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 엄마랑 같이 가자”…어미 돌고래의 슬픈 유영

입력 2024.08.01 (07:00) 수정 2024.08.01 (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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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1일 서귀포시 대정읍 무릉리 해상에서 제주대 돌고래연구팀과 ‘다큐제주’팀이 포착한 남방큰돌고래 무리.지난달 31일 서귀포시 대정읍 무릉리 해상에서 제주대 돌고래연구팀과 ‘다큐제주’팀이 포착한 남방큰돌고래 무리.


제주 앞바다가 죽음으로 얼룩지고 있다. 정부가 국제 보호종 남방큰돌고래가 서식하는 제주 연안을 해양보호구역으로 지정해 관리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사이, 새끼 돌고래 한 마리가 또 죽음을 맞았다.

■ 연이어 터지는 새끼 남방큰돌고래 죽음…올해만 9번째

지난달 31일 낮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무릉리 앞바다. 여름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물결 사이로 남방큰돌고래가 떼를 지어 헤엄치고 있었다. 제주 앞바다에서 남방큰돌고래 모니터링을 하던 '다큐제주' 팀과 제주대 돌고래연구팀의 드론 카메라 앵글이 이들 무리 가운데 두 마리에 집중됐다.

연구팀이 자세히 들여다보니, 축 처진 채 움직이지 않는 새끼 돌고래를 어미가 주둥이로 들쳐 올리며 유영하고 있었다.

물 위에 띄워도 자꾸만 바닷속으로 가라앉는 새끼 돌고래가 행여 숨이라도 쉬지 못할까, 어미는 유영하면서도 쉼 없이 새끼 돌고래를 수면 위로 받치며 끌어갔다.

사회적 동물인 남방큰돌고래가 무리의 죽음을 애도하는 행동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달 31일 서귀포시 대정읍 무릉리 해상에서 어미 돌고래가 죽은 새끼 돌고래를 주둥이 위에 올려놓고 유영하는 모습이 연구팀 카메라에 포착됐다. 다큐제주·제주대 돌고래연구팀 제공지난달 31일 서귀포시 대정읍 무릉리 해상에서 어미 돌고래가 죽은 새끼 돌고래를 주둥이 위에 올려놓고 유영하는 모습이 연구팀 카메라에 포착됐다. 다큐제주·제주대 돌고래연구팀 제공

돌고래 연구팀은 이번에 죽은 채로 발견된 남방큰돌고래 역시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린 개체로 추정했다. '다큐제주'와 제주대 돌고래연구팀이 올해 들어 공식적으로 기록한 새끼 돌고래의 죽음은 이번이 아홉 차례다.

연구팀은 "제주 앞바다에서 새끼 남방큰돌고래가 죽는 안타까운 일이 이어지고 있다"며 "돌고래 죽음 원인을 분석하고, 예방할 방법을 찾기 위한 연구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 해양보호구역 지정 절차 착수…남방큰돌고래 죽음 막을 수 있을까

우리나라 유일한 남방큰돌고래 주 서식지인 제주 앞바다에서조차 낚싯줄과 폐그물 등 해양 쓰레기에 뒤얽히고, 무분별한 '선박 관광' 등 돌고래 생존을 위협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자, 제주 바다를 해양보호구역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갈수록 힘을 얻었다.

해양수산부도 제주 남방큰돌고래가 자주 모습을 드러내는 해역을 '해양생물보호구역'으로 지정하는 안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전국의 해양보호구역은 모두 36곳, 생태계·생물보호·경관보호·습지보호 등 4가지로 나눠 지정한다.

지난달 31일 서귀포시 대정읍 무릉리 해상에서 발견된 죽은 새끼 남방큰돌고래. 다큐제주·제주대 돌고래연구팀 제공지난달 31일 서귀포시 대정읍 무릉리 해상에서 발견된 죽은 새끼 남방큰돌고래. 다큐제주·제주대 돌고래연구팀 제공

해수부가 제주에서 해양생물보호구역 지정을 고려하는 지역은 서귀포시 대정읍 신도리와 제주시 구좌읍 김녕리 앞바다 등 2곳. 해당 지역 주민들이 해양보호구역 지정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내비친 지역이다.

현재 이들 마을을 제외하고는 해양보호구역 지정에 난색을 보이는 지역이 대부분이다. 어업 활동 등에 지장이 갈 것을 우려해서다.

백은숙 신도리 어촌계장은 KBS와의 인터뷰에서 "주말에는 차가 지나가지 못할 정도로 돌고래를 보러오는 관광객이 신도리로 몰려든다"면서 "관광객들이 돌고래를 무척 사랑한다는 걸 알게 됐고, 마을 주민들과 함께 보존할 가치가 있다는 생각으로 임시 총회를 열어, 함께 돌고래를 보호하자는 뜻을 모았다"고 말했다.

해양수산부는 이달 초 신도리와 김녕리를 찾아 주민 설명회를 열어 해양보호구역 지정과 관련한 주민 의견을 수렴해 조정된 안을 관계 부처와 협의한 뒤, 해양수산발전위원회 심의 등을 거쳐 지정 고시한다는 계획이다.


제주 앞바다에서 무리 지어 유영하는 제주 남방큰돌고래 모습. 다큐제주·제주대 돌고래연구팀 제공제주 앞바다에서 무리 지어 유영하는 제주 남방큰돌고래 모습. 다큐제주·제주대 돌고래연구팀 제공

해수부 관계자는 KBS와의 통화에서 "해양보호구역으로 지정하기 위한 생태계 조사는 마친 상황"이라며 "자료를 바탕으로 지역 주민에게 해양보호구역 지정 필요성을 비롯해 정부 지원 사업, 제한되는 사항 등을 설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편 제주도는 제주 남방큰돌고래를 '제1호 생태법인'으로 지정해 직접 법적 권리를 부여하는 안을 추진하고 있다.

제주도 관계자는 "남방큰돌고래에 법인격을 부여하려면 관련 근거가 있어야 한다"면서 "내년 중 제주특별법 개정으로 법인격을 부여할 수 있는 법안이 마련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부의 해양보호구역 지정과 제주도의 생태법인 지정, 제주남방큰돌고래를 보호하겠다는 구상은 잇따르고 있다.

하지만 속도가 문제다. 올해 제주 앞바다에서 생을 마친 9마리의 남방큰돌고래가 묻고 있다.

[연관 기사]
‘멸종 위기’ 제주남방큰돌고래 해양보호구역 지정 탄력…상생 방안은?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024783

지난 4월 제주 앞바다에서 목격된 어미 돌고래가 죽은 새끼 돌고래를 업고 유영하고 있다. 새끼 돌고래는 피부가 허옇게 변해, 이미 부패가 상당히 진행된 모습이다. 다큐제주·제주대 돌고래연구팀 제공지난 4월 제주 앞바다에서 목격된 어미 돌고래가 죽은 새끼 돌고래를 업고 유영하고 있다. 새끼 돌고래는 피부가 허옇게 변해, 이미 부패가 상당히 진행된 모습이다. 다큐제주·제주대 돌고래연구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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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2024-08-01 07: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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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1일 서귀포시 대정읍 무릉리 해상에서 제주대 돌고래연구팀과 ‘다큐제주’팀이 포착한 남방큰돌고래 무리.

제주 앞바다가 죽음으로 얼룩지고 있다. 정부가 국제 보호종 남방큰돌고래가 서식하는 제주 연안을 해양보호구역으로 지정해 관리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사이, 새끼 돌고래 한 마리가 또 죽음을 맞았다.

■ 연이어 터지는 새끼 남방큰돌고래 죽음…올해만 9번째

지난달 31일 낮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무릉리 앞바다. 여름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물결 사이로 남방큰돌고래가 떼를 지어 헤엄치고 있었다. 제주 앞바다에서 남방큰돌고래 모니터링을 하던 '다큐제주' 팀과 제주대 돌고래연구팀의 드론 카메라 앵글이 이들 무리 가운데 두 마리에 집중됐다.

연구팀이 자세히 들여다보니, 축 처진 채 움직이지 않는 새끼 돌고래를 어미가 주둥이로 들쳐 올리며 유영하고 있었다.

물 위에 띄워도 자꾸만 바닷속으로 가라앉는 새끼 돌고래가 행여 숨이라도 쉬지 못할까, 어미는 유영하면서도 쉼 없이 새끼 돌고래를 수면 위로 받치며 끌어갔다.

사회적 동물인 남방큰돌고래가 무리의 죽음을 애도하는 행동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달 31일 서귀포시 대정읍 무릉리 해상에서 어미 돌고래가 죽은 새끼 돌고래를 주둥이 위에 올려놓고 유영하는 모습이 연구팀 카메라에 포착됐다. 다큐제주·제주대 돌고래연구팀 제공
돌고래 연구팀은 이번에 죽은 채로 발견된 남방큰돌고래 역시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린 개체로 추정했다. '다큐제주'와 제주대 돌고래연구팀이 올해 들어 공식적으로 기록한 새끼 돌고래의 죽음은 이번이 아홉 차례다.

연구팀은 "제주 앞바다에서 새끼 남방큰돌고래가 죽는 안타까운 일이 이어지고 있다"며 "돌고래 죽음 원인을 분석하고, 예방할 방법을 찾기 위한 연구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 해양보호구역 지정 절차 착수…남방큰돌고래 죽음 막을 수 있을까

우리나라 유일한 남방큰돌고래 주 서식지인 제주 앞바다에서조차 낚싯줄과 폐그물 등 해양 쓰레기에 뒤얽히고, 무분별한 '선박 관광' 등 돌고래 생존을 위협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자, 제주 바다를 해양보호구역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갈수록 힘을 얻었다.

해양수산부도 제주 남방큰돌고래가 자주 모습을 드러내는 해역을 '해양생물보호구역'으로 지정하는 안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전국의 해양보호구역은 모두 36곳, 생태계·생물보호·경관보호·습지보호 등 4가지로 나눠 지정한다.

지난달 31일 서귀포시 대정읍 무릉리 해상에서 발견된 죽은 새끼 남방큰돌고래. 다큐제주·제주대 돌고래연구팀 제공
해수부가 제주에서 해양생물보호구역 지정을 고려하는 지역은 서귀포시 대정읍 신도리와 제주시 구좌읍 김녕리 앞바다 등 2곳. 해당 지역 주민들이 해양보호구역 지정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내비친 지역이다.

현재 이들 마을을 제외하고는 해양보호구역 지정에 난색을 보이는 지역이 대부분이다. 어업 활동 등에 지장이 갈 것을 우려해서다.

백은숙 신도리 어촌계장은 KBS와의 인터뷰에서 "주말에는 차가 지나가지 못할 정도로 돌고래를 보러오는 관광객이 신도리로 몰려든다"면서 "관광객들이 돌고래를 무척 사랑한다는 걸 알게 됐고, 마을 주민들과 함께 보존할 가치가 있다는 생각으로 임시 총회를 열어, 함께 돌고래를 보호하자는 뜻을 모았다"고 말했다.

해양수산부는 이달 초 신도리와 김녕리를 찾아 주민 설명회를 열어 해양보호구역 지정과 관련한 주민 의견을 수렴해 조정된 안을 관계 부처와 협의한 뒤, 해양수산발전위원회 심의 등을 거쳐 지정 고시한다는 계획이다.


제주 앞바다에서 무리 지어 유영하는 제주 남방큰돌고래 모습. 다큐제주·제주대 돌고래연구팀 제공
해수부 관계자는 KBS와의 통화에서 "해양보호구역으로 지정하기 위한 생태계 조사는 마친 상황"이라며 "자료를 바탕으로 지역 주민에게 해양보호구역 지정 필요성을 비롯해 정부 지원 사업, 제한되는 사항 등을 설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편 제주도는 제주 남방큰돌고래를 '제1호 생태법인'으로 지정해 직접 법적 권리를 부여하는 안을 추진하고 있다.

제주도 관계자는 "남방큰돌고래에 법인격을 부여하려면 관련 근거가 있어야 한다"면서 "내년 중 제주특별법 개정으로 법인격을 부여할 수 있는 법안이 마련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부의 해양보호구역 지정과 제주도의 생태법인 지정, 제주남방큰돌고래를 보호하겠다는 구상은 잇따르고 있다.

하지만 속도가 문제다. 올해 제주 앞바다에서 생을 마친 9마리의 남방큰돌고래가 묻고 있다.

[연관 기사]
‘멸종 위기’ 제주남방큰돌고래 해양보호구역 지정 탄력…상생 방안은?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024783

지난 4월 제주 앞바다에서 목격된 어미 돌고래가 죽은 새끼 돌고래를 업고 유영하고 있다. 새끼 돌고래는 피부가 허옇게 변해, 이미 부패가 상당히 진행된 모습이다. 다큐제주·제주대 돌고래연구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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