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 하늘에 웬 날벼락”…제주도 밤하늘에 무슨 일이
입력 2024.08.16 (14:20)
수정 2024.08.16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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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졌습니다. 어젯밤(15일) 제주도 하늘 이야기입니다. "갑자기 하늘에서 난리가 났다.", "전쟁 난 줄 알았다", "대지진 징조 아니냐"…KBS에 밤사이 목격담이 쇄도했습니다.
■ '소리 없이' 번쩍번쩍…밤하늘 섬광에 가슴 졸인 사람들
제주도 하늘에 온종일 비가 내렸던 광복절 휴일, 빗줄기는 멎었지만 '밤 더위'는 채 식지 않았습니다. 제주 북부 지역은 32일 연속 열대야가 이어지며 연일 기록 경신 중. 이날도 사람들은 에어컨과 선풍기를 돌리고, 부채질하며 더위로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때, 창밖 칠흑 같은 어둠 사이로 난데없는 섬광이 번쩍이기 시작했습니다. 짙은 구름으로 뒤덮인 하늘에 붉은빛이 감돌 때는 마치 전쟁터에서 포탄이 터지는 듯한 느낌마저 들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주변은 조용했습니다. 비는커녕 천둥소리도 울리지 않았습니다. 그러고도 한동안 제주 하늘에선 쉬지 않고 번갯불이 번쩍 일었습니다.
지난 15일 밤 제주시 애월읍 고내리에서 목격된 번개. 시청자 제공
이 같은 현상을 봤다는 제보는 제주도 남쪽부터 서쪽, 북쪽에 이르기까지 대부분 지역에서 들어왔습니다. 점점 더 심해지는 번개에 "대지진 전조현상은 아니냐"며 불안해하는 반응도 있었습니다.
■ 천둥소리보다 빠르다, '번갯불' 움직이는 속도
이처럼 '소리 없는 날벼락'이 친 이유는 빛이 소리보다 더 빠르기 때문입니다. 번개와 천둥은 동시에 발생하지만, 우리가 보고 듣는 시점이 다른 이유입니다.
공기 중에서 번갯불은 천둥소리보다 더 빠르게 움직여, 우리의 눈과 귀에 다다릅니다. 빛이 매질인 공기를 지나는 속도는 3×10⁸ m/s. 1초에 30만㎞를 달리는 셈입니다. 워낙 빠른 속도이다 보니 실제 우리 눈에 보이는 번개는 얼마나 멀리서 발생했는지 거리를 가늠하기조차 어렵습니다.
그러나 소리의 속도는 330m/s 정도로, 1초마다 약 330m 움직입니다. 여기에 음파가 대기에 의해 굴절되거나, 장애물에 반사돼 에너지를 잃는 '감쇠' 현상이 일어납니다. 거리가 멀면 멀수록 천둥소리는 작게 들리거나 혹은 우리 귀에 전혀 들리지 않게 됩니다.
지난 15일 밤 제주 서귀포시에서 목격된 낙뢰. 시청자 제공
보통 섬광이 먼저 번쩍하고 그로부터 우르르 쾅쾅 소리가 5~6초 뒤에 나는 천둥은 관측 장소에서 약 2㎞ 떨어져 있다고 본다는 게 기상청 설명입니다.
밤에 이 같은 현상을 봤다는 목격담이 많은 이유는 당연히 '어두울 때 섬광이 더 잘 보여서'입니다. 실제 이날 낮에도 번개 치는 장면이 곳곳에서 목격됐습니다.
■ 이상한 번개 만드는 건 길쭉하고 뭉게뭉게 '적란운'
비가 내리지 않는 하늘에서 소리 없이 목격되는 '마른 번개' 현상은 적란운에서 발생합니다. 적란운은 지상에서 높게는 10㎞ 상공까지 발달하는, 매우 길고 거대한 뭉게구름입니다.
구름 속에서 요란한 천둥·번개가 발생하는 이유는 겨울철 '찌릿'하는 스웨터 정전기와 원리가 같습니다. 하늘 속 구름과 구름 사이에서, 또 구름과 땅 사이에서도 찬 공기와 따뜻한 공기는 위아래로 움직입니다. 이때 플러스(+)와 마이너스(-) 전하도 이동하는데, 이 과정에서 전하가 충돌하며 발생하는 불꽃이 바로 번개입니다.
지상에서부터 하늘 높이 솟은 적란운은 대기 상태가 매우 불안정합니다. 요즘같이 폭염으로 푹푹 찌는 날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구름 상층부 기온은 영하 10℃ 아래까지로도 떨어지는 반면, 땅에 가까운 구름은 지상 온도와 비슷한 30℃ 정도로 올라 있지요. 즉, 구름 꼭대기와 하부 간 온도 차이가 크게는 40℃ 이상 나는 겁니다.
지난 15일 밤 제주 서귀포시에서 목격된 낙뢰. 시청자 제공
한미정 제주지방기상청 예보관은 "적란운은 연직으로 굉장히 발달한 구름으로 불안정성이 매우 크다. 이론적으로는 1㎞당 기온 5℃ 정도가 떨어진다고 본다"며 "상승, 하강 기류가 아주 크다 보니 구름 안에서 전하 분리(전기적 성질을 띠는 것)가 일어나고, 이로 인해 번개가 치고 굉음이 난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천둥·번개는 해상에서도 발생한다. 제주도는 섬인 데다 동서 길이가 70㎞ 정도밖에 안 되기 때문에, 먼 해상에서 발생한 번개가 보였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정리하자면 마른 번개 현상은 비교적 멀리 떨어진 곳에서 10㎞ 넘게 키가 큰 구름이 발달하고, 대기 불안정으로 구름 상층부에서 치는 번개입니다. 거리가 멀면 멀수록 소리 파동이 약해지는 까닭에, 큰 낙뢰에도 천둥소리는 듣기 어려운 겁니다.
지난 15일 낮 제주에서 낙뢰가 원인으로 추정되는 불이 나 전력량계가 타는 피해가 발생했다. 제주도소방안전본부 제공
■ 500번 넘게 '우르르 꽝꽝'…벼락 맞아 불나고, 하늘길 묶이고
종일 우레가 치면서 제주에선 각종 피해도 잇달았습니다. 제주에서는 어제부터 이틀 사이 대기 불안정으로 500회가 넘는 낙뢰가 쳤습니다.
어제(15일) 낮 3시 10분쯤 제주시 한림읍 금악리에 있는 한 농가 전력량계에서 불이 나, 건물 외벽이 그을리는 일이 있었습니다. 소방은 전기배선에서 강한 전류가 흐른 현상을 확인해, 낙뢰로 인해 불이 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보다 앞선 낮 2시 25분쯤 제주시 애월읍 장전리에 있는 적산전력량계에서도 낙뢰가 원인으로 추정되는 불이 나는 등 제주에서만 낙뢰 사고 신고 3건이 119에 들어왔습니다.
요란한 뇌우에 하늘길도 차질을 빚었습니다. 전날 제주국제공항에서는 대낮에 천둥·번개를 동반한 폭우로 인해 항공기 497편 중 1편이 결항하고 71편이 지연 운항했습니다.
기상청이 운영하는 자동 기상관측장비(AWS) 3대도 낙뢰로 파손됐다가 일부 복구된 상태입니다. 제주지방기상청이 어제부터 오늘(16일) 오후 2시 현재까지 관측한 낙뢰 현상은 511회에 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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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4-08-16 14:20:55
- 수정2024-08-16 14:37:05
그야말로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졌습니다. 어젯밤(15일) 제주도 하늘 이야기입니다. "갑자기 하늘에서 난리가 났다.", "전쟁 난 줄 알았다", "대지진 징조 아니냐"…KBS에 밤사이 목격담이 쇄도했습니다.
■ '소리 없이' 번쩍번쩍…밤하늘 섬광에 가슴 졸인 사람들
제주도 하늘에 온종일 비가 내렸던 광복절 휴일, 빗줄기는 멎었지만 '밤 더위'는 채 식지 않았습니다. 제주 북부 지역은 32일 연속 열대야가 이어지며 연일 기록 경신 중. 이날도 사람들은 에어컨과 선풍기를 돌리고, 부채질하며 더위로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때, 창밖 칠흑 같은 어둠 사이로 난데없는 섬광이 번쩍이기 시작했습니다. 짙은 구름으로 뒤덮인 하늘에 붉은빛이 감돌 때는 마치 전쟁터에서 포탄이 터지는 듯한 느낌마저 들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주변은 조용했습니다. 비는커녕 천둥소리도 울리지 않았습니다. 그러고도 한동안 제주 하늘에선 쉬지 않고 번갯불이 번쩍 일었습니다.
이 같은 현상을 봤다는 제보는 제주도 남쪽부터 서쪽, 북쪽에 이르기까지 대부분 지역에서 들어왔습니다. 점점 더 심해지는 번개에 "대지진 전조현상은 아니냐"며 불안해하는 반응도 있었습니다.
■ 천둥소리보다 빠르다, '번갯불' 움직이는 속도
이처럼 '소리 없는 날벼락'이 친 이유는 빛이 소리보다 더 빠르기 때문입니다. 번개와 천둥은 동시에 발생하지만, 우리가 보고 듣는 시점이 다른 이유입니다.
공기 중에서 번갯불은 천둥소리보다 더 빠르게 움직여, 우리의 눈과 귀에 다다릅니다. 빛이 매질인 공기를 지나는 속도는 3×10⁸ m/s. 1초에 30만㎞를 달리는 셈입니다. 워낙 빠른 속도이다 보니 실제 우리 눈에 보이는 번개는 얼마나 멀리서 발생했는지 거리를 가늠하기조차 어렵습니다.
그러나 소리의 속도는 330m/s 정도로, 1초마다 약 330m 움직입니다. 여기에 음파가 대기에 의해 굴절되거나, 장애물에 반사돼 에너지를 잃는 '감쇠' 현상이 일어납니다. 거리가 멀면 멀수록 천둥소리는 작게 들리거나 혹은 우리 귀에 전혀 들리지 않게 됩니다.
보통 섬광이 먼저 번쩍하고 그로부터 우르르 쾅쾅 소리가 5~6초 뒤에 나는 천둥은 관측 장소에서 약 2㎞ 떨어져 있다고 본다는 게 기상청 설명입니다.
밤에 이 같은 현상을 봤다는 목격담이 많은 이유는 당연히 '어두울 때 섬광이 더 잘 보여서'입니다. 실제 이날 낮에도 번개 치는 장면이 곳곳에서 목격됐습니다.
■ 이상한 번개 만드는 건 길쭉하고 뭉게뭉게 '적란운'
비가 내리지 않는 하늘에서 소리 없이 목격되는 '마른 번개' 현상은 적란운에서 발생합니다. 적란운은 지상에서 높게는 10㎞ 상공까지 발달하는, 매우 길고 거대한 뭉게구름입니다.
구름 속에서 요란한 천둥·번개가 발생하는 이유는 겨울철 '찌릿'하는 스웨터 정전기와 원리가 같습니다. 하늘 속 구름과 구름 사이에서, 또 구름과 땅 사이에서도 찬 공기와 따뜻한 공기는 위아래로 움직입니다. 이때 플러스(+)와 마이너스(-) 전하도 이동하는데, 이 과정에서 전하가 충돌하며 발생하는 불꽃이 바로 번개입니다.
지상에서부터 하늘 높이 솟은 적란운은 대기 상태가 매우 불안정합니다. 요즘같이 폭염으로 푹푹 찌는 날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구름 상층부 기온은 영하 10℃ 아래까지로도 떨어지는 반면, 땅에 가까운 구름은 지상 온도와 비슷한 30℃ 정도로 올라 있지요. 즉, 구름 꼭대기와 하부 간 온도 차이가 크게는 40℃ 이상 나는 겁니다.
한미정 제주지방기상청 예보관은 "적란운은 연직으로 굉장히 발달한 구름으로 불안정성이 매우 크다. 이론적으로는 1㎞당 기온 5℃ 정도가 떨어진다고 본다"며 "상승, 하강 기류가 아주 크다 보니 구름 안에서 전하 분리(전기적 성질을 띠는 것)가 일어나고, 이로 인해 번개가 치고 굉음이 난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천둥·번개는 해상에서도 발생한다. 제주도는 섬인 데다 동서 길이가 70㎞ 정도밖에 안 되기 때문에, 먼 해상에서 발생한 번개가 보였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정리하자면 마른 번개 현상은 비교적 멀리 떨어진 곳에서 10㎞ 넘게 키가 큰 구름이 발달하고, 대기 불안정으로 구름 상층부에서 치는 번개입니다. 거리가 멀면 멀수록 소리 파동이 약해지는 까닭에, 큰 낙뢰에도 천둥소리는 듣기 어려운 겁니다.
■ 500번 넘게 '우르르 꽝꽝'…벼락 맞아 불나고, 하늘길 묶이고
종일 우레가 치면서 제주에선 각종 피해도 잇달았습니다. 제주에서는 어제부터 이틀 사이 대기 불안정으로 500회가 넘는 낙뢰가 쳤습니다.
어제(15일) 낮 3시 10분쯤 제주시 한림읍 금악리에 있는 한 농가 전력량계에서 불이 나, 건물 외벽이 그을리는 일이 있었습니다. 소방은 전기배선에서 강한 전류가 흐른 현상을 확인해, 낙뢰로 인해 불이 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보다 앞선 낮 2시 25분쯤 제주시 애월읍 장전리에 있는 적산전력량계에서도 낙뢰가 원인으로 추정되는 불이 나는 등 제주에서만 낙뢰 사고 신고 3건이 119에 들어왔습니다.
요란한 뇌우에 하늘길도 차질을 빚었습니다. 전날 제주국제공항에서는 대낮에 천둥·번개를 동반한 폭우로 인해 항공기 497편 중 1편이 결항하고 71편이 지연 운항했습니다.
기상청이 운영하는 자동 기상관측장비(AWS) 3대도 낙뢰로 파손됐다가 일부 복구된 상태입니다. 제주지방기상청이 어제부터 오늘(16일) 오후 2시 현재까지 관측한 낙뢰 현상은 511회에 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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