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취재] 소리 없는 아동학대 ‘방임’, 판결 분석해보니…

[앵커]

아동학대의 실상과 과제를 살펴보는 집중취재 순서입니다.

눈에 띄는 폭력이나 폭언만 아동학대가 아닙니다.

아이를 무관심 속에 방치하는 '방임'도 명백한 범죄인데요.

KBS가 우리 지역의 아동 방임 학대 관련 판결문을 입수해 분석해 봤습니다.

그 실태를 이자현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2020년, 청주의 주거지에서 양부에게 지속적으로 성적 학대를 당한 14살 A 양.

친모는 딸이 학대당한 사실을 알면서도 홀로 타지에 살면서 양부와 딸을 단둘이 지내게 했습니다.

A 양이 피해 사실을 진술하려 하자 이를 막거나, 조사에 양부와 동행하기도 했습니다.

2021년, 충남 서산에서는 한 부부가 6살 아들을 화장실에 가둔 채 반려견 2마리를 데리고 세 차례 여행을 갔습니다.

모두 '방임'에 해당하는 아동 학대입니다.

이런 아동 방임은 전국적으로 드러난 것만 해마다 2천여 건에 달합니다.

극단적인 경우, 피해 아동이 숨지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신체적·정신적인 학대보다 덜 심각하게 보는 인식이 문제입니다.

KBS는 최근 5년간 충북과 충남, 대전에서 발생한 아동 방임 사건 35건의 판결문을 입수해 분석했습니다.

학대 행위자는 48명.

모두 피해 아동의 친부모, 양부모였습니다.

피해 아동은 44명이었는데, 나이를 알 수 없는 3명을 제외하면 31명, 76%가 10세 미만이었습니다.

아동을 유기한 경우 외에 모두 주거지나 숙박시설 등 은폐된 공간에서 가해가 이뤄졌습니다.

아동을 불결하거나 위험한 환경에 방치한 물리적 방임이 47%에 달했습니다.

아이를 보호하지 않고 버리는 유기 방임은 21%.

그리고 제대로 치료하거나 교육시키지 않는 방임이 각각 16%였습니다.

방임 사건의 절반은 신체적, 정신적 학대로 이어져 피해 아동 4명 중 1명이 다치거나 숨졌습니다.

하지만 사법부의 처벌은 엄중하지 않았습니다.

가해자의 87%인 42명이 집행유예나 벌금형으로 풀려났습니다.

방임만으로 실형까지 받은 부모는 두 명뿐이었습니다.

생후 110일 된 아들을 지인에게 맡겼다가 숨지게 한 부모도 집행유예 처분을 받았습니다.

[박아롱/변호사 : "(아동복지법상) 방임이 금지된다는 짤막하고 추상적인 규정을 구체적 사례의 처벌 근거로 삼기에 한계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게 방임인지 아닌지 경계에 선 사건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방임은 발견이 어려운 만큼 피해가 커질 가능성이 높기에 관련 법제를 개편하고 모니터링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KBS 뉴스 이자현입니다.

촬영기자:박용호/그래픽:박소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