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솔자 효도 관광인 줄”…경기도 청년연수 ‘부실 운영’ 논란 잇따라

입력 2024.08.2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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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솔자는 정말 열심히 노셨어요.
참여자들 사이에선 우스갯소리로 '인솔자 효도 관광이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왔습니다."

경기도 청년연수 프로그램인 '경기청년사다리' 프로그램이 참여자의 안전을 등한시한 채 진행됐다는 보도가 나가자, 다른 학교 연수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는 제보가 왔습니다. 앞서 보도한 미국 UC샌디에이고 대학 연수뿐만 아니라, 미국 버팔로 대학 연수에서도 안전 문제가 생겼을 때마다 인솔자가 제 역할을 하지 않아 참여자들이 어려움을 겪었다는 겁니다.

[연관 기사] 미국서 쓰러져도 나 몰라라…청년 울린 경기도 해외연수 (2024.8.20.)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039661

버팔로 대학 연수에 참가한 30명 가운데 26명은 공동으로 KBS에 6장 분량의 의견서를 보내 "불편함을 느낀 건 참여자 소수의 의견이 아니었다"고 강조했습니다. 불거진 문제들이 참여자 일부의 부적응이나 인솔자 개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었다며, 경기도의 '경기청년사다리' 프로그램이 정책 취지대로 운영되는지 의문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 "연수 참여자 병원 가도 방치"… 인솔자 "깜박 잠들어서 미안"

지난달 미국 버팔로 대학에서 4주간 진행된 연수에서도 환자가 발생했습니다. 참여자 A씨는 귀 고막에 구멍이 생겨 병원 치료가 필요했습니다. 마침 그날은 평일에다, 담당 교수의 코로나19 감염으로 수업이 취소돼 참여자들은 기숙사에 있었습니다.

A씨가 병원에 가겠다고 하자, 인솔자는 '자신은 할 일이 있어 동행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A씨는 현지 학교 직원과 함께 병원에 갔는데, 현지 직원은 한국어를 할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결국 의사 소통이 안 돼, 천공의 악화 정도와 약물 알레르기 여부 등 의학적인 상태를 파악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합니다.

미국 버팔로 대학 연수자 A씨가 병원에 다녀온 후 인솔자와 나눈 메신저 대화 내용. 메신저 창에는 한국 시각으로 표시됐다. 현지 시각 평일 오후에 인솔자는 전화를 받지 않았고, 그 이유로 낮잠을 잤다고 밝혔다.미국 버팔로 대학 연수자 A씨가 병원에 다녀온 후 인솔자와 나눈 메신저 대화 내용. 메신저 창에는 한국 시각으로 표시됐다. 현지 시각 평일 오후에 인솔자는 전화를 받지 않았고, 그 이유로 낮잠을 잤다고 밝혔다.

A씨가 4시간 동안 병원에서 진료를 받는 도중이나 기숙사에 돌아온 다음에도 인솔자는 A씨에게 아무 연락도 하지 않았습니다. 병원에 동행했던 현지 직원이 기숙사로 돌아와 처방 내역과 복약 안내를 위해 인솔자를 찾아도, 인솔자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결국 영어가 능숙한 다른 참여자가 인솔자를 대신해 병원을 다녀온 참여자를 챙겼습니다. 인솔자는 뒤늦게 나타났고, 그나마도 현지 직원의 영어를 이해하지 못해 다른 참여자의 통역 내용을 전달받았다고 합니다.

인솔자는 오후 5시가 넘어서 "깜박 잠이 들었다"며 A씨에게 간단한 사과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이에 대해 경기도는 인솔자가 병원에 가는 대신 기숙사에 남아 코로나19 검사 키트를 나눠주고, 양성 판정이 나오는 경우에 대비해 기숙사 방 마련을 위한 협의를 진행했다고 해명했습니다. 그러면서 A씨와 연락이 닿지 않은 것은 7분에 불과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반면 참여자들은 코로나19 검사 키트를 나눠준 후 인솔자가 기숙사에서 일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고 반박했습니다. 검사 결과 취합은 단톡방에 참여자들이 "음성입니다"라고 메시지를 올리는 방식으로 진행됐다는 겁니다. 인솔자가 검사 결과를 직접 확인하거나 수거하지 않았고, 고열 증상의 참여자를 위해 여분의 방을 요청하거나 마스크를 배부하는 것도 참여자들이 직접 해결해야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 "입국부터 출국까지… 인솔자는 문제 상황에 개입 안 하고 방임"

연수 참여자들이 뭔가 이상하다고 느낀 건 미국 입국 과정에서부터였다고 합니다. B씨는 공항 입국심사대를 통과하지 못하고 2차 조사실로 불려가 심층 조사를 받게 됐습니다. 입국심사관은 B씨가 학생비자(F1)를 받지 않고 비자면제 프로그램인 전자여행허가(ESTA)를 이용한 점이 잘못됐다고 지적했습니다. B씨는 경기도 단체 연수 프로그램의 일원임을 입증해야 했는데, 2차 조사실에서는 휴대전화 사용이 금지돼 난처한 상황에 처했습니다.

B씨가 2차 조사실로 불려가자, 이 모습을 목격한 다른 참여자들이 인솔자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인솔자는 먼저 입국심사를 통과한 상태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인솔자는 그 소식을 듣고도 '자신의 수하물을 먼저 찾아야 한다'며 그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고 참여자들은 전했습니다.

참여자들은 입국에 대비해 경기도와 실무를 담당한 경기도일자리재단에 '경기도의 지원을 받아 뉴욕주립대학교(버팔로 대학) 프로그램에 참여한다'는 내용을 입증할 수 있는 서류를 사전에 요청했지만, 어떤 서류도 받지 못했다고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재단 측은 입국심사에 필요한 사항을 인솔자가 모두 안내해줄 것이라고 공지했지만, 참여자들은 인솔자가 현장에서 입국심사를 어떻게 진행해야 하는지 도리어 참여자들에게 질문했다고 전했습니다.

이에 대해 경기도는 다른 참여자 한 명이 위조여권으로 오해를 받아 입국심사관에게 설명하느라 B씨가 2차 조사실로 불려간 사실을 뒤늦게 파악했다고 해명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심사대를 빠져나온 다음 B씨가 나오지 않은 것을 알게 됐는데, 다시 입국심사대로 돌아가는 도중 B씨가 나와 상황이 종료됐다고 했습니다.


출국 때도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항공사 측의 발권 실수로 참여자 C씨가 탑승 마감시간까지 비행기를 타지 못했습니다. 다른 참여자들이 인솔자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인솔자는 "C씨가 직원과 알아서 해결할 문제"라며 본인이 먼저 비행기에 올랐다고 합니다. 결국 C씨는 스스로 상황을 해결하고 가까스로 귀국길에 올랐는데, 인솔자는 C씨의 최종 탑승 여부조차 확인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참여자들은 경기도청 공무원인 인솔자가 복잡한 상황에서 구사할 수 있는 수준의 영어 실력이 안 됐고, 미국 생활에 대한 기본 지식이 전혀 없었다고 느꼈습니다. 프로그램 운영을 돕는 현지 학생조차 인솔자의 영어 실력에 의문을 품고 소통이 힘들다는 어려움을 토로할 정도였다는 겁니다. 연수 도중 학교 측에 요청할 사항이 있을 때도 인솔자를 통해 소통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했다고도 했습니다.

현지 도움 받았지만…인솔자 없이 병원 갔다 보증금 날리기도

문제가 생겨도 인솔자들이 개입하지 않자, 참여자들은 현지 한인학생회의 도움을 받아 상황을 모면했습니다. 하지만 현지 학생들과 학교보험이나 여행자 보험 등의 가입 조건이 다르다보니 잘못 처리된 경우도 생겼습니다.

샌디에이고 대학에서는 앞서 보도한 지해나 씨 외에도 두 명의 참여자가 병원 응급실을 찾았습니다. D씨는 입국한 지 일주일 만에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습니다. 인솔자가 동행하지 않아 현지 한인회 학생의 조언을 따랐는데, 그러다가 내지 않아도 될 보증금 2,000달러를 병원에 지불했습니다. 참여자들의 학생증이 나오지 않은 상황이라, 병원 측에서 보증금을 요구했다는 겁니다. 알고 보니 학교 보험으로 보장될 상황이었지만 D씨는 결국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채 귀국했습니다.

또 다른 참여자 E씨는 한국의 지인과 통화를 하던 도중 쓰러졌습니다. 놀란 지인이 경기도 측에 참여자의 신상 확인을 요청했지만 답변을 듣지 못한 채 시간만 흘렀습니다. 결국 E씨의 지인과 가족은 미국 경찰에 참여자를 찾아달라고 긴급 신고를 하기에 이릅니다. 학교 안에 쓰러져있던 E씨를 결국 다른 참여자가 찾았고, 인솔자가 아닌 현지 대학 직원의 도움을 받아 병원으로 이송됐습니다.


"인솔자 선정·교육· 매뉴얼 공개하라" 요구에도 경기도 묵묵부답

연수를 마치고 돌아온 참여자들은 경기도 측에 이 같은 상황을 항의했습니다. 그리고 인솔자를 어떻게 선발했는지, 인솔자 교육은 진행됐는지, 동행한 인솔자는 그 교육을 이수했는지 물었지만 명확한 대답을 듣지는 못했습니다.

응급실에 4차례 갔던 지 씨는 응급 상황 시 인솔자의 대응이 어떻게 규정되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경기도에 매뉴얼을 요청했지만, '정보공개청구를 하라'는 대답을 들었습니다. 사실 여부를 묻는 기자의 질의에, 경기도는 "정보공개청구의 처리 기한이 30일까지로 매뉴얼 공개 여부를 검토 중"이라고 해명했습니다.

참여자들은 "동행한 경기도 공무원들이 인솔자로서 참가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어떠한 인식도 가지고 있지 않았고 최소한의 업무조차 수행하지 않았다"면서 "인솔자가 한 달간 출장비를 받은 것인지, 예산만큼의 가치를 했는지 묻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반면, 연수에 참여한 청년들은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엄격한 과정을 거쳐 선발됐습니다. 올해 진행된 경기청년사다리 2기 프로그램에는 5개국 9개 학교에 270명을 모집했습니다. 여기에 19세 이상 39세 이하 경기도 거주 청년 7,971명이 지원해 29.5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습니다. 지 씨가 선발된 샌디에이고 대학에는 25명 모집에 1,340명이 지원해, 53.6 대 1의 최고 경쟁률을 보였습니다. 참여자들은 서류와 면접 심사, 인성검사를 받았고, 두 차례에 걸쳐 사전 합숙교육을 받았습니다.

다만, 최종 선발된 참여자들의 외국어 실력은 편차가 컸습니다. "아빠, 엄마 찬스가 아니라도 청년들에게 더 많은 기회, 더 고른 기회를 드리겠다"는 김동연 지사의 정책 제안 취지에 따라, 외국어 평가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경기청년사다리 프로그램은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계층, 자립준비청년, 장애 청년, 저학력 청년, 해외 경험이 없는 청년 우대'를 표방하며 진행됐습니다.

한 참여자는 "경기청년사다리 프로그램은 영어 실력을 전혀 보지 않고 선발한 것이기 때문에 인솔자의 역할이 필요했다"고 말했습니다. 최소한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역할로 인솔자를 배치한 것이라면 위기대처능력이나,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영어 구사 능력이 있어야 했다는 겁니다. '참여자가 모두 성인이니 스스로 해결했어야 했다'는 반응에 대해서는 "그렇다면 인솔자를 보내지 않았어도 되는 게 아닌가"라고 반문했습니다.

■ 열악한 환경 "과제 수행 어려울 정도…개선 요청해도 전달 안 돼"

경기청년사다리 2기 연수자들이 4주간 생활한 미국 버팔로 대학 기숙사의 창 밖 모습.경기청년사다리 2기 연수자들이 4주간 생활한 미국 버팔로 대학 기숙사의 창 밖 모습.

버팔로 대학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경기청년사다리 연수가 진행된 곳입니다. 2기 참여자들은 1기 참여자들로부터 학교 시설이 좋지 않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지만, 올해도 상황이 개선되지 않았다고 전했습니다.

참여자들은 기숙사의 환경이 건강에 영향을 줄 정도로 열악했다고 말합니다. 섭씨 30도가 넘는 한여름에 에어컨이 없는 기숙사에 배정됐고, 창문은 제대로 열리지 않아 환기조차 어려웠다고 합니다. 게다가 방학을 맞아 이 기숙사 일대에선 공사가 진행됐습니다. 새벽부터 진행되는 공사 소음과 더위에 숙면을 취할 수 없었고, 방 안에서 공사장 근로자와 눈이 마주칠 만큼 사생활도 보장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참여자들은 오후 프로그램을 위해 제공된 버스에도 에어컨이 없었다고 전했습니다. 참여자들을 태운 초등학교 스쿨버스가 햇빛에 달아올라도 안전상의 이유로 창문조차 제대로 열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참여자들은 성인이 앉아있기조차 힘들만큼 협소한 버스를 타고 이동하면서, 현기증과 발열 등 온열질환 증세를 경험했다고 말했습니다.

참여자들은 연수 환경이 과제를 제대로 수행하기에도 어려울 정도였다고 했습니다. 참여자들은 오전 어학 수업의 과제 외에도 팀 프로젝트와 개인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매주 보고서를 작성해 제출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재학생이 아니라는 이유로 학교 와이파이에 접근할 수 없었고, 개인 비용을 들여 로밍하거나 유심을 추가 구매하는 등 각자 조치를 해야 했습니다.

참여자들은 정상적인 연수 진행을 위해 환경을 개선해달라고 건의사항을 정리해 인솔자와 재단 측에 전달했지만, 먼지 쌓인 선풍기가 제공됐을 뿐 대부분 수용되지 않았습니다.

더위를 먹은 버팔로 대학 연수자가 얼음으로 열기를 식히는 모습. 연수자들이 초등학생용 스쿨버스에 탑승한 모습.더위를 먹은 버팔로 대학 연수자가 얼음으로 열기를 식히는 모습. 연수자들이 초등학생용 스쿨버스에 탑승한 모습.

"프로그램 정체성 의문…경기도는 청년의 목소리를 무시했다"

청년들은 감사한 마음으로 경기청년사다리 프로그램에 지원했다고 말했습니다. 지 씨는 "소외되어 있고 경험이 부족한 친구들에게 경기도가 이런 기회를 제공하고, 관심을 보인다는 것조차 정말 감사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연수가 진행되면서 실망이 커졌다고 했습니다. 사전 준비와 현장 대응, 사후 처리 등 프로그램 전반이 부실했고, 프로그램의 정체성에 의문을 갖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참여자들은 2년간 55억 원의 예산이 투입된 정책인 만큼 보고서 제출은 정당한 절차라고 이해하면서도, 영상 제작과 보고서 제출이 과도한 수준이었다고 했습니다.

또, 다양한 배경과 연령대의 청년들이 참여했는데, 4주간의 연수 과제는 '20대 대학생의 진로탐색'으로 요구받았다고 평가했습니다. 4주간의 어학연수와 문화 체험 프로그램이라는 공고를 보고 참여했는데, 실적 중심의 과제를 거듭 요구받으면서 "이 프로그램이 청년들의 성장을 위한 것인지 김동연 지사를 위한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인솔자들의 무책임한 태도에 청년들은 '무시당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참여자들은 "최소한의 안전, 생명조차 보호받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취급을 당하는 프로그램이었으면 참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프로그램을 처음 제안한 김동연 지사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청년들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왔습니다. 특히 "청년들이 행복해질 기회가 많아지도록, 청년들이 정책에 관심을 가져야 하고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강조해왔습니다.

하지만 경기청년사다리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청년들은 경기도가 청년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고 얘기합니다. 소중한 시간을 들여 경기도 정책에 참여하고, 부담감에도 용기를 내 목소리를 낸 청년들에게 경기도는 응답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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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솔자 효도 관광인 줄”…경기도 청년연수 ‘부실 운영’ 논란 잇따라
    • 입력 2024-08-28 07: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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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솔자는 정말 열심히 노셨어요.
참여자들 사이에선 우스갯소리로 '인솔자 효도 관광이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왔습니다."

경기도 청년연수 프로그램인 '경기청년사다리' 프로그램이 참여자의 안전을 등한시한 채 진행됐다는 보도가 나가자, 다른 학교 연수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는 제보가 왔습니다. 앞서 보도한 미국 UC샌디에이고 대학 연수뿐만 아니라, 미국 버팔로 대학 연수에서도 안전 문제가 생겼을 때마다 인솔자가 제 역할을 하지 않아 참여자들이 어려움을 겪었다는 겁니다.

[연관 기사] 미국서 쓰러져도 나 몰라라…청년 울린 경기도 해외연수 (2024.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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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팔로 대학 연수에 참가한 30명 가운데 26명은 공동으로 KBS에 6장 분량의 의견서를 보내 "불편함을 느낀 건 참여자 소수의 의견이 아니었다"고 강조했습니다. 불거진 문제들이 참여자 일부의 부적응이나 인솔자 개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었다며, 경기도의 '경기청년사다리' 프로그램이 정책 취지대로 운영되는지 의문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 "연수 참여자 병원 가도 방치"… 인솔자 "깜박 잠들어서 미안"

지난달 미국 버팔로 대학에서 4주간 진행된 연수에서도 환자가 발생했습니다. 참여자 A씨는 귀 고막에 구멍이 생겨 병원 치료가 필요했습니다. 마침 그날은 평일에다, 담당 교수의 코로나19 감염으로 수업이 취소돼 참여자들은 기숙사에 있었습니다.

A씨가 병원에 가겠다고 하자, 인솔자는 '자신은 할 일이 있어 동행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A씨는 현지 학교 직원과 함께 병원에 갔는데, 현지 직원은 한국어를 할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결국 의사 소통이 안 돼, 천공의 악화 정도와 약물 알레르기 여부 등 의학적인 상태를 파악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합니다.

미국 버팔로 대학 연수자 A씨가 병원에 다녀온 후 인솔자와 나눈 메신저 대화 내용. 메신저 창에는 한국 시각으로 표시됐다. 현지 시각 평일 오후에 인솔자는 전화를 받지 않았고, 그 이유로 낮잠을 잤다고 밝혔다.
A씨가 4시간 동안 병원에서 진료를 받는 도중이나 기숙사에 돌아온 다음에도 인솔자는 A씨에게 아무 연락도 하지 않았습니다. 병원에 동행했던 현지 직원이 기숙사로 돌아와 처방 내역과 복약 안내를 위해 인솔자를 찾아도, 인솔자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결국 영어가 능숙한 다른 참여자가 인솔자를 대신해 병원을 다녀온 참여자를 챙겼습니다. 인솔자는 뒤늦게 나타났고, 그나마도 현지 직원의 영어를 이해하지 못해 다른 참여자의 통역 내용을 전달받았다고 합니다.

인솔자는 오후 5시가 넘어서 "깜박 잠이 들었다"며 A씨에게 간단한 사과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이에 대해 경기도는 인솔자가 병원에 가는 대신 기숙사에 남아 코로나19 검사 키트를 나눠주고, 양성 판정이 나오는 경우에 대비해 기숙사 방 마련을 위한 협의를 진행했다고 해명했습니다. 그러면서 A씨와 연락이 닿지 않은 것은 7분에 불과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반면 참여자들은 코로나19 검사 키트를 나눠준 후 인솔자가 기숙사에서 일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고 반박했습니다. 검사 결과 취합은 단톡방에 참여자들이 "음성입니다"라고 메시지를 올리는 방식으로 진행됐다는 겁니다. 인솔자가 검사 결과를 직접 확인하거나 수거하지 않았고, 고열 증상의 참여자를 위해 여분의 방을 요청하거나 마스크를 배부하는 것도 참여자들이 직접 해결해야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 "입국부터 출국까지… 인솔자는 문제 상황에 개입 안 하고 방임"

연수 참여자들이 뭔가 이상하다고 느낀 건 미국 입국 과정에서부터였다고 합니다. B씨는 공항 입국심사대를 통과하지 못하고 2차 조사실로 불려가 심층 조사를 받게 됐습니다. 입국심사관은 B씨가 학생비자(F1)를 받지 않고 비자면제 프로그램인 전자여행허가(ESTA)를 이용한 점이 잘못됐다고 지적했습니다. B씨는 경기도 단체 연수 프로그램의 일원임을 입증해야 했는데, 2차 조사실에서는 휴대전화 사용이 금지돼 난처한 상황에 처했습니다.

B씨가 2차 조사실로 불려가자, 이 모습을 목격한 다른 참여자들이 인솔자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인솔자는 먼저 입국심사를 통과한 상태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인솔자는 그 소식을 듣고도 '자신의 수하물을 먼저 찾아야 한다'며 그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고 참여자들은 전했습니다.

참여자들은 입국에 대비해 경기도와 실무를 담당한 경기도일자리재단에 '경기도의 지원을 받아 뉴욕주립대학교(버팔로 대학) 프로그램에 참여한다'는 내용을 입증할 수 있는 서류를 사전에 요청했지만, 어떤 서류도 받지 못했다고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재단 측은 입국심사에 필요한 사항을 인솔자가 모두 안내해줄 것이라고 공지했지만, 참여자들은 인솔자가 현장에서 입국심사를 어떻게 진행해야 하는지 도리어 참여자들에게 질문했다고 전했습니다.

이에 대해 경기도는 다른 참여자 한 명이 위조여권으로 오해를 받아 입국심사관에게 설명하느라 B씨가 2차 조사실로 불려간 사실을 뒤늦게 파악했다고 해명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심사대를 빠져나온 다음 B씨가 나오지 않은 것을 알게 됐는데, 다시 입국심사대로 돌아가는 도중 B씨가 나와 상황이 종료됐다고 했습니다.


출국 때도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항공사 측의 발권 실수로 참여자 C씨가 탑승 마감시간까지 비행기를 타지 못했습니다. 다른 참여자들이 인솔자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인솔자는 "C씨가 직원과 알아서 해결할 문제"라며 본인이 먼저 비행기에 올랐다고 합니다. 결국 C씨는 스스로 상황을 해결하고 가까스로 귀국길에 올랐는데, 인솔자는 C씨의 최종 탑승 여부조차 확인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참여자들은 경기도청 공무원인 인솔자가 복잡한 상황에서 구사할 수 있는 수준의 영어 실력이 안 됐고, 미국 생활에 대한 기본 지식이 전혀 없었다고 느꼈습니다. 프로그램 운영을 돕는 현지 학생조차 인솔자의 영어 실력에 의문을 품고 소통이 힘들다는 어려움을 토로할 정도였다는 겁니다. 연수 도중 학교 측에 요청할 사항이 있을 때도 인솔자를 통해 소통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했다고도 했습니다.

현지 도움 받았지만…인솔자 없이 병원 갔다 보증금 날리기도

문제가 생겨도 인솔자들이 개입하지 않자, 참여자들은 현지 한인학생회의 도움을 받아 상황을 모면했습니다. 하지만 현지 학생들과 학교보험이나 여행자 보험 등의 가입 조건이 다르다보니 잘못 처리된 경우도 생겼습니다.

샌디에이고 대학에서는 앞서 보도한 지해나 씨 외에도 두 명의 참여자가 병원 응급실을 찾았습니다. D씨는 입국한 지 일주일 만에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습니다. 인솔자가 동행하지 않아 현지 한인회 학생의 조언을 따랐는데, 그러다가 내지 않아도 될 보증금 2,000달러를 병원에 지불했습니다. 참여자들의 학생증이 나오지 않은 상황이라, 병원 측에서 보증금을 요구했다는 겁니다. 알고 보니 학교 보험으로 보장될 상황이었지만 D씨는 결국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채 귀국했습니다.

또 다른 참여자 E씨는 한국의 지인과 통화를 하던 도중 쓰러졌습니다. 놀란 지인이 경기도 측에 참여자의 신상 확인을 요청했지만 답변을 듣지 못한 채 시간만 흘렀습니다. 결국 E씨의 지인과 가족은 미국 경찰에 참여자를 찾아달라고 긴급 신고를 하기에 이릅니다. 학교 안에 쓰러져있던 E씨를 결국 다른 참여자가 찾았고, 인솔자가 아닌 현지 대학 직원의 도움을 받아 병원으로 이송됐습니다.


"인솔자 선정·교육· 매뉴얼 공개하라" 요구에도 경기도 묵묵부답

연수를 마치고 돌아온 참여자들은 경기도 측에 이 같은 상황을 항의했습니다. 그리고 인솔자를 어떻게 선발했는지, 인솔자 교육은 진행됐는지, 동행한 인솔자는 그 교육을 이수했는지 물었지만 명확한 대답을 듣지는 못했습니다.

응급실에 4차례 갔던 지 씨는 응급 상황 시 인솔자의 대응이 어떻게 규정되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경기도에 매뉴얼을 요청했지만, '정보공개청구를 하라'는 대답을 들었습니다. 사실 여부를 묻는 기자의 질의에, 경기도는 "정보공개청구의 처리 기한이 30일까지로 매뉴얼 공개 여부를 검토 중"이라고 해명했습니다.

참여자들은 "동행한 경기도 공무원들이 인솔자로서 참가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어떠한 인식도 가지고 있지 않았고 최소한의 업무조차 수행하지 않았다"면서 "인솔자가 한 달간 출장비를 받은 것인지, 예산만큼의 가치를 했는지 묻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반면, 연수에 참여한 청년들은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엄격한 과정을 거쳐 선발됐습니다. 올해 진행된 경기청년사다리 2기 프로그램에는 5개국 9개 학교에 270명을 모집했습니다. 여기에 19세 이상 39세 이하 경기도 거주 청년 7,971명이 지원해 29.5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습니다. 지 씨가 선발된 샌디에이고 대학에는 25명 모집에 1,340명이 지원해, 53.6 대 1의 최고 경쟁률을 보였습니다. 참여자들은 서류와 면접 심사, 인성검사를 받았고, 두 차례에 걸쳐 사전 합숙교육을 받았습니다.

다만, 최종 선발된 참여자들의 외국어 실력은 편차가 컸습니다. "아빠, 엄마 찬스가 아니라도 청년들에게 더 많은 기회, 더 고른 기회를 드리겠다"는 김동연 지사의 정책 제안 취지에 따라, 외국어 평가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경기청년사다리 프로그램은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계층, 자립준비청년, 장애 청년, 저학력 청년, 해외 경험이 없는 청년 우대'를 표방하며 진행됐습니다.

한 참여자는 "경기청년사다리 프로그램은 영어 실력을 전혀 보지 않고 선발한 것이기 때문에 인솔자의 역할이 필요했다"고 말했습니다. 최소한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역할로 인솔자를 배치한 것이라면 위기대처능력이나,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영어 구사 능력이 있어야 했다는 겁니다. '참여자가 모두 성인이니 스스로 해결했어야 했다'는 반응에 대해서는 "그렇다면 인솔자를 보내지 않았어도 되는 게 아닌가"라고 반문했습니다.

■ 열악한 환경 "과제 수행 어려울 정도…개선 요청해도 전달 안 돼"

경기청년사다리 2기 연수자들이 4주간 생활한 미국 버팔로 대학 기숙사의 창 밖 모습.
버팔로 대학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경기청년사다리 연수가 진행된 곳입니다. 2기 참여자들은 1기 참여자들로부터 학교 시설이 좋지 않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지만, 올해도 상황이 개선되지 않았다고 전했습니다.

참여자들은 기숙사의 환경이 건강에 영향을 줄 정도로 열악했다고 말합니다. 섭씨 30도가 넘는 한여름에 에어컨이 없는 기숙사에 배정됐고, 창문은 제대로 열리지 않아 환기조차 어려웠다고 합니다. 게다가 방학을 맞아 이 기숙사 일대에선 공사가 진행됐습니다. 새벽부터 진행되는 공사 소음과 더위에 숙면을 취할 수 없었고, 방 안에서 공사장 근로자와 눈이 마주칠 만큼 사생활도 보장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참여자들은 오후 프로그램을 위해 제공된 버스에도 에어컨이 없었다고 전했습니다. 참여자들을 태운 초등학교 스쿨버스가 햇빛에 달아올라도 안전상의 이유로 창문조차 제대로 열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참여자들은 성인이 앉아있기조차 힘들만큼 협소한 버스를 타고 이동하면서, 현기증과 발열 등 온열질환 증세를 경험했다고 말했습니다.

참여자들은 연수 환경이 과제를 제대로 수행하기에도 어려울 정도였다고 했습니다. 참여자들은 오전 어학 수업의 과제 외에도 팀 프로젝트와 개인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매주 보고서를 작성해 제출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재학생이 아니라는 이유로 학교 와이파이에 접근할 수 없었고, 개인 비용을 들여 로밍하거나 유심을 추가 구매하는 등 각자 조치를 해야 했습니다.

참여자들은 정상적인 연수 진행을 위해 환경을 개선해달라고 건의사항을 정리해 인솔자와 재단 측에 전달했지만, 먼지 쌓인 선풍기가 제공됐을 뿐 대부분 수용되지 않았습니다.

더위를 먹은 버팔로 대학 연수자가 얼음으로 열기를 식히는 모습. 연수자들이 초등학생용 스쿨버스에 탑승한 모습.
"프로그램 정체성 의문…경기도는 청년의 목소리를 무시했다"

청년들은 감사한 마음으로 경기청년사다리 프로그램에 지원했다고 말했습니다. 지 씨는 "소외되어 있고 경험이 부족한 친구들에게 경기도가 이런 기회를 제공하고, 관심을 보인다는 것조차 정말 감사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연수가 진행되면서 실망이 커졌다고 했습니다. 사전 준비와 현장 대응, 사후 처리 등 프로그램 전반이 부실했고, 프로그램의 정체성에 의문을 갖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참여자들은 2년간 55억 원의 예산이 투입된 정책인 만큼 보고서 제출은 정당한 절차라고 이해하면서도, 영상 제작과 보고서 제출이 과도한 수준이었다고 했습니다.

또, 다양한 배경과 연령대의 청년들이 참여했는데, 4주간의 연수 과제는 '20대 대학생의 진로탐색'으로 요구받았다고 평가했습니다. 4주간의 어학연수와 문화 체험 프로그램이라는 공고를 보고 참여했는데, 실적 중심의 과제를 거듭 요구받으면서 "이 프로그램이 청년들의 성장을 위한 것인지 김동연 지사를 위한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인솔자들의 무책임한 태도에 청년들은 '무시당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참여자들은 "최소한의 안전, 생명조차 보호받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취급을 당하는 프로그램이었으면 참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프로그램을 처음 제안한 김동연 지사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청년들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왔습니다. 특히 "청년들이 행복해질 기회가 많아지도록, 청년들이 정책에 관심을 가져야 하고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강조해왔습니다.

하지만 경기청년사다리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청년들은 경기도가 청년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고 얘기합니다. 소중한 시간을 들여 경기도 정책에 참여하고, 부담감에도 용기를 내 목소리를 낸 청년들에게 경기도는 응답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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