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지마 키이우]④ 약소국이 현대전에서 살아남는 법…우크라이나의 드론 교육 [취재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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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우크라이나 특별 취재팀은 1월 한 달 동안 지난해 12월 우크라이나 출장 경험을 취재 후기 형태로 전합니다. 네 번째 후기는 드론 체계에서 만큼은 러시아군을 압도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력에 대한 내용으로, 우크라이나군에게 드론 공학을 교육하는 드로나르냐 취재기입니다.
■ 건물 외관이나 창밖은 찍지 마세요
한겨울 우크라이나 키이우는 오후 4시면 해가 진다. 그 어둑한 시간에 키이우 외곽의 한 지역에 이르렀다. 한 여성이 우리를 마중 나왔다. 건물 외관을 찍지 말 것, 건물 안에선 창밖을 찍지 말 것을 당부했다. 러시아군의 공습을 예방하기 위한 조치였다. 그녀를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벽면을 장식한 여러 장의 매뉴얼이 눈에 들어왔다. 드론을 구성하는 부품에 대한 설명부터 조립 방법이 적혀 있었다. 그곳은 우크라이나군에게 군사용 드론 공학을 교육하는 NGO 드로나르냐의 교육장이었다.
교육장은 단출했다. 사무실 2곳의 가운데 벽면을 일부 텄고, 모두 합쳐 농구장 반코트 크기였다. 벽면을 따라 조그만 책상과 의자가 빽빽하게 놓였고, 우크라이나 군복을 입은 남녀 대여섯 명이 드라이버와 납땜 장비를 들고 레고를 조립하듯 드론을 만들고 있었다. 조잡해 보일 수도 있지만, 이들이 만들고 있던 건 일회용 자폭 드론, 일명 '가미카제'의 본체였다. 자폭용이기 때문에 값싼 부품으로 신속히 만들 수 있어서, 기본적인 조립 교육 단계에서 활용하는 드론이다.
■ 드론 기술자 가르치는 '시코르스키의 후예'
잠시 뒤 28살 청년이 내 앞에 섰다. 이름은 막심 셰레멧, 흔히 '키이우 공대'라고 불리는 우크라이나 국립 기술 대학교 이고르 시코르스키 키이우 폴리테크닉 연구소를 졸업한 항공·우주공학 박사다. 시코르스키?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이름이다. 미국의 헬리콥터 제작사 시코르스키를 창립했고, "항공학은 산업도 과학도 아닌 기적"이라고 말했던 그 시코르스키다. 시코르스키도 키이우 공대 출신이다.
막심은 대학생 시절부터 상업용 드론을 만들었다. 이후 우크라이나의 전략 무기와 군사 장비 제조업체인 국영회사에서 일했고, 무인 항공기와 원격 조종 항공기 시스템 및 소프트웨어를 전문으로 하는 영국회사에서도 근무했다. 그러다 2022년 2월 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고 키이우가 포위될 위기에 처하자, 행동에 나섰다. 그해 3월, 동료 10명과 함께 기부받은 부품과 폭발물을 모아 러시아 진지를 공격할 자폭 드론을 만들기 시작했다. 군사용 드론 공학 교육기관 '드로나르냐'와 군사용 드론 제작업체 '드론 스페이스 랩스'의 시작이다.
막심은 드로나르냐에서 군인들이 자신이 쓸 드론의 부품을 만들고, 조립하고, 수리하며, 변형할 수 있도록 '드론 공학'을 배운다고 말했다. 적의 장갑차나 탱크, 참호를 파괴할 때, 야간 정찰을 해야 할 때, 적의 전파방해를 뚫어야 할 때, 장거리 공습을 해야 할 때 요구되는 드론의 장비나 성능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처럼 전장에서 필요에 따라 드론을 개조할 수 있는 능력을 가르치는 걸 막심은 "드론이라는 플랫폼의 가능성을 극대화하는 방법을 가르친다"라고 표현했다. 이렇게 막심 등이 2년 반 동안 교육한 드론 기술자는 316명이다. 많은 숫자가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이런 교육 기관이 우크라이나 내에 수백 곳이다.
■ "로켓 과학이 아니에요"…드론 제작은 애자일 방식으로
흔히 대기업에서 제품을 개발할 땐 프로젝트를 단계별로 순차적으로 진행한다. 먼저 제품의 요구사항을 정의하고, 설계를 한다. 이후 디자인과 구현이 이뤄지고, 검증한 뒤 완전한 제품을 출시한다. 이때 각 단계가 완료돼야만 다음 단계로 진행한다. 이처럼 업무가 단계별로 순차적으로 이뤄지는 걸 워터폴(Waterfall, 폭포) 방식이라고 한다. 물론 제품을 써본 고객이 문제점을 발견하고 추가 요구를 하면 개선하거나 새로운 제품을 출시하는 환류가 이뤄지지만, 시차가 발생한다. 드론의 세계에선 미국의 제너럴 아토믹스 등이 만드는 MQ-9 리퍼처럼 대당 수백억 원에서 천억 원이 훌쩍 넘는 고성능 무인기를 이렇게 만든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러시아에 침공당한 우크라이나 입장에선 MQ-9 리퍼를 살 돈도, 만들 돈과 시간도 없었다. 워터폴 방식으론 불가능했다. 당장 밀려오는 러시아의 전차와 장갑차를 파괴하기 위해 상업용 드론에 폭탄을 달았다. 그러나 아무리 중국산이라도 완제품을 쓰기엔 비쌌다. 그래서 탄소 섬유와 알루미늄, 심지어 나무를 깎아 프레임을 만들었다. 일인칭 시점 카메라는 싼값에 구할 수 있는 웹캠을 달았다. 이렇게 제조 단가를 50달러 정도로 낮췄다.
이렇게 개조하는 데 걸린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한 번은 오후 5시쯤 우크라이나군 특수작전본부가 막심에게 드론 개조를 요청했다. 야간에 500미터 거리에서 덤불 속의 적군을 감지할 수 있도록 중국제 완성품 드론에 열화상 카메라와 카메라용 무선 송신 장비를 장착하는 일이었다. 막심은 14시간 만인 다음 날 오전 7시에 작업을 마무리했다. 이처럼 우크라이나 드론 업체들은 완벽한 제품이 아니더라도 고객의 요구에 따라 즉시 제품을 개조하는 방식을 택했다. 스타트업이 많이 쓰는, 이른바 애자일(Agile) 방식으로 순환·반복적인 접근을 통해 고객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방법이다.
막심은 인터뷰 내내 "It's not a rocket science"라고 여러 차례 말했다. 대단히 어려운 게 아니라는 뜻처럼 우크라이나군의 드론은 첨단 과학이 아니었다. 절실한 전장의 필요를 충족하기 위한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지속적인 노력의 결과물이었다. 물론 드론이 만능이 아니고, 전쟁에선 여전히 우크라이나가 불리한 상황이지만, 우크라이나군은 러시아라는 골리앗을 상대로 드론을 활용한 돌팔매질이 얼마만큼 효과적인지 잘 보여줬다. 그리고 그 뒤에는 드로나르냐처럼 민간 전문가가 모여 군을 지원하는 자생적 조직이 있기에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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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지마 키이우]④ 약소국이 현대전에서 살아남는 법…우크라이나의 드론 교육 [취재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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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5-01-14 07:00:54
- 수정2025-01-14 21:03:16
■ 건물 외관이나 창밖은 찍지 마세요
한겨울 우크라이나 키이우는 오후 4시면 해가 진다. 그 어둑한 시간에 키이우 외곽의 한 지역에 이르렀다. 한 여성이 우리를 마중 나왔다. 건물 외관을 찍지 말 것, 건물 안에선 창밖을 찍지 말 것을 당부했다. 러시아군의 공습을 예방하기 위한 조치였다. 그녀를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벽면을 장식한 여러 장의 매뉴얼이 눈에 들어왔다. 드론을 구성하는 부품에 대한 설명부터 조립 방법이 적혀 있었다. 그곳은 우크라이나군에게 군사용 드론 공학을 교육하는 NGO 드로나르냐의 교육장이었다.
교육장은 단출했다. 사무실 2곳의 가운데 벽면을 일부 텄고, 모두 합쳐 농구장 반코트 크기였다. 벽면을 따라 조그만 책상과 의자가 빽빽하게 놓였고, 우크라이나 군복을 입은 남녀 대여섯 명이 드라이버와 납땜 장비를 들고 레고를 조립하듯 드론을 만들고 있었다. 조잡해 보일 수도 있지만, 이들이 만들고 있던 건 일회용 자폭 드론, 일명 '가미카제'의 본체였다. 자폭용이기 때문에 값싼 부품으로 신속히 만들 수 있어서, 기본적인 조립 교육 단계에서 활용하는 드론이다.
■ 드론 기술자 가르치는 '시코르스키의 후예'
잠시 뒤 28살 청년이 내 앞에 섰다. 이름은 막심 셰레멧, 흔히 '키이우 공대'라고 불리는 우크라이나 국립 기술 대학교 이고르 시코르스키 키이우 폴리테크닉 연구소를 졸업한 항공·우주공학 박사다. 시코르스키?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이름이다. 미국의 헬리콥터 제작사 시코르스키를 창립했고, "항공학은 산업도 과학도 아닌 기적"이라고 말했던 그 시코르스키다. 시코르스키도 키이우 공대 출신이다.
막심은 대학생 시절부터 상업용 드론을 만들었다. 이후 우크라이나의 전략 무기와 군사 장비 제조업체인 국영회사에서 일했고, 무인 항공기와 원격 조종 항공기 시스템 및 소프트웨어를 전문으로 하는 영국회사에서도 근무했다. 그러다 2022년 2월 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고 키이우가 포위될 위기에 처하자, 행동에 나섰다. 그해 3월, 동료 10명과 함께 기부받은 부품과 폭발물을 모아 러시아 진지를 공격할 자폭 드론을 만들기 시작했다. 군사용 드론 공학 교육기관 '드로나르냐'와 군사용 드론 제작업체 '드론 스페이스 랩스'의 시작이다.
막심은 드로나르냐에서 군인들이 자신이 쓸 드론의 부품을 만들고, 조립하고, 수리하며, 변형할 수 있도록 '드론 공학'을 배운다고 말했다. 적의 장갑차나 탱크, 참호를 파괴할 때, 야간 정찰을 해야 할 때, 적의 전파방해를 뚫어야 할 때, 장거리 공습을 해야 할 때 요구되는 드론의 장비나 성능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처럼 전장에서 필요에 따라 드론을 개조할 수 있는 능력을 가르치는 걸 막심은 "드론이라는 플랫폼의 가능성을 극대화하는 방법을 가르친다"라고 표현했다. 이렇게 막심 등이 2년 반 동안 교육한 드론 기술자는 316명이다. 많은 숫자가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이런 교육 기관이 우크라이나 내에 수백 곳이다.
■ "로켓 과학이 아니에요"…드론 제작은 애자일 방식으로
흔히 대기업에서 제품을 개발할 땐 프로젝트를 단계별로 순차적으로 진행한다. 먼저 제품의 요구사항을 정의하고, 설계를 한다. 이후 디자인과 구현이 이뤄지고, 검증한 뒤 완전한 제품을 출시한다. 이때 각 단계가 완료돼야만 다음 단계로 진행한다. 이처럼 업무가 단계별로 순차적으로 이뤄지는 걸 워터폴(Waterfall, 폭포) 방식이라고 한다. 물론 제품을 써본 고객이 문제점을 발견하고 추가 요구를 하면 개선하거나 새로운 제품을 출시하는 환류가 이뤄지지만, 시차가 발생한다. 드론의 세계에선 미국의 제너럴 아토믹스 등이 만드는 MQ-9 리퍼처럼 대당 수백억 원에서 천억 원이 훌쩍 넘는 고성능 무인기를 이렇게 만든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러시아에 침공당한 우크라이나 입장에선 MQ-9 리퍼를 살 돈도, 만들 돈과 시간도 없었다. 워터폴 방식으론 불가능했다. 당장 밀려오는 러시아의 전차와 장갑차를 파괴하기 위해 상업용 드론에 폭탄을 달았다. 그러나 아무리 중국산이라도 완제품을 쓰기엔 비쌌다. 그래서 탄소 섬유와 알루미늄, 심지어 나무를 깎아 프레임을 만들었다. 일인칭 시점 카메라는 싼값에 구할 수 있는 웹캠을 달았다. 이렇게 제조 단가를 50달러 정도로 낮췄다.
그래도 일회용 자폭 드론으론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웠다. 드론을 여러 번 쓸 수 있도록 수류탄 투하용 다리를 달았다. 정찰용으로 개조해달라는 의뢰가 오자, 풀HD 해상도의 액션카메라를 달았다. 야간에도 정찰할 수 있게 해달라는 요청이 오자, 수제 열화상 카메라를 달았다. 러시아군의 전파 방해를 피할 방법을 만들어 달라고 하자, 낚싯줄처럼 가는 광케이블을 달았다.
이렇게 개조하는 데 걸린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한 번은 오후 5시쯤 우크라이나군 특수작전본부가 막심에게 드론 개조를 요청했다. 야간에 500미터 거리에서 덤불 속의 적군을 감지할 수 있도록 중국제 완성품 드론에 열화상 카메라와 카메라용 무선 송신 장비를 장착하는 일이었다. 막심은 14시간 만인 다음 날 오전 7시에 작업을 마무리했다. 이처럼 우크라이나 드론 업체들은 완벽한 제품이 아니더라도 고객의 요구에 따라 즉시 제품을 개조하는 방식을 택했다. 스타트업이 많이 쓰는, 이른바 애자일(Agile) 방식으로 순환·반복적인 접근을 통해 고객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방법이다.
막심은 인터뷰 내내 "It's not a rocket science"라고 여러 차례 말했다. 대단히 어려운 게 아니라는 뜻처럼 우크라이나군의 드론은 첨단 과학이 아니었다. 절실한 전장의 필요를 충족하기 위한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지속적인 노력의 결과물이었다. 물론 드론이 만능이 아니고, 전쟁에선 여전히 우크라이나가 불리한 상황이지만, 우크라이나군은 러시아라는 골리앗을 상대로 드론을 활용한 돌팔매질이 얼마만큼 효과적인지 잘 보여줬다. 그리고 그 뒤에는 드로나르냐처럼 민간 전문가가 모여 군을 지원하는 자생적 조직이 있기에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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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철 기자 bullsey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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