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광주서 발견된 유골 ‘4·3희생자’로 확인
입력 2024.11.12 (11:00)
수정 2024.11.12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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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 옛 광주형무소 부지에서 발굴된 유해 가운데 제주 4·3 희생자가 있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제주도와 4·3 평화재단은 옛 광주형무소의 무연고 유해 261구와 4·3 희생자 유족들의 유전자를 대조한 결과, 1구가 일치한다고 오늘(12일) 발표했습니다.
신원이 확인된 유해는 1949년 7월 광주형무소로 끌려가 행방불명된 제주시 연동 출신의 고 양천종 씨(1898년생)로, 양성홍 제주4·3희생자유족회 회장의 할아버지로 확인됐습니다.
양 씨는 4·3 사건 당시 집이 불타자, 가족과 함께 제주시 노형리 골머리오름에서 피신 생활을 이어갔고, 1949년 3월 토벌대의 선무 공작으로 귀순했습니다.
이후 주정 공장에서 한 달여간 수용 생활을 한 뒤 풀려났지만, 같은 해 7월 농사일을 마치고 귀가하던 중 다시 체포돼 광주형무소에 수감됐습니다.
가족이 마지막으로 받은 소식은 1949년 11월쯤 "형무소에서 잘 지낸다"는 편지였고, 12월 4일 형무소로부터 사망 통보를 받았습니다.
유족들은 당시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밭을 팔아가며 안간힘을 썼지만, 끝내 유해를 찾지 못했습니다.
제주도는 다음 달 16일 유족과 함께 제례를 지낸 뒤 유해를 제주로 봉환할 예정입니다.
제주도 이외 지역에서 4·3 사건 유해가 발견된 건 지난해 대전 골령골에서 고 김한홍 씨의 유해가 발견된 이후 두 번째입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제주도와 4·3 평화재단은 옛 광주형무소의 무연고 유해 261구와 4·3 희생자 유족들의 유전자를 대조한 결과, 1구가 일치한다고 오늘(12일) 발표했습니다.
신원이 확인된 유해는 1949년 7월 광주형무소로 끌려가 행방불명된 제주시 연동 출신의 고 양천종 씨(1898년생)로, 양성홍 제주4·3희생자유족회 회장의 할아버지로 확인됐습니다.
양 씨는 4·3 사건 당시 집이 불타자, 가족과 함께 제주시 노형리 골머리오름에서 피신 생활을 이어갔고, 1949년 3월 토벌대의 선무 공작으로 귀순했습니다.
이후 주정 공장에서 한 달여간 수용 생활을 한 뒤 풀려났지만, 같은 해 7월 농사일을 마치고 귀가하던 중 다시 체포돼 광주형무소에 수감됐습니다.
가족이 마지막으로 받은 소식은 1949년 11월쯤 "형무소에서 잘 지낸다"는 편지였고, 12월 4일 형무소로부터 사망 통보를 받았습니다.
유족들은 당시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밭을 팔아가며 안간힘을 썼지만, 끝내 유해를 찾지 못했습니다.
제주도는 다음 달 16일 유족과 함께 제례를 지낸 뒤 유해를 제주로 봉환할 예정입니다.
제주도 이외 지역에서 4·3 사건 유해가 발견된 건 지난해 대전 골령골에서 고 김한홍 씨의 유해가 발견된 이후 두 번째입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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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년 전 광주서 발견된 유골 ‘4·3희생자’로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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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4-11-12 11:00:32
- 수정2024-11-12 11:09:13
5년 전 옛 광주형무소 부지에서 발굴된 유해 가운데 제주 4·3 희생자가 있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제주도와 4·3 평화재단은 옛 광주형무소의 무연고 유해 261구와 4·3 희생자 유족들의 유전자를 대조한 결과, 1구가 일치한다고 오늘(12일) 발표했습니다.
신원이 확인된 유해는 1949년 7월 광주형무소로 끌려가 행방불명된 제주시 연동 출신의 고 양천종 씨(1898년생)로, 양성홍 제주4·3희생자유족회 회장의 할아버지로 확인됐습니다.
양 씨는 4·3 사건 당시 집이 불타자, 가족과 함께 제주시 노형리 골머리오름에서 피신 생활을 이어갔고, 1949년 3월 토벌대의 선무 공작으로 귀순했습니다.
이후 주정 공장에서 한 달여간 수용 생활을 한 뒤 풀려났지만, 같은 해 7월 농사일을 마치고 귀가하던 중 다시 체포돼 광주형무소에 수감됐습니다.
가족이 마지막으로 받은 소식은 1949년 11월쯤 "형무소에서 잘 지낸다"는 편지였고, 12월 4일 형무소로부터 사망 통보를 받았습니다.
유족들은 당시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밭을 팔아가며 안간힘을 썼지만, 끝내 유해를 찾지 못했습니다.
제주도는 다음 달 16일 유족과 함께 제례를 지낸 뒤 유해를 제주로 봉환할 예정입니다.
제주도 이외 지역에서 4·3 사건 유해가 발견된 건 지난해 대전 골령골에서 고 김한홍 씨의 유해가 발견된 이후 두 번째입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제주도와 4·3 평화재단은 옛 광주형무소의 무연고 유해 261구와 4·3 희생자 유족들의 유전자를 대조한 결과, 1구가 일치한다고 오늘(12일) 발표했습니다.
신원이 확인된 유해는 1949년 7월 광주형무소로 끌려가 행방불명된 제주시 연동 출신의 고 양천종 씨(1898년생)로, 양성홍 제주4·3희생자유족회 회장의 할아버지로 확인됐습니다.
양 씨는 4·3 사건 당시 집이 불타자, 가족과 함께 제주시 노형리 골머리오름에서 피신 생활을 이어갔고, 1949년 3월 토벌대의 선무 공작으로 귀순했습니다.
이후 주정 공장에서 한 달여간 수용 생활을 한 뒤 풀려났지만, 같은 해 7월 농사일을 마치고 귀가하던 중 다시 체포돼 광주형무소에 수감됐습니다.
가족이 마지막으로 받은 소식은 1949년 11월쯤 "형무소에서 잘 지낸다"는 편지였고, 12월 4일 형무소로부터 사망 통보를 받았습니다.
유족들은 당시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밭을 팔아가며 안간힘을 썼지만, 끝내 유해를 찾지 못했습니다.
제주도는 다음 달 16일 유족과 함께 제례를 지낸 뒤 유해를 제주로 봉환할 예정입니다.
제주도 이외 지역에서 4·3 사건 유해가 발견된 건 지난해 대전 골령골에서 고 김한홍 씨의 유해가 발견된 이후 두 번째입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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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서연 기자 asy0104@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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