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탄 태워 만든 전기 싫어요”…헌법소원 낸 시민들

입력 2024.09.02 (14:31) 수정 2024.09.02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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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2일 ‘에너지 선택권’을 요구하며 헌법소원에 나선  시민들지난달 22일 ‘에너지 선택권’을 요구하며 헌법소원에 나선 시민들

대한민국 헌법은 모든 국민이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와 국민은 환경보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기본권으로서의 '환경권'을 규정한 겁니다.

지난달 29일 헌법재판소가 탄소중립기본법 일부 조항이 헌법에 불합치한다는 결정을 내린 것도, 헌법에 규정된 환경권을 충분히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는 시민들의 문제 제기를 받아들인 결과입니다.

기후위기가 점차 심각해지면서, 환경권에 대한 관심은 날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지난달 22일 헌법재판소에는 환경권과 관련한 또 하나의 헌법소원이 제기됐습니다.

■ "내가 쓸 에너지 종류, 내가 결정하게 해달라" 헌법소원

일반 시민들로 구성된 청구인 41명이 기후단체인 기후솔루션·소비자기후행동과 함께 헌법소원을 냈습니다.

청구인들은 "개인과 기업에 차별적 에너지 선택권을 규정한 전력거래계약에 관한 지침이 소비자의 기본권을 해친다"고 주장합니다.

이들의 요구를 쉽게 표현하면, "우리 집에서 석탄을 태워 만든 전기가 아니라, 재생에너지로 만들어진 전기를 쓰게 해달라", "내가 쓸 에너지 종류는 내가 결정하게 해달라"는 이야기입니다.

전력 소비자들이 재생에너지로 만들어진 전기를 선택할 수 없는 현재의 전력 소비 구조가 국민의 생명권과 건강권, 환경권과 자기결정권, 평등권 등을 침해한다는 주장입니다.


■ 독점적 전력 공급 구조…전력별 구매 '선택권' 없어

우리나라의 전력생산 구조는 전력의 생산과 송전, 판매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한국수력원자력이나 한국남동발전 같은 여러 공기업들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전력을 생산하면, 한국전력의 송배전망을 통해 소비자에게 전달(판매)됩니다.

한전이 전력생산자로부터 전력을 사들이고, 송전해서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일련의 일방향적 과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과정에서 소비자는 자신이 사용하는 전기가 화력발전으로 생산된 것인지, 수력이나 원자력 발전으로 생산된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마치 손님이 식당에서 음식을 사 먹는데 음식 재료의 원산지를 알 수 없는 것과 비슷합니다.

청구인들의 대리인으로 참여한 김건영 기후솔루션 변호사는 "우리가 공급받는 전기 중 60% 이상은 화석연료 발전을 통해 생산되며, 소비자가 재생에너지 전기를 선택적으로 소비할 수 없기 때문에 한전이 판매하는 화석연료 기반의 전기를 사용해야만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주택용 전력으로 재생에너지를 구매하고 선별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정부가 제도와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자택에 설치한 태양광 발전 패널을 살펴보는 오인숙 씨자택에 설치한 태양광 발전 패널을 살펴보는 오인숙 씨

■몸으로 느껴지는 '기후위기'에 헌법소원 나섰다.

헌법소원에 참여한 50대 오인숙 씨는 밤에 에어컨을 틀지 못하면 잠들지 못하는 극한 더위를 온몸으로 느끼면서 헌법소원에 나서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집에 태양광 발전 설비를 설치해 전력의 일부로 이용하면서 내가 쓰는 전기가 어디서 왔는지에 대해 더 고민하게 됐다고 합니다.

오 씨는 "나의 선택을 통해서 이런 깨끗한 전기, 친환경적인 전기를 사용하고 있다는 거에 대한 뿌듯함을 느꼈다"며, "소비자의 에너지 선택권이 보장된다면 일반인들도 더 많은 재생에너지를 선택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9살과 7살 두 자녀를 키우는 40대 이영석 씨는 아이들의 미래가 걱정돼 헌법소원에 참여했다고 전했습니다.

이 씨는 "제일 무서운 게 우리 세대에 1도가 올라가는 것보다 자녀 세대에 기후변화가 더 심각해지는 것"이라면서, "헌법소원이 전력 관련 업체들이 화석에너지를 재생에너지로 바꾸는데 촉진하는 역할을 하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말했습니다.

지난달 22일 헌법소원 청구에 앞서 피켓팅을 벌이고 있는 기후단체 회원들지난달 22일 헌법소원 청구에 앞서 피켓팅을 벌이고 있는 기후단체 회원들

■헌재 결론은 언제쯤?…"신속한 판단 필요"

정부가 탄소중립기본법을 통해 목표로 세운 온실가스 감축량이 국민의 기본권을 충분히 보호하는지 따져묻는 헌법소원에 대해 헌재가 '헌법불합치'라는 결론을 내리기까지 4년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해당 헌법소원이 진행됐던 지난 4년 동안 기후변화 시계는 점점 빨라지며 지구의 온도는 약 0.5도나 상승했습니다.

기후변화에 맞서 '에너지 선택권'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이번 헌법소원은 언제쯤 결론이 나올까요?

청구인들은 "폭염과 호우, 태풍 등 빈번해지는 기후위기 속에 헌재가 보다 신속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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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석탄 태워 만든 전기 싫어요”…헌법소원 낸 시민들
    • 입력 2024-09-02 14:31:34
    • 수정2024-09-02 14:3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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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2일 ‘에너지 선택권’을 요구하며 헌법소원에 나선  시민들
대한민국 헌법은 모든 국민이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와 국민은 환경보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기본권으로서의 '환경권'을 규정한 겁니다.

지난달 29일 헌법재판소가 탄소중립기본법 일부 조항이 헌법에 불합치한다는 결정을 내린 것도, 헌법에 규정된 환경권을 충분히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는 시민들의 문제 제기를 받아들인 결과입니다.

기후위기가 점차 심각해지면서, 환경권에 대한 관심은 날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지난달 22일 헌법재판소에는 환경권과 관련한 또 하나의 헌법소원이 제기됐습니다.

■ "내가 쓸 에너지 종류, 내가 결정하게 해달라" 헌법소원

일반 시민들로 구성된 청구인 41명이 기후단체인 기후솔루션·소비자기후행동과 함께 헌법소원을 냈습니다.

청구인들은 "개인과 기업에 차별적 에너지 선택권을 규정한 전력거래계약에 관한 지침이 소비자의 기본권을 해친다"고 주장합니다.

이들의 요구를 쉽게 표현하면, "우리 집에서 석탄을 태워 만든 전기가 아니라, 재생에너지로 만들어진 전기를 쓰게 해달라", "내가 쓸 에너지 종류는 내가 결정하게 해달라"는 이야기입니다.

전력 소비자들이 재생에너지로 만들어진 전기를 선택할 수 없는 현재의 전력 소비 구조가 국민의 생명권과 건강권, 환경권과 자기결정권, 평등권 등을 침해한다는 주장입니다.


■ 독점적 전력 공급 구조…전력별 구매 '선택권' 없어

우리나라의 전력생산 구조는 전력의 생산과 송전, 판매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한국수력원자력이나 한국남동발전 같은 여러 공기업들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전력을 생산하면, 한국전력의 송배전망을 통해 소비자에게 전달(판매)됩니다.

한전이 전력생산자로부터 전력을 사들이고, 송전해서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일련의 일방향적 과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과정에서 소비자는 자신이 사용하는 전기가 화력발전으로 생산된 것인지, 수력이나 원자력 발전으로 생산된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마치 손님이 식당에서 음식을 사 먹는데 음식 재료의 원산지를 알 수 없는 것과 비슷합니다.

청구인들의 대리인으로 참여한 김건영 기후솔루션 변호사는 "우리가 공급받는 전기 중 60% 이상은 화석연료 발전을 통해 생산되며, 소비자가 재생에너지 전기를 선택적으로 소비할 수 없기 때문에 한전이 판매하는 화석연료 기반의 전기를 사용해야만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주택용 전력으로 재생에너지를 구매하고 선별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정부가 제도와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자택에 설치한 태양광 발전 패널을 살펴보는 오인숙 씨
■몸으로 느껴지는 '기후위기'에 헌법소원 나섰다.

헌법소원에 참여한 50대 오인숙 씨는 밤에 에어컨을 틀지 못하면 잠들지 못하는 극한 더위를 온몸으로 느끼면서 헌법소원에 나서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집에 태양광 발전 설비를 설치해 전력의 일부로 이용하면서 내가 쓰는 전기가 어디서 왔는지에 대해 더 고민하게 됐다고 합니다.

오 씨는 "나의 선택을 통해서 이런 깨끗한 전기, 친환경적인 전기를 사용하고 있다는 거에 대한 뿌듯함을 느꼈다"며, "소비자의 에너지 선택권이 보장된다면 일반인들도 더 많은 재생에너지를 선택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9살과 7살 두 자녀를 키우는 40대 이영석 씨는 아이들의 미래가 걱정돼 헌법소원에 참여했다고 전했습니다.

이 씨는 "제일 무서운 게 우리 세대에 1도가 올라가는 것보다 자녀 세대에 기후변화가 더 심각해지는 것"이라면서, "헌법소원이 전력 관련 업체들이 화석에너지를 재생에너지로 바꾸는데 촉진하는 역할을 하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말했습니다.

지난달 22일 헌법소원 청구에 앞서 피켓팅을 벌이고 있는 기후단체 회원들
■헌재 결론은 언제쯤?…"신속한 판단 필요"

정부가 탄소중립기본법을 통해 목표로 세운 온실가스 감축량이 국민의 기본권을 충분히 보호하는지 따져묻는 헌법소원에 대해 헌재가 '헌법불합치'라는 결론을 내리기까지 4년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해당 헌법소원이 진행됐던 지난 4년 동안 기후변화 시계는 점점 빨라지며 지구의 온도는 약 0.5도나 상승했습니다.

기후변화에 맞서 '에너지 선택권'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이번 헌법소원은 언제쯤 결론이 나올까요?

청구인들은 "폭염과 호우, 태풍 등 빈번해지는 기후위기 속에 헌재가 보다 신속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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