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진, 한국에서 찍힌 사진일까요?

입력 2024.11.02 (11:03) 수정 2024.11.02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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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 한국에서 찍힌 사진일까요?

단풍이 든 나무들, 그리고 어디서 본 듯한 해변과 건물들. 우리에게 익숙한 광경이죠. 이맘때 우리나라 어딘가에 있을법한 분위기입니다. 한국에서 찍힌 사진일까요?

(밑에 내용을 읽기 전에 다시 한번 생각해 보세요.)

보자마자 눈치채신 분도 계실 테지만, 아닌 분들도 계실 겁니다. 좌측 하단에 적혀 있는 '어도비 파이어플라이'.

 ‘어도비 파이어플라이’. 어도비라는 회사의 생성형 인공지능 프로그램. ‘어도비 파이어플라이’. 어도비라는 회사의 생성형 인공지능 프로그램.

네, 그렇습니다. 이 사진은 어도비라는 회사의 생성형 인공지능 프로그램 파이어플라이로 만든 사진입니다. 기자가 '한국에 있는 풍경을 사진으로 만들어줘'라고 입력하니 나온 사진입니다.

갑자기 이런 질문을 왜 했는지 궁금하실 텐데요. 이번 기사와 관련이 있습니다.


■ "인터넷에서 접한 것 중에 진짜가 아닌 게 있을 수도 있다"

SNS를 통해 많은 정보를 접하는 시대입니다. 뉴스·광고·예능·스포츠 등 모든 콘텐츠가 SNS·커뮤니티 등을 통해 유통되고 있죠. 그런데 SNS나 커뮤니티 등에서 유통되는 정보들, 얼마나 믿으시나요? 범상치 않은 게시물이라도 친구가 공유해주면 무조건 믿으시나요? ' 이게 진짜인가?' 의심해 본 적이 있으실까요? 아니면 고민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공유하시나요?

초등학교 때부터 이런 문제에 대해 고민할 수 있게 교육하는 나라가 있습니다. '인터넷에서 접한 것 중에 진짜가 아닌 게 있을 수도 있다'고 교육하는 나라, 바로 유럽 북쪽에 위치한 핀란드입니다.

핀란드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모든 과정에서 미디어 리터러시(미디어 문해력, 미디어에서 접한 정보를 식별하고 맥락을 이해하는 능력) 수업을 진행합니다. 미디어 리터러시 과목이 따로 있는 건 아니고, 국어·사회·역사·환경·미술 등에 접목해 미디어 리터러시 수업을 진행합니다.

 핀란드 에스포에 있는 사우나라흐티초등학교에서 미디어 리티러시 수업이 진행 중인 모습. 핀란드 에스포에 있는 사우나라흐티초등학교에서 미디어 리티러시 수업이 진행 중인 모습.

앞서 '한국에서 찍힌 사진일까요?'라는 질문 기억하시나요. 핀란드 에스포에 있는 사우나라흐티초등학교의 사라 빌홀라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한 질문에서 착안한 물음입니다.

사우나라흐티초등학교 사라 빌홀라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제시한 사진. 사라 빌홀라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이 사진이 핀란드에서 촬영된 사진이 맞는지를 토론하게 했다.사우나라흐티초등학교 사라 빌홀라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제시한 사진. 사라 빌홀라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이 사진이 핀란드에서 촬영된 사진이 맞는지를 토론하게 했다.

취재진은 지난 9월 11일, 사우나라흐티 초등학교를 방문해 사라 빌홀라 선생님의 수업을 참관했습니다. 사라 빌홀라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위의 사진을 제시한 뒤 '핀란드에서 촬영한 사진이 맞는지'를 물었는데요. 많은 학생이 핀란드에서 찍힌 사진으로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역시, 사진 좌측 하단에는 '어도비 파이어플라이' 로고가 박혀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래 사진들은 어떤 특징이 있을까요?

핀란드 헬싱키미디어고등학교 야르꼬 리헤리스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제시한 사진.핀란드 헬싱키미디어고등학교 야르꼬 리헤리스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제시한 사진.

이 사진들은 핀란드 헬싱키미디어고등학교 야르꼬 리헤리스 역사·사회 선생님이 취재진이 방문한 지난 9월 16일 수업에서 학생들에게 제시한 문제인데요.

눈치를 채셨나요?

모두 남자만 그려져 있습니다. 야르꼬 리헤리스 선생님은 "인공지능 명령어로 성별을 넣지 않고 핀란드 사람을 그려 달라고 했다"며 "그런데 다 밝은 피부의 중년 남성만 그렸다"고 수업에서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핀란드에는 전통 여성 캐릭터들도 있는데, 인공지능은 남자만 제시한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인공지능이 만든 결과물을 아무 비판 없이 받아들이면 안 된다는 걸 강조한 수업이었습니다.

민나 하르마넨 핀란드 교육위원회 선임교육위원이 KBS 취재진과 인터뷰하는 모습.민나 하르마넨 핀란드 교육위원회 선임교육위원이 KBS 취재진과 인터뷰하는 모습.

그럼, 핀란드는 언제부터 이런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의무화했을까요?

민나 하르마넨 핀란드 교육위원회 선임교육위원은 "10년 전부터 '멀티 리터러시'라는 단어가 핵심 교육 역량에 들어갔다"고 설명했습니다.

멀티 리터러시는 일종의 다중 매체에 대한 리터러시라고 볼 수 있는데요. 기존 TV나 영화 등에서만 접할 수 있었던 미디어 콘텐츠를 이제는 다양한 플랫폼에서 접할 수 있고, 또 누구나 생산해서 전파할 수 있기 때문에 덩달아 리터러시 개념도 넓어진 겁니다.

민나 하르마넨 선임교육위원은 " 우리는 교육에서 현재 이슈를 다루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며 "아이들과 청소년들이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현상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하다. 오늘날 미디어는 아이들의 삶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청소년들이 요즘 매우 흔한 가짜 정보, 잘못된 정보를 접했을 때 더 잘 식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직접 정보를 생산하면서 키우는 미디어 리터러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은 전형적인 수업의 형태로만 이뤄지지 않습니다. 핀란드는 다양한 형태로 청소년의 미디어 리터러시를 배양합니다. 특히 직접 취재하고, 뉴스를 만들어 보면서 정보를 식별하는 방법을 익힌다고 합니다.

이 중심에는 핀란드의 공영방송 YLE가 있습니다.

YLE는 핀란드의 학교로 직접 나가 미디어 교실을 진행하는데요. 이 수업은 핀란드 내에서 인기가 많다고 합니다.

YLE 영상기자 미까 바릴라가 핀란드 탐페레 부오레스종합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촬영에 관해 설명하는 모습.YLE 영상기자 미까 바릴라가 핀란드 탐페레 부오레스종합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촬영에 관해 설명하는 모습.

YLE 취재기자 아누 후르메(좌)가 핀란드 탐페레 부오레스종합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기사에 관해 설명하는 모습.YLE 취재기자 아누 후르메(좌)가 핀란드 탐페레 부오레스종합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기사에 관해 설명하는 모습.

취재진은 지난 9월 13일, 핀란드 탐페레 부오레스종합학교에서 열린 YLE 기자들의 수업을 참관했습니다. 학생들이 스포츠 등을 주제로 직접 친구들을 인터뷰하고, 촬영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일일 선생님으로 수업을 한 아누 후르메 기자 YLE 기자는 "학생들은 기자 업무 체험을 통해 뉴스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 수 있다"며 "뉴스 제작 과정을 알게 되면 미디어 리터러시 자체가 좋아질 거라고 생각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핀란드의 건강한 언론 환경을 위해) 본업의 기자로서 팩트 체크를 열심히 해야 하는 건 당연하고, 아이들이 훌륭한 미디어 리더로 자랄 수 있게도 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부오레스종합학교의 시레 또이보넨 학생이 KBS 취재진과 인터뷰하는 모습.부오레스종합학교의 시레 또이보넨 학생이 KBS 취재진과 인터뷰하는 모습.

수업을 들은 8학년(우리나라 중2) 시레 또이보넨 학생은 "새로운 경험"이었다며 "직접 장비들을 활용해 촬영하는 게 흥미로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평소에도 YLE를 신뢰하고, YLE와 신문에서 정보를 주로 얻는다"며 "가짜 정보에 속고 싶지 않다"고 밝혔습니다.

<청소년의 소리> 구성원들이 핀란드 유명 잡지 <세우라>에 실을 기사 주제를 논의하는 모습.<청소년의 소리> 구성원들이 핀란드 유명 잡지 <세우라>에 실을 기사 주제를 논의하는 모습.

핀란드의 미디어 리터러시 훈련은 학교 밖에서도 이어집니다. 청소년들이 학교 밖에서 모여 직접 취재하며 기사를 쓰기도 하는데요. 핀란드 헬싱키에 있는 <청소년의 소리> 구성원들이 대표적입니다.

지난 9월 16일, 취재진은 핀란드 헬싱키에 있는 <청소년의 소리>에 방문했습니다. 취재진이 방문한 날에는 핀란드 유명 잡지 <세우라> 특집호에 실을 기사 주제를 논의하는 날이었습니다. 청소년 20명 정도가 모였습니다.

'청소년의 우울증', '청소년의 정치 양극화' 등 청소년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내용의 주제들이 주로 논의됐습니다. 이런 논의를 여러 번 거친 뒤 최종 주제를 선정하고, 취재·제작에 나선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청소년의 소리>는 1년에 몇 개 정도의 기사를 낼까요?

개인마다 차이가 있다고 하는데요. 적게는 1년에 2개, 많게는 10개 가까이 기사를 작성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작성한 기사들은 잡지는 물론, 핀란드의 유명 일간지 <헬싱키 사노맛>이나 방송사 MTV 등에도 실린다고 합니다.

 올해 1월 실시된 핀란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유타 우르필라이넨(Jutta Urpilainen)후보자를 <청소년의 소리> 에딧 휴스따르 학생이 인터뷰하는 모습. <청소년의 소리> 제공. 올해 1월 실시된 핀란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유타 우르필라이넨(Jutta Urpilainen)후보자를 <청소년의 소리> 에딧 휴스따르 학생이 인터뷰하는 모습. <청소년의 소리> 제공.

2년 넘게 <청소년의 소리>에서 활동 중인 에딧 휴스따르는 지난 핀란드 대통령 선거에서 대통령 후보를 직접 인터뷰하기도 했습니다.

에딧 휴스따르는 "기사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기사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과정을 배운다"며 "직접 기사를 작성하고, 인터뷰를 하면서 정치인들이 질문에 어떻게 대답하는지, 전문가나 다른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어떤 차이가 있는지 알게 됐다"고 밝혔습니다.

■"미디어 리터러시는 곧 생존이자 복지"

사실 핀란드는 유럽 41개국을 대상으로 한 미디어 리티러시 조사에서 5년 연속 1위(2023년, 오픈소사이어티)를 기록한 국가입니다.

핀란드는 왜 이렇게 미디어 리터러시에 진심인 걸까요?

먼저, 핀란드의 지정학적 위치가 미디어 리터러시의 소중함을 알게 했다는 목소리들이 있습니다.

핀란드는 서쪽으로는 스웨덴, 동쪽으로는 러시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데요. 오랜 기간 두 강대국의 지배를 받아오다 1917년, 러시아의 지배에서 벗어나며 비로소 독립 국가가 됐습니다. 오랜 지배를 받으며 강대국의 프로파간다(선전) 영향을 받았고, 진실한 정보의 소중함을 깨닫게 됐다는 겁니다. 아울러 이런 역사들이 오늘날 정치와 결합해 허위 정보로 유통될 수 있다고도 합니다.

헬싱키미디어고등학교의 야르꼬 리헤리스 선생님은 "특히 오늘날의 분쟁과 전쟁 속에서 역사와 정치는 매우 중요한 주제"라며 "몇몇 정치 지도자들은 역사를 오용해 권력을 유지하거나 전쟁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 매우 위험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핀란드)는 작은 나라다"며 " 항상 주의하고 조심해야 하고, 우리가 믿고 의지해야 하는 건 지식과 과학, 그리고 사실들"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안네 레빠야르비 하가헬리아 대학 미디어 학과 교수가 KBS 취재진과 인터뷰하고 있는 모습. 안네 레빠야르비 하가헬리아 대학 미디어 학과 교수가 KBS 취재진과 인터뷰하고 있는 모습.

무엇보다, 공공복지를 위해 미디어 리터러시를 키워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안네 레빠야르비 하가헬리아대학교 미디어 학과 교수는 "누군가 '저널리즘이나 미디어가 날 대표하지 않는다'고 느끼면, 그 사람은 그 사회의 일부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다"며 "그러면 가짜 정보나 허위 정보에 더 쉽게 노출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래서 우리가 평등에 대해 이야기 할 때, 복지 국가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때 미디어 리터러시를 얘기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안네 교수는 "'Nordic media welfare(북유럽 미디어 복지)'라는 용어가 있다"며 "북유럽이 복지가 유명하다는 점에서 출발하는데, 미디어의 맥락에서도 북유럽 국가들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 미디어 리터러시 지수와 언론 자유 지수에서 북유럽 복지 국가들이 상위에 있다"고 밝혔습니다.

실제 앞서 밝힌 오픈소사이어티의 조사에 따르면 핀란드에 이어 덴마크, 노르웨이, 에스토니아, 스웨덴이 미디어 리터러시 지수 상위권에 자리 잡았습니다. 모두 북유럽에 위치하며 좋은 복지로 유명한 나라들입니다.

핀란드는 이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학교뿐만 아니라, 어른들로도 대상을 차츰차츰 넓히고 있습니다. 접하는 정보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식별하고, 맥락을 이해하는 건 비단 학생들에게만 필요한 능력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새로운 미디어 플랫폼을 어려워하는 어른들에게 리터러시 능력이 더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레오 페깔라 KAVI(핀란드 국립시청각연구소) 부원장이 KBS 취재진과 인터뷰하고 있는 모습.레오 페깔라 KAVI(핀란드 국립시청각연구소) 부원장이 KBS 취재진과 인터뷰하고 있는 모습.

레오 페깔라 핀란드 국립시청각연구소(KAVI) 부원장은 어른들의 업무 외적인 시간, 여가 시간 등을 이용해 미디어 리터러시 능력을 배양할 수 있게 한다며 "'어른들'에는 성인 노동 인구뿐만 아니라 점점 증가하는 노년층도 포함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공공도서관이나 지역 NGO 단체들과 협업을 많이 한다"며 "단체들이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할 수 있게 관련 자료들을 많이 만든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우리나라도 미디어 리터러시 능력 배양과 관련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2022 개정 교육과정'에 '미디어 리터러시'를 포함하면서 사실상 의무교육이 됐습니다. 올해부터는 초등학교 1학년·2학년 학생들이 국어 시간에 '매체' 영역을 통해 관련 수업을 듣게 됩니다. 내년부터는 초등학교 3학년·
4학년, 이후 고등학생들까지 점차 대상이 확대됩니다.

전국미디어리터러시교사협회(KATOM)의 박유신 협회장이 KBS 취재진에게 미디어 리터러시 수업 자료를 보여주고 있는 모습.전국미디어리터러시교사협회(KATOM)의 박유신 협회장이 KBS 취재진에게 미디어 리터러시 수업 자료를 보여주고 있는 모습.

전국미디어리터러시교사협회(KATOM)의 박유신 협회장(서울 삼광초등학교 교사)은 "미디어 리터러시 역량은 단지 미디어를 활용하는 기술이나 뉴스를 비판적으로 읽는 정도의 수준이 아니"라며 " 미디어의 사용과 또 내가 미디어 안에서 살아가는 시민으로서의 복합적인 지식과 기능, 태도"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개인적인 관점에서는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은 공교육 혼자서만 해나갈 수 있는 건 아니다"며 방송사 등 여러 주체가 함께해 이끌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더 보다] 31회 <가짜 정보와의 전쟁>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KBS 홈페이지
https://vod.kbs.co.kr/index.html?source=episode&sname=vod&stype=vod&program_code=T2024-0017&program_id=PS-2024165197-01-000&broadcast_complete_yn=N&local_station_code=00§ion_code=05§ion_sub_code=06
-유튜브
https://youtu.be/OOBH9nGMAlY?si=fsaQSj6QbXWi1r33

※본 보도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 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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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사진, 한국에서 찍힌 사진일까요?
    • 입력 2024-11-02 11:03:27
    • 수정2024-11-02 15: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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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 한국에서 찍힌 사진일까요?

단풍이 든 나무들, 그리고 어디서 본 듯한 해변과 건물들. 우리에게 익숙한 광경이죠. 이맘때 우리나라 어딘가에 있을법한 분위기입니다. 한국에서 찍힌 사진일까요?

(밑에 내용을 읽기 전에 다시 한번 생각해 보세요.)

보자마자 눈치채신 분도 계실 테지만, 아닌 분들도 계실 겁니다. 좌측 하단에 적혀 있는 '어도비 파이어플라이'.

 ‘어도비 파이어플라이’. 어도비라는 회사의 생성형 인공지능 프로그램.
네, 그렇습니다. 이 사진은 어도비라는 회사의 생성형 인공지능 프로그램 파이어플라이로 만든 사진입니다. 기자가 '한국에 있는 풍경을 사진으로 만들어줘'라고 입력하니 나온 사진입니다.

갑자기 이런 질문을 왜 했는지 궁금하실 텐데요. 이번 기사와 관련이 있습니다.


■ "인터넷에서 접한 것 중에 진짜가 아닌 게 있을 수도 있다"

SNS를 통해 많은 정보를 접하는 시대입니다. 뉴스·광고·예능·스포츠 등 모든 콘텐츠가 SNS·커뮤니티 등을 통해 유통되고 있죠. 그런데 SNS나 커뮤니티 등에서 유통되는 정보들, 얼마나 믿으시나요? 범상치 않은 게시물이라도 친구가 공유해주면 무조건 믿으시나요? ' 이게 진짜인가?' 의심해 본 적이 있으실까요? 아니면 고민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공유하시나요?

초등학교 때부터 이런 문제에 대해 고민할 수 있게 교육하는 나라가 있습니다. '인터넷에서 접한 것 중에 진짜가 아닌 게 있을 수도 있다'고 교육하는 나라, 바로 유럽 북쪽에 위치한 핀란드입니다.

핀란드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모든 과정에서 미디어 리터러시(미디어 문해력, 미디어에서 접한 정보를 식별하고 맥락을 이해하는 능력) 수업을 진행합니다. 미디어 리터러시 과목이 따로 있는 건 아니고, 국어·사회·역사·환경·미술 등에 접목해 미디어 리터러시 수업을 진행합니다.

 핀란드 에스포에 있는 사우나라흐티초등학교에서 미디어 리티러시 수업이 진행 중인 모습.
앞서 '한국에서 찍힌 사진일까요?'라는 질문 기억하시나요. 핀란드 에스포에 있는 사우나라흐티초등학교의 사라 빌홀라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한 질문에서 착안한 물음입니다.

사우나라흐티초등학교 사라 빌홀라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제시한 사진. 사라 빌홀라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이 사진이 핀란드에서 촬영된 사진이 맞는지를 토론하게 했다.
취재진은 지난 9월 11일, 사우나라흐티 초등학교를 방문해 사라 빌홀라 선생님의 수업을 참관했습니다. 사라 빌홀라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위의 사진을 제시한 뒤 '핀란드에서 촬영한 사진이 맞는지'를 물었는데요. 많은 학생이 핀란드에서 찍힌 사진으로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역시, 사진 좌측 하단에는 '어도비 파이어플라이' 로고가 박혀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래 사진들은 어떤 특징이 있을까요?

핀란드 헬싱키미디어고등학교 야르꼬 리헤리스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제시한 사진.
이 사진들은 핀란드 헬싱키미디어고등학교 야르꼬 리헤리스 역사·사회 선생님이 취재진이 방문한 지난 9월 16일 수업에서 학생들에게 제시한 문제인데요.

눈치를 채셨나요?

모두 남자만 그려져 있습니다. 야르꼬 리헤리스 선생님은 "인공지능 명령어로 성별을 넣지 않고 핀란드 사람을 그려 달라고 했다"며 "그런데 다 밝은 피부의 중년 남성만 그렸다"고 수업에서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핀란드에는 전통 여성 캐릭터들도 있는데, 인공지능은 남자만 제시한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인공지능이 만든 결과물을 아무 비판 없이 받아들이면 안 된다는 걸 강조한 수업이었습니다.

민나 하르마넨 핀란드 교육위원회 선임교육위원이 KBS 취재진과 인터뷰하는 모습.
그럼, 핀란드는 언제부터 이런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의무화했을까요?

민나 하르마넨 핀란드 교육위원회 선임교육위원은 "10년 전부터 '멀티 리터러시'라는 단어가 핵심 교육 역량에 들어갔다"고 설명했습니다.

멀티 리터러시는 일종의 다중 매체에 대한 리터러시라고 볼 수 있는데요. 기존 TV나 영화 등에서만 접할 수 있었던 미디어 콘텐츠를 이제는 다양한 플랫폼에서 접할 수 있고, 또 누구나 생산해서 전파할 수 있기 때문에 덩달아 리터러시 개념도 넓어진 겁니다.

민나 하르마넨 선임교육위원은 " 우리는 교육에서 현재 이슈를 다루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며 "아이들과 청소년들이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현상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하다. 오늘날 미디어는 아이들의 삶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청소년들이 요즘 매우 흔한 가짜 정보, 잘못된 정보를 접했을 때 더 잘 식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직접 정보를 생산하면서 키우는 미디어 리터러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은 전형적인 수업의 형태로만 이뤄지지 않습니다. 핀란드는 다양한 형태로 청소년의 미디어 리터러시를 배양합니다. 특히 직접 취재하고, 뉴스를 만들어 보면서 정보를 식별하는 방법을 익힌다고 합니다.

이 중심에는 핀란드의 공영방송 YLE가 있습니다.

YLE는 핀란드의 학교로 직접 나가 미디어 교실을 진행하는데요. 이 수업은 핀란드 내에서 인기가 많다고 합니다.

YLE 영상기자 미까 바릴라가 핀란드 탐페레 부오레스종합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촬영에 관해 설명하는 모습.
YLE 취재기자 아누 후르메(좌)가 핀란드 탐페레 부오레스종합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기사에 관해 설명하는 모습.
취재진은 지난 9월 13일, 핀란드 탐페레 부오레스종합학교에서 열린 YLE 기자들의 수업을 참관했습니다. 학생들이 스포츠 등을 주제로 직접 친구들을 인터뷰하고, 촬영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일일 선생님으로 수업을 한 아누 후르메 기자 YLE 기자는 "학생들은 기자 업무 체험을 통해 뉴스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 수 있다"며 "뉴스 제작 과정을 알게 되면 미디어 리터러시 자체가 좋아질 거라고 생각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핀란드의 건강한 언론 환경을 위해) 본업의 기자로서 팩트 체크를 열심히 해야 하는 건 당연하고, 아이들이 훌륭한 미디어 리더로 자랄 수 있게도 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부오레스종합학교의 시레 또이보넨 학생이 KBS 취재진과 인터뷰하는 모습.
수업을 들은 8학년(우리나라 중2) 시레 또이보넨 학생은 "새로운 경험"이었다며 "직접 장비들을 활용해 촬영하는 게 흥미로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평소에도 YLE를 신뢰하고, YLE와 신문에서 정보를 주로 얻는다"며 "가짜 정보에 속고 싶지 않다"고 밝혔습니다.

<청소년의 소리> 구성원들이 핀란드 유명 잡지 <세우라>에 실을 기사 주제를 논의하는 모습.
핀란드의 미디어 리터러시 훈련은 학교 밖에서도 이어집니다. 청소년들이 학교 밖에서 모여 직접 취재하며 기사를 쓰기도 하는데요. 핀란드 헬싱키에 있는 <청소년의 소리> 구성원들이 대표적입니다.

지난 9월 16일, 취재진은 핀란드 헬싱키에 있는 <청소년의 소리>에 방문했습니다. 취재진이 방문한 날에는 핀란드 유명 잡지 <세우라> 특집호에 실을 기사 주제를 논의하는 날이었습니다. 청소년 20명 정도가 모였습니다.

'청소년의 우울증', '청소년의 정치 양극화' 등 청소년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내용의 주제들이 주로 논의됐습니다. 이런 논의를 여러 번 거친 뒤 최종 주제를 선정하고, 취재·제작에 나선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청소년의 소리>는 1년에 몇 개 정도의 기사를 낼까요?

개인마다 차이가 있다고 하는데요. 적게는 1년에 2개, 많게는 10개 가까이 기사를 작성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작성한 기사들은 잡지는 물론, 핀란드의 유명 일간지 <헬싱키 사노맛>이나 방송사 MTV 등에도 실린다고 합니다.

 올해 1월 실시된 핀란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유타 우르필라이넨(Jutta Urpilainen)후보자를 <청소년의 소리> 에딧 휴스따르 학생이 인터뷰하는 모습. <청소년의 소리> 제공.
2년 넘게 <청소년의 소리>에서 활동 중인 에딧 휴스따르는 지난 핀란드 대통령 선거에서 대통령 후보를 직접 인터뷰하기도 했습니다.

에딧 휴스따르는 "기사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기사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과정을 배운다"며 "직접 기사를 작성하고, 인터뷰를 하면서 정치인들이 질문에 어떻게 대답하는지, 전문가나 다른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어떤 차이가 있는지 알게 됐다"고 밝혔습니다.

■"미디어 리터러시는 곧 생존이자 복지"

사실 핀란드는 유럽 41개국을 대상으로 한 미디어 리티러시 조사에서 5년 연속 1위(2023년, 오픈소사이어티)를 기록한 국가입니다.

핀란드는 왜 이렇게 미디어 리터러시에 진심인 걸까요?

먼저, 핀란드의 지정학적 위치가 미디어 리터러시의 소중함을 알게 했다는 목소리들이 있습니다.

핀란드는 서쪽으로는 스웨덴, 동쪽으로는 러시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데요. 오랜 기간 두 강대국의 지배를 받아오다 1917년, 러시아의 지배에서 벗어나며 비로소 독립 국가가 됐습니다. 오랜 지배를 받으며 강대국의 프로파간다(선전) 영향을 받았고, 진실한 정보의 소중함을 깨닫게 됐다는 겁니다. 아울러 이런 역사들이 오늘날 정치와 결합해 허위 정보로 유통될 수 있다고도 합니다.

헬싱키미디어고등학교의 야르꼬 리헤리스 선생님은 "특히 오늘날의 분쟁과 전쟁 속에서 역사와 정치는 매우 중요한 주제"라며 "몇몇 정치 지도자들은 역사를 오용해 권력을 유지하거나 전쟁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 매우 위험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핀란드)는 작은 나라다"며 " 항상 주의하고 조심해야 하고, 우리가 믿고 의지해야 하는 건 지식과 과학, 그리고 사실들"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안네 레빠야르비 하가헬리아 대학 미디어 학과 교수가 KBS 취재진과 인터뷰하고 있는 모습.
무엇보다, 공공복지를 위해 미디어 리터러시를 키워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안네 레빠야르비 하가헬리아대학교 미디어 학과 교수는 "누군가 '저널리즘이나 미디어가 날 대표하지 않는다'고 느끼면, 그 사람은 그 사회의 일부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다"며 "그러면 가짜 정보나 허위 정보에 더 쉽게 노출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래서 우리가 평등에 대해 이야기 할 때, 복지 국가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때 미디어 리터러시를 얘기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안네 교수는 "'Nordic media welfare(북유럽 미디어 복지)'라는 용어가 있다"며 "북유럽이 복지가 유명하다는 점에서 출발하는데, 미디어의 맥락에서도 북유럽 국가들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 미디어 리터러시 지수와 언론 자유 지수에서 북유럽 복지 국가들이 상위에 있다"고 밝혔습니다.

실제 앞서 밝힌 오픈소사이어티의 조사에 따르면 핀란드에 이어 덴마크, 노르웨이, 에스토니아, 스웨덴이 미디어 리터러시 지수 상위권에 자리 잡았습니다. 모두 북유럽에 위치하며 좋은 복지로 유명한 나라들입니다.

핀란드는 이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학교뿐만 아니라, 어른들로도 대상을 차츰차츰 넓히고 있습니다. 접하는 정보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식별하고, 맥락을 이해하는 건 비단 학생들에게만 필요한 능력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새로운 미디어 플랫폼을 어려워하는 어른들에게 리터러시 능력이 더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레오 페깔라 KAVI(핀란드 국립시청각연구소) 부원장이 KBS 취재진과 인터뷰하고 있는 모습.
레오 페깔라 핀란드 국립시청각연구소(KAVI) 부원장은 어른들의 업무 외적인 시간, 여가 시간 등을 이용해 미디어 리터러시 능력을 배양할 수 있게 한다며 "'어른들'에는 성인 노동 인구뿐만 아니라 점점 증가하는 노년층도 포함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공공도서관이나 지역 NGO 단체들과 협업을 많이 한다"며 "단체들이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할 수 있게 관련 자료들을 많이 만든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우리나라도 미디어 리터러시 능력 배양과 관련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2022 개정 교육과정'에 '미디어 리터러시'를 포함하면서 사실상 의무교육이 됐습니다. 올해부터는 초등학교 1학년·2학년 학생들이 국어 시간에 '매체' 영역을 통해 관련 수업을 듣게 됩니다. 내년부터는 초등학교 3학년·
4학년, 이후 고등학생들까지 점차 대상이 확대됩니다.

전국미디어리터러시교사협회(KATOM)의 박유신 협회장이 KBS 취재진에게 미디어 리터러시 수업 자료를 보여주고 있는 모습.
전국미디어리터러시교사협회(KATOM)의 박유신 협회장(서울 삼광초등학교 교사)은 "미디어 리터러시 역량은 단지 미디어를 활용하는 기술이나 뉴스를 비판적으로 읽는 정도의 수준이 아니"라며 " 미디어의 사용과 또 내가 미디어 안에서 살아가는 시민으로서의 복합적인 지식과 기능, 태도"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개인적인 관점에서는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은 공교육 혼자서만 해나갈 수 있는 건 아니다"며 방송사 등 여러 주체가 함께해 이끌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더 보다] 31회 <가짜 정보와의 전쟁>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KBS 홈페이지
https://vod.kbs.co.kr/index.html?source=episode&sname=vod&stype=vod&program_code=T2024-0017&program_id=PS-2024165197-01-000&broadcast_complete_yn=N&local_station_code=00§ion_code=05§ion_sub_code=06
-유튜브
https://youtu.be/OOBH9nGMAlY?si=fsaQSj6QbXWi1r33

※본 보도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 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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