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 영웅 73년 만에 귀환…“신원 확인 직전 동생 별세”
입력 2024.11.06 (13:52)
수정 2024.11.06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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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당시 나라를 지키다 전사한 호국영웅이 73년 만에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습니다.
국방부유해발굴감식단은 지난 2018년 강원도 횡성군 덕갈고개 일대에서 발굴된 유해가 6·25 전쟁 당시 횡성 전투에서 전사한 고 김수덕 일병으로 확인됐다고 오늘(6일) 밝혔습니다.
유해발굴감식단은 앞서 전문 발굴 병력이 참전용사의 증언 등을 바탕으로 고인의 오른쪽 팔뼈와 정강이뼈 등을 수습했고, 지난 2020년 고인의 동생 김종덕 씨의 시료도 채취했습니다.
당시 유전자 분석 결과로는 전사자와 유가족 간의 가족관계를 확인하지 못하다가 최근 발전된 기술로 재분석했고, 지난 10월 두 사람의 형제 관계가 확인됐습니다.
하지만 형의 유해를 기다리던 동생은 이 소식을 듣지 못한 채 지난 8월 신원 확인 3개월을 앞두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횡성 전투는 1951년 2월 중공군의 제4차 공세 때 횡성군 일대에서 전개된 전투로 고인은 국군 8사단 소속으로 전투에 참여했습니다.
1932년에 경북 청도군에서 태어난 고 김수덕 일병은 전쟁이 발발하자 1950년 9월 열일곱 나이에 대구에 있는 제1훈련소에 자원입대했습니다.
유족 증언에 따르면 생전 고인은 어머니에게 ‘이제 입대하면 다시는 어머니 곁으로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인사를 남기고 훈련소로 향했습니다.
이후 고인은 국군 제8사단에서 여러 전투에 참전하던 중 1951년 2월 7일 횡성 전투에서 열여덟 살의 나이로 중공군과 싸우다 전사했습니다.
국유단은 오늘 경북 청도군에 있는 유가족의 자택에서 ‘호국의 영웅 귀환 행사’도 거행했습니다.
행사는 유가족에게 고인의 참전 과정과 유해 발굴 경과를 설명하고, 신원확인 통지서와 함께 호국영웅 귀환패 등이 담긴 ‘호국의 얼 함(函)’을 전달하는 순서로 진행됐습니다.
유가족 대표인 김종길 씨는 “우리 형제가 모두 형님을 찾기 위해 유전자 검사를 했지만, 종덕 형님이 먼저 세상을 떠나 아쉽다”며 “이제라도 형님을 따뜻한 국립묘지에 안장해 정중히 모시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2000년 4월 유해 발굴이 시작된 이후 현재까지 신원이 확인된 국군 전사자는 모두 239명입니다.
국방부유해발굴감식단 관계자는 “6·25 전사자의 신원확인을 위해 국민 동참이 절실하다”며 “유전자 시료 채취는 전국 어디에서나 가능하고, 특히 전사자의 친·외가를 포함해 8촌까지 신청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유전자 시료 채취를 희망하지만 거동이 불편하거나 생계 등 이유로 방문이 어려울 경우에는 1577-5625로 연락하면 국유단 탐문관들이 방문해 유전자 시료 채취를 지원합니다.
[사진 출처 :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제공]
국방부유해발굴감식단은 지난 2018년 강원도 횡성군 덕갈고개 일대에서 발굴된 유해가 6·25 전쟁 당시 횡성 전투에서 전사한 고 김수덕 일병으로 확인됐다고 오늘(6일) 밝혔습니다.
유해발굴감식단은 앞서 전문 발굴 병력이 참전용사의 증언 등을 바탕으로 고인의 오른쪽 팔뼈와 정강이뼈 등을 수습했고, 지난 2020년 고인의 동생 김종덕 씨의 시료도 채취했습니다.
당시 유전자 분석 결과로는 전사자와 유가족 간의 가족관계를 확인하지 못하다가 최근 발전된 기술로 재분석했고, 지난 10월 두 사람의 형제 관계가 확인됐습니다.
하지만 형의 유해를 기다리던 동생은 이 소식을 듣지 못한 채 지난 8월 신원 확인 3개월을 앞두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횡성 전투는 1951년 2월 중공군의 제4차 공세 때 횡성군 일대에서 전개된 전투로 고인은 국군 8사단 소속으로 전투에 참여했습니다.
1932년에 경북 청도군에서 태어난 고 김수덕 일병은 전쟁이 발발하자 1950년 9월 열일곱 나이에 대구에 있는 제1훈련소에 자원입대했습니다.
유족 증언에 따르면 생전 고인은 어머니에게 ‘이제 입대하면 다시는 어머니 곁으로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인사를 남기고 훈련소로 향했습니다.
이후 고인은 국군 제8사단에서 여러 전투에 참전하던 중 1951년 2월 7일 횡성 전투에서 열여덟 살의 나이로 중공군과 싸우다 전사했습니다.
국유단은 오늘 경북 청도군에 있는 유가족의 자택에서 ‘호국의 영웅 귀환 행사’도 거행했습니다.
행사는 유가족에게 고인의 참전 과정과 유해 발굴 경과를 설명하고, 신원확인 통지서와 함께 호국영웅 귀환패 등이 담긴 ‘호국의 얼 함(函)’을 전달하는 순서로 진행됐습니다.
유가족 대표인 김종길 씨는 “우리 형제가 모두 형님을 찾기 위해 유전자 검사를 했지만, 종덕 형님이 먼저 세상을 떠나 아쉽다”며 “이제라도 형님을 따뜻한 국립묘지에 안장해 정중히 모시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2000년 4월 유해 발굴이 시작된 이후 현재까지 신원이 확인된 국군 전사자는 모두 239명입니다.
국방부유해발굴감식단 관계자는 “6·25 전사자의 신원확인을 위해 국민 동참이 절실하다”며 “유전자 시료 채취는 전국 어디에서나 가능하고, 특히 전사자의 친·외가를 포함해 8촌까지 신청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유전자 시료 채취를 희망하지만 거동이 불편하거나 생계 등 이유로 방문이 어려울 경우에는 1577-5625로 연락하면 국유단 탐문관들이 방문해 유전자 시료 채취를 지원합니다.
[사진 출처 :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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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정2024-11-06 13:57:21

6·25 전쟁 당시 나라를 지키다 전사한 호국영웅이 73년 만에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습니다.
국방부유해발굴감식단은 지난 2018년 강원도 횡성군 덕갈고개 일대에서 발굴된 유해가 6·25 전쟁 당시 횡성 전투에서 전사한 고 김수덕 일병으로 확인됐다고 오늘(6일) 밝혔습니다.
유해발굴감식단은 앞서 전문 발굴 병력이 참전용사의 증언 등을 바탕으로 고인의 오른쪽 팔뼈와 정강이뼈 등을 수습했고, 지난 2020년 고인의 동생 김종덕 씨의 시료도 채취했습니다.
당시 유전자 분석 결과로는 전사자와 유가족 간의 가족관계를 확인하지 못하다가 최근 발전된 기술로 재분석했고, 지난 10월 두 사람의 형제 관계가 확인됐습니다.
하지만 형의 유해를 기다리던 동생은 이 소식을 듣지 못한 채 지난 8월 신원 확인 3개월을 앞두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횡성 전투는 1951년 2월 중공군의 제4차 공세 때 횡성군 일대에서 전개된 전투로 고인은 국군 8사단 소속으로 전투에 참여했습니다.
1932년에 경북 청도군에서 태어난 고 김수덕 일병은 전쟁이 발발하자 1950년 9월 열일곱 나이에 대구에 있는 제1훈련소에 자원입대했습니다.
유족 증언에 따르면 생전 고인은 어머니에게 ‘이제 입대하면 다시는 어머니 곁으로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인사를 남기고 훈련소로 향했습니다.
이후 고인은 국군 제8사단에서 여러 전투에 참전하던 중 1951년 2월 7일 횡성 전투에서 열여덟 살의 나이로 중공군과 싸우다 전사했습니다.
국유단은 오늘 경북 청도군에 있는 유가족의 자택에서 ‘호국의 영웅 귀환 행사’도 거행했습니다.
행사는 유가족에게 고인의 참전 과정과 유해 발굴 경과를 설명하고, 신원확인 통지서와 함께 호국영웅 귀환패 등이 담긴 ‘호국의 얼 함(函)’을 전달하는 순서로 진행됐습니다.
유가족 대표인 김종길 씨는 “우리 형제가 모두 형님을 찾기 위해 유전자 검사를 했지만, 종덕 형님이 먼저 세상을 떠나 아쉽다”며 “이제라도 형님을 따뜻한 국립묘지에 안장해 정중히 모시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2000년 4월 유해 발굴이 시작된 이후 현재까지 신원이 확인된 국군 전사자는 모두 239명입니다.
국방부유해발굴감식단 관계자는 “6·25 전사자의 신원확인을 위해 국민 동참이 절실하다”며 “유전자 시료 채취는 전국 어디에서나 가능하고, 특히 전사자의 친·외가를 포함해 8촌까지 신청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유전자 시료 채취를 희망하지만 거동이 불편하거나 생계 등 이유로 방문이 어려울 경우에는 1577-5625로 연락하면 국유단 탐문관들이 방문해 유전자 시료 채취를 지원합니다.
[사진 출처 :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제공]
국방부유해발굴감식단은 지난 2018년 강원도 횡성군 덕갈고개 일대에서 발굴된 유해가 6·25 전쟁 당시 횡성 전투에서 전사한 고 김수덕 일병으로 확인됐다고 오늘(6일) 밝혔습니다.
유해발굴감식단은 앞서 전문 발굴 병력이 참전용사의 증언 등을 바탕으로 고인의 오른쪽 팔뼈와 정강이뼈 등을 수습했고, 지난 2020년 고인의 동생 김종덕 씨의 시료도 채취했습니다.
당시 유전자 분석 결과로는 전사자와 유가족 간의 가족관계를 확인하지 못하다가 최근 발전된 기술로 재분석했고, 지난 10월 두 사람의 형제 관계가 확인됐습니다.
하지만 형의 유해를 기다리던 동생은 이 소식을 듣지 못한 채 지난 8월 신원 확인 3개월을 앞두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횡성 전투는 1951년 2월 중공군의 제4차 공세 때 횡성군 일대에서 전개된 전투로 고인은 국군 8사단 소속으로 전투에 참여했습니다.
1932년에 경북 청도군에서 태어난 고 김수덕 일병은 전쟁이 발발하자 1950년 9월 열일곱 나이에 대구에 있는 제1훈련소에 자원입대했습니다.
유족 증언에 따르면 생전 고인은 어머니에게 ‘이제 입대하면 다시는 어머니 곁으로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인사를 남기고 훈련소로 향했습니다.
이후 고인은 국군 제8사단에서 여러 전투에 참전하던 중 1951년 2월 7일 횡성 전투에서 열여덟 살의 나이로 중공군과 싸우다 전사했습니다.
국유단은 오늘 경북 청도군에 있는 유가족의 자택에서 ‘호국의 영웅 귀환 행사’도 거행했습니다.
행사는 유가족에게 고인의 참전 과정과 유해 발굴 경과를 설명하고, 신원확인 통지서와 함께 호국영웅 귀환패 등이 담긴 ‘호국의 얼 함(函)’을 전달하는 순서로 진행됐습니다.
유가족 대표인 김종길 씨는 “우리 형제가 모두 형님을 찾기 위해 유전자 검사를 했지만, 종덕 형님이 먼저 세상을 떠나 아쉽다”며 “이제라도 형님을 따뜻한 국립묘지에 안장해 정중히 모시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2000년 4월 유해 발굴이 시작된 이후 현재까지 신원이 확인된 국군 전사자는 모두 239명입니다.
국방부유해발굴감식단 관계자는 “6·25 전사자의 신원확인을 위해 국민 동참이 절실하다”며 “유전자 시료 채취는 전국 어디에서나 가능하고, 특히 전사자의 친·외가를 포함해 8촌까지 신청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유전자 시료 채취를 희망하지만 거동이 불편하거나 생계 등 이유로 방문이 어려울 경우에는 1577-5625로 연락하면 국유단 탐문관들이 방문해 유전자 시료 채취를 지원합니다.
[사진 출처 :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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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준 기자 okok@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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