로까지 이어질 것이라 전망하고 있습니다.

[정은이/통일연구원 연구위원 : "최근엔 북한 농촌도 도시화에 영향을 받고 정보의 영향을 받고 삶도 너무나 힘들어졌기 때문에 아이 낳는 걸 기피하는. 오히려 어떻게 하면 도시로 진출할 수 있을 것인가 특히 자신들의 자식들만큼은 신분을 바꿔서 도시로 진출시킬 것인가 그런 것들에 대한 고민이 더 큰 거 같습니다."]

당국의 배려로 농민들이 많은 혜택을 누리고 있다고 선전하는 북한.

[조선중앙TV '애국농민과 애국미' : "올해 농사를 잘 지어 많은 분배를 받게 되니 식량 문제 때문에 고생 고생 다 겪으시는 총비서 동지 생각이 자꾸 나 잠을 이룰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정작 북한 농민들은 더 나은 삶을 꿈꾸며 고향을 떠날 기회만 엿보는 것이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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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6-01 08:48:50
    • 수정2024-06-01 09:4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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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지역에 따라 조금씩 차이는 있겠지만, 이달 중순까지는 대부분의 농촌에서 모내기가 한창일 텐데요.

이런 농번기엔 고질적으로 반복되는 문제가 있죠.

바로 일손 부족입니다.

북한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농촌에서 태어난 청년 세대들 역시 농사일보다는 일반 노동자의 삶을 희망하는 경우가 많다는데요.

이동과 거주의 자유가 제한되는 북한 사회의 특성상 신분을 세탁해 농촌을 떠나기도 한다고 합니다.

북한 농민들의 현실을 <클로즈업 북한>에서 짚어봤습니다.

[리포트]

자동 살수 장치가 연신 논밭을 적시고 농민들도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북한 농촌의 모내기 현장.

북한 매체들은 모내기가 한 해 농사 운명을 좌우한다며 특집 방송까지 편성해 농민들을 독려하고 있습니다.

[조선중앙TV/5월 16일 : "여러분, 모내기 철이 왔습니다. 모내기는 한 해 농사의 운명을 좌우하고 품이 제일 많이 들며 절대로 시기를 놓치면 안 되는 가장 중요한 영농 공정입니다."]

선전선동원들도 농촌으로 총출동해 각종 공연을 펼치는데요.

그 효과가 상당하다고 선전합니다.

[박영미/황해북도 농근맹위원회 위원장 : "농업 근로자들의 자각이 비상히 높아졌고, 승벽심(경쟁심) 역시 최대로 발현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북한 당국이 농번기를 대비해 가장 공을 들여 온 것은 다름 아닌 인력 확보입니다.

올 초부터 '탄원'이라는 이름으로 청년들의 농촌 진출을 부각해왔는데요.

[백일훈/농장 탄원자 : "저는 한 몸이 한 줌의 거름이 되어서라도 이 땅을 기름지게 하고 증산하고 또 증산하여…"]

모내기를 앞둔 지난달 중순까지도 청년 탄원은 계속됐습니다.

[정은혜/초급청년동맹 부위원장 : "지금 신문과 방송, TV로 우리 청년들의 탄원 소식이 매일과 같이 전해지고 있는데 이것은 우리 청년들의 한결같은 지향이고 시대적 흐름이라고 생각합니다."]

북한의 선전대로라면 도시 청년들의 자발적인 귀농인 셈이지만, 농자재가 부족하고 기계화 수준이 낮아 인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북한 농촌의 현실이 반영된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습니다.

[정은이/통일연구원 연구위원 : "농촌 같은 경우 북한 당국에서는 항상 화학화, 기계화, 수리화, 전기화 이런 것들을 외쳤지만 최근엔 고난의 행군 시기보다 더 많이 인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왜냐하면 고난의 행군 이후로 산업이 회복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현재까지는 식량 문제, 농촌 문제, 농업 문제를 인력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방식으로 이어 왔는데 농촌 인구가 부족하니까 도시 노동력을 동원해서 할 수밖에 없는 그런 구조잖아요."]

또 북한 농촌지역의 출산율은 아직 도시에 비해 높은 편이지만 정작 일할 수 있는 나이의 청년들은 농촌을 떠나고 있다는 게 탈북민의 증언인데요.

[권민철/2023년 탈북/가명/음성변조 : "농촌에 젊은 사람이 없어요. 제가 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우리 동네 농장에 청년동맹이 50명은 넘었거든요. 그런데 제가 (한국) 오기 전에는 그 큰 부락에 청년동맹원이 6명인가 5명밖에 안됐어요. 50명 중의 45명은 다 (외부로) 나간 거예요. 농장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북한에선 거주·이동의 자유가 엄격히 제한돼 있어 결과적으로 삶의 터전과 직업이 고착화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청년들이 농촌을 떠난다는 게 극히 어려운 현실입니다.

이런 상황은 북한 TV 연속극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요.

함께 대학 입시 시험을 치르고 결과를 확인하는 주인공 은진과 윤경.

[북한 TV 연속극 '자기를 바치라' : "은진아! 네가 일등이야 일등! 야, 축하해!"]

좋은 성적을 받아든 은진은 자연스럽게 김일성 종합대학 진학을 꿈꿉니다.

하지만 정작 김일성 종합대학 합격증은 성적이 더 낮게 나온 친구 윤경에게 돌아가고.

[북한 TV 연속극 '자기를 바치라' : "자, 종합대학 통지서야! (야, 정말!)"]

1등은 한 은진의 손엔 청진 농업대학 통지서가 주어집니다.

극중 윤경의 아버지는 군당 책임비서, 은진의 아버지는 일반 농장원.

아무리 성적이 우수해도 출신 배경 때문에 농촌을 떠날 수 없는 북한의 현실이 반영된 겁니다.

[북한 TV 연속극 '자기를 바치라' : "농사꾼의 자식이 농업대학이면 과람(과분)하지 덜 되먹게 무슨 놈의 대학 타발이냐. 응?"]

이런 환경에서 북한 청년들은 어떻게 농촌을 벗어나는 것일까요?

답은 바로 신분 세탁에 있습니다.

행정 간부에게 뇌물을 주고 농민이었던 계급 서류를 조작해 노동자 계급으로 탈바꿈하는 건데요.

[권민철/2023년 탈북/가명/음성변조 : "(제 앞으로) 존재하는 문건을 빼서 삭제해 버리는 거죠. 그 문건이 삭제되면 다른 문건, 그러니까 제 출신성분을 위조해서 문건을 하나 개조하는 거죠."]

물론 비용이 많이 들고 위험부담도 큽니다.

[권민철/2023년 탈북/가명/음성변조 : (북한 돈) 천만 원이니까 달러로 천이백. 아무리 신분 세탁을 해도 출처를 캐면 다 나오는 거고, 또 주민 여론이란 게 있잖아요. 걸리면 또 거기에다 뇌물을 줘야 하거든요. 그래야 살아나니까."]

그럼에도 많은 농민들이 서류를 조작해 농촌을 떠나는 이유는 그만큼 '농민의 삶'이 열악하기 때문입니다.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아무리 노력하고 고생해도 대부분의 농민들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겁니다.

[권민철/2023년 탈북/가명/음성변조 : "가장 바라는 게 내가 일한 것만큼 보수를 받는 거. 그걸 제일 바라죠. 내가 일한 것만큼만 보수를 달라 제일 외치는 게 그거예요. 아무리 1년 365일 땀 뻘뻘 흘리며 일을 해도 차려지는(돌아오는) 게 없잖아요."]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기 북한 당국은 각종 지원을 평양에 집중시키고 지방이나 관심권 밖의 시설에는 자력갱생을 강요했습니다.

자연스럽게 식수나 전력, 주택 등의 사회기반의 양극화가 커질 수밖에 없었는데요.

그런 와중에도 농민들은 국가가 지시하는 식량 생산 할당량을 책임져야 했습니다.

거기다 도시 주민들이 장마당을 중심으로 시장화를 경험하며 물질적 수준을 높여 가는 동안 농촌 주민들에겐 이런 기회조차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북한 영화에서까지 청년 세대들의 농촌 기피 현상이 반영되기도 했습니다.

[북한 영화 '도시 처녀 시집와요' : "사실 우리가 트집을 걸자는 건 아니지만 털어놓고 말해 동무들이 농촌에 시집오라면 오겠소?"]

김정은 위원장 집권 이후엔 초과 달성한 농산물을 농민들이 자율적으로 팔아 이득을 얻는 '포전담당제'가 도입되기도 했는데요.

[조선중앙TV/2014년 2월 : "분조에서 생산한 알곡 가운데서 국가가 정한 일정한 몫을 제외한 나머지는 농장원들에게 그들이 번 노력에 따라 현물을 기본으로 하여 분배하도록 해야 합니다."]

하지만 관개시설과 농자재가 부족한 상황에선 할당된 양도 채우기 어렵다는 게 탈북민의 이야깁니다.

[김현옥/2023년 탈북/가명/음성변조 : "뺏기는 가을이라고 가을이 되면 작업반마다 농장 밖에 뜯어 먹을 데가 없으니까 식량 뺏느라고 각 곳에서 다 진을 쳐요. 국가에 바치는 계획금이 있거든요. 그걸 못하면 농장원한테 차려지는(돌아오는) 게 없어요."]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팍팍한 삶.

거기다 농민이라는 신분 때문에 겪는 차별까지 더해져 쳥년들의 농촌 이탈 심리는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권민철/2023년 탈북/가명/음성변조 : "북한에선 농민 계급이 제일 하급이거든요. 완전 바닥이에요. 그래서 밖에 나가서 농민이지만 농민이라는 말을 못 해요. 가깝게 만난 친구고 외지에 나가서 사귀었다가도 내가 농민이다 하면 인식이 싹 달라지거든요. 그때부터. 그다음에 대하는 태도 자체가 달라지고 하니까 농민이라는 수치감이 북한에서 엄청나게 크거든요. 그러니까 계급혁명(신분 세탁) 하는데."]

전문가들은 북한이 농촌의 열악한 환경과 농민들의 처우를 개선하지 않는다면 젊은 세대들의 불만을 키우고 농촌 인구 감소로까지 이어질 것이라 전망하고 있습니다.

[정은이/통일연구원 연구위원 : "최근엔 북한 농촌도 도시화에 영향을 받고 정보의 영향을 받고 삶도 너무나 힘들어졌기 때문에 아이 낳는 걸 기피하는. 오히려 어떻게 하면 도시로 진출할 수 있을 것인가 특히 자신들의 자식들만큼은 신분을 바꿔서 도시로 진출시킬 것인가 그런 것들에 대한 고민이 더 큰 거 같습니다."]

당국의 배려로 농민들이 많은 혜택을 누리고 있다고 선전하는 북한.

[조선중앙TV '애국농민과 애국미' : "올해 농사를 잘 지어 많은 분배를 받게 되니 식량 문제 때문에 고생 고생 다 겪으시는 총비서 동지 생각이 자꾸 나 잠을 이룰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정작 북한 농민들은 더 나은 삶을 꿈꾸며 고향을 떠날 기회만 엿보는 것이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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