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빌려준 비트코인 156개…돌려받을 건 현금? 코인? [주말엔]

입력 2024.08.24 (08:02) 수정 2024.08.24 (08:11)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대법원까지 올라가는 사건은 많지 않습니다. 우리 주변의 사건들은 대부분 1, 2심에서 해결되지만 특별한 사건이 아니면 잘 알려지지 않는 게 현실이죠. 재판부의 고민 끝에 나온 생생한 하급심 최신 판례, 눈길을 끄는 판결들을 소개합니다.

지인에게 비트코인을 빌려주었는데, 그 사이 비트코인 가격이 크게 바뀌면서 빌려준 것이 코인인지, 돈이었는지를 두고 다툼이 생겼습니다. 가상자산 계약 해석과 관련한 하급심 법원의 최신 판단을 전해드립니다.

■ 2020년 비트코인 156.6개 송금…"연이율 100%"

2018년 B 씨와 그 지인은 C 씨의 권유로 가상자산 '벨로(Velo)' 코인에 투자했습니다. B 씨 등은 2020년 9월까지 C 씨로부터 벨로 900만 개 이상을 인도받기로 했지만, C 씨는 여러 번의 독촉에도 이 약속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이후 C 씨는 2020년 10월 B 씨 등에게 "벨로 300만 개를 개당 미화 0.7달러, 총 210만 달러에 매수할 사람"이라며 A 씨를 소개했습니다.

A 씨는 B 씨 등을 만나 얘기를 나눴고, 벨로 코인을 자신이 매수하는 대신 별도로 돈을 빌려주겠다고 제안했습니다. A 씨가 단체 대화방에서 정리한 내용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즉 A 씨는 210만 달러 상당의 비트코인을 B 씨에게 대여하고, B 씨는 6개월 후인 2021년 4월 28일까지 해당 비트코인을 상환하며, 벨로 코인 300만 개를 담보로 설정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자율은 연 100%로, 돈을 돌려줄 때 A 씨가 315만 달러에 해당하는 비트코인이나 벨로코인을 현금화한 금액 가운데 더 큰 금액을 선택할 수 있다는 조건이었습니다. B 씨는 계약을 받아들였습니다.

이에 A 씨는 2020년 10월 28일과 10월 29일, 두 차례에 걸쳐 B 씨의 전자지갑으로 비트코인 156.6개를 전송했습니다. A 씨는 거래 진행 상황을 단체 대화방에 공유하며, 비트코인의 송금 내역과 계약 확정일을 다시 한번 정리했습니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났습니다. 대여 당시 1,500여만 원에 불과했던 비트코인의 가격은 수직으로 치솟았고, B 씨가 돈을 갚기로 했던 2021년 4월 말쯤에는 6천여만 원을 훌쩍 넘겼습니다.

이후 2021년 5월부터 10월까지 B 씨의 지인이 B 씨 대신 세 차례에 걸쳐 A 씨의 전자지갑으로 비트코인 30.67개를 전송했습니다. 당시 A 씨와 B 씨의 지인이 나눈 대화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A 씨는 2023년 4월 B 씨가 갚을 돈이 남았는데도 갚지 않고 있다며 소송을 냈습니다.

■ "빌려간 비트코인 갚아야" Vs "빌린 건 현금…코인은 송금 수단"

재판에서 A 씨는 "B 씨에게 빌려준 건 비트코인 원물"이고, "이를 기준으로 계약이 체결된 만큼 B 씨가 나머지 금액을 비트코인으로 갚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A 씨는 "2020년 10월 29일 B 씨에게 미화 210만 달러에 상당하는 비트코인 156.5937개를 빌려줬고 6개월 후인 2021년 4월 28일까지 이 비트코인을 '원물 그대로' 상환받기로 합의한 것"이라며 "상환일을 6개월 후로, 약정이자를 대여원물의 50%인 미화 1,050,000달러 상당의 비트코인으로 정한 만큼 B 씨가 비트코인 원물 156.5937개 및 이에 대해 2020.10.29부터 연 100%의 비율로 계산한 비트코인 이자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B 씨의 지인이 B 씨 대신 비트코인을 일부 갚았지만, 민법 제479조 제1항에 따라 채권자가 받은 금전은 먼저 이자에 충당되는 만큼 이는 연 100%로 계산된 비트코인 이자를 갚았을 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B 씨의 말은 달랐습니다. A 씨로부터 빌린 건 비트코인이 아니라 현금이었고, 송금 편의를 위해 비트코인으로 건네받았을 뿐이란 겁니다.

B 씨는 "A 씨로부터 210만 달러를 빌린 건 맞지만, 지급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수료 절약을 위해 A 씨가 보유 중이던 210만 달러 상당의 비트코인으로 지급받은 것"이라며 "빌린 건 '210만 달러'이지, 비트코인 원물이 아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 1심 법원 "빌린 건 비트코인 아닌 210만 달러" 청구 기각

1심 서울중앙지법은 지난달 A 씨의 청구를 전부 기각했습니다.

재판부는 "A 씨의 이 사건 청구는 이 사건 대여계약의 목적물이 비트코인 원물임을 전제로 하고 있지만 대여계약의 목적물은 비트코인 원물이 아닌 미화 210만 달러"라고 판단했습니다.

법률행위의 해석은 당사자가 그 표시행위에 부여한 객관적인 의미를 명백하게 확정하는 것으로서, 당사자 사이에 법률행위의 해석을 둘러싸고 이견이 있어 당사자의 의사 해석이 문제 되는 경우에는 법률행위의 내용, 그러한 법률행위가 이루어진 동기와 경위, 법률행위에 의하여 달성하려는 목적, 당사자의 진정한 의사 등을 종합적으로 고찰하여 논리와 경험칙에 따라 합리적으로 해석하여야 한다(대법원 2023다221830 판결 등 참고).

재판부는 그 근거로 A 씨와 B 씨가 계약 체결 당시 주고받은 메시지 내용을 들었습니다.

재판부는 "A 씨 대여 당시 단체대화방에 '210만 달러를 BTC로 보내주시는 지갑에 송금합니다. 상환시에 원고는 315만 달러에 해당하는 BTC와 질권설정된 VELO 300만 개를 현금화한 금액 중 큰 금액을 택할 수 있다'고 적었는데, 이는 '210만 달러를 빌려 315만 달러 또는 담보(벨로 300만 개)를 현금화한 돈 중 큰 금액으로 상환하되, 달러가 아닌 비트코인 송금 방식으로 지급한다는 의미'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빌려준 것이 비트코인 원물 자체였다면 대여하는 비트코인의 개수를 기준으로 반환받을 비트코인의 수량을 정할텐데, 오히려 A 씨는 210만 달러를 기준으로 이를 원화로 환산한 금액에 상당하는 비트코인의 개수를 산정하여 지급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B 씨는 C 씨로부터 '벨로 300만 개를 개당 미화 0.7달러 합계 210만 달러에 매수할 사람'으로 A 씨를 소개받았으므로, B 씨는 당초 벨로 300만 개를 매도하여 현금을 확보하려는 의사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고 비트코인 자체를 대여하려는 의사가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덧붙였습니다.

아울러 법원은 A 씨에게 B 씨의 지인이 일부 상환하는 과정에서 나눈 대화도 근거로 들었습니다.

법원은 "만약 빌려준 것이 비트코인 원물이었다면 A 씨에게 비트코인 자체를 반환하는 B 씨의 지인은 비트코인 가격 변동성을 염려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면서 "따라서 위 메신저 대화는 빌려준 것이 금전이고 그 지급방식이 가상자산임을 전제로 한 대화로밖에 볼 수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다만 재판부는 B 씨가 갚을 금액이 남았는지, 남았다면 얼마를 갚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A 씨는 불복해 항소했고, 사건은 서울고등법원으로 올라갔습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4년 전 빌려준 비트코인 156개…돌려받을 건 현금? 코인? [주말엔]
    • 입력 2024-08-24 08:02:16
    • 수정2024-08-24 08:11:41
    주말엔

대법원까지 올라가는 사건은 많지 않습니다. 우리 주변의 사건들은 대부분 1, 2심에서 해결되지만 특별한 사건이 아니면 잘 알려지지 않는 게 현실이죠. 재판부의 고민 끝에 나온 생생한 하급심 최신 판례, 눈길을 끄는 판결들을 소개합니다.

지인에게 비트코인을 빌려주었는데, 그 사이 비트코인 가격이 크게 바뀌면서 빌려준 것이 코인인지, 돈이었는지를 두고 다툼이 생겼습니다. 가상자산 계약 해석과 관련한 하급심 법원의 최신 판단을 전해드립니다.

■ 2020년 비트코인 156.6개 송금…"연이율 100%"

2018년 B 씨와 그 지인은 C 씨의 권유로 가상자산 '벨로(Velo)' 코인에 투자했습니다. B 씨 등은 2020년 9월까지 C 씨로부터 벨로 900만 개 이상을 인도받기로 했지만, C 씨는 여러 번의 독촉에도 이 약속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이후 C 씨는 2020년 10월 B 씨 등에게 "벨로 300만 개를 개당 미화 0.7달러, 총 210만 달러에 매수할 사람"이라며 A 씨를 소개했습니다.

A 씨는 B 씨 등을 만나 얘기를 나눴고, 벨로 코인을 자신이 매수하는 대신 별도로 돈을 빌려주겠다고 제안했습니다. A 씨가 단체 대화방에서 정리한 내용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즉 A 씨는 210만 달러 상당의 비트코인을 B 씨에게 대여하고, B 씨는 6개월 후인 2021년 4월 28일까지 해당 비트코인을 상환하며, 벨로 코인 300만 개를 담보로 설정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자율은 연 100%로, 돈을 돌려줄 때 A 씨가 315만 달러에 해당하는 비트코인이나 벨로코인을 현금화한 금액 가운데 더 큰 금액을 선택할 수 있다는 조건이었습니다. B 씨는 계약을 받아들였습니다.

이에 A 씨는 2020년 10월 28일과 10월 29일, 두 차례에 걸쳐 B 씨의 전자지갑으로 비트코인 156.6개를 전송했습니다. A 씨는 거래 진행 상황을 단체 대화방에 공유하며, 비트코인의 송금 내역과 계약 확정일을 다시 한번 정리했습니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났습니다. 대여 당시 1,500여만 원에 불과했던 비트코인의 가격은 수직으로 치솟았고, B 씨가 돈을 갚기로 했던 2021년 4월 말쯤에는 6천여만 원을 훌쩍 넘겼습니다.

이후 2021년 5월부터 10월까지 B 씨의 지인이 B 씨 대신 세 차례에 걸쳐 A 씨의 전자지갑으로 비트코인 30.67개를 전송했습니다. 당시 A 씨와 B 씨의 지인이 나눈 대화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A 씨는 2023년 4월 B 씨가 갚을 돈이 남았는데도 갚지 않고 있다며 소송을 냈습니다.

■ "빌려간 비트코인 갚아야" Vs "빌린 건 현금…코인은 송금 수단"

재판에서 A 씨는 "B 씨에게 빌려준 건 비트코인 원물"이고, "이를 기준으로 계약이 체결된 만큼 B 씨가 나머지 금액을 비트코인으로 갚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A 씨는 "2020년 10월 29일 B 씨에게 미화 210만 달러에 상당하는 비트코인 156.5937개를 빌려줬고 6개월 후인 2021년 4월 28일까지 이 비트코인을 '원물 그대로' 상환받기로 합의한 것"이라며 "상환일을 6개월 후로, 약정이자를 대여원물의 50%인 미화 1,050,000달러 상당의 비트코인으로 정한 만큼 B 씨가 비트코인 원물 156.5937개 및 이에 대해 2020.10.29부터 연 100%의 비율로 계산한 비트코인 이자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B 씨의 지인이 B 씨 대신 비트코인을 일부 갚았지만, 민법 제479조 제1항에 따라 채권자가 받은 금전은 먼저 이자에 충당되는 만큼 이는 연 100%로 계산된 비트코인 이자를 갚았을 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B 씨의 말은 달랐습니다. A 씨로부터 빌린 건 비트코인이 아니라 현금이었고, 송금 편의를 위해 비트코인으로 건네받았을 뿐이란 겁니다.

B 씨는 "A 씨로부터 210만 달러를 빌린 건 맞지만, 지급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수료 절약을 위해 A 씨가 보유 중이던 210만 달러 상당의 비트코인으로 지급받은 것"이라며 "빌린 건 '210만 달러'이지, 비트코인 원물이 아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 1심 법원 "빌린 건 비트코인 아닌 210만 달러" 청구 기각

1심 서울중앙지법은 지난달 A 씨의 청구를 전부 기각했습니다.

재판부는 "A 씨의 이 사건 청구는 이 사건 대여계약의 목적물이 비트코인 원물임을 전제로 하고 있지만 대여계약의 목적물은 비트코인 원물이 아닌 미화 210만 달러"라고 판단했습니다.

법률행위의 해석은 당사자가 그 표시행위에 부여한 객관적인 의미를 명백하게 확정하는 것으로서, 당사자 사이에 법률행위의 해석을 둘러싸고 이견이 있어 당사자의 의사 해석이 문제 되는 경우에는 법률행위의 내용, 그러한 법률행위가 이루어진 동기와 경위, 법률행위에 의하여 달성하려는 목적, 당사자의 진정한 의사 등을 종합적으로 고찰하여 논리와 경험칙에 따라 합리적으로 해석하여야 한다(대법원 2023다221830 판결 등 참고).

재판부는 그 근거로 A 씨와 B 씨가 계약 체결 당시 주고받은 메시지 내용을 들었습니다.

재판부는 "A 씨 대여 당시 단체대화방에 '210만 달러를 BTC로 보내주시는 지갑에 송금합니다. 상환시에 원고는 315만 달러에 해당하는 BTC와 질권설정된 VELO 300만 개를 현금화한 금액 중 큰 금액을 택할 수 있다'고 적었는데, 이는 '210만 달러를 빌려 315만 달러 또는 담보(벨로 300만 개)를 현금화한 돈 중 큰 금액으로 상환하되, 달러가 아닌 비트코인 송금 방식으로 지급한다는 의미'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빌려준 것이 비트코인 원물 자체였다면 대여하는 비트코인의 개수를 기준으로 반환받을 비트코인의 수량을 정할텐데, 오히려 A 씨는 210만 달러를 기준으로 이를 원화로 환산한 금액에 상당하는 비트코인의 개수를 산정하여 지급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B 씨는 C 씨로부터 '벨로 300만 개를 개당 미화 0.7달러 합계 210만 달러에 매수할 사람'으로 A 씨를 소개받았으므로, B 씨는 당초 벨로 300만 개를 매도하여 현금을 확보하려는 의사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고 비트코인 자체를 대여하려는 의사가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덧붙였습니다.

아울러 법원은 A 씨에게 B 씨의 지인이 일부 상환하는 과정에서 나눈 대화도 근거로 들었습니다.

법원은 "만약 빌려준 것이 비트코인 원물이었다면 A 씨에게 비트코인 자체를 반환하는 B 씨의 지인은 비트코인 가격 변동성을 염려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면서 "따라서 위 메신저 대화는 빌려준 것이 금전이고 그 지급방식이 가상자산임을 전제로 한 대화로밖에 볼 수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다만 재판부는 B 씨가 갚을 금액이 남았는지, 남았다면 얼마를 갚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A 씨는 불복해 항소했고, 사건은 서울고등법원으로 올라갔습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