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튼을 누르시겠습니까?” 논란의 ‘조력 사망 캡슐’

입력 2024.10.26 (22:08) 수정 2024.10.26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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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캡슐에 들어가 버튼을 누르면 5분 안에 사망에 이르는 이른바 조력 사망 캡슐.

한 달 전 스위스에서 처음 가동돼 60대 여성이 숨졌습니다.

스위스는 조력 사망을 허용하는 대표 국가 중 하나인데 이번 캡슐에 대해선 위법하다는 판단을 내리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습니다.

스위스 현지에서 송락규 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독일과 국경을 접한 스위스 북부 샤프하우젠주의 한 마을.

인구 천 명이 채 안 되는 이 작은 마을에 한 달 전 세간의 이목이 쏠렸습니다.

이른바 ‘조력 사망 캡슐’이 처음으로 사용됐기 때문입니다.

캡슐을 이용해 숨진 이는 중병을 앓고 있던 60대 미국인 여성이었습니다.

[아델 하이트/가명/주민 : "그 사람들은 제 친구로부터 이 장소를 빌렸습니다. 그것(조력 사망 캡슐)을 이런 곳까지 가져와서 그런 행위를 해야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지금 서 있는 이곳이 조력 사망 캡슐이 처음으로 사용된 곳입니다.

현재는 경찰이 해당 캡슐을 압수해 가 현장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스위스 당국은 해당 캡슐이 허가 없이 사용됐다며 관계자들을 자살 방조 혐의로 체포했습니다.

공상과학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보라색 캡슐, 앞서 스위스 단체 더 라스트 리조트는 조력 사망 캡슐 '사르코'를 공개했습니다.

버튼을 누르면 30초도 안 돼 공기 중 산소량이 급격히 떨어지고 질소 농도가 짙어져 5분 안에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플로리안 윌렛/조력 사망 캡슐 지원 단체 공동대표 : "저는 (사르코를 이용하는 것이) 밤에 자신의 침대에서 꿈을 꾸며 잠에 드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스위스에서 한 해 동안 조력 사망으로 숨진 이들은 2017년 천 명을 넘어섰고 최근엔 1,500여 명에 달하는 등 해마다 늘고 있습니다.

외국인의 조력 사망까지 허용하는 등 비교적 존엄사에 관대한 스위스.

하지만 이번 캡슐 사용에 대해선 격렬한 논쟁이 일었습니다.

기존 조력 사망 방식과는 확연히 달랐기 때문입니다.

대상자 선정이 자의적이었고, 기존 약물 주입이 아닌 질소가스 주입 방식을 사용했습니다.

[쇼즐린 나이트하르트/찬성 : "당사자들이 정말 조력 사망에 대해 심사숙고하고 작별 인사를 하고 가고자 한다면 나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본인의 선택이라면 왜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네요."]

[까트린 가세흐/반대 : "지금까지는 (조력 사망 때) 항상 의사가 동행을 했고 당사자 스스로가 죽음에 대해 결정했는데 이 기기는 어떻게 작동되는지 잘 모르는 상태라 (우려됩니다)."]

스위스에선 말기 암 환자 같은 고통이 극심한 이들에게만 조력 사망을 실시합니다.

신청자가 워낙 많고 심사 절차도 까다롭다 보니 희망자들은 보통 몇 년 전부터 준비합니다.

취재진은 스위스 현지에서 조력 사망을 앞둔 한 프랑스인을 만났습니다.

[재키 가바도스/조력 사망 신청자 : "새로운 것이 아니고 이미 오래전부터 생각해 온 것입니다. 제가 배우자와 사별한 상태라는 것도 말해야겠죠. 그래서 (결정이) 더 쉬웠습니다."]

자녀들은 아버지의 뜻을 존중한다면서도 다가올 임종의 순간을 떠올리자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크리스토프 가바도스/조력 사망 신청자 아들 : "힘든 것은 당신이 미리 날짜와 시간이 다가오는 것을 안다는 겁니다."]

조력 사망 시행 당일 환자는 가족들 곁에서 스스로 약물을 주입합니다.

[에리카 프레지크/조력사망 지원 단체 '라이프서클' 대표 : "(의사는) 이곳에다가 (조력 사망) 약물을 넣고 그다음에 오직 환자만이 이것을 열고 만질 수 있습니다."]

스위스의 기존 조력사망 지원 단체들은 캡슐 사용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질소 가스 주입 방식이 고통을 주지 않는지 의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았고, 우리 돈 몇만 원의 저렴한 비용 역시 과장된 홍보 수단일 뿐이라는 겁니다.

[에리카 프레지크/조력 사망 지원 단체 '라이프서클' 대표 : "저는 캡슐 사용 비용이 20스위스프랑(약 3만 원)이라는 것을 믿지 않습니다. 그들이 국제적인 (사망) 서류를 발급하고 이런 일들을 어떻게 한다는지 모르겠습니다."]

최근 스위스 의학협회는 조력 사망 시행 전 반드시 의사와 면담을 거치도록 관련 지침을 강화했습니다.

[앙리 부나모/스위스 의학협회 대표 : "의사는 스스로 환자가 조력 사망 의지가 있다는 것에 설득당해야 합니다. 만약에 환자와 직접 만나지 않는다면 환자의 의지에 대해 어떻게 알 수가 있을까요?"]

조력 사망 캡슐 단체 측은 캡슐 사용을 중단한다면서도 지금까지 신청자만 371명에 달한다고 밝혔습니다.

존엄한 죽음을 돕는 발명품이다, 너무 쉽게 죽음을 조장한다 등 조력 사망 캡슐을 둘러싼 논쟁은 현재진행형입니다.

스위스 베른에서 송락규입니다.

촬영:김은정/영상편집:오태규/자료조사:김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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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버튼을 누르시겠습니까?” 논란의 ‘조력 사망 캡슐’
    • 입력 2024-10-26 22:08:33
    • 수정2024-10-26 22:2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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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캡슐에 들어가 버튼을 누르면 5분 안에 사망에 이르는 이른바 조력 사망 캡슐.

한 달 전 스위스에서 처음 가동돼 60대 여성이 숨졌습니다.

스위스는 조력 사망을 허용하는 대표 국가 중 하나인데 이번 캡슐에 대해선 위법하다는 판단을 내리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습니다.

스위스 현지에서 송락규 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독일과 국경을 접한 스위스 북부 샤프하우젠주의 한 마을.

인구 천 명이 채 안 되는 이 작은 마을에 한 달 전 세간의 이목이 쏠렸습니다.

이른바 ‘조력 사망 캡슐’이 처음으로 사용됐기 때문입니다.

캡슐을 이용해 숨진 이는 중병을 앓고 있던 60대 미국인 여성이었습니다.

[아델 하이트/가명/주민 : "그 사람들은 제 친구로부터 이 장소를 빌렸습니다. 그것(조력 사망 캡슐)을 이런 곳까지 가져와서 그런 행위를 해야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지금 서 있는 이곳이 조력 사망 캡슐이 처음으로 사용된 곳입니다.

현재는 경찰이 해당 캡슐을 압수해 가 현장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스위스 당국은 해당 캡슐이 허가 없이 사용됐다며 관계자들을 자살 방조 혐의로 체포했습니다.

공상과학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보라색 캡슐, 앞서 스위스 단체 더 라스트 리조트는 조력 사망 캡슐 '사르코'를 공개했습니다.

버튼을 누르면 30초도 안 돼 공기 중 산소량이 급격히 떨어지고 질소 농도가 짙어져 5분 안에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플로리안 윌렛/조력 사망 캡슐 지원 단체 공동대표 : "저는 (사르코를 이용하는 것이) 밤에 자신의 침대에서 꿈을 꾸며 잠에 드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스위스에서 한 해 동안 조력 사망으로 숨진 이들은 2017년 천 명을 넘어섰고 최근엔 1,500여 명에 달하는 등 해마다 늘고 있습니다.

외국인의 조력 사망까지 허용하는 등 비교적 존엄사에 관대한 스위스.

하지만 이번 캡슐 사용에 대해선 격렬한 논쟁이 일었습니다.

기존 조력 사망 방식과는 확연히 달랐기 때문입니다.

대상자 선정이 자의적이었고, 기존 약물 주입이 아닌 질소가스 주입 방식을 사용했습니다.

[쇼즐린 나이트하르트/찬성 : "당사자들이 정말 조력 사망에 대해 심사숙고하고 작별 인사를 하고 가고자 한다면 나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본인의 선택이라면 왜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네요."]

[까트린 가세흐/반대 : "지금까지는 (조력 사망 때) 항상 의사가 동행을 했고 당사자 스스로가 죽음에 대해 결정했는데 이 기기는 어떻게 작동되는지 잘 모르는 상태라 (우려됩니다)."]

스위스에선 말기 암 환자 같은 고통이 극심한 이들에게만 조력 사망을 실시합니다.

신청자가 워낙 많고 심사 절차도 까다롭다 보니 희망자들은 보통 몇 년 전부터 준비합니다.

취재진은 스위스 현지에서 조력 사망을 앞둔 한 프랑스인을 만났습니다.

[재키 가바도스/조력 사망 신청자 : "새로운 것이 아니고 이미 오래전부터 생각해 온 것입니다. 제가 배우자와 사별한 상태라는 것도 말해야겠죠. 그래서 (결정이) 더 쉬웠습니다."]

자녀들은 아버지의 뜻을 존중한다면서도 다가올 임종의 순간을 떠올리자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크리스토프 가바도스/조력 사망 신청자 아들 : "힘든 것은 당신이 미리 날짜와 시간이 다가오는 것을 안다는 겁니다."]

조력 사망 시행 당일 환자는 가족들 곁에서 스스로 약물을 주입합니다.

[에리카 프레지크/조력사망 지원 단체 '라이프서클' 대표 : "(의사는) 이곳에다가 (조력 사망) 약물을 넣고 그다음에 오직 환자만이 이것을 열고 만질 수 있습니다."]

스위스의 기존 조력사망 지원 단체들은 캡슐 사용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질소 가스 주입 방식이 고통을 주지 않는지 의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았고, 우리 돈 몇만 원의 저렴한 비용 역시 과장된 홍보 수단일 뿐이라는 겁니다.

[에리카 프레지크/조력 사망 지원 단체 '라이프서클' 대표 : "저는 캡슐 사용 비용이 20스위스프랑(약 3만 원)이라는 것을 믿지 않습니다. 그들이 국제적인 (사망) 서류를 발급하고 이런 일들을 어떻게 한다는지 모르겠습니다."]

최근 스위스 의학협회는 조력 사망 시행 전 반드시 의사와 면담을 거치도록 관련 지침을 강화했습니다.

[앙리 부나모/스위스 의학협회 대표 : "의사는 스스로 환자가 조력 사망 의지가 있다는 것에 설득당해야 합니다. 만약에 환자와 직접 만나지 않는다면 환자의 의지에 대해 어떻게 알 수가 있을까요?"]

조력 사망 캡슐 단체 측은 캡슐 사용을 중단한다면서도 지금까지 신청자만 371명에 달한다고 밝혔습니다.

존엄한 죽음을 돕는 발명품이다, 너무 쉽게 죽음을 조장한다 등 조력 사망 캡슐을 둘러싼 논쟁은 현재진행형입니다.

스위스 베른에서 송락규입니다.

촬영:김은정/영상편집:오태규/자료조사:김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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