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보다 35회 I] 어르신 식사하셨어요?
월요일 아침부터 길게 늘어선 줄.
<녹취> 무료급식소 관계자
"(아침) 7시부터 줄을 서기 시작해요. 그래서 8시 반에 나눠주는데 계속 줄 서 있는 거예요."
8분 만에 주먹밥 180개가 동났습니다.
<녹취> 무료급식소 방문 노인
"주먹밥 얻어 먹으러 왔는데 끝나 버렸네. 아니 안 떨어지는데 왜 떨어졌어, 지금. 에이."
오전 10시 반, 노인들이 점심 식사를 위해 벌써 줄을 섰습니다.
<녹취> 식사 줄 대기 노인
"아침에 첫차 타고 오고. 멀면 첫차 타고 오고. 가까우면 늦게 나오고."
<녹취> 식사 줄 대기 노인2
"시간 보낼 겸 왔어요. 혼자 살다 보니까 외로워서 같이 지내니까 좋네요."
노인들에게 한 끼 식사는 어떤 의미일까?
<인터뷰> 김정현 / 한경국립대 사회복지학 전공 교수
"식사의 중요성은 발달 단계에 있는 아동만큼이나 노년기는 엄청 큰 삶의 의미가 되는 거죠. 삶과 생존에 직결되는 문제인 거죠."
■ 80살 할아버지의 식생활 들여다보니
여든 살 최병연 할아버지, 30년 넘게 혼자 살고 있습니다.
매일 아침 신문은 꼬박꼬박 챙겨 읽지만, 아침밥을 안 먹은 지는 오랩니다.
<인터뷰> 최병연 / 80세
"지금 이제 수십 년 안 먹으니까 이제는 뭐 배고플 일도 없고, 아침을 안 먹어서."
집에 먹을거리가 없는 건 아닙니다.
<녹취> 최병연-취재진 대화
"이거 만두. (언제 받으신 거예요?) 이것도 지금... 두어달 될 거여. 이건 김치. 이건 부침개네."
유통기한이 지난 간편식품들도 보입니다.
<녹취> 최병연-취재진 대화
"홈쇼핑에서 샀는데 도가니탕 먹으려고. (유통기한 한 달 지났어요.)"
옷을 갈아 입고 집을 나설 채비를 합니다.
20분을 걸어서 도착한 노인복지관. 하루 중 가장 든든하게 배를 채우는 시간입니다.
<인터뷰> 최병연 / 80세
"점심은 뭐 천상 날마다 복지관에서 먹으니까. 제일 많은 도움을 받는다고 봐야죠. 나오기는 좀 잘 나온다고 봐야 해요. 생선도 나오고."
10분도 안 돼 식판을 싹 비웠습니다.
동네에 있는 큰 전통시장.
종종 찾는 곳이지만, 장을 보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인터뷰> 최병연 / 80세
"나이를 먹고 하니깐 더 그냥 간단하게 먹으려고 하고 말이야. 젊어서는 명태전을 전 중에서는 제일 좋아하니까. 명절 때는 내가 꼭 그 명태 저거를 사거든. (지금은) 사 가지고 부쳐 먹지도 못하고 다 내 버리고 내 버리고 그렇게 되더라고."
오늘처럼 점심밥을 든든히 먹었다 싶은 날엔 저녁 식사를 건너뛰기도 합니다.
<인터뷰> 최병연 / 80세
"우선 그냥 하려면 귀찮아 버리니까 에이 하고 그냥 제껴버린다 이거야. 이렇게 제끼면 사람이 곯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말이야."
최 할아버지의 일주일치 식사를 살펴봤습니다.
하루에 한 끼만 먹은 날이 사흘. 두 끼를 먹은 날에도 한 끼는 라면, 만두 같은 간편식품으로 때웠습니다.
<인터뷰> 구슬이 국회입법조사처 보건복지여성팀장 "노인분들이 식사에 대해서는 그렇게 큰 의미를 부여하거나 큰 에너지나 시간과 비용을 들이시지 않는 그런 경향이 있는 거 같아요. 노인분들일수록 식사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훨씬 더 크거든요? 조금만 식사를 부실하게 해도 건강 상태가 더 확 안 좋아지는 그런 것들이 영향이 훨씬 큰데도 불구하고." |
■ 노인 식사 지원 정책, 어디까지 와 있나?
노인의 부실한 식사는 오랜 사회적 관심사였습니다.
1980년대 자선 단체가 시작한 노인 무료 급식.
1999년부턴 정부 예산으로, 2005년부턴 자치단체 주도로 노인 식사 지원 정책이 시행돼 왔습니다.
지원 대상은 결식 우려가 있는 저소득층 노인.
대표적인 게 ‘경로식당’으로 불리는 복지관 단체 급식입니다.
<인터뷰> 신해근 / 경기도 양평군 노인복지관 부장
"하루에 한 400에서 450명 정도 어르신들이 식사를 하고 계시고요. 수급 대상 어르신들은 무료로 제공해드리고 있고 일반 회원 어르신들은 4천 원씩 내고 식사 이용하고 계십니다."
<인터뷰> 윤범중 / 77세
"이렇게 질이 좋고 가격이 저렴한 데는 사실 없어요. 나가면은. 저녁도 줬으면 좋겠어요."
지난해 전국 자치단체에서 무료로 식사를 제공받은 저소득층 노인은 15만 7천여 명.
모두 천7백80억여 원의 예산이 들어갔습니다.
적지 않은 규모이지만, 증가하는 수요를 따라잡진 못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김정현 / 한경국립대 사회복지학 전공 교수 "이미 수요가 너무 넘치기 때문에 대기 인원이 너무 많기 때문에, '경로식당' 형태로 주기에는 지자체 예산이 감당이 안 될 거예요. 한계가 다가오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돌파구. 새로운 전달 체계를 위한 대대적인 개편이 이루어져야 할 것 같아요." |
저소득층에 한정됐던 식사 지원 노인 대상을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인터뷰> 구슬이 / 국회입법조사처 보건복지여성팀장 "이제는 소득 수준하고 상관없이 혼자 식사를 하시는 그런 노인들이 굉장히 많아지는 상황인 거잖아요. 감당 가능한 수준에서 비용을 내더라도 (식사를) 이용하고 싶다는 그런 욕구가 많이 높아진 걸로 알고 있는데, 아주 많은 돈을 내고 배달 서비스를 받는다든지 이런 거 말고는 선택지가 없기 때문에..." |
■ 경로당, 노인들 '일상 식사 공간' 될 수 있을까?
인천의 한 경로당.
어느새 점심 시간이 다 됐습니다.
부엌에서 조리사들의 손이 바쁘게 움직입니다.
올해로 8년째, 일주일에 5일을 함께 모여 점심을 먹습니다.
<인터뷰> 권종원 경로당 회장 / 79세
"점심식사는 11시 50분부터 시작되고요, 하루에 한 30분 가까이 오셔요."
<인터뷰> 박옥녀 경로당 총무 / 77세
"따신밥 먹고 따신 국 먹고. 집에서 끓이면 맛없는데 여기서 먹으면 맛있어요. 많이 하니까."
음식을 준비하는 입장에선 아쉬움도 있습니다.
<인터뷰> 권종원 경로당 회장 / 79세
예산이 많이 부족하니까, 영양가를 따져서 해 드릴 수가 없어요. 여기저기 가서 그냥 좀 부탁도 드리고 많이 그래요. 찬조 들어오는 것도 있고, 자기네들 농사 지은 거 조금씩 가져오는 분도 있고.
매달 지원되는 건 20kg짜리 쌀 한 포와 운영비 54만 원.
주 5일, 30명 안팎의 식사를 챙기기엔 늘 부족합니다.
<인터뷰> 김병기 경로당 회원 / 79세
"구청에서 나오는 돈하고 우리가 5천 원 낸 돈 가지고는 잘 먹을 수는 없죠. 그러나 그것도 감사해야지 어떡해. 마누라 없이 여기 와서 얻어먹으니까 그나마도 고마운 거지."
빠듯한 사정 탓에 전국 경로당의 식사 제공 일수는 평균 주 3.5일.
정부는 경로당 6만 9천 곳에 주 5일 식사 제공을 점차 확대하겠다는 방침입니다.
<인터뷰> 구슬이 국회입법조사처 보건복지여성팀장 "각 경로당에 지원되는 그런 부식비의 규모가 지역별로도 사실 큰 차이가 나고 국가가 좀 주도해서 어느 정도 지원을 해주는 것도 필요하다." |
■ 노인 식사 제공, '소득 기준'만 보는 게 맞을까
서울의 한 반찬공장.
반찬통을 차곡차곡 보온 가방에 담고, 가방을 챠랑에 싣습니다.
반찬을 싣고 향한 곳은 근처에 있는 복지센터.
손님 맞을 준비로 분주해집니다.
비슷한 시각, 어디론가 향하는 75살 박연자 할머니.
<인터뷰> 박연자 / 75세
"이 시간이 되면은 여기 오는 게 잔칫집 가는 거 같아."
서울 마포구에서 운영하는 이 식당의 손님은 75세 이상 주민들입니다.
자체 반찬 공장을 지어 식품 단가를 절반으로 낮추고, 구민들에게 후원금도 받아 운영하고 있습니다.
무료이지만 소득 수준은 따지지 않고 대상자를 선정합니다.
<인터뷰> 권윤영 / 서울 마포구청 어르신동행과장
"재산이 많더라도 혼자 있다보면 영양 섭취를 고루고루 하실 수 없기 때문에, 더 1인 가구에 처음엔 집중을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는 44개 기관에 1500명까지 지금 식사를 하고 있고요."
<인터뷰> 김정현 / 한경국립대 사회복지학 전공 교수 "미국 같은 경우에는 사실 소득 기준을 보지는 않거든요. 건강, 수명 연장의 차원에서 보면 조리 능력이라든지 식생활 관리를 얼마나 못하고 있는가. 그래서 영양 상태가 지금의 건강을 얼마나 해칠 우려가 있는지. (식사 제공) 기준을 좀더 세부적으로 세워야 할 거 같아요." |
나이가 들어 혼자 살며, 밥을 챙겨먹는 건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인터뷰> 김옥자 / 81세
"(반찬) 6가지에서 국까지 7가지 이렇게 고루고루 갖다 먹는 거예요 그냥. 혈압이 항상 떨어지는데 여기서 계속 고정적으로 먹으니까. 정상으로 돌아온 거예요 지금."
<인터뷰> 정정님 / 77세
"내 몸이 차차차차 막 돌아오고 힘도 나고. 내가 이 병을 못 따서 물을 못 먹고 이랬는데 이제 병도 따고 그래요. 그니까 먹는 것이 최고더라고."
■ '때우는 한 끼'를 넘어서
새벽 5시 반.
도시락 통에 반찬을 나눠 담습니다.
당뇨와 고혈압 등 만성질환이 있는 노인을 위한 맞춤형 도시락입니다.
<녹취> 이경자 / 도시락업체 직원
"고기는 일주일에 거의 돌아가면서 다 나가요. 항상 안 빠지고."
5가지 반찬에 따뜻한 밥과 국까지.
자치단체 예산으로 주5일, 점심 저녁 두 끼를 혼자 사는 노인 100명에게 배달합니다.
<녹취> 정현미 / 도시락업체 직원
"오늘 스물 두 집 가는데 세 시간 반 걸려요. 이제 첫 집 왔네요. 이 어르신은 많이 소화를 못 시키고 씹으시는 것도 불편하세요."
<녹취> 정현미 직원-할머니 대화
"어르신~ 도시락 왔어요. 어르신 안녕하세요. 아이고 잘 주무셨어? (응 잘 잤어.) 오늘은 얼굴이 좀 덜 부으셨네. (응) 괜찮아? (응) 혈압도 괜찮고? (응)"
81살 할머니가 혼자 사는 집.
뇌경색과 고혈압이 있는 할머니는 2년째 꾸준히 맞춤형 도시락을 먹고 있습니다.
<인터뷰> 도시락 이용자 / 81살
"병원을 갔는데 좋아졌다 그래요. 많이 좋아졌다고. 갖다주시니까 고맙고. 잘 먹고 있습니다."
끼니 해결을 넘어, 이제는 노인의 건강을 챙기는 식사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인터뷰> 구슬이 / 국회입법조사처 보건복지여성팀장 "혼자 밥해 먹고 이제 혼자 집안 정리를 하고 하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나는 요양원에 입소하겠다라는 현실에서, 국민건강보험 재정 같은 경우도 이제 적자가 나기 시작하고... 불필요한 어떤 의료비 요양비 같은 것들이 많이 늘어날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에 (노인들이) 일상 생활을 영위하는 데 있어서 식사의 알맞은 지원은 굉장히 중요한 한 축이 되는 거죠." |
■ 초고령사회 '노인의 한 끼', 달라진 무게감
서울의 한 무료급식소. 노인들에게 점심밥을 대접한 지 올해로 32년이 됐습니다.
<인터뷰> 원경 스님 / 사회복지원각 대표
"배고픔엔 휴일이 없기 때문에 365일을 하고 있습니다. 11시부터 배식을 하지만 그 이전에 3시간 이상을 준비 과정이 필요해요. 적어도 3찬 정도는 이제 드리려고 애를 쓰고 있고."
15명 안팎의 봉사자가 준비하는 점심상.
매일 3백 명 가까운 노인이 이곳을 찾습니다.
<인터뷰> 사회복지원각 무료급식소 방문 노인
"노인들 혼자 사니까 집에서 먹기 힘들고 그러니까, 여기 와서 점심 한 끼 먹고 가고 그래. 노인들한테 아주 잘해주지. 고맙지 뭐."
노인 인구는 올해 천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인터뷰> 김정현 / 한경국립대 사회복지학 전공 교수
"20년 전쯤에 어린이집 급식 파동일 때는 학부모들이 관심이 많잖아요, 보호자들이. 근데 어르신들 같은 경우 보호자가 별로 관심이 없어요."
노인에게 제공하는 한 끼 식사. 그 안에 담긴 의미도 이제는 달라지고 있습니다.
<인터뷰> 구슬이 / 국회입법조사처 보건복지여성팀장 "초고령 사회가 된다라는 말만 했지만 그게 현실은 아니었잖아요, 미래의 어떤 날. 그런데 이제는 그게 현실이 됐고. 지금이라도 이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굶지만 않으면 된다라는 거에서 이제는 그걸 넘어서는 거죠." |
취재기자: 김채린
촬영: 조선기 강우용 오광택
영상편집: 최정연
그래픽: 장수현
자료조사: 권현서
조연출: 유화영 심은별
촬영 협조: 사회복지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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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르신 식사하셨어요? [더 보다]
-
- 입력 2024-11-24 23:14:32
[더 보다 35회 I] 어르신 식사하셨어요?
월요일 아침부터 길게 늘어선 줄.
<녹취> 무료급식소 관계자
"(아침) 7시부터 줄을 서기 시작해요. 그래서 8시 반에 나눠주는데 계속 줄 서 있는 거예요."
8분 만에 주먹밥 180개가 동났습니다.
<녹취> 무료급식소 방문 노인
"주먹밥 얻어 먹으러 왔는데 끝나 버렸네. 아니 안 떨어지는데 왜 떨어졌어, 지금. 에이."
오전 10시 반, 노인들이 점심 식사를 위해 벌써 줄을 섰습니다.
<녹취> 식사 줄 대기 노인
"아침에 첫차 타고 오고. 멀면 첫차 타고 오고. 가까우면 늦게 나오고."
<녹취> 식사 줄 대기 노인2
"시간 보낼 겸 왔어요. 혼자 살다 보니까 외로워서 같이 지내니까 좋네요."
노인들에게 한 끼 식사는 어떤 의미일까?
<인터뷰> 김정현 / 한경국립대 사회복지학 전공 교수
"식사의 중요성은 발달 단계에 있는 아동만큼이나 노년기는 엄청 큰 삶의 의미가 되는 거죠. 삶과 생존에 직결되는 문제인 거죠."
■ 80살 할아버지의 식생활 들여다보니
여든 살 최병연 할아버지, 30년 넘게 혼자 살고 있습니다.
매일 아침 신문은 꼬박꼬박 챙겨 읽지만, 아침밥을 안 먹은 지는 오랩니다.
<인터뷰> 최병연 / 80세
"지금 이제 수십 년 안 먹으니까 이제는 뭐 배고플 일도 없고, 아침을 안 먹어서."
집에 먹을거리가 없는 건 아닙니다.
<녹취> 최병연-취재진 대화
"이거 만두. (언제 받으신 거예요?) 이것도 지금... 두어달 될 거여. 이건 김치. 이건 부침개네."
유통기한이 지난 간편식품들도 보입니다.
<녹취> 최병연-취재진 대화
"홈쇼핑에서 샀는데 도가니탕 먹으려고. (유통기한 한 달 지났어요.)"
옷을 갈아 입고 집을 나설 채비를 합니다.
20분을 걸어서 도착한 노인복지관. 하루 중 가장 든든하게 배를 채우는 시간입니다.
<인터뷰> 최병연 / 80세
"점심은 뭐 천상 날마다 복지관에서 먹으니까. 제일 많은 도움을 받는다고 봐야죠. 나오기는 좀 잘 나온다고 봐야 해요. 생선도 나오고."
10분도 안 돼 식판을 싹 비웠습니다.
동네에 있는 큰 전통시장.
종종 찾는 곳이지만, 장을 보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인터뷰> 최병연 / 80세
"나이를 먹고 하니깐 더 그냥 간단하게 먹으려고 하고 말이야. 젊어서는 명태전을 전 중에서는 제일 좋아하니까. 명절 때는 내가 꼭 그 명태 저거를 사거든. (지금은) 사 가지고 부쳐 먹지도 못하고 다 내 버리고 내 버리고 그렇게 되더라고."
오늘처럼 점심밥을 든든히 먹었다 싶은 날엔 저녁 식사를 건너뛰기도 합니다.
<인터뷰> 최병연 / 80세
"우선 그냥 하려면 귀찮아 버리니까 에이 하고 그냥 제껴버린다 이거야. 이렇게 제끼면 사람이 곯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말이야."
최 할아버지의 일주일치 식사를 살펴봤습니다.
하루에 한 끼만 먹은 날이 사흘. 두 끼를 먹은 날에도 한 끼는 라면, 만두 같은 간편식품으로 때웠습니다.
<인터뷰> 구슬이 국회입법조사처 보건복지여성팀장 "노인분들이 식사에 대해서는 그렇게 큰 의미를 부여하거나 큰 에너지나 시간과 비용을 들이시지 않는 그런 경향이 있는 거 같아요. 노인분들일수록 식사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훨씬 더 크거든요? 조금만 식사를 부실하게 해도 건강 상태가 더 확 안 좋아지는 그런 것들이 영향이 훨씬 큰데도 불구하고." |
■ 노인 식사 지원 정책, 어디까지 와 있나?
노인의 부실한 식사는 오랜 사회적 관심사였습니다.
1980년대 자선 단체가 시작한 노인 무료 급식.
1999년부턴 정부 예산으로, 2005년부턴 자치단체 주도로 노인 식사 지원 정책이 시행돼 왔습니다.
지원 대상은 결식 우려가 있는 저소득층 노인.
대표적인 게 ‘경로식당’으로 불리는 복지관 단체 급식입니다.
<인터뷰> 신해근 / 경기도 양평군 노인복지관 부장
"하루에 한 400에서 450명 정도 어르신들이 식사를 하고 계시고요. 수급 대상 어르신들은 무료로 제공해드리고 있고 일반 회원 어르신들은 4천 원씩 내고 식사 이용하고 계십니다."
<인터뷰> 윤범중 / 77세
"이렇게 질이 좋고 가격이 저렴한 데는 사실 없어요. 나가면은. 저녁도 줬으면 좋겠어요."
지난해 전국 자치단체에서 무료로 식사를 제공받은 저소득층 노인은 15만 7천여 명.
모두 천7백80억여 원의 예산이 들어갔습니다.
적지 않은 규모이지만, 증가하는 수요를 따라잡진 못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김정현 / 한경국립대 사회복지학 전공 교수 "이미 수요가 너무 넘치기 때문에 대기 인원이 너무 많기 때문에, '경로식당' 형태로 주기에는 지자체 예산이 감당이 안 될 거예요. 한계가 다가오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돌파구. 새로운 전달 체계를 위한 대대적인 개편이 이루어져야 할 것 같아요." |
저소득층에 한정됐던 식사 지원 노인 대상을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인터뷰> 구슬이 / 국회입법조사처 보건복지여성팀장 "이제는 소득 수준하고 상관없이 혼자 식사를 하시는 그런 노인들이 굉장히 많아지는 상황인 거잖아요. 감당 가능한 수준에서 비용을 내더라도 (식사를) 이용하고 싶다는 그런 욕구가 많이 높아진 걸로 알고 있는데, 아주 많은 돈을 내고 배달 서비스를 받는다든지 이런 거 말고는 선택지가 없기 때문에..." |
■ 경로당, 노인들 '일상 식사 공간' 될 수 있을까?
인천의 한 경로당.
어느새 점심 시간이 다 됐습니다.
부엌에서 조리사들의 손이 바쁘게 움직입니다.
올해로 8년째, 일주일에 5일을 함께 모여 점심을 먹습니다.
<인터뷰> 권종원 경로당 회장 / 79세
"점심식사는 11시 50분부터 시작되고요, 하루에 한 30분 가까이 오셔요."
<인터뷰> 박옥녀 경로당 총무 / 77세
"따신밥 먹고 따신 국 먹고. 집에서 끓이면 맛없는데 여기서 먹으면 맛있어요. 많이 하니까."
음식을 준비하는 입장에선 아쉬움도 있습니다.
<인터뷰> 권종원 경로당 회장 / 79세
예산이 많이 부족하니까, 영양가를 따져서 해 드릴 수가 없어요. 여기저기 가서 그냥 좀 부탁도 드리고 많이 그래요. 찬조 들어오는 것도 있고, 자기네들 농사 지은 거 조금씩 가져오는 분도 있고.
매달 지원되는 건 20kg짜리 쌀 한 포와 운영비 54만 원.
주 5일, 30명 안팎의 식사를 챙기기엔 늘 부족합니다.
<인터뷰> 김병기 경로당 회원 / 79세
"구청에서 나오는 돈하고 우리가 5천 원 낸 돈 가지고는 잘 먹을 수는 없죠. 그러나 그것도 감사해야지 어떡해. 마누라 없이 여기 와서 얻어먹으니까 그나마도 고마운 거지."
빠듯한 사정 탓에 전국 경로당의 식사 제공 일수는 평균 주 3.5일.
정부는 경로당 6만 9천 곳에 주 5일 식사 제공을 점차 확대하겠다는 방침입니다.
<인터뷰> 구슬이 국회입법조사처 보건복지여성팀장 "각 경로당에 지원되는 그런 부식비의 규모가 지역별로도 사실 큰 차이가 나고 국가가 좀 주도해서 어느 정도 지원을 해주는 것도 필요하다." |
■ 노인 식사 제공, '소득 기준'만 보는 게 맞을까
서울의 한 반찬공장.
반찬통을 차곡차곡 보온 가방에 담고, 가방을 챠랑에 싣습니다.
반찬을 싣고 향한 곳은 근처에 있는 복지센터.
손님 맞을 준비로 분주해집니다.
비슷한 시각, 어디론가 향하는 75살 박연자 할머니.
<인터뷰> 박연자 / 75세
"이 시간이 되면은 여기 오는 게 잔칫집 가는 거 같아."
서울 마포구에서 운영하는 이 식당의 손님은 75세 이상 주민들입니다.
자체 반찬 공장을 지어 식품 단가를 절반으로 낮추고, 구민들에게 후원금도 받아 운영하고 있습니다.
무료이지만 소득 수준은 따지지 않고 대상자를 선정합니다.
<인터뷰> 권윤영 / 서울 마포구청 어르신동행과장
"재산이 많더라도 혼자 있다보면 영양 섭취를 고루고루 하실 수 없기 때문에, 더 1인 가구에 처음엔 집중을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는 44개 기관에 1500명까지 지금 식사를 하고 있고요."
<인터뷰> 김정현 / 한경국립대 사회복지학 전공 교수 "미국 같은 경우에는 사실 소득 기준을 보지는 않거든요. 건강, 수명 연장의 차원에서 보면 조리 능력이라든지 식생활 관리를 얼마나 못하고 있는가. 그래서 영양 상태가 지금의 건강을 얼마나 해칠 우려가 있는지. (식사 제공) 기준을 좀더 세부적으로 세워야 할 거 같아요." |
나이가 들어 혼자 살며, 밥을 챙겨먹는 건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인터뷰> 김옥자 / 81세
"(반찬) 6가지에서 국까지 7가지 이렇게 고루고루 갖다 먹는 거예요 그냥. 혈압이 항상 떨어지는데 여기서 계속 고정적으로 먹으니까. 정상으로 돌아온 거예요 지금."
<인터뷰> 정정님 / 77세
"내 몸이 차차차차 막 돌아오고 힘도 나고. 내가 이 병을 못 따서 물을 못 먹고 이랬는데 이제 병도 따고 그래요. 그니까 먹는 것이 최고더라고."
■ '때우는 한 끼'를 넘어서
새벽 5시 반.
도시락 통에 반찬을 나눠 담습니다.
당뇨와 고혈압 등 만성질환이 있는 노인을 위한 맞춤형 도시락입니다.
<녹취> 이경자 / 도시락업체 직원
"고기는 일주일에 거의 돌아가면서 다 나가요. 항상 안 빠지고."
5가지 반찬에 따뜻한 밥과 국까지.
자치단체 예산으로 주5일, 점심 저녁 두 끼를 혼자 사는 노인 100명에게 배달합니다.
<녹취> 정현미 / 도시락업체 직원
"오늘 스물 두 집 가는데 세 시간 반 걸려요. 이제 첫 집 왔네요. 이 어르신은 많이 소화를 못 시키고 씹으시는 것도 불편하세요."
<녹취> 정현미 직원-할머니 대화
"어르신~ 도시락 왔어요. 어르신 안녕하세요. 아이고 잘 주무셨어? (응 잘 잤어.) 오늘은 얼굴이 좀 덜 부으셨네. (응) 괜찮아? (응) 혈압도 괜찮고? (응)"
81살 할머니가 혼자 사는 집.
뇌경색과 고혈압이 있는 할머니는 2년째 꾸준히 맞춤형 도시락을 먹고 있습니다.
<인터뷰> 도시락 이용자 / 81살
"병원을 갔는데 좋아졌다 그래요. 많이 좋아졌다고. 갖다주시니까 고맙고. 잘 먹고 있습니다."
끼니 해결을 넘어, 이제는 노인의 건강을 챙기는 식사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인터뷰> 구슬이 / 국회입법조사처 보건복지여성팀장 "혼자 밥해 먹고 이제 혼자 집안 정리를 하고 하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나는 요양원에 입소하겠다라는 현실에서, 국민건강보험 재정 같은 경우도 이제 적자가 나기 시작하고... 불필요한 어떤 의료비 요양비 같은 것들이 많이 늘어날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에 (노인들이) 일상 생활을 영위하는 데 있어서 식사의 알맞은 지원은 굉장히 중요한 한 축이 되는 거죠." |
■ 초고령사회 '노인의 한 끼', 달라진 무게감
서울의 한 무료급식소. 노인들에게 점심밥을 대접한 지 올해로 32년이 됐습니다.
<인터뷰> 원경 스님 / 사회복지원각 대표
"배고픔엔 휴일이 없기 때문에 365일을 하고 있습니다. 11시부터 배식을 하지만 그 이전에 3시간 이상을 준비 과정이 필요해요. 적어도 3찬 정도는 이제 드리려고 애를 쓰고 있고."
15명 안팎의 봉사자가 준비하는 점심상.
매일 3백 명 가까운 노인이 이곳을 찾습니다.
<인터뷰> 사회복지원각 무료급식소 방문 노인
"노인들 혼자 사니까 집에서 먹기 힘들고 그러니까, 여기 와서 점심 한 끼 먹고 가고 그래. 노인들한테 아주 잘해주지. 고맙지 뭐."
노인 인구는 올해 천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인터뷰> 김정현 / 한경국립대 사회복지학 전공 교수
"20년 전쯤에 어린이집 급식 파동일 때는 학부모들이 관심이 많잖아요, 보호자들이. 근데 어르신들 같은 경우 보호자가 별로 관심이 없어요."
노인에게 제공하는 한 끼 식사. 그 안에 담긴 의미도 이제는 달라지고 있습니다.
<인터뷰> 구슬이 / 국회입법조사처 보건복지여성팀장 "초고령 사회가 된다라는 말만 했지만 그게 현실은 아니었잖아요, 미래의 어떤 날. 그런데 이제는 그게 현실이 됐고. 지금이라도 이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굶지만 않으면 된다라는 거에서 이제는 그걸 넘어서는 거죠." |
취재기자: 김채린
촬영: 조선기 강우용 오광택
영상편집: 최정연
그래픽: 장수현
자료조사: 권현서
조연출: 유화영 심은별
촬영 협조: 사회복지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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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채린 기자 dig@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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