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자폐인 아들이 지른 불, 부모가 소송 당했다 [취재후]

입력 2024.11.27 (13:59) 수정 2024.11.27 (15:20)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25살 자폐인이, 살고 있던 아파트 쓰레기장에 불을 질렀습니다. 화재 피해는 자폐인의 부모가 배상해야 할까요?
자폐인 아들의 방화 사건 이후 화재보험사로부터 소송을 당한 김상현 씨 가족의 이야기입니다.

[연관 기사] 쓰레기장에 불 지른 20대 자폐인…“책임져라” 부모 월급 가압류 (2024.11.26 뉴스7)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115730

■ 아들 구속된 후 날아든 소장… 월급·집까지 몽땅 가압류

김상현 씨의 아들이 서울의 한 아파트 지하 2층 분리수거장에 불을 지른 건 지난해 10월 21일 새벽 1시.

자다가 안내 방송을 듣고 집 밖으로 대피했다가 돌아올 때까지만 해도, 김 씨는 "아들이 낸 불 때문인 줄은 상상도 못 했다"고 했습니다.

화재 후 외벽에 그을린 흔적이 남아있는 아파트 지하 분리수거장. [KBS ‘뉴스7’ 갈무리]화재 후 외벽에 그을린 흔적이 남아있는 아파트 지하 분리수거장. [KBS ‘뉴스7’ 갈무리]

이 사건으로 아들은 구속기소 됐고, 가족들은 쫓기듯 이사를 했습니다.

그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지난 6월, 아파트 화재 보험사가 김 씨 부부에게 손해 배상 책임에 따른 '구상금 청구'를 예고하며 아내 명의의 집과 김 씨의 월급에 가압류를 건 겁니다.

자폐인 아들에 대한 보호·감독 의무를 소홀히 해 화재 피해를 야기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게 보험사 측 주장이었습니다.

"발달장애인 가족들이 동반자살 하는 경우도 많잖아요. 이런 일이 막 생기니까 '이래서 다 동반 자살 하나보다' 싶고 막막했어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 김상현 씨/자폐장애인 아버지


■ 쟁점① 성인 발달장애인 부모는 '보호 의무자'인가

이번 소송의 쟁점은 결국 '성인 발달장애인의 범죄에 부모의 민사상 책임이 있느냐'는 겁니다. 그러려면 먼저 김 씨 부부가 아들의 법률상 '보호 의무자'에 해당하는지부터 따져야 합니다.

보험사 측은 정신건강증진법상 '정신질환자의 보호 의무자' 규정을 근거로 내세웁니다. 김 씨의 아들이 "9세 수준의 인지적·사회적 능력을 보유한 상태로 일상생활에 어려움이 상당할 것"이라며, 부모에게 법적인 보호·감독 의무가 있다고 봤습니다.


반면 김 씨 측은 자폐성·지적 장애인은 정신질환자와 구분되는 개념이기 때문에 애초에 정신건강증진법이 아니라 장애인복지법과 발달장애인법이 적용돼야 하는데, 그 법들에는 보호 의무자 규정이 없다고 반박합니다.


그리고 김 씨 아들은 성인인 데다 성년후견을 받는 상태도 아닌데, 발달장애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부모에게 법적인 보호 의무를 지우는 건 부당하다고 주장합니다.


■ 쟁점② 김 씨 부부는 '보호 의무'를 위반했나

만약 김 씨 부부가 자폐인 아들의 보호 의무자로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보호·감독 의무를 위반한 사실을 입증해야 손해 배상 책임을 물을 수 있습니다. 보호 의무 위반 판단 기준은 예견 가능성(예상할 수 있었나)과 회피 가능성(막을 수 있었나)입니다.

과거 비슷한 사건의 판례를 참고해 볼 수 있습니다. 양극성 정동장애가 있는 20대 정신질환자의 아파트 방화 사건에서 부모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2021년 대법원 판례를 보면, ▲자녀가 당일 이미 한 차례 불을 질러서 부모가 불을 껐고 ▲그 후에도 톱과 망치로 부모를 위협하며 불안 증세를 보이다 다시 불을 지른 정황을 주요하게 고려했습니다.


이번 사건에선 특히 아파트 관리소장의 진술이 쟁점으로 떠올랐습니다.


관리소장은 화재 현장 조사 당시 "방화 4일 전에도 김 씨 아들이 아파트 밖 쓰레기장에 불을 내 자체 진화를 했다"며 "이틀 뒤 아버지 김 씨에게 전화해 주의를 줬다"고 말했습니다.

보험사 측은 이를 근거로 김 씨 부부가 아들의 방화 위험성을 인지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김 씨 측은 사실이 아니라며 황당하다는 입장입니다.


다른 민원 때문에 관리소장과 통화하던 중 '아들에게 담뱃불을 잘 끄라는 주의를 주라'는 일상적 얘기를 들었을 뿐, 방화 사실에 대한 경고는 아니었다는 겁니다.

"보험사에서 새벽에 왜 따라 나가지 않았냐는 얘기도 하더라고요. 우리 아들을 독립적인 인격체로 생각하지 않는 거죠. 스스로 뭘 할 수 있는 애고 직장도 다녔던 애인데 새벽 1시 20분에 나가는 거를…. 저 그 시간에 잤거든요. 가족들도 다 잤어요."
- 김상현 씨/자폐장애인 아버지

다음 달 1심 선고를 앞둔 아들이 구치소에서 보낸 편지 [KBS ‘뉴스7’ 갈무리]다음 달 1심 선고를 앞둔 아들이 구치소에서 보낸 편지 [KBS ‘뉴스7’ 갈무리]

■ 쟁점③ 소방 추산 2억여 원 vs 보험사 추정 15억여 원

화재로 인한 손해액도 소송의 쟁점 중 하나입니다. 아직 손해사정 절차가 마무리되지 않았는데, 현재까지 보험사는 추정 손해액을 15억 8천만 원, 추정 보험금은 14억 7천만 원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화재 당시 소방 추산 재산 피해액인 2억 8천만 원과는 4~5배 차이가 납니다.


애초 부동산뿐만 아니라 김 씨 월급까지 가압류됐던 것도 보험사가 구상금 청구를 예고한 채권 금액이 15억 원 가까이 됐기 때문입니다.



김 씨는 "보험사에서 화재 피해를 부풀려 화재로 손상된 시설을 일부 보수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건물을 신축하는 단가로 추정 손해액을 매긴 것 같다"며 과다 청구를 의심하고 있습니다.

또 당시 화재 현장 보고서에 따르면 피해가 커진 데는 스프링클러가 늦게 작동했고 방화문이 열려 있어 연기가 빨리 확산한 점도 있는 만큼, 손해 배상 책임이 인정되더라도 과실의 비중을 고려해 배상액이 조정될 것으로 보입니다.

■ "부모 책임 인정되면 다 죽으란 소리"

법원은 김 씨가 낸 가압류 이의신청을 받아들여, 3개월 만에 월급 가압류를 취소했습니다. 이 결정에 불복한 보험사는 다시 항고했고, 김 씨 아내 명의의 아파트 가압류는 유지된 채 소송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번 재판의 결과에 따라 비슷한 상황에 처한 발달장애인 가족을 상대로 한 소송이 잇따를 수도 있는 상황. 장애인 부모들은 "우리에게도 닥칠 수 있는 일"이라며 소송 추이에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부모의 배상 책임이 인정될 경우,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들이 앞으로 더 어려운 처지에 내몰릴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문제적 행동을 교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일차적으로 부모의 몫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저희는 부모의 몫만으로는 이제 극한에 다다랐다는 거거든요. 항상 사회에서 죄인으로만 살아왔던 발달장애 당사자들에게, 또 가족들에게 이건 죽으라는 선고나 마찬가지입니다."
- 백선영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조직국장

"범행을 했으면 그 장애인이 책임을 지는 거죠. 부모에게까지 책임을 지운다면 사실상 감금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돼버리는 거죠. 아예 외부 활동을 차단하고 밖에 못 나가게 막아야 한다는 것밖에 안 되지 않냐…."
- 최정규 변호사/자폐장애인 부모 대리인

그래픽: 권세라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20대 자폐인 아들이 지른 불, 부모가 소송 당했다 [취재후]
    • 입력 2024-11-27 13:59:28
    • 수정2024-11-27 15:20:58
    취재후·사건후

25살 자폐인이, 살고 있던 아파트 쓰레기장에 불을 질렀습니다. 화재 피해는 자폐인의 부모가 배상해야 할까요?
자폐인 아들의 방화 사건 이후 화재보험사로부터 소송을 당한 김상현 씨 가족의 이야기입니다.

[연관 기사] 쓰레기장에 불 지른 20대 자폐인…“책임져라” 부모 월급 가압류 (2024.11.26 뉴스7)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115730

■ 아들 구속된 후 날아든 소장… 월급·집까지 몽땅 가압류

김상현 씨의 아들이 서울의 한 아파트 지하 2층 분리수거장에 불을 지른 건 지난해 10월 21일 새벽 1시.

자다가 안내 방송을 듣고 집 밖으로 대피했다가 돌아올 때까지만 해도, 김 씨는 "아들이 낸 불 때문인 줄은 상상도 못 했다"고 했습니다.

화재 후 외벽에 그을린 흔적이 남아있는 아파트 지하 분리수거장. [KBS ‘뉴스7’ 갈무리]
이 사건으로 아들은 구속기소 됐고, 가족들은 쫓기듯 이사를 했습니다.

그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지난 6월, 아파트 화재 보험사가 김 씨 부부에게 손해 배상 책임에 따른 '구상금 청구'를 예고하며 아내 명의의 집과 김 씨의 월급에 가압류를 건 겁니다.

자폐인 아들에 대한 보호·감독 의무를 소홀히 해 화재 피해를 야기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게 보험사 측 주장이었습니다.

"발달장애인 가족들이 동반자살 하는 경우도 많잖아요. 이런 일이 막 생기니까 '이래서 다 동반 자살 하나보다' 싶고 막막했어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 김상현 씨/자폐장애인 아버지


■ 쟁점① 성인 발달장애인 부모는 '보호 의무자'인가

이번 소송의 쟁점은 결국 '성인 발달장애인의 범죄에 부모의 민사상 책임이 있느냐'는 겁니다. 그러려면 먼저 김 씨 부부가 아들의 법률상 '보호 의무자'에 해당하는지부터 따져야 합니다.

보험사 측은 정신건강증진법상 '정신질환자의 보호 의무자' 규정을 근거로 내세웁니다. 김 씨의 아들이 "9세 수준의 인지적·사회적 능력을 보유한 상태로 일상생활에 어려움이 상당할 것"이라며, 부모에게 법적인 보호·감독 의무가 있다고 봤습니다.


반면 김 씨 측은 자폐성·지적 장애인은 정신질환자와 구분되는 개념이기 때문에 애초에 정신건강증진법이 아니라 장애인복지법과 발달장애인법이 적용돼야 하는데, 그 법들에는 보호 의무자 규정이 없다고 반박합니다.


그리고 김 씨 아들은 성인인 데다 성년후견을 받는 상태도 아닌데, 발달장애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부모에게 법적인 보호 의무를 지우는 건 부당하다고 주장합니다.


■ 쟁점② 김 씨 부부는 '보호 의무'를 위반했나

만약 김 씨 부부가 자폐인 아들의 보호 의무자로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보호·감독 의무를 위반한 사실을 입증해야 손해 배상 책임을 물을 수 있습니다. 보호 의무 위반 판단 기준은 예견 가능성(예상할 수 있었나)과 회피 가능성(막을 수 있었나)입니다.

과거 비슷한 사건의 판례를 참고해 볼 수 있습니다. 양극성 정동장애가 있는 20대 정신질환자의 아파트 방화 사건에서 부모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2021년 대법원 판례를 보면, ▲자녀가 당일 이미 한 차례 불을 질러서 부모가 불을 껐고 ▲그 후에도 톱과 망치로 부모를 위협하며 불안 증세를 보이다 다시 불을 지른 정황을 주요하게 고려했습니다.


이번 사건에선 특히 아파트 관리소장의 진술이 쟁점으로 떠올랐습니다.


관리소장은 화재 현장 조사 당시 "방화 4일 전에도 김 씨 아들이 아파트 밖 쓰레기장에 불을 내 자체 진화를 했다"며 "이틀 뒤 아버지 김 씨에게 전화해 주의를 줬다"고 말했습니다.

보험사 측은 이를 근거로 김 씨 부부가 아들의 방화 위험성을 인지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김 씨 측은 사실이 아니라며 황당하다는 입장입니다.


다른 민원 때문에 관리소장과 통화하던 중 '아들에게 담뱃불을 잘 끄라는 주의를 주라'는 일상적 얘기를 들었을 뿐, 방화 사실에 대한 경고는 아니었다는 겁니다.

"보험사에서 새벽에 왜 따라 나가지 않았냐는 얘기도 하더라고요. 우리 아들을 독립적인 인격체로 생각하지 않는 거죠. 스스로 뭘 할 수 있는 애고 직장도 다녔던 애인데 새벽 1시 20분에 나가는 거를…. 저 그 시간에 잤거든요. 가족들도 다 잤어요."
- 김상현 씨/자폐장애인 아버지

다음 달 1심 선고를 앞둔 아들이 구치소에서 보낸 편지 [KBS ‘뉴스7’ 갈무리]
■ 쟁점③ 소방 추산 2억여 원 vs 보험사 추정 15억여 원

화재로 인한 손해액도 소송의 쟁점 중 하나입니다. 아직 손해사정 절차가 마무리되지 않았는데, 현재까지 보험사는 추정 손해액을 15억 8천만 원, 추정 보험금은 14억 7천만 원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화재 당시 소방 추산 재산 피해액인 2억 8천만 원과는 4~5배 차이가 납니다.


애초 부동산뿐만 아니라 김 씨 월급까지 가압류됐던 것도 보험사가 구상금 청구를 예고한 채권 금액이 15억 원 가까이 됐기 때문입니다.



김 씨는 "보험사에서 화재 피해를 부풀려 화재로 손상된 시설을 일부 보수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건물을 신축하는 단가로 추정 손해액을 매긴 것 같다"며 과다 청구를 의심하고 있습니다.

또 당시 화재 현장 보고서에 따르면 피해가 커진 데는 스프링클러가 늦게 작동했고 방화문이 열려 있어 연기가 빨리 확산한 점도 있는 만큼, 손해 배상 책임이 인정되더라도 과실의 비중을 고려해 배상액이 조정될 것으로 보입니다.

■ "부모 책임 인정되면 다 죽으란 소리"

법원은 김 씨가 낸 가압류 이의신청을 받아들여, 3개월 만에 월급 가압류를 취소했습니다. 이 결정에 불복한 보험사는 다시 항고했고, 김 씨 아내 명의의 아파트 가압류는 유지된 채 소송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번 재판의 결과에 따라 비슷한 상황에 처한 발달장애인 가족을 상대로 한 소송이 잇따를 수도 있는 상황. 장애인 부모들은 "우리에게도 닥칠 수 있는 일"이라며 소송 추이에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부모의 배상 책임이 인정될 경우,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들이 앞으로 더 어려운 처지에 내몰릴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문제적 행동을 교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일차적으로 부모의 몫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저희는 부모의 몫만으로는 이제 극한에 다다랐다는 거거든요. 항상 사회에서 죄인으로만 살아왔던 발달장애 당사자들에게, 또 가족들에게 이건 죽으라는 선고나 마찬가지입니다."
- 백선영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조직국장

"범행을 했으면 그 장애인이 책임을 지는 거죠. 부모에게까지 책임을 지운다면 사실상 감금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돼버리는 거죠. 아예 외부 활동을 차단하고 밖에 못 나가게 막아야 한다는 것밖에 안 되지 않냐…."
- 최정규 변호사/자폐장애인 부모 대리인

그래픽: 권세라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