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덩이 파놓고 화장실”…‘유아숲’에 화장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입력 2024.07.30 (11:15) 수정 2024.07.30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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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요즘 어린이들은 회색 도시에 둘러싸여 자연에서 뛰어놀 경험을 하기 쉽지 않은데요. 이 때문에 어린이들이 자연과 교감할 수 있도록 하는 '유아 숲'이 전국 곳곳에 조성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부산의 한 유아 숲에 3년째 어린이들이 사용할 화장실이 만들어지지 않아 불편은 물론 안전까지 우려되고 있습니다.



■ 텐트 안 흙바닥에 정체 모를 구덩이…어린이용 '임시 화장실'?

평일 오전 부산 연제구 배산 입구에 조성된 '편백 유아 숲 터'를 찾았습니다. 인근 유치원과 어린이집에서 방문한 20여 명의 어린이가 나무 사이로 숨바꼭질하고, 흙 놀이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숲 한쪽에 주변과 어울리지 않는 검은색 텐트 하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니 '아이들 사용'이라는 문구가 적혀있었습니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텐트를 걷어봤더니 흙 바닥에 작은 구덩이가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유아 숲에 세워진 검은색 텐트유아 숲에 세워진 검은색 텐트

알고 보니 이 텐트는 어린이들이 사용하는 '임시 화장실'이었습니다. 유아 숲에 온 어린이들이 사용할 화장실이 없어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아 급한 용변이라도 해결할 수 있게 만들어 둔 겁니다. 하지만 이 임시 화장실조차 어린이들이 사용하기엔 역부족입니다. 어린이들이 흙바닥에 용변을 보는 자체가 익숙지 않은 데다가 바닥에는 벌레가 기어 다니기도 합니다.

유아 숲에 놓인 텐트 안 구덩이 모습유아 숲에 놓인 텐트 안 구덩이 모습

■ 가까운 화장실은 '재래식'…일부 학부모 발길 끊기도

부산 연제구는 유아 숲에서 150 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공중 화장실을 이용하도록 안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직접 가 본 화장실은 요즘 보기 드문 '재래식'이었습니다. 온이 높은 여름에는 악취가 코를 찔러 숨을 쉬기 힘들고, 어린이가 이용하다가는 자칫 발이 빠지는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운동을 하러 이 숲을 찾는 어른들도 이 화장실은 잘 이용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유치원에 다니는 손자 2명을 데리고 유아 숲에 온 할머니도 "화장실이 없어 짧게 놀다 집에 가야 해 불편하다"고 말했습니다.

유아 숲과 150m 떨어진 곳에 있는 재래식 화장실 모습유아 숲과 150m 떨어진 곳에 있는 재래식 화장실 모습

부산 연제구는 2022년 3억 원을 들여 배산 일대 4천 제곱미터 땅에 이 유아 숲을 만들었습니다. 자연을 직접 체험하고 놀이도 할 수 있어 평일에는 거의 매일 인근 어린이집과 유치원 어린이들이 방문하고, 주말에는 나들이하는 가족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화장실 문제로 발길을 끊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연제구에서 초등학교 저학년생 2명을 키우는 한 학부모는 "유아 숲에서 놀던 아이들이 갑자기 용변을 보고싶어 해 곤란한 상황을 겪은 뒤로 유아 숲에 가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유아 숲에서 놀고 있는 어린이들유아 숲에서 놀고 있는 어린이들

■ "배관 묻을 수 없어 화장실 설치 못 해" …주민 서명운동 실시

유아 숲을 이용한 학부모들은 화장실을 설치해달라고 구청에 여러 차례 건의했지만 불가능하다는 답변만 돌아왔다고 말했습니다. 이 유아 숲에 화장실이 없는 건 땅 아래 상수도나 오수 등 배관이 없기 때문인데요, 부산 연제구는 유아 숲 터가 사유지인데다가 숲 구조상 배관을 묻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 때문에 물이 나오는 수도 시설조차 없어 어린이들은 흙을 만지고 놀던 손으로 물을 마시거나 얼굴을 만지기도 합니다.

유아 숲이 자연을 있는 그대로 교감하기 위해 만들어진 만큼 화장실 같은 인공 시설물 설치를 최소화해야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하지만 수억 원을 들여 만든 유아 숲에 화장실 문제로 사람들이 발길을 끊는다면 이 또한 문제겠죠.

주민들은 유아 숲이 산 입구에 조성돼있는 만큼 산 입구 쪽이라도 어린이들이 사용할 수 있는 화장실을 설치해달라고 서명 운동을 벌이는 등 요구하고 나섰습니다. 구청은 화장실 설치가 가능한 방법을 장기적으로 검토해보겠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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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덩이 파놓고 화장실”…‘유아숲’에 화장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입력 2024-07-30 11: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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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어린이들은 회색 도시에 둘러싸여 자연에서 뛰어놀 경험을 하기 쉽지 않은데요. 이 때문에 어린이들이 자연과 교감할 수 있도록 하는 '유아 숲'이 전국 곳곳에 조성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부산의 한 유아 숲에 3년째 어린이들이 사용할 화장실이 만들어지지 않아 불편은 물론 안전까지 우려되고 있습니다.


■ 텐트 안 흙바닥에 정체 모를 구덩이…어린이용 '임시 화장실'?

평일 오전 부산 연제구 배산 입구에 조성된 '편백 유아 숲 터'를 찾았습니다. 인근 유치원과 어린이집에서 방문한 20여 명의 어린이가 나무 사이로 숨바꼭질하고, 흙 놀이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숲 한쪽에 주변과 어울리지 않는 검은색 텐트 하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니 '아이들 사용'이라는 문구가 적혀있었습니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텐트를 걷어봤더니 흙 바닥에 작은 구덩이가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유아 숲에 세워진 검은색 텐트
알고 보니 이 텐트는 어린이들이 사용하는 '임시 화장실'이었습니다. 유아 숲에 온 어린이들이 사용할 화장실이 없어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아 급한 용변이라도 해결할 수 있게 만들어 둔 겁니다. 하지만 이 임시 화장실조차 어린이들이 사용하기엔 역부족입니다. 어린이들이 흙바닥에 용변을 보는 자체가 익숙지 않은 데다가 바닥에는 벌레가 기어 다니기도 합니다.

유아 숲에 놓인 텐트 안 구덩이 모습
■ 가까운 화장실은 '재래식'…일부 학부모 발길 끊기도

부산 연제구는 유아 숲에서 150 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공중 화장실을 이용하도록 안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직접 가 본 화장실은 요즘 보기 드문 '재래식'이었습니다. 온이 높은 여름에는 악취가 코를 찔러 숨을 쉬기 힘들고, 어린이가 이용하다가는 자칫 발이 빠지는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운동을 하러 이 숲을 찾는 어른들도 이 화장실은 잘 이용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유치원에 다니는 손자 2명을 데리고 유아 숲에 온 할머니도 "화장실이 없어 짧게 놀다 집에 가야 해 불편하다"고 말했습니다.

유아 숲과 150m 떨어진 곳에 있는 재래식 화장실 모습
부산 연제구는 2022년 3억 원을 들여 배산 일대 4천 제곱미터 땅에 이 유아 숲을 만들었습니다. 자연을 직접 체험하고 놀이도 할 수 있어 평일에는 거의 매일 인근 어린이집과 유치원 어린이들이 방문하고, 주말에는 나들이하는 가족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화장실 문제로 발길을 끊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연제구에서 초등학교 저학년생 2명을 키우는 한 학부모는 "유아 숲에서 놀던 아이들이 갑자기 용변을 보고싶어 해 곤란한 상황을 겪은 뒤로 유아 숲에 가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유아 숲에서 놀고 있는 어린이들
■ "배관 묻을 수 없어 화장실 설치 못 해" …주민 서명운동 실시

유아 숲을 이용한 학부모들은 화장실을 설치해달라고 구청에 여러 차례 건의했지만 불가능하다는 답변만 돌아왔다고 말했습니다. 이 유아 숲에 화장실이 없는 건 땅 아래 상수도나 오수 등 배관이 없기 때문인데요, 부산 연제구는 유아 숲 터가 사유지인데다가 숲 구조상 배관을 묻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 때문에 물이 나오는 수도 시설조차 없어 어린이들은 흙을 만지고 놀던 손으로 물을 마시거나 얼굴을 만지기도 합니다.

유아 숲이 자연을 있는 그대로 교감하기 위해 만들어진 만큼 화장실 같은 인공 시설물 설치를 최소화해야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하지만 수억 원을 들여 만든 유아 숲에 화장실 문제로 사람들이 발길을 끊는다면 이 또한 문제겠죠.

주민들은 유아 숲이 산 입구에 조성돼있는 만큼 산 입구 쪽이라도 어린이들이 사용할 수 있는 화장실을 설치해달라고 서명 운동을 벌이는 등 요구하고 나섰습니다. 구청은 화장실 설치가 가능한 방법을 장기적으로 검토해보겠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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