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자리 수’ 면허 반납률…고령 운전자 대책, 남은 카드는?

입력 2024.09.02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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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전 처음 도입된 고령자 운전면허 자진 반납 지원금의 액수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서울시 동작구는 올해 운전면허증을 자진 반납하는 70세 이상 구민에게 34만 원 선불 교통카드를 제공하기로 했습니다. 서울시는 2019년부터 운전면허를 반납하는 70세 이상 시민에게 10만 원권 선불 교통카드를 지급하고 있는데, 구 차원에서 24만 원을 추가 지원하는 방식입니다.

서울시 강남구도 올해 9월부터 면허 반납 지원금을 20만 원(교통카드)으로 올려 지급한다고 밝혔습니다.

서울시의 고령자 운전면허 자진 반납 홍보물서울시의 고령자 운전면허 자진 반납 홍보물

최근엔 34만 원을 훌쩍 뛰어넘는 면허 반납 지원금도 가시권에 들어왔습니다. 울산 울주군의회에서 운전면허를 반납하는 65세 이상 고령 운전자에게 최고 60만 원을 지원할 수 있게 하는 조례안이 최근 소관 상임위 심사를 통과한 겁니다.

자치단체들이 이렇게 지원금을 올리는 건, 고령 운전자 교통사고가 해마다 늘며 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데 이들의 면허 반납률은 턱없이 낮은 수준이기 때문입니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65세 이상 운전자의 면허 반납률은 2.48%였습니다. 75세 이상 운전자의 경우 지난해 면허 반납률이 자치단체에 따라 최고 10.6%(부산)로 두 자릿수를 기록하기도 했지만, 전국 반납률은 7%대에 그쳤습니다.


정미경 한국도로교통공단 책임연구원은 “고령자 중 운전을 생업으로 하는 분이 많고, 특히 교통 인프라가 부족한 지역에서는 운전이 생활에 필수적이기 때문에 운전대를 놓을 수 없는 분들이 많다”면서 “운전면허 자진 반납이 실효성을 거두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지원금을 더 올려준다 하더라도, 면허 반납 건수를 크게 늘리기엔 역부족이라는 얘기입니다.

1998년부터 27년째 운전면허 자진 반납 제도를 시행 중인 일본에서도, 65세 이상의 면허 반납률은 여전히 2%대에 머물고 있습니다. 면허 반납 유도 정책만으로는 고령 운전자 사고를 예방하는 데 한계가 명확한 상황입니다.

한상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교통학 전공)는 “운전면허 자진 반납 제도는 고령자가 어느 시점에 이르면 운전을 그만둬야 한다는 메시지를 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면서도 “좀 더 다양한 정책을 펼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 고령 운전자 사고, 원인 파악도 제대로 안 돼

그렇다면 어떤 새로운 대책이 가능할까? 효과적인 대책을 세우려면 문제의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는 게 우선이겠죠. 고령 운전자의 교통사고를 효과적으로 예방하려면, 이들이 어쩌다 교통사고를 냈는지, 특히 어떤 요인 때문에 치명적인 사고가 났는지를 제대로 파악하는 게 필수적입니다.

하지만 현재 국내 고령 운전자 교통사고의 ‘원인’을 수집한 통계는 현재 찾아볼 수 없습니다

교통사고분석시스템(TASS) 누리집을 확인한 결과, 사고 유형이 뭔지, 어떤 법규를 위반한 사고인지, 사고가 났을 때의 시간대와 기상 상황은 어땠는지와 같은 통계만 검색됐습니다. 교통사고 통계를 담당하는 경찰청에 문의해도 “고령 운전자 사고 원인 관련 통계는 제공하고 있지 않다”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정미경 한국도로교통공단 책임연구원은 “현재 통계로는 고령 운전자 사고 원인 분석에 제한이 많은 상황”이라며 “페달 조작 실수, 운전 미숙, 약물 또는 졸음의 개입 등 사고의 인적 요인에 대한 통계를 조사하고 발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 일본, ‘5세 단위’로 나눠 고령 운전자 사고 원인 상세 공개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세계 1위인 일본은, 고령 운전자 교통사고 관련 통계를 상세히 발표하고 있습니다.

일본 내각부가 발간한 2024 교통안전백서를 보면 사망자가 나온 교통사고의 인적 요인을 연령별로 비교한 도표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래 그림)

고령자의 경우 65~69세, 70~74세, 75~79세, 80~84세, 85세 이상으로 연령을 세분화해 통계를 내고 있습니다.

교통사망사고의 인적 요인 비교(연령층별, 2013년~2023년 합계). 출처는 일본 내각부 교통안전백서 2024년판.교통사망사고의 인적 요인 비교(연령층별, 2013년~2023년 합계). 출처는 일본 내각부 교통안전백서 2024년판.

눈에 띄는 것은 핸들 또는 페달(브레이크, 액셀)을 부적절하게 조작해 일어나는 사고(操作不適, 연두색)의 비중이 연령 증가에 따라 커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65세 미만의 경우 관련 사고가 전체의 14.6%을 차지했지만, 85세 이상은 비중이 33.9%에 달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브레이크와 액셀을 잘못 밟아 일어난 사망사고 비율은 65세 미만에서 0.4%에 그친 반면, 80~84세에서는 8.2%로 20.5배가 됐습니다. 65세 이상과 미만을 놓고 비교해봐도 이 비율은 11.5배 차이가 납니다.

이같은 통계를 기초로 일본에서는 차에 ‘페달 오조작 방지 장치’ 설치를 확대하는 정책이 시행 중입니다. 고령 운전자가 브레이크를 밟으려다 순간의 착각으로 액셀을 잘못 밟으면서 대형 사고를 초래하는 것을 막기 위한 방안입니다.

일본의 한 자동차용품점에 페달 오조작 방지 장치(오발진 방지 시스템)가 진열돼 있다.일본의 한 자동차용품점에 페달 오조작 방지 장치(오발진 방지 시스템)가 진열돼 있다.

실제로 페달 오조작 방지 장치 등을 탑재한 이른바 ‘서포트카(サポートカー)’의 사고 건수가 일반 차량과 비교해 41.6% 감소했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습니다.

정확한 사고 원인 파악이 실효성 있는 대책으로까지 이어진 사례로 볼 수 있습니다.

■ 운전 능력, 65세 이상에서도 제각각…‘고위험 운전자’ 정밀히 가려내려면?

고령 운전자의 면허 갱신 조건을 강화하는 것은 많은 나라가 채택 중인 고령 운전자 사고 예방책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운전면허 갱신 주기를 나이에 따라 달리 정하고 있습니다. 65세 미만은 10년에 한 번씩 면허를 갱신하면 되지만, 65~75세 미만은 5년마다, 75세 이상은 3년마다 해야 합니다. 이에 더해 70세 이상은 시력, 청력 검사 등 정기 적성검사를 통과해야만 면허를 갱신할 수 있습니다. 75세 이상은 치매 선별검사도 받아야 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더 자주, 많은 절차를 거쳐야 면허를 갱신할 수 있는 셈입니다.

치매안심센터에서 한 노인이 치매 선별검사를 받고 있다.치매안심센터에서 한 노인이 치매 선별검사를 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고령 운전자 중에서도 사고 위험이 높은 운전자를 선별하기 위한 추가 조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합니다. 65세 이상에서도 개인별 운전 능력의 차이가 크게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대안은 고령 운전자의 면허 갱신 절차에 ‘운전 시험’을 포함시키는 방법입니다.

미국 일리노이주에서는 75세부터 면허 갱신 시 반드시 도로주행 시험을 통과해야 합니다. 호주와 뉴질랜드 일부 지역에서도 유사한 제도가 운영 중입니다.

가장 최근엔 2022년 일본에서 일부 고령 운전자의 면허 갱신 때 운전기능 시험을 추가했습니다. 75세 이상 운전자 중 최근 생일 160일 전 3년 동안 교통법규 위반으로 적발된 사람은 인지 검사뿐 아니라 운전기능 시험까지 통과해야 면허를 갱신할 수 있게 한 것입니다.

일본 치바현에 있는 ‘키사라즈 자동차학교’에서 고령자 대상 운전 강습을 하는 야마모토 요시카즈 씨는 75세 이상 운전자들이 자주 하는 실수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눈앞에 정지 신호기나 표식이 있지만 그런 곳에서 종종 브레이크를 늦게 밟거나 신호를 무시해 지나쳐 버리는 분, 중앙선을 물고 주행하는 분, 특히 안쪽 바퀴를 기준으로 불안하게 핸들을 조작해 도로 턱에 부딪히는 분들이 눈에 띕니다.”

일본의 한 고령 운전자가 면허 갱신에 대비해 운전 강습을 받고 있다.일본의 한 고령 운전자가 면허 갱신에 대비해 운전 강습을 받고 있다.

개개인의 운전 적합성을 정확히 평가하기 위한 의학적 가이드라인 신설도 중요한 과제로 꼽힙니다.

정미경 한국도로교통공단 책임연구원은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등에서는 수십 년 전 운전 적합성 평가를 위한 의학적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면서 “근골격계, 순환기계, 정신과 등 다양한 분야의 질환별로 어느 수준까지는 운전을 해도 되는지, 운전이 어려운 분들은 어느 수준의 질환 상태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세부 지침이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일례로 영국에서는 이같은 의학적 가이드라인에 따라 기억력, 청력, 심장 질환, 파킨슨병, 간질 등의 의학적 상태가 심각하다고 판단된 사람에겐 운전을 중단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영국(왼쪽)과 호주(오른쪽) 정부에서 발간한 운전능력평가 의학 가이드라인 표지영국(왼쪽)과 호주(오른쪽) 정부에서 발간한 운전능력평가 의학 가이드라인 표지

■ “이동성, 고령자의 삶의 질과 직결”…운전 선택권 넓혀야

사고 예방뿐 아니라 고령자의 삶의 질 제고 차원에서도 고령 운전자 정책은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한상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교통학 전공)는 “OECD 보고서에 의하면 고령 운전자가 가급적 길게 운전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전체적인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다라는 정책 제언이 있다. 노인의 자유로운 이동이 사회적으로 더 이득이 된다는 얘기”라며 “고령자가 운전을 원하는 대로 못했을 경우 누군가 이동을 지원해야 하는 비용이 생기고, 이동을 제대로 하지 못하기 때문에 건강상의 문제도 빨리 생기게 되는 등 사회적 비용이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고령자가 운전을 할 수 있다면 최대한 지원을 하라는 정책 제안”이라고 말했습니다.

고령 운전자의 면허를 반납받는 데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이들의 안전한 운전을 지원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OECD가 2001년 발간한 고령자 이동권 관련 보고서의 표지OECD가 2001년 발간한 고령자 이동권 관련 보고서의 표지

이런 맥락에서 고령자의 운전 선택권을 더 넓힐 필요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정미경 한국도로교통공단 책임연구원은 “지금은 운전을 하거나, 면허를 반납하는 두 가지 옵션뿐이라 고령 운전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범위가 굉장히 좁다”며 “조건부 운전면허가 도입된다면 선택지가 넓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조건부 운전면허는 미국, 호주, 네덜란드, 독일 등에서 시행 중인데, 의학적 소견에 따라 고령 운전자에게 일정 시간대나 장소, 특정 날씨 조건에서만 운전하도록 제한적으로 면허를 발급하는 제도입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고속도로 운전 금지, 야간 운전제한, 특정 거리 내 운전의 조건을 부과한 면허를 발급하고 있습니다. 플로리다주와 텍사스주는 출퇴근 시간 운전, 특정 지역 내 운전을 조건부 면허로 제한합니다. 호주의 일부 주에서도 자택과 마트, 병원을 왕복할 때만 다닐 수 있는 운전 면허 제도를 운용 중입니다.

일본이 2년 전 도입한 ‘서포트카 한정 면허’도 조건부 면허로 볼 수 있습니다. 서포트카로 인정받은 차(2024년 8월 기준 11개 제조사 162개종)에 한해서만 운전이 허용되고 일반 차량은 운전할 수 없는 면허입니다.

게시판에 서포트카 한정 면허 홍보물이 붙어 있다.게시판에 서포트카 한정 면허 홍보물이 붙어 있다.

일본 언론 보도를 보면 2022년 기준 서포트카 한정 면허를 신청한 사람은 14명에 그치는 등 아직 신청자 수가 미미한 수준입니다. 그러나 고령 운전자가 면허를 반납해야 할지, 아니면 운전을 해도 좋을지 고민하는 상황에서 한정 면허는 중간 선택지가 될 수 있다는 긍정적 평가가 나옵니다.

경찰청도 조건부 면허제 도입을 검토하기 위한 연구용역을 올해 말까지 진행하고 있습니다.

한상진 교수는 “일부 언론에선 조건부 면허제를 마치 고령자의 운전 기회를 줄이는 제도로 보도하기도 했지만, 그런 제도가 아니다. 이미 정규 운전면허를 보유하는 것이 어려워진 분들이 희망하면 특정 조건에서 운전할 수 있도록 하는 면허 제도”라면서 “고령 운전자의 선택의 폭을 넓히는 차원에서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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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자리 수’ 면허 반납률…고령 운전자 대책, 남은 카드는?
    • 입력 2024-09-02 07: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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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전 처음 도입된 고령자 운전면허 자진 반납 지원금의 액수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서울시 동작구는 올해 운전면허증을 자진 반납하는 70세 이상 구민에게 34만 원 선불 교통카드를 제공하기로 했습니다. 서울시는 2019년부터 운전면허를 반납하는 70세 이상 시민에게 10만 원권 선불 교통카드를 지급하고 있는데, 구 차원에서 24만 원을 추가 지원하는 방식입니다.

서울시 강남구도 올해 9월부터 면허 반납 지원금을 20만 원(교통카드)으로 올려 지급한다고 밝혔습니다.

서울시의 고령자 운전면허 자진 반납 홍보물
최근엔 34만 원을 훌쩍 뛰어넘는 면허 반납 지원금도 가시권에 들어왔습니다. 울산 울주군의회에서 운전면허를 반납하는 65세 이상 고령 운전자에게 최고 60만 원을 지원할 수 있게 하는 조례안이 최근 소관 상임위 심사를 통과한 겁니다.

자치단체들이 이렇게 지원금을 올리는 건, 고령 운전자 교통사고가 해마다 늘며 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데 이들의 면허 반납률은 턱없이 낮은 수준이기 때문입니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65세 이상 운전자의 면허 반납률은 2.48%였습니다. 75세 이상 운전자의 경우 지난해 면허 반납률이 자치단체에 따라 최고 10.6%(부산)로 두 자릿수를 기록하기도 했지만, 전국 반납률은 7%대에 그쳤습니다.


정미경 한국도로교통공단 책임연구원은 “고령자 중 운전을 생업으로 하는 분이 많고, 특히 교통 인프라가 부족한 지역에서는 운전이 생활에 필수적이기 때문에 운전대를 놓을 수 없는 분들이 많다”면서 “운전면허 자진 반납이 실효성을 거두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지원금을 더 올려준다 하더라도, 면허 반납 건수를 크게 늘리기엔 역부족이라는 얘기입니다.

1998년부터 27년째 운전면허 자진 반납 제도를 시행 중인 일본에서도, 65세 이상의 면허 반납률은 여전히 2%대에 머물고 있습니다. 면허 반납 유도 정책만으로는 고령 운전자 사고를 예방하는 데 한계가 명확한 상황입니다.

한상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교통학 전공)는 “운전면허 자진 반납 제도는 고령자가 어느 시점에 이르면 운전을 그만둬야 한다는 메시지를 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면서도 “좀 더 다양한 정책을 펼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 고령 운전자 사고, 원인 파악도 제대로 안 돼

그렇다면 어떤 새로운 대책이 가능할까? 효과적인 대책을 세우려면 문제의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는 게 우선이겠죠. 고령 운전자의 교통사고를 효과적으로 예방하려면, 이들이 어쩌다 교통사고를 냈는지, 특히 어떤 요인 때문에 치명적인 사고가 났는지를 제대로 파악하는 게 필수적입니다.

하지만 현재 국내 고령 운전자 교통사고의 ‘원인’을 수집한 통계는 현재 찾아볼 수 없습니다

교통사고분석시스템(TASS) 누리집을 확인한 결과, 사고 유형이 뭔지, 어떤 법규를 위반한 사고인지, 사고가 났을 때의 시간대와 기상 상황은 어땠는지와 같은 통계만 검색됐습니다. 교통사고 통계를 담당하는 경찰청에 문의해도 “고령 운전자 사고 원인 관련 통계는 제공하고 있지 않다”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정미경 한국도로교통공단 책임연구원은 “현재 통계로는 고령 운전자 사고 원인 분석에 제한이 많은 상황”이라며 “페달 조작 실수, 운전 미숙, 약물 또는 졸음의 개입 등 사고의 인적 요인에 대한 통계를 조사하고 발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 일본, ‘5세 단위’로 나눠 고령 운전자 사고 원인 상세 공개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세계 1위인 일본은, 고령 운전자 교통사고 관련 통계를 상세히 발표하고 있습니다.

일본 내각부가 발간한 2024 교통안전백서를 보면 사망자가 나온 교통사고의 인적 요인을 연령별로 비교한 도표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래 그림)

고령자의 경우 65~69세, 70~74세, 75~79세, 80~84세, 85세 이상으로 연령을 세분화해 통계를 내고 있습니다.

교통사망사고의 인적 요인 비교(연령층별, 2013년~2023년 합계). 출처는 일본 내각부 교통안전백서 2024년판.
눈에 띄는 것은 핸들 또는 페달(브레이크, 액셀)을 부적절하게 조작해 일어나는 사고(操作不適, 연두색)의 비중이 연령 증가에 따라 커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65세 미만의 경우 관련 사고가 전체의 14.6%을 차지했지만, 85세 이상은 비중이 33.9%에 달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브레이크와 액셀을 잘못 밟아 일어난 사망사고 비율은 65세 미만에서 0.4%에 그친 반면, 80~84세에서는 8.2%로 20.5배가 됐습니다. 65세 이상과 미만을 놓고 비교해봐도 이 비율은 11.5배 차이가 납니다.

이같은 통계를 기초로 일본에서는 차에 ‘페달 오조작 방지 장치’ 설치를 확대하는 정책이 시행 중입니다. 고령 운전자가 브레이크를 밟으려다 순간의 착각으로 액셀을 잘못 밟으면서 대형 사고를 초래하는 것을 막기 위한 방안입니다.

일본의 한 자동차용품점에 페달 오조작 방지 장치(오발진 방지 시스템)가 진열돼 있다.
실제로 페달 오조작 방지 장치 등을 탑재한 이른바 ‘서포트카(サポートカー)’의 사고 건수가 일반 차량과 비교해 41.6% 감소했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습니다.

정확한 사고 원인 파악이 실효성 있는 대책으로까지 이어진 사례로 볼 수 있습니다.

■ 운전 능력, 65세 이상에서도 제각각…‘고위험 운전자’ 정밀히 가려내려면?

고령 운전자의 면허 갱신 조건을 강화하는 것은 많은 나라가 채택 중인 고령 운전자 사고 예방책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운전면허 갱신 주기를 나이에 따라 달리 정하고 있습니다. 65세 미만은 10년에 한 번씩 면허를 갱신하면 되지만, 65~75세 미만은 5년마다, 75세 이상은 3년마다 해야 합니다. 이에 더해 70세 이상은 시력, 청력 검사 등 정기 적성검사를 통과해야만 면허를 갱신할 수 있습니다. 75세 이상은 치매 선별검사도 받아야 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더 자주, 많은 절차를 거쳐야 면허를 갱신할 수 있는 셈입니다.

치매안심센터에서 한 노인이 치매 선별검사를 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고령 운전자 중에서도 사고 위험이 높은 운전자를 선별하기 위한 추가 조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합니다. 65세 이상에서도 개인별 운전 능력의 차이가 크게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대안은 고령 운전자의 면허 갱신 절차에 ‘운전 시험’을 포함시키는 방법입니다.

미국 일리노이주에서는 75세부터 면허 갱신 시 반드시 도로주행 시험을 통과해야 합니다. 호주와 뉴질랜드 일부 지역에서도 유사한 제도가 운영 중입니다.

가장 최근엔 2022년 일본에서 일부 고령 운전자의 면허 갱신 때 운전기능 시험을 추가했습니다. 75세 이상 운전자 중 최근 생일 160일 전 3년 동안 교통법규 위반으로 적발된 사람은 인지 검사뿐 아니라 운전기능 시험까지 통과해야 면허를 갱신할 수 있게 한 것입니다.

일본 치바현에 있는 ‘키사라즈 자동차학교’에서 고령자 대상 운전 강습을 하는 야마모토 요시카즈 씨는 75세 이상 운전자들이 자주 하는 실수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눈앞에 정지 신호기나 표식이 있지만 그런 곳에서 종종 브레이크를 늦게 밟거나 신호를 무시해 지나쳐 버리는 분, 중앙선을 물고 주행하는 분, 특히 안쪽 바퀴를 기준으로 불안하게 핸들을 조작해 도로 턱에 부딪히는 분들이 눈에 띕니다.”

일본의 한 고령 운전자가 면허 갱신에 대비해 운전 강습을 받고 있다.
개개인의 운전 적합성을 정확히 평가하기 위한 의학적 가이드라인 신설도 중요한 과제로 꼽힙니다.

정미경 한국도로교통공단 책임연구원은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등에서는 수십 년 전 운전 적합성 평가를 위한 의학적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면서 “근골격계, 순환기계, 정신과 등 다양한 분야의 질환별로 어느 수준까지는 운전을 해도 되는지, 운전이 어려운 분들은 어느 수준의 질환 상태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세부 지침이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일례로 영국에서는 이같은 의학적 가이드라인에 따라 기억력, 청력, 심장 질환, 파킨슨병, 간질 등의 의학적 상태가 심각하다고 판단된 사람에겐 운전을 중단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영국(왼쪽)과 호주(오른쪽) 정부에서 발간한 운전능력평가 의학 가이드라인 표지
■ “이동성, 고령자의 삶의 질과 직결”…운전 선택권 넓혀야

사고 예방뿐 아니라 고령자의 삶의 질 제고 차원에서도 고령 운전자 정책은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한상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교통학 전공)는 “OECD 보고서에 의하면 고령 운전자가 가급적 길게 운전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전체적인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다라는 정책 제언이 있다. 노인의 자유로운 이동이 사회적으로 더 이득이 된다는 얘기”라며 “고령자가 운전을 원하는 대로 못했을 경우 누군가 이동을 지원해야 하는 비용이 생기고, 이동을 제대로 하지 못하기 때문에 건강상의 문제도 빨리 생기게 되는 등 사회적 비용이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고령자가 운전을 할 수 있다면 최대한 지원을 하라는 정책 제안”이라고 말했습니다.

고령 운전자의 면허를 반납받는 데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이들의 안전한 운전을 지원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OECD가 2001년 발간한 고령자 이동권 관련 보고서의 표지
이런 맥락에서 고령자의 운전 선택권을 더 넓힐 필요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정미경 한국도로교통공단 책임연구원은 “지금은 운전을 하거나, 면허를 반납하는 두 가지 옵션뿐이라 고령 운전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범위가 굉장히 좁다”며 “조건부 운전면허가 도입된다면 선택지가 넓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조건부 운전면허는 미국, 호주, 네덜란드, 독일 등에서 시행 중인데, 의학적 소견에 따라 고령 운전자에게 일정 시간대나 장소, 특정 날씨 조건에서만 운전하도록 제한적으로 면허를 발급하는 제도입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고속도로 운전 금지, 야간 운전제한, 특정 거리 내 운전의 조건을 부과한 면허를 발급하고 있습니다. 플로리다주와 텍사스주는 출퇴근 시간 운전, 특정 지역 내 운전을 조건부 면허로 제한합니다. 호주의 일부 주에서도 자택과 마트, 병원을 왕복할 때만 다닐 수 있는 운전 면허 제도를 운용 중입니다.

일본이 2년 전 도입한 ‘서포트카 한정 면허’도 조건부 면허로 볼 수 있습니다. 서포트카로 인정받은 차(2024년 8월 기준 11개 제조사 162개종)에 한해서만 운전이 허용되고 일반 차량은 운전할 수 없는 면허입니다.

게시판에 서포트카 한정 면허 홍보물이 붙어 있다.
일본 언론 보도를 보면 2022년 기준 서포트카 한정 면허를 신청한 사람은 14명에 그치는 등 아직 신청자 수가 미미한 수준입니다. 그러나 고령 운전자가 면허를 반납해야 할지, 아니면 운전을 해도 좋을지 고민하는 상황에서 한정 면허는 중간 선택지가 될 수 있다는 긍정적 평가가 나옵니다.

경찰청도 조건부 면허제 도입을 검토하기 위한 연구용역을 올해 말까지 진행하고 있습니다.

한상진 교수는 “일부 언론에선 조건부 면허제를 마치 고령자의 운전 기회를 줄이는 제도로 보도하기도 했지만, 그런 제도가 아니다. 이미 정규 운전면허를 보유하는 것이 어려워진 분들이 희망하면 특정 조건에서 운전할 수 있도록 하는 면허 제도”라면서 “고령 운전자의 선택의 폭을 넓히는 차원에서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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