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진단 라이브] 광복 79주년…의미와 과제는?

입력 2024.08.04 (08:02) 수정 2024.08.04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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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행: 김대홍
■ 대담: 이종찬 광복회장

김대홍 :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일요진단 라이브 김대홍입니다. 무더위가 절정에 이르는 8월이 되면 조국의 광복을 위해 희생하신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이 떠오릅니다. 특히 올해는 광복 79주년을 맞아 한층 더 광복의 의미를 되새기게 되는데요. 오늘 일요진단 라이브에서는 이종찬 광복회장과 함께 조국을 되찾기 위해 헌신한 분들을 돌아보고 우리에게 진정한 광복의 길은 무엇인지 고민해보겠습니다. 아울러 독립운동가 후손들을 위한 지원 대책과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 등 주요 현안들도 함께 논의해보겠습니다. 먼저 관련 영상 보시고 대담 이어가겠습니다.

김대홍 :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오늘은 아주 특별한 분을 모셨습니다. 독립운동에 헌신한 우당 이회영 선생의 손자고 정치 일번지 서울 종로에서 11대, 12대, 13대, 14대까지 4선 국회의원을 지냈고 김대중 정부 때는 국정원장까지 하신 분이죠. 대한민국 현대사의 산증인, 이종찬 광복회장 모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이종찬 : 안녕하세요?

김대홍 : 이제 광복회장 취임한 지 1년 넘어가는 거 같은데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는데 어땠습니까?

이종찬 : 광복회 회장으로 작년에 취임을 했는데 산적한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첫째 번으로 제가 꼽을 수 있는 거는 광복회가 말하자면 독립운동을 직접 참여하신 분들이 세운 단체인데

김대홍 : 그렇죠.

이종찬 : 그분들이 다 돌아가시고 이제 열 분도 안 남게 지금 노화돼 있습니다. 그런데 후손들이 이어받았는데 후손들도 지금 노화 현상이 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우리나라에 원로로서의 임무를 다할 수 있는 조금 더 연부역강하게 만드는 임무가 제가 부과된 제일 큰 임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금 어떻게든지 젊게 하자.

김대홍 : 젊게 하자.

이종찬 : 그리고 뭔가 지금 시대의 발전이 되고 있는 것이 AI 시대로 지금 가고 있잖아요.

김대홍 : 그렇죠.

이종찬 : 광복회는 그 AI를 전혀 생각하지 않은 말하자면 이런 세대가 돼 가고 있어서 제가 조금 무리하게 전국에 인터넷망을 다 깔았습니다.

김대홍 : 그렇습니까?

이종찬 : 그래서 이제 광복회는 전자 광복회로 만들자. 이것을 하나의 모토로 내세웠습니다.

김대홍 : 광복회 하면 좀 전에 잠깐 말씀하셨습니다마는 잘 모르시는 시청자분들도 계세요. 뭐 하는 곳입니까, 여기?

이종찬 : 제일 중요한 거는 우리가 일본의 제국주의적 침탈을 말하자면 싸워온 투사들의 집단 아닙니까? 왜 싸웠습니까? 우리나라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정체성을 새로운 시대에 맞는 정체성으로 하나씩, 하나씩 발전시켜가면서 나라의 근본을 잃어버리지 않게 가게 만드는 하나의 신호등처럼 이렇게 가게 만드는 이런 역할이 광복회의 제일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희들은 항상 우리는 좌도 아니고 우도 아니다. 우리는 여도 아니고 야도 아니다. 우리는 조국이 가는 길에 가장 뚜렷한 국가 이익을 위해서 가자. 이것을 저희 모토로 삼고 있습니다.

김대홍 : 모토 했는데 회훈이죠, 광복회의 훈. 보면 민족정기 선양, 통일 조국 촉성 그리고 자존품위 제고. 말이 좀 어려운데 그중에서도

이종찬 : 좀 어려워요.

김대홍 : 자존품위 제고. 자존품위가 뭐예요?

이종찬 : 우리나라가 기억하실는지는 몰라도 3.1 독립선언 우리 대한민국의 하나의 정신적 지주입니다. 3.1 독립선언 첫 번째 구절이 뭐냐? 조금 어려워서 제가 풀어 썼는데 오등은 자에 조선이 독립국임과 조선인이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 우리나라는 독립국이다. 그리고 우리나라 국민은 자주민이다. 자주독립이다. 이것이 근본이다 이렇게 제일 첫 번째 구절에 나와 있어요. 우리가 그걸 따라야 됩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는 나라가 있었습니다. 일본이 침탈해서 우리 주권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강제했을 뿐이지 나라가 없어진 것은 아닙니다. 나라는 있었습니다.

김대홍 : 그렇죠.

이종찬 : 그러니까 거기서 독립을 한다는 뜻은 뭐냐? 일본의 침탈을, 세력을 여기서 쫓아내는 겁니다. 이것이 우리 독립운동의 근본이거든요, 쫓아내자. 그리고 우리는 일본을 그냥 무조건 혐오하지 않습니다. 우리를 침략했기 때문에 혐오하는 겁니다. 이런 것을 분명히 하고 나가자는 뜻입니다.

김대홍 : 알겠습니다. 보면 회장께서 취임사, 1년 전이죠. 취임사 때 보면 광복회 학술원을 설립하겠다고 했고 실제로 6월달에 학술원이 설립됐어요. 학술원 뭐 하는 겁니까?

이종찬 : 제가 제일 아쉬운 게 뭐냐 하면 우리 독립운동을 하시느라고 후손들을 제대로 교육을 못 시켰습니다. 그래서 후손들은 무지와 빈곤에 그냥 악순환으로 계속돼 온 점을 어느 시점에서 끊어야 됩니다. 끊어서 다른 사람과 똑같은 기회의 교육도 받고 똑같은 이런 입장에서 발언도 할 수 있고 참여도 할 수 있는 것을 만들어주는 것이거든요. 그런데 여태까지 좀 처져 있어요.

김대홍 : 그렇죠.

이종찬 : 그래서 학술원을 만들어서 처져 있는 후손들을 처지지 않도록 다시 교육시키고 개발시키고 현실 정치에, 현실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 이것이 학술원의 제일 큰 목적입니다.

김대홍 : 후손들 교육 프로그램이군요.

이종찬 : 독립운동사를 아까 말했지만 독립정신을 잘 정리를 해가지고 후손들에게 선조들이 이런 정신으로 싸웠으니까 당신들은 남이 못 갖춘 그런 정신을 이어받아서 아주 건전한 사회에 말하자면 흙수저지만 금수저 되겠다는 생각은 아닙니다만 그래도 하나의 시민으로서의 빠짐이 없도록 해 주자. 이렇게 제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김대홍 : 알겠습니다. 지난해 백범 김구 선생 추모사에서 이런 얘기를 했더라고요. 임시정부의 밝히지 못한 역사를 소개할 것이다. 이건 또 무슨 뜻입니까?

이종찬 : 임시정부에는 지금 말하자면 독립운동사를 많이 했는데 임시정부에서는 아직도 역사가 뚜렷하게 밝혀지지 못한 부분들이 있어요. 이를테면 임시정부 안에서도 여야와 대결이 있었고 지역감정에서의 대결이 있었고 또 사상적으로 갈라져서 대결이 있었고 대결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대결 부분은 대개 다 얼버무리고 넘어갔는데 저는 그러지 말자 얘기죠. 그런 대결 상황을 어떻게 임시정부에서 주체적으로 통합을 시켰느냐. 통합의 노력에 대해서는 전혀 지금 언급이 없어요. 그래서 통합의 오늘날 우리 정치가 지금 갈라져 있는데 만약 통합의 논리를 잘 정리가 됐다면 우리 선열들이 이런 방식으로 통합을 했다. 이런 방식으로 통합했다는 것을 지금 현실 정치에서 가르칠 필요가 있는데 이런 부분에 대해서 소홀하게 다룬 부분이 많습니다. 그래서 제가 조금 더 우리 현실 정치에 순기능이 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 제가 좀 더 정리를 해놓으려고 그럽니다.

김대홍 : 그렇군요. 보면 관련해서 광복회에서 매달 한 차례씩 발간하는 회보가 있잖습니까, 광복회보. 저희가 한번 찾아봤어요, 광복회보에 어떤 내용이 있는지. 1월달 회보에 보면 저게 있더라고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이승만 재평가. 이승만 재평가에 대해서는 지금 진보, 보수 또 여당, 야당 굉장히 첨예하게 갈리는 상황인데 광복회에서 이승만 재평가 왜 저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이종찬 : 제가 분명하게 말씀드리면 잘못된 겁니다. 왜냐? 우리가 매달 독립운동가를 선정을 해서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해서 내세워가지고 국민들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김대홍 : 국가보훈처하고 같이 하죠.

이종찬 : 국가보훈부하고 같이 하고 있습니다.

김대홍 : 국가보훈부.

이종찬 : 이 사업을 해왔는데 이 사업에 나선 인물들은 약 500여 명이 그동안에 소개가 됐어요. 이승만 대통령이 아직까지 소개가 안 됐습니다. 그것도 너무 저는 편협하게 생각한 사람들이에요. 그래서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1월달에 이승만 대통령을 선정을 해서 크게 국회도서관에서 크게 학술회를 해서 이승만 대통령의 진면을 알려드렸습니다. 그런데 저는 지금 건국전쟁이라는 다큐에 대해서 굉장히 많은 분들이 동원이 돼서 봤는데 아쉬운 점이 있어요. 뭐냐? 너무 정부 수립 이후 한국전쟁 치르는 과정에서의 이승만, 이것만 부각됐지 독립운동에 있어서의 이승만의 역할에 대해서는 거의 없어요. 그거는 잘못됐습니다. 균형이 안 맞아요. 그분은 임시정부의 대통령이요, 초대 대통령이요.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입니다. 균형 있게 똑같이 소개를 해야 됩니다. 그런 뜻에서 저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초대 대통령으로서의 이승만 대통령의 역할을 부각시키려고 굉장히 그 부분에 대해서는..

김대홍 : 자료도 오늘 가져오신 거 같던데 어떤 자료입니까?

이종찬 : 이거 여러분께 보여드리겠습니다. 이게 1919년 6월 18일 대통령으로서 당선된 이승만 대통령이 6개국 국가 원수에게 편지를 일제히 보냈습니다. 가지고 나온 거는 Your Majesty, 천황폐하에게 보낸 거예요, 일본 천황폐하에게. 천황이란 말은 없습니다. Majesty니까 폐하. 여기 내용이 첫구절이 아주 멋있습니다. 나는 오늘 대한민국의 합법적 절차에 의해서 당선된 대통령입니다. 이제부터 제가 이 나라를 거번합니다. 거번한다고 했어요. 거번합니다. 그러므로 귀국이 무단이 불법적으로 점거하고 있는 귀국의 군대를 하루 빨리 철수시켜주시오.

김대홍 : 일본군이 나가라.

이종찬 : 나가라. 그리고 여기 이런 것도 있습니다. 귀국과 우리나라가 강제적으로 불법적으로 체결된 모든 조약은 무효입니다 언급돼 있습니다. 이런 대통령의 말하자면 얘기를 왜 소개를 하지 않습니까? 임시정부가 사실 여러 군데 생겼었습니다. 3.1 독립선언 이후에 한성에도 생겼고 우라지오에도 생겼고 상해에도 생겼고 여러 군데 생겼어요. 통합을 하는데 이의가 없는 건 어떤 부분이냐. 내각제도 있고 대통령제도 있었어요. 그런데 모두가 대통령제로 한다. 그리고 그 당시엔 대통령이란 용어가 없었어요. 그래서 집정관 총재예요. 그런데 영어로는 president입니다. 그래서 이승만 대통령으로 president로 한다는데 대해서 합의가 됐어요. 그래서 합의가 된 것이 대한민국 임시정부거든요. 그러기 때문에 여기에 1919년에 프레지던트 리퍼블릭 오브 코리아로 돼 있어요.

김대홍 : 제일 아래에요?

이종찬 : 제일 아래예요. 프레지던트 리퍼블릭 오브 코리아는 말은 뭐냐 하면 지금 대통령이 외국에 보내는 편지에도 프레지던트 리퍼블릭 오브 코리아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때 이미 1919년에 공화정이 수립이 됐고 대한민국이라는 국호가 생겼고 대통령제로서 프레지던트라는 직함이 생겼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독립운동사를 다 무시하고 갑자기 1948년 대통령이 됐다. 저는 너무 그 점에 대해서만 얘기를 하지 그 이전의 독립운동사에 대해서 말하자면 생각하지 않고 버리는 그런 태도에 대해서는 저는 대단히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김대홍 : 알겠습니다. 아픈 질문이긴 합니다마는 과거에 보면 극심한 내홍을 치르지 않았습니까? 광복회가. 그래서 광복회를 해체해버리는 게 낫다 이런 국민적 의견도 있었어요.

이종찬 : 있었습니다.

김대홍 : 그러면 중요한 게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받는 광복회가 돼야 할 텐데 어떤 노력하고 있습니까?

이종찬 : 애국지사들이 회장을 할 때는 그런 일이 없었습니다. 애국지사들이 물러나고 2세 시대에 저는 세 번째 회장인데 전임 회장들을 제가 잘못 얘기하면 전임 회장에게 비난하는 격이 돼서 아주 말이 조심스러운데 자꾸 소련은 해방군이요 미군은 점령군이다 이런 식으로 너무 사상적으로 한쪽에 치우친 발언을 해가지고 많은 분들이 우리가 독립운동할 때 그런 말하자고 독립운동한 거 아니다 하는 원로로서 지적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까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여도 없고 야도 없습니다. 진보도 없고 보수도 없습니다. 오로지 현재 대한민국의 지향하는 국가 이익이 어느 쪽으로 가야 되느냐 충실히 따르자. 이것이 우리 광복회를 광복회답게 국민들에게 하나의 원로단체로서 지도적 입장을 유지하는 거지 어느 쪽에 치우치고 어느 쪽에 너무 편향돼 있으면 저는 이거는 우파든 좌파든 편향된 그 자체가 실패입니다.

김대홍 : 재정은 어떻게 할 거예요? 지난번에 보니까 무리한 수익 사업으로 부채가 급증했다. 그래서 굉장히 광복회가 재정이 어렵다 그러는데 보니까 무급인 거 같던데요. 월급도 안 받고 일하신다고 하던데.

이종찬 : 좀 부끄러운 얘기이지만 광복회가 지금 약 15억의 부채가 있습니다. 전임자들이 자꾸 이것을 수익 사업을 자꾸 해가지고 그냥 부채만 남겼어요. 원래 송충이는 솔잎 먹고 사는 겁니다. 선비가 얼어죽어도 곁불은 쬐지 않는 거예요. 그러니까 독립운동만 하셨던 후손들이 장사를 하려고 하면 이거는 이루어지지 않아요. 이거 다 전문적인 영역이 있습니다. 그런데 자체가 잘못됐어요. 그래서 제가 수익 사업 일체 안 한다. 다 끊어버렸어요. 그리고 빚이 다 갚아질 때까지 우리 간부들은 명예직으로 무료봉사하자. 지금 실천하고 있습니다. 쌀알을 남겨서 그걸로 빚을 갚을 수는 없어요. 그러나 정신적으로 우리가 긴장하자는 뜻입니다.

김대홍 : 알겠습니다. 그럼 지금부터는 이제 이종찬 회장이 걸어온 역사를 저희가 좀 시청자분들께 소개를 해드려야 될 거 같아요.

이종찬 : 부끄럽습니다.

김대홍 : 앞에서도 전해드렸습니다만 이종찬 회장, 현대사의 증인인데 한번 보여주세요. 1936년생입니다. 88살인가요, 지금? 그리고 육군사관학교하고 국회의원 4번 했고요. 국정원장 했고 김대중 평화센터 지금 고문이시고 광복회장이시고. 이력 대한민국 역사의 굴곡마다 계속 등장을 하셨던 분이고. 저희가 사진 몇 장을 준비했어요. 사진 보면서 좀 더 설명을 해 주세요. 정보는 국력이다. 이거 김대중 대통령 옆에 계신 거 같은데 국정원장 때인가요?

이종찬 : 국정원장 때입니다. 그때 김대중 대통령이 저에게 국정원장을 하라는 거는 거의 국정원을 없애는 수준까지 한번 생각을 해보신 겁니다.

김대홍 : 그전에는 안기부였죠?

이종찬 : 그전에 국가안전기획부라 그래서 안기부라 그러죠. 왜 그러느냐? 김대중 대통령만큼 소위 중앙정보부나 국가안전기획부의 탄압을 받은 분은 없습니다. 그 양반은 그 기관으로부터 납치도 당했고

김대홍 : 그렇죠.

이종찬 : 사형 선고도 받았고 항상 감시의 대상이 돼서 무엇이든지 조금만 움직이면 금방 감시를 했습니다. 집에 연금도 됐고. 그러기 때문에 국가정보기관에 대한 혐오감이 있었어요. 자연스러운 겁니다. 그래서 저에게 그 얘기를, 제가 인수위원장을 했습니다.

김대홍 : 그렇습니까?

이종찬 : 대통령직의 인수위원장을 했기 때문에 많은 토론을 했는데 제가 그랬습니다. 국가를 국가답게 하려면 말하자면 동물이 촉각이 없어지는 거는 이거는 동물이 막 어디 방향으로 가는지 모르잖아요.

김대홍 : 그렇죠.

이종찬 : 촉각입니다. 촉각이 없는 동물은 상상할 수가 없는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촉각을 촉각답게 해야지 촉각이 본체를 손상시키는 것은 촉각으로서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정보기관을 정보기관답게 만듭시다. 그러니까 당신이 하시오. 그래서 제가 했는데 조금 제가 지금도 가슴에 뭉클한 점이 있어요. 뭐냐? 국가에 국내 정보에 있어서 무슨 정치에 개입하고 언론에 개입하고 이런 부분들 다 잘라낼 수밖에 없단 말이죠. 그런데 잘라내는 파트에 많은 제 후배가 있어요. 그 사람은 너는 아니다 할 수는 없고 다 일관되게 자르다 보니까 그 사람들이 참 피해를 본 거는 사실이거든요. 그렇지만 이건 누가 해도 해야 할 정리 사업인데 정리를 해서 했는데 그다음에 제가 대통령께 건의를 드렸죠, 김대중 대통령님께. 정보라는 것은 그냥 허공에 떠 있는 게 아니고 남의 흠만 잡는 게 정보가 아니라 국가를 지탱하는 정보, 지식입니다. 그 지식을 함축해야 하는 건데 그때는 마침 IMF 때예요. 지금 외국에서 IMF라는 것이 갑자기 온 것이 아니라 외국에서 차츰차츰 그게 들어왔는데 그거에 대해서 소홀히 다뤘다 이거예요. 그러니까 정보를 소홀히 다루지 않는 것이 중요하니까 정보가 국력입니다. 그리고 국가정보원으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김대홍 : 알겠습니다.

이종찬 : 영어로 이게 에이전시였어요. 에이전시는 남을 지배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서비스로 바꾸자. 그래서 지금 영어가 내셔널 인텔리전스 서비스입니다.

김대홍 : 알겠습니다. 그 정도 하고요. 좀 더 과거로 한번 저희가 들어가보겠습니다. 사진 또 하나 준비했는데요. 보여주십시오. 저 가운데 꽃다발이라고 하나요? 목에 걸려 있는 게 김구 선생님 아닙니까? 저기에 이종찬 회장이 있다고 하는데 어디 있습니까?

이종찬 : 바로 중앙에 있는 태극기 든 소년이 저입니다.

김대홍 : 저 반바지 입고요?

이종찬 : 예.

김대홍 : 어떤 사진입니까?

이종찬 : 상해에 10월달에 중경에서 환국을 하는데 상해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만든 곳이니까 상해에 와서 한 보름 계시다가 귀국을 했어요. 중간 귀착지인데 그 당시에 저는 상해에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임시정부 요인들이 홍교공항에 도착할 때 환영하러 나갔었습니다.

김대홍 : 상하이, 상해 때 사진이군요. 돌아온 귀국.

이종찬 : 그렇습니다. 제가 10살 때입니다.

김대홍 : 10살 때. 보니까 집안에 서훈을 받은 독립운동가만 14명이더라고요. 그리고 이회영 선생의 6형제가 독립운동에 쓴 돈을 저희가 현재 화폐 가치로 해보니까 2조 원이 넘더라고요.

이종찬 : 제가 생각할 때 그때 40만 원인데요. 동아일보사에서 1969년에 자기들이 보도하기 위해서 환산했어요. 어떤 환산했는지 그게 600억이었습니다. 69년도에 600억. 그런데 69년도의 GDP와 지금 GDP를 계산해보니까

김대홍 : 그렇죠.

이종찬 : 약 200배 내지 300배로 늘었어요. 그래서 아주 라프로 계산하면 1조 2000억. 아주 이렇게 2조 이렇게 환산할 수가 있는데 조금 더 정밀한 계산이 필요할 거 같습니다.

김대홍 : 지금 저기 보면 좀 전에 제가 말씀드린 이회영 선생. 눈물 닦고 있는 저분이

이종찬 : 눈물 닦는 이는 우리 종조부.

김대홍 :그렇군요.

이종찬 : 형 아우신 이시영, 저 양반이 대한민국 수립의 초대 부통령입니다.

김대홍 : 알겠습니다. 그러면 그렇게 돈을 많이 이제 국가를 위해서 냈으면 남아 있는 가족들은 굉장히 어려웠을 거 같은데요.

이종찬 : 내신 분이 둘째 할아버지인데 그 양반이 부잣집으로 양자를 가서 그 집 돈입니다. 사실 우리 집이 본가는 돈이 없어요. 그 집 돈인데 그 집 돈을 다 도륙을 낸 거죠.

김대홍 : 그렇습니까?

이종찬 : 그분은 1932년에 상해에 있는 아주 초라한 다락방에서 굶어 돌아가셨어요.

김대홍 : 그렇습니까?

이종찬 : 왜냐하면 윤봉길 사건이 있은 후 다 도망을 가버렸거든요. 그 양반을 부양할 분들이 없어요. 그 양반이 그 당시에 벌써 70 연세인데 그래서 돌아가셨습니다. 불행하게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나 이거 비화를 하나 얘기하죠.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돼서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 대통령께서 부통령인 이시영 옹에게 그동안에 가산을 많이 탕진하셨는데 일부라도 찾아드리겠습니다. 말씀만 하십시오. 그러니까 운암, 우리가 독립운동할 때 언제 뭘 바라고 독립운동했소? 이거 필요 없습니다. 안 받으셨어요.

김대홍 : 알겠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오늘은 아주 특별한 분을 모셨습니다. 독립운동에 헌신한 분을 한 건데 지금부터는 화제를 바꿔서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한일관계 개선 급속하게 이루어지면서 한일 협력도 늘고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정작 개선의 실마리라고 할 수 있는 징용적 피해 문제는 답보 상태인 거 같아요. 회장께서 보시기에 지금 일본 관계 개선을 위해서 바뀌고 있는 거 같습니까? 어떻습니까?

이종찬 : 바뀌고 있습니다. 바뀌고 있고 지금 많은 분들이 이승만 대통령이 너무 일본에 친일한다 하는 오해를 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제가 분명하게 말씀을 드립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분명히 한 점이 있습니다. 뭐냐? 전전 일본과 전후 일본을 혼동시키지 말자. 전전 일본은 군국주의 일본이요, 남의 나라를 침범하는 일본이요, 제국주의 일본이요, 거기에 우리는 피해자입니다. 그러나 전후 일본은 평화 헌법을 지키고 민주주의 가치를 향해서 가고 있는 일본이거든요. 그러기 때문에 전후 일본과 전전 일본을 혼동시키면 이게 자꾸 판단의 흐름이 끊겨진단 말이죠. 김-오부치 선언이 뭡니까? 과거는 과거대로 두고, 잊어버리자는 게 아닙니다. 그건 그대로 두고 미래를 향해서 가자. 그러니까 전전 일본의 조약은 조약대로 두고 우리는 미래를 향해서 가자. 전후 일본은 미래를 향하자. 똑같은 말하자면 기조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일본 자체가 흔들려서 우파들이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고 이러면, 왜 너희들이 전전 일본으로 가느냐 이렇게 우리가 자꾸 비난하지 않습니까? 그거는 당연한 겁니다. 우리는 전후 일본에 대해서 좀 더 민주주의적인 나라로 발전되고 우방과도 잘 지내는 그런 나라가 되기를 희망하고 있는 거거든요. 그래서 나는 방향은 옳은데 가다가 보면 자꾸 사태가 섞여져가지고 일본 우파들은 계속해서 일본이 강한 일본이 돼야 된다, 군국 일본이 돼야 한다 이런 얘기를 하는데 이거는 잘못, 일본 내에서도 잘못된 겁니다. 그러니까 윤석열 대통령의 방향은 저는 옳다고 이렇게 생각합니다.

김대홍 :알겠습니다. 지금까지 광복회와 이종찬 회장을 중심으로 광복회 활동 그리고 한일관계 살펴봤고요. 지금부터는 국내외 독립운동가 후손들을 위한 지원 대책과 미래 세대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 개발 등 광복회가 해야 할 과제들을 집중적으로 얘기해보겠습니다. 먼저 저희가 준비한 영상부터 보시겠습니다.

김대홍 : 지금 2024 파리 올림픽 한참 진행 중입니다. 가슴에 태극마크를 딴 선수들이 메달을 따고 가장 높은 곳에서 태극기가 게양될 때마다 자긍심이 올라옵니다. 이번 올림픽 유도 여자 결승에서 허미미 선수가 은메달을 목에 걸 때도 진한 감동을 줬는데 그런데 이 허미미 선수가 독립운동가 허석 선생의 후손이라는 사실 시청자 여러분 알고 계셨습니까? 먼저 자세한 내용 저희 KBS 기자가 정리했습니다. 함께 보시겠습니다.

김대홍 : 참 대단하지 않습니까?

이종찬 : 네. 대단합니다. 정말. 저는 지금도 결승전에서 꼭 그게 금메달이라고 생각합니다.

김대홍 : 저도 금메달이라고 생각했었죠.

이종찬 : 그런데 뭐 무슨 뭐 규정을 위반했느니. 그런데 그거는 너무 기술적인 게 돼서 제가 잘 이해 못 하겠는데 금메달이 틀림 없는 것 같았어요. 그런데 어쨌든 허미미 양이 자기가 허석 선생 후손임을 밝히고 또 외국에서 공부하면서 조국을 택했어요. 저는 그거를 굉장히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김대홍 : 할머니의 권유에 의해서 왔다고 하더라고요.

이종찬 : 몰랐다가 할머니가 깨우쳐줘서 자기가 결심해서 한국 국적을 취득하고서 한국에서 선수로 나갔는데 저는 이런 선열의 피가 이런 데에 크게 기여를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참 예뻐합니다. 그래서 돌아오면 환영회를 해줄 생각입니다.

김대홍 : 광복회에서 꽃다발도 준비하고 그런가요?

이종찬 : 물론이죠.

김대홍 : 보면요. 허미미 선수만 올림픽에 출전해서 메달을 딴 게 아니고, 독립운동가 후손들 가운데요. 카자흐스탄 국민 영웅 중에도 보니까 고려인 피겨스케이트 선수 데니스텐이라는 선수가 있더라고요. 이 선수 압니까?

이종찬 : 원래요. 카자흐스탄에 지금은 국회의원에게 맞아서 작고한 사람이 있는데 데니스댄이라고 하는 선수가 있었는데 그 사람이 말하자면 김연아 선수하고 같이 남자하고 여자 이렇게 출전을 같이 했어요. 그런데 그 사람은 동메달을 땄어요. 다음은.. 그래서 그분이 누구냐? 의병장인 민금호 선생의 후손입니다.

김대홍 : 그렇습니까?

이종찬 : 네. 민금호 선생이 의병으로 강원도에서 활동을 했는데 점점 일본군에게 밀려서 우라디보스톡까지 갔다가 거기에서 중앙아시아로 갔는데 민금호 선생은 그 과정에서 돌아가셨지만 그분의 후손이 바로 데니스텐인데 참 그 가족이 그런데 운동을 잘한다고 그래요. 저도 그래서 유심히 보고 있습니다마는.

김대홍 : 그것도 마찬가지로 독립운동하셨던 선조들 피가 있다. 이거죠? 그렇죠?

이종찬 : 민금호 선생의 후손입니다. 있죠. 있었죠. 또 한 가지 제가 말씀드리죠. 카이스트의 유명한 박사분이 한 분이 중앙일보의 풀페이지로 나왔습니다. 소개했어요. 다 좋은 조건으로 그 양반이 컴퓨터학을 했는데 좋은 조건으로 미국에 남기를 희망했는데 그분이 그 조건의 그 혜택을 포기하고 국내로 들어와서 카이스트에서 후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분이 문일민 선생의 손녀입니다. 정인보 선생의 외손녀고. 그러니까 저는 은연 중에 이런 게 나타난다. 한 가지 더 말씀드릴까요?

이종찬 : 말씀하십시오.

김대홍 : 국민들이 잘 모르고 있습니다. 쿠바에 이제 외교군 같은 쿠바에 독립운동 후손이 있어서 그 후손 중 한 사람이 저희들이 독립.. 장학금을 보내줬습니다. 2년 전부터. 그런데 그중의 한 사람이 국내로 들어왔습니다. 뭘 연구하는지 아세요? 산림학. 나무 심는 거. 그거를 전문가가 되겠다고. 이름이 가브렐라입니다. 그 소녀가 지금 국내에 들어와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장학금을 줬는데 국민 여러분께서도 이런 갸륵한 소녀에게, 학생에게 많은 성원을 부탁합니다.

김대홍 : 알겠습니다. 본인이.. 아까 허미미 선수도 그렇지만 처음에는 독립운동가 후손이라는 걸 몰랐다는 거 아니에요? 본인이 감독이 가르쳐줘서 알게 됐는데 이런 경우처럼 본인이 독립운동 후손이라는 걸 몰라서 그냥 넘어가는 경우도 있을 것 같은데 광복회에서 좀 찾아야 되는 거 아니에요?

이종찬 : 물론이죠. 저희들이 몰랐다고 그러면 저희들이 조금 부끄러운 얘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광복회가 아시다시피 이 전체.. 유공자 전체에 대한 정보를 지금 수집을 하고 수집을 하지만 그게 그렇게 완벽하지 못 하다는 사실을 국민들에게.. 참 우리의 약점을 고백을 합니다.

김대홍 : 앞으로 국가보훈부하고 같이 이런 사업은 좀 해야 될 것 같아요.

이종찬 : 그런데 장애가 하나 있어요. 국가에서는 개인정보 이게 보호라는 차원에서 정보를 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희들이 이게 억지 수집을 해야 되는데 그래서 제가 지금 개인정보위원장을 찾아가 뵀었고 어떻게 하든지 우리는 독립운동하셨던 후손들을 찾고자 하는데 조금 우리의 사업을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없겠는지 좀 얘기하려고 그럽니다.

김대홍 : 알겠습니다. 그것뿐만이 아니고요. 자신이 독립운동가 후손이라는 거를 알고는 있는데 외국에 오래 살다 보니까 한국어를 못 하고 한글을 읽지 못 해가지고 신청 못 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아요. 사진 한 장 저희가 준비했는데, 이겁니다. 중남미 쿠바에서 독립운동을 한 주한옥 선생의 딸 주미엽 씨입니다. 올해 103살이더라고요. 103살인데 젊은 시절에 보니까 대한여자 애국단에서 활동도 했고 형제, 자매들과 함께 광주 학생 독립운동 지지대회도 열었다고 하고 더 중요한 게 주한옥 선생을 보니까 쿠바 사탕수수농장에서 받은 좀으로 독립자금 100차례나 넘게 보내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게 이 가족들 아직까지도 성원을 못 받았다고 해요. 참 안타까운데 그 이유가 뭐냐? 했더니 한국어를 또 모르고 신청을 어떻게 해야 되는지 모른다는 거예요. 이런 경우도 좀 도와줘야 되는 거 아니에요?

이종찬 : 물론이죠. 우리가 하겠습니다. 그리고 쿠바에는 그동안에 외교 관계가 없었기 때문에 참 정부가 서로 소통을 못 했어요. 30명의 후손이 있다고 그래요. 그런데 3년 전에 조금 거기가 좀 풀려져서 경보가 서로 그거했을 때 저희들이 600만 원을 장학금으로 보냈는데 5,000불을 보낸 거죠. 그랬더니 여기에서 1달러는 엄청난 가치가 있는데 학생들 두 사람에게 1000불씩만 줘도 대만족이니까 1,000불씩 주고 나머지 3,000불은 한인회를 위해 쓰겠다고 그래서 저희들이 그렇게 조치를 했습니다.

김대홍 : 알겠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요. 독립운동가들이 해외에서 활동을 많이 하지 않았습니까? 거점이라고 해야 될까요? 건물들이 있어요. 대표적인 거 보니까 미국 LA에서 일제강점기 때 독립운동을 한. 지금 저거예요.

이종찬 : 옛 안창호 선생..

김대홍 : ** 저거죠? 생가.

김대홍 : 네. 그래서 이제 이게 아파트 신축한다고 철거 위기에 있었는데 다행히 우리 국가보훈부가 사들여가지고 역사기념관으로 재단장한다고 하는데 이것뿐만 아니라 프랑스에도 있고 중국에도 있고 많이 있지 않겠습니까? 이런 것도 좀 발굴하고 해야 될 것 같아요.

이종찬 : 이번에 우리 대표단을 제가 독일에 파견했습니다.

김대홍 : 독일에요?

이종찬 : 왜. 독일은 그 당시에 1차대전 일본 편 들었기 때문에 독일은 독립운동의 흔적이 없는 줄 알았는데 거기에도 있어요. 그래서 그런데 대단히 미안하지만 거기 표주석도 다 치워지고 그런.. 황폐화 됐는데 제가 일부러 그거를 찾았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그 정보를 보훈부에 넘겨서 이제 보훈부에서 거기에 어떤 독립운동 유적지다운 사업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종찬 : 알겠습니다. 독립운동가 후손들을 지원하는 건 해외에서 뿐만 아니라 국내도 중요한데요. 국권을 찾기 위해 발벗고 나선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저희 KBS 기자가 취재를 했는데 함께 보시겠습니다.

김대홍 : 저 마지막 문장 중에 보상금 지급 범위도 복잡하고 까다롭다. 그래서 법 개정이 필요하다라고 저희 KBS 기자가 얘기를 하는 것 같습니다.

이종찬 : 맞습니다. 제가 와서, 회장이 돼서 와서 보니까 독립운동가 예우에 관한 법을 개정하려고 애를 썼는데 관철이 안 되고 관철이 안 되고 그랬어요. 그런데 제가 딱 보니까요. 이상한 걸 발견했어요. 이게 우리 유신 때 74년에 그개성공단국회가 아닌 비상각의에서 3대째 내려가는 걸 뚝 잘라버어요. 예산을 주는 절약한다는 뜻에서. 그래가지고 못 받게 되는 굉장히 수가 늘어나버렸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니. 언제적 유신이냐. 지금 50년~ 40년. 40~50년이 지났는데 지금까지 이것을 복원을 못 시켰다는 건 어떤 면에서 우리의 잘못이고 국회의 잘못이다. 왜? 국회가 법은 복구를 시켜줘야지 유신 때 중단된 법을 복원을 시켜주지 않으니까 후손들이 그거는 잊어버리고 해달라 사달라. 그거 다 유신 때 중단된 법 속에 다 들어가 있어요. 그래서.. 제가.. 안규백 의원에게 부탁을 했어요. 유신 때 중단된 법을 국회에서 아직도 복원을 안 시켜주면 이건 어떻게 되는 거냐? 했더니 의원들에게 많이 이야기를 하니까 다 한번 여야를 막론하고 다 사는을 애줬어요. 그런데 그게 21대 국회확인들이 바쁘고 그래서 이거를 관철을 못 했는데,

김대홍 : 그러면 22대에 해야 될 거 아닙니까?

이종찬 : 새 국회에서 안규백 의원이 지금 우선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주겠다고 약속을 받고 있습니다.

김대홍 : 알겠습니다. 이게 왜 중요하냐면요. 조금 전에도 말씀을 하셨습니다만 독립운동가 후손들 가운데 흙저가 많다. 직접 말씀도 하시지 않았습니까? 경제적으로 어려운 분들이 한둘이 아닌 것 같아요.

이종찬 : 제가 흙수저인.. 당연하잖아요. 언제 독립운동하면서 가족 챙기고 언제 독립운동하면서 재산을 챙깁니까? 다 포기하고 오로지 싸우는 것 아닙니다. 그런데 그분이 싸우면서 멀쩡했던 가족이 흙수저로 전락이 됐는데 그러면 그 흙수저를 다시 뭐.. 금수저로 만들어달란 얘기 아닙니다. 그저 평범한 국민의 수준에 맞게 좀 부추켜 올려줘야 한다 하는 건데 그게 좀 부족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저희 광복회는 그것을 역점 사업으로 하고 있습니다.

김대홍 : 알겠습니다. 조금 전에 국회 찾아가서 북한한테 뭐 이런 저런 얘기도 했다고 하는데 비례대표 이번에 선거 때요. 비례대표 후보 선정할 때도 독립유공자 후손들을 좀 비례대표에 넣어달라라고 여당, 야당 이렇게 찾아가서 얘기를 했다고 제가 알고 있는데 결과가 어떻습니까?

이종찬 : 유감스럽습니다. 반영을 못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선거법이 다 알다시피 당에 위성정당이 생겨가지고 당은 당대로 따로 하거든요. 그러니까 이런 정신이 잘 전달되지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비례대표로는 사실은 지금 여든 야든 소비된 건 사실입니다. 그래도 민주당에서 김구 선생의 증손자 하남에다가 출마 시켜서 국회의원으로 당선 시켜준 것에 대해서 저는 고맙게 생각합니다.

김대홍 : 알겠습니다.

이종찬 : 우리 국민의힘은 한 사람이 ** 청도 때,

김대홍 : **

이종찬 : 강북구에서 출마를 했는데 떨어졌어요. 그러니까..

김대홍 : 굳이 이름은 안 밝혀도 될 것 같습니다.

이종찬 : 굳이 이름은 안 밝히겠습니다.

김대홍 : 알겠습니다. 저희가 훈훈한 소식 또 하나 찾았는데 회장께서 제주도에 있는 한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감사장을 보냈더라고요. 감사장 한번 보여주시겠습니까? 바로 저건데요. 제주구엄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한테 회장님 이름으로 감사장을 보낸 건데, 초등학교 학생들한테 감사장을 보냈다. 이게 좀 이상한데. 내용이 뭡니까?

이종찬 : 초등학교 학생들 6학년의 학생들이 참외를 심어서요.

김대홍 : 참외요? 믹는 참외요?

이종찬 : 네네. 참외를 심어서 그거를 시장에서 팔아가지고 40만 원을 만들었습니다.

김대홍 : 그렇습니까?

이종찬 : 그 40만 원을 자기들끼리 이 돈을 어떻게 귀중하게 쓰자.

김대홍 : 잠깐만요. 사진도 좀 있을 것 같은데 사진도 같이 보여주시죠. 아, 그림이요?

이종찬 : 그래서 제가.. 말씀 계속 하겠습니다. 그래서 제가 얼마나 갸륵합니까?

김대홍 : 그렇습니까?

이종찬 : 학생들이 스스로 결정을 했는데 이거는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에게 보내주자 선거물을 보내주자. 제가 감동했습니다.

김대홍 : 저거죠. 저거.

이종찬 : 네. 맞습니다.

김대홍 : 저 학생들이 지금 회의를 뭐.

이종찬 : 회의를 해서 선생님이 이러해라. 저거해라. 지도한 거 아닙니다. 자기들끼리 회의를 해서 독립운동가 후손을.. 광복절이 이제 가까워지지 않았냐. 그러니까 우리 이 동료들이 이 돈을 그분들 후손들에게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도록 보내주자 해서.

김대홍 : 그게 얼마라고요?

이종찬 : 40만 원을요.

김대홍 : 40만 원이요?

이종찬 : 네. 저희들이 받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거는 그야말로 너무 귀중한 돈이다. 또 우리가 이것을 그냥 받고만 있을 수 없다. 해서 이번에 제가 제주도 가는 길기에 일부러 거기 학교 간부들 모셔다가 제가 감사장을 드리고 저희들이 뭐 조그마한 광복회가 이런 것이다 하는 소개 책자도 보내주고 앞으로 구엄초등학교하고 깊은 유대 관계를 가질 생각이고 지사께도 이런 학교가 있으니 제가 칭찬해줬습니다. 제주도의 교육이 성공했다는 하나의 증거라고 말입니다.

김대홍 : 중요한 게 아까 말씀을 하셨습니다만 국민들, 저 구엄초등학교 학생들처럼 얼마 되지는 않더라도 광복회에 대해서 조금씩 십시일반 선금도 보내고 또 광복회가 뭐하는 곳인지 알고 그러는 프로그램이라고 할까요? 이게 로 필요하지 않을까요?

이종찬 : 프로그램을 저희들이 더 확대를 해야될 텐데 사실은 저희들이 장학 사업도 하고 뭐 여러 사업도 해야겠지만되 국민들에게 개도하는 사업이 저렇게 자발적인 학생들에게 조금 더 적극적으로 해야 되겠다 하는 그런 마음다짐을 하게 됐습니다.

김대홍 : 독립운동 관련해서 역사 교육. 외국 사례하고 비교하면 어떻습니까? 우리 잘 되고 있습니까?

이종찬 : 외국 사례하고는 조금.. 제가 지금 생각하고 있는 프랑스의 나치스가 점령을 했습니다.

김대홍 : 그렇죠.

이종찬 : 그때 레지스탕스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니까 리지스탕스 운동이 아주 격렬했기 때문에 드볼드 대통령이 영국에서 임시 정부를 수립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 선례가 우리와 하여튼 많은 점에서 유사하다는 것을 느겼고.. 느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런 례, 레지스탕스의 영화제를 한번 해서..

김대홍 : 영화제요?

이종찬 : 외국의 독립운동에 있었던 이러한 영화제를.. 여러 가지 영화를 수입해서 하면 국민들이 흥미도 느끼고 조국이 어려울 때는 저렇게 일치단결해서 쌓아온 것이 외국이었구나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되지 않을까 해서 그것을 2년 전에 한 번 시도를 해봤는데 앞으로 조금 더 적극적으로 이것을 시험해볼까 생각합니다.

김대홍 : 알겠습니다. 북한 얘기도 한번 해보겠습니다. 지금 남북 관계 굉장히 경색 돼 있지 않습니까? 저희가 북한의 수재가 나와서 나와서 도와주겠다고 했는데 사실상 또 북한에서는 거부한 것 같고요. 회장님께서 보실 때 지금 남북관계 어떻게 보십니까?

이종찬 : 저는 김정은 정부가.. 김정은 정권이 굉장히 좀 이상스러운 정권이라고 보는 거예요. 왜냐? 선대의 김일성 세대, 김정일 세대에는 우리 동포끼리 이런 것에 대해서 호응을 했어요. 그런데 이 사람은 딱 끊어버렸습니다. 그리고 같은 민족이라는 건 없다. 오로지 적대국만 있다. 이거는 엄중한 선전포고나 마찬가지예요. 어떻게 같은 민족이 없습니까? 아무리 공산당의 공산주의 이론에 층실해도 그렇고 저는 북한을 공산주의 국가로 보지도 않습니다. 이건 왕조 국가예요. 언제 공산 국가가 이렇게 세대적으로 세습하는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이 왕조 국가가 여태까지는 같은 민족이다 하고 이렇게 해가지고 주사파다 뭐다 이렇게 남쪽에서도 생겼는데 지금 주사파들은 갈 곳이 없어요. 대한민국 품 속으로 들어와야 돼요. 왜냐? 북한은 같은 민족끼리 라는 것을 다 청산해버렸어요. 적대국만 있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까 이제는 전쟁 일보직전으로 자꾸 가려고 그러는데 다행히 저는 이번에 수혜를 보내겠다고 얘기한 거는 참 잘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자기 뒤에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지금 미국에서 트럼프가 된다고 난리입니다. 트럼프라는 사람은 일정한 룰이 없어요. 막 행동하는 사람입니다. 김정은이와 자기가 친구라고 얘기도 해요. 그런데 어느 날 말이죠. 김정은이가.. 아니. 트럼프가 ** 해가지고 나 김정은이 만나고 싶다. 이렇게 얘기를 하면 자칫 잘못하면 우리는 제3자가 되어버린단 이거죠. 이렇게 되면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트럼프가 되더라도 한미 관계가 더 돈독해져야 되고 트럼프가 북한하고 뭘 교섭을 하려면 우리에게 많은 것을 의지하도록 만들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부분에서 빨리 정리가 돼야 되겠다. 아직 정리가 잘 안된 것 같아요. 우리가 정리를 해놔야 됩니다. 윤석열 정부가 지금은 북한하고 대결하는 것만 생각하는데 이제는 세계의 모두가 바뀌어지면 바이든이다. 기시다다. 이런 사람들이 물러나면 그 후에 오는 한미일 관계를 돈독히 하기 위해서 이거를 어떻게 하겠는지에 대해서 대비를 해야겠다는 것이 원로로서 제가 충언을 드리는 겁니다.

김대홍 : 원로로서 충언 하나 말씀하셨기 때문에요. 종로.. 정치 1번에서요. 종로에서만 사서 나신 정치 원로로서요. 그러고 우리 여의도 지금 상황에서도 한 말씀 해주시죠.

이종찬 : 여의도 상황은 지금은 이거는 국회가 아니라 싸움터입니다. 서로 대화도 안 하고. 아주 경색된 시절에 제가 원내 총무도 했습니다. 저는 야당의 원내 총무를 파트너로 생각했습니다. 아주 친하게 지냈습니다. 거의 매일 만났습니다. 어느 달은 한 달 동안 매일 같이 술도 먹고 같이 밥도 먹었습니다. 이렇게 노력을 경주해야 됩니다. 그런데 지금 다수당과 소수당인데 우리가 자꾸 3분의 2, 3분의 1 의석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거기에 표준류 따지면 다수당이라도 49%, 소수당이라도 41%. 표 차체 그렇게 많이 지금 차가 나 있지 않은데 그러면 41%를 무시하고 가겠다는 얘기입니까? 저는 대화를 하셔야 됩니다. 그리고 상대 당을 적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하나의 경쟁 파트너로 생각해서 서로 페어플레이 하도록 가도록 권고하고 싶습니다.

김대홍 : 알겠습니다. 시간이 뭐 1시간이 다 돼 가는데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광복 회장으로 재임하는 동안에 이것만은 꼭 하고 싶다는 게 있다면 짧게 해주시죠.

이종찬 : 지금 자꾸 건국적으로 한다. 이승만 대통령을 건국 대통령이다. 이런 말을 자꾸 하는데 이승민 대통령 그런 말 하는 이 없습니까? 이승만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어떻게 말씀을 하셨냐? 오늘 세워진 이 민국은 오늘 세워진 것이 아니오. 김이년 1919년에 세워진 임시정부의 오늘은 부활일이요. 이렇게 얘기를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연호는 기미년부터 기산하라. 그랬어요. 기미년부터 기산하면 1919년이 대한민국 원년앞이 됩니다. 그러면 우리나라 관보 1호가 48년에 만들었는데 대한민국 30년으로 돼 있습니다. 오늘은 뭐냐? 대한민국 106년입니다. 그러면 106년의 임시정부 역사를 또 대한민국의 역사를 정리를 해야지. 48년의 역사로 이후의 역사를 대한민국이라고 그런다면 이건 북한을 위해서 아주 좋은 일을 하는 거예요. 왜? 북한도 48년 세워졌다고 그러거든요. 우리의.. 우리의 자꾸 왜 19년. 우리는 그 나라를 옛날 왕정 때부터 쭉 계속해서 우리는 이어온 상속자인데 뚝 잘라서 우리는 1948년에 새로 탄생됐다. 그러면 왜 이 역사를 다 버려버립니까? 이 역사를 버리면요. 큰 문제가 생깁니다. 뭐가 생기느냐? 일본이 이 역사에 대해서 부정을.. 자기네들이 책임 없다고 그래요. 그러니까 48는부터 무효라고 그래요. 왜 우리가 1905년부터 무효다. 19510년부터 무효다. 이렇게 얘기를 해야지 왜 48년에 와서 무효라고 얘기를 합니까? 이런 고등 경쟁력을 모르는 사람들이 무슨.. 깝죽거리고서 무슨 건국한다고.

김대홍 :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이종찬 : 이승만 대통령 기념관을 만든다고 그러는데. 이승만 대통령 기념관을 그런 식으로 만들면 이승만 대통령이 욕하는 기념관이 돼 버려요.

김대홍 : 알겠습니다.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일요진단 라이브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시청해 주신 여러분, 저희는 한 주 쉬고요. 그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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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요진단 라이브] 광복 79주년…의미와 과제는?
    • 입력 2024-08-04 08:02:03
    • 수정2024-08-04 10:15:07
    일요진단 라이브
■ 진행: 김대홍
■ 대담: 이종찬 광복회장

김대홍 :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일요진단 라이브 김대홍입니다. 무더위가 절정에 이르는 8월이 되면 조국의 광복을 위해 희생하신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이 떠오릅니다. 특히 올해는 광복 79주년을 맞아 한층 더 광복의 의미를 되새기게 되는데요. 오늘 일요진단 라이브에서는 이종찬 광복회장과 함께 조국을 되찾기 위해 헌신한 분들을 돌아보고 우리에게 진정한 광복의 길은 무엇인지 고민해보겠습니다. 아울러 독립운동가 후손들을 위한 지원 대책과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 등 주요 현안들도 함께 논의해보겠습니다. 먼저 관련 영상 보시고 대담 이어가겠습니다.

김대홍 :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오늘은 아주 특별한 분을 모셨습니다. 독립운동에 헌신한 우당 이회영 선생의 손자고 정치 일번지 서울 종로에서 11대, 12대, 13대, 14대까지 4선 국회의원을 지냈고 김대중 정부 때는 국정원장까지 하신 분이죠. 대한민국 현대사의 산증인, 이종찬 광복회장 모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이종찬 : 안녕하세요?

김대홍 : 이제 광복회장 취임한 지 1년 넘어가는 거 같은데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는데 어땠습니까?

이종찬 : 광복회 회장으로 작년에 취임을 했는데 산적한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첫째 번으로 제가 꼽을 수 있는 거는 광복회가 말하자면 독립운동을 직접 참여하신 분들이 세운 단체인데

김대홍 : 그렇죠.

이종찬 : 그분들이 다 돌아가시고 이제 열 분도 안 남게 지금 노화돼 있습니다. 그런데 후손들이 이어받았는데 후손들도 지금 노화 현상이 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우리나라에 원로로서의 임무를 다할 수 있는 조금 더 연부역강하게 만드는 임무가 제가 부과된 제일 큰 임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금 어떻게든지 젊게 하자.

김대홍 : 젊게 하자.

이종찬 : 그리고 뭔가 지금 시대의 발전이 되고 있는 것이 AI 시대로 지금 가고 있잖아요.

김대홍 : 그렇죠.

이종찬 : 광복회는 그 AI를 전혀 생각하지 않은 말하자면 이런 세대가 돼 가고 있어서 제가 조금 무리하게 전국에 인터넷망을 다 깔았습니다.

김대홍 : 그렇습니까?

이종찬 : 그래서 이제 광복회는 전자 광복회로 만들자. 이것을 하나의 모토로 내세웠습니다.

김대홍 : 광복회 하면 좀 전에 잠깐 말씀하셨습니다마는 잘 모르시는 시청자분들도 계세요. 뭐 하는 곳입니까, 여기?

이종찬 : 제일 중요한 거는 우리가 일본의 제국주의적 침탈을 말하자면 싸워온 투사들의 집단 아닙니까? 왜 싸웠습니까? 우리나라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정체성을 새로운 시대에 맞는 정체성으로 하나씩, 하나씩 발전시켜가면서 나라의 근본을 잃어버리지 않게 가게 만드는 하나의 신호등처럼 이렇게 가게 만드는 이런 역할이 광복회의 제일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희들은 항상 우리는 좌도 아니고 우도 아니다. 우리는 여도 아니고 야도 아니다. 우리는 조국이 가는 길에 가장 뚜렷한 국가 이익을 위해서 가자. 이것을 저희 모토로 삼고 있습니다.

김대홍 : 모토 했는데 회훈이죠, 광복회의 훈. 보면 민족정기 선양, 통일 조국 촉성 그리고 자존품위 제고. 말이 좀 어려운데 그중에서도

이종찬 : 좀 어려워요.

김대홍 : 자존품위 제고. 자존품위가 뭐예요?

이종찬 : 우리나라가 기억하실는지는 몰라도 3.1 독립선언 우리 대한민국의 하나의 정신적 지주입니다. 3.1 독립선언 첫 번째 구절이 뭐냐? 조금 어려워서 제가 풀어 썼는데 오등은 자에 조선이 독립국임과 조선인이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 우리나라는 독립국이다. 그리고 우리나라 국민은 자주민이다. 자주독립이다. 이것이 근본이다 이렇게 제일 첫 번째 구절에 나와 있어요. 우리가 그걸 따라야 됩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는 나라가 있었습니다. 일본이 침탈해서 우리 주권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강제했을 뿐이지 나라가 없어진 것은 아닙니다. 나라는 있었습니다.

김대홍 : 그렇죠.

이종찬 : 그러니까 거기서 독립을 한다는 뜻은 뭐냐? 일본의 침탈을, 세력을 여기서 쫓아내는 겁니다. 이것이 우리 독립운동의 근본이거든요, 쫓아내자. 그리고 우리는 일본을 그냥 무조건 혐오하지 않습니다. 우리를 침략했기 때문에 혐오하는 겁니다. 이런 것을 분명히 하고 나가자는 뜻입니다.

김대홍 : 알겠습니다. 보면 회장께서 취임사, 1년 전이죠. 취임사 때 보면 광복회 학술원을 설립하겠다고 했고 실제로 6월달에 학술원이 설립됐어요. 학술원 뭐 하는 겁니까?

이종찬 : 제가 제일 아쉬운 게 뭐냐 하면 우리 독립운동을 하시느라고 후손들을 제대로 교육을 못 시켰습니다. 그래서 후손들은 무지와 빈곤에 그냥 악순환으로 계속돼 온 점을 어느 시점에서 끊어야 됩니다. 끊어서 다른 사람과 똑같은 기회의 교육도 받고 똑같은 이런 입장에서 발언도 할 수 있고 참여도 할 수 있는 것을 만들어주는 것이거든요. 그런데 여태까지 좀 처져 있어요.

김대홍 : 그렇죠.

이종찬 : 그래서 학술원을 만들어서 처져 있는 후손들을 처지지 않도록 다시 교육시키고 개발시키고 현실 정치에, 현실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 이것이 학술원의 제일 큰 목적입니다.

김대홍 : 후손들 교육 프로그램이군요.

이종찬 : 독립운동사를 아까 말했지만 독립정신을 잘 정리를 해가지고 후손들에게 선조들이 이런 정신으로 싸웠으니까 당신들은 남이 못 갖춘 그런 정신을 이어받아서 아주 건전한 사회에 말하자면 흙수저지만 금수저 되겠다는 생각은 아닙니다만 그래도 하나의 시민으로서의 빠짐이 없도록 해 주자. 이렇게 제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김대홍 : 알겠습니다. 지난해 백범 김구 선생 추모사에서 이런 얘기를 했더라고요. 임시정부의 밝히지 못한 역사를 소개할 것이다. 이건 또 무슨 뜻입니까?

이종찬 : 임시정부에는 지금 말하자면 독립운동사를 많이 했는데 임시정부에서는 아직도 역사가 뚜렷하게 밝혀지지 못한 부분들이 있어요. 이를테면 임시정부 안에서도 여야와 대결이 있었고 지역감정에서의 대결이 있었고 또 사상적으로 갈라져서 대결이 있었고 대결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대결 부분은 대개 다 얼버무리고 넘어갔는데 저는 그러지 말자 얘기죠. 그런 대결 상황을 어떻게 임시정부에서 주체적으로 통합을 시켰느냐. 통합의 노력에 대해서는 전혀 지금 언급이 없어요. 그래서 통합의 오늘날 우리 정치가 지금 갈라져 있는데 만약 통합의 논리를 잘 정리가 됐다면 우리 선열들이 이런 방식으로 통합을 했다. 이런 방식으로 통합했다는 것을 지금 현실 정치에서 가르칠 필요가 있는데 이런 부분에 대해서 소홀하게 다룬 부분이 많습니다. 그래서 제가 조금 더 우리 현실 정치에 순기능이 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 제가 좀 더 정리를 해놓으려고 그럽니다.

김대홍 : 그렇군요. 보면 관련해서 광복회에서 매달 한 차례씩 발간하는 회보가 있잖습니까, 광복회보. 저희가 한번 찾아봤어요, 광복회보에 어떤 내용이 있는지. 1월달 회보에 보면 저게 있더라고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이승만 재평가. 이승만 재평가에 대해서는 지금 진보, 보수 또 여당, 야당 굉장히 첨예하게 갈리는 상황인데 광복회에서 이승만 재평가 왜 저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이종찬 : 제가 분명하게 말씀드리면 잘못된 겁니다. 왜냐? 우리가 매달 독립운동가를 선정을 해서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해서 내세워가지고 국민들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김대홍 : 국가보훈처하고 같이 하죠.

이종찬 : 국가보훈부하고 같이 하고 있습니다.

김대홍 : 국가보훈부.

이종찬 : 이 사업을 해왔는데 이 사업에 나선 인물들은 약 500여 명이 그동안에 소개가 됐어요. 이승만 대통령이 아직까지 소개가 안 됐습니다. 그것도 너무 저는 편협하게 생각한 사람들이에요. 그래서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1월달에 이승만 대통령을 선정을 해서 크게 국회도서관에서 크게 학술회를 해서 이승만 대통령의 진면을 알려드렸습니다. 그런데 저는 지금 건국전쟁이라는 다큐에 대해서 굉장히 많은 분들이 동원이 돼서 봤는데 아쉬운 점이 있어요. 뭐냐? 너무 정부 수립 이후 한국전쟁 치르는 과정에서의 이승만, 이것만 부각됐지 독립운동에 있어서의 이승만의 역할에 대해서는 거의 없어요. 그거는 잘못됐습니다. 균형이 안 맞아요. 그분은 임시정부의 대통령이요, 초대 대통령이요.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입니다. 균형 있게 똑같이 소개를 해야 됩니다. 그런 뜻에서 저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초대 대통령으로서의 이승만 대통령의 역할을 부각시키려고 굉장히 그 부분에 대해서는..

김대홍 : 자료도 오늘 가져오신 거 같던데 어떤 자료입니까?

이종찬 : 이거 여러분께 보여드리겠습니다. 이게 1919년 6월 18일 대통령으로서 당선된 이승만 대통령이 6개국 국가 원수에게 편지를 일제히 보냈습니다. 가지고 나온 거는 Your Majesty, 천황폐하에게 보낸 거예요, 일본 천황폐하에게. 천황이란 말은 없습니다. Majesty니까 폐하. 여기 내용이 첫구절이 아주 멋있습니다. 나는 오늘 대한민국의 합법적 절차에 의해서 당선된 대통령입니다. 이제부터 제가 이 나라를 거번합니다. 거번한다고 했어요. 거번합니다. 그러므로 귀국이 무단이 불법적으로 점거하고 있는 귀국의 군대를 하루 빨리 철수시켜주시오.

김대홍 : 일본군이 나가라.

이종찬 : 나가라. 그리고 여기 이런 것도 있습니다. 귀국과 우리나라가 강제적으로 불법적으로 체결된 모든 조약은 무효입니다 언급돼 있습니다. 이런 대통령의 말하자면 얘기를 왜 소개를 하지 않습니까? 임시정부가 사실 여러 군데 생겼었습니다. 3.1 독립선언 이후에 한성에도 생겼고 우라지오에도 생겼고 상해에도 생겼고 여러 군데 생겼어요. 통합을 하는데 이의가 없는 건 어떤 부분이냐. 내각제도 있고 대통령제도 있었어요. 그런데 모두가 대통령제로 한다. 그리고 그 당시엔 대통령이란 용어가 없었어요. 그래서 집정관 총재예요. 그런데 영어로는 president입니다. 그래서 이승만 대통령으로 president로 한다는데 대해서 합의가 됐어요. 그래서 합의가 된 것이 대한민국 임시정부거든요. 그러기 때문에 여기에 1919년에 프레지던트 리퍼블릭 오브 코리아로 돼 있어요.

김대홍 : 제일 아래에요?

이종찬 : 제일 아래예요. 프레지던트 리퍼블릭 오브 코리아는 말은 뭐냐 하면 지금 대통령이 외국에 보내는 편지에도 프레지던트 리퍼블릭 오브 코리아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때 이미 1919년에 공화정이 수립이 됐고 대한민국이라는 국호가 생겼고 대통령제로서 프레지던트라는 직함이 생겼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독립운동사를 다 무시하고 갑자기 1948년 대통령이 됐다. 저는 너무 그 점에 대해서만 얘기를 하지 그 이전의 독립운동사에 대해서 말하자면 생각하지 않고 버리는 그런 태도에 대해서는 저는 대단히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김대홍 : 알겠습니다. 아픈 질문이긴 합니다마는 과거에 보면 극심한 내홍을 치르지 않았습니까? 광복회가. 그래서 광복회를 해체해버리는 게 낫다 이런 국민적 의견도 있었어요.

이종찬 : 있었습니다.

김대홍 : 그러면 중요한 게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받는 광복회가 돼야 할 텐데 어떤 노력하고 있습니까?

이종찬 : 애국지사들이 회장을 할 때는 그런 일이 없었습니다. 애국지사들이 물러나고 2세 시대에 저는 세 번째 회장인데 전임 회장들을 제가 잘못 얘기하면 전임 회장에게 비난하는 격이 돼서 아주 말이 조심스러운데 자꾸 소련은 해방군이요 미군은 점령군이다 이런 식으로 너무 사상적으로 한쪽에 치우친 발언을 해가지고 많은 분들이 우리가 독립운동할 때 그런 말하자고 독립운동한 거 아니다 하는 원로로서 지적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까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여도 없고 야도 없습니다. 진보도 없고 보수도 없습니다. 오로지 현재 대한민국의 지향하는 국가 이익이 어느 쪽으로 가야 되느냐 충실히 따르자. 이것이 우리 광복회를 광복회답게 국민들에게 하나의 원로단체로서 지도적 입장을 유지하는 거지 어느 쪽에 치우치고 어느 쪽에 너무 편향돼 있으면 저는 이거는 우파든 좌파든 편향된 그 자체가 실패입니다.

김대홍 : 재정은 어떻게 할 거예요? 지난번에 보니까 무리한 수익 사업으로 부채가 급증했다. 그래서 굉장히 광복회가 재정이 어렵다 그러는데 보니까 무급인 거 같던데요. 월급도 안 받고 일하신다고 하던데.

이종찬 : 좀 부끄러운 얘기이지만 광복회가 지금 약 15억의 부채가 있습니다. 전임자들이 자꾸 이것을 수익 사업을 자꾸 해가지고 그냥 부채만 남겼어요. 원래 송충이는 솔잎 먹고 사는 겁니다. 선비가 얼어죽어도 곁불은 쬐지 않는 거예요. 그러니까 독립운동만 하셨던 후손들이 장사를 하려고 하면 이거는 이루어지지 않아요. 이거 다 전문적인 영역이 있습니다. 그런데 자체가 잘못됐어요. 그래서 제가 수익 사업 일체 안 한다. 다 끊어버렸어요. 그리고 빚이 다 갚아질 때까지 우리 간부들은 명예직으로 무료봉사하자. 지금 실천하고 있습니다. 쌀알을 남겨서 그걸로 빚을 갚을 수는 없어요. 그러나 정신적으로 우리가 긴장하자는 뜻입니다.

김대홍 : 알겠습니다. 그럼 지금부터는 이제 이종찬 회장이 걸어온 역사를 저희가 좀 시청자분들께 소개를 해드려야 될 거 같아요.

이종찬 : 부끄럽습니다.

김대홍 : 앞에서도 전해드렸습니다만 이종찬 회장, 현대사의 증인인데 한번 보여주세요. 1936년생입니다. 88살인가요, 지금? 그리고 육군사관학교하고 국회의원 4번 했고요. 국정원장 했고 김대중 평화센터 지금 고문이시고 광복회장이시고. 이력 대한민국 역사의 굴곡마다 계속 등장을 하셨던 분이고. 저희가 사진 몇 장을 준비했어요. 사진 보면서 좀 더 설명을 해 주세요. 정보는 국력이다. 이거 김대중 대통령 옆에 계신 거 같은데 국정원장 때인가요?

이종찬 : 국정원장 때입니다. 그때 김대중 대통령이 저에게 국정원장을 하라는 거는 거의 국정원을 없애는 수준까지 한번 생각을 해보신 겁니다.

김대홍 : 그전에는 안기부였죠?

이종찬 : 그전에 국가안전기획부라 그래서 안기부라 그러죠. 왜 그러느냐? 김대중 대통령만큼 소위 중앙정보부나 국가안전기획부의 탄압을 받은 분은 없습니다. 그 양반은 그 기관으로부터 납치도 당했고

김대홍 : 그렇죠.

이종찬 : 사형 선고도 받았고 항상 감시의 대상이 돼서 무엇이든지 조금만 움직이면 금방 감시를 했습니다. 집에 연금도 됐고. 그러기 때문에 국가정보기관에 대한 혐오감이 있었어요. 자연스러운 겁니다. 그래서 저에게 그 얘기를, 제가 인수위원장을 했습니다.

김대홍 : 그렇습니까?

이종찬 : 대통령직의 인수위원장을 했기 때문에 많은 토론을 했는데 제가 그랬습니다. 국가를 국가답게 하려면 말하자면 동물이 촉각이 없어지는 거는 이거는 동물이 막 어디 방향으로 가는지 모르잖아요.

김대홍 : 그렇죠.

이종찬 : 촉각입니다. 촉각이 없는 동물은 상상할 수가 없는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촉각을 촉각답게 해야지 촉각이 본체를 손상시키는 것은 촉각으로서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정보기관을 정보기관답게 만듭시다. 그러니까 당신이 하시오. 그래서 제가 했는데 조금 제가 지금도 가슴에 뭉클한 점이 있어요. 뭐냐? 국가에 국내 정보에 있어서 무슨 정치에 개입하고 언론에 개입하고 이런 부분들 다 잘라낼 수밖에 없단 말이죠. 그런데 잘라내는 파트에 많은 제 후배가 있어요. 그 사람은 너는 아니다 할 수는 없고 다 일관되게 자르다 보니까 그 사람들이 참 피해를 본 거는 사실이거든요. 그렇지만 이건 누가 해도 해야 할 정리 사업인데 정리를 해서 했는데 그다음에 제가 대통령께 건의를 드렸죠, 김대중 대통령님께. 정보라는 것은 그냥 허공에 떠 있는 게 아니고 남의 흠만 잡는 게 정보가 아니라 국가를 지탱하는 정보, 지식입니다. 그 지식을 함축해야 하는 건데 그때는 마침 IMF 때예요. 지금 외국에서 IMF라는 것이 갑자기 온 것이 아니라 외국에서 차츰차츰 그게 들어왔는데 그거에 대해서 소홀히 다뤘다 이거예요. 그러니까 정보를 소홀히 다루지 않는 것이 중요하니까 정보가 국력입니다. 그리고 국가정보원으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김대홍 : 알겠습니다.

이종찬 : 영어로 이게 에이전시였어요. 에이전시는 남을 지배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서비스로 바꾸자. 그래서 지금 영어가 내셔널 인텔리전스 서비스입니다.

김대홍 : 알겠습니다. 그 정도 하고요. 좀 더 과거로 한번 저희가 들어가보겠습니다. 사진 또 하나 준비했는데요. 보여주십시오. 저 가운데 꽃다발이라고 하나요? 목에 걸려 있는 게 김구 선생님 아닙니까? 저기에 이종찬 회장이 있다고 하는데 어디 있습니까?

이종찬 : 바로 중앙에 있는 태극기 든 소년이 저입니다.

김대홍 : 저 반바지 입고요?

이종찬 : 예.

김대홍 : 어떤 사진입니까?

이종찬 : 상해에 10월달에 중경에서 환국을 하는데 상해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만든 곳이니까 상해에 와서 한 보름 계시다가 귀국을 했어요. 중간 귀착지인데 그 당시에 저는 상해에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임시정부 요인들이 홍교공항에 도착할 때 환영하러 나갔었습니다.

김대홍 : 상하이, 상해 때 사진이군요. 돌아온 귀국.

이종찬 : 그렇습니다. 제가 10살 때입니다.

김대홍 : 10살 때. 보니까 집안에 서훈을 받은 독립운동가만 14명이더라고요. 그리고 이회영 선생의 6형제가 독립운동에 쓴 돈을 저희가 현재 화폐 가치로 해보니까 2조 원이 넘더라고요.

이종찬 : 제가 생각할 때 그때 40만 원인데요. 동아일보사에서 1969년에 자기들이 보도하기 위해서 환산했어요. 어떤 환산했는지 그게 600억이었습니다. 69년도에 600억. 그런데 69년도의 GDP와 지금 GDP를 계산해보니까

김대홍 : 그렇죠.

이종찬 : 약 200배 내지 300배로 늘었어요. 그래서 아주 라프로 계산하면 1조 2000억. 아주 이렇게 2조 이렇게 환산할 수가 있는데 조금 더 정밀한 계산이 필요할 거 같습니다.

김대홍 : 지금 저기 보면 좀 전에 제가 말씀드린 이회영 선생. 눈물 닦고 있는 저분이

이종찬 : 눈물 닦는 이는 우리 종조부.

김대홍 :그렇군요.

이종찬 : 형 아우신 이시영, 저 양반이 대한민국 수립의 초대 부통령입니다.

김대홍 : 알겠습니다. 그러면 그렇게 돈을 많이 이제 국가를 위해서 냈으면 남아 있는 가족들은 굉장히 어려웠을 거 같은데요.

이종찬 : 내신 분이 둘째 할아버지인데 그 양반이 부잣집으로 양자를 가서 그 집 돈입니다. 사실 우리 집이 본가는 돈이 없어요. 그 집 돈인데 그 집 돈을 다 도륙을 낸 거죠.

김대홍 : 그렇습니까?

이종찬 : 그분은 1932년에 상해에 있는 아주 초라한 다락방에서 굶어 돌아가셨어요.

김대홍 : 그렇습니까?

이종찬 : 왜냐하면 윤봉길 사건이 있은 후 다 도망을 가버렸거든요. 그 양반을 부양할 분들이 없어요. 그 양반이 그 당시에 벌써 70 연세인데 그래서 돌아가셨습니다. 불행하게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나 이거 비화를 하나 얘기하죠.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돼서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 대통령께서 부통령인 이시영 옹에게 그동안에 가산을 많이 탕진하셨는데 일부라도 찾아드리겠습니다. 말씀만 하십시오. 그러니까 운암, 우리가 독립운동할 때 언제 뭘 바라고 독립운동했소? 이거 필요 없습니다. 안 받으셨어요.

김대홍 : 알겠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오늘은 아주 특별한 분을 모셨습니다. 독립운동에 헌신한 분을 한 건데 지금부터는 화제를 바꿔서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한일관계 개선 급속하게 이루어지면서 한일 협력도 늘고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정작 개선의 실마리라고 할 수 있는 징용적 피해 문제는 답보 상태인 거 같아요. 회장께서 보시기에 지금 일본 관계 개선을 위해서 바뀌고 있는 거 같습니까? 어떻습니까?

이종찬 : 바뀌고 있습니다. 바뀌고 있고 지금 많은 분들이 이승만 대통령이 너무 일본에 친일한다 하는 오해를 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제가 분명하게 말씀을 드립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분명히 한 점이 있습니다. 뭐냐? 전전 일본과 전후 일본을 혼동시키지 말자. 전전 일본은 군국주의 일본이요, 남의 나라를 침범하는 일본이요, 제국주의 일본이요, 거기에 우리는 피해자입니다. 그러나 전후 일본은 평화 헌법을 지키고 민주주의 가치를 향해서 가고 있는 일본이거든요. 그러기 때문에 전후 일본과 전전 일본을 혼동시키면 이게 자꾸 판단의 흐름이 끊겨진단 말이죠. 김-오부치 선언이 뭡니까? 과거는 과거대로 두고, 잊어버리자는 게 아닙니다. 그건 그대로 두고 미래를 향해서 가자. 그러니까 전전 일본의 조약은 조약대로 두고 우리는 미래를 향해서 가자. 전후 일본은 미래를 향하자. 똑같은 말하자면 기조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일본 자체가 흔들려서 우파들이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고 이러면, 왜 너희들이 전전 일본으로 가느냐 이렇게 우리가 자꾸 비난하지 않습니까? 그거는 당연한 겁니다. 우리는 전후 일본에 대해서 좀 더 민주주의적인 나라로 발전되고 우방과도 잘 지내는 그런 나라가 되기를 희망하고 있는 거거든요. 그래서 나는 방향은 옳은데 가다가 보면 자꾸 사태가 섞여져가지고 일본 우파들은 계속해서 일본이 강한 일본이 돼야 된다, 군국 일본이 돼야 한다 이런 얘기를 하는데 이거는 잘못, 일본 내에서도 잘못된 겁니다. 그러니까 윤석열 대통령의 방향은 저는 옳다고 이렇게 생각합니다.

김대홍 :알겠습니다. 지금까지 광복회와 이종찬 회장을 중심으로 광복회 활동 그리고 한일관계 살펴봤고요. 지금부터는 국내외 독립운동가 후손들을 위한 지원 대책과 미래 세대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 개발 등 광복회가 해야 할 과제들을 집중적으로 얘기해보겠습니다. 먼저 저희가 준비한 영상부터 보시겠습니다.

김대홍 : 지금 2024 파리 올림픽 한참 진행 중입니다. 가슴에 태극마크를 딴 선수들이 메달을 따고 가장 높은 곳에서 태극기가 게양될 때마다 자긍심이 올라옵니다. 이번 올림픽 유도 여자 결승에서 허미미 선수가 은메달을 목에 걸 때도 진한 감동을 줬는데 그런데 이 허미미 선수가 독립운동가 허석 선생의 후손이라는 사실 시청자 여러분 알고 계셨습니까? 먼저 자세한 내용 저희 KBS 기자가 정리했습니다. 함께 보시겠습니다.

김대홍 : 참 대단하지 않습니까?

이종찬 : 네. 대단합니다. 정말. 저는 지금도 결승전에서 꼭 그게 금메달이라고 생각합니다.

김대홍 : 저도 금메달이라고 생각했었죠.

이종찬 : 그런데 뭐 무슨 뭐 규정을 위반했느니. 그런데 그거는 너무 기술적인 게 돼서 제가 잘 이해 못 하겠는데 금메달이 틀림 없는 것 같았어요. 그런데 어쨌든 허미미 양이 자기가 허석 선생 후손임을 밝히고 또 외국에서 공부하면서 조국을 택했어요. 저는 그거를 굉장히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김대홍 : 할머니의 권유에 의해서 왔다고 하더라고요.

이종찬 : 몰랐다가 할머니가 깨우쳐줘서 자기가 결심해서 한국 국적을 취득하고서 한국에서 선수로 나갔는데 저는 이런 선열의 피가 이런 데에 크게 기여를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참 예뻐합니다. 그래서 돌아오면 환영회를 해줄 생각입니다.

김대홍 : 광복회에서 꽃다발도 준비하고 그런가요?

이종찬 : 물론이죠.

김대홍 : 보면요. 허미미 선수만 올림픽에 출전해서 메달을 딴 게 아니고, 독립운동가 후손들 가운데요. 카자흐스탄 국민 영웅 중에도 보니까 고려인 피겨스케이트 선수 데니스텐이라는 선수가 있더라고요. 이 선수 압니까?

이종찬 : 원래요. 카자흐스탄에 지금은 국회의원에게 맞아서 작고한 사람이 있는데 데니스댄이라고 하는 선수가 있었는데 그 사람이 말하자면 김연아 선수하고 같이 남자하고 여자 이렇게 출전을 같이 했어요. 그런데 그 사람은 동메달을 땄어요. 다음은.. 그래서 그분이 누구냐? 의병장인 민금호 선생의 후손입니다.

김대홍 : 그렇습니까?

이종찬 : 네. 민금호 선생이 의병으로 강원도에서 활동을 했는데 점점 일본군에게 밀려서 우라디보스톡까지 갔다가 거기에서 중앙아시아로 갔는데 민금호 선생은 그 과정에서 돌아가셨지만 그분의 후손이 바로 데니스텐인데 참 그 가족이 그런데 운동을 잘한다고 그래요. 저도 그래서 유심히 보고 있습니다마는.

김대홍 : 그것도 마찬가지로 독립운동하셨던 선조들 피가 있다. 이거죠? 그렇죠?

이종찬 : 민금호 선생의 후손입니다. 있죠. 있었죠. 또 한 가지 제가 말씀드리죠. 카이스트의 유명한 박사분이 한 분이 중앙일보의 풀페이지로 나왔습니다. 소개했어요. 다 좋은 조건으로 그 양반이 컴퓨터학을 했는데 좋은 조건으로 미국에 남기를 희망했는데 그분이 그 조건의 그 혜택을 포기하고 국내로 들어와서 카이스트에서 후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분이 문일민 선생의 손녀입니다. 정인보 선생의 외손녀고. 그러니까 저는 은연 중에 이런 게 나타난다. 한 가지 더 말씀드릴까요?

이종찬 : 말씀하십시오.

김대홍 : 국민들이 잘 모르고 있습니다. 쿠바에 이제 외교군 같은 쿠바에 독립운동 후손이 있어서 그 후손 중 한 사람이 저희들이 독립.. 장학금을 보내줬습니다. 2년 전부터. 그런데 그중의 한 사람이 국내로 들어왔습니다. 뭘 연구하는지 아세요? 산림학. 나무 심는 거. 그거를 전문가가 되겠다고. 이름이 가브렐라입니다. 그 소녀가 지금 국내에 들어와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장학금을 줬는데 국민 여러분께서도 이런 갸륵한 소녀에게, 학생에게 많은 성원을 부탁합니다.

김대홍 : 알겠습니다. 본인이.. 아까 허미미 선수도 그렇지만 처음에는 독립운동가 후손이라는 걸 몰랐다는 거 아니에요? 본인이 감독이 가르쳐줘서 알게 됐는데 이런 경우처럼 본인이 독립운동 후손이라는 걸 몰라서 그냥 넘어가는 경우도 있을 것 같은데 광복회에서 좀 찾아야 되는 거 아니에요?

이종찬 : 물론이죠. 저희들이 몰랐다고 그러면 저희들이 조금 부끄러운 얘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광복회가 아시다시피 이 전체.. 유공자 전체에 대한 정보를 지금 수집을 하고 수집을 하지만 그게 그렇게 완벽하지 못 하다는 사실을 국민들에게.. 참 우리의 약점을 고백을 합니다.

김대홍 : 앞으로 국가보훈부하고 같이 이런 사업은 좀 해야 될 것 같아요.

이종찬 : 그런데 장애가 하나 있어요. 국가에서는 개인정보 이게 보호라는 차원에서 정보를 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희들이 이게 억지 수집을 해야 되는데 그래서 제가 지금 개인정보위원장을 찾아가 뵀었고 어떻게 하든지 우리는 독립운동하셨던 후손들을 찾고자 하는데 조금 우리의 사업을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없겠는지 좀 얘기하려고 그럽니다.

김대홍 : 알겠습니다. 그것뿐만이 아니고요. 자신이 독립운동가 후손이라는 거를 알고는 있는데 외국에 오래 살다 보니까 한국어를 못 하고 한글을 읽지 못 해가지고 신청 못 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아요. 사진 한 장 저희가 준비했는데, 이겁니다. 중남미 쿠바에서 독립운동을 한 주한옥 선생의 딸 주미엽 씨입니다. 올해 103살이더라고요. 103살인데 젊은 시절에 보니까 대한여자 애국단에서 활동도 했고 형제, 자매들과 함께 광주 학생 독립운동 지지대회도 열었다고 하고 더 중요한 게 주한옥 선생을 보니까 쿠바 사탕수수농장에서 받은 좀으로 독립자금 100차례나 넘게 보내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게 이 가족들 아직까지도 성원을 못 받았다고 해요. 참 안타까운데 그 이유가 뭐냐? 했더니 한국어를 또 모르고 신청을 어떻게 해야 되는지 모른다는 거예요. 이런 경우도 좀 도와줘야 되는 거 아니에요?

이종찬 : 물론이죠. 우리가 하겠습니다. 그리고 쿠바에는 그동안에 외교 관계가 없었기 때문에 참 정부가 서로 소통을 못 했어요. 30명의 후손이 있다고 그래요. 그런데 3년 전에 조금 거기가 좀 풀려져서 경보가 서로 그거했을 때 저희들이 600만 원을 장학금으로 보냈는데 5,000불을 보낸 거죠. 그랬더니 여기에서 1달러는 엄청난 가치가 있는데 학생들 두 사람에게 1000불씩만 줘도 대만족이니까 1,000불씩 주고 나머지 3,000불은 한인회를 위해 쓰겠다고 그래서 저희들이 그렇게 조치를 했습니다.

김대홍 : 알겠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요. 독립운동가들이 해외에서 활동을 많이 하지 않았습니까? 거점이라고 해야 될까요? 건물들이 있어요. 대표적인 거 보니까 미국 LA에서 일제강점기 때 독립운동을 한. 지금 저거예요.

이종찬 : 옛 안창호 선생..

김대홍 : ** 저거죠? 생가.

김대홍 : 네. 그래서 이제 이게 아파트 신축한다고 철거 위기에 있었는데 다행히 우리 국가보훈부가 사들여가지고 역사기념관으로 재단장한다고 하는데 이것뿐만 아니라 프랑스에도 있고 중국에도 있고 많이 있지 않겠습니까? 이런 것도 좀 발굴하고 해야 될 것 같아요.

이종찬 : 이번에 우리 대표단을 제가 독일에 파견했습니다.

김대홍 : 독일에요?

이종찬 : 왜. 독일은 그 당시에 1차대전 일본 편 들었기 때문에 독일은 독립운동의 흔적이 없는 줄 알았는데 거기에도 있어요. 그래서 그런데 대단히 미안하지만 거기 표주석도 다 치워지고 그런.. 황폐화 됐는데 제가 일부러 그거를 찾았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그 정보를 보훈부에 넘겨서 이제 보훈부에서 거기에 어떤 독립운동 유적지다운 사업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종찬 : 알겠습니다. 독립운동가 후손들을 지원하는 건 해외에서 뿐만 아니라 국내도 중요한데요. 국권을 찾기 위해 발벗고 나선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저희 KBS 기자가 취재를 했는데 함께 보시겠습니다.

김대홍 : 저 마지막 문장 중에 보상금 지급 범위도 복잡하고 까다롭다. 그래서 법 개정이 필요하다라고 저희 KBS 기자가 얘기를 하는 것 같습니다.

이종찬 : 맞습니다. 제가 와서, 회장이 돼서 와서 보니까 독립운동가 예우에 관한 법을 개정하려고 애를 썼는데 관철이 안 되고 관철이 안 되고 그랬어요. 그런데 제가 딱 보니까요. 이상한 걸 발견했어요. 이게 우리 유신 때 74년에 그개성공단국회가 아닌 비상각의에서 3대째 내려가는 걸 뚝 잘라버어요. 예산을 주는 절약한다는 뜻에서. 그래가지고 못 받게 되는 굉장히 수가 늘어나버렸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니. 언제적 유신이냐. 지금 50년~ 40년. 40~50년이 지났는데 지금까지 이것을 복원을 못 시켰다는 건 어떤 면에서 우리의 잘못이고 국회의 잘못이다. 왜? 국회가 법은 복구를 시켜줘야지 유신 때 중단된 법을 복원을 시켜주지 않으니까 후손들이 그거는 잊어버리고 해달라 사달라. 그거 다 유신 때 중단된 법 속에 다 들어가 있어요. 그래서.. 제가.. 안규백 의원에게 부탁을 했어요. 유신 때 중단된 법을 국회에서 아직도 복원을 안 시켜주면 이건 어떻게 되는 거냐? 했더니 의원들에게 많이 이야기를 하니까 다 한번 여야를 막론하고 다 사는을 애줬어요. 그런데 그게 21대 국회확인들이 바쁘고 그래서 이거를 관철을 못 했는데,

김대홍 : 그러면 22대에 해야 될 거 아닙니까?

이종찬 : 새 국회에서 안규백 의원이 지금 우선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주겠다고 약속을 받고 있습니다.

김대홍 : 알겠습니다. 이게 왜 중요하냐면요. 조금 전에도 말씀을 하셨습니다만 독립운동가 후손들 가운데 흙저가 많다. 직접 말씀도 하시지 않았습니까? 경제적으로 어려운 분들이 한둘이 아닌 것 같아요.

이종찬 : 제가 흙수저인.. 당연하잖아요. 언제 독립운동하면서 가족 챙기고 언제 독립운동하면서 재산을 챙깁니까? 다 포기하고 오로지 싸우는 것 아닙니다. 그런데 그분이 싸우면서 멀쩡했던 가족이 흙수저로 전락이 됐는데 그러면 그 흙수저를 다시 뭐.. 금수저로 만들어달란 얘기 아닙니다. 그저 평범한 국민의 수준에 맞게 좀 부추켜 올려줘야 한다 하는 건데 그게 좀 부족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저희 광복회는 그것을 역점 사업으로 하고 있습니다.

김대홍 : 알겠습니다. 조금 전에 국회 찾아가서 북한한테 뭐 이런 저런 얘기도 했다고 하는데 비례대표 이번에 선거 때요. 비례대표 후보 선정할 때도 독립유공자 후손들을 좀 비례대표에 넣어달라라고 여당, 야당 이렇게 찾아가서 얘기를 했다고 제가 알고 있는데 결과가 어떻습니까?

이종찬 : 유감스럽습니다. 반영을 못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선거법이 다 알다시피 당에 위성정당이 생겨가지고 당은 당대로 따로 하거든요. 그러니까 이런 정신이 잘 전달되지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비례대표로는 사실은 지금 여든 야든 소비된 건 사실입니다. 그래도 민주당에서 김구 선생의 증손자 하남에다가 출마 시켜서 국회의원으로 당선 시켜준 것에 대해서 저는 고맙게 생각합니다.

김대홍 : 알겠습니다.

이종찬 : 우리 국민의힘은 한 사람이 ** 청도 때,

김대홍 : **

이종찬 : 강북구에서 출마를 했는데 떨어졌어요. 그러니까..

김대홍 : 굳이 이름은 안 밝혀도 될 것 같습니다.

이종찬 : 굳이 이름은 안 밝히겠습니다.

김대홍 : 알겠습니다. 저희가 훈훈한 소식 또 하나 찾았는데 회장께서 제주도에 있는 한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감사장을 보냈더라고요. 감사장 한번 보여주시겠습니까? 바로 저건데요. 제주구엄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한테 회장님 이름으로 감사장을 보낸 건데, 초등학교 학생들한테 감사장을 보냈다. 이게 좀 이상한데. 내용이 뭡니까?

이종찬 : 초등학교 학생들 6학년의 학생들이 참외를 심어서요.

김대홍 : 참외요? 믹는 참외요?

이종찬 : 네네. 참외를 심어서 그거를 시장에서 팔아가지고 40만 원을 만들었습니다.

김대홍 : 그렇습니까?

이종찬 : 그 40만 원을 자기들끼리 이 돈을 어떻게 귀중하게 쓰자.

김대홍 : 잠깐만요. 사진도 좀 있을 것 같은데 사진도 같이 보여주시죠. 아, 그림이요?

이종찬 : 그래서 제가.. 말씀 계속 하겠습니다. 그래서 제가 얼마나 갸륵합니까?

김대홍 : 그렇습니까?

이종찬 : 학생들이 스스로 결정을 했는데 이거는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에게 보내주자 선거물을 보내주자. 제가 감동했습니다.

김대홍 : 저거죠. 저거.

이종찬 : 네. 맞습니다.

김대홍 : 저 학생들이 지금 회의를 뭐.

이종찬 : 회의를 해서 선생님이 이러해라. 저거해라. 지도한 거 아닙니다. 자기들끼리 회의를 해서 독립운동가 후손을.. 광복절이 이제 가까워지지 않았냐. 그러니까 우리 이 동료들이 이 돈을 그분들 후손들에게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도록 보내주자 해서.

김대홍 : 그게 얼마라고요?

이종찬 : 40만 원을요.

김대홍 : 40만 원이요?

이종찬 : 네. 저희들이 받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거는 그야말로 너무 귀중한 돈이다. 또 우리가 이것을 그냥 받고만 있을 수 없다. 해서 이번에 제가 제주도 가는 길기에 일부러 거기 학교 간부들 모셔다가 제가 감사장을 드리고 저희들이 뭐 조그마한 광복회가 이런 것이다 하는 소개 책자도 보내주고 앞으로 구엄초등학교하고 깊은 유대 관계를 가질 생각이고 지사께도 이런 학교가 있으니 제가 칭찬해줬습니다. 제주도의 교육이 성공했다는 하나의 증거라고 말입니다.

김대홍 : 중요한 게 아까 말씀을 하셨습니다만 국민들, 저 구엄초등학교 학생들처럼 얼마 되지는 않더라도 광복회에 대해서 조금씩 십시일반 선금도 보내고 또 광복회가 뭐하는 곳인지 알고 그러는 프로그램이라고 할까요? 이게 로 필요하지 않을까요?

이종찬 : 프로그램을 저희들이 더 확대를 해야될 텐데 사실은 저희들이 장학 사업도 하고 뭐 여러 사업도 해야겠지만되 국민들에게 개도하는 사업이 저렇게 자발적인 학생들에게 조금 더 적극적으로 해야 되겠다 하는 그런 마음다짐을 하게 됐습니다.

김대홍 : 독립운동 관련해서 역사 교육. 외국 사례하고 비교하면 어떻습니까? 우리 잘 되고 있습니까?

이종찬 : 외국 사례하고는 조금.. 제가 지금 생각하고 있는 프랑스의 나치스가 점령을 했습니다.

김대홍 : 그렇죠.

이종찬 : 그때 레지스탕스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니까 리지스탕스 운동이 아주 격렬했기 때문에 드볼드 대통령이 영국에서 임시 정부를 수립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 선례가 우리와 하여튼 많은 점에서 유사하다는 것을 느겼고.. 느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런 례, 레지스탕스의 영화제를 한번 해서..

김대홍 : 영화제요?

이종찬 : 외국의 독립운동에 있었던 이러한 영화제를.. 여러 가지 영화를 수입해서 하면 국민들이 흥미도 느끼고 조국이 어려울 때는 저렇게 일치단결해서 쌓아온 것이 외국이었구나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되지 않을까 해서 그것을 2년 전에 한 번 시도를 해봤는데 앞으로 조금 더 적극적으로 이것을 시험해볼까 생각합니다.

김대홍 : 알겠습니다. 북한 얘기도 한번 해보겠습니다. 지금 남북 관계 굉장히 경색 돼 있지 않습니까? 저희가 북한의 수재가 나와서 나와서 도와주겠다고 했는데 사실상 또 북한에서는 거부한 것 같고요. 회장님께서 보실 때 지금 남북관계 어떻게 보십니까?

이종찬 : 저는 김정은 정부가.. 김정은 정권이 굉장히 좀 이상스러운 정권이라고 보는 거예요. 왜냐? 선대의 김일성 세대, 김정일 세대에는 우리 동포끼리 이런 것에 대해서 호응을 했어요. 그런데 이 사람은 딱 끊어버렸습니다. 그리고 같은 민족이라는 건 없다. 오로지 적대국만 있다. 이거는 엄중한 선전포고나 마찬가지예요. 어떻게 같은 민족이 없습니까? 아무리 공산당의 공산주의 이론에 층실해도 그렇고 저는 북한을 공산주의 국가로 보지도 않습니다. 이건 왕조 국가예요. 언제 공산 국가가 이렇게 세대적으로 세습하는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이 왕조 국가가 여태까지는 같은 민족이다 하고 이렇게 해가지고 주사파다 뭐다 이렇게 남쪽에서도 생겼는데 지금 주사파들은 갈 곳이 없어요. 대한민국 품 속으로 들어와야 돼요. 왜냐? 북한은 같은 민족끼리 라는 것을 다 청산해버렸어요. 적대국만 있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까 이제는 전쟁 일보직전으로 자꾸 가려고 그러는데 다행히 저는 이번에 수혜를 보내겠다고 얘기한 거는 참 잘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자기 뒤에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지금 미국에서 트럼프가 된다고 난리입니다. 트럼프라는 사람은 일정한 룰이 없어요. 막 행동하는 사람입니다. 김정은이와 자기가 친구라고 얘기도 해요. 그런데 어느 날 말이죠. 김정은이가.. 아니. 트럼프가 ** 해가지고 나 김정은이 만나고 싶다. 이렇게 얘기를 하면 자칫 잘못하면 우리는 제3자가 되어버린단 이거죠. 이렇게 되면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트럼프가 되더라도 한미 관계가 더 돈독해져야 되고 트럼프가 북한하고 뭘 교섭을 하려면 우리에게 많은 것을 의지하도록 만들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부분에서 빨리 정리가 돼야 되겠다. 아직 정리가 잘 안된 것 같아요. 우리가 정리를 해놔야 됩니다. 윤석열 정부가 지금은 북한하고 대결하는 것만 생각하는데 이제는 세계의 모두가 바뀌어지면 바이든이다. 기시다다. 이런 사람들이 물러나면 그 후에 오는 한미일 관계를 돈독히 하기 위해서 이거를 어떻게 하겠는지에 대해서 대비를 해야겠다는 것이 원로로서 제가 충언을 드리는 겁니다.

김대홍 : 원로로서 충언 하나 말씀하셨기 때문에요. 종로.. 정치 1번에서요. 종로에서만 사서 나신 정치 원로로서요. 그러고 우리 여의도 지금 상황에서도 한 말씀 해주시죠.

이종찬 : 여의도 상황은 지금은 이거는 국회가 아니라 싸움터입니다. 서로 대화도 안 하고. 아주 경색된 시절에 제가 원내 총무도 했습니다. 저는 야당의 원내 총무를 파트너로 생각했습니다. 아주 친하게 지냈습니다. 거의 매일 만났습니다. 어느 달은 한 달 동안 매일 같이 술도 먹고 같이 밥도 먹었습니다. 이렇게 노력을 경주해야 됩니다. 그런데 지금 다수당과 소수당인데 우리가 자꾸 3분의 2, 3분의 1 의석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거기에 표준류 따지면 다수당이라도 49%, 소수당이라도 41%. 표 차체 그렇게 많이 지금 차가 나 있지 않은데 그러면 41%를 무시하고 가겠다는 얘기입니까? 저는 대화를 하셔야 됩니다. 그리고 상대 당을 적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하나의 경쟁 파트너로 생각해서 서로 페어플레이 하도록 가도록 권고하고 싶습니다.

김대홍 : 알겠습니다. 시간이 뭐 1시간이 다 돼 가는데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광복 회장으로 재임하는 동안에 이것만은 꼭 하고 싶다는 게 있다면 짧게 해주시죠.

이종찬 : 지금 자꾸 건국적으로 한다. 이승만 대통령을 건국 대통령이다. 이런 말을 자꾸 하는데 이승민 대통령 그런 말 하는 이 없습니까? 이승만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어떻게 말씀을 하셨냐? 오늘 세워진 이 민국은 오늘 세워진 것이 아니오. 김이년 1919년에 세워진 임시정부의 오늘은 부활일이요. 이렇게 얘기를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연호는 기미년부터 기산하라. 그랬어요. 기미년부터 기산하면 1919년이 대한민국 원년앞이 됩니다. 그러면 우리나라 관보 1호가 48년에 만들었는데 대한민국 30년으로 돼 있습니다. 오늘은 뭐냐? 대한민국 106년입니다. 그러면 106년의 임시정부 역사를 또 대한민국의 역사를 정리를 해야지. 48년의 역사로 이후의 역사를 대한민국이라고 그런다면 이건 북한을 위해서 아주 좋은 일을 하는 거예요. 왜? 북한도 48년 세워졌다고 그러거든요. 우리의.. 우리의 자꾸 왜 19년. 우리는 그 나라를 옛날 왕정 때부터 쭉 계속해서 우리는 이어온 상속자인데 뚝 잘라서 우리는 1948년에 새로 탄생됐다. 그러면 왜 이 역사를 다 버려버립니까? 이 역사를 버리면요. 큰 문제가 생깁니다. 뭐가 생기느냐? 일본이 이 역사에 대해서 부정을.. 자기네들이 책임 없다고 그래요. 그러니까 48는부터 무효라고 그래요. 왜 우리가 1905년부터 무효다. 19510년부터 무효다. 이렇게 얘기를 해야지 왜 48년에 와서 무효라고 얘기를 합니까? 이런 고등 경쟁력을 모르는 사람들이 무슨.. 깝죽거리고서 무슨 건국한다고.

김대홍 :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이종찬 : 이승만 대통령 기념관을 만든다고 그러는데. 이승만 대통령 기념관을 그런 식으로 만들면 이승만 대통령이 욕하는 기념관이 돼 버려요.

김대홍 : 알겠습니다.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일요진단 라이브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시청해 주신 여러분, 저희는 한 주 쉬고요. 그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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