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동창 머리에 커피포트 휘두른 남성의 최후 [판결남]

입력 2024.12.25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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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까지 올라가는 사건은 많지 않습니다. 우리 주변의 사건들은 대부분 1, 2심에서 해결되지만 특별한 사건이 아니면 잘 알려지지 않는 게 현실이죠. 재판부의 고민 끝에 나온 생생한 하급심 판례, 눈길을 끄는 판결들을 소개합니다.

형법의 '정당방위'는 널리 알려진 개념입니다. 하지만 정작 법원에서 인정되는 사례는 매우 드문데요, 오늘은 정당방위가 주된 쟁점으로 다뤄졌던 최신 하급심 판례를 소개해 드립니다.

■ 만취해 호텔 투숙한 초등학교 동창…방 안에서 무슨 일이

초등학교 동창 사이인 A 씨와 B 씨는 지난 2022년 인천 도심에서 만나 거나하게 술을 마셨습니다.

만취한 둘은 자정이 넘어 한 호텔에 묵게 됐습니다. 그런데 B 씨가 취한 A 씨를 두고 호텔을 떠나자, A 씨는 B 씨를 찾는 전화를 여러 차례 걸었습니다.

전화를 받은 B 씨는 새벽 2시가 넘어 호텔로 돌아왔습니다. B 씨는 "술을 마시고 있는데 왜 자꾸 전화를 했느냐"며 A 씨가 전화를 많이 건 일로 화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둘 사이엔 말싸움이 벌어졌습니다. 이후 방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마지막 순간 A 씨는 B 씨의 머리를 향해 손에 잡힌 커피포트를 휘둘렀고, B 씨는 전치 2주의 두피 열상 등을 입었습니다. 그리고 커피포트는 부서졌습니다.

검찰은 A 씨와 B 씨가 말싸움 끝에 몸싸움을 벌였고, 이 과정에서 A 씨가 B 씨에게 커피포트를 휘두른 걸로 판단했습니다.

검찰은 2023년 8월 A 씨를 형법상 특수상해 혐의와 재물손괴 혐의로 재판에 넘겼습니다.

형법 제258조의2(특수상해)
① …위험한 물건을 휴대하여 상해죄·존속상해죄를 범한 때에는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형법 제366조 (재물손괴 등)
타인의 재물…등…을 손괴 또는 은닉 기타 방법으로 기 효용을 해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형법상 특수상해는 이른바 '위험한 물건'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하는 범죄를 말합니다. 대법원 양형기준상으로도 기본적으로 징역 6월에서 2년, 가중될 경우 최대 징역 3년까지 선고형이 권고되는 중한 범죄입니다.

게다가 A 씨는 커피포트를 부순 재물손괴 혐의도 함께 받는 상황이어서 두 개 이상의 범죄를 동시에 저지른 '경합범'에 해당해, 형이 50%까지 가중될 수 있었습니다. 법원에서 혐의가 유죄로 확정될 경우 사실상 실형을 피하지 못할 상황이었습니다.


■ "죽을 것 같아서 휘둘러" "일방적으로 맞아" 엇갈린 진술

A 씨는 재판에서 억울함을 호소했습니다.

우선 자신의 특수상해 혐의에 대해서는 '정당방위'를, 재물손괴 혐의에 대해서는 '긴급피난'을 주장했습니다.

방 안에선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A 씨와 B 씨의 발언은 서로 엇갈렸습니다.

A 씨는 경찰에서부터 법정에 이르기까지 "B 씨가 가슴 위에 올라타서 양손으로 목을 졸랐고, 발버둥을 치다 죽을 것 같아 (그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바닥에 있던 커피포트로 B 씨의 머리를 한 차례 때렸다"고 일관되게 진술했습니다.

그러면서 A 씨는 경찰에 사진을 제출했는데, 여기엔 △목의 흉터 △턱과 목 부분에 동그란 모양의 멍 △가슴·팔 부분의 멍이 보였습니다.

A 씨는 그 무렵 '경추의 염좌 및 긴장, 어깨 관절의 염좌 및 긴장으로 14일간의 치료를 요한다'는 상해 진단서를 발부받기도 했습니다.

반면 B 씨는 최초 현장에 출동한 경찰에겐 "A 씨와 말다툼하던 중 멱살잡이를 하며 뒹굴게 되었고, A 씨가 의자와 커피포트로 머리와 얼굴을 때려 머리에 피가 났다"고 진술합니다.

B 씨는 2023년 1월 경찰 조사에서는 "객실로 들어가는 찰나 A 씨가 커피포트를 들어 코 부위를 때려 폭행했고, 자신이 넘어지자, A 씨가 서서 발로 온몸을 밟았고 의자를 들어 머리 부분을 5~6회 내리쳤으며, 폭행에 대항해 양손으로 머리를 붙잡고 있었을 뿐 A 씨를 밀치거나 멱살을 잡는 등 신체 접촉을 전혀 하지 않았다"고 진술했습니다.

B 씨의 진술은 계속 바뀌었습니다.

B 씨는 2023년 5월 경찰 조사에선 "객실 내에서 A 씨가 먼저 폭행을 하길래 움직이지 못하게 하려고 A 씨의 가슴 부위와 양팔을 손으로 잡아 제압했고, 한쪽 팔로 A 씨의 오른쪽 다리를 잡고 손으로 멱살을 잡았지만, A 씨 목을 조른 사실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2023년 6월 검찰 수사관과의 전화 통화에서는 수사관이 '객실 내에서 A 씨의 목을 조른 사실이 있느냐'고 묻자, "노래방 계단에서 A 씨가 주먹을 날리기에 A 씨를 바닥에 넘어뜨린 후 주먹질을 하지 못하게 제압한 적은 있지만 그때도 A 씨의 목을 조른 사실은 없다"고 진술했습니다.

형법 제21조(정당방위)
① 현재의 부당한 침해로부터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法益)을 방위하기 위하여 한 행위는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는 벌하지 아니한다.

형법 제22조(긴급피난)
①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위난을 피하기 위한 행위는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벌하지 아니한다.

■ 법원 "정당방위·긴급피난 맞다"…무죄 나자 검찰 즉각 항소

서울동부지법 형사12단독은 A 씨의 정당방위와 긴급피난 주장을 모두 받아들여 A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정당방위와 긴급피난 주장이 동시에 인정된 판결은 그동안 언론에 알려진 적이 없습니다.

법원은 "객실 내에서 있었던 상황에 관해 B 씨의 진술에 일관성이 없고, A 씨의 목을 조른 사실이 없다는 B 씨의 진술은 피고인의 목과 턱 부분의 흉터 및 멍 사진과 명백히 배치된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A 씨의 공소사실 기재 행위는 B 씨가 피고인의 몸 위에 올라타 양손으로 목을 조르자 자신의 생명과 신체에 대한 부당한 침해를 방위하기 위한 것으로서 상당성이 있다고 판단된다"며 정당방위를 인정했습니다.

법원은 B 씨에게 벌금형이 확정된 점을 근거로 들었습니다. 다른 형사사건일지라도 일단 확정된 사실관계는 재판에서 강력한 증명력을 지니기 때문입니다.

B 씨는 '2022년 12월 위 호텔에서 A 씨와 시비하던 중 A 씨를 바닥에 넘어뜨린 뒤 몸 위에 올라타 양손으로 피해자의 목을 졸라 A 씨에게 약 2주간의 치료가 필요한 경추의 염좌 및 긴장 등의 상해를 가했다'는 범죄사실로 벌금 100만 원의 약식명령을 받았고 확정된 바 있었습니다.

법원은 A 씨의 재물손괴 혐의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법원은 "A 씨가 "커피포트를 망가뜨린 행위는 자신의 생명과 신체에 대한 현재의 위난을 피하기 위한 상당한 행위로써 '긴급피난'에 해당된다"며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검찰은 무죄 판결을 받자 즉시 항소했습니다. 이 재판은 서울동부지법 형사항소부에서 다시 한번 다퉈지게 됐습니다.

■ 정당방위·긴급피난 인정 사례 드물어

이 판결이 화제가 된 이유는 법원이 정당방위와 긴급피난의 범위에 대해 매우 좁게 해석하고 있어, 정당방위와 긴급피난이 실제 인정된 예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특히, 둘이 함께 인정된 사례는 찾기 어렵습니다.

우선 정당방위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부당한 현재의 신체 침해에 대항하기 위해 이뤄진 상당한 행위'여야 하는데, 1953년 형법 제정 이후 2014년까지 법원이 정당방위를 인정한 대법원 판례는 불과 14건에 불과합니다.

특히 법원은 외관상 '싸움'에서는 정당방위를 더욱 엄격하게 판단하는데, 정당방위가 인정된 사례는 '구타를 당하던 중 손톱깎이를 휘둘러 다치게 하는 정도'였습니다.

'야간에 길을 지나가던 사람이 행인들로부터 도둑으로 오인돼 무차별 구타를 당하는 상황에서 주변에 있는 곡괭이나 식칼을 휘둘러 사람을 다치게 한 경우'는 정당방위로 인정되지 못했습니다. '싸움이 나면 무조건 맞으라'는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말이 나도는 이유입니다.

이 때문에 실무상 대부분의 폭력 사건에서 경찰은 한 쪽이 정당방위 주장을 하더라도 이를 인정하지 않고, 양쪽 모두를 피의자로 입건하곤 합니다.

긴급피난은 오히려 정당방위보다 더 어렵습니다.

긴급피난이란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위난을 피하기 위해 상당한 이유가 있는 행위'를 뜻합니다.

그런데 긴급피난의 '상당한 이유'에 해당하기 위해서는 △피난행위가 위난에 처한 법익을 보호하기 위한 유일한 수단이어야 하고(유일수단성) △행위자는 피난을 할 때에 피해자에게 가장 경미한 손해를 주는 방법을 택해야 하고(피해최소성) △피난행위에 의한 이익은 그로 인하여 침해되는 이익보다 우월해야 하고(법익우월성)△피난행위 자체가 사회윤리나 법질서 전체의 정신에 비추어 적합한 수단(사회윤리성)이어야 합니다.

위 조건을 모두 갖추어야 비로소 긴급피난이 성립한다는 게 판례의 태도입니다.

■ 1심 선고 한 달 뒤 '강제 키스 혀 절단 사건' 재심 뒤집혀

한편, 대법원 2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지난 18일 최말자 씨의 재심(再審) 청구를 기각한 원심 결정을 파기하고 사건을 부산고법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최 씨는 1964년 자신을 성폭행하려던 남성의 혀를 깨문 '강제 키스 혀 절단 사건'으로 중상해죄로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습니다. 최 씨는 정당방위를 주장했지만, 당시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최 씨는 수십 년이 지난 2020년 재심을 청구했습니다. 1심과 2심은 재심 청구를 기각했지만, 대법원은 결론을 뒤집었습니다.

백인성 법조전문기자·변호사

(자료제공 : 변호사 정구승 성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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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12-25 09:3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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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까지 올라가는 사건은 많지 않습니다. 우리 주변의 사건들은 대부분 1, 2심에서 해결되지만 특별한 사건이 아니면 잘 알려지지 않는 게 현실이죠. 재판부의 고민 끝에 나온 생생한 하급심 판례, 눈길을 끄는 판결들을 소개합니다.

형법의 '정당방위'는 널리 알려진 개념입니다. 하지만 정작 법원에서 인정되는 사례는 매우 드문데요, 오늘은 정당방위가 주된 쟁점으로 다뤄졌던 최신 하급심 판례를 소개해 드립니다.

■ 만취해 호텔 투숙한 초등학교 동창…방 안에서 무슨 일이

초등학교 동창 사이인 A 씨와 B 씨는 지난 2022년 인천 도심에서 만나 거나하게 술을 마셨습니다.

만취한 둘은 자정이 넘어 한 호텔에 묵게 됐습니다. 그런데 B 씨가 취한 A 씨를 두고 호텔을 떠나자, A 씨는 B 씨를 찾는 전화를 여러 차례 걸었습니다.

전화를 받은 B 씨는 새벽 2시가 넘어 호텔로 돌아왔습니다. B 씨는 "술을 마시고 있는데 왜 자꾸 전화를 했느냐"며 A 씨가 전화를 많이 건 일로 화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둘 사이엔 말싸움이 벌어졌습니다. 이후 방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마지막 순간 A 씨는 B 씨의 머리를 향해 손에 잡힌 커피포트를 휘둘렀고, B 씨는 전치 2주의 두피 열상 등을 입었습니다. 그리고 커피포트는 부서졌습니다.

검찰은 A 씨와 B 씨가 말싸움 끝에 몸싸움을 벌였고, 이 과정에서 A 씨가 B 씨에게 커피포트를 휘두른 걸로 판단했습니다.

검찰은 2023년 8월 A 씨를 형법상 특수상해 혐의와 재물손괴 혐의로 재판에 넘겼습니다.

형법 제258조의2(특수상해)
① …위험한 물건을 휴대하여 상해죄·존속상해죄를 범한 때에는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형법 제366조 (재물손괴 등)
타인의 재물…등…을 손괴 또는 은닉 기타 방법으로 기 효용을 해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형법상 특수상해는 이른바 '위험한 물건'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하는 범죄를 말합니다. 대법원 양형기준상으로도 기본적으로 징역 6월에서 2년, 가중될 경우 최대 징역 3년까지 선고형이 권고되는 중한 범죄입니다.

게다가 A 씨는 커피포트를 부순 재물손괴 혐의도 함께 받는 상황이어서 두 개 이상의 범죄를 동시에 저지른 '경합범'에 해당해, 형이 50%까지 가중될 수 있었습니다. 법원에서 혐의가 유죄로 확정될 경우 사실상 실형을 피하지 못할 상황이었습니다.


■ "죽을 것 같아서 휘둘러" "일방적으로 맞아" 엇갈린 진술

A 씨는 재판에서 억울함을 호소했습니다.

우선 자신의 특수상해 혐의에 대해서는 '정당방위'를, 재물손괴 혐의에 대해서는 '긴급피난'을 주장했습니다.

방 안에선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A 씨와 B 씨의 발언은 서로 엇갈렸습니다.

A 씨는 경찰에서부터 법정에 이르기까지 "B 씨가 가슴 위에 올라타서 양손으로 목을 졸랐고, 발버둥을 치다 죽을 것 같아 (그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바닥에 있던 커피포트로 B 씨의 머리를 한 차례 때렸다"고 일관되게 진술했습니다.

그러면서 A 씨는 경찰에 사진을 제출했는데, 여기엔 △목의 흉터 △턱과 목 부분에 동그란 모양의 멍 △가슴·팔 부분의 멍이 보였습니다.

A 씨는 그 무렵 '경추의 염좌 및 긴장, 어깨 관절의 염좌 및 긴장으로 14일간의 치료를 요한다'는 상해 진단서를 발부받기도 했습니다.

반면 B 씨는 최초 현장에 출동한 경찰에겐 "A 씨와 말다툼하던 중 멱살잡이를 하며 뒹굴게 되었고, A 씨가 의자와 커피포트로 머리와 얼굴을 때려 머리에 피가 났다"고 진술합니다.

B 씨는 2023년 1월 경찰 조사에서는 "객실로 들어가는 찰나 A 씨가 커피포트를 들어 코 부위를 때려 폭행했고, 자신이 넘어지자, A 씨가 서서 발로 온몸을 밟았고 의자를 들어 머리 부분을 5~6회 내리쳤으며, 폭행에 대항해 양손으로 머리를 붙잡고 있었을 뿐 A 씨를 밀치거나 멱살을 잡는 등 신체 접촉을 전혀 하지 않았다"고 진술했습니다.

B 씨의 진술은 계속 바뀌었습니다.

B 씨는 2023년 5월 경찰 조사에선 "객실 내에서 A 씨가 먼저 폭행을 하길래 움직이지 못하게 하려고 A 씨의 가슴 부위와 양팔을 손으로 잡아 제압했고, 한쪽 팔로 A 씨의 오른쪽 다리를 잡고 손으로 멱살을 잡았지만, A 씨 목을 조른 사실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2023년 6월 검찰 수사관과의 전화 통화에서는 수사관이 '객실 내에서 A 씨의 목을 조른 사실이 있느냐'고 묻자, "노래방 계단에서 A 씨가 주먹을 날리기에 A 씨를 바닥에 넘어뜨린 후 주먹질을 하지 못하게 제압한 적은 있지만 그때도 A 씨의 목을 조른 사실은 없다"고 진술했습니다.

형법 제21조(정당방위)
① 현재의 부당한 침해로부터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法益)을 방위하기 위하여 한 행위는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는 벌하지 아니한다.

형법 제22조(긴급피난)
①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위난을 피하기 위한 행위는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벌하지 아니한다.

■ 법원 "정당방위·긴급피난 맞다"…무죄 나자 검찰 즉각 항소

서울동부지법 형사12단독은 A 씨의 정당방위와 긴급피난 주장을 모두 받아들여 A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정당방위와 긴급피난 주장이 동시에 인정된 판결은 그동안 언론에 알려진 적이 없습니다.

법원은 "객실 내에서 있었던 상황에 관해 B 씨의 진술에 일관성이 없고, A 씨의 목을 조른 사실이 없다는 B 씨의 진술은 피고인의 목과 턱 부분의 흉터 및 멍 사진과 명백히 배치된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A 씨의 공소사실 기재 행위는 B 씨가 피고인의 몸 위에 올라타 양손으로 목을 조르자 자신의 생명과 신체에 대한 부당한 침해를 방위하기 위한 것으로서 상당성이 있다고 판단된다"며 정당방위를 인정했습니다.

법원은 B 씨에게 벌금형이 확정된 점을 근거로 들었습니다. 다른 형사사건일지라도 일단 확정된 사실관계는 재판에서 강력한 증명력을 지니기 때문입니다.

B 씨는 '2022년 12월 위 호텔에서 A 씨와 시비하던 중 A 씨를 바닥에 넘어뜨린 뒤 몸 위에 올라타 양손으로 피해자의 목을 졸라 A 씨에게 약 2주간의 치료가 필요한 경추의 염좌 및 긴장 등의 상해를 가했다'는 범죄사실로 벌금 100만 원의 약식명령을 받았고 확정된 바 있었습니다.

법원은 A 씨의 재물손괴 혐의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법원은 "A 씨가 "커피포트를 망가뜨린 행위는 자신의 생명과 신체에 대한 현재의 위난을 피하기 위한 상당한 행위로써 '긴급피난'에 해당된다"며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검찰은 무죄 판결을 받자 즉시 항소했습니다. 이 재판은 서울동부지법 형사항소부에서 다시 한번 다퉈지게 됐습니다.

■ 정당방위·긴급피난 인정 사례 드물어

이 판결이 화제가 된 이유는 법원이 정당방위와 긴급피난의 범위에 대해 매우 좁게 해석하고 있어, 정당방위와 긴급피난이 실제 인정된 예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특히, 둘이 함께 인정된 사례는 찾기 어렵습니다.

우선 정당방위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부당한 현재의 신체 침해에 대항하기 위해 이뤄진 상당한 행위'여야 하는데, 1953년 형법 제정 이후 2014년까지 법원이 정당방위를 인정한 대법원 판례는 불과 14건에 불과합니다.

특히 법원은 외관상 '싸움'에서는 정당방위를 더욱 엄격하게 판단하는데, 정당방위가 인정된 사례는 '구타를 당하던 중 손톱깎이를 휘둘러 다치게 하는 정도'였습니다.

'야간에 길을 지나가던 사람이 행인들로부터 도둑으로 오인돼 무차별 구타를 당하는 상황에서 주변에 있는 곡괭이나 식칼을 휘둘러 사람을 다치게 한 경우'는 정당방위로 인정되지 못했습니다. '싸움이 나면 무조건 맞으라'는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말이 나도는 이유입니다.

이 때문에 실무상 대부분의 폭력 사건에서 경찰은 한 쪽이 정당방위 주장을 하더라도 이를 인정하지 않고, 양쪽 모두를 피의자로 입건하곤 합니다.

긴급피난은 오히려 정당방위보다 더 어렵습니다.

긴급피난이란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위난을 피하기 위해 상당한 이유가 있는 행위'를 뜻합니다.

그런데 긴급피난의 '상당한 이유'에 해당하기 위해서는 △피난행위가 위난에 처한 법익을 보호하기 위한 유일한 수단이어야 하고(유일수단성) △행위자는 피난을 할 때에 피해자에게 가장 경미한 손해를 주는 방법을 택해야 하고(피해최소성) △피난행위에 의한 이익은 그로 인하여 침해되는 이익보다 우월해야 하고(법익우월성)△피난행위 자체가 사회윤리나 법질서 전체의 정신에 비추어 적합한 수단(사회윤리성)이어야 합니다.

위 조건을 모두 갖추어야 비로소 긴급피난이 성립한다는 게 판례의 태도입니다.

■ 1심 선고 한 달 뒤 '강제 키스 혀 절단 사건' 재심 뒤집혀

한편, 대법원 2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지난 18일 최말자 씨의 재심(再審) 청구를 기각한 원심 결정을 파기하고 사건을 부산고법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최 씨는 1964년 자신을 성폭행하려던 남성의 혀를 깨문 '강제 키스 혀 절단 사건'으로 중상해죄로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습니다. 최 씨는 정당방위를 주장했지만, 당시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최 씨는 수십 년이 지난 2020년 재심을 청구했습니다. 1심과 2심은 재심 청구를 기각했지만, 대법원은 결론을 뒤집었습니다.

백인성 법조전문기자·변호사

(자료제공 : 변호사 정구승 성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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