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 북한] 단속 강화에도 탈북…변하는 탈북 동향
입력 2024.08.17 (08:21)
수정 2024.08.17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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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지난 8일, 북한 주민 한 명이 한강하구 남북 중립 수역을 걸어서 넘어와 남쪽으로 귀순했죠.
서해를 통한 북한 주민의 귀순은 약 1년 3개월 만인데요.
북한 주민들의 해상 탈북은 과거에도 여러 차례 있어왔지만 2020년에서 2022년 사이에는 없다가 지난해부터 다시 시작된 것이 눈여겨볼 특징입니다.
특히 지난해에는 외교관, 해외 주재원, 유학생 등 이른바 엘리트 계층 탈북민 수가 최근 몇 년 새 가장 많았던 것으로 조사 됐습니다.
북한 당국의 단속과 통제가 강화될수록 다양화되는 탈북 방식과 탈북 계층을 <클로즈업 북한>에서 살펴봤습니다.
[리포트]
지난 8일, 인천 강화군 교동도에서 우리 군에 귀순 의사를 밝혀온 북한 주민 한 명.
이 주민은 썰물 때물이 빠진 틈을 이용해 한강 하구 남북 중립수역을 걸어서 건넌 것으로 전해졌는데요.
남북 중립 수역은 한강과 임진강이 합류한 뒤 서해로 유입되는 강화도 북쪽 수역으로, 총 길이만 70km에 달하는 구간입니다.
그러나 별도의 군사분계선이 없는 데다 폭이 가장 좁은 곳은 900m에 불과해 갯벌이 드러나는 썰물 때는 비교적 쉽게 걸어 올 수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중립 수역의 지리적 특성과 함께 우리 군의 대응 방식 또한 북한 주민 귀순에 영향을 미쳤을 거라 보고 있습니다.
[홍민/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넘어올 때 한국 측에서 어떻게 반응하냐 그게 굉장히 중요해요. 그런데 한국 측에서 식별이 가능한 거리기 때문에 민간인이고 혼자 또는 한두 명 정도다 그럴 경우 귀순 의사가 있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무작정 군사적으로 대응하지 않거든요. 매뉴얼 상."]
실제 군 소식통은 열상감시장비 등으로 귀순 상황을 실시간 감시했고, 경고 사격이나 방송 없이 신호를 통해 은밀히 귀순을 유도했다고 전했습니다.
[신원식/전 국방부 장관/8월 8일 : "저희가 사실은 출발 지점부터 계속 감시를 해서 유도를 했던 성공적인 작전이었기 때문에..."]
북한 역시 경계를 늦추진 않았겠지만 넓은 중립 수역 전체를 감시하기엔 무리가 있었을 거란 평가입니다.
[홍민/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우리 같은 경우 개인 병사가 갖고 있는 고글도 있지만 감시 장비도 있고 별도의 본부와 연결된 감시 장비도 있고 다양한 장비가 있거든요. 때문에 우리는 굉장히 식별 능력이 뛰어나지만 북한 같은 경우엔 그렇게 (장비를) 갖추고 있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아요. 때문에 실제 물리적인 통제를 하려고 해도 전체적으로 커버를 못하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고 봐야죠."]
육지를 이용한 탈북보단 적었지만 과거에도 해상 탈북은 꾸준히 이어졌는데요.
대표적인 사례가 1987년 일가족 11명이 목선을 타고 탈북한 사건입니다.
[김만철/1987년 2월 8일 기자회견 : "저는 실제 저 따뜻한 남쪽 나라를 찾아서 자유롭게 살기 위해 떠났습니다."]
북한에 닥친 극심한 경제난으로 탈북민 수가 가파르게 늘어난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후반까지도 해상 탈북 소식은 매체를 통해 종종 보도되곤 했습니다.
[안선국/1997년 5월 12일 기자회견 : "진정한 자유가 여기 있다는 걸 알고, 자유를 보장받기 위해서 왔습니다."]
그러나 김정은 위원장 집권 이후 그 수가 크게 줄었고, 2020년에서 2022년 사이에는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엔 김정은 위워장 집권 이후 급감한 전체 탈북민 수와도 관련이 있다는 분석인데요.
북한 당국의 단속 의지와 물리적 통제, 그리고 코로나19 발생이 원인으로 꼽힙니다.
[홍민/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김정은이 탈북자들에 대한 엄벌을 집권 초부터 강조하면서 상무조(단속반)를 만들고 국경 단속을 굉장히 강하게 하게 됩니다. 엄벌 의지 때문에 (탈북이) 줄기 시작했고 장비가 갖춰지니까 더더욱 줄기 시작한 거죠. 그러다가 코로나19가 오니까 아예 지역 봉쇄를 하고 도시를 봉쇄하고 이동 봉쇄를 다 해버렸어요. 그러니까 당연히 줄어들 수밖에 없는 거죠."]
지난해 10월, 목선을 타고 동해로 귀순한 탈북민들 역시 북한 내부의 삼엄한 감시 상황을 전한 바 있는데요.
[김지선/2023년 10월 탈북 : "(국경을) 다 봉쇄했으니까. 2m 높이로 철조망 다 하고 이제는 거의 (국경 탈출) 가능성이 없게 됐거든요."]
북한 당국은 해상 탈북도 염두에 둔 듯 선박의 기름 양까지 제한하며 개인의 어업 활동을 철저히 통제했다고 합니다.
[김지선/2023년 10월 탈북 : "(기름을) 40kg 이상 싣지 못하게 해요. 그 이상 실으면 이상하게 생각하고. 실제 40kg이면 되는데 왜 70kg까지 실었느냐면서 그것 때문에 북한 과학자 부부가 잡혀간 경우도 있어요."]
심지어 대형 철선에 비해 레이더 탐지가 어려운 목선의 경우 양식 작업용만 제외하고 모두 제거하라는 지시가 내려졌습니다.
[김현옥/2023년 10월 탈북 : "목선은 추적을 못 한대요. 그래서 목선은 뛰기(탈출이) 쉽기 때문에 목선을 다 없애라 했어요. 양식 배만 뛰게 했어요. 절대로 개인들이 목선은 못 띄우게 됐다고 방침이 계속 떨어졌대요. 통곡했어요. 다 망했어요. 다 깨부수라고 방침이 내려와서 그 자리에서 다 깨부수고 땔감으로 만들고 그 아까운 나무를 다. 다 깨부쉈어요."]
그러나 지난해 5월, 서해 북방 한계선을 통해 북한 주민 일가족 9명이 넘어왔고, 5개월 뒤엔 동해로 4명이 귀순했습니다.
2020년부터 2년간 없던 해상 탈북이 다시 시작된 건데 몇 가지 사례만으로 해상 탈북 증가를 단언할 순 없지만, 북한 주민들이 어려운 사정 속에서도 탈북 방법을 다양하게 모색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홍민/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해상 탈북이란 건 위험성이 상당히 높거든요. 그런데도 감행된다는 건 (지상) 탈북 루트가 어렵다 보니까 다른 쪽을 모색하는 방식으로 나타나고 있는 게 아닌가 이렇게 생각됩니다."]
외교관, 해외 주재원, 유학생 등 이른바 엘리트 계층의 국내 입국이 다소 늘어난 것도 최근 탈북의 특징 중 하나입니다.
리일규 전 쿠바 주재 북한대사관 참사도 지난해 11월 대한민국 땅을 밟았습니다.
여느 북한 주민보다 다양한 외부 정보를 접하는 외교관인 만큼 감시와 통제는 더욱 엄격하다고 합니다.
[리일규/전 쿠바 주재 북한대사관 참사 : "대외 활동 원칙이라고 있는데 2인 결합 원칙이거든요. 외국인을 만나거나 대외 활동을 할 때 혼자 할 수 없다. 꼭 두 명이 같이 움직여야 한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기본적인 이유는 탈북을 방지하자는 거예요."]
김정은 표창장도 받은 엘리트 외교관.
그러나 북한 당국의 불공정한 시스템에 회의감을 느꼈고, 끝내 자식을 위해 결단을 내렸습니다.
[리일규/전 쿠바 주재 북한대사관 참사 : "(북한 사회의) 노동에 대한 착취, 불공평한 평가 이게 가장 기본적인 이유였고요. 내가 늙어 죽을 때까지 크게 힘들지 않게 살 수 있다는 전망은 있었어요. 그러나 내 자식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중요한 건 리일규 참사처럼 탈북을 강행하려는 엘리트들이 더 있다는 겁니다.
특히 코로나 기간 국경을 봉쇄했다가 3년 7개월 만에 다시 열면서 해외 체류자들의 사상을 검증하겠다고 벼른 일들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분석됩니다.
[리일규/전 쿠바 주재 북한대사관 참사 : "2023년 8월에 북한이 (코로나19 이후) 처음으로 국경을 열었잖아요. 부분적으로 해외 파견 소환자들을 소환하기 시작했고. 그때 그 사람들이 많이 불안해했고 흔들렸고 이젠 결정할 때가 됐다고 해서 가시는 분들도 나름 꽤 많았습니다. 제가 이 자리에서 다 밝힐 수는 없지만 꽤 많았거든요."]
결국 북한 당국의 삼엄한 감시와 통제로도 탈북을 막을 순 없었던 건데요.
가중된 경제난과 지속적으로 유입되고 있는 외부 정보가 결정적인 요인으로 분석됩니다.
[홍민/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정보들이 계속 축적돼 온 거죠. 주민들은 계속 세대는 변화하면서 '외부가 이렇다더라' 라고 이야기했던 것이 당연시되면서 세대가 계속 그걸 전승해 오는 거죠. 그리고 어쨌든 미디어적인 것을 접할 기회들이 훨씬 더 일상화된 부분이 있겠죠."]
지난해 국내 입국한 탈북민 수는 196명.
한 해 2천 명이 넘던 시기를 생각하면 현저하게 감소한 숫자입니다.
하지만 바늘구멍 만큼 좁아진 탈북의 길일지라도, 주민들의 의지는 쉽게 사그라들지 않을 거란 목소리가 높습니다.
[최은지/2023년 10월 탈북 : "지금 사람들이 솔직히 터지기 직전이에요. 닫아 놓으면 터지는 그런. 신경이 아주 예민해져 있어요. 굶어 죽으면서도 자기를 위해서 일하라고 하는데 그게 말이 안 되잖아요."]
[리일규/전 쿠바 주재 북한대사관 참사 : "그러니까 민심은 점차 점차 돌아서는 겁니다. 짧은 혀 때문에 긴 목이 이렇게 될 수 있으니까 말은 못 하지만 최소 반갑지는 않거든요. 박수를 친다, 웃음을 띤다, 환호한다. 이것은 거짓이죠. 할 수 없으니까 하는 거고."]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는 최근의 탈북 동향.
탈북민은 북한의 사회상과 주민 현실을 읽을 수 있는 역할을 하는 만큼 탈북 동향을 면밀히 분석하는 작업이 필요해 보입니다.
지난 8일, 북한 주민 한 명이 한강하구 남북 중립 수역을 걸어서 넘어와 남쪽으로 귀순했죠.
서해를 통한 북한 주민의 귀순은 약 1년 3개월 만인데요.
북한 주민들의 해상 탈북은 과거에도 여러 차례 있어왔지만 2020년에서 2022년 사이에는 없다가 지난해부터 다시 시작된 것이 눈여겨볼 특징입니다.
특히 지난해에는 외교관, 해외 주재원, 유학생 등 이른바 엘리트 계층 탈북민 수가 최근 몇 년 새 가장 많았던 것으로 조사 됐습니다.
북한 당국의 단속과 통제가 강화될수록 다양화되는 탈북 방식과 탈북 계층을 <클로즈업 북한>에서 살펴봤습니다.
[리포트]
지난 8일, 인천 강화군 교동도에서 우리 군에 귀순 의사를 밝혀온 북한 주민 한 명.
이 주민은 썰물 때물이 빠진 틈을 이용해 한강 하구 남북 중립수역을 걸어서 건넌 것으로 전해졌는데요.
남북 중립 수역은 한강과 임진강이 합류한 뒤 서해로 유입되는 강화도 북쪽 수역으로, 총 길이만 70km에 달하는 구간입니다.
그러나 별도의 군사분계선이 없는 데다 폭이 가장 좁은 곳은 900m에 불과해 갯벌이 드러나는 썰물 때는 비교적 쉽게 걸어 올 수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중립 수역의 지리적 특성과 함께 우리 군의 대응 방식 또한 북한 주민 귀순에 영향을 미쳤을 거라 보고 있습니다.
[홍민/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넘어올 때 한국 측에서 어떻게 반응하냐 그게 굉장히 중요해요. 그런데 한국 측에서 식별이 가능한 거리기 때문에 민간인이고 혼자 또는 한두 명 정도다 그럴 경우 귀순 의사가 있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무작정 군사적으로 대응하지 않거든요. 매뉴얼 상."]
실제 군 소식통은 열상감시장비 등으로 귀순 상황을 실시간 감시했고, 경고 사격이나 방송 없이 신호를 통해 은밀히 귀순을 유도했다고 전했습니다.
[신원식/전 국방부 장관/8월 8일 : "저희가 사실은 출발 지점부터 계속 감시를 해서 유도를 했던 성공적인 작전이었기 때문에..."]
북한 역시 경계를 늦추진 않았겠지만 넓은 중립 수역 전체를 감시하기엔 무리가 있었을 거란 평가입니다.
[홍민/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우리 같은 경우 개인 병사가 갖고 있는 고글도 있지만 감시 장비도 있고 별도의 본부와 연결된 감시 장비도 있고 다양한 장비가 있거든요. 때문에 우리는 굉장히 식별 능력이 뛰어나지만 북한 같은 경우엔 그렇게 (장비를) 갖추고 있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아요. 때문에 실제 물리적인 통제를 하려고 해도 전체적으로 커버를 못하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고 봐야죠."]
육지를 이용한 탈북보단 적었지만 과거에도 해상 탈북은 꾸준히 이어졌는데요.
대표적인 사례가 1987년 일가족 11명이 목선을 타고 탈북한 사건입니다.
[김만철/1987년 2월 8일 기자회견 : "저는 실제 저 따뜻한 남쪽 나라를 찾아서 자유롭게 살기 위해 떠났습니다."]
북한에 닥친 극심한 경제난으로 탈북민 수가 가파르게 늘어난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후반까지도 해상 탈북 소식은 매체를 통해 종종 보도되곤 했습니다.
[안선국/1997년 5월 12일 기자회견 : "진정한 자유가 여기 있다는 걸 알고, 자유를 보장받기 위해서 왔습니다."]
그러나 김정은 위원장 집권 이후 그 수가 크게 줄었고, 2020년에서 2022년 사이에는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엔 김정은 위워장 집권 이후 급감한 전체 탈북민 수와도 관련이 있다는 분석인데요.
북한 당국의 단속 의지와 물리적 통제, 그리고 코로나19 발생이 원인으로 꼽힙니다.
[홍민/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김정은이 탈북자들에 대한 엄벌을 집권 초부터 강조하면서 상무조(단속반)를 만들고 국경 단속을 굉장히 강하게 하게 됩니다. 엄벌 의지 때문에 (탈북이) 줄기 시작했고 장비가 갖춰지니까 더더욱 줄기 시작한 거죠. 그러다가 코로나19가 오니까 아예 지역 봉쇄를 하고 도시를 봉쇄하고 이동 봉쇄를 다 해버렸어요. 그러니까 당연히 줄어들 수밖에 없는 거죠."]
지난해 10월, 목선을 타고 동해로 귀순한 탈북민들 역시 북한 내부의 삼엄한 감시 상황을 전한 바 있는데요.
[김지선/2023년 10월 탈북 : "(국경을) 다 봉쇄했으니까. 2m 높이로 철조망 다 하고 이제는 거의 (국경 탈출) 가능성이 없게 됐거든요."]
북한 당국은 해상 탈북도 염두에 둔 듯 선박의 기름 양까지 제한하며 개인의 어업 활동을 철저히 통제했다고 합니다.
[김지선/2023년 10월 탈북 : "(기름을) 40kg 이상 싣지 못하게 해요. 그 이상 실으면 이상하게 생각하고. 실제 40kg이면 되는데 왜 70kg까지 실었느냐면서 그것 때문에 북한 과학자 부부가 잡혀간 경우도 있어요."]
심지어 대형 철선에 비해 레이더 탐지가 어려운 목선의 경우 양식 작업용만 제외하고 모두 제거하라는 지시가 내려졌습니다.
[김현옥/2023년 10월 탈북 : "목선은 추적을 못 한대요. 그래서 목선은 뛰기(탈출이) 쉽기 때문에 목선을 다 없애라 했어요. 양식 배만 뛰게 했어요. 절대로 개인들이 목선은 못 띄우게 됐다고 방침이 계속 떨어졌대요. 통곡했어요. 다 망했어요. 다 깨부수라고 방침이 내려와서 그 자리에서 다 깨부수고 땔감으로 만들고 그 아까운 나무를 다. 다 깨부쉈어요."]
그러나 지난해 5월, 서해 북방 한계선을 통해 북한 주민 일가족 9명이 넘어왔고, 5개월 뒤엔 동해로 4명이 귀순했습니다.
2020년부터 2년간 없던 해상 탈북이 다시 시작된 건데 몇 가지 사례만으로 해상 탈북 증가를 단언할 순 없지만, 북한 주민들이 어려운 사정 속에서도 탈북 방법을 다양하게 모색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홍민/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해상 탈북이란 건 위험성이 상당히 높거든요. 그런데도 감행된다는 건 (지상) 탈북 루트가 어렵다 보니까 다른 쪽을 모색하는 방식으로 나타나고 있는 게 아닌가 이렇게 생각됩니다."]
외교관, 해외 주재원, 유학생 등 이른바 엘리트 계층의 국내 입국이 다소 늘어난 것도 최근 탈북의 특징 중 하나입니다.
리일규 전 쿠바 주재 북한대사관 참사도 지난해 11월 대한민국 땅을 밟았습니다.
여느 북한 주민보다 다양한 외부 정보를 접하는 외교관인 만큼 감시와 통제는 더욱 엄격하다고 합니다.
[리일규/전 쿠바 주재 북한대사관 참사 : "대외 활동 원칙이라고 있는데 2인 결합 원칙이거든요. 외국인을 만나거나 대외 활동을 할 때 혼자 할 수 없다. 꼭 두 명이 같이 움직여야 한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기본적인 이유는 탈북을 방지하자는 거예요."]
김정은 표창장도 받은 엘리트 외교관.
그러나 북한 당국의 불공정한 시스템에 회의감을 느꼈고, 끝내 자식을 위해 결단을 내렸습니다.
[리일규/전 쿠바 주재 북한대사관 참사 : "(북한 사회의) 노동에 대한 착취, 불공평한 평가 이게 가장 기본적인 이유였고요. 내가 늙어 죽을 때까지 크게 힘들지 않게 살 수 있다는 전망은 있었어요. 그러나 내 자식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중요한 건 리일규 참사처럼 탈북을 강행하려는 엘리트들이 더 있다는 겁니다.
특히 코로나 기간 국경을 봉쇄했다가 3년 7개월 만에 다시 열면서 해외 체류자들의 사상을 검증하겠다고 벼른 일들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분석됩니다.
[리일규/전 쿠바 주재 북한대사관 참사 : "2023년 8월에 북한이 (코로나19 이후) 처음으로 국경을 열었잖아요. 부분적으로 해외 파견 소환자들을 소환하기 시작했고. 그때 그 사람들이 많이 불안해했고 흔들렸고 이젠 결정할 때가 됐다고 해서 가시는 분들도 나름 꽤 많았습니다. 제가 이 자리에서 다 밝힐 수는 없지만 꽤 많았거든요."]
결국 북한 당국의 삼엄한 감시와 통제로도 탈북을 막을 순 없었던 건데요.
가중된 경제난과 지속적으로 유입되고 있는 외부 정보가 결정적인 요인으로 분석됩니다.
[홍민/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정보들이 계속 축적돼 온 거죠. 주민들은 계속 세대는 변화하면서 '외부가 이렇다더라' 라고 이야기했던 것이 당연시되면서 세대가 계속 그걸 전승해 오는 거죠. 그리고 어쨌든 미디어적인 것을 접할 기회들이 훨씬 더 일상화된 부분이 있겠죠."]
지난해 국내 입국한 탈북민 수는 196명.
한 해 2천 명이 넘던 시기를 생각하면 현저하게 감소한 숫자입니다.
하지만 바늘구멍 만큼 좁아진 탈북의 길일지라도, 주민들의 의지는 쉽게 사그라들지 않을 거란 목소리가 높습니다.
[최은지/2023년 10월 탈북 : "지금 사람들이 솔직히 터지기 직전이에요. 닫아 놓으면 터지는 그런. 신경이 아주 예민해져 있어요. 굶어 죽으면서도 자기를 위해서 일하라고 하는데 그게 말이 안 되잖아요."]
[리일규/전 쿠바 주재 북한대사관 참사 : "그러니까 민심은 점차 점차 돌아서는 겁니다. 짧은 혀 때문에 긴 목이 이렇게 될 수 있으니까 말은 못 하지만 최소 반갑지는 않거든요. 박수를 친다, 웃음을 띤다, 환호한다. 이것은 거짓이죠. 할 수 없으니까 하는 거고."]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는 최근의 탈북 동향.
탈북민은 북한의 사회상과 주민 현실을 읽을 수 있는 역할을 하는 만큼 탈북 동향을 면밀히 분석하는 작업이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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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로즈업 북한] 단속 강화에도 탈북…변하는 탈북 동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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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4-08-17 08:21:51
- 수정2024-08-17 08:35:37
[앵커]
지난 8일, 북한 주민 한 명이 한강하구 남북 중립 수역을 걸어서 넘어와 남쪽으로 귀순했죠.
서해를 통한 북한 주민의 귀순은 약 1년 3개월 만인데요.
북한 주민들의 해상 탈북은 과거에도 여러 차례 있어왔지만 2020년에서 2022년 사이에는 없다가 지난해부터 다시 시작된 것이 눈여겨볼 특징입니다.
특히 지난해에는 외교관, 해외 주재원, 유학생 등 이른바 엘리트 계층 탈북민 수가 최근 몇 년 새 가장 많았던 것으로 조사 됐습니다.
북한 당국의 단속과 통제가 강화될수록 다양화되는 탈북 방식과 탈북 계층을 <클로즈업 북한>에서 살펴봤습니다.
[리포트]
지난 8일, 인천 강화군 교동도에서 우리 군에 귀순 의사를 밝혀온 북한 주민 한 명.
이 주민은 썰물 때물이 빠진 틈을 이용해 한강 하구 남북 중립수역을 걸어서 건넌 것으로 전해졌는데요.
남북 중립 수역은 한강과 임진강이 합류한 뒤 서해로 유입되는 강화도 북쪽 수역으로, 총 길이만 70km에 달하는 구간입니다.
그러나 별도의 군사분계선이 없는 데다 폭이 가장 좁은 곳은 900m에 불과해 갯벌이 드러나는 썰물 때는 비교적 쉽게 걸어 올 수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중립 수역의 지리적 특성과 함께 우리 군의 대응 방식 또한 북한 주민 귀순에 영향을 미쳤을 거라 보고 있습니다.
[홍민/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넘어올 때 한국 측에서 어떻게 반응하냐 그게 굉장히 중요해요. 그런데 한국 측에서 식별이 가능한 거리기 때문에 민간인이고 혼자 또는 한두 명 정도다 그럴 경우 귀순 의사가 있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무작정 군사적으로 대응하지 않거든요. 매뉴얼 상."]
실제 군 소식통은 열상감시장비 등으로 귀순 상황을 실시간 감시했고, 경고 사격이나 방송 없이 신호를 통해 은밀히 귀순을 유도했다고 전했습니다.
[신원식/전 국방부 장관/8월 8일 : "저희가 사실은 출발 지점부터 계속 감시를 해서 유도를 했던 성공적인 작전이었기 때문에..."]
북한 역시 경계를 늦추진 않았겠지만 넓은 중립 수역 전체를 감시하기엔 무리가 있었을 거란 평가입니다.
[홍민/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우리 같은 경우 개인 병사가 갖고 있는 고글도 있지만 감시 장비도 있고 별도의 본부와 연결된 감시 장비도 있고 다양한 장비가 있거든요. 때문에 우리는 굉장히 식별 능력이 뛰어나지만 북한 같은 경우엔 그렇게 (장비를) 갖추고 있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아요. 때문에 실제 물리적인 통제를 하려고 해도 전체적으로 커버를 못하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고 봐야죠."]
육지를 이용한 탈북보단 적었지만 과거에도 해상 탈북은 꾸준히 이어졌는데요.
대표적인 사례가 1987년 일가족 11명이 목선을 타고 탈북한 사건입니다.
[김만철/1987년 2월 8일 기자회견 : "저는 실제 저 따뜻한 남쪽 나라를 찾아서 자유롭게 살기 위해 떠났습니다."]
북한에 닥친 극심한 경제난으로 탈북민 수가 가파르게 늘어난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후반까지도 해상 탈북 소식은 매체를 통해 종종 보도되곤 했습니다.
[안선국/1997년 5월 12일 기자회견 : "진정한 자유가 여기 있다는 걸 알고, 자유를 보장받기 위해서 왔습니다."]
그러나 김정은 위원장 집권 이후 그 수가 크게 줄었고, 2020년에서 2022년 사이에는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엔 김정은 위워장 집권 이후 급감한 전체 탈북민 수와도 관련이 있다는 분석인데요.
북한 당국의 단속 의지와 물리적 통제, 그리고 코로나19 발생이 원인으로 꼽힙니다.
[홍민/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김정은이 탈북자들에 대한 엄벌을 집권 초부터 강조하면서 상무조(단속반)를 만들고 국경 단속을 굉장히 강하게 하게 됩니다. 엄벌 의지 때문에 (탈북이) 줄기 시작했고 장비가 갖춰지니까 더더욱 줄기 시작한 거죠. 그러다가 코로나19가 오니까 아예 지역 봉쇄를 하고 도시를 봉쇄하고 이동 봉쇄를 다 해버렸어요. 그러니까 당연히 줄어들 수밖에 없는 거죠."]
지난해 10월, 목선을 타고 동해로 귀순한 탈북민들 역시 북한 내부의 삼엄한 감시 상황을 전한 바 있는데요.
[김지선/2023년 10월 탈북 : "(국경을) 다 봉쇄했으니까. 2m 높이로 철조망 다 하고 이제는 거의 (국경 탈출) 가능성이 없게 됐거든요."]
북한 당국은 해상 탈북도 염두에 둔 듯 선박의 기름 양까지 제한하며 개인의 어업 활동을 철저히 통제했다고 합니다.
[김지선/2023년 10월 탈북 : "(기름을) 40kg 이상 싣지 못하게 해요. 그 이상 실으면 이상하게 생각하고. 실제 40kg이면 되는데 왜 70kg까지 실었느냐면서 그것 때문에 북한 과학자 부부가 잡혀간 경우도 있어요."]
심지어 대형 철선에 비해 레이더 탐지가 어려운 목선의 경우 양식 작업용만 제외하고 모두 제거하라는 지시가 내려졌습니다.
[김현옥/2023년 10월 탈북 : "목선은 추적을 못 한대요. 그래서 목선은 뛰기(탈출이) 쉽기 때문에 목선을 다 없애라 했어요. 양식 배만 뛰게 했어요. 절대로 개인들이 목선은 못 띄우게 됐다고 방침이 계속 떨어졌대요. 통곡했어요. 다 망했어요. 다 깨부수라고 방침이 내려와서 그 자리에서 다 깨부수고 땔감으로 만들고 그 아까운 나무를 다. 다 깨부쉈어요."]
그러나 지난해 5월, 서해 북방 한계선을 통해 북한 주민 일가족 9명이 넘어왔고, 5개월 뒤엔 동해로 4명이 귀순했습니다.
2020년부터 2년간 없던 해상 탈북이 다시 시작된 건데 몇 가지 사례만으로 해상 탈북 증가를 단언할 순 없지만, 북한 주민들이 어려운 사정 속에서도 탈북 방법을 다양하게 모색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홍민/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해상 탈북이란 건 위험성이 상당히 높거든요. 그런데도 감행된다는 건 (지상) 탈북 루트가 어렵다 보니까 다른 쪽을 모색하는 방식으로 나타나고 있는 게 아닌가 이렇게 생각됩니다."]
외교관, 해외 주재원, 유학생 등 이른바 엘리트 계층의 국내 입국이 다소 늘어난 것도 최근 탈북의 특징 중 하나입니다.
리일규 전 쿠바 주재 북한대사관 참사도 지난해 11월 대한민국 땅을 밟았습니다.
여느 북한 주민보다 다양한 외부 정보를 접하는 외교관인 만큼 감시와 통제는 더욱 엄격하다고 합니다.
[리일규/전 쿠바 주재 북한대사관 참사 : "대외 활동 원칙이라고 있는데 2인 결합 원칙이거든요. 외국인을 만나거나 대외 활동을 할 때 혼자 할 수 없다. 꼭 두 명이 같이 움직여야 한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기본적인 이유는 탈북을 방지하자는 거예요."]
김정은 표창장도 받은 엘리트 외교관.
그러나 북한 당국의 불공정한 시스템에 회의감을 느꼈고, 끝내 자식을 위해 결단을 내렸습니다.
[리일규/전 쿠바 주재 북한대사관 참사 : "(북한 사회의) 노동에 대한 착취, 불공평한 평가 이게 가장 기본적인 이유였고요. 내가 늙어 죽을 때까지 크게 힘들지 않게 살 수 있다는 전망은 있었어요. 그러나 내 자식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중요한 건 리일규 참사처럼 탈북을 강행하려는 엘리트들이 더 있다는 겁니다.
특히 코로나 기간 국경을 봉쇄했다가 3년 7개월 만에 다시 열면서 해외 체류자들의 사상을 검증하겠다고 벼른 일들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분석됩니다.
[리일규/전 쿠바 주재 북한대사관 참사 : "2023년 8월에 북한이 (코로나19 이후) 처음으로 국경을 열었잖아요. 부분적으로 해외 파견 소환자들을 소환하기 시작했고. 그때 그 사람들이 많이 불안해했고 흔들렸고 이젠 결정할 때가 됐다고 해서 가시는 분들도 나름 꽤 많았습니다. 제가 이 자리에서 다 밝힐 수는 없지만 꽤 많았거든요."]
결국 북한 당국의 삼엄한 감시와 통제로도 탈북을 막을 순 없었던 건데요.
가중된 경제난과 지속적으로 유입되고 있는 외부 정보가 결정적인 요인으로 분석됩니다.
[홍민/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정보들이 계속 축적돼 온 거죠. 주민들은 계속 세대는 변화하면서 '외부가 이렇다더라' 라고 이야기했던 것이 당연시되면서 세대가 계속 그걸 전승해 오는 거죠. 그리고 어쨌든 미디어적인 것을 접할 기회들이 훨씬 더 일상화된 부분이 있겠죠."]
지난해 국내 입국한 탈북민 수는 196명.
한 해 2천 명이 넘던 시기를 생각하면 현저하게 감소한 숫자입니다.
하지만 바늘구멍 만큼 좁아진 탈북의 길일지라도, 주민들의 의지는 쉽게 사그라들지 않을 거란 목소리가 높습니다.
[최은지/2023년 10월 탈북 : "지금 사람들이 솔직히 터지기 직전이에요. 닫아 놓으면 터지는 그런. 신경이 아주 예민해져 있어요. 굶어 죽으면서도 자기를 위해서 일하라고 하는데 그게 말이 안 되잖아요."]
[리일규/전 쿠바 주재 북한대사관 참사 : "그러니까 민심은 점차 점차 돌아서는 겁니다. 짧은 혀 때문에 긴 목이 이렇게 될 수 있으니까 말은 못 하지만 최소 반갑지는 않거든요. 박수를 친다, 웃음을 띤다, 환호한다. 이것은 거짓이죠. 할 수 없으니까 하는 거고."]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는 최근의 탈북 동향.
탈북민은 북한의 사회상과 주민 현실을 읽을 수 있는 역할을 하는 만큼 탈북 동향을 면밀히 분석하는 작업이 필요해 보입니다.
지난 8일, 북한 주민 한 명이 한강하구 남북 중립 수역을 걸어서 넘어와 남쪽으로 귀순했죠.
서해를 통한 북한 주민의 귀순은 약 1년 3개월 만인데요.
북한 주민들의 해상 탈북은 과거에도 여러 차례 있어왔지만 2020년에서 2022년 사이에는 없다가 지난해부터 다시 시작된 것이 눈여겨볼 특징입니다.
특히 지난해에는 외교관, 해외 주재원, 유학생 등 이른바 엘리트 계층 탈북민 수가 최근 몇 년 새 가장 많았던 것으로 조사 됐습니다.
북한 당국의 단속과 통제가 강화될수록 다양화되는 탈북 방식과 탈북 계층을 <클로즈업 북한>에서 살펴봤습니다.
[리포트]
지난 8일, 인천 강화군 교동도에서 우리 군에 귀순 의사를 밝혀온 북한 주민 한 명.
이 주민은 썰물 때물이 빠진 틈을 이용해 한강 하구 남북 중립수역을 걸어서 건넌 것으로 전해졌는데요.
남북 중립 수역은 한강과 임진강이 합류한 뒤 서해로 유입되는 강화도 북쪽 수역으로, 총 길이만 70km에 달하는 구간입니다.
그러나 별도의 군사분계선이 없는 데다 폭이 가장 좁은 곳은 900m에 불과해 갯벌이 드러나는 썰물 때는 비교적 쉽게 걸어 올 수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중립 수역의 지리적 특성과 함께 우리 군의 대응 방식 또한 북한 주민 귀순에 영향을 미쳤을 거라 보고 있습니다.
[홍민/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넘어올 때 한국 측에서 어떻게 반응하냐 그게 굉장히 중요해요. 그런데 한국 측에서 식별이 가능한 거리기 때문에 민간인이고 혼자 또는 한두 명 정도다 그럴 경우 귀순 의사가 있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무작정 군사적으로 대응하지 않거든요. 매뉴얼 상."]
실제 군 소식통은 열상감시장비 등으로 귀순 상황을 실시간 감시했고, 경고 사격이나 방송 없이 신호를 통해 은밀히 귀순을 유도했다고 전했습니다.
[신원식/전 국방부 장관/8월 8일 : "저희가 사실은 출발 지점부터 계속 감시를 해서 유도를 했던 성공적인 작전이었기 때문에..."]
북한 역시 경계를 늦추진 않았겠지만 넓은 중립 수역 전체를 감시하기엔 무리가 있었을 거란 평가입니다.
[홍민/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우리 같은 경우 개인 병사가 갖고 있는 고글도 있지만 감시 장비도 있고 별도의 본부와 연결된 감시 장비도 있고 다양한 장비가 있거든요. 때문에 우리는 굉장히 식별 능력이 뛰어나지만 북한 같은 경우엔 그렇게 (장비를) 갖추고 있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아요. 때문에 실제 물리적인 통제를 하려고 해도 전체적으로 커버를 못하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고 봐야죠."]
육지를 이용한 탈북보단 적었지만 과거에도 해상 탈북은 꾸준히 이어졌는데요.
대표적인 사례가 1987년 일가족 11명이 목선을 타고 탈북한 사건입니다.
[김만철/1987년 2월 8일 기자회견 : "저는 실제 저 따뜻한 남쪽 나라를 찾아서 자유롭게 살기 위해 떠났습니다."]
북한에 닥친 극심한 경제난으로 탈북민 수가 가파르게 늘어난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후반까지도 해상 탈북 소식은 매체를 통해 종종 보도되곤 했습니다.
[안선국/1997년 5월 12일 기자회견 : "진정한 자유가 여기 있다는 걸 알고, 자유를 보장받기 위해서 왔습니다."]
그러나 김정은 위원장 집권 이후 그 수가 크게 줄었고, 2020년에서 2022년 사이에는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엔 김정은 위워장 집권 이후 급감한 전체 탈북민 수와도 관련이 있다는 분석인데요.
북한 당국의 단속 의지와 물리적 통제, 그리고 코로나19 발생이 원인으로 꼽힙니다.
[홍민/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김정은이 탈북자들에 대한 엄벌을 집권 초부터 강조하면서 상무조(단속반)를 만들고 국경 단속을 굉장히 강하게 하게 됩니다. 엄벌 의지 때문에 (탈북이) 줄기 시작했고 장비가 갖춰지니까 더더욱 줄기 시작한 거죠. 그러다가 코로나19가 오니까 아예 지역 봉쇄를 하고 도시를 봉쇄하고 이동 봉쇄를 다 해버렸어요. 그러니까 당연히 줄어들 수밖에 없는 거죠."]
지난해 10월, 목선을 타고 동해로 귀순한 탈북민들 역시 북한 내부의 삼엄한 감시 상황을 전한 바 있는데요.
[김지선/2023년 10월 탈북 : "(국경을) 다 봉쇄했으니까. 2m 높이로 철조망 다 하고 이제는 거의 (국경 탈출) 가능성이 없게 됐거든요."]
북한 당국은 해상 탈북도 염두에 둔 듯 선박의 기름 양까지 제한하며 개인의 어업 활동을 철저히 통제했다고 합니다.
[김지선/2023년 10월 탈북 : "(기름을) 40kg 이상 싣지 못하게 해요. 그 이상 실으면 이상하게 생각하고. 실제 40kg이면 되는데 왜 70kg까지 실었느냐면서 그것 때문에 북한 과학자 부부가 잡혀간 경우도 있어요."]
심지어 대형 철선에 비해 레이더 탐지가 어려운 목선의 경우 양식 작업용만 제외하고 모두 제거하라는 지시가 내려졌습니다.
[김현옥/2023년 10월 탈북 : "목선은 추적을 못 한대요. 그래서 목선은 뛰기(탈출이) 쉽기 때문에 목선을 다 없애라 했어요. 양식 배만 뛰게 했어요. 절대로 개인들이 목선은 못 띄우게 됐다고 방침이 계속 떨어졌대요. 통곡했어요. 다 망했어요. 다 깨부수라고 방침이 내려와서 그 자리에서 다 깨부수고 땔감으로 만들고 그 아까운 나무를 다. 다 깨부쉈어요."]
그러나 지난해 5월, 서해 북방 한계선을 통해 북한 주민 일가족 9명이 넘어왔고, 5개월 뒤엔 동해로 4명이 귀순했습니다.
2020년부터 2년간 없던 해상 탈북이 다시 시작된 건데 몇 가지 사례만으로 해상 탈북 증가를 단언할 순 없지만, 북한 주민들이 어려운 사정 속에서도 탈북 방법을 다양하게 모색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홍민/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해상 탈북이란 건 위험성이 상당히 높거든요. 그런데도 감행된다는 건 (지상) 탈북 루트가 어렵다 보니까 다른 쪽을 모색하는 방식으로 나타나고 있는 게 아닌가 이렇게 생각됩니다."]
외교관, 해외 주재원, 유학생 등 이른바 엘리트 계층의 국내 입국이 다소 늘어난 것도 최근 탈북의 특징 중 하나입니다.
리일규 전 쿠바 주재 북한대사관 참사도 지난해 11월 대한민국 땅을 밟았습니다.
여느 북한 주민보다 다양한 외부 정보를 접하는 외교관인 만큼 감시와 통제는 더욱 엄격하다고 합니다.
[리일규/전 쿠바 주재 북한대사관 참사 : "대외 활동 원칙이라고 있는데 2인 결합 원칙이거든요. 외국인을 만나거나 대외 활동을 할 때 혼자 할 수 없다. 꼭 두 명이 같이 움직여야 한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기본적인 이유는 탈북을 방지하자는 거예요."]
김정은 표창장도 받은 엘리트 외교관.
그러나 북한 당국의 불공정한 시스템에 회의감을 느꼈고, 끝내 자식을 위해 결단을 내렸습니다.
[리일규/전 쿠바 주재 북한대사관 참사 : "(북한 사회의) 노동에 대한 착취, 불공평한 평가 이게 가장 기본적인 이유였고요. 내가 늙어 죽을 때까지 크게 힘들지 않게 살 수 있다는 전망은 있었어요. 그러나 내 자식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중요한 건 리일규 참사처럼 탈북을 강행하려는 엘리트들이 더 있다는 겁니다.
특히 코로나 기간 국경을 봉쇄했다가 3년 7개월 만에 다시 열면서 해외 체류자들의 사상을 검증하겠다고 벼른 일들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분석됩니다.
[리일규/전 쿠바 주재 북한대사관 참사 : "2023년 8월에 북한이 (코로나19 이후) 처음으로 국경을 열었잖아요. 부분적으로 해외 파견 소환자들을 소환하기 시작했고. 그때 그 사람들이 많이 불안해했고 흔들렸고 이젠 결정할 때가 됐다고 해서 가시는 분들도 나름 꽤 많았습니다. 제가 이 자리에서 다 밝힐 수는 없지만 꽤 많았거든요."]
결국 북한 당국의 삼엄한 감시와 통제로도 탈북을 막을 순 없었던 건데요.
가중된 경제난과 지속적으로 유입되고 있는 외부 정보가 결정적인 요인으로 분석됩니다.
[홍민/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정보들이 계속 축적돼 온 거죠. 주민들은 계속 세대는 변화하면서 '외부가 이렇다더라' 라고 이야기했던 것이 당연시되면서 세대가 계속 그걸 전승해 오는 거죠. 그리고 어쨌든 미디어적인 것을 접할 기회들이 훨씬 더 일상화된 부분이 있겠죠."]
지난해 국내 입국한 탈북민 수는 196명.
한 해 2천 명이 넘던 시기를 생각하면 현저하게 감소한 숫자입니다.
하지만 바늘구멍 만큼 좁아진 탈북의 길일지라도, 주민들의 의지는 쉽게 사그라들지 않을 거란 목소리가 높습니다.
[최은지/2023년 10월 탈북 : "지금 사람들이 솔직히 터지기 직전이에요. 닫아 놓으면 터지는 그런. 신경이 아주 예민해져 있어요. 굶어 죽으면서도 자기를 위해서 일하라고 하는데 그게 말이 안 되잖아요."]
[리일규/전 쿠바 주재 북한대사관 참사 : "그러니까 민심은 점차 점차 돌아서는 겁니다. 짧은 혀 때문에 긴 목이 이렇게 될 수 있으니까 말은 못 하지만 최소 반갑지는 않거든요. 박수를 친다, 웃음을 띤다, 환호한다. 이것은 거짓이죠. 할 수 없으니까 하는 거고."]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는 최근의 탈북 동향.
탈북민은 북한의 사회상과 주민 현실을 읽을 수 있는 역할을 하는 만큼 탈북 동향을 면밀히 분석하는 작업이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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