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송 천국’ 미국…뼈 있던 ‘뼈 없는 윙’에 대한 판결은? [특파원 리포트]

입력 2024.07.27 (09:00) 수정 2024.07.27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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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탁기에 '사람을 넣지 마시오', 다리미에 '셔츠를 입고 있을 땐 다림질하지 마시오', 아이 옷에 '세탁하기 전에 옷을 벗기시오' , 아이들이 타는 킥보드에 '이 제품은 사용할 때 움직입니다'라는 경고문이 붙는 나라. 바로 미국입니다.

어떤 기상천외한 소송이 걸릴지 모르는 나라가 미국입니다. 일회용 커피 컵에 '뜨거우니 조심하세요'라는 너무나 당연한 듯한 경고문이 붙은 것도 뜨거운 커피 때문에 화상을 입었다고 주장한 소비자가 맥도널드를 상대로 건 소송에서 시작됐습니다.

그러니 제조자의 책임을 엄격하게 묻는, 징벌적 손해배상까지 물어야 하는 미국에서 제품이나 용역을 제공하는 판매하는 입장에서는 너무나 당연해 보이는 것까지 신경을 써야 할 판입니다.

이런 가운데 이와 비슷하게 보이는 소송에 대한 결과가 미국에서 나왔습니다. '뼈 없는 윙'을 주문했는데 그 안에 뼈가 있었다고 소송을 한 사건입니다.

게티이미지게티이미지

2016년 마이클 버크하이머 씨는 오하이오주의 한 식당에서 아내, 친구들과 식사를 했습니다. 이때 주문한 음식이 '뼈 없는 윙'이었습니다.

버크하이머 씨는 윙을 먹은 뒤 불편함을 느꼈다고 합니다. 그리고 사흘 뒤 문제가 커졌습니다. 열이 나고 음식을 먹기 어려운 상황이 된 겁니다. 그래서 응급실을 갔는데, 식도에 박힌 길고 얇은 뼈가 염증을 일으켰다는 걸 확인했습니다.

이에 버크하이머 씨는 식당을 상대로 소송을 냈습니다. '뼈 없는 윙'을 팔면서 뼈가 있을 수 있다는 경고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입니다. 또 닭고기 공급업체와 닭고기 생산 농장의 과실도 주장했습니다.

법원 판결은 어땠을까요? 뼈 없는 닭고기에 뼈가 들어 있었고, 이 때문에 염증까지 생겼으니 소비자의 손을 들어줄 법도 합니다.

하지만 재판 결과는 달랐습니다. 오하이오주 대법원은 소송을 기각했습니다. '뼈 없는'이라는 표현은 요리 스타일일 뿐 닭에 뼈가 있다는 것은 상식이므로 소비자가 주의를 기울였어야 한다는 겁니다.

다수 의견의 조지프 T. 디터스 판사는 "메뉴에서 '뼈 없는 윙'이라고 적힌 음식이 닭 날개로 만들어졌다고 소비자가 믿지 않는 것처럼, 뼈가 없다는 것이 식당의 보증이라고 믿지 않을 것이다. 마치 '치킨 핑거(손가락)"를 먹는 사람이 핑거(손가락)가 제공되지 않는다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판결문에 썼습니다. '뼈 없는 윙'은 당초 닭 날개 고기로 만드는 게 아니고, 다른 부위를 이용해 닭 날개 모양으로 만든 튀김입니다.

물론 반대 의견도 있습니다. 이 법원의 판결은 4대 3이었습니다. 다수 의견에 반대한 판사들은 "식당의 과실 여부에 대한 판단은 배심원에 맡겨야 한다"며 "아이들에게 뼈 없는 윙이나 치킨 너깃 등을 먹이는 부모가 닭고기에 뼈가 들어 있을 것으로 생각하겠느냐"고 지적했습니다.

소송 천국이라고 해서 무조건 소비자가 승리하지는 않는다는 걸 보여주는 판결입니다.

게티이미지게티이미지

이런 '소송 천국'이라는 말에도 오해가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서두에 적은 맥도널드의 뜨거운 커피 소송 관련입니다.

미국에선 소송을 건 사람의 이름인 '리벡 대 맥도널드' 사건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992년에 사건이 발생했고, 1994년에 재판이 마무리됐습니다. 약 20년 전 일입니다.
흔히 이 사건에 대해 간결하게 '맥도널드의 뜨거운 커피로 화상을 입은 소비자가, 뜨거우니 주의하라는 경고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맥도널드를 상대로 소송을 걸어 거액의 배상을 받았다'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건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어처구니없는 소송이라거나, 화제성 소송이라고만 보기는 어렵습니다.

먼저 맥도널드가 당시 제공한 커피 온도는 섭씨 82도에서 87도였다고 전문가들이 증언했습니다. 섭씨 65도가 넘으면 몇 초 만에 사람의 피부가 화상을 입는다고 합니다. 다른 업체들은 섭씨 49도에서 60도 정도로 제공하고 있었는데 이보다 훨씬 뜨거운 커피를 제공하고 있었던 겁니다.

또 이 사건이 발생하기 전 10년 동안 어린이를 포함해 700명 이상이 맥도널드 커피 때문에 화상을 입었고, 이 사실을 맥도널드도 알고 있었다는 게 드러났습니다.

게티이미지게티이미지

맥도널드의 과실이 확인된 데다, 리벡 씨의 피해도 컸습니다. 주차장에서 커피에 크림을 넣으려던 리벡 씨는 커피가 쏟아지면서 신체의 6%에 3도 화상을 입었고, 피부 이식 수술까지 받아야 했으며, 치료가 마무리될 때까지 2년이 걸렸습니다.

금전적 피해도 컸는데, 맥도널드의 대응은 미흡했습니다. 리벡 씨는 초기에 치료 때문에 인상된 보험료 등 2만 달러를 요구했지만, 맥도널드는 8백 달러만 제안했습니다. 결국 소송으로 갔습니다.

배심원단은 배상액 20만 달러에 징벌적 손해배상 270만 달러를 제시했습니다. 판사는 이를 대폭 줄인 금액을 선고했습니다. 리벡 씨에게도 20%의 과실이 있다고 했습니다. 물론 이에 양쪽 모두 항소한 끝에 비공개를 조건으로 합의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선 생각하기 힘든 이유로 소송이 이뤄지는 게 미국입니다. 지난해엔 맥도널드의 커피가 쏟아져 화상을 입은 85살 남성이, 직원들이 커피 뚜껑을 제대로 닫지 않은 책임이 있다며 소송을 냈습니다.

이런 소송이 이뤄지는 건, 상대가 자신에게 불리한 증거를 숨기지는 않는지 서로가 샅샅이 뒤져볼 수 있는 절차가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상대방 측에 내부 고발자가 있어야만 숨긴 증거를 찾아낼 수 있는 우리와는 좀 다릅니다.

또 변호사 수도 많습니다. 미국의 변호사 수는 100만 명이 넘습니다. 인구 천 명당 네 명꼴입니다. 우리나라는 인구 천 명당 0.5명입니다. 경쟁이 치열합니다. 교통사고 전문 법률회사가 TV 광고도 합니다.

미국에선 한 해 4천만 건의 소송이 제기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50살 이상의 성인이 1년에 평균 0.15건의 법률 소송에 휘말린다는 계산도 있습니다.

물론 '소송 천국' 미국에서도 '변호사만 득 본다'는 말이 있는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만큼 소비자도 득을 보는 경우가 많을 것이고, 기업들은 그만큼 소비자 눈치를 보며 투명하게 운영돼야 할 것입니다. 자본주의의 첨단을 걷는다는 미국이지만... 어느 나라가 소비자에게 더 좋은 곳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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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송 천국’ 미국…뼈 있던 ‘뼈 없는 윙’에 대한 판결은? [특파원 리포트]
    • 입력 2024-07-27 09:00:11
    • 수정2024-07-27 10: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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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탁기에 '사람을 넣지 마시오', 다리미에 '셔츠를 입고 있을 땐 다림질하지 마시오', 아이 옷에 '세탁하기 전에 옷을 벗기시오' , 아이들이 타는 킥보드에 '이 제품은 사용할 때 움직입니다'라는 경고문이 붙는 나라. 바로 미국입니다.

어떤 기상천외한 소송이 걸릴지 모르는 나라가 미국입니다. 일회용 커피 컵에 '뜨거우니 조심하세요'라는 너무나 당연한 듯한 경고문이 붙은 것도 뜨거운 커피 때문에 화상을 입었다고 주장한 소비자가 맥도널드를 상대로 건 소송에서 시작됐습니다.

그러니 제조자의 책임을 엄격하게 묻는, 징벌적 손해배상까지 물어야 하는 미국에서 제품이나 용역을 제공하는 판매하는 입장에서는 너무나 당연해 보이는 것까지 신경을 써야 할 판입니다.

이런 가운데 이와 비슷하게 보이는 소송에 대한 결과가 미국에서 나왔습니다. '뼈 없는 윙'을 주문했는데 그 안에 뼈가 있었다고 소송을 한 사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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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마이클 버크하이머 씨는 오하이오주의 한 식당에서 아내, 친구들과 식사를 했습니다. 이때 주문한 음식이 '뼈 없는 윙'이었습니다.

버크하이머 씨는 윙을 먹은 뒤 불편함을 느꼈다고 합니다. 그리고 사흘 뒤 문제가 커졌습니다. 열이 나고 음식을 먹기 어려운 상황이 된 겁니다. 그래서 응급실을 갔는데, 식도에 박힌 길고 얇은 뼈가 염증을 일으켰다는 걸 확인했습니다.

이에 버크하이머 씨는 식당을 상대로 소송을 냈습니다. '뼈 없는 윙'을 팔면서 뼈가 있을 수 있다는 경고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입니다. 또 닭고기 공급업체와 닭고기 생산 농장의 과실도 주장했습니다.

법원 판결은 어땠을까요? 뼈 없는 닭고기에 뼈가 들어 있었고, 이 때문에 염증까지 생겼으니 소비자의 손을 들어줄 법도 합니다.

하지만 재판 결과는 달랐습니다. 오하이오주 대법원은 소송을 기각했습니다. '뼈 없는'이라는 표현은 요리 스타일일 뿐 닭에 뼈가 있다는 것은 상식이므로 소비자가 주의를 기울였어야 한다는 겁니다.

다수 의견의 조지프 T. 디터스 판사는 "메뉴에서 '뼈 없는 윙'이라고 적힌 음식이 닭 날개로 만들어졌다고 소비자가 믿지 않는 것처럼, 뼈가 없다는 것이 식당의 보증이라고 믿지 않을 것이다. 마치 '치킨 핑거(손가락)"를 먹는 사람이 핑거(손가락)가 제공되지 않는다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판결문에 썼습니다. '뼈 없는 윙'은 당초 닭 날개 고기로 만드는 게 아니고, 다른 부위를 이용해 닭 날개 모양으로 만든 튀김입니다.

물론 반대 의견도 있습니다. 이 법원의 판결은 4대 3이었습니다. 다수 의견에 반대한 판사들은 "식당의 과실 여부에 대한 판단은 배심원에 맡겨야 한다"며 "아이들에게 뼈 없는 윙이나 치킨 너깃 등을 먹이는 부모가 닭고기에 뼈가 들어 있을 것으로 생각하겠느냐"고 지적했습니다.

소송 천국이라고 해서 무조건 소비자가 승리하지는 않는다는 걸 보여주는 판결입니다.

게티이미지
이런 '소송 천국'이라는 말에도 오해가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서두에 적은 맥도널드의 뜨거운 커피 소송 관련입니다.

미국에선 소송을 건 사람의 이름인 '리벡 대 맥도널드' 사건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992년에 사건이 발생했고, 1994년에 재판이 마무리됐습니다. 약 20년 전 일입니다.
흔히 이 사건에 대해 간결하게 '맥도널드의 뜨거운 커피로 화상을 입은 소비자가, 뜨거우니 주의하라는 경고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맥도널드를 상대로 소송을 걸어 거액의 배상을 받았다'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건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어처구니없는 소송이라거나, 화제성 소송이라고만 보기는 어렵습니다.

먼저 맥도널드가 당시 제공한 커피 온도는 섭씨 82도에서 87도였다고 전문가들이 증언했습니다. 섭씨 65도가 넘으면 몇 초 만에 사람의 피부가 화상을 입는다고 합니다. 다른 업체들은 섭씨 49도에서 60도 정도로 제공하고 있었는데 이보다 훨씬 뜨거운 커피를 제공하고 있었던 겁니다.

또 이 사건이 발생하기 전 10년 동안 어린이를 포함해 700명 이상이 맥도널드 커피 때문에 화상을 입었고, 이 사실을 맥도널드도 알고 있었다는 게 드러났습니다.

게티이미지
맥도널드의 과실이 확인된 데다, 리벡 씨의 피해도 컸습니다. 주차장에서 커피에 크림을 넣으려던 리벡 씨는 커피가 쏟아지면서 신체의 6%에 3도 화상을 입었고, 피부 이식 수술까지 받아야 했으며, 치료가 마무리될 때까지 2년이 걸렸습니다.

금전적 피해도 컸는데, 맥도널드의 대응은 미흡했습니다. 리벡 씨는 초기에 치료 때문에 인상된 보험료 등 2만 달러를 요구했지만, 맥도널드는 8백 달러만 제안했습니다. 결국 소송으로 갔습니다.

배심원단은 배상액 20만 달러에 징벌적 손해배상 270만 달러를 제시했습니다. 판사는 이를 대폭 줄인 금액을 선고했습니다. 리벡 씨에게도 20%의 과실이 있다고 했습니다. 물론 이에 양쪽 모두 항소한 끝에 비공개를 조건으로 합의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선 생각하기 힘든 이유로 소송이 이뤄지는 게 미국입니다. 지난해엔 맥도널드의 커피가 쏟아져 화상을 입은 85살 남성이, 직원들이 커피 뚜껑을 제대로 닫지 않은 책임이 있다며 소송을 냈습니다.

이런 소송이 이뤄지는 건, 상대가 자신에게 불리한 증거를 숨기지는 않는지 서로가 샅샅이 뒤져볼 수 있는 절차가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상대방 측에 내부 고발자가 있어야만 숨긴 증거를 찾아낼 수 있는 우리와는 좀 다릅니다.

또 변호사 수도 많습니다. 미국의 변호사 수는 100만 명이 넘습니다. 인구 천 명당 네 명꼴입니다. 우리나라는 인구 천 명당 0.5명입니다. 경쟁이 치열합니다. 교통사고 전문 법률회사가 TV 광고도 합니다.

미국에선 한 해 4천만 건의 소송이 제기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50살 이상의 성인이 1년에 평균 0.15건의 법률 소송에 휘말린다는 계산도 있습니다.

물론 '소송 천국' 미국에서도 '변호사만 득 본다'는 말이 있는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만큼 소비자도 득을 보는 경우가 많을 것이고, 기업들은 그만큼 소비자 눈치를 보며 투명하게 운영돼야 할 것입니다. 자본주의의 첨단을 걷는다는 미국이지만... 어느 나라가 소비자에게 더 좋은 곳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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