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청곡 받습니다”…제주의 밤 달리는 이층버스

입력 2024.08.10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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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제주 야간시티투어 버스 '야밤버스'에서 어린이들이 함께 뽀로로 동요를 부르고 있다.지난 3일 제주 야간시티투어 버스 '야밤버스'에서 어린이들이 함께 뽀로로 동요를 부르고 있다.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 저녁, 제주에서는 신청곡을 틀어주고 사연을 읽어주는 곳이 있습니다. 카페도 아니고 라디오 방송국의 풍경도 아닙니다. 제주에서 운행하고 있는 관광 이층버스 '야(夜)밤버스' 이야기입니다.

■ DJ가 틀어주는 신청곡·사연 들으며 제주 야간 여행

최근 제주에서 입소문을 타고 있는 개방형 이층버스는 밤에만 달리는 게 특징입니다. 8월 말까지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 저녁 7시부터 9시 10분까지, 하루에 한 번 2시간 10분 동안 제주의 주요 일몰 포인트와 관광지를 돌아봅니다. 제주에서 처음으로 선보이는 'DJ와 함께하는 야간 시티투어 버스'이기도 합니다.

성인 1인에 1만 원, 어린이와 청소년은 8천 원, 미취학 아동은 무료로 타는 이 버스 여행 상품은 매주 빠르게 매진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제주도관광협회 관계자는 "가족 단위 탑승객을 고려해 버스 전체 좌석 수보다 적은 45명 정도까지만 탑승권을 판매하는데, 매번 매진"이라고 했습니다.

지난 3일 저녁 제주국제공항 3번 버스 정류장 앞은 인파로 북적였습니다. 길을 지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한쪽 손목에 '주황색 띠'를 두른 남녀노소가 삼삼오오 모여 차례로 이층버스에 올랐습니다.

지난 3일 제주 야간시티투어 버스 '야밤버스'에 탄 관광객들이 해가 저무는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지난 3일 제주 야간시티투어 버스 '야밤버스'에 탄 관광객들이 해가 저무는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 어린이도 어른도 밤바람 맞으며 '떼창'…곳곳에서 추억도 남겨

"야밤버스에 탑승하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저녁 7시 정각, 55명을 태우고 제주공항을 떠나는 이층버스에서 카랑카랑한 멘트가 흘러나왔습니다. 2층 맨 뒷자리에서 헤드 마이크를 쓴 DJ 이현애 씨가 탑승객들에게 건넨 첫인사. "카카오톡 채널 추가하셔서 신청곡과 사연을 남겨주시면 노래를 틀어드립니다." 버스 승객들의 엄지손가락이 바빠지기 시작했습니다.

"첫 사연입니다, 김기남 씨. '김포에서 온 엄마와 딸이에요. 어제 이호테우축제를 즐겼습니다. 야간 불꽃 너무 예뻤어요'. 오늘도 기대 많이 해주셔도 좋아요. 지금부터 이제 더, 더, 더 재미있을 거거든요. 반갑습니다!"

"아라초등학교 2학년 송지우 어린이, 반가워요. 우리 2학년 방학했죠. 너무 즐겁겠어요. 노래 신청했네요. 고민 중독, 바로 나갈게요. 아니 우리 2학년이 왜 이렇게 고민이 많은 거야?"

"제주의 조랑말을 형상화한 말 등대는 2008년 11월 높이 12m 규모로 설치해서 마치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트로이 목마를 연상케 합니다. 왜 색깔이 빨간색과 하얀색일까요?…와 저 1시 방향으로 석양에 너무 붉게 물들고 있네요."

지난 3일 제주시 이호동 이호목마등대에서 관광객들이 일몰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지난 3일 제주시 이호동 이호목마등대에서 관광객들이 일몰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제주 야간시티투어 버스는 해 질 녘 석양을 마지막으로 볼 수 있는 해안도로와 동문시장, 관덕정 등 주요 야간 관광명소를 거쳐 제주공항으로 돌아오는 2시간 10분짜리 코스입니다. 다음 정차지로 가는 동안 DJ가 승객들이 보내온 갖가지 사연과 신청곡을 들려주고, 간단한 관광지 소개를 이어갑니다. 중간중간 '제주어 퀴즈'로 분위기를 환기하기도 합니다.

야밤버스 관광객들의 반응은 뜨겁습니다. 짧은 사연에는 제주 여행 에피소드, 프러포즈, 기념일 등이 담겨 있습니다. 신청곡도 동요에서 최신 가요까지 다양합니다.

야밤버스 DJ 이현애 씨는 "지난주에 이어 이번 주에도 모두 버스가 만석이었다"면서 "버스 출발 전 홈페이지 게시판뿐만 아니라 버스에서도 실시간으로 신청곡과 사연을 받다 보니, 많이들 보내주신다"고 활짝 웃었습니다.

쿵짝쿵짝 음악에 맞춰 승객들이 노래를 부르는 이층버스 광경에 길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의 시선이 멈추기도 했습니다. 기웃거리는 관광객 가운데는 "도중에 타도 되느냐"며 정차지에서 탑승권을 사 야밤버스에 오르는 이들도 더러 있었습니다.

야밤버스 관계자는 "버스 좌석 예약을 처음부터 넉넉하게 받고 있어서, 운행 도중 타고 싶어 하는 관광객들을 종종 1층 남은 좌석에 더 태우기도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제주 야간시티투어 '야밤버스'제주 야간시티투어 '야밤버스'

■ "지루할 틈 없는 즐거운 시티투어…대가족 여행에도 제격"

제주 야간시티투어 버스는 올해가 첫 운행은 아닙니다. 지난해에도 여름 휴가철에 한시적으로 저녁 노선을 운영했지만, 특색 없는 야간 시티투어 버스를 찾는 관광객은 많지 않았습니다.

제주도관광협회 고세규 시티투어운영과장은 "작년에도 야간 테마 코스를 하긴 했으나 특정 코스를 1시간 간격으로 3차례 도는 것뿐이었고, 탑승객들이 참여하는 이벤트 같은 게 전혀 없었다"면서 "시티투어버스를 타고 내리며 사진을 찍을 수 있고, DJ가 함께 버스에 타서 신청곡과 사연을 받고, 퀴즈와 함께 선물도 주는 방식은 아마도 전국에서 처음"이라고 말했습니다.

만 원짜리 한 장으로 이용할 수 있는 야간 시티투어 버스에 대한 탑승객 반응은 대만족입니다. DJ가 함께 타는 신선한 방식에다가 한여름 낮 땡볕을 피해 해가 저물 무렵부터 밤까지 운행하면서 주요 관광지를 돌 수 있는 것을 큰 장점으로 꼽았습니다.

세 가족이 함께 창원에서 유아 동반 제주 여행을 온 박성희 씨는 "아이들이 많은 대가족이다 보니 어딜 가려고 해도 차가 많이 필요하고, 관광지에 머물기도 힘들다"면서 "관광지에 대한 설명도 들으며 간단하고 편하게 버스로 여행할 수 있어 좋았다. 음악과 DJ가 있어서 지루할 틈이 없다"고 호평했습니다.

노부부가 함께 제주 여행 중인 곽희용 씨는 "제주 친구 추천으로 탔는데 재밌고, 젊어지는 것 같다"며 "낮에는 너무 더워서 다니기 어려운데, 밤에 시티투어를 하니 덥지 않고 좋다"고 만족감을 드러냈습니다.

지난 3일 저녁 제주동문시장에서 관광객들이 먹거리와 기념품 등을 고르고 있다.지난 3일 저녁 제주동문시장에서 관광객들이 먹거리와 기념품 등을 고르고 있다.

야간 시티투어 버스는 다른 지역에서 온 관광객뿐만 아니라 제주도민 사이에서도 호응을 얻고 있습니다. "제주에 살아도 직장생활 때문에 자주 다니지 못하는데, 이렇게 저녁에 시티투어를 할 수 있으니 너무 좋네요.", "제주에 살아도 여행 온 기분", "제주에 살지만, 이층버스는 처음"이라며 제주의 밤을 달리는 시티투어 버스를 반겼습니다.

지난해 제주 시티투어버스 이용객은 4만 9천여 명으로 코로나 사태 이전인 5년 전보다도 3만여 명이 감소했습니다. 이 같은 저조한 이용률을 높이기 위해 지난달 26일, 주간 운행을 단일 코스로 조정하고 운영 시간도 저녁 7시 30분까지로 늘리며 관광객 모시기에 팔을 걷어붙이고 있습니다. 야간시티투어 버스는 이달 말까지 운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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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청곡 받습니다”…제주의 밤 달리는 이층버스
    • 입력 2024-08-10 10:0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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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제주 야간시티투어 버스 '야밤버스'에서 어린이들이 함께 뽀로로 동요를 부르고 있다.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 저녁, 제주에서는 신청곡을 틀어주고 사연을 읽어주는 곳이 있습니다. 카페도 아니고 라디오 방송국의 풍경도 아닙니다. 제주에서 운행하고 있는 관광 이층버스 '야(夜)밤버스' 이야기입니다.

■ DJ가 틀어주는 신청곡·사연 들으며 제주 야간 여행

최근 제주에서 입소문을 타고 있는 개방형 이층버스는 밤에만 달리는 게 특징입니다. 8월 말까지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 저녁 7시부터 9시 10분까지, 하루에 한 번 2시간 10분 동안 제주의 주요 일몰 포인트와 관광지를 돌아봅니다. 제주에서 처음으로 선보이는 'DJ와 함께하는 야간 시티투어 버스'이기도 합니다.

성인 1인에 1만 원, 어린이와 청소년은 8천 원, 미취학 아동은 무료로 타는 이 버스 여행 상품은 매주 빠르게 매진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제주도관광협회 관계자는 "가족 단위 탑승객을 고려해 버스 전체 좌석 수보다 적은 45명 정도까지만 탑승권을 판매하는데, 매번 매진"이라고 했습니다.

지난 3일 저녁 제주국제공항 3번 버스 정류장 앞은 인파로 북적였습니다. 길을 지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한쪽 손목에 '주황색 띠'를 두른 남녀노소가 삼삼오오 모여 차례로 이층버스에 올랐습니다.

지난 3일 제주 야간시티투어 버스 '야밤버스'에 탄 관광객들이 해가 저무는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 어린이도 어른도 밤바람 맞으며 '떼창'…곳곳에서 추억도 남겨

"야밤버스에 탑승하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저녁 7시 정각, 55명을 태우고 제주공항을 떠나는 이층버스에서 카랑카랑한 멘트가 흘러나왔습니다. 2층 맨 뒷자리에서 헤드 마이크를 쓴 DJ 이현애 씨가 탑승객들에게 건넨 첫인사. "카카오톡 채널 추가하셔서 신청곡과 사연을 남겨주시면 노래를 틀어드립니다." 버스 승객들의 엄지손가락이 바빠지기 시작했습니다.

"첫 사연입니다, 김기남 씨. '김포에서 온 엄마와 딸이에요. 어제 이호테우축제를 즐겼습니다. 야간 불꽃 너무 예뻤어요'. 오늘도 기대 많이 해주셔도 좋아요. 지금부터 이제 더, 더, 더 재미있을 거거든요. 반갑습니다!"

"아라초등학교 2학년 송지우 어린이, 반가워요. 우리 2학년 방학했죠. 너무 즐겁겠어요. 노래 신청했네요. 고민 중독, 바로 나갈게요. 아니 우리 2학년이 왜 이렇게 고민이 많은 거야?"

"제주의 조랑말을 형상화한 말 등대는 2008년 11월 높이 12m 규모로 설치해서 마치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트로이 목마를 연상케 합니다. 왜 색깔이 빨간색과 하얀색일까요?…와 저 1시 방향으로 석양에 너무 붉게 물들고 있네요."

지난 3일 제주시 이호동 이호목마등대에서 관광객들이 일몰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제주 야간시티투어 버스는 해 질 녘 석양을 마지막으로 볼 수 있는 해안도로와 동문시장, 관덕정 등 주요 야간 관광명소를 거쳐 제주공항으로 돌아오는 2시간 10분짜리 코스입니다. 다음 정차지로 가는 동안 DJ가 승객들이 보내온 갖가지 사연과 신청곡을 들려주고, 간단한 관광지 소개를 이어갑니다. 중간중간 '제주어 퀴즈'로 분위기를 환기하기도 합니다.

야밤버스 관광객들의 반응은 뜨겁습니다. 짧은 사연에는 제주 여행 에피소드, 프러포즈, 기념일 등이 담겨 있습니다. 신청곡도 동요에서 최신 가요까지 다양합니다.

야밤버스 DJ 이현애 씨는 "지난주에 이어 이번 주에도 모두 버스가 만석이었다"면서 "버스 출발 전 홈페이지 게시판뿐만 아니라 버스에서도 실시간으로 신청곡과 사연을 받다 보니, 많이들 보내주신다"고 활짝 웃었습니다.

쿵짝쿵짝 음악에 맞춰 승객들이 노래를 부르는 이층버스 광경에 길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의 시선이 멈추기도 했습니다. 기웃거리는 관광객 가운데는 "도중에 타도 되느냐"며 정차지에서 탑승권을 사 야밤버스에 오르는 이들도 더러 있었습니다.

야밤버스 관계자는 "버스 좌석 예약을 처음부터 넉넉하게 받고 있어서, 운행 도중 타고 싶어 하는 관광객들을 종종 1층 남은 좌석에 더 태우기도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제주 야간시티투어 '야밤버스'
■ "지루할 틈 없는 즐거운 시티투어…대가족 여행에도 제격"

제주 야간시티투어 버스는 올해가 첫 운행은 아닙니다. 지난해에도 여름 휴가철에 한시적으로 저녁 노선을 운영했지만, 특색 없는 야간 시티투어 버스를 찾는 관광객은 많지 않았습니다.

제주도관광협회 고세규 시티투어운영과장은 "작년에도 야간 테마 코스를 하긴 했으나 특정 코스를 1시간 간격으로 3차례 도는 것뿐이었고, 탑승객들이 참여하는 이벤트 같은 게 전혀 없었다"면서 "시티투어버스를 타고 내리며 사진을 찍을 수 있고, DJ가 함께 버스에 타서 신청곡과 사연을 받고, 퀴즈와 함께 선물도 주는 방식은 아마도 전국에서 처음"이라고 말했습니다.

만 원짜리 한 장으로 이용할 수 있는 야간 시티투어 버스에 대한 탑승객 반응은 대만족입니다. DJ가 함께 타는 신선한 방식에다가 한여름 낮 땡볕을 피해 해가 저물 무렵부터 밤까지 운행하면서 주요 관광지를 돌 수 있는 것을 큰 장점으로 꼽았습니다.

세 가족이 함께 창원에서 유아 동반 제주 여행을 온 박성희 씨는 "아이들이 많은 대가족이다 보니 어딜 가려고 해도 차가 많이 필요하고, 관광지에 머물기도 힘들다"면서 "관광지에 대한 설명도 들으며 간단하고 편하게 버스로 여행할 수 있어 좋았다. 음악과 DJ가 있어서 지루할 틈이 없다"고 호평했습니다.

노부부가 함께 제주 여행 중인 곽희용 씨는 "제주 친구 추천으로 탔는데 재밌고, 젊어지는 것 같다"며 "낮에는 너무 더워서 다니기 어려운데, 밤에 시티투어를 하니 덥지 않고 좋다"고 만족감을 드러냈습니다.

지난 3일 저녁 제주동문시장에서 관광객들이 먹거리와 기념품 등을 고르고 있다.
야간 시티투어 버스는 다른 지역에서 온 관광객뿐만 아니라 제주도민 사이에서도 호응을 얻고 있습니다. "제주에 살아도 직장생활 때문에 자주 다니지 못하는데, 이렇게 저녁에 시티투어를 할 수 있으니 너무 좋네요.", "제주에 살아도 여행 온 기분", "제주에 살지만, 이층버스는 처음"이라며 제주의 밤을 달리는 시티투어 버스를 반겼습니다.

지난해 제주 시티투어버스 이용객은 4만 9천여 명으로 코로나 사태 이전인 5년 전보다도 3만여 명이 감소했습니다. 이 같은 저조한 이용률을 높이기 위해 지난달 26일, 주간 운행을 단일 코스로 조정하고 운영 시간도 저녁 7시 30분까지로 늘리며 관광객 모시기에 팔을 걷어붙이고 있습니다. 야간시티투어 버스는 이달 말까지 운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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