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등판했나?…원·달러 환율 ‘깜짝’ 반전

입력 2025.01.09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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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7일) 서울 외환시장은 특이했습니다. 쭉 오르기만 하던 원·달러 환율이 갑자기 '뚝' 떨어진 겁니다. 주간 거래 마감 결과, 1달러에 1,453원 50전. 하루 전보다 16원 20전이 떨어졌습니다.

대세 상승을 바꿀 정도는 아니지만, 눈에 띄는 반전인 건 분명했습니다. 어제(8일)는 소폭 올랐지만, 1달러에 1,455원. 1,450원대를 유지하며 그제 흐름을 이어갔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 불발로 인한 정치적 혼란이 이어지는 건 그대로인데, 갑자기 환율이 하락세로 반전한 이유가 궁금해집니다.

■ 정치 불안 여전한데 환율 갑자기 하락?

환율은 그제(7일) 1달러에 1,460원대로 출발했습니다. 하락 폭은 오전에 특히 가팔랐습니다. 달러 팔자 주문이 몰렸기 때문입니다. 시장에 달러 물량이 많아지니, 달러 가치가 하락한 겁니다.

그렇다면, 왜 갑자기 달러 매도 물량이 많아졌을까요?

외환시장은 '큰 손' 국민연금을 지목했습니다. 국민연금의 '전략적 환 헤지' 물량이 풀린 것 같다는 추정이 잇따랐습니다.

변정규 미즈호은행 전무는 "며칠 전부터 시작해서 수급 상황을 보면 강하게 달러 셀(매도)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실제 국민연금의 '환 헤지' 물량이 나왔는지는 알 수 없지만, 시장에서는 그렇게 추측한다고 전했습니다.

민경원 우리은행 연구위원은 "실제 (국민연금) 거래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보다 그런 얘기가 돌았다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국민연금의 환 헤지 물량이 나왔다는 소문만으로도 시장에선 달러를 팔아야겠단 분위기가 형성된다는 겁니다. 문 위원은 "매도세가 연금 물량이라면 시장에서 너도나도 매도해야겠다, 이렇게 합리화하는 상황이 발생했던 것"이라며 "그제(7일) 오전에는 이런 쏠림 현상이 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국민연금이 움직였다면, 앞으로 환율이 더 오를 압력은 줄지 않겠냐고 보는 투자자들이 많아진다는 설명입니다.

■ '전략적 환 헤지'가 뭐길래…

그런데, 여기서 궁금해집니다. 국민연금의 전략적 환 헤지가 대체 뭘까요?

헤지(hedge)는 쐐기를 박는다는 뜻입니다. 쐐기로 뭔가를 박듯이, 가격이 움직이지 않게 고정하는 금융 기법을 의미합니다. 오르락내리락하는 가격 급변에서 오는 위험을 피하자는 취지입니다.

그렇다면 환 헤지는 말 그대로 환율 급변에서 오는 위험을 회피하는 기법입니다. 미래 환율이 오를지 내릴지 모르니, 미래에 거래할 환율을 지금 시점의 환율로 고정해 놓자는 겁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A 기업은 6개월 뒤 해외에서 100달러를 벌 예정입니다. 그 100달러를 국내로 들여오려면 원화로 바꿔야겠죠. 그런데 6달 뒤 환율이 어찌 움직일지 가늠이 안 된다면, 차라리 현재 환율로 거래하기로 미리 B 은행과 계약하는 겁니다.

현재 환율이 1달러=1,450원이라면, 6개월 뒤에 14만 5천 원을 받기로 B 은행과 미리 말을 맞추는 거죠.

이렇게 되면 A 기업은 환율 변동 위험은 피할 수 있지만, 문제는 B 은행이죠. 환율 급등락의 위험을 정면으로 감수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B 은행도 자구 조치에 나섭니다. 6달 뒤에 받게 될 100달러를 또 다른 곳에서 빌려와 한국 시장에 파는 겁니다. 6달 뒤에 A 기업에 줄 원화 14만 5천 원을 마련해 놓을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부수 효과가 발생합니다. B 은행이 빌려 온 100달러가 한국 외환시장에 공급되는 겁니다. 이걸 선물환 매도라고 합니다.

국민연금의 '전략적 환 헤지'도 똑같습니다. 국민연금은 원·달러 환율이 일정 수준 이상이 되면, 전체 해외 투자 자산의 최대 10%까지 이렇게 '전략적 환 헤지'를 할 수 있습니다. 외환시장 안정을 위해 마련해 놓은 장치입니다.

지난해 10월 말 기준, 국민연금이 보유한 해외 투자 자산은 4,800억 달러가 넘습니다. 전략적 환 헤지가 이뤄진다면 이 금액의 10%인 480억 달러가 공급될 수 있습니다.

여기에다 국민연금 재량에 따라 전체 해외 자산의 5%까지는 '전술적 환 헤지'도 추가로 할 수 있습니다.

■ 효과는 얼마나? "트럼프·국내 정치 불안이 변수"

국민연금의 전략적 환 헤지는 10개월 동안 진행되고, 달러 가치가 일정 수준 이하로 내려가면 중단됩니다.

박상현 IM 증권 연구위원은 국민연금 환 헤지 물량이 환율 안정에 어느 정도 역할을 할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 "한 달에 50억 달러 내외로 공급이 되는 건데, 크게 추세 전환을 유발할 정도의 물량은 아니"라며 "(환율의) 상단 자체를 막는 역할 정도를 기대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지금 상황에서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구체화할 여러 정책과 국내의 정치적 불확실성, 이번 달 있을 금리 결정 등의 변수 영향이 더 클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트럼프발 변수나 국내 정치 불안이 '환율'이라는 호수의 수위를 끌어올리는 거대 변수입니다. 국민연금의 환 헤지는 범람을 막기 위해 쌓은 모래주머니 같은 겁니다. 당장의 물 넘침을 막을 수는 있지만, 수위 자체의 거대한 변동을 막기엔 역부족입니다.

오는 16일 열리는 한국은행은 금융통화위원회를 엽니다. 올해 첫 금통위에서 내수 진작을 위해 기준금리를 내릴 가능성에 무게가 실립니다. 그렇게 되면 한국과 미국 간 금리 격차가 더 벌어집니다. 그러면 원·달러 환율을 더 밀어 올릴 수 있습니다.

국민연금의 환 헤지라는 모래주머니는 더 역부족이 될 수 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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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1-09 06: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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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7일) 서울 외환시장은 특이했습니다. 쭉 오르기만 하던 원·달러 환율이 갑자기 '뚝' 떨어진 겁니다. 주간 거래 마감 결과, 1달러에 1,453원 50전. 하루 전보다 16원 20전이 떨어졌습니다.

대세 상승을 바꿀 정도는 아니지만, 눈에 띄는 반전인 건 분명했습니다. 어제(8일)는 소폭 올랐지만, 1달러에 1,455원. 1,450원대를 유지하며 그제 흐름을 이어갔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 불발로 인한 정치적 혼란이 이어지는 건 그대로인데, 갑자기 환율이 하락세로 반전한 이유가 궁금해집니다.

■ 정치 불안 여전한데 환율 갑자기 하락?

환율은 그제(7일) 1달러에 1,460원대로 출발했습니다. 하락 폭은 오전에 특히 가팔랐습니다. 달러 팔자 주문이 몰렸기 때문입니다. 시장에 달러 물량이 많아지니, 달러 가치가 하락한 겁니다.

그렇다면, 왜 갑자기 달러 매도 물량이 많아졌을까요?

외환시장은 '큰 손' 국민연금을 지목했습니다. 국민연금의 '전략적 환 헤지' 물량이 풀린 것 같다는 추정이 잇따랐습니다.

변정규 미즈호은행 전무는 "며칠 전부터 시작해서 수급 상황을 보면 강하게 달러 셀(매도)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실제 국민연금의 '환 헤지' 물량이 나왔는지는 알 수 없지만, 시장에서는 그렇게 추측한다고 전했습니다.

민경원 우리은행 연구위원은 "실제 (국민연금) 거래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보다 그런 얘기가 돌았다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국민연금의 환 헤지 물량이 나왔다는 소문만으로도 시장에선 달러를 팔아야겠단 분위기가 형성된다는 겁니다. 문 위원은 "매도세가 연금 물량이라면 시장에서 너도나도 매도해야겠다, 이렇게 합리화하는 상황이 발생했던 것"이라며 "그제(7일) 오전에는 이런 쏠림 현상이 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국민연금이 움직였다면, 앞으로 환율이 더 오를 압력은 줄지 않겠냐고 보는 투자자들이 많아진다는 설명입니다.

■ '전략적 환 헤지'가 뭐길래…

그런데, 여기서 궁금해집니다. 국민연금의 전략적 환 헤지가 대체 뭘까요?

헤지(hedge)는 쐐기를 박는다는 뜻입니다. 쐐기로 뭔가를 박듯이, 가격이 움직이지 않게 고정하는 금융 기법을 의미합니다. 오르락내리락하는 가격 급변에서 오는 위험을 피하자는 취지입니다.

그렇다면 환 헤지는 말 그대로 환율 급변에서 오는 위험을 회피하는 기법입니다. 미래 환율이 오를지 내릴지 모르니, 미래에 거래할 환율을 지금 시점의 환율로 고정해 놓자는 겁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A 기업은 6개월 뒤 해외에서 100달러를 벌 예정입니다. 그 100달러를 국내로 들여오려면 원화로 바꿔야겠죠. 그런데 6달 뒤 환율이 어찌 움직일지 가늠이 안 된다면, 차라리 현재 환율로 거래하기로 미리 B 은행과 계약하는 겁니다.

현재 환율이 1달러=1,450원이라면, 6개월 뒤에 14만 5천 원을 받기로 B 은행과 미리 말을 맞추는 거죠.

이렇게 되면 A 기업은 환율 변동 위험은 피할 수 있지만, 문제는 B 은행이죠. 환율 급등락의 위험을 정면으로 감수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B 은행도 자구 조치에 나섭니다. 6달 뒤에 받게 될 100달러를 또 다른 곳에서 빌려와 한국 시장에 파는 겁니다. 6달 뒤에 A 기업에 줄 원화 14만 5천 원을 마련해 놓을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부수 효과가 발생합니다. B 은행이 빌려 온 100달러가 한국 외환시장에 공급되는 겁니다. 이걸 선물환 매도라고 합니다.

국민연금의 '전략적 환 헤지'도 똑같습니다. 국민연금은 원·달러 환율이 일정 수준 이상이 되면, 전체 해외 투자 자산의 최대 10%까지 이렇게 '전략적 환 헤지'를 할 수 있습니다. 외환시장 안정을 위해 마련해 놓은 장치입니다.

지난해 10월 말 기준, 국민연금이 보유한 해외 투자 자산은 4,800억 달러가 넘습니다. 전략적 환 헤지가 이뤄진다면 이 금액의 10%인 480억 달러가 공급될 수 있습니다.

여기에다 국민연금 재량에 따라 전체 해외 자산의 5%까지는 '전술적 환 헤지'도 추가로 할 수 있습니다.

■ 효과는 얼마나? "트럼프·국내 정치 불안이 변수"

국민연금의 전략적 환 헤지는 10개월 동안 진행되고, 달러 가치가 일정 수준 이하로 내려가면 중단됩니다.

박상현 IM 증권 연구위원은 국민연금 환 헤지 물량이 환율 안정에 어느 정도 역할을 할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 "한 달에 50억 달러 내외로 공급이 되는 건데, 크게 추세 전환을 유발할 정도의 물량은 아니"라며 "(환율의) 상단 자체를 막는 역할 정도를 기대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지금 상황에서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구체화할 여러 정책과 국내의 정치적 불확실성, 이번 달 있을 금리 결정 등의 변수 영향이 더 클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트럼프발 변수나 국내 정치 불안이 '환율'이라는 호수의 수위를 끌어올리는 거대 변수입니다. 국민연금의 환 헤지는 범람을 막기 위해 쌓은 모래주머니 같은 겁니다. 당장의 물 넘침을 막을 수는 있지만, 수위 자체의 거대한 변동을 막기엔 역부족입니다.

오는 16일 열리는 한국은행은 금융통화위원회를 엽니다. 올해 첫 금통위에서 내수 진작을 위해 기준금리를 내릴 가능성에 무게가 실립니다. 그렇게 되면 한국과 미국 간 금리 격차가 더 벌어집니다. 그러면 원·달러 환율을 더 밀어 올릴 수 있습니다.

국민연금의 환 헤지라는 모래주머니는 더 역부족이 될 수 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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