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보다] 소음 살인, 22명의 죽음

입력 2024.07.07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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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보다 19회 I] 소음 살인, 22명의 죽음


한 아파트 복도의 CCTV 영상. 긴 점퍼를 입은 사람이 계단을 올라오더니, 갑자기 소주병을 던지고...

현관문을 사정없이 발로 찹니다.

층간 소음 피해를 주장하던 이웃 주민의 보복.

주체하지 못한 분노는, 때로 극단적 범행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지난달 2일, 서울 강서구의 한 빌라에 살던 50대 여성이 살해됐습니다.


윗집에 살던 40대 남성이 옥상에서 흉기를 휘두른 겁니다.

<녹취> 이웃 주민 (음성 변조)
“(가해자가) 최근 들어 환청 같은 거 많이 듣는다고. 밑에 집에서 층간 소음이 일어났다고 혼자 생각을 하고...”

올해 초, 경남 사천의 한 빌라에서도 이웃 간 살인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소음에 불만을 품은 50대 남성이 위층 주민을 살해한 겁니다.


<녹취> 사건 당시 경찰 브리핑
“가해자는 당시 소주 세 병을 마신 상태였습니다. 평소 계단에서 쿵쿵거리는 소리, 그런 것에 좀 예민해져 있었고.”

반복되는 ‘소음 살인’ 사건. 비극적인 죽음을 막을 방법은 없는 걸까요?


■ “이런 일에 사람을 죽이는 게 어디 있습니까?”

<인터뷰> 정해용 / 층간 소음 살인 사건 피해자 유족
저는 정해용이라고 부릅니다. 지난 1월 28일 경상남도 사천시 건물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난 피해자 박은화 씨 남편 되는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아내가 세상을 떠난 지 5개월. 해용 씨는 아직도 그날의 기억이 생생합니다.

<인터뷰> 정해용
오후에 제가 볼일 보고 있는데 병원에서 전화가 왔더라고요. 박은화 씨 남편 되냐. 예, 맞습니다. 놀랐죠. 저는 놀랐어요. 뭔 일로? 가보니까 그 모양이 되고... 저는 기절할 뻔했어요. 칼에 그리 사고를 당한 그 우리 집사람을 보고 너무 놀라 가지고...


가해자는 부부가 살던 집 아래층에 살던 50대 남성. 지난해 가을, 이 빌라로 이사한 사람이었습니다.

<인터뷰> 정해용
제가 건설 현장 일을 하다 보니까 아침에 좀 일찍 나갑니다. 안전화를 신고 성인이 계단을 밟고 내려가면 소리가 나기 마련 아닙니까. 그래서 한 번 (저한테) 그러더라고요. ‘아니. 계단을 소리 안 나게 다니라’고. (그래서 제가) ‘웬만하면 조용히 다닐게요.’ 그랬다고요.

하지만, 아래층 남성의 항의는 계속됐습니다.

<인터뷰> 정해용
한 번은 차 열쇠를 집에 두고 까먹고 안 챙겨서 열쇠 가지러 올라갔다 내려왔다 했다고요. 근데 갑자기 문을 열고 눈이 동그래져서 ‘왜 이래 왔다 갔다 하는데!’ 하면서 소리를 지르더라고요. ‘아, 예. 죄송합니다.’ 제가 이렇게 차 열쇠를 보이면서 화해를 하는 식으로 얘기를 하니까, 더 할 말이 없으니까 문을 쾅 닫고 들어가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속으로 ‘이야. 이 사람 이상하다...’

이웃과 싸우며 지낼 순 없으니 조심하자고 다짐했던 부부. 월세 계약이 끝나는 대로 이사 갈 계획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사를 불과 4개월여 앞둔 지난 1월, 사건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아래층 남성이 복도에서 만난 해용 씨 아내와 소음 문제로 언쟁하다 흉기를 휘두른 겁니다.

<인터뷰> 정해용
아, 이 사람 성격이 괴벽하고, 뭐 신경이 예민하거나 괴벽하고 이렇구나 생각을 했지, 이런 일에 사람을 죽이는 게 어디 있습니까? 세상에.

■ 10년간 22명 사망…‘소음 살인’의 심리


2013년 설 연휴 첫날, 윗집과 층간 소음 문제로 다투다 형제 2명을 살해한 40대.

소음에 불만을 품고 윗집에 무단 침입해 60대 여성을 잔혹하게 살해한 30대 남성.

어떻게 소음을 이유로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는 걸까?

<인터뷰> 김성희 / 경찰대학 치안정책연구소 연구관 ‧ 범죄심리학 박사
뇌가 느끼는 이 고통의, 고통을 느끼는 영역이 신체적인 고통과 정서적인 고통을 느끼는 영역이 거의 동일해요. 우리가 죽을 만큼 맞으면 죽겠다는 생각을 하듯이 이 정서적인, 부정적인 정서 경험을 오래 하면 느끼는 통증은 거의 유사합니다. 내가 소리라는 보이지 않는 물체로 매일 맞고 있는 고통을 느낀 거랑 똑같은 경험을 하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까 엄청난 공격성이 올라오는 거죠. 죽여 버리고 싶다.


범죄심리학자 김성희 박사와 함께 최근 10년간의 ‘소음 살인’ 사건 판결문을 분석했습니다.

2014년 이후 살인, 살인미수 등 사람을 죽일 의도로 자행된 범행은 모두 55건. 그 결과 22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생명이 위독했던 경우를 더하면, 희생자는 35명으로 늘어납니다.

<인터뷰> 김성희 / 경찰대학 치안정책연구소 연구관 ‧ 범죄심리학 박사
살인의 고의를 가지고 적극적으로 살해 행동을 했는데 119라든가 의료 기술의 발달로 인해 다행히 생명을 건진 분들이 많다는 부분들이죠. (살인) 미수까지 포함하면 훨씬 많은 인원들이, 1년에 적게 잡아도 3~4명 정도가 살해당하고 있는 거죠. 즉 분기별로 한 명 정도는 이웃 간 층간 소음이 시비가 돼서 살해되는 양상이고요.


한 가족이 메신저에서 나눈 대화입니다. 죽이고 싶다는 말을 반복합니다.

윗집 사람들을 두고 나눈 대화였습니다.

이들의 위층에 사는 강 모 씨 가족. 아랫집에서 소음을 이유로 손해배상 소송을 당했고, 그 재판 과정에서 대화 내용을 접하게 됐습니다.

항의를 여러 번 받긴 했지만, 자신들을 죽이고 싶다는 대화 내용은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인터뷰> 강00 / 층간 소음 분쟁 당사자(윗집)
제가 그걸 보고 나서 계속 잠을 못 잤거든요, 진짜. 또 되새겨지고 되새겨 계속 보게 되고. 애들한테 이제 해코지할까 봐 그것도 생각이 문득문득 나는 거예요. 만약에 우리 애가 할머니랑 이렇게 가고 있는데 때리면 어떡하나 뭘 쑤시면 어떡하나. 혼자 이제 계속 그런 이상한 나쁜 생각을 하게 되니까 마음이 힘들었죠.

죽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심각한 소음이 있었던 걸까?

최근 1심 법원은 윗집이 참을 수 없는 수준의 생활 소음을 냈다고 보기 부족하다며 아랫집 패소 판결을 내렸습니다.


소음의 크기가 문제는 아니었다는 겁니다.

최근 10년간 일어난 소음 살인 사건 판결문에서도, 피해자가 유발한 소음은 심하지 않았다는 내용들을 볼 수 있습니다.


<인터뷰> 차상곤 / 공동주택생활소음관리협회 협회장 ‧ 건축공학 박사
소음이라는 건 주관성이거든요. 침에 살짝 찔려서 굉장히 고통을 느끼는 분이 있는 반면에, 꾹 찔려도 ‘나 이 정도는 참을 수 있어’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소음도 그렇다는 거죠. 위층에서 작은 소리만 나도 벌써 귀가 트여 버렸어요. 위층 사람 얼굴만 봐도 좀 안 좋은 소리로 이제 살인의 충동이 일어나고.

■ 소음→불만→갈등→범행…살인 막을 ‘골든타임’은?

한 아파트의 CCTV 영상. 현관문을 마구 걷어차더니 황급히 사라집니다.

보름 뒤 같은 장소.

한 남성이 강아지를 안고 집안으로 들어갑니다. 30초 뒤, 누군가가 계단을 올라와 힘껏 병을 던집니다.


소음 피해를 호소하던 이웃집 남성이 윗집을 겨냥해 벌인 일이었습니다.

분쟁이 시작된 건 올해 초. 처음엔 말로 항의하는 정도였습니다.

<인터뷰> 층간 소음 보복 피해 제보자 (음성 변조)
1월쯤이었던 것 같아요. 1월. 처음에는 찾아와서 왜 이렇게 쿵쿵 거리냐고 그냥 말씀만 해주셨고 (저희는) 죄송하다고 했죠. 그 다음에 왔을 때도 똑같은 내용이었어요. 나갔다 들어온 지 얼마 안 되다 보니까 저희가 없을 때 그 소리가 났는데도...

소음 방지용 매트도 깔았지만 항의는 계속됐습니다.

얼마 뒤, 이상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인터뷰> 층간 소음 보복 피해 제보자 (음성 변조)
(현관에) 담배꽁초가 이렇게 버려져 있는 거예요. 택배가 타 있고. 그 다음에 3일인가 후에 또 그런 일이 또 있었어요. 그때는 이제 (복도에) 맥주도 붓고.


결국 현관에 CCTV를 달았습니다.

<인터뷰> 층간 소음 보복 피해 제보자 (음성 변조)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적이 있었어요. 근데 그때는 그분은 쓰레기를 버리려고 이렇게 내려간 건데. 1층에서 내려야 하는데 안 내리고 지하까지 가더라고요. 안 내리고 저희 내리는 거 지켜보다가 올라가고. (아내가) 엘리베이터 타기 엄청 무서워했었어요.

그러던 4월의 어느 날.

<인터뷰> 층간 소음 보복 피해 제보자 (음성 변조)
쉬는 날이었어요. 청소를 하고 있었거든요. 근데 갑자기 문을 발로 차는 소리가 나는 거예요. 그 사람이 롱패딩을 입고 와 가지고 이렇게 발로 차고 있더라고요. 현관문을. 이게 뭔 일인가 싶어 가지고 손도 떨리고 하더라고요. 이 사람이 지금이야 그냥 이렇게 병을 던지고 발로 차는 것에서 그치겠지만 나중에 가서 이 사람이 분노를 조절 못 하면 또 혹시 모를 일이 생길 거라는 생각을 하니까.

천장을 두드리며 보복성 소음까지 내던 이웃집 남성.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현행범 체포됐습니다.

결국 스토킹 처벌법 위반 혐의로 입건돼 접근 금지 명령과 벌금 5백만 원 처분을 받았습니다.

<인터뷰> 김성희 / 경찰대학 치안정책연구소 연구관 ‧ 범죄심리학 박사
다행히 스토킹 처벌법으로 조기에 개입하고 가해자 피해자 분리가 됐기에 망정이지, 어느 사법기관에서도 개입하지 않았다면 좀 더 위험한 상황으로 갈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이웃 주민의 물리적 위협은 처음 말로 항의를 한 지 석 달 뒤부터 시작됐습니다.

그렇다면 극단적 범행인 살인 사건의 경우는 어떨까?

최근 10년간 발생한 소음 살인 사건 중, 범행 전 이웃 간 소음 갈등이 석 달 이상 이어진 경우가 70%를 넘었습니다.


<인터뷰> 차상곤 / 공동주택생활소음관리협회 회장 ‧ 건축공학 박사
오늘 내가 위층 사람이 소음을 낸다고 해서 당장 올라가서 항의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서로가 이렇게 주고받는 시간들이 통상적으로 몇 개월이 흘러가요. 정말 짧게 잡으면 3개월에서 6개월 사이까지는, 저희들은 ‘층간 소음 골든 타임’이라고 그러는데.

‘층간 소음 골든 타임’, 이 갈등 진행기의 적절한 개입이 최악의 사태를 막을 수 있다는 겁니다.

특히 층간 소음 분쟁 중 벌어진 쌍방간 경찰 신고는 중요한 신호가 될 수 있습니다.

<인터뷰> 김성희 / 경찰대학 치안정책연구소 연구관 ‧ 범죄심리학 박사
반복 신고가 된 경우가 한 94% 정도로 확인이 되고요. 층간 소음 신고를 통해서 앞으로 범죄로 나아갈 수 있는 위험성이 높은 건물, 범죄의 위험도를 지니고 있는 대상들이 일정 부분 확인된다는 부분이죠. 그래서 동일 신고가 계속 반복되는 신고자들에 대해서는 (112신고) 코드 분류가 이루어지게 되면, 특정 소음에 대해서 굉장히 민감해서 일반인보다 좀 더 예측 불가능한 상황을 만들 수 있는 대상자들에 대한 예방적 접근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 범행 장소 45%, 비공동주택…규제·상담 사각지대

최근 10년간의 소음 살인 사건 기록에서 주목되는 또 한 가지, 범행 장소입니다.

55건 중 절반가량은 다가구주택과 오피스텔, 원룸, 고시원에서 일어났습니다.

층간보다 벽간 소음이 더 문제가 됐습니다.


<녹취> 벽간 소음 분쟁 제보 영상 (음성 변조)
- 나와 보실래요?
= ○○○호에요?
- 네.
= 왜 벽을 쳐요?
- 벽을 치는 게 아니라 식탁이 거기 있는데 식탁 닦다가 한 번씩 부딪힌 거예요.
= 벽을 쳤잖아요! 그럼 벽에다가 책상을 좀 띄워 놓든가. 어쨌든 벽을 쳤잖아요!
- 아니 그니까. 치면 와서 뭐 해서 말을 하든지. 똑같이 벽을 치고.
= 지금 일주일에 몇 번이나 벽을 쳤냐고요!

이런 건물들은 아파트나 다세대주택과 달리 소음 규제, 상담 대상에서조차 빠져 있습니다.

<인터뷰> 차상곤 / 공동주택생활소음관리협회 회장 ‧ 건축공학 박사
이분들은 어디에 하나 하소연하기가 좀 쉽지 않은 부분들이 존재하게 되는 것이죠. 그러다 보니까 극한 상황으로 가는 경우도 많이 있다. 지자체에서 이런 부분들을 상담의 범주로 집어넣을 수밖에 없다.

■ ‘소음 없는 세상’은 없을지라도…

층간 소음 살인으로 아내를 잃은 지 5개월.

지금 정해용 씨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아내를 살해한 가해자의 재판입니다.


1심에선 징역 20년이 선고됐고, 이달 중 항소심 선고도 예정돼 있습니다.

<인터뷰> 정해용 / 층간 소음 살인 사건 피해자 유족
꿈에도 드문드문 보입니다. 보여도 참... 이렇게 가놓고 참 꿈에 보이는 것도... 너무 아픈 모습으로 꿈에 보인다고요. 죽은 사람은 살아 돌아올 수 없으니까. 앞으로라도 참 무고한 사람들이 이런 사람한테 사고를 안 당하기 바라는 마음입니다.

지난 10년간 소음 살인에 목숨을 잃은 사람은 기록된 것만 22명.


소음 자체를 없앨 수는 없겠지만, 소음이 살인으로 번지는 일만큼은 이제 막아야 합니다.

<인터뷰> 김성희 / 경찰대학 치안정책연구소 연구관 ‧ 범죄심리학 박사
결국 가해자가 없는, 피해자만 둘이 있는 사건이 층간 소음에서 나타나는 범죄라고 생각합니다. 스토킹이라든가 가정폭력과 같이 적극적으로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하고 어떤 피해자 신변 보호를 하고, 이런 조치들이 있어서 이제 그런 범죄들이 강력 범죄로 나아가는 것들이 예방될 수 있듯이 경찰이나 중앙정부의 조기 개입이 얼마나 필요한지에 대해 우리가 충분히 고민해 볼 수 있는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취재기자: 김채린
촬영: 조선기 김민준 신봉승
영상편집: 김지영
그래픽: 장수현
자료조사: 이승민
취재자문: 김성희 연구관(경찰대학 치안정책연구소)
조연출: 유화영 김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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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 보다] 소음 살인, 22명의 죽음
    • 입력 2024-07-07 23:11:29
    사회

[더 보다 19회 I] 소음 살인, 22명의 죽음


한 아파트 복도의 CCTV 영상. 긴 점퍼를 입은 사람이 계단을 올라오더니, 갑자기 소주병을 던지고...

현관문을 사정없이 발로 찹니다.

층간 소음 피해를 주장하던 이웃 주민의 보복.

주체하지 못한 분노는, 때로 극단적 범행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지난달 2일, 서울 강서구의 한 빌라에 살던 50대 여성이 살해됐습니다.


윗집에 살던 40대 남성이 옥상에서 흉기를 휘두른 겁니다.

<녹취> 이웃 주민 (음성 변조)
“(가해자가) 최근 들어 환청 같은 거 많이 듣는다고. 밑에 집에서 층간 소음이 일어났다고 혼자 생각을 하고...”

올해 초, 경남 사천의 한 빌라에서도 이웃 간 살인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소음에 불만을 품은 50대 남성이 위층 주민을 살해한 겁니다.


<녹취> 사건 당시 경찰 브리핑
“가해자는 당시 소주 세 병을 마신 상태였습니다. 평소 계단에서 쿵쿵거리는 소리, 그런 것에 좀 예민해져 있었고.”

반복되는 ‘소음 살인’ 사건. 비극적인 죽음을 막을 방법은 없는 걸까요?


■ “이런 일에 사람을 죽이는 게 어디 있습니까?”

<인터뷰> 정해용 / 층간 소음 살인 사건 피해자 유족
저는 정해용이라고 부릅니다. 지난 1월 28일 경상남도 사천시 건물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난 피해자 박은화 씨 남편 되는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아내가 세상을 떠난 지 5개월. 해용 씨는 아직도 그날의 기억이 생생합니다.

<인터뷰> 정해용
오후에 제가 볼일 보고 있는데 병원에서 전화가 왔더라고요. 박은화 씨 남편 되냐. 예, 맞습니다. 놀랐죠. 저는 놀랐어요. 뭔 일로? 가보니까 그 모양이 되고... 저는 기절할 뻔했어요. 칼에 그리 사고를 당한 그 우리 집사람을 보고 너무 놀라 가지고...


가해자는 부부가 살던 집 아래층에 살던 50대 남성. 지난해 가을, 이 빌라로 이사한 사람이었습니다.

<인터뷰> 정해용
제가 건설 현장 일을 하다 보니까 아침에 좀 일찍 나갑니다. 안전화를 신고 성인이 계단을 밟고 내려가면 소리가 나기 마련 아닙니까. 그래서 한 번 (저한테) 그러더라고요. ‘아니. 계단을 소리 안 나게 다니라’고. (그래서 제가) ‘웬만하면 조용히 다닐게요.’ 그랬다고요.

하지만, 아래층 남성의 항의는 계속됐습니다.

<인터뷰> 정해용
한 번은 차 열쇠를 집에 두고 까먹고 안 챙겨서 열쇠 가지러 올라갔다 내려왔다 했다고요. 근데 갑자기 문을 열고 눈이 동그래져서 ‘왜 이래 왔다 갔다 하는데!’ 하면서 소리를 지르더라고요. ‘아, 예. 죄송합니다.’ 제가 이렇게 차 열쇠를 보이면서 화해를 하는 식으로 얘기를 하니까, 더 할 말이 없으니까 문을 쾅 닫고 들어가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속으로 ‘이야. 이 사람 이상하다...’

이웃과 싸우며 지낼 순 없으니 조심하자고 다짐했던 부부. 월세 계약이 끝나는 대로 이사 갈 계획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사를 불과 4개월여 앞둔 지난 1월, 사건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아래층 남성이 복도에서 만난 해용 씨 아내와 소음 문제로 언쟁하다 흉기를 휘두른 겁니다.

<인터뷰> 정해용
아, 이 사람 성격이 괴벽하고, 뭐 신경이 예민하거나 괴벽하고 이렇구나 생각을 했지, 이런 일에 사람을 죽이는 게 어디 있습니까? 세상에.

■ 10년간 22명 사망…‘소음 살인’의 심리


2013년 설 연휴 첫날, 윗집과 층간 소음 문제로 다투다 형제 2명을 살해한 40대.

소음에 불만을 품고 윗집에 무단 침입해 60대 여성을 잔혹하게 살해한 30대 남성.

어떻게 소음을 이유로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는 걸까?

<인터뷰> 김성희 / 경찰대학 치안정책연구소 연구관 ‧ 범죄심리학 박사
뇌가 느끼는 이 고통의, 고통을 느끼는 영역이 신체적인 고통과 정서적인 고통을 느끼는 영역이 거의 동일해요. 우리가 죽을 만큼 맞으면 죽겠다는 생각을 하듯이 이 정서적인, 부정적인 정서 경험을 오래 하면 느끼는 통증은 거의 유사합니다. 내가 소리라는 보이지 않는 물체로 매일 맞고 있는 고통을 느낀 거랑 똑같은 경험을 하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까 엄청난 공격성이 올라오는 거죠. 죽여 버리고 싶다.


범죄심리학자 김성희 박사와 함께 최근 10년간의 ‘소음 살인’ 사건 판결문을 분석했습니다.

2014년 이후 살인, 살인미수 등 사람을 죽일 의도로 자행된 범행은 모두 55건. 그 결과 22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생명이 위독했던 경우를 더하면, 희생자는 35명으로 늘어납니다.

<인터뷰> 김성희 / 경찰대학 치안정책연구소 연구관 ‧ 범죄심리학 박사
살인의 고의를 가지고 적극적으로 살해 행동을 했는데 119라든가 의료 기술의 발달로 인해 다행히 생명을 건진 분들이 많다는 부분들이죠. (살인) 미수까지 포함하면 훨씬 많은 인원들이, 1년에 적게 잡아도 3~4명 정도가 살해당하고 있는 거죠. 즉 분기별로 한 명 정도는 이웃 간 층간 소음이 시비가 돼서 살해되는 양상이고요.


한 가족이 메신저에서 나눈 대화입니다. 죽이고 싶다는 말을 반복합니다.

윗집 사람들을 두고 나눈 대화였습니다.

이들의 위층에 사는 강 모 씨 가족. 아랫집에서 소음을 이유로 손해배상 소송을 당했고, 그 재판 과정에서 대화 내용을 접하게 됐습니다.

항의를 여러 번 받긴 했지만, 자신들을 죽이고 싶다는 대화 내용은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인터뷰> 강00 / 층간 소음 분쟁 당사자(윗집)
제가 그걸 보고 나서 계속 잠을 못 잤거든요, 진짜. 또 되새겨지고 되새겨 계속 보게 되고. 애들한테 이제 해코지할까 봐 그것도 생각이 문득문득 나는 거예요. 만약에 우리 애가 할머니랑 이렇게 가고 있는데 때리면 어떡하나 뭘 쑤시면 어떡하나. 혼자 이제 계속 그런 이상한 나쁜 생각을 하게 되니까 마음이 힘들었죠.

죽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심각한 소음이 있었던 걸까?

최근 1심 법원은 윗집이 참을 수 없는 수준의 생활 소음을 냈다고 보기 부족하다며 아랫집 패소 판결을 내렸습니다.


소음의 크기가 문제는 아니었다는 겁니다.

최근 10년간 일어난 소음 살인 사건 판결문에서도, 피해자가 유발한 소음은 심하지 않았다는 내용들을 볼 수 있습니다.


<인터뷰> 차상곤 / 공동주택생활소음관리협회 협회장 ‧ 건축공학 박사
소음이라는 건 주관성이거든요. 침에 살짝 찔려서 굉장히 고통을 느끼는 분이 있는 반면에, 꾹 찔려도 ‘나 이 정도는 참을 수 있어’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소음도 그렇다는 거죠. 위층에서 작은 소리만 나도 벌써 귀가 트여 버렸어요. 위층 사람 얼굴만 봐도 좀 안 좋은 소리로 이제 살인의 충동이 일어나고.

■ 소음→불만→갈등→범행…살인 막을 ‘골든타임’은?

한 아파트의 CCTV 영상. 현관문을 마구 걷어차더니 황급히 사라집니다.

보름 뒤 같은 장소.

한 남성이 강아지를 안고 집안으로 들어갑니다. 30초 뒤, 누군가가 계단을 올라와 힘껏 병을 던집니다.


소음 피해를 호소하던 이웃집 남성이 윗집을 겨냥해 벌인 일이었습니다.

분쟁이 시작된 건 올해 초. 처음엔 말로 항의하는 정도였습니다.

<인터뷰> 층간 소음 보복 피해 제보자 (음성 변조)
1월쯤이었던 것 같아요. 1월. 처음에는 찾아와서 왜 이렇게 쿵쿵 거리냐고 그냥 말씀만 해주셨고 (저희는) 죄송하다고 했죠. 그 다음에 왔을 때도 똑같은 내용이었어요. 나갔다 들어온 지 얼마 안 되다 보니까 저희가 없을 때 그 소리가 났는데도...

소음 방지용 매트도 깔았지만 항의는 계속됐습니다.

얼마 뒤, 이상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인터뷰> 층간 소음 보복 피해 제보자 (음성 변조)
(현관에) 담배꽁초가 이렇게 버려져 있는 거예요. 택배가 타 있고. 그 다음에 3일인가 후에 또 그런 일이 또 있었어요. 그때는 이제 (복도에) 맥주도 붓고.


결국 현관에 CCTV를 달았습니다.

<인터뷰> 층간 소음 보복 피해 제보자 (음성 변조)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적이 있었어요. 근데 그때는 그분은 쓰레기를 버리려고 이렇게 내려간 건데. 1층에서 내려야 하는데 안 내리고 지하까지 가더라고요. 안 내리고 저희 내리는 거 지켜보다가 올라가고. (아내가) 엘리베이터 타기 엄청 무서워했었어요.

그러던 4월의 어느 날.

<인터뷰> 층간 소음 보복 피해 제보자 (음성 변조)
쉬는 날이었어요. 청소를 하고 있었거든요. 근데 갑자기 문을 발로 차는 소리가 나는 거예요. 그 사람이 롱패딩을 입고 와 가지고 이렇게 발로 차고 있더라고요. 현관문을. 이게 뭔 일인가 싶어 가지고 손도 떨리고 하더라고요. 이 사람이 지금이야 그냥 이렇게 병을 던지고 발로 차는 것에서 그치겠지만 나중에 가서 이 사람이 분노를 조절 못 하면 또 혹시 모를 일이 생길 거라는 생각을 하니까.

천장을 두드리며 보복성 소음까지 내던 이웃집 남성.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현행범 체포됐습니다.

결국 스토킹 처벌법 위반 혐의로 입건돼 접근 금지 명령과 벌금 5백만 원 처분을 받았습니다.

<인터뷰> 김성희 / 경찰대학 치안정책연구소 연구관 ‧ 범죄심리학 박사
다행히 스토킹 처벌법으로 조기에 개입하고 가해자 피해자 분리가 됐기에 망정이지, 어느 사법기관에서도 개입하지 않았다면 좀 더 위험한 상황으로 갈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이웃 주민의 물리적 위협은 처음 말로 항의를 한 지 석 달 뒤부터 시작됐습니다.

그렇다면 극단적 범행인 살인 사건의 경우는 어떨까?

최근 10년간 발생한 소음 살인 사건 중, 범행 전 이웃 간 소음 갈등이 석 달 이상 이어진 경우가 70%를 넘었습니다.


<인터뷰> 차상곤 / 공동주택생활소음관리협회 회장 ‧ 건축공학 박사
오늘 내가 위층 사람이 소음을 낸다고 해서 당장 올라가서 항의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서로가 이렇게 주고받는 시간들이 통상적으로 몇 개월이 흘러가요. 정말 짧게 잡으면 3개월에서 6개월 사이까지는, 저희들은 ‘층간 소음 골든 타임’이라고 그러는데.

‘층간 소음 골든 타임’, 이 갈등 진행기의 적절한 개입이 최악의 사태를 막을 수 있다는 겁니다.

특히 층간 소음 분쟁 중 벌어진 쌍방간 경찰 신고는 중요한 신호가 될 수 있습니다.

<인터뷰> 김성희 / 경찰대학 치안정책연구소 연구관 ‧ 범죄심리학 박사
반복 신고가 된 경우가 한 94% 정도로 확인이 되고요. 층간 소음 신고를 통해서 앞으로 범죄로 나아갈 수 있는 위험성이 높은 건물, 범죄의 위험도를 지니고 있는 대상들이 일정 부분 확인된다는 부분이죠. 그래서 동일 신고가 계속 반복되는 신고자들에 대해서는 (112신고) 코드 분류가 이루어지게 되면, 특정 소음에 대해서 굉장히 민감해서 일반인보다 좀 더 예측 불가능한 상황을 만들 수 있는 대상자들에 대한 예방적 접근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 범행 장소 45%, 비공동주택…규제·상담 사각지대

최근 10년간의 소음 살인 사건 기록에서 주목되는 또 한 가지, 범행 장소입니다.

55건 중 절반가량은 다가구주택과 오피스텔, 원룸, 고시원에서 일어났습니다.

층간보다 벽간 소음이 더 문제가 됐습니다.


<녹취> 벽간 소음 분쟁 제보 영상 (음성 변조)
- 나와 보실래요?
= ○○○호에요?
- 네.
= 왜 벽을 쳐요?
- 벽을 치는 게 아니라 식탁이 거기 있는데 식탁 닦다가 한 번씩 부딪힌 거예요.
= 벽을 쳤잖아요! 그럼 벽에다가 책상을 좀 띄워 놓든가. 어쨌든 벽을 쳤잖아요!
- 아니 그니까. 치면 와서 뭐 해서 말을 하든지. 똑같이 벽을 치고.
= 지금 일주일에 몇 번이나 벽을 쳤냐고요!

이런 건물들은 아파트나 다세대주택과 달리 소음 규제, 상담 대상에서조차 빠져 있습니다.

<인터뷰> 차상곤 / 공동주택생활소음관리협회 회장 ‧ 건축공학 박사
이분들은 어디에 하나 하소연하기가 좀 쉽지 않은 부분들이 존재하게 되는 것이죠. 그러다 보니까 극한 상황으로 가는 경우도 많이 있다. 지자체에서 이런 부분들을 상담의 범주로 집어넣을 수밖에 없다.

■ ‘소음 없는 세상’은 없을지라도…

층간 소음 살인으로 아내를 잃은 지 5개월.

지금 정해용 씨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아내를 살해한 가해자의 재판입니다.


1심에선 징역 20년이 선고됐고, 이달 중 항소심 선고도 예정돼 있습니다.

<인터뷰> 정해용 / 층간 소음 살인 사건 피해자 유족
꿈에도 드문드문 보입니다. 보여도 참... 이렇게 가놓고 참 꿈에 보이는 것도... 너무 아픈 모습으로 꿈에 보인다고요. 죽은 사람은 살아 돌아올 수 없으니까. 앞으로라도 참 무고한 사람들이 이런 사람한테 사고를 안 당하기 바라는 마음입니다.

지난 10년간 소음 살인에 목숨을 잃은 사람은 기록된 것만 22명.


소음 자체를 없앨 수는 없겠지만, 소음이 살인으로 번지는 일만큼은 이제 막아야 합니다.

<인터뷰> 김성희 / 경찰대학 치안정책연구소 연구관 ‧ 범죄심리학 박사
결국 가해자가 없는, 피해자만 둘이 있는 사건이 층간 소음에서 나타나는 범죄라고 생각합니다. 스토킹이라든가 가정폭력과 같이 적극적으로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하고 어떤 피해자 신변 보호를 하고, 이런 조치들이 있어서 이제 그런 범죄들이 강력 범죄로 나아가는 것들이 예방될 수 있듯이 경찰이나 중앙정부의 조기 개입이 얼마나 필요한지에 대해 우리가 충분히 고민해 볼 수 있는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취재기자: 김채린
촬영: 조선기 김민준 신봉승
영상편집: 김지영
그래픽: 장수현
자료조사: 이승민
취재자문: 김성희 연구관(경찰대학 치안정책연구소)
조연출: 유화영 김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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