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에서 음악소리가 들려’ 피아니스트, 선율을 만나다 [주말엔]

입력 2024.09.06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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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9일, 미국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열린 2024 지나 바카우어 국제 콩쿠르에서 한국인 피아니스트 선율(23)이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우승 이후 그는 전국을 다니며 리사이틀, 듀오 공연 등 많은 무대에 올라 바쁜 시간을 보냈습니다.

취재진은 지난 7월 20일 <더 하우스 콘서트>와, 8월 27일 서울 여의도 신영체임버홀에서의 <쇼팽 릴레이>공연을 앞두고 있는 피아니스트 선율과 2차례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인터뷰의 첫 질문은 그의 특이한 ‘이름’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 ‘선율’, 영어로 Melody(멜로디), 이름 자체가 ‘음악’인 피아니스트

음악가가 되길 원하는 열성적인 부모의 희망으로 지은 이름일까? 하는 추측에, 그의 대답은 의외였습니다.

"宣 (베풀 선) 律(음률, 가락 율), 어머니가 '아름답게 크라'는 의미를 담아 율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셨어요."

태생부터 음악을 할 수밖에 없을 것 같은, 매우 음악가적인 이름을 갖게 된 그는 '음율/가락을 베풀다'는 이름 풀이처럼, 지금 가장 바쁘게 음악을 전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악기가 피아노밖에 없는 줄 알았어요"

음악을 사랑하는 그의 부모는 자녀들과 함께 자주 클래식 공연장을 찾았다고 합니다.

2009년, 8살 소년 선율이 경험했던 두 번의 피아노 공연은 이후 꿈을 피아니스트로 정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밝혔습니다.

그 첫 번째 공연은 피아니스트 백건우가 김태형, 김준희, 김선욱 등과 함께 연주했던 4(포) 피아노 공연(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두 번째 공연은 지휘자 김대진이 지휘하는 수원시향과 피아니스트 김선욱이 협연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전곡 연주(경기아트센터, 당시 경기문화의 전당)입니다.

이 두 번의 공연을 통해 8살 선율은 피아니스트가 멋진 직업이라는 걸 깨달았다고 합니다.


■ 심각하게 기권을 고민했던 지나 바카우어 국제 콩쿠르

콩쿠르가 열리는 미국 솔트레이크로 가는 길은 험난했습니다.

선율이 머물던 프랑스에선 때마침 총파업으로 대중교통이 멈춰 제시간에 공항에 못 갈 뻔했고, 겨우 도착한 공항에서는 비행기가 타기 직전에 취소가 되었습니다.

급하게 대체 항공편을 알아보고, 어렵게 도착한 미국에서 그는 마음을 비우고 오직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소나타 8번을 무대에 올리겠다는 목표 하나만을 생각했다고 합니다.

러시아 작곡가 프로코피예프가 2차 세계대전 중에 작곡한 피아노 소나타 6, 7, 8번(일명 전쟁소나타) 중 마지막 곡인 8번은 피아니스트에게 체력과 집중력을 요구하는 어려운 곡으로 알려져 콩쿠르에서 자주 연주되는 곡은 아닙니다.

"사실,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소나타 8번은 싫어하는 곡이었어요"

프랑스에서 선생님의 추천으로 치게 된 곡이었지만, 처음과 달리 어느 순간 너무 마음에 와닿는 곡이 되었다고 합니다.

"무리한 프로그램이었지만, 이 곡만큼은 꼭 무대에 올리고 싶었다"던 선율.

그의 연주는 관객의 열띤 호응을 받았고, 1등인 금메달뿐만 아니라 청중상, 학생 심사위원상까지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제 곧 미국 무대를 앞두고 있습니다.

1등을 했지만, 콩쿠르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그는 "‘정답이 없는’ 음악으로 서로 경쟁하고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이 큰 스트레스였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저를 알릴 수 있는 방법 또한 콩쿠르밖에 없다"라며 "많은 연주를 하고 싶기 때문에 좋아하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콩쿠르에 나가야 한다"고 담담히 말했습니다.


■ 후회하고 싶지 않았어요

원래 독일에서 유학하기 위해 모든 준비를 다 마쳤던 그는 독일 학교 지원 직전, 갑자기 프랑스로 가야겠다고 마음을 바꿨습니다.

그는 현재 프랑스 파리 에꼴노르말 음악원에서 올리비에 갸르동을 사사 중입니다.

파리에서 전성기를 보낸 많은 음악가, 예술가들처럼 그도 직접 파리를 경험해 보고 싶어 부모님과 선생님을 설득했습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온전히 스스로 결정하고, 그 결정에 책임을 지고 싶었다는 그는 눈만 돌리면 곳곳이 볼거리인 파리 시내를 정처 없이 걷는 게 취미라고 말했습니다.


■ 저는 21세기 사람

클래식 음악을 하는 사람은 클래식만 들을까?

"저는 스텔라장이랑 잔나비를 좋아해요, 아이돌 음악은 잘 모르지만, 공부한다는 생각으로 듣고 있어요"라며 2000년에 태어난 21세기 사람이라고 강조하며 말했습니다.

그는 솔로 연주뿐만 아니라 금호 영재 동기이자 한국예술종합학교 동기이기도 한 피아니스트 배재성과 함께 '하랑듀오'를 결성, 젊음이 느껴지는 순수하고, 실험적인 음악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하랑듀오는 지난 8월 19일, 대학로 예술가의 집에서 열린 더 하우스콘서트에서 하루에 베토벤 교향곡 9곡 전곡을 두 대의 피아노로 연주하기도 했습니다.

장장 7시간이 넘는 긴 공연이었습니다.

장시간 동안 연주하는 연주자들뿐만 아니라 마룻바닥에서 그들의 음악을 들은 관객들에게도 도전적인 무대였습니다.

"혼자 연주하는 건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연습도 혼자하고 무대에서도 혼자인 건 외로워요"라며, 친구와 함께하는 듀오 연주가 마음이 편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다양한 연주자들과의 합주도 즐겨 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오는 10월, 경기아트센터에서 그는 콩쿠르에서 선보였던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소나타 8번을 연주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초심을 잃지 않고 공부를 하며 연주를 해나가겠다"고 각오를 밝힌 그.

피아니스트 선율에게 콩쿠르 우승은 종착점이 아니라 시작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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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름에서 음악소리가 들려’ 피아니스트, 선율을 만나다 [주말엔]
    • 입력 2024-09-06 21:00:19
    주말엔
지난 6월 29일, 미국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열린 2024 지나 바카우어 국제 콩쿠르에서 한국인 피아니스트 선율(23)이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우승 이후 그는 전국을 다니며 리사이틀, 듀오 공연 등 많은 무대에 올라 바쁜 시간을 보냈습니다.

취재진은 지난 7월 20일 <더 하우스 콘서트>와, 8월 27일 서울 여의도 신영체임버홀에서의 <쇼팽 릴레이>공연을 앞두고 있는 피아니스트 선율과 2차례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인터뷰의 첫 질문은 그의 특이한 ‘이름’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 ‘선율’, 영어로 Melody(멜로디), 이름 자체가 ‘음악’인 피아니스트

음악가가 되길 원하는 열성적인 부모의 희망으로 지은 이름일까? 하는 추측에, 그의 대답은 의외였습니다.

"宣 (베풀 선) 律(음률, 가락 율), 어머니가 '아름답게 크라'는 의미를 담아 율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셨어요."

태생부터 음악을 할 수밖에 없을 것 같은, 매우 음악가적인 이름을 갖게 된 그는 '음율/가락을 베풀다'는 이름 풀이처럼, 지금 가장 바쁘게 음악을 전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악기가 피아노밖에 없는 줄 알았어요"

음악을 사랑하는 그의 부모는 자녀들과 함께 자주 클래식 공연장을 찾았다고 합니다.

2009년, 8살 소년 선율이 경험했던 두 번의 피아노 공연은 이후 꿈을 피아니스트로 정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밝혔습니다.

그 첫 번째 공연은 피아니스트 백건우가 김태형, 김준희, 김선욱 등과 함께 연주했던 4(포) 피아노 공연(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두 번째 공연은 지휘자 김대진이 지휘하는 수원시향과 피아니스트 김선욱이 협연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전곡 연주(경기아트센터, 당시 경기문화의 전당)입니다.

이 두 번의 공연을 통해 8살 선율은 피아니스트가 멋진 직업이라는 걸 깨달았다고 합니다.


■ 심각하게 기권을 고민했던 지나 바카우어 국제 콩쿠르

콩쿠르가 열리는 미국 솔트레이크로 가는 길은 험난했습니다.

선율이 머물던 프랑스에선 때마침 총파업으로 대중교통이 멈춰 제시간에 공항에 못 갈 뻔했고, 겨우 도착한 공항에서는 비행기가 타기 직전에 취소가 되었습니다.

급하게 대체 항공편을 알아보고, 어렵게 도착한 미국에서 그는 마음을 비우고 오직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소나타 8번을 무대에 올리겠다는 목표 하나만을 생각했다고 합니다.

러시아 작곡가 프로코피예프가 2차 세계대전 중에 작곡한 피아노 소나타 6, 7, 8번(일명 전쟁소나타) 중 마지막 곡인 8번은 피아니스트에게 체력과 집중력을 요구하는 어려운 곡으로 알려져 콩쿠르에서 자주 연주되는 곡은 아닙니다.

"사실,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소나타 8번은 싫어하는 곡이었어요"

프랑스에서 선생님의 추천으로 치게 된 곡이었지만, 처음과 달리 어느 순간 너무 마음에 와닿는 곡이 되었다고 합니다.

"무리한 프로그램이었지만, 이 곡만큼은 꼭 무대에 올리고 싶었다"던 선율.

그의 연주는 관객의 열띤 호응을 받았고, 1등인 금메달뿐만 아니라 청중상, 학생 심사위원상까지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제 곧 미국 무대를 앞두고 있습니다.

1등을 했지만, 콩쿠르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그는 "‘정답이 없는’ 음악으로 서로 경쟁하고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이 큰 스트레스였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저를 알릴 수 있는 방법 또한 콩쿠르밖에 없다"라며 "많은 연주를 하고 싶기 때문에 좋아하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콩쿠르에 나가야 한다"고 담담히 말했습니다.


■ 후회하고 싶지 않았어요

원래 독일에서 유학하기 위해 모든 준비를 다 마쳤던 그는 독일 학교 지원 직전, 갑자기 프랑스로 가야겠다고 마음을 바꿨습니다.

그는 현재 프랑스 파리 에꼴노르말 음악원에서 올리비에 갸르동을 사사 중입니다.

파리에서 전성기를 보낸 많은 음악가, 예술가들처럼 그도 직접 파리를 경험해 보고 싶어 부모님과 선생님을 설득했습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온전히 스스로 결정하고, 그 결정에 책임을 지고 싶었다는 그는 눈만 돌리면 곳곳이 볼거리인 파리 시내를 정처 없이 걷는 게 취미라고 말했습니다.


■ 저는 21세기 사람

클래식 음악을 하는 사람은 클래식만 들을까?

"저는 스텔라장이랑 잔나비를 좋아해요, 아이돌 음악은 잘 모르지만, 공부한다는 생각으로 듣고 있어요"라며 2000년에 태어난 21세기 사람이라고 강조하며 말했습니다.

그는 솔로 연주뿐만 아니라 금호 영재 동기이자 한국예술종합학교 동기이기도 한 피아니스트 배재성과 함께 '하랑듀오'를 결성, 젊음이 느껴지는 순수하고, 실험적인 음악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하랑듀오는 지난 8월 19일, 대학로 예술가의 집에서 열린 더 하우스콘서트에서 하루에 베토벤 교향곡 9곡 전곡을 두 대의 피아노로 연주하기도 했습니다.

장장 7시간이 넘는 긴 공연이었습니다.

장시간 동안 연주하는 연주자들뿐만 아니라 마룻바닥에서 그들의 음악을 들은 관객들에게도 도전적인 무대였습니다.

"혼자 연주하는 건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연습도 혼자하고 무대에서도 혼자인 건 외로워요"라며, 친구와 함께하는 듀오 연주가 마음이 편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다양한 연주자들과의 합주도 즐겨 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오는 10월, 경기아트센터에서 그는 콩쿠르에서 선보였던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소나타 8번을 연주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초심을 잃지 않고 공부를 하며 연주를 해나가겠다"고 각오를 밝힌 그.

피아니스트 선율에게 콩쿠르 우승은 종착점이 아니라 시작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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