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보다 41회 I] 마지막 추락, 그 여객기는 왜
지난달 29일 오전 9시, 전남 무안국제공항.
공항 근처에서 식당을 하는 이근영 씨에게 돌연 심상치 않은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인터뷰> 이근영 / 목격자, 사고 영상 촬영 제가 주방에서 영업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밖에서 쾅쾅쾅쾅 소리가 나더라고요. 세 번에서 네 번 정도 났던 거 같아요. 밖에 나가서 쳐다보니까 비행기가 내려오고 있더라고요. |
활주로에 멈춰야 할 비행기는 이 씨의 눈앞에서 폭발하고 말았습니다.
<인터뷰> 이근영 / 목격자, 사고 영상 촬영 당시 ‘펑’ 했을 때는 그냥 생각이 없었던 것 같아요. 이거 영화인가?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
공항은 한순간에 상실과 슬픔의 공간이 돼 버렸습니다.
제주항공 참사 유가족 (음성변조) 사진도 가족 단체 대화방에 너무 해맑게 동창들하고 해맑게 웃는 사진들을 보내와서 태국에서 즐거웠기 때문에…. |
제주항공 참사 유가족(음성변조) 인생의 친구로 같이 곱게 늙어갈 줄 알았거든요. 근데 이렇게 먼저 가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을 못 했어요. 100세까지 할머니 돼도 우리 이쁘게 좋게 멋지게 살자 이렇게 했거든요. 근데 자기가 가 버렸어. |
인명 피해가 컸던 이번 사고.
손도 써보지 못하고 숨진 희생자 179명.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지난달 29일 아침.
승객과 승무원 181명을 태운 제주항공 7C2216편이 무안국제공항에 착륙을 시도합니다.
▶ 08:54 1차 착륙 허가
사고 여객기가 무안공항에 착륙 허가를 요청한 건 오전 8시 54분.
▶ 08:57 조류 충돌 주의 경고
하지만 3분 뒤 관제탑에서 조류 충돌에 주의하라는 경고가 내려졌습니다.
여객기는 착륙을 미루고 고도를 올리려 합니다.
다시 날아 올랐다가 돌아와 착륙하기 위해 ‘고 어라운드’, 복행을 시도한 겁니다.
▶ 08:59 ‘메이데이(비상)’ 선언
이어진 ‘메이데이’ 선언.
목표만큼 고도를 높이지 못한 비행기가 처음 착륙하려던 방향의 반대쪽으로 기수를 틀며 고도를 낮춥니다.
▶ 09:02 활주로 접지
어떤 이유에서인지 착륙 장치인 랜딩기어 없이 동체착륙을 감행합니다.
▶ 09:03 둔덕 충돌
속도를 줄이지 못한 채 이어진 강한 충돌.
첫 번째 착륙 시도부터 충돌까지 단 9분 걸렸습니다.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의문1】조류 충돌 -> 엔진 고장?
겨울 철새 도래지와 인접한 무안공항.
사고의 시작은 새 떼와의 충돌이었습니다.
1차 착륙 허가 3분 뒤 관제탑은 ‘조류 충돌 주의’를 경고했고 이후 2분 만에 조종사는 조류 충돌 사실을 알리며 메이데이를 외쳤습니다.
강정현 / 국토교통부 항공운항과장 (지난달 30일) 메이데이(비상) 메이데이 메이데이 세 번 선언했고요. 버드 스트라이크(조류 충돌) 버드 스트라이크 고잉 어라운드(복행) 용어를 썼습니다. |
새 떼가 엔진 내부로 빨려 들어갔다면 엔진이 심각하게 손상됐을 가능성이 큽니다.
<인터뷰> 사고 목격자 펑펑펑펑 이렇게 팡 하는 폭파음이 몇 번 났었어요. (착륙 전에요?) 예. 공중에서 이제 그 소리가 났었어요. |
<인터뷰>권보헌/극동대 항공안전관리학과 교수 ∙ 전 대한항공 기장 조류가 엔진 안으로 흡입이 되면 엔진 안에는 블레이드라는 작은 핀들이 앞쪽에 구성이 돼 있어요. 앞에 있는 핀이 하나 부서지면 뒤쪽 핀을 치고 뒤쪽 핀이 부서지면 연쇄적으로 이제 핀을 치죠. 이 핀들이 나가면서 뒤쪽에 있는 연소실을 폭발시키게 됩니다. 그러면 연소실이 폭파되면서 꽝 하는 이런 소음들이 발생하게 됩니다. 근데 쾅쾅한 걸 보면 최소한 우측 엔진에는 다수의 새가 충돌이 된 것으로 보이고…. |
【의문2】엔진 고장 -> 랜딩기어 미작동?
엔진 이상에 복행을 결정한 여객기.
반대 방향 활주로로 착륙을 시도했지만, 랜딩기어가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엔진 손상이 랜딩기어 고장으로 이어졌을까?
사고 초기, 엔진 고장이 랜딩기어 문제와 무관하다던 국토교통부.
하지만 이틀 뒤, 엔진이 모두 고장 나면 랜딩기어 문제로 연결될 수 있다고 입장을 바꿨습니다.
<인터뷰>유경수 / 국토교통부 항공안전정책관(지난달 31일) 엔진 고장 시 유압 계통 이상이 생기게 돼 있어서 랜딩기어 작동에 문제가 생길 수 있는데 만약에 모든 게 다 고장 났다 그럴 경우는 수동으로 할 수 있는 레버가 있습니다. |
사고 직전 찍힌 다른 영상.
오른쪽 엔진뿐 아니라 반대편 엔진에서도 불꽃이 나는 모습이 포착됩니다.
조종사의 메이데이 선언 역시 양쪽 엔진의 손상을 의심해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권보헌 / 극동대 항공안전관리학과 교수 ∙ 전 대한항공 기장 조종사들이 비상 선언을 하는 경우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어느 한쪽에 화재가 발생했을 때 두 번째는 2개의 엔진이 둘 다 손상을 입었을 때 ‘메이데이’를 선언하게 됩니다. 민간 항공에서는 엔진 2개 중에 하나만 손상됐을 경우 ‘비상 상황’이 아니라 ‘비정상 상황’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래서 이런 경우에는 저희가 “팬 팬 팬” 이렇게 선언하게 돼 있거든요. |
엔진 출력이 전부 상실됐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복행 시도가 상황을 더 악화시켰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인터뷰>김인규/한국항공대 비행교육원장 복행하게 되면 추력을 최대로 올려야 합니다. 그런데 접근하면서 조류 충돌을 했다면 엔진에 손상이 이미 가 있죠. 그런 상태에서 다시 추력을 집어넣으면 엔진의 손상이 더 심화가 됩니다. |
결국 복행은 중단됐고 여객기는 비상 착륙을 시도합니다.
<인터뷰>송병흠/한국항공대 항공운항학과 명예교수 활주로가 여기 있는데 이렇게 가다가 우측으로 바로 돌아서 내렸으니까 이건 무슨 얘기냐면 아주 긴급한 비상착륙의 절차입니다. 조종사가 느끼기에는 여기서 비행하는 것은 위험하겠다 여기서는 가능한 한 빨리 착륙하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한 것이죠. |
【의문3】전원 공급 차단?
이때 양쪽 엔진이 모두 정지된 상태라면 유압이 끊기고 전기가 차단돼 조종은 사실상 불가능해집니다.
권보헌 / 극동대 항공안전관리학과 교수 ∙ 전 대한항공 기장 유압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게 되면 조정간이 아주 무거워집니다. 그래서 아마 기장이 선회할 때 굉장히 힘이 들어서 부기장과 같이 사력을 다해서 조정하지 않았을까 |
엔진 한쪽이 작동하더라도 출력이 충분하지 않다면 상황은 비슷할 수 있습니다.
김인규/한국항공대 비행교육원장 엔진이 2개가 다 나갔거나 아니면 1개가 나가고 1개가 불충분한 정도의 출력을 낼 정도다 그러면 그건 유압과 전기가 다 떨어지게 되는 거죠 |
당시 감속 장치인 플랩이 작동하지 않은 것도 전원 차단을 의심케 하는 대목입니다.
송병흠/한국항공대 항공운항학과 명예교수 유족들한테 메시지를 보낼 때 “전기가 꺼졌다” 그런 내용을 (희생자들이) 말하는 거 보면 살아있는 좌측 엔진도 성능이 많이 저하됐다, 아니면 플레임 아웃, 엔진이 꺼지지 않았는가 하는 조심스러운 추측도 해봅니다. |
【의문4】수동 장치는 왜?
물론 랜딩기어나 플랩을 수동으로 펼칠 순 있습니다.
수동 조종 장치를 당기면 중력에 의해 내려오도록 설계됐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비상착륙을 선택한 순간, 수동으로 조작할 여유는 없었을 거로 추정됩니다.
김인규 / 한국항공대 비행교육원장 처음 (비상착륙) 결심했을 때부터 내리는 데까지 불과 3분입니다. 그 시간 동안에는 비상 절차를 사용해서 랜딩기어를 수동으로 내리거나 플랩을 내리거나 하기에는 시간상으로 너무 촉박합니다. 부기장이 자리를 뒤로 빼서 덮개를 열고 3개 기어를 내리려면 최소한 15초를 당기라고 하니까요 1개당 그러면 그 자체만도 한 1분 이상이 걸립니다. |
【의문5】 콘크리트, 왜 거기에?
동체가 활주로에 닿은 뒤에도 기수가 살짝 들린 채 미끄러진 여객기.
조종사는 속도를 줄이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한 것으로 보입니다.
<인터뷰>고승희/신라대 항공운항과 교수, 전 대한항공 기장 에어브레이크를 많이 쓰면 지면에 못 닿으니까 더 미끄러워질 거고, 또 너무 빨리 놓으면 노즈(비행기 앞쪽)가 마찰을 일으키면서 화재가 발생해서 불길이 위로 올라올 수도 있는 거죠. 사실은 그런 것까지 염려해서 제가 볼 때는 그냥 적당히 들다가 중간 정도에는 바로 눌렀거든요. 추락하지 않고 안전하게 내리는 데 집중했다. 그것이 목표였는데…. |
하지만 끝내 멈추지 못했습니다.
조종사는 마지막 순간까지 조종대를 잡고 있던 거로 보입니다.
<인터뷰>고승희/신라대 항공운항학과 교수 충분히 활주로 끝단에 설 것이다. 그리고 속도가 좀 빨라도 끝단에서 벽을 치면서 파손은 좀 있다고 가정하고 접근을 했을 것이다. 자연스럽게 부러뜨리면서 이렇게 해야지. 그거를 거기서 딱 돌덩이가 막고 있다고는 생각을 못 한다는 거죠. |
하지만 활주로 끝을 지났을 때 그 앞에 닥친 건 단단한 콘크리트 둔덕이었습니다.
<인터뷰>김인규/한국항공대 비행교육원장 저도 비행을 하면서 공항에 대한 여러 가지 구조라든가 시설물 내용도 다 파악합니다만 어떤 경우에 이 시설물이 나한테 이런 위해 시설로 위협이 될지까지는 아마 예상을 못 했을 것 같아요. |
인명 피해를 키운 이 구조물은 언제, 왜 설치된 걸까?
활주로 끝에서 280m 떨어진 곳에 설치된 둔덕.
기울어진 지면의 수평을 맞추기 위해 2m 돌출된 형태로 만들어졌는데, 흙더미 안에는 콘크리트 구조물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방위각 시설, 로컬라이저를 지지하기 위한 조치란 게 국토부 설명입니다.
<인터뷰>김홍락 / 국토교통부 공항정책관 (지난달 31일) 왜 이 지지대를 설치하냐면 비바람이나 이런 데 흔들리면 안 되니까 고정하기 위해서 하는 거거든요. 그게 근데 종단 안전 구역 밖에 있으니까, 저희는 그 재료에 제한받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판단해서 그 콘크리트 지지대를 받친 거거든요. |
하지만 무안공항 측은 콘크리트 둔덕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2020년 발주된 무안공항 설계 용역 입찰 공고.
둔덕 위에 설치된 로컬라이저를 부서지기 쉽게 하라는 지침이 담겼습니다.
국토부의 공항 시설 설계 세부 지침에도 항공 장애물은 장소 구분 없이 '받침'까지도 부러지기 쉽게 만들어야 한다고 돼 있습니다.
하지만 보수 공사 땐 오히려 콘크리트 상판을 30cm나 덧댔습니다.
의문은 커지고 있지만 국토부는 원인 규명은커녕 오락가락 해명만 반복하고 있습니다.
<인터뷰>주종완/국토교통부 항공정책실장(지난달 30일) “방위각 시설이 활주로 종단안전구역 외곽에 설치되어 있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
<인터뷰>주종완/국토교통부 항공정책실장(지난 1일) 국제 기준이라든지 또 우리나라 기준 이런 정합성 문제도 함께 지금 보고 있습니다. 살펴보는 중이고 해외 사례도 같이 하고 있다고 말씀드립니다. |
또 여수와 청주 공항에도 유사한 둔덕이 설치된 사실이 알려지자 뒤늦게 전국 공항을 전수조사하기로 했습니다.
유가족이 모여있는 무안공항 대합실.
희생자 179명의 시신을 수습하는 것도, 신원을 확인하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인터뷰>제주항공 참사 유가족(음성변조) 지금 훼손 상태가 너무 안 좋아서 가족들이 시신도 지금 확인하고 바로 왔는데 (제주항공이) 어디에서 장례 치를 것이냐고 다짜고짜 그렇게 물어보니까. 아니 너네는 지금 사람이 죽어서 시신도 이제야 확인했고 다 못 찾았는데…. |
신원 확인과 시신 수습에만 꼬박 일주일이 걸렸습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동생의 시신을 마주한 언니는 억장이 무너집니다.
<인터뷰>제주항공 참사 유가족(음성변조) 예쁜 얼굴이 저기 가서 봤더니 너무 충격적이었어요. 저도 주저앉은 다음에 그래도 우리 동생이 보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저 다시 한번 볼게요. 이렇게 해서, 그때는 무섭다는 생각이 하나도 안 들고 내 동생 얼마나 무서웠을까…. |
2013년 7월 6일, 아시아나 여객기 샌프란시스코 사고.
보잉 777기가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착륙하다 꼬리 부분이 활주로 인근 방파제에 부딪혀 부려지면서 비행기 동체가 나동그라졌습니다.
이 사고의 원인을 분석한 보고서입니다.
발행일자는 2014년 6월 24일. 사고로부터 1년 뒤였습니다.
이번 사고도 정확한 원인이 규명되기에는 긴 시간이 필요합니다.
남겨진 이들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 모릅니다.
<인터뷰>제주항공 참사 유가족(음성변조) 시신만 빨리 좀 어떻게 수습되면 저희는 여기에 트라우마가 너무 있기 때문에 이 공항을 빨리 벗어나고 싶어요. 진짜. 빨리 사건 현장을 나가고 싶어요. 뉴스를 보는 거 자체가 지금 너무 괴로우니까. 이 장면이…. |
남겨진 이들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인터뷰>석정호 / 연세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세월호 참사, 이태원 참사도 있었고 이번에 항공기 참사 같이 이런 사회적 참사가 발생했을 때 무엇보다 서로 비난하지 말고 마음이 아프다는 것을 서로 인정해 주면서 같이 공감해 주고, 그런 아픔을 나누어서 덜어낼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고요. 다시 안정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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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보다] 마지막 착륙, 그 여객기는 왜
-
- 입력 2025-01-05 22:33:17
[더 보다 41회 I] 마지막 추락, 그 여객기는 왜
지난달 29일 오전 9시, 전남 무안국제공항.
공항 근처에서 식당을 하는 이근영 씨에게 돌연 심상치 않은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인터뷰> 이근영 / 목격자, 사고 영상 촬영 제가 주방에서 영업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밖에서 쾅쾅쾅쾅 소리가 나더라고요. 세 번에서 네 번 정도 났던 거 같아요. 밖에 나가서 쳐다보니까 비행기가 내려오고 있더라고요. |
활주로에 멈춰야 할 비행기는 이 씨의 눈앞에서 폭발하고 말았습니다.
<인터뷰> 이근영 / 목격자, 사고 영상 촬영 당시 ‘펑’ 했을 때는 그냥 생각이 없었던 것 같아요. 이거 영화인가?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
공항은 한순간에 상실과 슬픔의 공간이 돼 버렸습니다.
제주항공 참사 유가족 (음성변조) 사진도 가족 단체 대화방에 너무 해맑게 동창들하고 해맑게 웃는 사진들을 보내와서 태국에서 즐거웠기 때문에…. |
제주항공 참사 유가족(음성변조) 인생의 친구로 같이 곱게 늙어갈 줄 알았거든요. 근데 이렇게 먼저 가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을 못 했어요. 100세까지 할머니 돼도 우리 이쁘게 좋게 멋지게 살자 이렇게 했거든요. 근데 자기가 가 버렸어. |
인명 피해가 컸던 이번 사고.
손도 써보지 못하고 숨진 희생자 179명.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지난달 29일 아침.
승객과 승무원 181명을 태운 제주항공 7C2216편이 무안국제공항에 착륙을 시도합니다.
▶ 08:54 1차 착륙 허가
사고 여객기가 무안공항에 착륙 허가를 요청한 건 오전 8시 54분.
▶ 08:57 조류 충돌 주의 경고
하지만 3분 뒤 관제탑에서 조류 충돌에 주의하라는 경고가 내려졌습니다.
여객기는 착륙을 미루고 고도를 올리려 합니다.
다시 날아 올랐다가 돌아와 착륙하기 위해 ‘고 어라운드’, 복행을 시도한 겁니다.
▶ 08:59 ‘메이데이(비상)’ 선언
이어진 ‘메이데이’ 선언.
목표만큼 고도를 높이지 못한 비행기가 처음 착륙하려던 방향의 반대쪽으로 기수를 틀며 고도를 낮춥니다.
▶ 09:02 활주로 접지
어떤 이유에서인지 착륙 장치인 랜딩기어 없이 동체착륙을 감행합니다.
▶ 09:03 둔덕 충돌
속도를 줄이지 못한 채 이어진 강한 충돌.
첫 번째 착륙 시도부터 충돌까지 단 9분 걸렸습니다.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의문1】조류 충돌 -> 엔진 고장?
겨울 철새 도래지와 인접한 무안공항.
사고의 시작은 새 떼와의 충돌이었습니다.
1차 착륙 허가 3분 뒤 관제탑은 ‘조류 충돌 주의’를 경고했고 이후 2분 만에 조종사는 조류 충돌 사실을 알리며 메이데이를 외쳤습니다.
강정현 / 국토교통부 항공운항과장 (지난달 30일) 메이데이(비상) 메이데이 메이데이 세 번 선언했고요. 버드 스트라이크(조류 충돌) 버드 스트라이크 고잉 어라운드(복행) 용어를 썼습니다. |
새 떼가 엔진 내부로 빨려 들어갔다면 엔진이 심각하게 손상됐을 가능성이 큽니다.
<인터뷰> 사고 목격자 펑펑펑펑 이렇게 팡 하는 폭파음이 몇 번 났었어요. (착륙 전에요?) 예. 공중에서 이제 그 소리가 났었어요. |
<인터뷰>권보헌/극동대 항공안전관리학과 교수 ∙ 전 대한항공 기장 조류가 엔진 안으로 흡입이 되면 엔진 안에는 블레이드라는 작은 핀들이 앞쪽에 구성이 돼 있어요. 앞에 있는 핀이 하나 부서지면 뒤쪽 핀을 치고 뒤쪽 핀이 부서지면 연쇄적으로 이제 핀을 치죠. 이 핀들이 나가면서 뒤쪽에 있는 연소실을 폭발시키게 됩니다. 그러면 연소실이 폭파되면서 꽝 하는 이런 소음들이 발생하게 됩니다. 근데 쾅쾅한 걸 보면 최소한 우측 엔진에는 다수의 새가 충돌이 된 것으로 보이고…. |
【의문2】엔진 고장 -> 랜딩기어 미작동?
엔진 이상에 복행을 결정한 여객기.
반대 방향 활주로로 착륙을 시도했지만, 랜딩기어가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엔진 손상이 랜딩기어 고장으로 이어졌을까?
사고 초기, 엔진 고장이 랜딩기어 문제와 무관하다던 국토교통부.
하지만 이틀 뒤, 엔진이 모두 고장 나면 랜딩기어 문제로 연결될 수 있다고 입장을 바꿨습니다.
<인터뷰>유경수 / 국토교통부 항공안전정책관(지난달 31일) 엔진 고장 시 유압 계통 이상이 생기게 돼 있어서 랜딩기어 작동에 문제가 생길 수 있는데 만약에 모든 게 다 고장 났다 그럴 경우는 수동으로 할 수 있는 레버가 있습니다. |
사고 직전 찍힌 다른 영상.
오른쪽 엔진뿐 아니라 반대편 엔진에서도 불꽃이 나는 모습이 포착됩니다.
조종사의 메이데이 선언 역시 양쪽 엔진의 손상을 의심해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권보헌 / 극동대 항공안전관리학과 교수 ∙ 전 대한항공 기장 조종사들이 비상 선언을 하는 경우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어느 한쪽에 화재가 발생했을 때 두 번째는 2개의 엔진이 둘 다 손상을 입었을 때 ‘메이데이’를 선언하게 됩니다. 민간 항공에서는 엔진 2개 중에 하나만 손상됐을 경우 ‘비상 상황’이 아니라 ‘비정상 상황’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래서 이런 경우에는 저희가 “팬 팬 팬” 이렇게 선언하게 돼 있거든요. |
엔진 출력이 전부 상실됐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복행 시도가 상황을 더 악화시켰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인터뷰>김인규/한국항공대 비행교육원장 복행하게 되면 추력을 최대로 올려야 합니다. 그런데 접근하면서 조류 충돌을 했다면 엔진에 손상이 이미 가 있죠. 그런 상태에서 다시 추력을 집어넣으면 엔진의 손상이 더 심화가 됩니다. |
결국 복행은 중단됐고 여객기는 비상 착륙을 시도합니다.
<인터뷰>송병흠/한국항공대 항공운항학과 명예교수 활주로가 여기 있는데 이렇게 가다가 우측으로 바로 돌아서 내렸으니까 이건 무슨 얘기냐면 아주 긴급한 비상착륙의 절차입니다. 조종사가 느끼기에는 여기서 비행하는 것은 위험하겠다 여기서는 가능한 한 빨리 착륙하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한 것이죠. |
【의문3】전원 공급 차단?
이때 양쪽 엔진이 모두 정지된 상태라면 유압이 끊기고 전기가 차단돼 조종은 사실상 불가능해집니다.
권보헌 / 극동대 항공안전관리학과 교수 ∙ 전 대한항공 기장 유압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게 되면 조정간이 아주 무거워집니다. 그래서 아마 기장이 선회할 때 굉장히 힘이 들어서 부기장과 같이 사력을 다해서 조정하지 않았을까 |
엔진 한쪽이 작동하더라도 출력이 충분하지 않다면 상황은 비슷할 수 있습니다.
김인규/한국항공대 비행교육원장 엔진이 2개가 다 나갔거나 아니면 1개가 나가고 1개가 불충분한 정도의 출력을 낼 정도다 그러면 그건 유압과 전기가 다 떨어지게 되는 거죠 |
당시 감속 장치인 플랩이 작동하지 않은 것도 전원 차단을 의심케 하는 대목입니다.
송병흠/한국항공대 항공운항학과 명예교수 유족들한테 메시지를 보낼 때 “전기가 꺼졌다” 그런 내용을 (희생자들이) 말하는 거 보면 살아있는 좌측 엔진도 성능이 많이 저하됐다, 아니면 플레임 아웃, 엔진이 꺼지지 않았는가 하는 조심스러운 추측도 해봅니다. |
【의문4】수동 장치는 왜?
물론 랜딩기어나 플랩을 수동으로 펼칠 순 있습니다.
수동 조종 장치를 당기면 중력에 의해 내려오도록 설계됐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비상착륙을 선택한 순간, 수동으로 조작할 여유는 없었을 거로 추정됩니다.
김인규 / 한국항공대 비행교육원장 처음 (비상착륙) 결심했을 때부터 내리는 데까지 불과 3분입니다. 그 시간 동안에는 비상 절차를 사용해서 랜딩기어를 수동으로 내리거나 플랩을 내리거나 하기에는 시간상으로 너무 촉박합니다. 부기장이 자리를 뒤로 빼서 덮개를 열고 3개 기어를 내리려면 최소한 15초를 당기라고 하니까요 1개당 그러면 그 자체만도 한 1분 이상이 걸립니다. |
【의문5】 콘크리트, 왜 거기에?
동체가 활주로에 닿은 뒤에도 기수가 살짝 들린 채 미끄러진 여객기.
조종사는 속도를 줄이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한 것으로 보입니다.
<인터뷰>고승희/신라대 항공운항과 교수, 전 대한항공 기장 에어브레이크를 많이 쓰면 지면에 못 닿으니까 더 미끄러워질 거고, 또 너무 빨리 놓으면 노즈(비행기 앞쪽)가 마찰을 일으키면서 화재가 발생해서 불길이 위로 올라올 수도 있는 거죠. 사실은 그런 것까지 염려해서 제가 볼 때는 그냥 적당히 들다가 중간 정도에는 바로 눌렀거든요. 추락하지 않고 안전하게 내리는 데 집중했다. 그것이 목표였는데…. |
하지만 끝내 멈추지 못했습니다.
조종사는 마지막 순간까지 조종대를 잡고 있던 거로 보입니다.
<인터뷰>고승희/신라대 항공운항학과 교수 충분히 활주로 끝단에 설 것이다. 그리고 속도가 좀 빨라도 끝단에서 벽을 치면서 파손은 좀 있다고 가정하고 접근을 했을 것이다. 자연스럽게 부러뜨리면서 이렇게 해야지. 그거를 거기서 딱 돌덩이가 막고 있다고는 생각을 못 한다는 거죠. |
하지만 활주로 끝을 지났을 때 그 앞에 닥친 건 단단한 콘크리트 둔덕이었습니다.
<인터뷰>김인규/한국항공대 비행교육원장 저도 비행을 하면서 공항에 대한 여러 가지 구조라든가 시설물 내용도 다 파악합니다만 어떤 경우에 이 시설물이 나한테 이런 위해 시설로 위협이 될지까지는 아마 예상을 못 했을 것 같아요. |
인명 피해를 키운 이 구조물은 언제, 왜 설치된 걸까?
활주로 끝에서 280m 떨어진 곳에 설치된 둔덕.
기울어진 지면의 수평을 맞추기 위해 2m 돌출된 형태로 만들어졌는데, 흙더미 안에는 콘크리트 구조물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방위각 시설, 로컬라이저를 지지하기 위한 조치란 게 국토부 설명입니다.
<인터뷰>김홍락 / 국토교통부 공항정책관 (지난달 31일) 왜 이 지지대를 설치하냐면 비바람이나 이런 데 흔들리면 안 되니까 고정하기 위해서 하는 거거든요. 그게 근데 종단 안전 구역 밖에 있으니까, 저희는 그 재료에 제한받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판단해서 그 콘크리트 지지대를 받친 거거든요. |
하지만 무안공항 측은 콘크리트 둔덕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2020년 발주된 무안공항 설계 용역 입찰 공고.
둔덕 위에 설치된 로컬라이저를 부서지기 쉽게 하라는 지침이 담겼습니다.
국토부의 공항 시설 설계 세부 지침에도 항공 장애물은 장소 구분 없이 '받침'까지도 부러지기 쉽게 만들어야 한다고 돼 있습니다.
하지만 보수 공사 땐 오히려 콘크리트 상판을 30cm나 덧댔습니다.
의문은 커지고 있지만 국토부는 원인 규명은커녕 오락가락 해명만 반복하고 있습니다.
<인터뷰>주종완/국토교통부 항공정책실장(지난달 30일) “방위각 시설이 활주로 종단안전구역 외곽에 설치되어 있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
<인터뷰>주종완/국토교통부 항공정책실장(지난 1일) 국제 기준이라든지 또 우리나라 기준 이런 정합성 문제도 함께 지금 보고 있습니다. 살펴보는 중이고 해외 사례도 같이 하고 있다고 말씀드립니다. |
또 여수와 청주 공항에도 유사한 둔덕이 설치된 사실이 알려지자 뒤늦게 전국 공항을 전수조사하기로 했습니다.
유가족이 모여있는 무안공항 대합실.
희생자 179명의 시신을 수습하는 것도, 신원을 확인하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인터뷰>제주항공 참사 유가족(음성변조) 지금 훼손 상태가 너무 안 좋아서 가족들이 시신도 지금 확인하고 바로 왔는데 (제주항공이) 어디에서 장례 치를 것이냐고 다짜고짜 그렇게 물어보니까. 아니 너네는 지금 사람이 죽어서 시신도 이제야 확인했고 다 못 찾았는데…. |
신원 확인과 시신 수습에만 꼬박 일주일이 걸렸습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동생의 시신을 마주한 언니는 억장이 무너집니다.
<인터뷰>제주항공 참사 유가족(음성변조) 예쁜 얼굴이 저기 가서 봤더니 너무 충격적이었어요. 저도 주저앉은 다음에 그래도 우리 동생이 보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저 다시 한번 볼게요. 이렇게 해서, 그때는 무섭다는 생각이 하나도 안 들고 내 동생 얼마나 무서웠을까…. |
2013년 7월 6일, 아시아나 여객기 샌프란시스코 사고.
보잉 777기가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착륙하다 꼬리 부분이 활주로 인근 방파제에 부딪혀 부려지면서 비행기 동체가 나동그라졌습니다.
이 사고의 원인을 분석한 보고서입니다.
발행일자는 2014년 6월 24일. 사고로부터 1년 뒤였습니다.
이번 사고도 정확한 원인이 규명되기에는 긴 시간이 필요합니다.
남겨진 이들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 모릅니다.
<인터뷰>제주항공 참사 유가족(음성변조) 시신만 빨리 좀 어떻게 수습되면 저희는 여기에 트라우마가 너무 있기 때문에 이 공항을 빨리 벗어나고 싶어요. 진짜. 빨리 사건 현장을 나가고 싶어요. 뉴스를 보는 거 자체가 지금 너무 괴로우니까. 이 장면이…. |
남겨진 이들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인터뷰>석정호 / 연세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세월호 참사, 이태원 참사도 있었고 이번에 항공기 참사 같이 이런 사회적 참사가 발생했을 때 무엇보다 서로 비난하지 말고 마음이 아프다는 것을 서로 인정해 주면서 같이 공감해 주고, 그런 아픔을 나누어서 덜어낼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고요. 다시 안정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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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인 기자 rower@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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