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최고령 서포터와의 이별…“푸르고 파란 하늘에서 영면하세요”

입력 2024.09.1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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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손을 꼭 잡고 수원월드컵경기장으로 향하는 김원영-류정숙 노부부의 표정엔 언제나 설렘이 가득했다.

김원영 할아버지는 수원 이야기만 나오면 자기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수원 삼성이 창단할 때부터 팬이었어요. 실제 경기를 보러 다닌 건 20년 정도 돼요. 김호 감독 시절부터 다녔으니깐…. 매 경기 보러 다닌 지는 10년이 넘었어요. 80세가 넘어서부터 개근 서포터가 됐어요. 100경기 넘게 직관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이전에는 외국 원정도 빠짐없이 모두 보러 다녔어요. AFC 경기를 보러 이란 원정도 간 적이 있어요."

할아버지는 수원이라는 팀 덕분에 힘겹고 지루했던 코로나 팬데믹도 이겨낼 수 있었다.

"제가 지금 실버타운에 살고 있는데 코로나 땐 면회 외출도 안 되고 해서 텔레비전 밖에 볼 게 없었어요. 그중에서도 축구, 그중에서도 수원 삼성이 나오는 경기는 새벽 1시건 2시건 다 챙겨보며 살았어요. 수원 삼성이 없었으면 코로나를 무슨 재미로 극복했나 싶어요. 수원 삼성 축구단에 대해서 무척 고맙게 생각합니다."


김원영 할아버지 평생의 반려자 류정숙 할머니도 경기장을 찾을 때마다 젊은이들의 기운을 얻는 기분이라며 활짝 웃었다.

"이 양반이 한 번도 안 빠지려고 해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아유…. 저도 이 양반 쫓아서 빅버드 다닌 지 8, 9년 정도 된 것 같아요. 시간 내면 사위, 손자, 손녀 다 데리고 와서 가족의 행사처럼 식구들이 경기장에 다 왔어요."

이렇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류 할머니와 함께 빅버드에서 수원 선수들에게 힘을 불어넣었던 1931년생 수원의 최고령 서포터 김원영 할아버지가 지난 주말 눈을 감았다. 향년 93세.


늘 빅버드의 골대 뒤 한 켠을 지키던 김 할아버지의 별세 소식에 수원 구단 관계자와 팬들의 애도 물결이 이어졌다. 박경훈 수원 단장을 비롯해 수원의 서포터 프렌테 트리콜로는 근조 화환을 보내 김원영 할아버지의 가는 길을 추모했다.

팬들은 "승격 보고 가셨으면 좋았을 텐데…. 멀리서나마 수원 지켜봐 주세요. 고인의 영면을 기도합니다", "푸르고 파란 하늘에서 영면에 드시길 바랍니다", "함께 할 수 있어 영광이였습니다. 어르신" 등 더는 빅버드에서 볼 수 없는 김 할아버지에게 추모의 메시지를 전했다.

지병을 앓고 있던 김원영 할아버지는 건강 탓에 지난 시즌 중반부터 경기장을 찾지 못했다. 그러나 병상에서도 수원을 향한 사랑은 계속됐다. 그 사이 수원은 2부리그로 떨어지는 충격의 강등을 겪었고, 감독도 바뀌었다. 많은 변화 속에서도 수원을 향한 김 할아버지의 응원은 멈추지 않았다. 눈을 감기 직전까지도 수원 경기를 챙겼다.

김 할아버지의 손자 김윤환 씨는 할아버지의 유일한 낙은 수원 경기 보는 것이었다며 투병 생활의 가장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병상에서 돌아가시기 며칠 전까지도 휴대폰으로 수원 경기 하이라이트 보셨어요. 2부리그에서 수원이 만나는 상대 팀 정보도 저한테 많이 물어보셨고요. 2부리그 떨어져도 응원해야지 별 수 있냐고 하셨거든요. 우리까지 등을 돌리면 안 된다고 하시면서요. 경기장을 못 가시니깐 유일한 취미를 직접 못 보게 되시니 많이 아쉬워하셨어요. 할아버지의 마지막 소원은 수원이 트로피를 드는 거였어요.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걸 꼭 봐야 하는데' 라고, 늘 말씀하셨거든요. 수원 팬들에게 멋있었던 분으로 기억됐으면 좋겠습니다."

브렌트퍼드의 74년 만의 1부리그 승격에 감격의 눈물을 쏟았던 브라이언 갓프리 씨도 최근 세상을 떠났다.브렌트퍼드의 74년 만의 1부리그 승격에 감격의 눈물을 쏟았던 브라이언 갓프리 씨도 최근 세상을 떠났다.

지난 2021-22시즌, 무려 74년 만에 1부리그에 올라온 잉글랜드 프로축구 브렌트퍼드 홈 경기장엔 비틀즈의 'Hey Jude'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백발의 노인의 볼엔 어린아이처럼 눈물이 흘렀다. 브라이언 갓프리 씨는 이제 하늘에서 브렌트퍼드의 프리미어리그 잔류를 위해 응원을 건네고 있다.

어느 최고령 서포터와의 이별은 축구는 단순한 공놀이가 아니라, 누군가에겐 삶의 전부이자 마지막까지 함께한 친구였다는 사실을 다시금 일깨워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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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느 최고령 서포터와의 이별…“푸르고 파란 하늘에서 영면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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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손을 꼭 잡고 수원월드컵경기장으로 향하는 김원영-류정숙 노부부의 표정엔 언제나 설렘이 가득했다.

김원영 할아버지는 수원 이야기만 나오면 자기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수원 삼성이 창단할 때부터 팬이었어요. 실제 경기를 보러 다닌 건 20년 정도 돼요. 김호 감독 시절부터 다녔으니깐…. 매 경기 보러 다닌 지는 10년이 넘었어요. 80세가 넘어서부터 개근 서포터가 됐어요. 100경기 넘게 직관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이전에는 외국 원정도 빠짐없이 모두 보러 다녔어요. AFC 경기를 보러 이란 원정도 간 적이 있어요."

할아버지는 수원이라는 팀 덕분에 힘겹고 지루했던 코로나 팬데믹도 이겨낼 수 있었다.

"제가 지금 실버타운에 살고 있는데 코로나 땐 면회 외출도 안 되고 해서 텔레비전 밖에 볼 게 없었어요. 그중에서도 축구, 그중에서도 수원 삼성이 나오는 경기는 새벽 1시건 2시건 다 챙겨보며 살았어요. 수원 삼성이 없었으면 코로나를 무슨 재미로 극복했나 싶어요. 수원 삼성 축구단에 대해서 무척 고맙게 생각합니다."


김원영 할아버지 평생의 반려자 류정숙 할머니도 경기장을 찾을 때마다 젊은이들의 기운을 얻는 기분이라며 활짝 웃었다.

"이 양반이 한 번도 안 빠지려고 해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아유…. 저도 이 양반 쫓아서 빅버드 다닌 지 8, 9년 정도 된 것 같아요. 시간 내면 사위, 손자, 손녀 다 데리고 와서 가족의 행사처럼 식구들이 경기장에 다 왔어요."

이렇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류 할머니와 함께 빅버드에서 수원 선수들에게 힘을 불어넣었던 1931년생 수원의 최고령 서포터 김원영 할아버지가 지난 주말 눈을 감았다. 향년 93세.


늘 빅버드의 골대 뒤 한 켠을 지키던 김 할아버지의 별세 소식에 수원 구단 관계자와 팬들의 애도 물결이 이어졌다. 박경훈 수원 단장을 비롯해 수원의 서포터 프렌테 트리콜로는 근조 화환을 보내 김원영 할아버지의 가는 길을 추모했다.

팬들은 "승격 보고 가셨으면 좋았을 텐데…. 멀리서나마 수원 지켜봐 주세요. 고인의 영면을 기도합니다", "푸르고 파란 하늘에서 영면에 드시길 바랍니다", "함께 할 수 있어 영광이였습니다. 어르신" 등 더는 빅버드에서 볼 수 없는 김 할아버지에게 추모의 메시지를 전했다.

지병을 앓고 있던 김원영 할아버지는 건강 탓에 지난 시즌 중반부터 경기장을 찾지 못했다. 그러나 병상에서도 수원을 향한 사랑은 계속됐다. 그 사이 수원은 2부리그로 떨어지는 충격의 강등을 겪었고, 감독도 바뀌었다. 많은 변화 속에서도 수원을 향한 김 할아버지의 응원은 멈추지 않았다. 눈을 감기 직전까지도 수원 경기를 챙겼다.

김 할아버지의 손자 김윤환 씨는 할아버지의 유일한 낙은 수원 경기 보는 것이었다며 투병 생활의 가장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병상에서 돌아가시기 며칠 전까지도 휴대폰으로 수원 경기 하이라이트 보셨어요. 2부리그에서 수원이 만나는 상대 팀 정보도 저한테 많이 물어보셨고요. 2부리그 떨어져도 응원해야지 별 수 있냐고 하셨거든요. 우리까지 등을 돌리면 안 된다고 하시면서요. 경기장을 못 가시니깐 유일한 취미를 직접 못 보게 되시니 많이 아쉬워하셨어요. 할아버지의 마지막 소원은 수원이 트로피를 드는 거였어요.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걸 꼭 봐야 하는데' 라고, 늘 말씀하셨거든요. 수원 팬들에게 멋있었던 분으로 기억됐으면 좋겠습니다."

브렌트퍼드의 74년 만의 1부리그 승격에 감격의 눈물을 쏟았던 브라이언 갓프리 씨도 최근 세상을 떠났다.
지난 2021-22시즌, 무려 74년 만에 1부리그에 올라온 잉글랜드 프로축구 브렌트퍼드 홈 경기장엔 비틀즈의 'Hey Jude'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백발의 노인의 볼엔 어린아이처럼 눈물이 흘렀다. 브라이언 갓프리 씨는 이제 하늘에서 브렌트퍼드의 프리미어리그 잔류를 위해 응원을 건네고 있다.

어느 최고령 서포터와의 이별은 축구는 단순한 공놀이가 아니라, 누군가에겐 삶의 전부이자 마지막까지 함께한 친구였다는 사실을 다시금 일깨워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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