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의로 영상 신문하고 녹음파일 증거로 유죄 선고…대법 “위법”

입력 2024.10.03 (10:18) 수정 2024.10.03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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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적으로 영상 증인신문이 허용되는 경우가 아닌데도 임의로 영상 증인신문을 진행해 녹음 파일을 유죄의 증거로 사용한 하급심 판결이 대법원에서 파기됐습니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사기 혐의로 기소된 A 씨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지난달 12일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서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오늘(3일) 밝혔습니다.

앞서 대학 교수인 A 씨는 학교에 허위 서류를 제출해 ‘유령 조교’ 2명을 등록하고 조교 명의 장학금 742만 원을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하지만 A 씨는 재판에서 장학금 247만 원을 허위 수령한 B 씨 진술을 증거로 쓰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이 경우 형사소송법상 B 씨의 진술을 증거로 쓰려면, 원칙적으로 B 씨가 직접 법정에 출석해 같은 내용의 증언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B 씨는 해외 체류 중이라는 이유로 신문에 응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1심 재판부는 B 씨 관련 범행에 대해서는 증명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하고, 나머지 범행은 유죄로 인정해 벌금 700만 원을 선고했습니다.

항소심에서 검찰은 B 씨에 대한 영상 증인신문을 요청했습니다. 재판부는 이를 수용해 2020년 9월 화상 장치를 이용한 증인신문이 성사됐습니다.

항소심 법원은 이후 증인신문 당시 녹음한 파일과 그에 대한 녹취록을 증거로 A 씨의 혐의를 전부 유죄로 인정해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했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판결을 뒤집고 재판을 서울서부지법으로 파기 환송했습니다.

대법원은 “옛 형사소송법은 ‘피고인과 대면해 진술하는 경우 심리적인 부담으로 정신의 평온을 현저히 잃을 우려가 있는 자’ 등 제한적인 경우에만 영상 신문을 허용하는데, B 씨는 이런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원심은 형사소송법이 규정한 증인에 대한 증거조사 방식인 ‘신문’에 의하지 않고 증인으로서 부담해야 할 각종 의무를 부과하지 않고 별다른 법적 근거 없이 증거조사를 한 다음 진술의 형식적 변형(녹취파일과 녹취서 등본)에 해당하는 증거를 검사로부터 제출받는 우회적인 방식을 취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같은 방식은 일종의 편법으로, 증거재판주의 원칙에 어긋나기 때문에 유죄의 증거로 쓸 수 없다”며 사건을 돌려보냈습니다.

한편 옛 형사소송법은 영상 재판을 엄격히 제한했으나 2021년 8월 코로나19를 계기로 개정됐습니다. 현행 형사소송법은 교통이나 건강 상태 등의 이유로 직접 출석하기 어려운 증인에 대해서도 영상 신문을 허용합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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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의로 영상 신문하고 녹음파일 증거로 유죄 선고…대법 “위법”
    • 입력 2024-10-03 10:18:54
    • 수정2024-10-03 10:19:26
    사회
법적으로 영상 증인신문이 허용되는 경우가 아닌데도 임의로 영상 증인신문을 진행해 녹음 파일을 유죄의 증거로 사용한 하급심 판결이 대법원에서 파기됐습니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사기 혐의로 기소된 A 씨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지난달 12일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서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오늘(3일) 밝혔습니다.

앞서 대학 교수인 A 씨는 학교에 허위 서류를 제출해 ‘유령 조교’ 2명을 등록하고 조교 명의 장학금 742만 원을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하지만 A 씨는 재판에서 장학금 247만 원을 허위 수령한 B 씨 진술을 증거로 쓰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이 경우 형사소송법상 B 씨의 진술을 증거로 쓰려면, 원칙적으로 B 씨가 직접 법정에 출석해 같은 내용의 증언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B 씨는 해외 체류 중이라는 이유로 신문에 응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1심 재판부는 B 씨 관련 범행에 대해서는 증명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하고, 나머지 범행은 유죄로 인정해 벌금 700만 원을 선고했습니다.

항소심에서 검찰은 B 씨에 대한 영상 증인신문을 요청했습니다. 재판부는 이를 수용해 2020년 9월 화상 장치를 이용한 증인신문이 성사됐습니다.

항소심 법원은 이후 증인신문 당시 녹음한 파일과 그에 대한 녹취록을 증거로 A 씨의 혐의를 전부 유죄로 인정해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했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판결을 뒤집고 재판을 서울서부지법으로 파기 환송했습니다.

대법원은 “옛 형사소송법은 ‘피고인과 대면해 진술하는 경우 심리적인 부담으로 정신의 평온을 현저히 잃을 우려가 있는 자’ 등 제한적인 경우에만 영상 신문을 허용하는데, B 씨는 이런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원심은 형사소송법이 규정한 증인에 대한 증거조사 방식인 ‘신문’에 의하지 않고 증인으로서 부담해야 할 각종 의무를 부과하지 않고 별다른 법적 근거 없이 증거조사를 한 다음 진술의 형식적 변형(녹취파일과 녹취서 등본)에 해당하는 증거를 검사로부터 제출받는 우회적인 방식을 취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같은 방식은 일종의 편법으로, 증거재판주의 원칙에 어긋나기 때문에 유죄의 증거로 쓸 수 없다”며 사건을 돌려보냈습니다.

한편 옛 형사소송법은 영상 재판을 엄격히 제한했으나 2021년 8월 코로나19를 계기로 개정됐습니다. 현행 형사소송법은 교통이나 건강 상태 등의 이유로 직접 출석하기 어려운 증인에 대해서도 영상 신문을 허용합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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